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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방들은 과거시험장 앞에 있었다?

2009.05.17 07:03 | 중국의 역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90 주소복사





중국에서는 기방을 청루(
靑樓)’라고 부른다. 청루란 푸른 빛의 옻으로 칠한 건물을 뜻하는 말로, 원래부터 기방을 청루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청루는 본래 화려한 가옥이나 세도가의 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가옥과 호화스러운 생활 사이의 연관성으로 인해 청루가 기방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대 중국의 청루는 주로 과거시험장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청루의 주요 타겟이 과거 응시를 준비하는 선비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특권계급인 선비들은 돈과 시를 통행증 삼아 기방을 드나드는 기생들의 주 고객이었다. 기방 주인들로서는 돈 많은 선비들을 당연히 모셔야 했고, 기생들 역시 대다수가 시화를 즐기는 계층이었기 때문에 젊고 똑똑한 선비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기생은 준수한 남자를 좋아하고, 기생어미는 돈을 좋아하는 법이라 하지 않나.

 

 




중국의 과거시험장은 공원(貢院)이라 일컫는다. 공원 중에서는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역사도 깊은 강남공원을 최고로 쳤다. 강남공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청나라 동치제 때까지 30만㎡ 부지에 고시생 기숙사방이 3 644개에 이르러 베이징의 자금성 세 개를 합쳐놓은 정도의 규모로 팽창해 명, 청 두 시대에 거쳐 명실상부한 국가 최대의 공원으로 팽창했다. 중국 역사상의 과거 시험에서 배출된 800여 명의 장원급제자 중 절반 이상이 강남공원 출신이었다. 당백호, 이홍장 등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도 모두 강남공원 출신이다.


 

 





 

이러한 강남공원의 명성 탓에 과거응시생들은 너도나도 이곳으로 몰렸다. 진사과가 열릴 때마다 전국에서 서생들이 구름 떼처럼 강남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이러다 보니 공원 주변에 자연히 장사꾼들도 모여들어 청루와 요릿집, 찻집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 유명한 기방이 진회청루였다고 한다. 강남공원과 진회청루를 끼고 흐르는 진회강까지도 유흥문화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오늘날 고시촌이나 학원가 근처일수록 먹고 마실 수 있는 유흥문화가 잘 발달된 것과 비슷하다.

 

 

 

당나라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게 되면 자신이 사랑하는 기녀에게 멋들어진 문장으로 사랑을 읊은 시를 써 주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과거에 불합격한 이들은 그들대로 청루에서 낙담한 마음을 술과 여자로 달래었다. 이처럼 청루와 기녀는 과거를 응시하는 선비들에게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청루는 고시생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청대의 과거 시험은 매우 엄격한 조건 하에서 치러졌다. 고시생들은 시험장에 입장하기 전에 옷과 머리카락 속까지 샅샅이 몸수색을 당했다. 규정되지 않은 음식이나 문구류를 몰래 휴대하면, 위반자는 몰매를 맞고 한 달 동안 고사장 앞에서 조리돌림을 당했으며, 시험 응시 자격이 영원히 박탈되었다. 공원 입실 후에는 입구가 폐쇄되고, 과거가 치러지는 3일 간 아무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3일 동안 선비들은 닭장 같은 두 평 남짓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시험을 봐야 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거를 치르고 나온 후 바로 눈 앞에 기방이 보인다면 발길이 향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애인이나 소울 메이트를 구할 목적으로 청루에 드나드는 선비들도 있었다. 이들에겐 성적 만족은 오히려 부차적인 일이었다. 과거 응시생이 과거를 위해 한 번 집을 나오게 되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외지에서 홀로 보내게 된다. 외로운 외지 생활에 맞물려 그들을 감시하는 부모도 없기 때문에, 선비들은 체통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놓고 청루에 발걸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청루는 기녀와 놀고 즐기는 공간인 동시에 선비들이 친구를 사귀고 시와 문을 논하는 살롱이었다. 청루에서는 가문과 빈부의 차를 막론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문학을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

 

 

출처 http://liujunblog.qzone.qq.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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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녹수, 노래 한 곡으로 황비가 된 기녀

2009.05.17 06:56 | 중국의 역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9 주소복사

 

 

 

 

 

두추랑(杜秋娘)은 당나라 때의 명기이자 여류시인이다. 지금의 장쑤성 출신인 두추랑은 신분은 비천했지만, 아름다움과 지혜로는 강남 일대를 풍미했다고 한다. 또한 노래와 춤, 시와 서, 화에도 능해 재주 많은 강남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진해 절도사였던 이기는 두추랑의 소문을 듣고 천금을 주어 15세인 그를 관부의 가무기녀로 사왔다. 다른 기녀들은 모두 춤과 노래로 이기를 즐겁게 해주려고 했으나, 두추랑만은 춤을 추지 않고 대신 금루의라는 시 한 수를 직접 지어 이기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枝


 

그대에게 권하오니 비단옷 아끼지 마세요

또 권하오니 젊은 시절 아껴 잘 누리세요

꽃 피어 꺾을 만하면 바로 꺾어야 해요

꽃 지고 나서 헛되이 빈 가지만 꺾지 마세요

 

 

 

이미 반백의 나이가 넘은 이기는 자신이 청춘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삶을 즐기고 순간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두추랑이 기녀들 중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그것을 노래로 읊자, 마음이 움직인 이기는 그를 자신의 시첩으로 삼았다.

 

 

 

이 때, 당 덕종이 세상을 떠나고 순종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병약한 순종은 8개월만에 아들 이순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는데 그가 바로 헌종이다. 젊고 야심만만했던 헌종은 즉위하자마자 번진의 지방 세력이 할거하는 정세를 안정시키기로 마음먹고 지방 절도사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헌종의 조치에 불만을 품은 이기는 조정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사병으로 황제에게 모반을 일으켰다. 그러나 조정의 대군은 이기의 군사를 일거에 제압하였고, 이기는 전쟁 중 죽임을 당하고 만다.

 


 

 

두추랑은 역신의 가속이라는 이유로 관비가 되어 후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재주가 빼어났던 두추랑은 황제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잡아 다시 한 번 금루의를 불렀다. 한창 젊은 나이었던 헌종은 두추랑의 노래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노래를 부른 이가 관비임에도 남다른 기품과 아름다움을 지닌 것을 발견한 헌종은 두추랑이 직접 노래를 지은 것을 알고 더욱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추랑은 헌종의 비에 봉해져 추비가 되었다.

 

 

두추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헌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 또한 총명했던 그는 헌종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라가 안정되자 재상 이길보가 헌종에게 천하의 미녀들을 뽑아 후궁으로 들이라고 권했으나, 헌종은 채 서른이 안 된 나이었음에도 내겐 추비 한 사람으로 족하오라고 말하며 거절할 정도였다.

 

 

 

현명했던 두추랑은 헌종과 국가대사를 논하고 황제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권위적이었던 헌종은 대신들의 간언을 듣고 지방의 번진들에 대해 강압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후일 두추랑의 설득으로 회유책으로 전환하여 지방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고 태평성세를 구가할 수 있었다. 두추랑은 헌종의 마음을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열심히 정사를 돌보아 국가가 평안하도록 만든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헌종은 43세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다. 혹자는 이를 두고 황제가 불로장생을 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금단을 오랫동안 복용하다가 중독되어 죽었다고 하고, 혹자는 내상시 진홍지가 음모를 꾸며 황제를 모살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당시 득세했던 환관들의 후환을 두려워해 아무도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지 않았다. 결국 24세의 태자 이항이 환관 마담 등의 권세를 등에 업고 목종으로 즉위했다.

 

 

 

이 때 입궁한 지 12년을 맞은 두추랑은 30대 초반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황궁에서 매우 지혜롭고 명망있는 황비였으며, 조정 대신들도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목종은 국가대사에 있어서도 자주 두추랑의 의견을 묻곤 했다.

 

 

 

 

나중에 두추랑은 목종의 아들 이주의 보모가 되어 왕자의 자질을 가르쳤다. 자식이 없었던 두추랑은 이주를 자기 자식처럼 길렀다.

 

 


 

 

그러나 목종은 호색한 인물이었다. 그는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과 여자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다. 결국 목종 역시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고, 15세의 경종이 즉위했다. 놀기 좋아했던 어린 황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놀기에 바빴고 성정도 거칠었을 뿐, 국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즉위 2년 후, 밤여우 사냥에서 돌아와 환관 이극명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던 목종은 침실의 불을 끄자마자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목종의 아우 문종이 새 황제가 되었지만 너무 나이가 어린 터라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조정의 모든 실권이 환관들에게 넘어갔다.

 

 

 

당의 황제가 하나 둘씩 쓰러져 가고 점점 환관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광경을 직접 목도한 두추랑은 심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키운 왕자 이주는 군왕의 자질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 두추랑은 재상 송신이와 모의해 문종과 환관 세력을 쫓아내고 이주를 황제로 추대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이미 환관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그들은 다행히 환관들에게 아무런 약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이주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송신이는 강주 사마로 좌천되었다. 두추랑도 평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마감했다.

 

 

 

지난 시절 여자들의 운명은 종종 남들의 손아귀에 있기 마련이었던 반면, 두추랑은 자신의 지혜와 재능으로 용감하게 운명을 개척해 지금까지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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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폐 뒷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2009.05.15 01:08 | 중국의 볼거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8 주소복사




중국의 공식화폐인 인민폐는 현재까지 제 5판이 발행되었습니다. 인민폐의 앞면은 모두 마오쩌둥 초상화이지만, 뒷면은 시대마다 각기 다른 중국의 명소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중국 지폐 속의 도안은 실제 장소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진으로 비교해보며 직접 확인해보세요. 









 

 

구권 1위안- 바다링 만리장성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만리장성은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문화유산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는데요, 그 중 바다링 만리장성은 관광객에게 가장 먼저 개방된 만리장성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리장성이 바로 이곳입니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베이징 여행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대표적 여행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위상에 걸맞게 바다링 만리장성은 웅대한 경관과 동시에 중국에서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의의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요.

 

 

예부터 중국 샨시, 네이멍구, 장지아커우 등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새였던 바다링 지역은 98년도에 바다링 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차로 만리장성까지 이동하기도 한결 편해졌습니다. 또 이 곳은 무더운 베이징의 여름 평균기온보다 약 3도 가량 낮은 서늘한 곳이라 여름에 여행하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바다링 만리장성의 연평균 관광객은 1 2000만 명이며, 지금까지 370여 명의 세계 각국 정상들이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구권 2위안- 남천일주

 

2위안 지폐에는 남천일주(南天一柱)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랗고 둥근 기암괴석의 도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큰 바위가 마치 누가 일부러 옮겨놓은 듯 해변가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신기함을 자아내는데요, 이 바위의 높이는 무려 7미터에 달합니다. 이 바위의 정면 모습은 사람의 머리를 닮았고, 옆에서 보면 범선의 돛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인민폐에 그려진 도안이 실제 모습과 다릅니다. 지폐에는 큰 파도 한가운데에 바위가 우뚝서 있지만 실제로 이 바위는 모래사장 위에 있지요. 그렇지만 요즘처럼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계속 상승한다면 실제로 지폐 속 모습과 똑 같은 풍경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구권 5위안- 창장싼샤 우샤

 

창장(양쯔강) 싼샤 중 하나인 우샤는 총 길이가 46킬로미터에 이르는 협곡입니다. 중국에서도 깊고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한 이곳은 수많은 시와 미술작품의 소재가 된 곳입니다. 추풍정과 선녀봉, 3 8 12봉이 반드시 가봐야 할 코스입니다.

 

 

 

 

구권 10위안- 티베트 쵸몰랑마봉

 

티베트와 네팔 접경지역에 위치한 쵸몰랑마봉은 히말라야산의 주봉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8848미터)입니다. 쵸몰랑마란 티베트어로 대지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쵸몰랑마봉은 600여 개가 넘는 빙하와 높은 빙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계의 산악인들이 끊임없이 등정을 시도하지만, 험한 산세와 혹독한 추위로 정복하기 만만치 않은 산이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60도까지 내려가고, 최대 풍속은 초속 90미터에 달합니다. 그 거대함과 웅장함, 혹독함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신성함에 인간은 압도당하기 일쑤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2008년에는 이곳까지 성화가 봉송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구권 50위안- 황허 후커우 폭포

 

후커우 폭포는 황하유역에서 손꼽히는 장관으로 중국에서도 두 번째로 큰 폭포라는 위용을 자랑합니다. 황허는 황토고원을 지나 후커우에 이르러 강바닥이 400미터에서 4-50미터로 급격하게 얕아지는데, 마지막에 후커우를 지나면서 주전자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듯 거대한 폭포를 이룹니다. 그래서 이 폭포의 이름도 후커우(주전자 주둥이란 뜻)인 것이지요.

 

 




 




구권 100위안- 징강산

 

장시성 남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경한 이 산이 중국 100위안 지폐에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중국 공산당 혁명의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1세대 중국 공산당원들이 1927년 징강산에서 시작한 중국 최초로 농촌혁명이 현재 공산당 치하 신중국의 정신적 모태이기 때문에 정치적,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춧돌’, ‘천하제일의 산으로 불립니다.

 

 

징강산은 공산당의 성지이자 중국 개국과 혁명의 발원지인 만큼 사적지도 많고 역사적 의의도 풍부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중국 현대사의 살아있는 교과서나 마찬가지랍니다.

 

 



 



1
위안 신권- 항저우 서호 산탄인위에

 

 

항저우의 명물 서호에서도 유명한 산탄인위에는 서호3도 중에서 가장 큰 섬입니다. 실제모습은 석탑 2개만 보이네요. 이 곳은 송나라 때 운치있게 달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났었고, 지금도 호수와 함께 정자와 바위, 대가 어우러져 강남의 정취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원림의 아름다움이 유명하지요.

 

 

서호에는 3개의 유명한 석탑이 있는데, 이 석탑의 가운데는 구멍이 뚫려있고 그곳에 등을 켭니다. 밤이 되면 호수 위 석탑의 등불과 수면에 비친 달빛이 물 위에 함께 떠 진짜 달과 가짜 달이 함께 서호의 수면을 장식하는데 서호에서도 재미있는 볼거리이지요. ‘달이 비친 세 개의 못이라는 의미의 산탄인위에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답니다.

 

 




 






5위안 신권- 태산 관일봉

 

 

중국 5악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태산의 관일봉입니다. 도안 속에서 태산을 가리키는 오악독존이라는 비석과 태산의 주봉은 실제로는 서로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사실 이 그림은 실존하지 않는답니다. 그렇지만 중국의 으뜸가는 산인 태산의 장관은 지폐 속 그대로랍니다.

 

 



10위안 신권- 창장싼샤 쿠이먼

 

쿠이먼은 창장싼샤(장강 3)의 서대문으로 통합니다. 두보(杜甫)의 시에도 자주 등장했을 정도로 그 풍경이 뛰어나며 양쯔강의 시작점인 동시에 중국 최대 곡창지대 쓰촨분지와 접해 있어 중국의 풍요를 상징합니다.

 

 





20위안 신권- 구이린

 

 

중국에는 구이린의 산수가 천하 제일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얼굴인 인민폐에 구이린이 당연히 빠질 수 없겠지요.

 

 

 

굳이 지폐 도안을 들지 않아도 구이린은 중국에서도 내로라 하는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구이린의산들은 천 가지의 모습을 간직하고, 강들은 거울처럼 맑고 투명합니다. 동굴의 신비로운 경관과 갖가지 기암괴석도 함께 장관을 이룹니다. 그래서 산은 푸르고, 물은 수려하며, 동굴은 신비롭고, 바위는 아름답다며 이 네 가지를 구이린의 사절로 꼽기도 합니다.

 





 

50위안 신권- 티베트 포탈라궁

 

신권이 발행되기 전, 중국 정부에서는 50위안권의 뒷면 도안을 위해 2명의 도안전문가를 티베트 포탈라궁에 파견했습니다. 그들은 포탈라궁 주변을 아주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어느 정수장 지붕이 포탈라궁을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최적의 각도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곳에서 포탈라궁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50위안권의 도안이 바로 그 포탈라궁의 모습이랍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티베트 건축문화의 정수가 담겨있는 포탈라궁은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며 집무를 보는 궁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국의 지폐들마다 티베트를 상징하는 대표적 명소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데에는 아마도 정치적 이유가 가장 크겠지요.

 


출처
http://user.qzone.qq.com/622005140/blog/120506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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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지, 깜찍한 자동차 케이크

2009.05.14 22:24 | 중국의 볼거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7 주소복사






유명 자동차들의 브랜드 로고를 그대로 재현한 컵케이크. 귀엽네요.










폭스바겐 클래식 카





귀여웠던 범블비...





<허비, 첫 시동을 걸다>의 허비네요.






페라리 F430







폭스바겐 GTI.

이 사진까지 모두 같은 사람이 만든 케이크라고 합니다.






포르쉐 카이엔






BMW X5


































웨딩케이크








출처
http://autos.cn.yahoo.com/newspic/autos2_newspic_article.html?id=520&pg=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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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와 결혼한 여자들, 퉁치









퉁치(同妻)동성애자의 처를 뜻하는 중국어이다. 중국의 성인 남성 중 동성애자는 약 2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들 중 무려 80%가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결혼한 상태라고 한다. 이처럼 남성 동성애자와 결혼한 여성들을 퉁치라고 일컫는데, 그 수는 무려 1600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퉁치 여성들은 원만한 애정과 성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편들의 무시와 학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퉁치 현상은 중국 사회에 암암리에 퍼져 있었음에도 오랜 시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성생활에 대한 불만은 바깥으로 꺼내기 힘든 화제인 데다가, 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밝히기 어려운 까닭이다. 또한 중국사회의 전통적 도덕관념과 이성애 중심주의적 사고도 그 동안 퉁치 현상의 이슈화를 가로막았다.


 

 

 

퉁치 현상은 오직 중국에서만 나타나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사회 현상이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게이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대부분 독신, 동성과의 동거, (법적으로 가능한 경우) 동성과의 결혼 생활을 영위하며,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중국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결혼과 자녀 출산을 의무나 강압에 가까울 정도로 중시하는 중국의 뿌리깊은 문화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헝가리를 비교의 예로 들면, 헝가리인 중 결혼적령기에 곧바로 결혼을 하는 성인의 비율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결혼적령기가 되어도 독신 및 동거 생활을 하거나 일반적 이성교제의 관계를 유지한다.




헝가리와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동성애자는 이성과 반드시 결혼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끼거나 부모에 의해 결혼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성인이 되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불효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그 중 자손이 없는 것이 최악의 불효라는 사고 방식이 뿌리 박힌 중국 사회는 직간접적으로 동성애자에게도 결혼과 자녀 출산을 강요하고, 그 결과 퉁치라는 특수한 사회 현상까지 빚어낸 것이다.

 



 

퉁치 현상의 최대 피해자는 배우자가 게이인지도 모르고 거짓 애정에 속아 결혼 생활을 망쳐버린 동성애자의 아내들일 것이다. 한 퉁치 여성은 결혼 후 자신을 전혀 사랑해주지 않고 성관계도 극구 거부하는 남편 때문에 스스로가 여자로서 자격이 없는지조차 의심했었다고 고백했다. 이 여성이 후일 남편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안 후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친구나 선배라며 애인을 집에 데려오거나 함께 외박을 해도,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여성들도 비일비재했다. 또한 대다수의 퉁치 여성들은 고통스러운 결혼생활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사례가 많았고, 남편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중국에 이처럼 많은 수의 퉁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퉁치 현상이 사회문제화되자, 퉁치 여성들 본인도 스스로 조직화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퉁치를 위한 홈페이지와 상담 핫라인을 개설해 똑같이 고통 받는 퉁치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2009 3 27, 28일 양일에는 칭다오에서 최초로 중국 퉁치 회의가 개최되어 퉁치 여성들과 남편들이 경험담을 나누고 함께 퉁치 현상의 해결을 모색하기도 했다.



 

 

출처 http://tieba.baidu.com/f?kz=562678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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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