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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와 결혼한 여자들, 퉁치









퉁치(同妻)동성애자의 처를 뜻하는 중국어이다. 중국의 성인 남성 중 동성애자는 약 2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들 중 무려 80%가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결혼한 상태라고 한다. 이처럼 남성 동성애자와 결혼한 여성들을 퉁치라고 일컫는데, 그 수는 무려 1600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퉁치 여성들은 원만한 애정과 성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편들의 무시와 학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퉁치 현상은 중국 사회에 암암리에 퍼져 있었음에도 오랜 시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성생활에 대한 불만은 바깥으로 꺼내기 힘든 화제인 데다가, 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밝히기 어려운 까닭이다. 또한 중국사회의 전통적 도덕관념과 이성애 중심주의적 사고도 그 동안 퉁치 현상의 이슈화를 가로막았다.


 

 

 

퉁치 현상은 오직 중국에서만 나타나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사회 현상이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게이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대부분 독신, 동성과의 동거, (법적으로 가능한 경우) 동성과의 결혼 생활을 영위하며,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중국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결혼과 자녀 출산을 의무나 강압에 가까울 정도로 중시하는 중국의 뿌리깊은 문화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헝가리를 비교의 예로 들면, 헝가리인 중 결혼적령기에 곧바로 결혼을 하는 성인의 비율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결혼적령기가 되어도 독신 및 동거 생활을 하거나 일반적 이성교제의 관계를 유지한다.




헝가리와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동성애자는 이성과 반드시 결혼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끼거나 부모에 의해 결혼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성인이 되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불효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그 중 자손이 없는 것이 최악의 불효라는 사고 방식이 뿌리 박힌 중국 사회는 직간접적으로 동성애자에게도 결혼과 자녀 출산을 강요하고, 그 결과 퉁치라는 특수한 사회 현상까지 빚어낸 것이다.

 



 

퉁치 현상의 최대 피해자는 배우자가 게이인지도 모르고 거짓 애정에 속아 결혼 생활을 망쳐버린 동성애자의 아내들일 것이다. 한 퉁치 여성은 결혼 후 자신을 전혀 사랑해주지 않고 성관계도 극구 거부하는 남편 때문에 스스로가 여자로서 자격이 없는지조차 의심했었다고 고백했다. 이 여성이 후일 남편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안 후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친구나 선배라며 애인을 집에 데려오거나 함께 외박을 해도,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여성들도 비일비재했다. 또한 대다수의 퉁치 여성들은 고통스러운 결혼생활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사례가 많았고, 남편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중국에 이처럼 많은 수의 퉁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퉁치 현상이 사회문제화되자, 퉁치 여성들 본인도 스스로 조직화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퉁치를 위한 홈페이지와 상담 핫라인을 개설해 똑같이 고통 받는 퉁치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2009 3 27, 28일 양일에는 칭다오에서 최초로 중국 퉁치 회의가 개최되어 퉁치 여성들과 남편들이 경험담을 나누고 함께 퉁치 현상의 해결을 모색하기도 했다.



 

 

출처 http://tieba.baidu.com/f?kz=562678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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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가장 많이 믿는 부뚜막신 이야기

2009.03.18 00:21 | 중국의 문화와 문학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74 주소복사


중국인이 가장 많이 믿는 부뚜막신 이야기

 

 



 

조왕신(부뚜막신)은 중국 민간신앙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는 신선이다. 조왕신은 고대 신화 속 신선으로, 옥황상제가 집집마다에 파견한 관리이다. 조왕신은 해마다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왕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해마다 부뚜막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풍습은 지금도 이어져 중국인들은 매년 음력 12 23일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조왕신에 대한 전설로 지금까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이전에 장생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처 정향은 용모가 단정하고 성정이 아우 온순하고 총명했다. 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생은 해당이라는 미인을 보고 한 눈에 사로잡힌다. 해당은 장생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획적으로 그에게 접근해 첩으로 들어갔다. 해당은 정부인 정향을 질투하고 시기해 결국 장생과 정향의 사이를 이간질해 정향을 쫓아냈다.


 

그 후 장생과 해당은 얼마 못 가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가난뱅이로 전락했다. 해당은 돈 없는 장생을 떠나 재가해버리고, 장생은 홀아비가 되어 구걸하며 목숨을 겨우 연명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한 겨울 어느 날, 장생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다가 한 부잣집 문 앞에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그 집 하녀가 장생을 발견해 그를 주방으로 데려간다. 목숨을 건진 장생이 정신을 차리고 그 집의 주인 마나님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자신이 내쫓았던 정향이 아닌가! 부끄러움과 후회로 정향을 볼 낯이 없었던 장생은 부뚜막으로 숨어버렸다.

 

 

주방에 있던 걸인이 사라지자 이상하게 여긴 정향은 부뚜막 아궁이가 막혀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아궁이를 열어보니 장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불에 타 죽은 뒤였다.

 

 

 

걸인이 바로 자신의 전남편임을 알아본 정향은 슬픔에 잠겨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었다. 이 일을알게 된 옥황상제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친 장향을 조왕신(부뚜막신)으로 봉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주방에 조왕신과 그의 아내인 정향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조왕신이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경학가들은 조왕신을 할머니 혹은 아름다운 아가씨로 해석하고, <잡오행서>, <경조전서> 등의 책에서는 조왕신의 이름, , 외모 등을 언급하며 때로는 남자, 때로는 여자 신선이라고 적고 있다. 현재 민간 신앙 속의 조왕신은 나란히 낮아있는 노부부이거나 남녀, 즉 조왕신과 조왕부인의 화상으로 자주 볼 수 있다.

 

 

한편, 조왕신 자신은 선계에서는 위치와 지위가 애매모호한 신선이고, 항상 주방 구석의 부뚜막에 틀어박혀 종일 매캐한 연기를 마시고 있는 처지. 게다가 온갖 산해진미를 구경만 하고 냄새만 맡을 뿐 정작 먹어볼 수도 없으니 참 실속도 복도 지지리 없는 신선이 되겠다.

 

 

 


이런 대우를 받으니 조왕신의 기분이 꿀꿀할 수 밖에. 본래 조왕신은 옥황상제의 명으로 인간세계의 집집마다 몰래 잠입해 인간들의 모든 것을 캐내기 위해 속세로 내려온 스파이 신선으로, 황제에서 백성들까지 모든 인간들의 사생활- 왕서방과 진낭자가 어젯밤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앞마을 암캐와 뒷마을 수캐가 어찌어찌 눈이 맞았는지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도 그의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조왕신은 부뚜막에 숨어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옥황상제에게 그대로 보고했기 때문에, 때로는 인간의 수명을 줄이고 재복을 떨어뜨리기까지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조왕신의 파워가 강력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조왕신에 대해 깊은 신앙과 경외심을 갖는 듯 하다. 그럼에도 조왕신에 대한 실제 대우는 형편 없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상전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라도 매일 먹을 수 있는 반면, 조왕신은 일년에 한 번 차려주는 제사인 송행연이 전부였던 것.

 

 

 

 

이 송행연은 한나라 때의 한 사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효성이 지극했던 사내였는데, 그의 효성에 감동받은 조왕신은 사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 그를 축원했다. 황공하였던 사내는 지극한 예로 조왕신을 대접하기로 하고 노루를 잡아 후하게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그 이후로 소위 대박이 터져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노루는 조왕신의 제삿날에 반드시 쓰는 고기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 백성이 노루 고기를 상에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 황실 의식이 아니고서야 조왕신의 제삿상에 이런 후한 대접은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예전에는 돼지머리, 양머리니, 생선에 술이라도 있었건만, 이제는 조왕신 화상에 물엿(조왕신이 단 것을 먹고 옥황상제에게 달콤한 말만 해주길 바라는 뜻) 좀 묻히고, 술 지게미, 설 떡 정도로 옥황상제께 말씀 좀 잘 올려주십사 입막음(?)을 대충 해줄 뿐이니, 조왕신의 처지도 많이 딱해졌다. 이런 열악한 대우에도 조왕신은 옥황상제에게 집주인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신선이다. ‘스파이라는 본분에도 불구하고 참 심성이 너그러운 신선이라고나 할까.

 

출처 http://book.sina.com.cn/excerpt/sz/rw/2009-01-24/1116250930.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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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나이에 소녀피부, 서태후의 피부미용 비법

2009.02.12 19:05 | 중국의 문화와 문학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69 주소복사







중국 청나라 말기의 황후 서태후는 당시의 실질적 권력자로서 정치, 사회, 외교적으로 중국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러나 중국의 굵직한 근대사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바로 서태후가 황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피부 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1835년에 태어나 1908년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74년을 살아온 서태후는 16세에 입궁 후 근 50여 년 동안 궁중의 암투와 정치에 시달리면서도 아기 같은 동안 피부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야사에는 서태후의 젊음과 미모에 사로잡힌 연하남과의 스캔들이 여럿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은 서태후가 동안 피부와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을 찾아보기로 하자.

 

 


 

 

서태후의 미용과 화장 비법

 

 

서태후는 매일 빠뜨리지 않고 화장을 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화장을 했는데 매일 세 시간이나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복잡한 과정과 호화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태후는 우선 화장 전 매일 옥으로 만든 막대를 얼굴에 굴리며 안면 마사지를 했다. 옥 마사지에는 특별한 화장품이나 약품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단지 피부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얼굴의 혈액순환을 돕고 주름 개선에 효과를 가져왔다.


 

 

화장 시 가장 먼저 사용한 화장품은 분이다. 중국에서 분은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을 정도로 오랜 화장품. 서태후가 사용한 분은 다양한 쌀을 일정 비율로 배합해 곱게 가루를 낸 것이었다고 한다. 쌀가루 분이 뭉치지 않도록 여기에 연백분을 섞어 썼는데, 연백분은 독성이 있을 뿐 아니라 장기간 사용하면 피부를 새파랗게 만들었기 때문에, 서태후는 연백분 사용에 있어 아주 철저하게 용량을 지켰다.



 

 

동양의 화장술에서 분 다음으로 중요한 화장품은 바로 연지다. 서태후가 즐겨 쓴 연지는 꽃과 다목을 사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서태후는 연지의 색깔에 무척 신경을 기울여 태감이 연지를 가져올 때마다 항상 골똘히 마음에 드는 색을 골랐다는데 이는 립스틱 색깔을 고르는 현대의 여성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연지 색을 정한 후에는 깨끗한 용기 안에 연지를 찧고 말린 후 5-6 분 후에 발랐다.

 

 

 

서태후가 쓴 비누는 궁중에서 특별히 제조한 것으로, 서태후가 직접 지시해 장미와 자스민 등을 넣어 만들었다.

 

 

서태후는 아침 화장뿐 아니라 클렌징과 기초화장에도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달걀 흰자로 안면 마사지를 하면서 클렌징을 시작했다. 그는 특히 주름 부위에 중점적으로 달걀 흰자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잠들기 30분 전 다시 특별히 제조한 비눗물과 깨끗한 물로 세안을 한다. 자기 전에는 오랜 과정을 거쳐 얻은 머위꽃 즙으로 팩을 했는데 피부에 수렴 작용을 한다고 한다.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면 피부결이 부드러워지고 주름 방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서태후의 손씻기와 목욕

 

 

손은 제 2의 얼굴이라고 한다. 서태후 역시 손 씻기를 상당히 중시한 사람이다. 그는 일어난 후 곧바로 뜨거운 물에 깨끗한 수건을 담가 스팀 타올을 만든 후, 이것을 손에 감쌌다. 다시 새로 물을 떠오고 스팀 타올로 손을 감싸는 과정을 두 번, 세 번씩 반복해 손의 관절이 부드러워졌다고 느껴지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손을 씻는다. 이 때문인지 서태후의 손은 70대가 아니라 10대 소녀의 손이라 착각할 정도로 젊었다고 한다.

 

 

서태후는 세수 방법도 남달랐다. 우선 뜨거운 물로 피부의 모세혈관이 열리도록 약간 붉은 빛을 띨 때까지 얼굴을 가볍게 터치한다. 이 과정이 끝난 다음에만 마사지와 화장을 했다.

 

 

그렇다면 서태후는 어떻게 목욕을 했을까. 놀랍게도 드넓은 자금성 안에는 욕실이 단 한 칸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서태후가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그 비밀을 공개한다.

 

 

서태후는 보통 침실에서 목욕을 했다. 서태후의 목욕을 위해 궁녀들은 크고 두꺼운 나무 대야와 함께 서태후가 얼마든지 등을 기댈 수 있도록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낮은 탁자, 40여 개의 비단 수건을 매일같이 준비했다.

 

 

태후의 목욕은 4명의 궁녀가 시중을 들었다. 서태후가 옷을 벗으면 4명의 궁녀들이 각각 뜨거운 물 속에 5분 동안 담갔다가 다시 수분을 짜낸 후, 황궁에서 특별 제조한 장미 비누로 거품을 내 서태후를 씻겨준다.



 

이렇게 서태후의 몸에 사용한 수건은 한 번 쓰고 버리며, 절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궁녀들이 새 수건으로 각자 맡은 부위의 거품과 때를 씻어낸다. 이렇게 거품을 씻어내는 시간이 비교적 길고 힘도 가장 많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수건을 바꾸어 서태후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마사지를 해준다.

 

 

여기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궁녀들은 맑고 깨끗한 이슬을 받아 따뜻하게 덥힌 후, 이것을 새하얀 비단에 적셔 서태후의 상반신 전체에 흡수시킨다. 그리고 깨끗한 수건으로 붉은 윤기가 돌 때까지 서태후의 몸을 가볍게 마사지해 준다.

 

 

상반신 목욕이 끝나면 잠옷을 입고 다시 하반신을 씻는다. 여기서부터 다시 같은 방법으로 4명의 궁녀가 목욕 시중을 든다. 이것이야말로 황태후의 목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유와 진주

 

서태후는 미색을 갖추는 데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모유와 진주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의 모유가 피부 미용에 탁월하다고 생각해 매일 저녁마다 모유나 우유를 빠뜨리지 않고 마셨다고 한다. 모유를 마시기 위해 서태후는 끊임없이 유모를 선발해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그 조건도 까다롭기 그지 없었다. 서태후가 마실 모유의 유모가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체격과 아름다운 용모, 위생 상태 등에서 모두 높은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조건에 적합한 유모를 궁으로 데려오기 위해 유모의 식솔들까지 모두 궁으로 불러 살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태후는 진주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진주가 피부를 매끄럽고 윤택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은 서태후는 열흘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진주 가루를 한 티스푼씩 직접 복용했다. 그는 진주 가루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환관을 둘 정도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진주가루는 당시 상등품 중의 상등품이었다. 서태후는 10여 년 간 진주가루를 먹으며 과다 복용이나 비정기적 복용은 미용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뿐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진주가루의 복용량과 복용 시간까지 알아낼 정도였다.

 

 

이 정도의 관심과 노력이라면 우리도 서태후 정도의 젊음과 피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출처 http://space.yoka.com/blog/142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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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수암(萬壽庵)의 비구니










흰 피부에 용모단정한 20대 중반의 여성. 유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이 여성이 과연 법의를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누가 그를 비구니라고 생각했을까?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법명이 전민법사(傳愍法師)임을 알게 되었다. 원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지만 한사코 거절한다. 법명을 받게 되면 세속에서 쓰던 이름은 영원히 버리는 거란다.

 















전민법사는 어려서부터 불교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무겁고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지며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속세를 떠나 한마음으로 수행에 정진해 내세를 기원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도 그의 뜻을 존중해 모두들 전민법사가 수행으로 온 가족의 현세와 내세에 안락과 행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그는 광둥성 토박이로, 출가 전까지 샤산에서 살았다. 1995년 고교 졸업 후 여동생과 함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아버지는 광저우 육용사의 승려이다. (중국 일본 등 외국 특정 불교 종파는 스님도 결혼생활이 가능하다고 함)

 












나중에 결혼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시원스럽게 그러나 확고한 어조로 답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국민의 신앙의 자유와 출가인의 결혼의 자유를 모두 허용하지만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민법사의 인품, 교육 수준, 견문 등은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그는 1997년 마카오 불교학원에서 6년을 수학해 석사학위를 보유한 재원이었다.












전민법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구니들의 생활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만수암의 비구니들은 출가 이후로 모두 독신으로 수행하며 사원 안에 기거한다. 그들의 생활에는 엄격한 규범과 규칙이 있고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 처음으로 승려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노여승을 자신의 규범 스승으로 모시고, 스승에게 도덕 및 품행 교육과 관리를 받는다. 그 후 유명한 생불이 머리를 깎아준다. 생불이 불경을 외고 비구니를 축원해 준 후, 머리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깎음으로써 육근(, , , , , 마음을 가리키며, 이 여섯 가지를 죄업의 근원으로 여김)을 깨끗이 하고 모든 근심과 번뇌를 끊어버렸음을 나타낸다.





모든 출가인은 삼귀라 하여 불가에 귀의하고, 불법에 귀의하고, 승려에 귀의하게 된다. 이를 위해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종교적 신념을 견지해야 하며,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불경을 공부해야 한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만
경내에 머무를 수 있다.











비구니가 수행하는 가장 보편적인 형식은 음식을 끊고 엄격한 금욕 속에서 고행하는 폐재(閉齋)이다. 간혹 부잣집에서 죽은 이의 천도를 위해 비구니에게 폐재를 청하기도 하는데 의식이 끝난 후에는 일정한 공양을 받는다고 한다. 폐재는 일반적으로 이틀 동안 이루어지며, 첫째 날까지는 말을 해도 괜찮고 식사는 점심만을 먹게 된다. 둘째 날부터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 수 없으며, 말도 한마디 내뱉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비구니 홀로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해야 한다. 이 수행은 셋째 날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된다.














비구니의 생활은 비록 단조롭고 물질적인 향락도 누릴 수 없지만, 그들은 불경 공부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 속세에서의 기복 심한 삶보다 평화롭다고 말한다. 비구니들은 하루 종일 방안의 어두운 곳에 조용히 앉아 경문을 읽고 공부한다. 외출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방문객은 조용히 사절한다. 문고리에 나뭇가지를 하나 끼워두는 것은 좌선중이라는 뜻이다. 신도나 가족들이 찾아와도 나뭇가지가 보이면 조용히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좌선은 최소 한 달이 걸리고 길게는 반년이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비구니들이 좌선을 하는 이유는 감각과 사고 사이에서 진리를 통하고 일체의 사념을 버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출처 http://club.koubei.com/thread_146_9376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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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띠 중국인들은 전부 빨간 팬티를 입는다는데…?

2009.01.28 11:31 | 중국의 문화와 문학 | 양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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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띠 중국인들은 전부 빨간 팬티를 입는다는데…?

-       중국의 본명년 풍습

 

중국의 본명년(本命年) 풍습을 아십니까? 본명년이란 자신의 띠 동물에 해당하는 해를 말합니다. 즉 올해는 기축년이기 때문에 소띠인 13, 25, 37, 49세 등이 자기 본명년을 맞은 것이지요. 중국은 12년마다 돌아오게 되는 본명년이 되면 그 해는 운수가 사납고 액운이 닥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미신은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널리 퍼졌던 속설입니다. 과거부터 지역을 막론하고 본명년이 되면 붉은 색 물건을 집안에 걸어 액운을 피하는 전통이 있었죠. 그래서 지금도 중국인은 붉은색과 본명년을 뗄 수 없는 관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명년마다 붉은 색을 찾는 풍습은 아마도 붉은색에 대한 중국인의 전통적인 숭배의식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태양, , 피의 색깔인 붉은색은 길한 색이고 액운을 막는 색이라는 관념이 원시시대부터 이미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러한 관념은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와 지금도 설에는 대문에 붉은색 대련을 붙이고, 전통 혼례식에서 신부는 붉은 색 드레스를 입고 붉은 색 천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어떠한 일이던 즐거운 날에는 붉은색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죠.


 

한족은 예로부터 붉은색을 경사, 성공, 충용과 정의의 상징으로 여겨왔으며, 특히 붉은색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본명년인 중국인들은 새해 하루 전날부터 빨간색 속옷을 입거나 빨간 허리띠를 두르고, 어떤 이는 자신이 쓰는 물건들도 빨간색 천으로 칭칭 감거나 둘러서 자신의 본명년을 맞습니다. 이렇게 해야 액운을 피하고 길운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죠. 이처럼 중국인이 본명년의 액운을 피하기 위해 휴대하는 붉은색 물건은 본명홍(本命紅)이라고 합니다.

 

 

 

 

 

본명년과 관련해서는 또 본명신(本命神)을 믿는 풍습도 있습니다. 자신의 본명년이 되면 사람들은 본명신에게 제사를 지내 장수를 기원합니다. 이 본명신은 도교에서 유래된 관념입니다. 도교에서 민간의 본명 관념을 흡수하고 본명성(本命星), 본명년, 본명일(本命日)과 같은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죠. 도교는 중국에서 시작된 전통 종교의 하나로서, 자연과 천간, 지지, 12간지 등 자연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관념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본명신의 풍습도 여기에서 비롯된 전통관념 중 하나입니다.


 

지역에 따라서 본명신을 본명수명성군, 본명원진, 육십갑자신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갑자년을 시작으로 60개의 햇수가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이 중에 자신이 태어난 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해당하는 신이 자신의 본명신이 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명장이자 영웅인 악비는 1103년 생으로 이 해는 계미년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그의 본명신은 계미년의 계미태세위인이대장군이 된다고 합니다. 도교에서는 자신의 본명신을 본명년 혹은 평년에 정성껏 섬기고 제사를 지내면 화를 면하고 복을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믿음이 관습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본명년 관념은 한족뿐 아니라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길일과 흉일이 있는데 그 날짜는 자신의 생신(生辰)에 따라 달리 정해진다고 합니다. 티베트력으로 열두간지가 한 바퀴 돌고 두 번째 열두간지가 시작할 때를 (흉년을 뜻함)’라고 합니다. 그래서 13, 25, 37세 등 를 맞은 사람들은 액운을 피하기 위해 외출을 삼가고 대신 염불과 보시에 더욱 힘을 쏟습니다.


 

한편 거란족은 출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본명년을 지냈습니다. 요나라 때에 본명년은 재생례(再生禮) 혹은 복탄례(復誕禮)라고도 부르며 자신의 출생을 기념하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식을 지냈다고 합니다.


 

출처 http://ks.cn.yahoo.com/question/1408011201442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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