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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륙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대륙의 화장실’. 사진 속 화장실의 불결함과 과도한 ‘오픈 마인드적 구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 하면 미개하고 비상식적인 화장실을 먼저 떠올린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과거 중국 화장실은 얼마나 더 심각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남송 시대로 거슬러올라가보면 오히려 현재 대륙의 화장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현대적인 구조와 위생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남송대 관원들의 업무 환경은 상당히 높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는데, 관아에 욕실 및 화장실이 따로 구비되어 있었고, 내부 설비 및 사용 조건도 꽤 높은 수준이었다. 관리 역시 매우 엄격해 오늘날의 화장실 관리 수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역사 기록에는 ‘내부에 욕실 및 수건, 대야를 구비하고 뒤쪽은 변소로 쓴다. 매일 물청소를 해 청결을 유지하고, 화장지는 잘 정돈해 놓으며, 대야에 찌꺼기가 남아있으면 안 되며, 바닥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안 된다’고 적어둘 정도로 위생 관리에 철저했다.
당시 관원들은 볼일 후 반드시 욕실에 마련된 대야에서 손을 씻는 것까지 생활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절차는 지금의 화장실 이용 절차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중국에서 용변 후 손을 씻는 습관은 훨씬 오래 전인 진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화장지의 정리 정돈에 대한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에 이미 화장지 사용이 보편화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장실 관리 규정도 명확해 ‘의란사’의 잡공이 수시로 화장실 위생을 유지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흔히 한 나라의 물질문명 수준을 알고 싶으면 주방을 들여다보고, 정신문명 수준을 알고 싶으면 화장실을 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중국의 화장실 시설과 관리 수준이 지금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당시의 생활 및 문명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중국의 일부 화장실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지금보다 천년 전 중국의 화장실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남송 관아에 있었던 욕실과 화장실은 당시 보편적 사회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남송은 임안(지금의 항저우)에 도읍을 두었던 나라로, 이 지역인 강남 일대는 날씨가 더우면서 습하고, 수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이 때문에 남송 사람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목욕을 즐겼고, 수도인 임안 성내에는 영리 목적으로 만들어진 목욕탕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 목욕하는 문화는 더욱 보편적이고 흔했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는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 목욕을 했다고 한다. 송대의 대표적 문학 장르인 송사에도 여름 저녁의 목욕 후의 상쾌한 기분을 읊은 작품이 많다.
송나라 탐구해보기: 칼보다 강한 문화의 힘
그렇다면 이처럼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루었던 송은 어떤 시대였을까? 역사에서 송나라가 언급될 때는 항상 ‘유약’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실제로 송나라가 존속되었던 300년은 요, 서하, 금 등 이민족에게 영토의 많은 부분을 점령당했고, 결국은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끝난다. 송나라는 군사적으로 강성하지 못해 존속 내내 외부의 침략에 시달렸지만, 이 사실만으로 송나라의 면모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당시의 요나라, 하나라, 금나라 등 송나라 위에 군사적으로 군림했던 이민족 국가들의 지배적 문화는 아니러니컬하게도 한족의 유가문화에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송 멸망 후 이 세 나라의 정신적, 문화적 영역은 모두 한족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송: 중국 역사상 가장 현대적이었던 왕조
또한 송대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진일보했던 위대한 시대 중 하나이다. 송대는 경제, 문화, 과학, 농업뿐 아니라 사상, 예술, 상업, 공업, 수공업 등 다방면에서 획기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룬 시기이다. 송대에 이룬 중국의 발전은 이전의 수당대, 이후의 명청대를 뛰어넘는다.
또한 송대는 중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상공업을 탄압하지 않고 대외무역도 활발히 장려한 시기이다. 당시 송나라의 GDP는 전세계의 50% 이상을 점유했고, 백성들의 생활도 타 왕조의 시대보다 풍족했다고 한다. 상공업은 이미 농업을 능가하는 최고의 세수원이었다. 송대의 도시 인구는 송나라 총 인구의 20%에 달할 정도로 도시가 발달해있었고, 송대에 꽃피운 문학 형식인 송사의 수많은 등장인물들 역시 도시거주자들이었다.
또한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및 상업,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 역사상 송대가 최고이다. 일본의 한 역사가는 송나라가 계속 지속되었다면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송대는 오히려 명이나 청보다도 현대와 더 가까운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송나라는 이전의 한, 당, 혹은 그 이후의 원, 명, 청만큼 강력한 군사력과 넓은 영토를 가지진 못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군사력이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군사력은 국가의 한 역량임이 틀림없지만, 그 점이 반드시 국가와 국민에게 득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군사적으로 유약했지만 송나라가 꽃피웠던 찬란한 문화적 성과와 경제 발전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출처 http://blog.qq.com/qzone/57296525/123263067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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