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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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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법(法) 안에서 아버지(Father-in-law)

2005.04.15 09:18 | 내 가족 이야기 | jinkpai

http://kr.blog.yahoo.com/jinkpai/945100 주소복사

-= IMAGE 1 =-

“이모부, 왜 미국 결혼식은 사회자가 없어요?” 지난 17일 상훈이와 수진이의 결혼식이 끝난 직후 미국식 결혼식을 처음 본 서울에서 온 조카딸 은영이가 물었다. 결혼식의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이 사회와 예식을 함께 진행하기에 없다고 간단히 대답하였다. 한국에서는 주례자가 고매한 분이면 어느 분이나 가능하지만 미국은 클러지(clergy; 목사, 신부 혹은 스님)나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만이 결혼주례를 설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주례자가 두 사람이 결혼을 하였다는 라이센스에 서명을 하여 결혼의 법적인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날 두 사람의 결혼식을 주례한 목사님이 바로 신부(新婦) 수진의 막내 삼촌 정태호 목사님이셨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플로리다에 사시지만 탬파(Tampa)에서 펜사콜라(Pensacola)까지는 자동차로 8시간이나 걸리기에 주례 목사님은 그 다음날 주일설교 때문에 사진만 찍으시고 저녁도 못 잡수시고 떠나야 하셨다. 가시기 전에 인사를 나누며 “두 사람의 결혼 라이센스는 그냥 아버지인 형님 목사님이 사인하시면 되니 걱정 마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결혼의 법적인 것 까지는 생각 못 했지만 주례자는 달랐다. 그래서 생각하니 주례자의 “Please, congratulate the first march of Mr. & Mrs. Thomas Pai” 라는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이제는 신부 정수진이 아니고 며느리 배수진이 되어 나는 법적으로 ‘시아버지’가 된 것이다. 물론 지난 몇 달은 수진이가 전화 할 때마다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하고 문안하며 실제적인 시아버지 노릇을 하였지만 이제는 법적으로도 시아버지가 된 것이다. 영어의 시아버지 표현인 ‘Father-in-law’ 라는 말이 ‘법 아래서(안에서) 아버지’ 라고 표현한 것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아무 관계가 없던 나와 수진이가 나의 아들 상훈과 결혼이라는 특별한 관계 때문에 법 안에서 아버지가 되었고 딸이 되었다. 이 관계는 실제 상훈과 수진의 결합이 법적으로 유효할 때는 계속 지속되는 관계이다.

식이 끝나자 마자 결혼사진을 찍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 같았다. 미국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먼저 부모가 된 우리 부부와 한 컷을 찍고 그 다음에는 할머니와 동생 상준이 포함된 실질적인 ‘배’씨들이 찍었다. 그리고 나서야 고모들과, 고모부, 사촌들이 또 들어왔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법적인 관계를 쉽게 나타내는 ‘촌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롭게 인식했다. 부부는 결혼이라는 특별한 관계 때문에 촌수가 없다.

로마서는 구원의 핵심 단어인 ‘예수 안에서(In Christ)’를 설명하기 위해 ‘법’과 ‘은혜’를 대조하며 물론 결혼의 예도 들고 있다. 바울은 변호사답게 구원의 법적인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잘 설명한다. 구원은 바로 ‘예수 안에서’ 라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와 예수님의 그 새로운 관계가 우리를 과거에서 자유롭게 하며 그 관계가 우리를 현재 즐겁게 하며 그 관계가 미래의 소망을 불어 넣어주며 그 관계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원천이며 또 영원히 살 수 있게 하는 근거인 것이다. ‘샬롬’ 이라는 유대인의 인사는 그저 평안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평의 관계를 의미한다. ‘법 안에서’ 나의 큰 며느리 수진이와 나는 ‘아버지와 딸’로 새로운 아름다운 관계를 영원에 이어나아갈 것이다. 결혼의 비밀은 바로 ‘감추어진 비밀’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누가 감히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하나? 결혼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다.

0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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