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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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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누가 무엇이 니느웨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였나?

2005.02.07 10:07 | 니느웨 사람들 | jinkpai

http://kr.blog.yahoo.com/jinkpai/945054 주소복사

‘누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메시아 신앙을 심어 주었나?’ 하는 첫번째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면
좀 엉뚱한 것 같지만 먼저 동방박사가 누구인가를 캐내야 한다.
“2000년 전 별을 연구하던 동방박사 세 사람이 12월 25일 밤 예수님의 생일날 이상한 별을 따라 그의
탄생을 알고 낙타를 타고 와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계신 예수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니라.” 이것이 우리 머리 속에 새겨진 예수님 탄생기사다.
문제는 이 기사의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데 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적어 놓은 성경을 근본으로 한 것이 아닌 크리스마스 연극이나 카드에서 얻어진
‘이미지’가 사실과 어울려 우리 머릿속에 잘못 주입되어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심을 기다리고 있던 동방박사[wise man; magi]는 당연히 예루살렘왕궁에
와서 헤롯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신가 물었다. 헤롯왕은 예언서에 적힌 메시아의 탄생 장소인
베들레헴을 가르쳐 주었고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위에 머물러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태복음 2: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왔던 날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니라 ‘결례의 날’ 까지는 오지 않았다. 적어도 40일부터 2년 사이의 기간에(마2:16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예루살렘에 왔다. ‘결례의 날’, 즉 여자가 아기를 낳고
모세의 법대로 40일이 지난 후에(레위기 12:2-8)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첫
태에 처음 난 남자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누가복음 2:21-24).
동방박사의 magi(wise man)는 메대의 제사장들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영어의 ‘magician’ 이라는 말이 그 줄기에서 나왔고 다니엘의 직책이 ‘박수장(chief of the magicians)’ 이었다.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세워
박수의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단 5:11)

첫번째 질문 “누가 기다림의 메시아 신앙을 심어 주었나” 의 실마리를 푸는 것은 니느웨 사람들의
말이자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용하셨던 ‘아람어’ 이다(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람어가 아랍어와 혼동하지 않고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신약성경의 부분 부분들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구약에서는 다니엘서의 2장 4절 – 7장 28절이
유일하게 ‘아람어’ 로 적혀있다. 바로 그것이 연결 고리이다.
다니엘은 아람어가 근동(近東)의 공영어로 쓰이던 BC 6세기 초에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살았다. 하나님은 총명한 다니엘에게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그의 구속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열강의 군주들과 열국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며 약속대로 언제 어떻게 메시아를 보내셔서 다스리시는지를 환상과 꿈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특별히 아람어로 쓰여진 ‘인자 같은 이’(단 7:13), ‘영원한 나라’(단 7: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단 7”27)와 연결되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예수님 자신이 자기를 즐겨 부르신
‘인자(人子)’라는 표현이다. 더구나 다니엘서는 구약에서 찾기 힘든 부활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무서운 환난이 있을 것인데, 그 마지막 날에 잠자던 자들 중에서 영광의 부활에 이를 자도
있을 것이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악인이 부활에 이를 자고 있을 것이다”(단 12:1-3 의역).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깨달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다니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BC 538)까지 최고위 관리생활을 하였다. 그때 유대인 해방령이 내렸으나
스룹바벨과 함께 첫 번째 귀환한 다른 이들처럼 ‘에스라’ 에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
어려운 이민생활 중에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가 80이 넘은
노년에도 환향(還鄕)을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뜻이 그에게 아직 남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는지…… 어디로 갔는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소년 시절부터 나라가 없는 설움을
경험한 그는 내 생각으로는 같은 아람어를 쓰는 ‘니느웨’ 에서 말년을 보냈을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과 ‘유대인의 왕’이 오시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비전을 나누었고 그들은 그 비전을
붙잡고 530년 동안 기다렸다. 나라가 없는 그들에게는 더군다나 소망이 또 위로가 필요했다.
예수님이 직접 이름을 들어 말씀하신 ‘선지자 OOO’는 단지 세 명이다. 이사야(마 13:14), 요나(마 12:39)와 다니엘(마 24:3)이며 그 중 요나와 다니엘이 니느웨 사람들과 관련된 것도 참 흥미 있는 일이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동방박사들이 니느웨 사람들이자 다니엘의 제자들이며 후계자들이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래와
육십이 이래가 지날 것이요…”(단 9:25) 동방박사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날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기에 때가 차매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니느웨로부터 황금, 유황, 몰약의 메시아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온 것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아람어로 서로 말할 수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박사들이 가지고 온 세 가지 예물이 그리스도의 세 가지 역할 즉
황금이 대표하는 ‘왕’, 유황이 대표하는 ‘제사장’ 그리고 몰약이 대표하는 ‘선지자’의 3중 사역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다니엘에게 배워서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예언된 ‘유대인의 왕’ 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메시아의 초림(初臨)에 걸 맞은 선물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재림의
그날에는 구세주 사역은 이미 십자가에서 단번에 끝났기에 황금과 유황의 선물이면 된다(이사야 60:6).

2세기 교부 타티안(AD 110-172)은 그가 Assyrian인 것을 항상 자랑으로 삼았기에 그의 이름은
‘Tatian the Assyrian’ 으로 알려졌다. 근세에 발견된 초대교회 문서들 중에 타티안의
디아테사론(The Diatessaron of Titian)이 있으며 그의 신학이 처음으로 3위 일체의 기초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그 타티안이 동박박사가 바로 니느웨 사람들인 것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에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태복음 12:41). 그 니느웨 사람들이 아직도 표적으로 남아 핍박을 받으며
예수님을 또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린 니느웨 사람들과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같은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이 우연일까? 아마도 그것은 니느웨 사람들의 기다림에
대한 필연으로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다.

동방박사의 선생님인 다니엘은 계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소년 시절부터 나라가 없는 설움을 경험한 다니엘은 같은 아람어를 쓰는 ‘니느웨’에서
말년을 보내며 나라가 없는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메시아의 소망과 위로를 가르쳤다.
다니엘의 도움으로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530년 동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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