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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요나의 이야기가 적힌 ‘요나서’는 아주 흥미진진하다. 특별히 어린이에게 더 그러하다.
내가 어렸을 때 동대문에 있는 한 큰 교회에서 인형극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의 인도로 다른 친구들과 구경간 기억이 또렷하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곳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배 밑창에서 잠을 자는 요나를
깨우는 이방 선원들의 당황한 모습, 제비가 결국 요나에게 맞아 떨어져 바다에 던져진 후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장면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에서 살아난’, 말 안 듣던 선지자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다.
요나는 니느웨(지금의 북부 이락 트그리스강가의 모술)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요나서 3:1-4)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다(누가복음 11:30).
까무잡잡한 중동지방 사람인 요나의 피부는 흰 토끼처럼 되어 버렸다.
사흘동안 소화작용을 하는 뱃속의 산(酸)에 의해 피부가 벗겨져 백인보다 더 희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 표적을 지닌 요나는 자기의 경험을 간증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니느웨의
정반대쪽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어떻게 바다에 던져졌으며 어떻게 살아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요나는 하루동안 성읍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간단한 메시지를
외쳤다. ‘사십일이 지나면 느니웨가 무너진다!’(욘 3:4) 그러나 그 간단한 메시지는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복음선포였으며 요나 같은 대부흥사는 다시 없을 정도의 결실을 맺었다.
단 하루동안의 복음 선포로 무려 십이만 명이 회개하고 금식하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욘 3:10). 이야기의 구성으로 보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지 않기로 결정하셨기에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4장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사람의 책이라면 3장에서 끝나야 하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요나서 4장을
기록하였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대했을 때 나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요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며 울고 계시는 하나님, 절규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느웨가 회개하자 요나의 마음은 몹시 상했다. 급기야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렸다.
이스라엘의 적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선택된 백성의 선지자인 요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자기는 망한다고 외쳤는데 하나님은 돌이키시니 자기의
체면 손상에 대한 분노도 생겼을 것이다. 다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알기에 그랬으면서도 말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고 앉아있는 요나를 하나님은 빨리 부르셨다. 그리고 요나에게 니느웨 성읍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지 아니 하시리라’ 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일을 맡기셨다.
요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신빙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재앙을 내리신다고 이야기 했던 요나가 이 말씀을 선포해야 백성들이 믿고 금식에서 빨리
일어날 수 있다.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욘 4:5). 죽겠다던 요나는 로마를 불태우며 즐기던 네로 황제처럼 불구경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이 화염(火焰)을 내리셔서 니느웨 성이 완전히 타 버리는
사상 최대의 불꽃놀이를 보려고 기다렸던 것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금식을 시작한 니느웨 백성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가축까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 아니 일 분이 하나님께는 아주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때 20대의 건장한 청년 남녀가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이 십일 정도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니느웨 성의 어린아이들과 늙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울먹이시며 뛰고 계셨다. 이미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던 하나님은
지금 벌레를 준비하시고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시며 강한 태양으로 요나의 대머리를 뜨겁게 달구시며
일어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명령대로 움직이자 않고 앉아 있는 요나에게도 관대하셨기에
박 넝쿨을 통하여 그를 가르치셨다. 자기의 ‘대머리’ 를 시원하게 하는 박 넝쿨 하나를 그처럼
아끼면서 수천 수만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가를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요나의 매정함의 대비였다. 우리는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배워야 한다. “가서, 외쳐라!”(욘 1:2), “가서, 선포하라!”(욘 3:2).
하나님의 마음은 그리도 급하신데 하나님의 선교명령을 빨리빨리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악(惡)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불구경하려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안에,
교회 안에 제한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외쳐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절규하신다.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에게 외치신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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