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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놔두고 우리는 문을 들어섰다.
고풍의 창을 끼고 늘어선 기둥에는 <자득심중취(自得心中趣)><수론세상명(誰論世上名)><청풍우창외(淸風雨窓外)><명월일지연(明月一池蓮)>등의 싯구가 새겨져 있다. 정원의 바위에 물이 담긴 금대야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수건도 준비되어 있었다.
"먼지 쓰셨지요? 자, 씻으세요."
정중한 대접이었다. 집안에는 식탁이 놓여져있고, 잔뜩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었다. 얼굴을 씻고나니 얼른 안으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나는 먼저 가야할 곳이 있었다. 병사에게 물어 변소로 달려가는 나를 보고 박춘희씨가 웃었다.
이 집에서 정전회담이 진행되었다니 북조선측 대표도 남조선측 대표도 미군장교도 여기서 이렇게 쭈그리고 앉았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별로 깨끗하지 않은 변소 안에서 역사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뱃속은 막힘없이 물처럼 흐르지만, 내 사고나 판단은 변비처럼 정체해 있었다. 나는 정말로 있었던 일을 알지 않으면 안되는 곳까지 와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상당히 헛갈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제껏 조선동란은 북조선의 침략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북조선에 오니 침략을 처음 시작한 곳은 한국군으로 북조선군은 이에 대해 일제반격을 시작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북조선에서는 휴전협정이 성립된 때에도 지금도 이것을 승리라고 부르고 있는데, 만약 침략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었다면 애초의 삼팔선 부근에서 정전이 이루어진 것이 승리라고 불릴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패배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미국측의 종군기자인지 병사인지의 저서에도 남조선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분명히 쓰여있다고, 공작원인 이승덕씨는 가르쳐주었다. 우리들 일행 중에는 좌익계 사람이 많고, 분명하게 남조선에서 침략했다고 단정하는 자도 있어 내가 북조선에서 먼저 행동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미국측의 모략에 걸린 것이라고 나를 거의 질타하다시피 하였다.
나는 알 수 없어졌다.
좋은게 좋은 거 식으로 단정해버리는 것은 용이한 일이지만,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틀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이승만대통령도 미국의 하는 짓거리도 맘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조선이 먼저 침략했다고 잘라 말할 용기도 없다. 그러나 북조선에서 먼저 침략했다고 말하기도 자신이 없어졌다.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이지만 지금은 그 진실을 알 재주가 없다.
이 수수께끼를 남긴채로 역사는 두개로 나뉘어 쓰여지는 것인가.
역사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알수 있는 것은 북조선이든 남조선이든 자기들 식으로 자기들의 방법으로 전조선을 통일하고 싶어한다는 것 뿐이다.
북조선에서는 삼팔선이남을 남조선이라고도 한국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공화국의 남쪽 절반>이라한다.
그건 언젠가 전조선이 공화국이 될 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지만, 혹시 남조선쪽에서는 북조선을 한국의 북쪽 절반이라고 부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거기에 열쇠가 있을테지만 그 열쇠를 어느 쪽이 어떤 식으로 먼저 사용하려 했던 것인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재의 세상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둘중에 하나, 중립은 없다는 기괴한 논의가 만연하고 있어서 기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눈과 마음으로 진실을 보고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같은 사람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안이한 단정보다는 흔들림과 인내와 고통을 택하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기괴한 것이 지구상에 만연하고 있다.
흔들리는 것과 견디는 것이 그 기괴한 설사에 대한 약일런지도 모른다.
바보같은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변소에서 나오니 박춘희씨가 기다리고 있다가 또 다시 하얀 알약을, 이번엔 다섯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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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보고 나오니 춘희씨가 하얀 알약을 세알 내밀며,
"지금 드세요"
보온병으로부터 물을 컵에 따라주었다.
일행은 초원에 앉아 쉬고 있다. 사과나 바나나를 벗기고, 사이다를 마시고 있다. 나도 사과를 베어물었다. 강을 건너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박춘희씨, 지프는 힘들지요? 자리 바꿀까요?"
하고 대학교수 스즈키씨가 말했다.
"아니요, 익숙해서요. 전쟁 때는 트럭에 타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내내 달린적도 있는데요."
"그렇지, 댁은 전쟁영웅이었지."
춘희씨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자, 출발하지요. "
김지헌씨가 일어났다. 강을 부터 올라온 차에 타고 출발했다.
춘희씨는 역시 선두의 지프에 탔다.
다른 한명의 간호부 조순숙씨와 나란히 앉아 둘 다 머리에 커다란 군청색네커치프를 쓰고 있었다. 순숙씨가 좋은 목청으로 뭔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건 무슨 노랩니까?"
하고 김지헌씨에게 물었다.
"원한의 삼팔선이라는 노랩니다."(남한에서는 가거라 삼팔선)
나는 이 노래를 일본에서 들은 적이 있다. 조선어였기 때문에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의미만은 기억하고 있다.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아아아, 물이 막혀 못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땅을 오고가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떠돈다.
이 노래를 가르쳐 준 것은 한국거류민단의 조선청년이었다. 남선측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북선에 와서 여기서도 같은 노래가 불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김지헌씨는 우리들을 도와주고 있는 공작원중에 최장년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마흔 정도의 젊고 건강한 게다가 사려깊은 신사였다. 양복이 잘 어울리지만 독신이라고 한다. 폭격으로 부인을 잃었다고 다른 공작원으로 부터 들었다.
자동차가 변함없이 쓸쓸한 적토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사리원이라는 조금 번화한 곳이 도중에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모르는 채로 지나고 말았다. 가교나 강바닥을 건널때 간헐적으로 눈을 뜨곤 했지만, 개성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잠이 들었었다.
연락이 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병사가 맞아주었다.
병사는 아니었다. 너무 젊어서 인민군 병사인줄 알았지만, 정전위원회의부장 신상철 중좌였다. 우리들은 황공해했다.
중좌의 안내로 개성시내에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한시 가까웠다. 개성은 특별시라고 하지만, 전화의 흔적이 생생하여 시가지라고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주민이 바쁘게 왕래하여 활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중심지가 어디인지 아주 산만하였다.
도로 왼편에 사릉정 장탄시장이라고 새겨진 화강암의 기둥이 서있거나, 미야코바시라는 다리가 있거나, 폐허로 남은 기와지붕 건물에 삿포로비루라고 쓴 천막이 쳐져있거나 아직 일본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정차장 부근에는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애초 이번 개성행은 기차를 탈 예정이었으나,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밖에 다니지 않고, 침대차도 없고, 밤 아홉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다섯시에 도착한다고 하여 자동차로 변경했다고 한다.
버스도 다니지 않고 교통은 불편했다. 거리의 중심부라고 생각되는 곳에 오래된 문이라도 있었던 듯한 석벽이 로터리를 이루며 남아있어 그 위에 거대한 범종이 하나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그곳에 두명의 착검한 보초가 서있다. 이 주변에서는 병사의 모습이 여럿 보여서 남북조선경계선에 있는 마을다운 긴장이 느껴졌다.
병영이 여기저기 있고 여병사도 가끔 보였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병사들도 많이 있었지만, 모두들 아이처럼 어렸다. 우리들의 차는 교외의 송림이 있는 꼬불꼬불한 길을 빠져서 등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에 와서 멈췄다. 단풍이 타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는 크지는 않지만 순조선풍의 저택이 한채 있었다.
어떤 부자의 별장이었다는 모양으로 이제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심혈을 기울인 단아한 건물이었다.
"여기서 제일차정전회의가 열렸지요. 교섭이 잘 되지 않아서 제이차부터는 판문점으로 옮겼습니다."
하고 김지헌씨가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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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긴 상심의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공포나 전율도 어느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마비되고 마는 것인지, 기억을 되찾아 생각해보니 춘희씨는 동포가 한명씩 죽임을 당하는 것을 눈을 바로 뜨고 지켜본 것 같이 생각되었다. 게다가 웃고 있었던 것도 같다. 자신이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중공군의 응원에 의해 평양이 다시 북선군의 손에 돌아왔을 때, 의식을 되찾은 춘희씨는 대동강에 투신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부에게 구해져서 죽을 수가 없었기에 군대에 들어가 게릴라전에 참가하였다.
죽을 곳을 찾아서 기를 쓰고 위험한 곳에 나섰는데 오히려 공적을 쌓는 결과가 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전투영웅의 칭호를 받았다.
그녀는 휴전이 원망스러웠던 모양이다. 평화를 되찾은 것을 기뻐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나 자신이 전사한 후에 휴전되었던 편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죽고싶지 않은 친구들이 많이 죽고, 죽고싶어 몸부림치는 자신은 왜 죽지 못하는 걸까? 춘희씨는 이상하였다.
"그 후 노모가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죽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다.
그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딸이 얼른 결혼하기를 바라면서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손자얼굴을 보여달라고, 그게 최고의 효도라고 말하는 모양이였다. 그러나 춘희씨는 일생동안 더이상은 결혼하지 않을 결심을 한 것으로 보였다.
공장지대를 빠져나가 평양거리를 빠져나오면 벌거숭이 적토산에 둘러싸인 적토길이 이어졌다. 산이라해도 그리 높은 산은 없고, 수목은 거의 없는 헐벗은 산이 기복을 만들면서 이어진다. 논은 모내기철이라 어느 논에든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적토산과 적토길에 끼인 푸른논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모래먼지를 일으켜 앞에 가는 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박춘희씨가 타고 있는 지프도 먼지덩어리가 되어 외로운 시골길을 선도하면서 달리고 있다. 우리가 탄 차는 유리창을 닫으면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지만, 지프는 지붕이 없으니 고생이다 싶었다. 넥커치프를 뒤집어쓴 춘희씨의 모습이 힐끗힐끗 보였지만 분명히 전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입안은 칼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한 것도 잠시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누군가 말을 걸어서 깨었다. 강가에 와 있다. 유리창밖에 박춘희씨의 얼굴이 보였다.
" 배는 좀 어떠세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했지만, 괜찮지가 않았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이 주변에서 잠시 쉬고 갈 거예요. 천천히 다녀오세요. 그 근처에 폭탄구멍이 많으니까...."
춘희씨는 나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적이 없는 들판을 한 이십미터 폭의 청류가 흐르고 있다. 물이 얕아서 자동차는 물을 튕기면서 그냥 건너온 모양이다. 나는 자고 있어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다른 차들도 전부 전차처럼 도하했다.
사람들을 건너주고 나서 차는 다시 강으로 도로 들어가 바퀴를 식힌다고 내버려두었다. 운전사가 물을 끼얹어 차의 먼지를 씻었다. 보니까 강 하류에 교량은 수복공사중이었다. 다리란 다리는 전부 폭격으로 파괴된 상황인 모양이다. 강은 남천의 지류라고 한다. 낮은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강의 굽은 곳에 아이들이 두세명 헤엄치고 있었다. 거기는 단애의 절벽으로 남조화의 그림같은 풍취가 있었다.
폭탄구멍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압록강을 건너서 이쪽은 참 잘도 이렇게까지 떨어뜨렸구나 놀랄 정도로 폭탄의 흔적이 이어져 있었지만, 이런 시골까지도 골고루 투하한 게 보인다. 교량을 노린 폭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크고 깊은 구멍의 사면을 내려가서 나는 벨트를 풀었다. 쭈그려 앉으니 세상은 폭탄구멍안으로 들어온다. 흐린 햇살이 머리위를 비춘다. 숲에는 이미 푸른 잎들이 나고 있고, 바닥에 고인물에는 개구리가 헤엄치고 있다. 뻐꾸기의 울음이 들려왔다. 계속 운다. 발소리가 들리더니 말한마리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를 보고 돌연 울었댔다. 웃은 것일까?
전쟁에 말이 줄어서 몽고로부터 10만필이 보내지긴 했지만, 다들 성질이 사나운 말들이라 애를 먹는다고 하더니 이것도 몽고말일까?
뻐꾸기랑 경쟁하듯이 운다. 개구리가 놀라서 물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평화가 뭔가 걸맞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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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십칠일, 우리들이 평양에 도착한 이래 특별히 몇명의 공작원이 통역겸 신변관리인으로 딸리고, 게다가 손님들의 건강을 위해 한 명의 의사와 두명의 간호부가 전속되었다.
또한 국제호텔은 건설중이라서 직업총동맹사무소가 호텔대신에 주어졌으나, 또 다시 거기에도 여종업원이 몇명인가 있어서 우리들이 불편없이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들 친절하고 기분좋은 사람들이었다.
몇일만에 우리들은 오래 사귄 여자애들처럼 친해져서, 전쟁중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예외없이 전부 지난 한국동란에 고생한 이야기들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들을 하고 있으나, 꺼내놓는 얘기는 귀를 의심할 정도의 체험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박춘희씨의 얘기는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물론 그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동배의 몇명으로부터 내가 들은 이야기였다. 그녀자신은 내 질문에 대해 아무 대답도 않고 , 그저 평범하게 누구나 하는 말로,
"이제 전쟁은 지긋지긋해요." 하고 흔한 표현으로 말할 뿐이었다.
훌쩍 키가 크고, 살빛이 희고, 어려보일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박춘희씨가 서른이 넘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처음에는 정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많아도 스물다섯이라고 생각했다.
미인이다. 모란봉극장에서 나는 20년만에 최승희씨의 춤을 보고 예술의 위대한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뜨고 보았지만, 그 때도 나는 박춘희씨를 떠올렸을 정도였다.
그녀가 워낙 싹싹하고 엽렵하고 얌전하고 조용하여 호감이 갔다. 만찬회가 있었던 날만은 순백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청결한 조선의 딸이었으나, 보통은 여학생의 세일러복같은 수수한 차림이었다. 화장도 하지않고 입술연지도 바르지 않는다. 여성들이 치장을 하지 않는 것은 중국과 조선 모두 공통이었다.
다른 한 명의 간호부 조순숙씨는 키가 작고 통통하게 살이 찐데다가 다갈색으로 건강한 살빛을 가졌다. 쾌활하고 잘 웃으며 복도에서도 뛰어가듯 걸었다. 주사를 놓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조순숙씨도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남은 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전쟁미망인이었다.
원산태생의 박춘희씨는 열여덟에 결혼했으나, 곧 남편은 일본군에게 소집당해 비루마(미얀마)전선에서 전사했다. 그 유골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이에 만주에서 소련군과 일본군의 전쟁이 시작되어,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면 항복을 했다. 북선은 소련군의 진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되었다.
현재 북선의 주민들은 입만 열면,
"위대한 소련군의 군사력으로 북선은 해방되었다."리고 한다.
소련군대는 일정기간 조선에 주재했지만, 많은 부녀자가 정절을 잃었다.
박춘희씨도 곰같은 소련군에 의해 능욕당해 죽음을 결심하고 임진강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거룻배 사공에게 구해져서 한동안 그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소련군이 철퇴한후 평양을 일자리를 구하려 나섰다. 해방후 남녀평등이 이루어져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어 있었지만, 겸허한 그녀는 오로지 조금이나마 남의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모란봉 가까이의 작은 병원에 입주하여 일하는 일꾼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사람됨이 인정받고 막 간호부가 된 즈음에 내란(동란)이 일어났다.
그녀는 전선으로 지원하려 하였으나 후방에도 간호부는 필요하다는 병원장의 의견에 따라 평양에 남았다. 그것은 병원장이 그녀를 아꼈다기 보다는 뭔가 다른 목적으로 자기 슬하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것인 것도 같았다. 이 원장도 후에 전사하였으므로 그 때의 박춘희씨와의 관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그녀에게 행복의 빛같은 것이 드리워진 것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둘을 갈라놓았다.
큰 파도가 덮친 것처럼 조선 전토를 휩쓴 전화는 드디어 평양에까지 그 파도를 몰고 왔다. 미처 피난하지 못한 박춘희씨는 병원의 지하실에 숨어서 아메리카군이 평양을 점령한 것을 미처 몰랐다. 방공호를 대신한 지하실에는 식량이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료 네명과 닷새 정도 숨어지냈다. 환자들은 이미 전부 소개했으나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혹은 환자들을 인솔한 원장의 안부가 걱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총성과 포성이 멀어지고 폭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적이었다.
"인제 좀 나가볼까?"
하고 동배 한명이 말했다.
"그만 둬."
박춘희씨는 놀라서 말렸다.
"그치만 언제까지나 여기에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나가도 별 수 없잖아. 아메리카군에게 잡히면 어쩔려고 그래?"
"아니야, 아메리카군이 있을리 없어. 분명히 인민군대가 평양을 탈환했을거라고 생각해. 내가 정탐하고 올께."
"그러지마."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의 동료는 춘희씨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지하실입구를 나섰다.
황급히 되돌아 도망왔다.
늦었다.
영어로 뭔가 목청높은 소리가 들리고 구둣발 소리가 따라왔다.
네명 모두 밖으로 끌려 나왔다. 해거름이었지만, 대동강 주변에는 엄청난 화재가 일고 있어 그것이 대동강 수면에 비춰, 마치 지옥처럼 보였다.
일고여덟의 아메리카병이 총구를 들이대며, 네명의 옷을 발가벗겨 벌거숭이를 만들었다.
한국병이 한명 통역했다.
"공산군들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말해라."
"모릅니다."
정말로 몰랐다. 병력이나 사령관이나 대장의 이름도 물었다.
네명. 구두로 채이고 난폭하게 능욕당해 혼절했다.
박춘희씨가 정신이 들어보니 바로 아래 대동강이 흐르는 흙제방의 버드나무에 묶여있었다.
이미 밤이 되었지만, 아까의 화재는 휠씬 더 커져있어서 강전체가 붉게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끄려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파란 별이 잔뜩 떠있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아메리카병들 중에는 불이 붙은 나무토막이나 송명을 들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스무명 정도 였다.
"어서 죽여라."
하고 박춘희씨는 소리질렀다.
아메리카병들은 더욱 여러 것을 질문한 후, 한 명씩 죽였다.
사십명 정도의 전나의 여성들이 줄줄이 꿰어져 있었으나, 이러저러한 일을 당한 후에 숨이 끊겼다.
삼십명 가까이 죽임을 당했을때, 뭔일인지 아메리카병들이 갑자기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그 때는 이미 박춘희씨가 기절한 후였으므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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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블도저나 트랙터 소리가 들리고 건물의 잔해나 돌덩이들을 부수는 발파음이 엄청나게 들려온다. 파편이 날라오는 것을 막으려고 넓은 막이 둘러쳐져 있었지만, 그 주변 일대에는 포진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돌조각이 비오듯 한다.
정전협정이 조인된지 아직 이년째의 평양은 목하 건설도상으로 전 시가가 토목건축 공사현장 같았다. 지구상에서 소멸한 것이 아닌가할 정도로 파괴당해 버렸으므로 건설도 용이하지가 않다.
한 차례 평양을 점령한 적이 있는 아메리카군이 후퇴할 때에, 초토전술로 불을 싸지른데다가 끊임없이 전투기로 폭격을 당했으므로, 그 무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건물이란 것도 탄흔이 마치 연근구멍처럼 뜷려있었다.
"저건 건물영웅입니다. 지금은 도서관이 되어 있지만..."
우리쪽의 자동차에 동승한 김지헌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건축물에도 영웅이 있습니까?"
"이 넓은 평양에서 전후에 남은 오직 다섯개의 건물 중에 하나입니다"
북선(북한-북조선을 옛날에는 이렇게 불렀다)에는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전투영웅, 노동영웅, 예술영웅 등이 아주 많이 있지만, 건물도 적에게 맞서 잘 버텼다는 의미로 영웅 칭호를 붙여준 모양이다.
우리가 탄 차는 그 곰보얼굴의 붉은 기와영웅의 옆을 지나, 스탈린 대로 쪽으로 돌았다.
일행은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 각국회의에 출석한 일본대표 중에 중국을 거쳐, 북선을 방문한 열명과 접대공작원 몇명이다. 우리는 네대의 차에 나눠타고 선두에는 지프가 안내하며 달리고 있다.
스탈린 대로만은 포장이 되어 있고, 밤이 되면 양측에 늘어선 영란등이 밝혀진다.
길 끝에 정면으로 보이는 모란봉에 드디어 햇살이 걸쳐지기 시작하여, 높이 솟은 해방탑이 엷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안개 탓인지, 먼지탓인지 알 수 없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에게는 패전기념일이지만, 조선(남북 모두를 말함)에 있어서는 40년간의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기념일이다. 이 해방탑은 아메리카군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최근 다시 재건하였다고 한다.
해방탑의 왼편에 보이는 백악의 모란봉극장이 마치 하얀 과자처럼 보인다.
시가지의 이곳 저곳에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조선인민군 병사들이 대거 인부로 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들도 여럿 섞여서 흙을 나르거나 물을 긷고 있다. 공동봉사작업을 뜻하는 빨강, 파랑, 노랑등의 깃발이 세워져있다.
선두의 지프가 대동강철교에 닿았다. 그 때 타고 있던 네댓명의 얼굴이 다들 뒤돌아 우리 쪽을 보았다. 놓치지 않고 따라오는지를 확인하는 모양이다. 여러개의 얼굴은 아침 햇살을 옆으로 받고 있었으나, 그 중에 하나 특히 다른 얼굴보다 하얗게 빛나는 얼굴이 있었다.
박춘희씨의 얼굴이다.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멀어서 잘 알 수 없다.
"김씨" 하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공작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렇게 미인이고 얌전한 사람이 전투영웅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박춘희씨는 어떤 남자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용감한 부인입니다. 빨치산영웅의 한 사람이지요."
"친절하고 살가운 사람이......"
"그보다 히노씨" 하고 갑자기 김지헌씨는 화제를 바꾸듯이 "이제부터 삼팔선까지 여섯시간 걸립니다. 도중에 볼 만한 것도 없고, 어제밤은 늦게까지 깨어있었고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으니 한잠 자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군요."
"배는 좀 어떻습니까?"
"심하지는 않습니다. 괜찮아요."
"아무때나 말씀만 하세요. 차를 세울테니까."
이삼일 전부터 가볍게 배탈이 났었다. 인간의 뱃속이란 게 이상한 놈이라서 중국에서 익숙치도 않은 요리를 매일 먹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조선에 와서 일본요리를 먹기 시작하면서 설사가 났다. 조선 사람들이 마음을 써주면서 미소시루, 간 무우, 김, 회, 생선구이, 초무침 등등 고향의 음식을 느끼게 할 만한 것들을 대접해 주어서 오랫만에 맥주를 너무 마셨던 탓인지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간호부인 박춘희씨가 걱정하면서 약을 주고 주사도 놓아 주었지만 오늘까지도 낫지 않는다.
의사는 오늘 일정을 취소하는 것이 어떠냐고 신중하게 주의를 주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설사보다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탄 차도 철교를 건넜다. 백사의 델타를 둘러싸고 맑은 물이 넓게 넓게 흐르는 대동강은 아름답다. 수증기가 수면을 연기처럼 흐르고 있다. 어선이 떠 있는 왼편의 주암산이나 용악산의 자태는 안개를 안고 흐리게 보인다. 옛부터 남아있는 대동문만이 버들의 무성함 위로 우뚝 서서 옛 역사의 잔상을 간직하고 있다.
이 흙제방의 어느 부분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버드나무에 묶여있었다고 하니까, 대동문이 있는 부근일지도 모른다. 박춘희씨는 이곳을 지날 때 눈을 감았을까? 김지헌씨가 황급히 화제를 돌린 것도 그일을 떠올린 때문이었을까?
돌아본 춘희씨의 얼굴이 웃는 것처럼 보인 것은 내 착각으로, 일그러진 우는 모습이 멀리서 웃는 얼굴로 보인 것은 아닐까? 만약 이 장소에서 그녀가 정말로 웃을 수 있다면 영웅일 것이다. 아니 괴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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