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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도 싸구려 취급받는 중국제

2009.02.23 19:55 | 중국이 말하는 중국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71 주소복사









누군가의 눈에 아프리카는 그저 낙후되고 가난한 땅으로만 비치겠지만, 현재 아프리카의 발전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다양한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은 유럽의 어느 도시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도처에 보이는 카페와 술집에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과 외국인 관광객이 자리를 메우고,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해변가에 파라솔을 펴고 햇살을 즐긴다.

 

남아프리카의 대도시에는 대형쇼핑센터가 많이 들어서있다. 또한 광장 변에 자리한 노천 공연도 현지인들이 즐기는 여가 방식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러한 대형 쇼핑센터에 중국 상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란 글자가 써 있다 해도 해외 유명 상표나 명품의 OEM상품에 불과한 수준이다.



 

반면 이러한 쇼핑몰에 세계적 브랜드들은 모두 입점되어 있었고, 일제 및 한국제 상품들도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나는 일본 수입제 냉장고와 TV를 사서 쓰던 30년 전의 중국이 떠올랐다. 만약 그 당시 일본인이 중국인에게 싸구려 저질 제품을 팔았다면 지금의 중국인들이 일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현상이 일어났을까?


제대로 된 매장에서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중국산이 길바닥에는 흔하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의 상품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조차 싸구려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 중국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내수전환 수출품이 있었다. 내수전환 수출품이란 공장에서 제품 생산 시 작은 결함이 발생해 수출 부적격으로 판정되어 내수 시장에서 판매하는 수출전용 상품을 말한다. 과거에는 백화점에 내수전환 수출품이라는 표지만 내걸리면 사람들이 줄을 서가며 살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 당시만 해도 수출품에 한해서는 나름 엄격한 품질관리로 중국산이 해외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수입된 셔츠를 빨리 사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탁까지 했다는 대사가 나오는 옛 루마니아 영화도 있다고 한다. 이 때만 해도 중국제의 지위가 그렇게까지 못하지는 않았다는 뜻.




나는 남아공을 여행하며 남아공인을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아프리카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아시아의 여행자를 우호적으로 맞았고, 아예 중국인임을 알아보고, Hi, Chinese! 혹은 아예 중국어로 니하오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아프리카인과 자주 접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현지에서는 중국 제품을 가리켜 ‘FengKong’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FengKong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FengKong이란 중국에서 수입된 상품들은 전부 다 싸구려 저질이란 뜻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얘기를 듣고 나선 기분이 좀 그랬다. 만약 아프리카인들에게 일본제가 하이 퀄리티의 상징이고, 한국제가 트렌드의 상징이고, 유럽이나 미국 제품이 사치와 부귀를 상징한다면, 이른바 메이드 인 차이나는 싸구려와 저질의 상징이란 뜻이 아닌가.

 



90년대 초부터 중국 보따리장수들이 싸구려 옷가지를 챙겨 러시아 국경을 넘게 되면서부터 중국제가 저질 짝퉁의 대명사처럼 변해버렸다. 세계인 앞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중국 제품이 소위 낙후되었다고 하는 아프리카에서도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그저 전세계에서 장사를 하는 중국인들이 짝퉁이나 저질 상품을 유통시켜 중국-아프리카간의 무역로를 끊어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아프리카 각국 대사관에 주재하는 대사관들이 현지에서 고되게 장사하는 사람들과 좀 더 빈번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자신들의 이윤을 최대화하기에 급급해 중국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저질 제품을 아프리카에서 판매하는 행위는 더더욱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blog.sina.com.cn/s/blog_4acf0a970100cs97.html?tj=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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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jhkey03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열 곳

2009.02.16 23:50 | 중국의 볼거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70 주소복사




중국 전역의 지방매체가 추천하고 중국인들이 투표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0곳의 리스트입니다.

 

 






장시 우위엔 마을(江西源古村)

 

 

우위엔 마을은 안후이, 저장, 장시가 맞닿아있는 곳에 끼어 있는 녹색 구슬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곳은 예부터 책의 고장, 차의 고장으로서 중국에서도 유명한 문화와 자연의 마을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충칭 허촨 라이탄(合川涞滩)

 

 

청나라 선풍제 때 만들어진 이 마을은 당시 태평천국군을 방어하기 위해 바위로 마을 전체를 둘러싼 방어진을 쳤었는데 그때 쌓은 석벽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엔 그냥 마을이 아닌 하나의 요새였지요. 이 마을은 아직도 높이 7미터, 넓이 2.5미터의 석벽이 예전 그대로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선명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푸젠 페이톈마을(福建培田古村)

 

 

푸젠성 롄청현에 위치한 페이톈마을은 룽안시에서 차로 두 시간 여 달리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500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고색창연한 마을은 재미있게도 모든 마을 사람들이 전부 우씨()라네요. 잘 정돈된 마을 안에는 짧게는 300년 길게는 500년이 다 된 명청시대의 섬세한 건축물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는데 지금도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오랜 세월 속 빛 바랜 느낌의 마을 분위기와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장 오진(浙江乌镇)

 

 

강남 6대 고촌 중 한 곳인 우진, 이 곳은 동서남북 네 갈래로 이어진 향수 어린 옛 거리가 십자로 뻗어가며 물길 따라 고요한 정취를 품고 있습니다. 이 곳의 집들은 강을 따라 아름답게 지어져 있고, 거리 양쪽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옛 건축물은 지금이 명청시대가 아닌지 착각하게 합니다. 강 위에 소박하게 올라서 있는 작은 다리 위에 서면 강남의 흥취가 한 몸에 느껴집니다.

 

 





샨시 황청샹푸(山西皇城相府)

 

 

샨시성 동남쪽 푸청시 기슭에 자리한 황청샹푸는 동으로는 허난성, 남으로는 삼국지의 고도 뤄양, 북으로는 샨시성 창쯔시와 마주하는 아시아 최대 탄광화력발전소의 마을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요충지이자 교통이 발달한 지방이기도 합니다.

 

이 곳은 총 234가구 680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지만 석탄자원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허난 주셴진(河南朱仙)

 

 

이곳은 징더진, 포샨진, 한커우진과 함께 중국의 4대명진(名鎭) 중 하나일 정도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전국시대의 용사 주해의 고향이라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당송대 이래로 줄곧 수륙교통의 요지이자 만물이 다 모이는 집산지였고, 명나라 말 청나라 초까지 번성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역사적으로도 오랜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송나라 때 중국의 민족영웅 악비가 금나라 병사를 대파한 곳이 바로 이곳이지요. 홍지문신, 목판 세화 등 특색있는 특산물도 많답니다. 유명한 관광지로 악비묘, 관제묘, 청진사, 개봉 고성터 등이 있습니다.

 




 

윈난 허순(云南和)

 

 

허순의 옛 이름은 원래 따로 있는데, 작은 시내가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간다고 허순(河順)이란 지명으로 바뀌었다가 후일 지금의 허순(和順)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이주해 온 한족이 많습니다. 마을 굽이굽이 숨어있는 고찰들과 사당, 명청시대의 건물들과 마주하다 보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안휘 훙촌(安徽宏村)

 

 

역사 깊고 아름다운 이 마을은 마을 전체에 명청 시대의 옛 건축물들이 138개나 되어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입니다. 남송 흥성연간에 이루어지기 시작한 훙촌은 청나라 건륭제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무려 87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간직한 마을입니다. 원래는 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지요.

 

 

훙촌은 중국화 속에 나오는 마을이란 칭송으로 유명합니다. 아름다운 산수와 자연절경이 옛 중국화 속에 들어있는 바로 그 마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자연절경과 마을의 벽, 기와가 거울처럼 비치는 호수 속에는 자연과 건축, 사람이 이미 하나로 합쳐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장쑤 광푸(光福古)

 

 

광푸는 장쑤 지역에서도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지역입니다. 쑤저우에서 서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태호를 끼고 홀연히 서있는 반도 마을입니다. 광푸는 관광지와 볼거리도 많을 뿐 아니라 그림 같은 자연 절경도 유명한데요, 중국 옛 시에서도 이 곳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답니다.

 

 

광푸는 교통도 편리해 쑤저우를 순환하는 고속도로를 타면 상하이에서 한 시간, 난징이나 항저우에서는 두 시간 여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장쑤 저우좡(周庄)

 

 

쑤저우에서 남동쪽으로 38킬로미터 들어간 쿤샨시에 다다르면 900년 넘는 장구한 세월을 보내온 고도 저우좡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을을 끼고 중스허, 허우강허 등 4개의 강이 마을 사이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강을 따라 거리가 만들어져 건물도 강을 따라 들어서 있어 전형적인 강남 옛 마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답니다. 맑고 고요한 강이 청명한 하늘 아래 흐르며 옛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출처 http://xk.cn.yahoo.com/articles/090216/1/hdxr_20.html

70대 나이에 소녀피부, 서태후의 피부미용 비법

2009.02.12 19:05 | 중국의 문화와 문학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69 주소복사







중국 청나라 말기의 황후 서태후는 당시의 실질적 권력자로서 정치, 사회, 외교적으로 중국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러나 중국의 굵직한 근대사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바로 서태후가 황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피부 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1835년에 태어나 1908년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74년을 살아온 서태후는 16세에 입궁 후 근 50여 년 동안 궁중의 암투와 정치에 시달리면서도 아기 같은 동안 피부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야사에는 서태후의 젊음과 미모에 사로잡힌 연하남과의 스캔들이 여럿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은 서태후가 동안 피부와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을 찾아보기로 하자.

 

 


 

 

서태후의 미용과 화장 비법

 

 

서태후는 매일 빠뜨리지 않고 화장을 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화장을 했는데 매일 세 시간이나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복잡한 과정과 호화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태후는 우선 화장 전 매일 옥으로 만든 막대를 얼굴에 굴리며 안면 마사지를 했다. 옥 마사지에는 특별한 화장품이나 약품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단지 피부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얼굴의 혈액순환을 돕고 주름 개선에 효과를 가져왔다.


 

 

화장 시 가장 먼저 사용한 화장품은 분이다. 중국에서 분은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을 정도로 오랜 화장품. 서태후가 사용한 분은 다양한 쌀을 일정 비율로 배합해 곱게 가루를 낸 것이었다고 한다. 쌀가루 분이 뭉치지 않도록 여기에 연백분을 섞어 썼는데, 연백분은 독성이 있을 뿐 아니라 장기간 사용하면 피부를 새파랗게 만들었기 때문에, 서태후는 연백분 사용에 있어 아주 철저하게 용량을 지켰다.



 

 

동양의 화장술에서 분 다음으로 중요한 화장품은 바로 연지다. 서태후가 즐겨 쓴 연지는 꽃과 다목을 사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서태후는 연지의 색깔에 무척 신경을 기울여 태감이 연지를 가져올 때마다 항상 골똘히 마음에 드는 색을 골랐다는데 이는 립스틱 색깔을 고르는 현대의 여성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연지 색을 정한 후에는 깨끗한 용기 안에 연지를 찧고 말린 후 5-6 분 후에 발랐다.

 

 

 

서태후가 쓴 비누는 궁중에서 특별히 제조한 것으로, 서태후가 직접 지시해 장미와 자스민 등을 넣어 만들었다.

 

 

서태후는 아침 화장뿐 아니라 클렌징과 기초화장에도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달걀 흰자로 안면 마사지를 하면서 클렌징을 시작했다. 그는 특히 주름 부위에 중점적으로 달걀 흰자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잠들기 30분 전 다시 특별히 제조한 비눗물과 깨끗한 물로 세안을 한다. 자기 전에는 오랜 과정을 거쳐 얻은 머위꽃 즙으로 팩을 했는데 피부에 수렴 작용을 한다고 한다.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면 피부결이 부드러워지고 주름 방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서태후의 손씻기와 목욕

 

 

손은 제 2의 얼굴이라고 한다. 서태후 역시 손 씻기를 상당히 중시한 사람이다. 그는 일어난 후 곧바로 뜨거운 물에 깨끗한 수건을 담가 스팀 타올을 만든 후, 이것을 손에 감쌌다. 다시 새로 물을 떠오고 스팀 타올로 손을 감싸는 과정을 두 번, 세 번씩 반복해 손의 관절이 부드러워졌다고 느껴지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손을 씻는다. 이 때문인지 서태후의 손은 70대가 아니라 10대 소녀의 손이라 착각할 정도로 젊었다고 한다.

 

 

서태후는 세수 방법도 남달랐다. 우선 뜨거운 물로 피부의 모세혈관이 열리도록 약간 붉은 빛을 띨 때까지 얼굴을 가볍게 터치한다. 이 과정이 끝난 다음에만 마사지와 화장을 했다.

 

 

그렇다면 서태후는 어떻게 목욕을 했을까. 놀랍게도 드넓은 자금성 안에는 욕실이 단 한 칸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서태후가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그 비밀을 공개한다.

 

 

서태후는 보통 침실에서 목욕을 했다. 서태후의 목욕을 위해 궁녀들은 크고 두꺼운 나무 대야와 함께 서태후가 얼마든지 등을 기댈 수 있도록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낮은 탁자, 40여 개의 비단 수건을 매일같이 준비했다.

 

 

태후의 목욕은 4명의 궁녀가 시중을 들었다. 서태후가 옷을 벗으면 4명의 궁녀들이 각각 뜨거운 물 속에 5분 동안 담갔다가 다시 수분을 짜낸 후, 황궁에서 특별 제조한 장미 비누로 거품을 내 서태후를 씻겨준다.



 

이렇게 서태후의 몸에 사용한 수건은 한 번 쓰고 버리며, 절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궁녀들이 새 수건으로 각자 맡은 부위의 거품과 때를 씻어낸다. 이렇게 거품을 씻어내는 시간이 비교적 길고 힘도 가장 많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수건을 바꾸어 서태후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마사지를 해준다.

 

 

여기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궁녀들은 맑고 깨끗한 이슬을 받아 따뜻하게 덥힌 후, 이것을 새하얀 비단에 적셔 서태후의 상반신 전체에 흡수시킨다. 그리고 깨끗한 수건으로 붉은 윤기가 돌 때까지 서태후의 몸을 가볍게 마사지해 준다.

 

 

상반신 목욕이 끝나면 잠옷을 입고 다시 하반신을 씻는다. 여기서부터 다시 같은 방법으로 4명의 궁녀가 목욕 시중을 든다. 이것이야말로 황태후의 목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유와 진주

 

서태후는 미색을 갖추는 데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모유와 진주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의 모유가 피부 미용에 탁월하다고 생각해 매일 저녁마다 모유나 우유를 빠뜨리지 않고 마셨다고 한다. 모유를 마시기 위해 서태후는 끊임없이 유모를 선발해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그 조건도 까다롭기 그지 없었다. 서태후가 마실 모유의 유모가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체격과 아름다운 용모, 위생 상태 등에서 모두 높은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조건에 적합한 유모를 궁으로 데려오기 위해 유모의 식솔들까지 모두 궁으로 불러 살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태후는 진주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진주가 피부를 매끄럽고 윤택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은 서태후는 열흘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진주 가루를 한 티스푼씩 직접 복용했다. 그는 진주 가루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환관을 둘 정도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진주가루는 당시 상등품 중의 상등품이었다. 서태후는 10여 년 간 진주가루를 먹으며 과다 복용이나 비정기적 복용은 미용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뿐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진주가루의 복용량과 복용 시간까지 알아낼 정도였다.

 

 

이 정도의 관심과 노력이라면 우리도 서태후 정도의 젊음과 피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출처 http://space.yoka.com/blog/142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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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화장실 구조: 큰 사각형 구조

 


물은 화장실에 가장 보편적인 존재이다. 물이 많은 곳은 다른 곳보다 습하기 마련, 때문에 무거운 기류를 만들어내게 된다. 따라서 화장실 풍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항상 환기와 통풍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에, 높이가 비교적 높은 창문이 있어 빛도 들어오고 공기도 통하는 화장실이 이상적이다.

 

창문이 없거나 통풍이 안 되는 화장실은 좋지 않다. 만약 화장실에 창문이 없다면 통풍기라도 반드시 설치해 나쁜 공기를 환기시켜야 한다.


 

만약 공간 여유가 충분하다면 화장실의 크기는 작기보다는 큰 편이 낫다. 그래야 습기와 기의 흐름이 원활해지고 건강운과 재물운도 들어온다.


 

그 밖에, 화장실의 형태는 사각형이 가장 이상적이며, 삼각형이나 그 외의 기형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만약 화장실이 곁방 안에 딸려있다면 특히 침실 바닥이 화장실보다 낮지 않은지 유의하라. 특히 욕조는 절대 높은 곳에 위치해서는 안 된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러한 구조의 집에 살게 되면 물의 습한 기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내분비계통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최고의 화장실 위치: 정동향과 남동향



 

화장실은 일반적으로 집의 중앙에 위치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위치는 집안의 변두리이며 정동향 혹은 남동향이 가장 좋다. 이 두 방향은 나무에 속하고 물은 나무를 자라게 하므로, 화장싱의 물의 기가 동쪽 혹은 남동쪽의 나무의 기와 오행을 왕성하게 자라게 해준다. 또한 남향은 볕이 잘 들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도 화장실 내부의 건조함을 유지하는 데 좋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은 변기 및 욕조의 배수는 아래로 향하는 활동이므로 위를 향하는 나무의 성장과는 대립관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화장실 안에 비교적 큰 식물을 기르거나 나무 바닥 깔기, 선명한 초록색의 수건 사용 등도 위를 향하는 나무의 성질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동쪽 및 남동쪽 외 다른 방향은 화장실 위치로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가정의 욕실 위치는 고정된 상태로 자리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는 각종 물건으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흙과 물은 상극이므로 북동향이나 남서향은 최악의 화장실 위치이다. 부득이하게 화장실이 이 방향에 위치해 있다면 대신 변기 위치를 바꾸어보는 것도 좋다. 혹은 소금을 흰 도자기 접시에 담아 방의 북동쪽이나 남서쪽에 두어보자. 무게가 나가는 철제 조형물도 괜찮다.

 

북향 화장실은 물의 힘이 너무 강해 정력과 금전상의 낭비를 초래한다. 반면 남향 화장실은 격정의 부족을 초래해 소송사건에 휘말리기 쉬워진다. 큰 식물을 놓아 물의 힘을 약화시키고 습기를 흡수하도록 해보자. 서향 및 북서향 화장실은 쇠가 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금전상의 손실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도 흰 꽃이 피는 식물을 심어 쇠의 기능을 보강하거나 금속성 조각품, 흰 색 생화 등을 원형의 은꽃병에 담아 놓아두면 좋다.

 



최고의 화장실 배치: 단순 깔끔, 변기와 세면대 유의

 

난잡함은 화장실의 최대 금기사항. 잡동사니가 많을수록 기의 흐름을 막기 때문에 화장실 디자인은 심플하고 통풍이 잘 될수록 좋다고 할 수 있다. 풍수적으로 화장실의 바닥재는 물의 기운을 상쇄할 수 있도록 방수가 되고 청소하기 편한 목재가 가장 좋다.

 

목재 외에도 대리석, 화강암 등 기타 딱딱하고 매끄러운 자재가 기와 힘의 유동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카펫과 같은 합성 자재는 피하는 것이 좋다.


 

공간적 제약으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욕실과 화장실은 함께 배치되어 있다. 물이 가져오는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좌변기를 욕실 문에서 되도록 먼 곳에 두어야 한다. 특히 욕실의 동쪽이나 남동쪽이 가장 좋다. 좌변기 방향은 거실 대문의 방향과 일치해선 안되며, 가능하다면 벽이나 병풍, 커튼 등으로 좌변기를 가리는 것이 좋다. 평소에는 되도록 욕실 문을 열어놓지 말도록.


 

변기의 위치는 화장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중요 사항을 정리하자면

 

1.     중국 전통풍수학에 따르면, 변기의 방향과 집 대문의 방향이 일치해서는 안 된다.

2.      변기는 화장실 문과 정면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 변기와 화장실 문은 되도록 수직이 되도록 한다.

3.     변기는 침대 방향이나 난로 방향을 향하면 안 된다.

4.     변기는 반드시 벽에 붙어있어야 한다. 변기가 화장실 중앙에 있다면 생활에도 불편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5.     변기는 북쪽을 향하지 않도록 한다.

 

만약 화장실이 매우 크다면 화장실 출구에서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 또한 거울에도 비치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현대식 건물에서 변기 위치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으므로 이동 이후에도 이용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고려해야 한다.


 

변기 다음으로 화장실 풍수에서 중요한 것은 세면대이다. 어떤 세면대는 계단 위에 위치하기도 하는데 미관상으론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특히 침실과 붙어있는 화장실이라면 이런 배치는 피해야 한다.

 


출처 http://xk.cn.yahoo.com/articles/080624/1/ar2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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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