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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여는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흔히 증자라 부른다. 증자는 소년 시절 매우 가난해 자주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하루는 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집에 혼자 있었던 증자의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그 순간 갑자기 마음이 아파옴을 느낀 증자는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직감하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증자는 손님을 예로서 대하였다고 한다.

 









민손은 공자의 또 다른 제자로 문중에서 덕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생모를 일찍이 여읜 후, 아버지는 후처를 맞아 두 아들을 낳았다. 민손의 계모는 그를 학대하기 일쑤였다. 그는 겨울에도 친아들에게는 따뜻한 솜옷을 입히고, 민손에게는 갈대를 엮어 만든 옷을 주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선 민손이 추위에 떨다 그만 수레의 새끼줄을 놓치고 말았다. 크게 노한 아버지는 민손을 매질하였는데, 그 바람에 속에 입고 있던 갈대옷이 겉으로 드러났다. 그제서야 민손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집으로 달려가 계모를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민손은 어머니를 남겨두시면 저 한 사람만 추위에 떨면 그만이나, 어머니를 내쫓으시면 세 아들이 얼어죽습니다.”라고 간청했다. 감동한 아버지는 민손의 뜻을 따랐고, 계모도 그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동영은 동한사람으로 어려서 모친을 여읜 후, 전란을 피해 안륙 지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부친마저 돌아가시자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팔아 부유한 집의 노비가 되어 장례 비용을 마련했다. 동영은 길을 가다 어떤 여인을 만나 함께 얘기를 나누었는데, 두 사람 다 갈 곳 없이 떠도는 신세임을 알고 혼인하여 서로 의지하기로 한다. 여인은 한 달에 비단 300필을 짜 동영을 노비의 신분에서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여인이 갑자기 동영에게 말하길, 자신은 천제의 딸인데, 명을 받들고 동영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 하고는 하늘로 홀연히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동한 사람 정란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으나, 항상 자신을 길러준 부모의 은덕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란은 나무로 부모의 모습을 조각하여 진짜 부모님을 대하듯 모든 일을 이야기했고, 매일 세끼 식사를 올렸으며, 밖에 나가기 전 외출한다고 알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반드시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자, 정란의 아내는 나무조각에 효성을 다하는 남편을 속으로 비웃고 몰래 조각상의 손가락을 잘라냈다. 그러자 뜻밖에 조각상의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이 아닌가! 집에 돌아온 후 조각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정란은 모든 사실을 알아낸 후 아내를 내쫓았다.







 

 

육적은 삼국시대 오나라 출신의 과학자이다. 그가 6살 때 아버지를 따라 구강의 원술을 만나러 갔다. 원술은 귤을 내어 손님을 대접하였는데, 이를 본 육적은 귤 두 개를 품 속에 숨겼다. 그런데 육적이 떠나려 할 때, 그만 귤이 품 속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를 본 원술은 비웃으며 자네는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다 가면서 어찌 주인집의 귤을 탐내 가져가는가?” 육적이 대답하길 어머니께서 귤을 좋아하셔서 몇 개 가져가 어머니께 드리려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원술은 어린 육적이 벌써 어머니를 공경할 줄 아는 것을 보고 기특하게 여겼다. 육적은 성인이 된 후 천문에 통달했으며, 박식함으로 이름을 떨쳤다.

 






 

진나라 때 인물인 곽거는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고 아내까지 아이를 낳자 그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이 아이를 키우자면 분명 어머니를 제대로 공양하지 못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에게 아이는 또 낳으면 되나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다시 살아 돌아오시게 할 수 없소. 차라리 아이를 버리고 절약한 양식으로 어머니를 공양합시다라고 설득하였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땅 속에 파묻기로 결정한 부부는 땅을 파다가 뜻 밖에 땅 속에서 황금을 발견했다. 부부는 황금을 얻은 후 돌아와 어머니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아이 역시 잘 키웠다고 한다.

 




동한 때 인물인 강시는 방씨를 처로 맞아 살고 있었다. 두 부부는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특히 방씨는 시어머니를 위해 매일 멀리 떨어진 장강에 가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장강 물을 떠왔다. 또한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생선 요리를 자주 대접하곤 했다.


 

한 번은 바람이 너무 심해 방씨가 물을 늦게 떠왔는데, 강시는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데 소홀하다고 생각해 그를 내쫓았다. 그러나 방씨는 박대를 당했음에도 이웃집에 머물며 베를 짜 번 돈을 집으로 보내 시부모를 공양하는 데 힘썼다. 방씨가 쫓겨났음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강시에게 당장 며느리를 되돌아오게 했다. 방씨가 집으로 돌아온 그날, 집 마당에 갑자기 샘물이 솟아났는데 물 맛이 장강 물과 똑같았으며, 매일 물고기 두 마리가 잡혔다. 그 이후로 방씨는 시어머니를 위해 매일 먼 길을 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진나라 사람 오맹은 8살 때 이미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았다. 그의 집은 너무 가난하여 모기장을 살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오맹의 아버지는 밤마다 모기에 시달려 잠을 잘 수 없었다. 오맹은 아버지가 숙면을 취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여름이면 밤마다 아버지의 침대 곁에 앉아 모기를 쫓았다고 한다.

 



 


 

남제사람 유검루는 현령으로 부임한 후 열흘이 채 못되어 이유 없이 간담이 서늘해지고 땀이 났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 그는 주저 없이 관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보니 과연 아버지가 중병이 들어 누워있었다. 의사가 환자의 대변 맛을 봐야만 병세의 길흉을 알 수 있소. 쓴 맛이 난다면 병세가 호전될 것이오라고 일러주자, 유검루는 망설이지 않고 아버지의 변을 맛보았다. 그러나 뜻밖에 단 맛이 남을 알게 되자, 그는 마음 속 깊이 슬퍼했으며, 밤새 아버지 대신 자신이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 며칠 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유검루는 아버지를 묻고 무덤 곁에서 3년을 지켰다.

 

 

 

 

출처 http://ask.koubei.com/question/1308082004948_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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