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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란 낳기도 어렵지만 키우기는 더 어렵다고 하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생활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한 시도 마음을 놓을 틈이 사라지게 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들고 마음도 많이 써야 하는 때가 두세 살 때까지인데요, 이런 아기를 두 팔이 불구이고 다리까지 기형이라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엄마가 건강하게 키워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요? 여기 한 중국 장애인 엄마의 모정과 감동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주인공 마치디 씨(28)는 중국 산둥성의 가난한 시골마을 출신. 그가 두 살 때부터 팔이 심각하게 오그라들기 시작해 다른 아기들의 절반 길이까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관절도 굳어져 정상적으로 팔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던 부모는 선천성 소아마비증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팔의 상반이 완전히 불구가 된 것이었죠.
두 팔을 전혀 쓸 수 없는 마치디 씨의 성장 과정은 모든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혼자서는 물 한 잔도 마실 수 없었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며 수없이 울었던 그는 불현듯 자신이 부모의 짐이 될 수는 없다고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두 팔은 없지만 그래도 두 발이 있으니까!’
그 때부터 마치디 씨는 두 발을 사용해 생활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길고 고통스런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마침내 양 발로 옷 입기며 머리 감기 등 기본적인 생활을 혼자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8살 때 또 다시 불행을 겪게 됩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인 다리마저 기형으로 변해버린 것. 결국 마치디는 초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배움을 포기합니다.
당시 그는 ‘팔도 쓸 수 없는데 다리 마저 쓰지 못하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형으로 변한 발로 힘겹게 옷 입기, 밥 먹기, 글씨 쓰기 등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걷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그는 나무 의자에 등과 팔을 의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 발돋움은 바로 삶을 향한 그의 강한 의지의 힘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마치디 씨가 가장 바란 것은 남들처럼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미는 것. 그러나 이조차도 장애인인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2004년 중매로 청각장애인 마오지쉰 씨와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2005년 9월 9일, 마치디 씨는 건강한 사내 아이를 순산했습니다. 그는 아이만큼은 실컷 공부를 하고 대학에 다니게 하고 싶다는 염원으로 아기에게 마오원탄(毛文壇)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것은 첫날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남편의 도움 없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치디 씨를 대신해서 아기를 돌보던 그의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또한 집안의 수입은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돈 몇 푼과 남편이 받는 월급 800위안이 전부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이로 인해 생계까지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렀죠.
“제가 애초에 어려웠음에도 아기를 가진 것은 식구들에게 부담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결코 나 때문에 그들을 힘들게 할 순 없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른 엄마들이 하는 일도 똑같이 해내고 말겠다고.’
그는 아기를 안기 위해서 만도 무수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기가 혹여 다칠세라 포대기로 아기를 감싸고 그것을 자신의 목에 묶은 후에야 발로 아기를 들어올리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디 씨는 자신의 양 팔이 불구인 것이 이 때 가장 한스러웠다고 합니다. 다른 엄마들처럼 두 팔로 아기를 꼭 안아 자신의 체온과 심장 소리를 느끼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름 후, 그는 가까스로 아기를 발로 안을 수 있게 됐지만 이는 만리장성에 첫 발을 내디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아기를 다루는 지극히 섬세한 일을 발로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마치디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발로 힘겹게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닦아주곤 했는데, 너무 세게 닦아 아기 엉덩이가 빨갛게 될 때마다 괴로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아기 엉덩이를 살살 닦으려 연습하는 통에 발에 피멍울이 사라질 날이 없었습니다.
“아기 백일 사진을 찍으러 가던 날도 기억나요. 그 날은 남편도 야근이어서 집에 저 혼자 뿐이었지요. 물론 나중에 남편과 같이 가서 찍을 수도 있었지만 그 땐 아기 백일을 기념하는 특별한 사진인데 다른 날에 가면 의미가 없다 생각했죠. 집에서 한 1킬로미터 거리에 사진관이 있어서 아기를 데리고 거기 가서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보통 사람에겐 식은 죽 먹기여도 마치디 씨에게 이 일은 큰 고개를 넘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아기를 등에 업고, 자신이 걸을 때 필요한 나무의자에 등과 팔을 의지해 한 걸음씩 힘겹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10월의 서늘한 한가을이었지만 걷는 동안 그의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발에 피가 맺혔습니다. 마침내 사진관에 도착했을 때 사진사가 놀란 것도 당연했습니다. 팔다리가 불구인, 어른 키의 반도 되지 않는 여성이 아기까지 업고 그 먼 길을 걸어오느라 발이 피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죠. 감동한 그 사진사는 사진도 무료로 찍어주고 나중에 차로 모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아기가 아팠을 때도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급하게 아기를 응급실로 데려가야 했지만 남편은 직장에 있었던 터라, 기다릴 수 없었던 그는 직접 아기를 업고 문을 나섰습니다. 너무 급해서 걷는 데 필요한 의자를 챙기는 것도 잊은 그는 하는 수 없이 기어서 동구 밖까지 나갔다고 합니다. 인적이 드문 시골마을에서 도와주는 이도 없이 병원까지 절반 가량을 기어간 그는 한 시간 여 만에 황급히 달려온 남편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다리가 피투성이가 된 마치디 씨를 본 남편은 그 자리에서 모자를 얼싸안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마치디 씨에게 평소에 가장 어려웠던 일은 바로 분유 타기. 발의 청결을 철저히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물 끓이기, 젖병에 끓인 물 담기, 분유를 알맞게 넣기 등 발로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물을 쏟아 화상을 입기도 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분유를 타 아기에게 먹이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마치디 씨는 아이의 교육에도 열성적인 여느 학부모였습니다. 그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초등학교 2학년으로 그쳤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현재는 독학으로 중학교 과정까지 마친 상태이고요. 아기는 이제 세 살이지만 당시 외우기나 셈도 곧잘 한다고 합니다.
봄 매화의 그윽한 향기는 겨우내 견딘 혹독한 추위로부터 나오는 법이죠. 명랑한 세 살배기 원탄은 엄마에게 곧잘 찻잔을 갖다 주거나 땀을 닦아주기도 한답니다. ‘엄마 힘드니까 쉬어요’라면서. 자신과의 싸움에 지지 않고 예쁜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 마치디 씨의 기형 발은 어느 누구의 발보다도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http://newspic.cn.yahoo.com/science/article/index.html?type=gallery_show&p=64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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