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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기방을 ‘청루(靑樓)’라고 부른다. 청루란 푸른 빛의 옻으로 칠한 건물을 뜻하는 말로, 원래부터 기방을 청루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청루는 본래 화려한 가옥이나 세도가의 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가옥과 호화스러운 생활 사이의 연관성으로 인해 청루가 기방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대 중국의 청루는 주로 과거시험장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청루의 주요 타겟이 과거 응시를 준비하는 선비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특권계급인 선비들은 돈과 시를 통행증 삼아 기방을 드나드는 기생들의 주 고객이었다. 기방 주인들로서는 돈 많은 선비들을 당연히 모셔야 했고, 기생들 역시 대다수가 시화를 즐기는 계층이었기 때문에 젊고 똑똑한 선비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기생은 준수한 남자를 좋아하고, 기생어미는 돈을 좋아하는 법이라 하지 않나. 
중국의 과거시험장은 공원(貢院)이라 일컫는다. 공원 중에서는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역사도 깊은 강남공원을 최고로 쳤다. 강남공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청나라 동치제 때까지 30만㎡ 부지에 고시생 기숙사방이 3만 644개에 이르러 베이징의 자금성 세 개를 합쳐놓은 정도의 규모로 팽창해 명, 청 두 시대에 거쳐 명실상부한 국가 최대의 공원으로 팽창했다. 중국 역사상의 과거 시험에서 배출된 800여 명의 장원급제자 중 절반 이상이 강남공원 출신이었다. 당백호, 이홍장 등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도 모두 강남공원 출신이다.


이러한 강남공원의 명성 탓에 과거응시생들은 너도나도 이곳으로 몰렸다. 진사과가 열릴 때마다 전국에서 서생들이 구름 떼처럼 강남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이러다 보니 공원 주변에 자연히 장사꾼들도 모여들어 청루와 요릿집, 찻집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 유명한 기방이 진회청루였다고 한다. 강남공원과 진회청루를 끼고 흐르는 진회강까지도 유흥문화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오늘날 고시촌이나 학원가 근처일수록 먹고 마실 수 있는 유흥문화가 잘 발달된 것과 비슷하다.
당나라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게 되면 자신이 사랑하는 기녀에게 멋들어진 문장으로 사랑을 읊은 시를 써 주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과거에 불합격한 이들은 그들대로 청루에서 낙담한 마음을 술과 여자로 달래었다. 이처럼 청루와 기녀는 과거를 응시하는 선비들에게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청루는 고시생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청대의 과거 시험은 매우 엄격한 조건 하에서 치러졌다. 고시생들은 시험장에 입장하기 전에 옷과 머리카락 속까지 샅샅이 몸수색을 당했다. 규정되지 않은 음식이나 문구류를 몰래 휴대하면, 위반자는 몰매를 맞고 한 달 동안 고사장 앞에서 조리돌림을 당했으며, 시험 응시 자격이 영원히 박탈되었다. 공원 입실 후에는 입구가 폐쇄되고, 과거가 치러지는 3일 간 아무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3일 동안 선비들은 닭장 같은 두 평 남짓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시험을 봐야 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거를 치르고 나온 후 바로 눈 앞에 기방이 보인다면 발길이 향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애인이나 소울 메이트를 구할 목적으로 청루에 드나드는 선비들도 있었다. 이들에겐 성적 만족은 오히려 부차적인 일이었다. 과거 응시생이 과거를 위해 한 번 집을 나오게 되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외지에서 홀로 보내게 된다. 외로운 외지 생활에 맞물려 그들을 감시하는 부모도 없기 때문에, 선비들은 체통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놓고 청루에 발걸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청루는 기녀와 놀고 즐기는 공간인 동시에 선비들이 친구를 사귀고 시와 문을 논하는 살롱이었다. 청루에서는 가문과 빈부의 차를 막론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문학을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 출처 http://liujunblog.qzone.qq.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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