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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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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2월 17일 어머니는 집 사람과 함께 신장전문의를 만나셨다.
주치의인 안 박사님을 만나고 연이어 잡아놓은 약속이었다.
이틀 전 혈액검사 결과가 크레아틴이 8이 넘었기에(정상은 0.5 ~ 1.5)
이제는 더 이상은 지탱할 수 없다는 김 박사의 소견이었다.
85년 동안 쉼이 없이 움직여 온 어머니의 신장이 이제는 작동을 거부한 것이다.
오늘로 당장 응급실로 들어가라는 의사의 명령이었다.
내가 퇴근하기 전에 어머니와 집 사람은 입원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온 나도 병원에서 읽을 책을 뒤적거렸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라는 소설가 최인호의 책을 빼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쓴 이야기가 이런 경우에 걸맞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박 장로님 댁에서 매우 맛있는 저녁을 드시고 우리는 응급실로 직접 갔다.
응급실은 말처럼 급(急)한 곳이 아니어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병상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전학적으로 아들은 어머니를 더 닮게 돼 있어서 그런지 나는 외탁을 많이 하였다.
벌써 15년 전인가?
럿거스대학 한인기독학생회가 근처의 대학생들을 부활절 잔치에 초대하였을 때 줄리아드에 다니던 막내 외삼촌의 쌍둥이 두 딸이 오랜만에 만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자기들 아빠를 너무 닮아 쌍둥이들이 엄청 놀란 것이었다.
‘어머.., 어머…’ 라는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외모뿐만 아니라 O형의 혈액형도 태음인의 체질도 닮았다.
또한 강한 성격과 숫자에 밝은 것까지 모두 어머니를 닮았다.
어떤 때는 강한 성격의 내가 싫었기에 나에게 유전자를 준 어머니도 싫었다.
자기보다 먼저 젊은 나이의 딸을 하늘나라에 보내면서도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셨고
남편을 먼저 보내고도 울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남편이 있던 양로원에 더 이상 매일 갈 필요가 없는데도
병원에 입원하기 이틀 전까지 7년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씩 양로원에 봉사하러 가셨다. 일상을 바꾸지 않는 특별한 성격이다.
2002년과 2003년에 찬양교회에 온 신입교우를 위해서 빚으신 케이크의 숫자가 1백33개가 신입교우 숫자와 일치한다고 재미있어 하시는 분이다.
새로 태어난 교회 아이들에게 직접 손으로 짜신 포대기를 15개 주었다고 자랑하신다.
어머니의 장부는 그렇게 정확했다.
어머니는 찬양교회가 시작한 후부터 꾸준히 신입교우가 오면 케이크를 구워주는 것을 자기만의 일로 알았다. 한번 시작한 것은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줄로 아신다.
그런 꾸준함도 내가 닮았다.
1989년 어떤 분이 무명으로 7천 달러를 처음 건축헌금으로 내놓으시며 그 돈의 백배가 모아져 찬양교회가 건축되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밝혔을 때, 당신이 3천 달러를 마련하시어 1만 달러 채어 놓으셔야 속이 풀리는 그런 분이다.
그 나이의 노인이 건축헌금을 2만 불 작정하여 적어 내었고 용돈으로 드리는 돈을 다 모아 기간 내에 완납하셨다.

시끄럽고 분주한 응급실에서 작가의 고백에 조용히 동의를 하며 한편 어머니의 동태를 살피며 책을 계속 읽어갔다.
어머니는 나를 향해 외롭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어머니의 고통과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비정한 아들이었다.
언제부턴가 아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배 장로’ 하고 부르셔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아들이었다.
어제까지도 나는 강한 어머니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는 힘없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제 수술 후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하여야 하는 어머니, 그는 내가 돌보아야 할 힘없는 아이로 바뀌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입원실로 옮길 아무 변화가 없자 어머니는 집에 빨리 가라고 재촉하신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나이 드신 어머니를 둔 아들과 며느리는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어머니는 돌아 가신지 이십 년이 되어도 아들의 마음속 깊이 심어있기에 책으로 쓸 수 있고
어머니의 체질과 성격이 아들에게 그대로 남아있기에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2y2r 2007.01.10  13:37

이종례 권사님, 쾌유를 빕니다. 내가 <한국 나사렛세계선교회 50년사>를 쓰면서 제3대 회장으로 수고하신 권사님의 이름을 보고 더욱 권사님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미국서 장정수호위원호를 갖자고 하셨는데 그 위원들어었던 전윤규, 배은수, 김성철, 국성한 목사 등이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시니 우리도 그 나라를 기다리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 권사님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며 평안한 여생이 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일산에서 김영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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