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사회부 윤지나 기자]
30개월 이상의 미국 쇠고기 수출중단을 요청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밝힌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째인 3일 저녁에는 2만(경찰추산 1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 속에 새벽까지 거리시위가 이어졌지만 경찰과의 별다른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벌어진 과잉진압 논란을 의식한 듯, 경찰은 시위대와의 직접 접촉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 '100년 같은 100일' … "정부대책 미흡, 그렇게 우리 마음을 모르나"
이날 저녁 7시부터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과 대학생 등 2만 여명은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8시 40분쯤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바로 거리시위를 시작했다.
최근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불만 등으로, 시민들은 거리시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서대문 경찰청까지 행진해 '어청수 퇴진',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시민들은 3일 오전 발표된 미국을 향한 정부의 요청을 '미봉책'이라 지적하며 어느 때보다 재협상의 목소리를 높였다.
'명박아, 잠 좀 자자'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장모(21)씨는 "정부 발표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시민들이 잠도 못자고 시위에 참가하면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정부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성모(46)씨 역시 "구체적인 협상 방안도 제시 못하면서 재협상 요청을 발표한 정부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며 "재협상이 될 때까지 거리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째이기도 한 3일, 시위대에서는 '100일이 100년 같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독재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민심을 읽지 못한 채 진압에만 매달리는 정부에 대해 시민들은 이처럼 냉소와 불만을 나타냈다.
회사원 이모(38)씨는 "재보선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 발표가 이루어졌다"며 "몇 만명의 시민들이 이렇게 매일 촛불을 드는데 정부가 아직도 국민 마음을 모르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뿐 아니라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원 50여 명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 "노래해라, 차빼라, 얍삽해" 시위대에게 '놀림감'된 경찰
시청 앞 광장에서 출발해 서대문 경찰청을 지난 시위대는 10시쯤 다시 광화문 사거리로 모였다. 시위대는 바리케이트를 치고 도로를 물샐 틈 없이 막아선 경찰을 향해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시위대에게 '존중해야 할 공권력'이라기 보다는 '놀림감'이 된 모습이었다.
시위대는 '불법 주차'된 경찰 차량에 직접 만든 노란색 불법 주차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며 '차빼라, 차빼라'를 외쳤다.
차량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시민들은 "거기 화장실은 있냐, 나와서 놀자"고 하는가하면, 어떤 여고생은 창문 너머의 경찰을 향해 "나랑 사귀어주면 안되겠냐, 나름 진지하다"며 창문을 두드렸다.
10시 30분쯤부터 해산 안내방송이 나오자 시민들은 '노래해, 노래해'라며 받아쳤고, 차량 위에 설치된 방호물 뒤에서 채증작업을 벌이는 경찰에게는 '얍삽해, 얍삽해'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5, 6학년인 아들, 딸과 함께 나왔다는 주부 임모(35)씨는 "원래 경찰은 보통 사람들에게 여려운 사람들이다. 게다가 지난 주말에는 시민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며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경찰을 놀림감으로 삼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며 웃었다.
대학원생 윤모(27)씨는 "미국과의 협상에선 무능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는 폭력적인 정부와 경찰을 공권력으로써 존중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경찰 스스로 놀림감이 되길 자처했다"고 지적했다.
◈ '아예 마주치지 말자'…극도로 신중해진 경찰
경찰은 이날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150개 중대 1300 여명의 인원을 배치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세종로 사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동안, 경찰들의 모습을 직접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최근 빚어진 과잉진압 논란을 의식한 듯, 경찰력이 모두 전경 차량 뒤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과 시민들간 직접적인 접촉이 아예 차단돼 우려했던 물리적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회사원 송모(27)씨는 "편도 하나를 완전히 점거해 거리시위를 벌이는 동안, 교통경찰 몇 명만 보았을 뿐 진압 경찰들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진작 이렇게 하면 시민들이 다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수백명을 연행하고 경찰에 대한 저항이 극심해지고 나서야 이렇게 나오는 게 어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장 물러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등을 외치며 경찰과 지루한 대치상황을 벌이던 시위대는 밤 11시 30분이 넘으면서 대부분이 귀가했다.
500여 명의 시민들이 남아 세종로 사거리에 남아 시위를 계속 벌였지만 새벽 2시 30분쯤 다음 촛불문화제를 기약하며 자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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