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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녹수, 노래 한 곡으로 황비가 된 기녀

2009.05.17 06:56 | 중국의 역사 | 양꼬치

http://kr.blog.yahoo.com/jhkey03/389 주소복사

 

 

 

 

 

두추랑(杜秋娘)은 당나라 때의 명기이자 여류시인이다. 지금의 장쑤성 출신인 두추랑은 신분은 비천했지만, 아름다움과 지혜로는 강남 일대를 풍미했다고 한다. 또한 노래와 춤, 시와 서, 화에도 능해 재주 많은 강남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진해 절도사였던 이기는 두추랑의 소문을 듣고 천금을 주어 15세인 그를 관부의 가무기녀로 사왔다. 다른 기녀들은 모두 춤과 노래로 이기를 즐겁게 해주려고 했으나, 두추랑만은 춤을 추지 않고 대신 금루의라는 시 한 수를 직접 지어 이기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枝


 

그대에게 권하오니 비단옷 아끼지 마세요

또 권하오니 젊은 시절 아껴 잘 누리세요

꽃 피어 꺾을 만하면 바로 꺾어야 해요

꽃 지고 나서 헛되이 빈 가지만 꺾지 마세요

 

 

 

이미 반백의 나이가 넘은 이기는 자신이 청춘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삶을 즐기고 순간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두추랑이 기녀들 중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그것을 노래로 읊자, 마음이 움직인 이기는 그를 자신의 시첩으로 삼았다.

 

 

 

이 때, 당 덕종이 세상을 떠나고 순종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병약한 순종은 8개월만에 아들 이순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는데 그가 바로 헌종이다. 젊고 야심만만했던 헌종은 즉위하자마자 번진의 지방 세력이 할거하는 정세를 안정시키기로 마음먹고 지방 절도사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헌종의 조치에 불만을 품은 이기는 조정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사병으로 황제에게 모반을 일으켰다. 그러나 조정의 대군은 이기의 군사를 일거에 제압하였고, 이기는 전쟁 중 죽임을 당하고 만다.

 


 

 

두추랑은 역신의 가속이라는 이유로 관비가 되어 후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재주가 빼어났던 두추랑은 황제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잡아 다시 한 번 금루의를 불렀다. 한창 젊은 나이었던 헌종은 두추랑의 노래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노래를 부른 이가 관비임에도 남다른 기품과 아름다움을 지닌 것을 발견한 헌종은 두추랑이 직접 노래를 지은 것을 알고 더욱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추랑은 헌종의 비에 봉해져 추비가 되었다.

 

 

두추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헌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 또한 총명했던 그는 헌종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라가 안정되자 재상 이길보가 헌종에게 천하의 미녀들을 뽑아 후궁으로 들이라고 권했으나, 헌종은 채 서른이 안 된 나이었음에도 내겐 추비 한 사람으로 족하오라고 말하며 거절할 정도였다.

 

 

 

현명했던 두추랑은 헌종과 국가대사를 논하고 황제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권위적이었던 헌종은 대신들의 간언을 듣고 지방의 번진들에 대해 강압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후일 두추랑의 설득으로 회유책으로 전환하여 지방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고 태평성세를 구가할 수 있었다. 두추랑은 헌종의 마음을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열심히 정사를 돌보아 국가가 평안하도록 만든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헌종은 43세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다. 혹자는 이를 두고 황제가 불로장생을 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금단을 오랫동안 복용하다가 중독되어 죽었다고 하고, 혹자는 내상시 진홍지가 음모를 꾸며 황제를 모살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당시 득세했던 환관들의 후환을 두려워해 아무도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지 않았다. 결국 24세의 태자 이항이 환관 마담 등의 권세를 등에 업고 목종으로 즉위했다.

 

 

 

이 때 입궁한 지 12년을 맞은 두추랑은 30대 초반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황궁에서 매우 지혜롭고 명망있는 황비였으며, 조정 대신들도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목종은 국가대사에 있어서도 자주 두추랑의 의견을 묻곤 했다.

 

 

 

 

나중에 두추랑은 목종의 아들 이주의 보모가 되어 왕자의 자질을 가르쳤다. 자식이 없었던 두추랑은 이주를 자기 자식처럼 길렀다.

 

 


 

 

그러나 목종은 호색한 인물이었다. 그는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과 여자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다. 결국 목종 역시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고, 15세의 경종이 즉위했다. 놀기 좋아했던 어린 황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놀기에 바빴고 성정도 거칠었을 뿐, 국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즉위 2년 후, 밤여우 사냥에서 돌아와 환관 이극명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던 목종은 침실의 불을 끄자마자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목종의 아우 문종이 새 황제가 되었지만 너무 나이가 어린 터라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조정의 모든 실권이 환관들에게 넘어갔다.

 

 

 

당의 황제가 하나 둘씩 쓰러져 가고 점점 환관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광경을 직접 목도한 두추랑은 심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키운 왕자 이주는 군왕의 자질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 두추랑은 재상 송신이와 모의해 문종과 환관 세력을 쫓아내고 이주를 황제로 추대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이미 환관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그들은 다행히 환관들에게 아무런 약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이주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송신이는 강주 사마로 좌천되었다. 두추랑도 평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마감했다.

 

 

 

지난 시절 여자들의 운명은 종종 남들의 손아귀에 있기 마련이었던 반면, 두추랑은 자신의 지혜와 재능으로 용감하게 운명을 개척해 지금까지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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