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42분. 갑자기 허기가 진다. 아침을 대충 먹은 탓. 누굴 불러내 점심을 먹기도 시간이 어정쩡하고 혼자 집에서 남은 밥 먹자니 찬이 궁하다. 아, 배달을 시켜먹으면 되겠구나. 생각을 해 보니 한국 돌아와 중국집 배달을 한번도 안 먹어줬다.
자금성... 어느 동네나 하나쯤은 있음직한 중국집 이름이다. 자고로 중국집은 별나게 맛이 없지 않으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이용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동선이 짧으면 면이 불어터지는 확률도 줄어드는 것이다. 더구나 이 집은 작년에 새로 생긴 집이니 주방 기구들에 기름때도 좀 적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지 채 15분이 안 되어 초인종을 울리는 소리가 난다. 철가방 총각은 친절하게 음식을 내려주고 20층에 자신이 세워둔 엘리베이터가 내려갈새라 급하게 문을 열고 나선다.
짬뽕과 군만두... 혼자 먹는데 좀 많이 시켰다. A형 중에서도 가끔은 극도로 소심해지는 소문자 a형이 아니던가? 배달을 시키면서 한 그릇만 딸랑 청하기가 미안했던 게 제일 큰 이유다. 또 군만두는 남아도 나중에 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차가워진 군만두를 두고두고 알뜰히 먹을 자신이 없긴 했지만... 젓가락을 둘러싼 반투명의 비닐봉투가 눈에 띈다. 아마도 음식을 다 먹은 뒤 빈 그릇을 싸서 내 놓으라는 이야기겠지. 세상 참 좋아졌다. 신문지로 대강 둘러 집 앞에 내 놓기가 일쑤인데 깔끔한 뒷처리까지 중국집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거기다 상호까지 프린트되어 있으니 약간의 광고효과도 기대할수 있겠다.
짬뽕을 먹는다. 우선 기름기가 없어 좋다. LA의 짬뽕은 테러블한 것들이 많았다. 자장면은 더 심했다. 그래서 맛있는 자장면을 찾으러 무던히도 돌아다녔는데... 한국 자장면은 최소한 기본의 맛은 보장한다. 배달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단순무식한 한미 주부생활의 비교일지 몰라도 한국은 슈퍼마켓이나 세탁소 등 배달이 잘 되는게 너무 좋다. 물론 미국도 피자를 집에서 주문해 먹을 수 있지만 한국처럼 다양한 종류의 배달을 꿈꾸기엔 아직 미대륙은 너무 척박하다.
짬뽕이 생각보다 짜다. 짬뽕 매운건 괜찮아도 짠건 좀 화가 난다. 그래도 실한 홍합들을 넉넉히 넣어줬으니 살짝 용서를 해 볼까? 만두도 모양이 좀 독특하다. 이집서 직접 만들었는지 궁금... 상가 지하의 작은 중국집 매장에서 주인겸 주방장 남편과 카운터와 써빙을 담당하는 아내,그리고 철가방 총각이 둘러앉아 오손도손 만두를 빚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건 나의 희망사항일 뿐 자금성에 만두를 대 주는 협력업체 만두공장에서 조금 특이하게 모양을 만든게 분명할 게다. 만두피는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내용물도 나쁘지 않다. 약간의 고기와 야채,적당히 든 당면... 아무리 짠맛을 잊으려고 노력해도 짬뽕의 짭짤함은 여전히 혀를 괴롭힌다. 만두도 몇개 집어 먹어 배도 부르니 슬슬 짬뽕을 포기한다. 그래도 홍합 두마리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입을 열지 않으려는 놈들과 괜시리 씨름해봐야 나만 피곤할 뿐. 어차피 싱싱하지 않은 놈들이니 그냥 놔준다. 오후 내내 물 좀 켜게 생겼다.
100% 멜라민 소재로 만드는 중국집 그릇을 씻는다. 국물 흥건하고 음식 찌꺼기 든 그릇을 현관 앞에 방치해놓고 우리집은 밥하기 싫어 자장면 시켜먹었소~냄새로 광고하기 싫어 언제부턴가 나는 중국집 그릇을 씻어서 내 주고 있었다. 멜라민 그릇을 설겆이 해 본 적 있는지... 세제나 수세미 가져다 댈 필요도 없이 흐르는 물만 대면 스르르 잔여물도 안남고 아주 쉽게 씻긴다. 이래서 대중음식점에선 멜라민을 선호하는 것일 터. 더구나 잘 깨지지도 않고 값도 저렴하니... 오늘 이 그릇은 간만에 깔끔한 목욕으로 호사를 하는게다. 중국집의 세심한 배려덕에 깔끔히 비닐에 담아 얌전한 모양새로 빈그릇을 문 밖에 내 놓는다. 음식 찌꺼기가 없는 깨끗한 그릇을 본 철가방맨은 아마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쌀쌀맞은 2003호 아주머니도 냄새 안 피우고 중국집 배달 시켜먹기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새로 이사온 옆집 여편네를 밉상으로 보지는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