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궈룽의 마지막 유작으로 영화 <이도공간>이 유명하지만, 가수활동도 병행하고 있던 장궈룽의 마지막 앨범 <일체수풍>(2003) 역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작이다.
이 앨범이 출시되던 때, 장궈룽의 절친한 친구 혹은 연인으로 알려진 탕허더(당학덕)와 10년 이상 장궈룽과 음악작업을 해온 디렉터 량룽쥔(Alvin Leong) 간에 앨범 판권 분쟁이 일어났고, 이후 홍콩법원은 앨범 판권이 탕허더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장궈룽은 생전에 량룽쥔과 공동으로 ‘셩허’ 음반제작사를 운영했는데, 이 회사가 <일체수풍>의 신곡 7곡을 포함한 장궈룽 음악의 판권을 소유해왔다. 그러나 <일체수풍>의 판권은 타 음반사인 ‘환치우’로 넘어가고, ‘환치우’가 발매한 <일체수풍>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하자, 장궈룽의 누나 장뤼핑과 탕허더는 법원에 량룽쥔 단독에 의한 ‘환치우’로의 음반사 상품 및 오리지널 음원 양도 금지를 요청한다.
<일체수풍>은 장궈룽 사망 후 100일 째인 2003년 7월 8일 발매되어 홍콩 내에서만 20만 장이나 판매되어 당시 남자가수 최고의 음반판매량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앨범에 수록되었던 일곱 곡은 모두 장궈룽이 직접 작곡한 곡이다.
장궈룽 앨범 판권을 넘겨받은 환치우 측은 앨범 마케팅과 판매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상황. 처음에 소장용 한정판을 발매 후, 다시 장궈룽의 미공개 뮤직비디오를 담은 디럭스판을 추가로 발매했다. 그들은 여기에 다시 보급판을 저가로 판매해 최대 5-6만 장의 추가 판매고를 올릴 계획이었다.
당시 앨범 판매액으로부터 계산해보면, 앨범 판권이 넘어가지 않았다면 탕허더는 약 1000만 위안의 판권료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던 것.
‘환치우’사는 장궈룽과 계약을 맺었던 음반사로, 장궈룽은 ‘셩허’사에서 앨범을 제작하고, ‘환치우’ 측은 앨범 발매만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작의 판권은 앨범 제작사인 ‘셩허’사에 속하고, 앨범 발매권은 발매사인 ‘환치우’사에 속해 있던 것이 문제의 빌미가 되어 ‘환치우’에서 장궈룽의 앨범을 발매하고 수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탕허더가 량룽쥔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탕허더는 어떤 인물이었길래 장궈룽의 재산에 대해 소유권을 행사하려 했던 걸까?
탕허더는 은행원 출신으로 16년 간 장궈룽의 후견인으로서 재산관리를 도왔으며, 장궈룽이 무명 시절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인물이다. 그는 장궈룽의 재산을 부동산에 투자해 7000만 위안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지속된 동거 관계와 홍콩 파파라치들에게 찍힌 사진, 유서의 내용 등으로 미루어 홍콩 언론은 그를 장궈룽의 오랜 애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장궈룽이 남겼다는 유서(미공개)에는 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도록 적고 있어, 장궈룽 사후 모든 재산은 탕허더에게 귀속되었다. 따라서 <일체수풍>의 오리지널 음원 및 미발표 신곡 한 곡과 그 판권 등은 모두 탕허더가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법원 역시 탕허더의 손을 들어주어 장궈룽 유작 앨범의 판권은 탕허더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장궈룽의 타살을 주장하는 일부 팬들은 미공개 유서의 진위, 그리고 장궈룽의 죽음과 그가 받은 막대한 유산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부산 광안리에 쥐들이 때로 출현해서 난리가 나고 있구만! 이거 무지하게 위험한 증상 중의 하나인데 말이지. 암튼 http://kr.youtube.com/watch?v=KKMTSDzU1Z4 여기에 접속해보면 천국,라퓨타,예루살렘이 스촨성대지진 30분 전에 출현한 모습이 비디오로 담겨 있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