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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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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kpai (jink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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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손때가 낀 나의 NIV Study Bible을 보면 그래도 꽤나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성경을 10년 이상 열심히 영어권의 대학생들과 함께 보았다.
개역성경을 보다가도 모르면 Study Bible을 찾아 읽고 밑의 설명과 Reference를 이해할 때까지
쫓아갔다. 나의 “Experience X”를 기억하기 위해 내가 나에게 50 달러의 거금을 투자해 선물한
성경이기에 더 애착이 간다. 우습게도 2-1-1987 날짜를 적어놓고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난에 내 이름을
적어 놓았다. 지금도 그 성경을 보면 럿거스 한인기독학생회(KCF)에서 부지런히 학생들과 함께 지낸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 기억된다.

이미 Rutgers KCF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리벤젤(Liebenzell) 수양관으로 향하였기에
1987년 1월30일 밤 나는 혼자 리벤젤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아무리 길박사라도 캄캄한 추운 겨울 밤에 경사가 있는 산길을 처음으로 찾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 해 KCF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겨울수양회 강사는 오대원(David Ross) 목사님이셨다.
그는 한국에서 ‘예수전도단’을 만드시고 대학생들을 위하여 25년간 선교사로 봉사하셨기에
영어로 설교하시는 것은 물론 유창한 한국말로도 설교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위험인물로 추방을 당하여(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미국에
돌아와서 하나님이 어떤 사역으로 인도하시나 기다리시던 중 KCF와의 처음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다.

학생들과 눈(雪)싸움을 하며 또 찬양을 마음껏 부르는 재미 있는 시간을 보낸 후 토요일 밤,오대원 목사님은 설교시간에 자기의 경험을 들려 주셨다. 오대원 목사님이 장로교 목사가 된 후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을 때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대학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셨는데 집회 도중 30명 앞에서
창피한지도 모르고 엉엉 우는 경험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에 그는 “Experience X”라고 이름 지었다.
그 경험 후 오 목사님이 변화하여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받기까지 하였다는 간증이었다.
토요일 밤은 수양회의 가장 중요한 결단의 시간이었다.
말씀을 마친 후 같이 기도하는 시간에 목사님께서는 나를 부르시고 학생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막상 나가서 학생들과 같이 기도를 하였지만 내 마음 속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이 아직 어리고(당시 나는 35살 뿐이 안 되었다) 믿음이 보잘 것 없는 나의 손도 사용하실까?
그러나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열심히 축복기도를 하였다.

좋은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고 주일 아침예배 때에 30여 명이 손에 손을 잡고 산을 내려가
우리가 할 일을 다짐하고 수양회를 마쳤다. 잠을 거의 못 자 피곤한 몸이었지만 집으로 오자마자
오후 1시의 성가대 연습을 위해 교회로 향했다. 그러나 교회가 끝나도 집으로 바로 올 수가 없었다.
마침 그날 훌러싱의 한 교회에서 연합제직수련회가 있어서 안수집사님과 장로님들이 가시는데 밴을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교회에 도착하자 나는 맨 끝 모퉁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은혜는 이미 수양회에서 흠뻑 받았으니 뒤에서 잠이나 자자는 심보였다.
예배 시작 전 먼저 찬송으로 마음을 여는 시간이었다. 그저 무감각하게 조용히 있던 나에게
‘…. 성령이여 임하사 내 영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찬송이 불러지자 조용히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가 이내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흐르는 눈물을 추스르지 못하고 통곡을 하고 울게 되었다.
예배가 시작할 때까지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나는 예배당 안에서 쫓겨나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담임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시고 같이 가신 다른 분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안정된 후 어제 밤 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Experience X’가 생각났다.
‘큰일이로구나 나는 목사님보다 10배나 많은 300명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예배 장소로 돌아온 후 조용히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이 무엇인지를 기다렸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눅10:43-45).”
당시 필라델피아의 임마누엘교회를 담임하시던 고인호 목사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마가복음의 열쇠가 되는 말씀을 통하여 섬기는 종의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었다.
말씀이 무겁다는 생각만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자고 다짐하였다.

지금과는 달리 뉴저지에 한국 음식점이 거의 없던 때라 밤이 늦었지만 뉴욕까지 간 사람들이 그냥
돌아올 수 없었다. 맨하탄의 뉴욕곰탕에서 요기를 하기 위해 운전수인 내가 마지막으로 내려 차의
문을 잠글 때 어느 집사님이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축하해요!”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늦게 집에 돌아와 아내를 보자 다시 눈물이 끝없이 나왔다.
아내를 안고 한참 울며 기도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3시간밖에 못 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지만 기분이 상쾌하였다.
차가 많은 파크웨이(GSP)를 달리다 여느날과 같이 다른 차가 내 차 앞에 얌체처럼 파고 들어도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렇다. 세상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내가 바뀌면 된다. 세상은 금요일이나 월요일이나 변함이 없지만 내가 바뀌자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이것이 Experience X 이후의 처음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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