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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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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kpai (jink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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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1975년 5월 19일은 화창한 봄 날씨의 월요일이었다.
낮 12시 명동성당 건너의 YWCA강당 입구에는 신랑 배진건과 신부 김수정의 이름이 하얀 종이 위에 붓글씨로 쓰여 있었다. 30년 전 오늘 김영백 목사님의 주례로 나와 아내가 결혼식을 올렸다.
토요일이 아니라 월요일로 잡힌 것은 결혼의 모든 일정이 빠르게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강력히 반대하던 장모님이 마지막으로 마음을 바꾸고 나서는 모든 것이 초고속이었다.
4월 19일 약혼, 5월 19일 결혼, 그리고 비자 받는 데로 출국….
그 당시 네 명의 누이는 미국에서 살기에 나머지 가족인 부모님과 나와 여동생은 전가족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님은 나이가 좀 어리지만 그래도 공부를 위해서는 결혼을 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장모님은 오랫동안 둘이 친구로 사귀는 것은 아셨지만 막상 큰 딸이 나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반대를 하신 것이다. 가진 것이 없고 장래가 불분명한 것도 이유였지만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위가 싫으셨다.
어린 나이 열 아홉에 동네 오빠를 따라 평양에 모든 가족을 남기고 홀홀 단신 남한으로 온 본인 처지를 생각할 때 큰 딸이 본인처럼 가족을 모두 남기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 더 싫으셨다.
나의 아내는 처음으로 가진 장모님의 핏줄이었기에 애착이 크셨다. 모든 좋은 것은 큰 딸이 우선이었다. 그런 큰 딸을 멀리 미국으로 보내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으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빨리 결혼을 한 터라 결혼식에는 친구들이 많이 참석을 하였다.
결혼 축하로 바이올린을 연주한 마우스 최응상, 김남희, 서종민, 임남빈, 우종상, 그리고 신랑 신부와 친구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남자 쪽이라고 남자들 옆에 혼자 서있는 여자 임상희……등 여러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서병일은 마침 방위병 훈련을 받고 있기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멀리 가지 않았다.
곧 미국으로 떠나는데 가까운 곳에서 조용히 지내고 오라는 양가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한강이 바로 밑에 흐르는 워커힐의 한 방갈로가 신혼여행 지였다.
결혼식에 참석 못한 애석함을 대신해 우리 가정을 처음으로 방문해 준 사람이 서병일이다.
방위병 훈련이 지금 기억에 성남비행장 이었다. 친구는 그날의 훈련을 끝내고 신혼 방에 들어 오자 마자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기 위해 먼저 샤워를 하였다.
아직 신혼 부부가 사용하지 않은 샤워를 제일 먼저 한 손님이었다.
아직도 사업차 뉴욕 방문 시 첫날에는 호텔보다도 꼭 우리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서병일이다. 그 다음 날의 방문객은 혼자가 아니었다. 우종상(우갑상의 사촌)은 사귄 지 몇일 되지 않은 경숙씨를 모든 결혼행사에 데리고 왔다. 함을 지기 위해 등촌동 우리 집에서 아내의 수유리 집으로, 약혼식을 하였던 수유리 집과 결혼식에 이어 신혼여행 길에도 데리고 왔다. 결혼 다음 날의 명분은 사진 촬영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6년 만에 결혼을 하였다.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뉴저지에 같이 살고 있는 종상이네 집에 가도 아직도 작품처럼 멋있는 사진이 바로 그날 찍은 사진이다. 신혼여행을 그렇게 친구들과 재미있게 보냈기에 돈을 쓰지 않았다.
선물로 여행비용을 다 담당하신 큰 외삼촌에게 나중에 야단(?)을 맞았다.
“너 신혼여행에서 너무 돈을 쓰지 않았더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창세기 2:24)”.
30년 전 오늘은 나와 아내 두(二) 사람(人)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인 원(元)이었고, 가정(집, 完)을 이루게 하신 완(完)이었다. 그 시작이며 완성의 날로부터 30년이면 오랜 세월이다.
이제는 네 명의 부모님 중에서 나의 어머니만 빼고는 다 하늘 나라로 가셨다.
네 분의 땅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30년 동안 우리 가정을 늘 지켜주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 드린다. 무엇보다도 나의 다른 쪽이 되어서 나를 늘 완성시켜주는 아내에게 감사 드린다.
앞으로 30년이 될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30년 전 오늘의 약속이 하늘나라로 계속 이어지기를……
I love YOU !!!

50519

Cynthia & Tom 2005.05.20  11:06  [68.173.8.99]

Happy Anniversary!! We love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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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y2r 2006.03.26  04:18

배진건씨, 참 반가우네요.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릅니다. 이종례 권사님 소식이 알고 싶습니다. 나는 은퇴를 하고 현재 일산에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 연락 바랍니다. ybkim0316@yahoo.co.kr 김영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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