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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어설픈데 귀엽네, 중국 시골농사꾼이 발명한 이색로봇 ‘눈길’

2009.05.01 21:55 | 중국의 볼거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5 주소복사



 

 

뭔가 어설픈데 귀엽네, 중국 시골농사꾼이 혼자 발명한 이색로봇 눈길

 

 




4 29, 농부이자 로봇 발명가인 우위루(오옥록)씨가 발명한 35개의 로봇들이 중국 베이징 대관원에서 시민들에게 첫 선을 보였습니다. 우위루씨는 베이징 통저우구의 평범한 농사꾼 신분으로, 놀랍게도 수년 간 35개의 로봇들을 직접 연구, 발명했습니다. 그가 발명한 독특한 외양의 로봇들은 수레 끌기, 벽 기어오르기, 공중회전, 물을 따르고 담뱃불 붙여주기 등 저마다 하나씩의 서로 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는 로봇도 있다고 합니다.

 




 

이 로봇이 화제가 되자, 중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매일같이 모여들어 인터뷰를 요청할 정도로 관심이 지대했다고 합니다. 15곳의 언론매체 기자와 한꺼번에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17세 때, 1호 로봇을 만들어낸 그는 이미 로봇개발과 관련하여 두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각종 협회와 대회에서 받은 상장과 임명장도 적지 않았습니다.

 




폐품을 모아 로봇 부품으로 활용하는 우위루씨.

 

우씨의 아내 둥슈옌씨는 필요한 물건이라면 뭐든지 만들어 선물하는 우씨의 정성에 넘어가 결혼했지만, 지금도 그의 오타쿠스러운 기질엔 혀를 내두릅니다. 배운 게 없는 농투성이인 남편이 가끔씩 저지르는 실수 때문에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집을 홀랑 태워먹었을 때는 이혼까지 생각했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로봇 개발이 순전히 철없는 장난만은 아닌 듯 하네요. 2002년 당시 우씨가 개발한 로봇이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해 1만 위안을 상금으로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로봇은 3만 위안의 고가에 한 사업가에게 팔렸다고 하니, 웬만한 농사보다 남는 장사인 듯도 합니다.











출처 http://news.xinhuanet.com/photo/2009-04/28/content_11269936.htm



*All about China*
http://kr.blog.yahoo.com/jhkey03

















생전 처음보는 광경이군요. 중국 청하이구 관산촌 마을에서 매년 정월 18일마다 여는 전통 행사 '사이두주'의 모습입니다. 이미 백여 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전통인 사이두주는 수백 마리의 웃는 돼지들을 늘어놓는 독특한 방식으로 새해의 풍작과 국태민안을 비는 행사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매우 유명해 축제 때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답니다.




사진 속 돼지들은 축제 시작 전날밤 이 지역 주민들이 집집마다 직접 기르는 돼지 중에서 크기가 큰 놈들을 잡은 것이라고 합니다. 잡은 돼지의 배를 가르고 1미터 길이의 나무 받침대에 걸쳐 사당 안에 저렇게 나란히 놓아두었습니다. 돼지 중에서도 몸집이 큰 놈들만이 이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답니다. 돼지 몸통에는 길한 한자를 새긴 붉은 도장을 가득 찍습니다. 주민들은 작년부터 일찌감치 축제에 올릴 돼지를 선별하며 정성껏 길러 크게 키웠다고 하네요.





출처
http://www.xitek.com/html/travel/chinatravel/200903/03-13301.html




*All about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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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빵을 먹는데 왜 우리는 밥을 먹는 거지?

2009.04.25 21:56 | 중국의 역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3 주소복사

서양인들은 빵을 먹는데 왜 우리는 밥을 먹는 거지?


 

 

요즘은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외국음식 전문점에서 동서양 음식문화의 차이를 쉽게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구에 한번이라도 체류해 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은 더욱 강하겠지요. 서양 가정에서는 우리가 밥을 짓듯 아주 자연스럽게 빵이나 고기를 굽곤 하는데 이는 동양 가정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문화입니다. 반면에 밥을 짓거나 중국처럼 찐빵, 만두를 쪄서 주식으로 먹는 서양 국가도 거의 드물죠.

 

 



 

서양과 동양의 이러한 음식문화 차이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기원전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으로 거슬러올라가 동서양 음식문화 차이의 유래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농업 및 취사도구 제조에 있어서 중국에서 시작된 황하문명은 서양을 대표하는 지중해문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1.     밀은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농경 재배한 대표적 품종으로 재매역사가 이미 만년이 넘습니다.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에서는 이 때부터 강 유역에서 인간이 밀을 재배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고 이집트에서는 밀과 보리, 아마를 재배했습니다. 심지어 포도와 올리브도 이미 재배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 문명권에서 동시대에 쌀을 재배했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     한편 황하 유역은 땅이 비교적 척박하고 메마른 편이었는데, 이 때문에 주로 좁쌀이나 기장쌀 농사를 지었습니다. 반면 고온다습한 양쯔강 유역에서는 논에 벼가 심어졌습니다.  그러나 하, 상나라 때까지 중국 문명의 중심은 황하강 유역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만해도 중국에서 지칭하는 곡식의 범위는 곧 황하강 유역의 작물들과 기장, 조 등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밀과 쌀이 중국에서 곡식 중 하나로 정착된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주로 재배되었던 작물의 대표주자는 쌀이었습니다. 동양에서 많이 키웠던 쌀과 조, 기장 등은 모두 곡식 알갱이 상태로 찌거나 삶아 먹기 좋은 작물로, 빻거나 갈아서 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곡식입니다.

 


 

 

한편,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에서 많이 재배된 밀과 보리는 빻아서 가루를 낸 후 굽기에 적당한 곡식입니다. 이 때문에 동양은 쌀 등의 곡식 알갱이를 까서 찌거나 삶는 음식문화가, 서양은 밀, 보리 등을 수확 후 빻아 굽는 음식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주나라 이후 중국은 문화적 교류에 힘입어 중국 북방지역에서 밀과 보리 재배가 보편화됩니다. 중국에서 주식으로 면이나 국수을 먹는 문화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예부터 전해진 취사도구의 영향으로, 중국은 밀과 보리가 들어온 후에도 서양처럼 굽지 않고 찌거나 삶는 요리법이 유지되어 만두, 찐빵, 국수 등의 음식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음식들은 지금도 중국과 동양 여러 나라 음식문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똑 같은 밀을 가지고 중국인은 찐빵을 찐 반면, 서양인은 빵을 구웠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습니다. 중국이 밀가루로 만든 피 속에 고기 속을 넣어 탄생한 것이 바로 만두입니다. 반면 서양은 구운 빵을 잘라 안에 고기나 야채를 끼워 넣어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탄생시켰습니다. 빵과 찐빵에서 시작한 동서양의 음식 문화 차이는 이렇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서양 간 취사도구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고대 동서양은 공통적으로 토기와 청동기를 사용했지만 그 발전 방향은 완전히 다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진흙으로 빚은 원기둥형의 화로로 요리를 했습니다. 이 화로는 3피트 높이에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어 재를 꺼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불을 때는 데는 나무, 코크스, 말린 쇠똥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조리도구는 프라이팬처럼 바닥이 넓고 평평한 냄비로, 화로 위에 올려 빵이나 고기를 구웠습니다.

 

 

 

반면 중국의 냄비는 이집트와는 달리 안이 깊은 형태에서 발전하여 발이 세 개 달린 솥(), 물과 함께 넣고 음식을 찔 수 있는 시루(), 마지막으로 현재의 만두찜기처럼 두 층으로 나뉘어 수증기로 음식을 찌는 시루()로까지 다양하게 발전합니다.

 

 

 

이처럼 문명 발생 단계에서의 변화들이 축적되어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밥을 짓거나 만두, 국수 등을 찌고 삶는 문화가 발전하고, 서양에서는 빵이나 고기를 굽는 문화가 보편화된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면, 서양문명권의 고대인들은 빵을 주식으로 먹는 것 외에 조류와 쇠고기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원래 하루에 두 끼만을 먹었습니다. 당시에도 아침메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빵과 버터였다고 합니다. 식사는 굽거나 볶은 요리 위주였고, 식사에는 포도주나 맥주를 즐겨 곁들였습니다. 이러한 음식 문화는 지중해를 넘어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고, 수천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서구의 대표적인 음식문화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출처 http://blog.sina.com.cn/s/blog_4bbb74a50100d0gy.html?tj=1



*All about China*
http://kr.blog.yahoo.com/jhkey03

목숨걸고 학교가는 중국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선생님

2009.04.24 22:50 | 중국 이웃들의 이야기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2 주소복사

 

 

이것은 중국 다징산에서 가장 외지고 가장 가난한 어느 산골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세찬 물살이 가동교를 넘고, 갈지()자 모양의 좁은 소로를 따라 90도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기어올라 다시 원통형 나무와 철사로 얼기설기 짠 사다리를 모두 오른 후에야, 필자는 말로만 듣던 낭떠러지 초등학교’ – 얼핑춘(二坪村) 초등학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20대 초반 청년인 필자는 대여섯 시간이 넘는 산행길로 이미 발에 피 멍울이 가득 생긴 상태였습니다. 겨우 한숨을 돌린 저는 고개 하나를 더 넘고서 결국 말을 타고 지나가는 동네 주민에게 짐을 맡기고서야 다시 힘겨운 걸음을 떼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기자생활 이래로 가장 힘겨웠던 인터뷰 중 하루로 기억되었습니다.

 

 

 

 

얼핑춘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 중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사다리타기였습니다. 5미터 가량 길이의 사다리는 절벽에 완전히 붙어있어 지면과의 경사각이 90도에 달했습니다. 주위엔 붙잡거나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시설도 없는데, 발 아래는 아찔한 낭떠러지입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와중에도 돌멩이와 모래가 쉬임없이 부서져 내립니다. 위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다리 전체가 후들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세 번째 사다리를 정복하고 숨을 좀 돌리려는 찰나에 발견한 것은! 지금까지 지나온 사다리보다 훨씬 가파른 사다리가 두 개나 더 기다리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낭떠러지 학교를 처음 봤을 때는 필자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초등학교가 있다니! 철부지 아이들이 환호성으로 깊은 산 속의 적막을 깨뜨렸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장엄한 국기 게양 의식까지 거행하며 필자를 환영해주었습니다. 이 학교의 리구이린 선생님이 풍금으로 중국 국가를 연주하자 아이들이 대열을 갖추어 선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신성하게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이 게양한 국기는 2000년에 읍내에서 사온 것이라니 벌써 9년 째 쓰고 있는 셈입니다.

 

 





 

 

이 학교는 중국 쓰촨성 량산저우의 다징산 해발 2800미터 위에 홀로 서있는 초등학교입니다. 학교 주변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고, 아래에는 세찬 물살이 일렁이는 강이 흐릅니다. 학교 근처 산등성이와 굽이굽이에는 중국 소수민족인 이족의 부락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이곳의 소수민족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학교입니다. 학생들은 등굣길마다 다섯 개의 위험천만한 사다리를 오르는데 성공해야만 교실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학교의 교사인 리구이린, 루젠펀 부부는 이곳에서 19년째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출근해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유명한 문맹촌이었던 마을을 문화촌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들은 2009 2 5, 19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중국 cctv ‘2008 중국을 감동시킨 올해의 인물시상식에 섰습니다. 리구이린씨는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저희는 평범한 산촌 교사에 불과합니다. 이 상은 마땅히 우리 낭떠러지 학교의 아이들, 그리고 다징산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빈곤지역의 낙후를 개혁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바로 교육입니다. 만약 저를 대신해 낭떠러지를 올라 아이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면, 저는 죽는 날까지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낭떠러지 학교의 전교생은 80. 그 중 집이 낭떠러지 아래인 17명이 매일 위험천만한 사다리를 타고 등교하고 있습니다. 리구이린 부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사다리를 오르내리도록 등하굣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총 40미터에 달하는 이 사다리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오릅니다.

 

 

 

 

올해 11살인 이족 소녀 아가카라는 오늘도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등지고 한 손은 등나무 줄기, 또 한 손은 리 선생님의 손에 의지해 어른도 오르기 힘겨운 사다리에 발을 디딥니다. 그의 뒤로 열 여섯 명의 꼬마친구들이 뒤따릅니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두 교사는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이지만 신기하게 안전사고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학교는 벌써 7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총 졸업생 수는 189명이나 됩니다. 낭떠러지 학교에서 배움의 빛을 얻었던 학생들은 산골 마을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갔습니다.

 

 

 

표준어와 이족 방언을 모두 구사했던 리구이린 선생님은 1990년 처음으로 얼핑춘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가 원래 근무했던 읍내와는 천양지차의 근무환경이었습니다. 처음 산골마을로 부임하던 날은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했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횃불로 길을 비추고, 한 주민은 집안에 단 한 마리뿐이었던 늙은 암탉을 잡아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은 교사 인력이 부족해 벌써 10년 째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고, 주민들의 문맹률은 지폐의 숫자도 식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배움을 갈망하는 아이들의 눈망울 사이에서 고민하던 리구이린씨는 결국 이 곳에서 교편을 잡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부모님은 당연히 극력으로 반대했죠. 1년만 있어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 산골짜기로 들어온 후로 열 아홉 번의 봄과 가을이 지나갈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무너져가는 학교 건물을 보수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이 오지마을에도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된 것입니다. 남편과 뜻을 함께 했던 아내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낭떠러지 학교의 교사를 자청해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에 어떠한 의료, 편의 시설도 없기 때문에, 린구이린씨는 사비로 약품을 가져와 학교에 구비하기도 하고, 이발을 배워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기도 합니다.

 

 

 

 

그가 19년이나 오르내린 사다리는 과거 공포의 대상에서 지금은 일상이자 생활 습관 중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아찔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등나무 줄기가 갑자기 끊어지는 바람에 아래로 굴러 떨어져 겨우 목숨을 건졌던 일도 있었고, 폭우 속에서 학생을 집에 데려다 주다가 급류에 휩쓸릴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운 좋게 목숨을 건졌던 순간을 회상하며 그는 하늘이 감동해 도운 것이라고 믿습니다.

 

 

 

 

 

리구이린 선생님은 오지마을 교사 위치에서 벗어나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약을 살 단돈 8위안을 벌기 위해 병든 아내가 위험천만한 산길을 내려가 옥수수를 팔아야만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때도 있었지만, 리씨는 교사 월급의 열 두 배를 벌 수 있는 회계사 자리, 6000위안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업 파트너 기회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들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결코 떠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낭떠러지 학교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리구이린씨와 몇몇 주민들이 사비를 털어 수력발전기를 구입했지만 불안정한 전압 때문에 정전되기 일쑤입니다. 두 교사 부부는 오늘날에도 남포등을 켜고 아이들의 숙제를 첨삭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42세인 리구이린씨의 월급은 겨우 800여 위안입니다. 루젠펀씨는 아직도 기간제 교사 신분으로 230위안의 월급을 받습니다. 슬하의 두 아이들은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계부채는 10000위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가장 걱정하는 것은 늘어가는 빚이 아니라, 그들을 뒤이어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선생님을 찾는 일입니다. 두 선생님은 제자들 중에서 한 명이 그들의 뒤를 이을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전 우리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래요.” 하산하는 길, 이족 소녀 아가카라가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학교에 엘리베이터를 만들 거예요. 지금처럼 힘들게 학교에 갈 필요가 없도록요.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긴 하지만요.” “…….”

 

 

 

 

출처 http://user.qzone.qq.com/303169848/blog/1240487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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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신혼방 절대 금기사항






 

1.     자주 환기를 시킬 것

 

신혼방은 새 가구나 인테리어 자재(그 중 흑단 및 검은색은 금기사항임) 등에서 유발되는 냄새 및 새집증후군이 신속히 없어지도록 자주 환기를 시켜야 한다.

 

 

 

2.     신혼방의 벽과 가구, 창문은 가능한 분홍색을 피할 것

 

분홍색은 신경쇠약, 공황, 불안을 야기시키고 사람이 쉽게 화를 내도록 만드는 색깔이다. 분홍색이 신혼방의 메인 컬러로 사용되면 부부간에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3.     신혼방의 위치는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신혼방의 위치는 햇볕이 잘 드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 길하다. 집안에 드는 햇살이 너무 어두우면 신혼부부의 감정과 기분도 덩달아 어두워지기 쉽다.

 

 

4.     바닥 색깔은 너무 어둡지 않게

 

신혼방의 바닥 색깔은 너무 어둡지 않게 하라. 붉은 계열의 컬러도 사람의 성향을 거칠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카펫, 커튼, 침대커버 등이 모두 붉은색이면 딸을 낳게 된다는 속설도 있다.

 

 

5.     어두운 색조의 인테리어는 피할 것

 

다크 계열의 청색, 녹색, 붉은색, 회색 등은 사람의 기분을 어둡게 만든다.

 

 

6.     신혼방 침대가 화장실 문을 향하게 하지 말 것

 

화장실 및 욕실은 풍수지리학에서 나쁜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여겨진다. 침대가 화장실을 향해 있으면 가슴 통증 및 하복부에 나쁜 기가 쌓이는 원인이 된다.



 

7.     침대 머리맡에 결혼사진을 걸지 말 것

 

신혼방 침대 머리맡에는 웬만하면 결혼사진을 걸어두지 말라. 심리적인 중압감을 형성해 오히려 이혼을 더 쉽게 생각하게 된다.

 

 

8.     침대 머리맡 베게 양측에 가구 모서리가 오는 것을 피할 것

 

위치상 잠잘 때 시선이 향하는 곳이다. 화장대, 테이블 등 가구의 뾰족한 모서리가 바로 눈 앞에 보이면 편두통이 유발된다.

 

 

9.     신혼방 천장 벽지 색깔 중 빨간색과 진청색은 피할 것

 

 

10.   신혼방 천장 색깔은 너무 요란해선 안돼

 

천장에 지나치게 많거나 요란한 색상, 요상한 무늬 및 형상이 있으면 백병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11.   신혼방 침대 아래쪽 양측이 화장실 문과 마주하지 않도록 할 것

 

발의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12.   신혼방 침대 앞에 정면으로 tv를 두지 말 것

 

신경계통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온다.

 

 

13.   침대 머리맡에 오디오를 두는 것은 절대 금물

 

역시 신경계통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부부간에 말로 인한 오해가 빚어지기 쉽다.

 

 

14.   침대 앞 혹은 좌우에 큰 거울을 두지 말 것

 

부부 사이에 말다툼을 불러 일으킨다.

 

 

15.   되도록 사진, 그림은 걸지 않도록

 

굳이 그림을 걸어두려면 소박하거나 우아한 것을 택한다.

 



 



16.   침대 머리맡은 절대 방문을 향하지 말아야

 

이런 침대 배치는 사람이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하게 만들며, 두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17.   침대가 청룡방(동쪽)의 벽에 붙어있거나 가까울수록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18.   침대 위치는 대들보 아래는 피해서

 

, 천장이 황색일 경우는 무방하다.

 

 

19.   침대가 창가와 붙지 않도록

 

침대가 창가와 너무 가까우면 숙면을 방해한다.

 

 

20.   침대 머리맡이 화장실 문을 향하는 것은 피해야

 

신체가 항상 화장실과 가까이 있으면 건강을 해친다고 한다.

 

 

출처 http://yxk.cn.yahoo.com/articles/20090401/4co_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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