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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영어가 통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설령 미국이나 영국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당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가정은 완전히 잘못되었으며, 유럽에서는 호텔이나 공항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슬슬 영어 없이 살아갈 대응 태새를 갖춰야 한다. 닭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타국 여행 중에 가장 필요한 자질은 바로 '눈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 jrogue군이 겪은 당황스러운(여러분 입장에서는 즐거운) 여행기를 풀어보자.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짬밥이라는 놀라운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하나둘씩 구축되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는 짬밥이라는 놈이 별거 아닌 듯이 보이지만, 비상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괴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이번 독일 출장은 기차 편을 많이 이용했기 때문에 오늘은 독일 기차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독일에서 기차 타는 일이 별거라고 생각하고 쉽게 덤볐다가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대략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혹시 독일 여행을 가실 분이라면 jrogue군 여행기를 꼼꼼하게 읽어보자. '독일에 며칠 있었다고 이런 건방진 글을 적어. 순 엉터리잖아?'라는 댓글이나 트랙백은 사양하겠다. 당신이 경험한 내용과 jrogue군이 경험한 내용은 지역과 시간과 주변 문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자신이 철떡같이 믿고 있는 상식을 과신하지 말지어다.
독일에서 열차를 탈 때 놀라운 경험은 플랫폼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한다. 중간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그냥 열차 플랫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봐도 개표원이나 승무원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지. 먼 곳에 갈 때는 ReiseBuro라고 적힌 곳에서 표를 사면 되고 짧은 거리라면 플랫폼에 있는 자동 판매기(신용카드를 받으며 일정(ReisePlan)을 인쇄할 수 있는 최신형 기계와 지폐/동전만 받는 구식 기계가 보통 나란히 있다)에서 구간을 입력해서 표를 끊은 다음에 자동 판매기 옆에 있는 개찰 장치(표를 넣으면 도장을 찍어준다)에 넣으면 된다.
플랫폼과 시각을 파악했다면 해당 플랫폼으로 가서 열차를 기다리자. 자... 여기서 놀라운 경험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 열차가 와서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리지 않는거다. 더 웃긴 건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은 재주도 좋게 꾸역꾸역 탑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이 고장인가? 4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짐을 들고 열려 있는 문을 향해 뛸 것인가 말 것인가? 정답은 "문 옆에 붙은 '녹색 버튼'(auf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있을거다. --> 혹시 독일 통이 계시다면 확인 부탁!)을 누른다"이다. 이탈리아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지만 열차를 탑승할 때는 반드시 버튼을 눌러서 명시적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자, 이제 열차를 타서 신나게 여행을 하는데... 재수가 없으면 안내방송이 독일 육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영어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동 안내방송 시스템이 고장난 경우에는 어떻게 할건가?). 역 이름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음 역이 어디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거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응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1. 플랫폼마다 노란색으로 붙어있는 출발 열차 시각표와 흰색으로 붙어있는 도착 열차 시각표를 참조해서 어떤 역에 몇 시에 도착하는지 파악한다. 5분 정도면 메모할 시간이 있으므로 주요 경유역과 도착 시각을 메모해 놓으면 정말 유용하다. 열차가 연착되면 연착된 만큼 시간을 더해주면 된다. 한국 사람 머리 좋잖아? :)
2. 최신형 기계에서 ReisePlan을 인쇄한 다음에 앞 주머니에 넣어두자. ReiseBuro에서 표를 사면 아예 기본으로 상세한 ReisePlan을 인쇄해서 줄거다. 환승할 경우에는 특히 ReisePlan이 무척 중요한데, 환승 역에서 옮겨갈 플랫폼 번호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일 경우에는 플랫폼 개수가 장난 아니게 많기 때문에 환승 열차 출발 시각이 촉박하고 짐이 많다면 대략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자, 이제 환승 역에 가까워지면 내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열차가 섰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리지 않을거다. 인적이 뜸한 시골 역에서 내리지 못하는 바람에 두번이나 왕복하고 결국 한밤중에 택시타고 온 전설은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을거구, 당신이라고 이런 마수에 걸려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역시 열차가 정지했을 때 파란색 버튼을 살포시 눌려주면 문이 열릴 거다.
그런데... 이미 이탈리아에서 한판 징하게 당했기에 이런 사전 지식으로 무장한 jrogue군도 환승을 위해 지역 열차(RB)에 탑승하고 나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빨간색 버튼(zu라고 적혀있을거다)은 있는데, 파란색 버튼은 아무리 찾아도 없는게 아닌가? 과연 어떻게 했을까? 다행히도 옆 칸에 누군가 내릴 채비를 하고 있어서, 수퍼맨으로 변신해서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뛰었다. T_T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출입문 시스템은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1) 파란색 버튼
2) 옆으로 돌리는 손잡이(오른쪽이나 왼쪽 한쪽만 압력을 가해서 바깥쪽으로 밀면 된다.)
3) 앞으로 당기는 손잡이(오른쪽이나 왼쪽 한쪽만 압력을 가해서 안쪽으로 잡아댕기면 된다.)
jrogue군이 탑승한 낡은 열차는 버전 2)였던거다. T_T
웹이나 상식 검색등을 뒤져보면 "독일 열차는 승무원에게 한번만 표를 보여주면 그 다음부터는 검사를 안한다, 독일인은 시간 관념이 철두철미해서 연착이 없다"라는 글이 올라오는데, 독일이라고 별 수 있을까? 당근 모두 엉터리지?
우선, 승차권이 없는 상태에서 개표원에게 걸리면 그날 완전히 종친거다. jrogue군이 열차에 탑승했고, 그 뒤를 이어 바퀴벌레처럼 징그러운 독일 연인이 탑승했는데, 갑자기 이 연인이 '제길할~'이라고 욕을 하며 문이 닫히는 순간 번개처럼 내리는 게 아닌가? 앞을 보니 승무원이 열차표를 검사하고 있었다. jrogue군이 도장을 찍은 표를 보여줬더니 무사히 통과했는데... 잠시후 돌아와서 다시 표를 보더라. 도장이 흐릿하게 찍히는 바람에 위조된 게 아닌지 살펴본 것 같았다.
다음으로, 독일 열차도 연착한다. 귀국하는 도중에 jrogue군이 탑승한 열차가 30분이나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체크인에 성공했다. 허탈하게시리 비행기도 40분 연착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칠까봐 다시 한번 가슴을 졸였지만 말이다. 문제는... 연착한다는 정보가 있을 경우 친절하게(?) 유창한 독일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거다. 이럴 때는 주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잘 봐야 한다. 플랫폼이 바뀌었다면 모두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테니 따라가라. 아주 심하게 연착될 경우에는 기차에서 바쁘게 보이는 사람들이 우루루 내릴테니 따라 내려라. 그런 다음에 옹기종기 모여서 흰색 종이에 붙어있는 열차 시각표를 확인한 다음에 다른 대안을 찾아라. 사람들이 탑승해서 그냥 자리에 앉아있으면 조만간 출발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당신은 문 근처에 서서 주변 상황을 파악하라. 이게 바로 _핵심_이다.
마지막으로 보너스 하나. 독일이나 EU 국가를 위한 열차 시각표가 궁금하다면 Die Bahn(http://www.bahn.de )을 이용하면 된다. 독일어를 못한다구? 홈 페이지에서 영어를 선택하거나 http://reiseauskunft.bahn.de/bin/query.exe/en로 들어가면 영어로 나온다. 독일 열차 종류와 가격은 다음 번에 기회가 될 때 다시 한번 설명해주겠다. ;)
뱀다리) Die Bahn이나 최신형 발권기를 이용할 때 역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보통 중앙역은 HBF(Hauft Bahn Hof)이며, 공항역은 Flughafen이다. 그냥 프랑크푸르트 역이라고 말하면 중앙역을 의미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jrogue군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역에서 열차표를 구입하려고 ReiseBuro에 가서 미리 인쇄한 ReisePlan을 보여줬더니 직원이 jrogue군을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라. 이유는 간단하지? 프랑크푸르트 HBF에서 출발하는 시간표였기 때문이다. 역시 짬밥이 풍부한 직원은 눈치가 빠른지라 바로 프랑크푸르트 Flughafen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로 바꿔서 발권을 무사히 마쳤다. 안그랬으면 중앙역까지 가기 위해 낑낑거리며 열차 터미널을 이동해서(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단거리와 장거리 열차역이 다르다) 여러번 환승할 뻔했다. 당신 양손에 40kg이 넘는 짐이 들려있으며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런 짬밥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를 결정한다.
E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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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te10 2005.09.1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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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반대의 경험을...;)
제가 다니던 당시엔 거의 2)번 형 도어였다죠.. 그러다가 2-3년전에 처음으로
버튼식을 타고는 한참을 헤매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그리고..DB였는지 다른나라 기차였는지 헷갈리지만, 안내방송에서 연착한다는 내용까지는
알아먹고 그 다음을 못알아들어 중간에 몇 량이 뚝 떨어져 다른곳으로 가는걸 그냥 탔다가 대략 낭패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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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모 2005.09.20 09:10 [210.118.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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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돌아 왔구랴. (안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마눌님과 아들래미는 잘 있던감? 그 눈물겨웠을 가족 상봉기는 언제 올리남?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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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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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te님, 저는 이번에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출발까지 45분 남겨두고 프랑크푸르트 공항 1터미널에서 2터미널 사이를 날아다녔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예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환승을 해봤기 때문에 지리에 밝았기에 망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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