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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수 있겠느냐 |
| 2. |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
| 3. | 그것이 어찌 네게 연속 간구하겠느냐 유순한 말로 네게 이야기하겠느냐 |
| 4. | 어찌 너와 계약하고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 |
| 5. | 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것 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네 소녀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 두겠느냐 |
| 6. | 어찌 어부의 떼가 그것으로 상품을 삼아 상고들 가운데 나눌 수 있겠느냐 |
| 7. | 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
| 8. | 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 보라 싸울 일이 생각나서 다시는 아니하리라 |
| 9. |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 |
| 10. |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든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 |
| 11. |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
| 12. | 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
| 13. |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 |
| 14. | 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 |
| 15. | 견고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라 서로 연함이 봉한 것 같구나 |
| 16. | 이것 저것이 한데 붙었으니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겠고 |
| 17. | 서로 연하여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
| 18. |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가 발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같으며 |
| 19. |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뛰어나며 |
| 20. | 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의 타는 것 같구나 |
| 21. | 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 |
| 22. | 힘이 그 목에 뭉키었고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 |
| 23. |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 그 몸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
| 24. | 그 마음이 돌 같이 단단하니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랫짝 같구나 |
| 25. |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경겁하여 창황하며 |
| 26. | 칼로 칠지라도 쓸데없고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 |
| 27. | 그것이 철을 초개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
| 28. | 살이라도 그것으로 도망하게 못하겠고 물매돌도 그것에게는 겨같이 여기우는구나 |
| 29. | 몽둥이도 검불 같이 보고 창을 던짐을 우습게 여기며 |
| 30. | 그 배 아래는 날카로운 와륵 같으니 진흙 위에 타작 기계 같이 자취를 내는구나 |
| 31. |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 |
| 32. | 자기 뒤에 광채나는 길을 내니 사람의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 같구나 |
| 33. | 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
| 34. |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 |
1.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수 있겠느냐 낙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 '낚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카'(* )는 '부착하다', '찌르다'라는 기본 어근에서 유해한 말로 고기를 잡는 낚싯바늘이나 갈고리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악어'를 지칭하는 '리브야탄'(* )은 신화적 요소인 '하늘의 용'(3:8), '바다의 뱀'(사 27:1), '고래의 일종'(시 104:26). '거대하게 생긴 괴물들의 총칭'(Delitsch)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악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Lange). 히브리어에는 악어에 해당하는 적절한 말이 없기 때문에, 나일 강이나 팔레스틴 강가에 있는 평범한 악어 그 이상의 의미를 배제할 수는 없다.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 고대인들은 악어에게 혀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Herodotus). 사실 입바닥에 작게 놓여 있어서 내밀 수 없을 뿐이다. 여기서 끈으로 혀를 맨다는 것은 악어를 잡는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행위가 불가능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표현되었다. 2.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 "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르몬'(* )은 원래 '갈대', '골풀' 등을 의미하나(사 9:14). 여기서는 '골풀로 만든 천이나 밧줄' 혹은 '골풀을 꼰 가닥'으로서(NIV, cord) 미끼를 달거나 잡은 고기를 묶기 위해 사용된 끈을 뜻한다.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 즉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서 다루는 것과 같이, 송곳과 같이 뾰족한 갈고리로 악어의 아가미를 찌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악어를 붙잡는 것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지만 구문상 보다 진전되고 그만큼 강조된 서술이다. 한편, 갈고리로 꿴다는 것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왕하 19:28; 사 37:29; 겔 29:4; 암 4:2). 3. 그것이 어찌 네게 연속 간구하겠느냐 유순한 말로 네게 이야기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네게 연속 간구하겠느냐 - '악어가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너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하여 골풀 밧줄을 풀어달가고 간절히 빌겠느냐?'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절에는 설령 악어가 어떻게 해서 잡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힘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간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복종하지 않고 엄창난 힘으로 잡은 자의 손에서 빠져 나갈려고 할 것이다. 4. 어찌 너와 계약하고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 어찌 너와 계약하고 - 본절에 언급된 '계약'(* , 베리트)은 승리자와 정복당한 자 사이가 군주와 신하 사이로 설정되는 '종주권 계약'을 말한다(출 21:6; 신 15:17; 삼상 27:12). 특별히 이러한 계약에는 승리자가 정복당한 자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패배자는 평생을 종으로 살 수밖에 없다.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 - 본절은 만일 욥이 악어를 자신의 힘으로 사로잡는다면 악어는 욥의 영원한 노예가 될 것임을 설의적(設疑的)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욥이 악어를 사로잡는 것은 힘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는 구절은 '길들인 짐승의 상태'로 해석하기도 하지만(Lange, Delitzsch, 39:9). 본절의 명백한 요지는 악어의 생명을 안간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것 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네 소녀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 두겠느냐 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것 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 여기서 '새'(* , 치포르)는 단순히 '참새'를 가리키며 고대 근동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참새나 비둘기를 노리개감으로 가지고 놀기도 하였다. 애굽인들은 개 이외에도 염소와 원숭이도 애완용으로 키웠다고 한다(Rawlinson). 그런데 본절은 '욥이 악어를 잡아서 애완 동물처럼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점을 강하게 설의적 질문하고 있다. 네 소녀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 두겠느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라'(* )는 '처녀', '젊은 아가씨'라는 뜻으로, 욥의 어린 딸들이 아니라, 그를 수종드는 '여종들'을 가리킨다(Lange, Rawlinson). 6. 어찌 어부의 떼가 그것으로 상품을 삼아 상고들 가운데 나눌 수 있겠느냐 어찌 어부의 떼가 그것으로 상품을 삼아 - '어부의 떼'에 해당하는 '하바림'(* )은 '결합하다', '동맹하다', '단결하다'란 용어에서 유래한 말로 '짝'이나 '동무'등을 의미한다. 특별히 여기서는 작업을 나타내는 명사 형태로 쓰여 길드(guild) 같은 조직의 '조합원들'(Lange, Rawlinson, Pope). 즉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자들로서 매매하는 자들을 의미한다(눅 5:7,10). 그리고 '상품을 삼아'에 해당하는 '카라'(* )는 '팔다', '사다', '(무엇을) 먹이다', '연회를 베풀다'(KJV,banquet) 등의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매매하다', '교역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NIV,RSV). 따라서 본절은 악어는 결코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거래의 품목이 되거나 매매할 수도 없기 때문에 거래의 품목이 되거나 매매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상고들 가운데 나눌 수 있겠느냐 - 여기서 '상고들'(* , 카나아님)은 문자적으로 '가나안인들'로서 당시 베니게의 상인들, 즉 고대 사회에 있었던 진홍색천 장수들(Pope)을 가리킨다. 만약 지금까지 언급한 이 악어를 포획한 다면 악어는 이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 한편 본절은 악어가 너무나 거대하여 나누지 않고 상인 혼자에게만 팔 수 없다는 사실은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어(Hartley). 악어가 크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7. 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 여기에서 '작살'(* , 체라찰)은 '윙윙거리다'의 히브리어 어근에서 파생한 것으로 그것이 날아갈 때 울리는 소리와 관련된 '낚시 도구'를 의미한다. 이러한 '작살'이나 '창'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기를 잡을 때 사용한 것인데 이들에게는 많은 종류의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욥은 어떠한 무기를 가지고도 악어의 날가죽을 찌르기 못하며 그 머리를 상하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악어가 인간의 무기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벗어나거나, 또한 인간이 악어의 피부 깊숙이 작살을 꽃아서 치명타를 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M.Henry).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 '찌르다'에 해당하는 '마레'(* )는 '충분하게 채우다', '충분하다', '성취하다'란 뜻으로 악어의 가죽과 가죽과 머리 깊숙한 곳까지 작살이나 창을 찔리서 치명타 를 가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8. 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 보라 싸울 일이 생각나서 다시는 아니하리라 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 보라 - "사람이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 또 그 때문에 추적하던 자들이 그 노력을 포기하게 되지 않겠느냐? "네가 감히 하고자 하거든 그에게 손대어 보아라. 네가 그토록 힘센 것과 마주 대하기에는 얼마나 무력하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생각해 보고, 그 싸움을 기억하라. 그리고 더 이상 하지 말아라. 그 시도를 단념하여라." 싸울 일이 생각나서 다시는 아니하리라 - 우리가 전쟁에 개입하기 전 전투를 기억해 보고, 만약 갑옷을 입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예견할 수 있을 때는 제 때에 갑옷을 벗어 두는 것이 유익하다. 이에 욥에게는 하나님과의 논쟁을 계속하지 말고 그와 화친할 것을 권하는 충고가 내려지는데, 이것은 만약 욥이 하나님과의 교전에 뛰어들게 된다고 할 때, 그 전투의 결과가 정녕 어떻게 될지 기억하고서 하나님과 사화하도록 하라는 것이다(사 27:4, 5 참조). 9.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 악러를 정복하고 공격하는 자의 소망은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이다(NIV). 왜냐하면 그가 잡으려고 하는 악어는 너무나 거대하고 힘이 세서 인간과 자연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 - 여기서 '낙담하다'의 '툴'(* )은 직역하면 '세게 던지다', '곤두박질치다', '엎드러뜨리다' 등의 뜻으로 악어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묘사한다. 이는 악어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의해서 압도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10.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든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든 - '격동시키다'의 '우르'(* )는 '깨우다', '흔들다'란 뜻으로 악어를 흥분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용맹'에 해당하는 '아크자르'(* )는 '대담한', '용감한', '맹렬한'이란 뜻으로 악어를 격동시키는 대담성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가만히 있는 는 악어를 흔들어 깨울 만큼 담대함이 인간에게서 없음을 의미한다.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 - 직역하면 '누가 내 앞에 설 수 있는가?'이다. 이는 욥으로 하여금 결코 악어를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며 여기서 하나님과 논쟁하겠다는 주장을(23:3-7) 철회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먼저 화친해야 한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Menry, 사 27:4,5). 더 이상 하나님과 논쟁한다는 것은 악어와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 훨씬 무의미하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11.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 "누가 나에게 먼저 주었느냐? 즉 누가 나를 봉사하여 섬김으로써 은혜를 입혔느냐? 누가 내게 주고 나서 갚기를 바랄 수 있느냐?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대한 체불을 오래 끌지는 않겠다. 나는 그들에게 곧 갚아주리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과 섬기는 자들에게 말씀 하신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다시 자기에게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5).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 직역하면 '하늘과 땅 있는 모든 것이 다 나에게 속한 것이다'라는 말이다.이는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아 또 그의 주권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의미한다(롬 11:36). 또한, 악어와 인간을 포함한 삼라 만상(森羅萬象)이 모든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종하며 그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그와의 판결에서 이길 수 없음으며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 12. 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 오리려 '악어의 지체(limbs), 곧 그 큰 힘과 놀라운 구조'에 해당하는 '에레크'(* )는 '한 줄로 세우다', '정돈하다'란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배열', '배치' 등을 가리켜 악어의 신체적인 구조가 잘 조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 '훌륭한'에 해당하는 '힌'(* )은 '은혜', '우아함'등의 뜻을 지닌 '헨'(* )의 변칙 형태로서 '아름다움'을 뜻하는데, 이는 악어의 균형잡힌 골격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본절은 분명 악어의 정교하게 조화된 몸의 구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KJV, NIV). 하나님은 여기에서 말하자면 악어에 대한 해부도를 우리에게 제시하신다. 그의 작품은 극히 아름답고 훌륭하기 때문에 그것을 조각조각 떼어서, 개개의 부분과 비율을 관찰해 본다고 할 때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가장 잘 나타난다. 13.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 '가죽'에 해당하는 히비르어는 원래 '옷의 얼굴'(KJV, face of his garment)이란 뜻이 있는데 악어의 얼굴이나 머리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Ewald, Schlottmann). 그러나 여기서는 악어의 위쪽에 있는 바깥 옷, 즉 '쇠비늘 갑옷'(NIV, outer coat; RSV, outer garment)을 의미한다. 이는 악어의 가죽이 쇠바늘 같아서 어느 누구도 찢거나 벗겨낼 수 없으며, 어떠한 무기로도 꿰뚫을 수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7절).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 - '아가미'로 번역된 '레센'(* )는 원래 말에게 씌우는 '굴레', '고삐', '재갈' 등을 뜻하나, 여기서는 입의 안쪽 부분 곧 악어의 이빨을 감싸고 있는 위아래의 턱을 가리킨다(Davidson). 즉, 본절은 매우 강력한 이빨과 이중으로된 턱이 있는 아가미 사이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손 조차 놓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Schultens). 14. 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 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 - '얼굴의 문'은 거의 귀까지 벌어질수 있는 악어의 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악어에게 가까이 접근하여 꽉 다물고 있는 그 턱을 벌리게 하지는 못한다.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 - 보통 악어의 이빨은 위턱에 36개, 아래턱에 20개 정도가 길고 뾰족하게 박혀 있는데, 그것들은 바라보기만 하여도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들이다. 그 이빨은 강하고 날카로와 삼키기에 꼭 알맞도록 생겼다. 그 이빨들 사이에 한 다리나 팔 하나를 넣는다고 상상해 보기만 하여도, 우리는 몸서리를 치게 된다. 15. 견고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라 서로 연함이 봉한 것 같구나 견고한 바늘은 그의 자랑이라 - '견고한'에 해당하는 '마기님'(* )은 원래 '막다', '방어할', '덮다'란 뜻의 '가난'(* )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주로 '방패'(shield)로 번역된다. 그리고 '덮다'란 뜻의 '가난'(* )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주로 '방패'(shield)로 번역된다. 그리고 '비늘'의 '아피크'(* )는 '수로'(水路), '관'(channel), 또는 '줄'(NIV, RSV, rows)로 번역된다. 즉, 악어의 등에는 방패같은 비늘이 수로처럼 줄지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악어의 비늘은 쇠처럼 단단하고 견고하며, 금속판처럼 각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 현대의 동물학자들은 이를 고대 로마의 방패(scutum)에 비유하기도 한다. 서로 연함이 봉한 것 같구나 - 즉, 비늘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봉인해 놓은 것처럼 빽빽하게 닫혀져 잇다는 의미이다(RSV). 이것은 비늘로 덮여 있는 등가죽이 한치의 틈도 없이 견고하게 연결 되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떼어내거나 벗어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Rawlinson). 16. 이것 저것이 한데 붙었으니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겠고 이것 저것이 한데 붙었으니 - 비늘들이 몸에 달라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비늘 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정교하고 단단하게 붙어 있어서 바람이나 공기조처도 새들어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물에 사는 고기는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섭리는 추위를 주시는 동시에 의복도 주신다.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겠고 - 비늘에 대하여 주목할 만하게 현저한 사실은 "그 비늘들이 아주 견고하게 한데 붙어 있어" 공기조차 비집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무기로도 그 쇠비늘 갑옷을 뜸을 수 없으며, 상하게 할 수도 없다는 사실, 즉 악어 표피의 견고성을 강조하고 있다(Delitzsch). 17. 서로 연하여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서로 연하여 붙었으니 - 비늘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봉인해 놓은 것처럼 빽빽하게 닫혀져 잇다는 의미이다(RSV). 이것은 비늘로 덮여 있는 등가죽이 한치의 틈도 없이 견고하게 연결 되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떼어내거나 벗어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Rawlinson). 18.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가 발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같으며 그것이 재치기를 한즉 광채가 발하고 - 이는 악어가 입을 벌리고 햇빛을 향하여 있을 때에, 햇빛이 악어의 망막(retina)이나 미주(迷走) 신경을 자극하여 재치기를 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Delitzsch). 즉, 악어가 재치기를 할 때에 생기는 눈물, 또는 입에서 내뿜게 되는 물이나 거품들이 태양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모습을 나나내는 듯하다. 그런데 혹자는 만일 '베헤못'이 악어가 아니라 불가사의한 괴물 이라면, 본절은 진짜 불꽃을 발산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Pope). 하지만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를 악어의 재채기에서 비롯되는 물 안개가 햇빛에 반사됨으로써 나타나는 분광 현상으로 해석하는데 동의한다(Lange, Hartley, Henry, Driver & Gray).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같으며 - 악어의 불그스레한 두 눈은 새벽의 광선(NIV, rays of dawn)처럼 빛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악어가 물 속에서 두 눈이 붉게 충혈되는 것(Kelitzsch)을 표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둠속에서 아침이 열리 듯 반짝거리며 빛나는 모습을 나타낸다(Rawlinson). 한편, 고대 이집트인들의 상형 문자에는 새벽이 악어의 눈을 가리키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Lange). 19.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뛰어나며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 '나오다'의 '하라크'(* )는 '걷다', '가다', '달리다'란 뜻으로 횃불이 입에서 분출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것은 진짜 횃불이 아니라, 악어가 수면을 가르면서 호흡할 때에 생기는 물보라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된다. 즉, 악어가 물 속에서 나와 거칠게 숨을 내쉴 때에 수면의 물이 물결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것을 시적(詩的)으로 비유하여 횃불이라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불똥이 뛰어나며 - '뛰어나다'의 '마라트'(* )는 '가져오다', '달리다', '넘겨주다' 등의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작은 미립자가 되어 날아가버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Delitzsch). 이 동물의 숨길은 내부의 자연적 고열 때문에 너무나 뜨겁고 열화같아 "그 입에서 타는 횃불과 불똥," 즉 연기와 불길이 "튀어 나온다고" 일컬어지는데, 사람들이 숯을 올려 놓고 불피우기에 족할 정도로 뜨겁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20. 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의 타는 것 같구나 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 악어의 호흡에 의해 콧구멍으로 나오는 콧김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전능자의 호흡은 유황 개천 같아서 도벳을 불사르며" 그곳을 영원히 불타게 하실 것이다(사 30:33). 사악한 자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살후 2:8).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의 타는 것 같구나 - '솥'으로 번역괸 '두드'(* )는 '끓는 가마' 또는 '뜨거운 솥'을 가리킨다(KJV). 이는 악어의 콧김이 펄펄 끓는 가마 솥으 뜨거운 증기처럼 뿜어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갈대'에 해당하는 '아그몬'(* )은 가마솔을 끓이기 위한 연료로서의 갈대나 골풀을 의미하는데(2절주석 참조). 이것은 갈대가 탈때 불꽃과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를 연상케 한다. 여하튼 본절은 악어의 거친 호흡을 뜨거운 증가와 불꽃처럼 타오르는 연기에 비유하여 과장하고 있는데, 이는 악어에게 있는 두려운 모습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21. 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 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 악어의 호흡이 얼마나 강렬하고 뜨거운지 석탄에 불꽃을 피울 정도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악어가 호흡할 때 생기는 물보라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을 비유한 듯한데, 이러한 것은 악어의 거센 호흡으로 인하여 물보라가 강렬하게 분출되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 - '나오다'자[ 해당하는 '야차'(* )는 '나가다', '달아나다', '튀어 오르다', '나오다'란 뜻이다. 즉, 악어의 입에서 물보라가 거세게 분출되는 모습이 마치 불꽃이 입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이것 역시 악어의 거친 호흡으로 인하여 물보라가 분출되어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다.아무튼 본절은 악어의 호흡하는 것이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2. 힘이 그 목에 뭉키었고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 힘이 그 목에 뭉키었고 - '뭉키었고'에 해당하는 '륜'(* )은 '남아있다', '체류하다'라는 뜻으로 악어의 힘이 그 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어는 대적할 수 없는 힘을 소유하며, 극히 포악하여 자기 길에 걸리적 거리는 자는 누구든지 다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지만, 그 자신은 어떤 것에게도 놀라지 않는다. 그 목을 관찰해 보면 단단하고 정열이 들어가 있으며 거기에는 강력한 힘줄이 머무르고 있다.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 - '두려움'으로 번역된 '테아바'(* )는 원래 '흘러나오다', '용해되다'란 뜻의 '다아브'(* )에서 파생된 용어로, '슬픔'(KJV), '당황'(NIV),'공포'(RSV), '절망' 등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번역들은 모두 낙심 가운데 맥이 빠져 있는 상태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쿰란 탈굼(Qumran Targum)은 이 단어를 '정력'(vigor)으로 해석하여 전반절의 '힘'과 대구를 이루게 하였다. 그런데 '뛰는구나'가 해당하는 '두츠'(* )가 '껑충 뛰다', '기뻐 날뛰다', '춤추다', '도약하다'란 뜻이 있기 때문에 본절의 해석은 다양하게 시도 되었다. 악어가 갑자기 물에서 뛰어나와 그 목과 머리를 격렬하게 움직일 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과 낙심으로 당황하게 된다는 것이다(Lange, Delitzsch, Rawlinson). 이처럼 악어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라는 점이 본절에서 강조되어 있다. 23.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 그 몸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그 살의 조각들이서로 연하고 - '조각들'에 해당하는 '나팔'(* )은 원래 '떨어지다'의 '나팔'(* )에서 파생하여 악어의 배나 목 부분의 늘어진 살'을 가리킨다. 그리고 '연하다'의 '다바크'(* )는 '둘러붙다', '확고히 머물다', '잡다'란 뜻으로 살과 살이 서로 굳게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 몸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 '견고하다'의 '야차크'(* )는 원래 '쏟다', '붓다'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빈틈없이 굳고 단단한 상태를 의미한다. 즉, 다른 동물과는 달리 악어의 목이나 배 부분의 늘어진 살은 금속을 붙여 놓은 것처럼 매우 단단하여 흔들거림이 없다는 것이다(KJV, NIV, firm) 24. 그 마음이 돌 같이 단단하니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랫짝 같구나 그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니 - 여기서 '마음'은 악어의 교만와 승복할 줄 모르는 강력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즉 악어는 신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마음에 담고 있는 무서운 줄 모르는 담력과 끈기도 매우 견고하여 쉽게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수 1:6,7; 시 27:14).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랫짝 같구나 - 연자 맷돌의 아래짝은 위짝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들어진다(Lange). 따라서 본절은 악어의 마음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피조물보다 더 강하고 담대하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5.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경겁하여 창황하며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 악어가 스스로 자신을 일으킬 때에는 용사들도 공포에 떤다는 뜻이다. 여기서 '용사'에 해당하는 '엘림'(* )은 '첫째', '우두머리', '강한 자' 등의 뜻을 가진 '아일'(* )에서 파생된 복수 명사형으로(Gesenius) 다른 존재보다 앞선 능력을 갖춘 자들을 가리킨다(출 15;15; 겔 31:11; 32:21). 탈굼역과 수리아역에서는 이 단어를 '힘있는 자들'로 ,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천사들'로 해석하고 잇다. 한편, 혹자는 '엘림'을 '신들'(gods)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으나(Gordis, Pole), 이는 신화적인 요소를 가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경겁하여 칭황하며 - '경겁하다'의 '미쉐바림'(* )에서 파생하였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악어에 의해 파도가 부수어지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쉐베트'는 '무서움', '공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악어의 위용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용사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창황하다'의 '하타'(* )는 원래 '과녁(목표)에서 빗나가다', '상실하다', '부족하다'란 뜻으로, 저희가 악어를 죽이려는 목표를 무서움으로 인해 잃어버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이 단어는 번역자들이 따라 '정신을 잃다'(RSV), '길을 잃다'(gesenius), , '물러나다'(NIV), '낙담시키다'(Pope) 등 여러가지로 해석되기도 하는 데, 이러한 해석들도 모두 악어에 대한 두려움을 충분히 암시해 준다. 26. 칼로 칠지라도 쓸데없고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 칼로 칠지라도 쓸데 없고 - 원문에는 '칼로 그에게 접근하는 자'로 언급된다 이것은 누구든지 칼을 가지고 악어게게 접근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쓸모없는 짓을 한 것이라는 뜻이다.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없구나 - '창'에 해당하는 '하니트'(* )는 물 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투창을 가리키며, '살'의 '마사'(* )는 '서둘러 가다', '계속 날아가다'의 '나사'(* )에서 파생된 것으로 날아가는 무기인 화살의 종류를 뜻한다. 그리고 '작살'의 '쉬야르'(* )가 '쇠바늘 갑옷', '흉갑'이란 뜻의 '쉬리온'(* )과 동일한 어원에서 나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 이것은 '짧고 날카로운 화살'이란 뜻을 가진 아랍어(sirwat)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Delitzsch, Hartley). 27. 그것이 철을 초개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그것이 철을 초개 같이 - '초개'의 '테벤'(* )은 '밀집'이나 '지푸르가'(straw)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다'의 '하쇠브'(* )는 '평가하다', '생각하다', '간주하다'란 뜻이다. 즉, 악어에게는 철과 놋으로 만든 무기들이 짚이나 썩은 나무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용사들의 공격을 가소롭게 여기고 조소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은 악어의 강력한 힘과 인간의 무력한 모습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8. 살이라도 그것으로 도망하게 못하겠고 물매돌도 그것에게는 겨같이 여기우는구나 살이라도 그것으로 도망하게 못하겠고 - "칼과 창"은 가까이 근접해서 사용시에는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에게는 초개같이 아무 소용이 없고, "투창이나 화살"아니 "물매 돌"은 원거리에서도 부상을 입히는 무기들이나, 그에게는 아무 손상도 주지 못한다. 물매돌도 그것에게는 겨같이 - '겨'의 '쾨쉬'(* )는 '그루터기'(stubble), 또는 '짚'이나 '왕겨'(chaff) 같은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바람에도 쉽게 날리는 '겨'(13:25)나, '건초의 부스러기'를 뜻한다. 모든 점에 있어서 전신을 그토록 잘 무장시켜 놓아서, 그 모든 무기에도 견딜 수 있게끔 만들어 졌다. 여기우는구나 - "뒤집어 엎다"."전복하다"의 뜻. 큰 힘을 가진 자가 약한 자의 공격 수단을 무의로 만드는 것을 의미함. 29. 몽둥이도 검불 같이 보고 창을 던짐을 우습게 여기며 창을 던짐을 우습게 여기며 - '창'에 해당하는 '카돈'(* )은 '파괴하다'의 '키드'(* )에서 파생한 명사형으로 '투창'이나'작살'을 의미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위험스럽게 날라와도 악어는 오히려 우습게 여긴다는 말이다. 즉, 타조가 말과 그 탄 자를 비웃고(39:18), 말이 두려움을 비웃듯이(39:22) 악어는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들과 그 모든 무기를 비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30. 그 배 아래는 날카로운 와륵 같으니 진흙 위에 타작 기계 같이 자취를 내는구나 그 배 아래는 날카로운 와륵 같으니 - '날카로운'의 '하두드'(* )는 '하드'(* )의 강의형으로 최상급을 나타낸다. 곧 가장 날카로운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와륵'에 해당하는 '헤레스'(* )는 햇빛에 말려 불에 구운 토기의 조각 '질그릇 조각', '파편'이란 뜻으로 바늘을 가리킨다. 배 아랫부분의 바늘들은 등에 있는 비늘 만큼 단단하고 아주 날카롭다는 것을 나타낸다. 진흙 위에 타작 기계 같이 자취를 내는구나 - 악어가 강둑의 진흙 위에 누웠다가 그곳을 떠날 때는 날카로운 비늘로 인하여 타작 기계의 쇳자국이 지나간 것처럼 흔적을 남긴다는 뜻이다. 31.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 '깊은 물'에 해당하는 '메초라'(* )은 '깊음', '심연'이란 뜻으로, 바다나 강물의 깊고 고요한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끓음'의 '라타흐'(* )는 '부글부글 끓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거품이 심하게 일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악어가 물 속에서 세차게 돌진할 때 생기는 소용돌 이와 거품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물 속에서 구르며 딩굴고 휘저을 때에나, 그 먹이를 추적할 때에는 "깊은 물을 솥이 끊는 것같이 만들어서" 물 위에 큰 거품과 방울을 일으키는데, 이는 흡사 끓는 솥 속의 물이나 냄비 속의 끓는 물 같다고 할 정도이다.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 - 문자적으로는 "기름을 끓이는 솥"을 뜻한다. 공동번역은 "기름 가마처럼 부글거리게"라고 옮겼다. '향기름'에 해당하는 '메르카하'(* )는 '혼합하다'의 '라카흐'(* )에서 파생한 명사로, '향'(출 30:25; 사 57:9)이나 '기름', 또는'기름를 담은 그릇'(KJV, NIV, RSV, a pot of ountment)을 가리킨다. 이것을 실제로 악어가 후각샘이나 땀샘에서 사향과 같은 강한 냄새를 피우는 것에 대한 언급(Delitzsch)이라기 보다는 악어가 물 속에서 돌진하고 지나간 자국을 비유하여 묘사한 것이다(Lange, Driver & Gray). 32. 자기 뒤에 광채나는 길을 내니 사람의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 같구나 광채나는 길을 내니 - 이는 악어가 물위를 지나날 때 생기는 하얀 물보라와 거품이 햇빛을 받아 빛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즉, 악어의 질주하는 속도가 빠르고 또한 그 거대한 몸집 때문에 물 표면의 물보라와 거품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희게 빛나는 길을 만들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 같구나 - '백발'(* , 세바)은 악어가 질주할 때 생긴 물보라 길을 하얗게 물결치고 있음을 시적(時的)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는 물속에서 뒹굴거나 질주하는 악어의 힘있는 모습과 빠르게 움직이는 특성을 묘사한 것으로 사료된다. 33. 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 '땅'의'아파르'(* )는 직역하면 '먼지', '티끌'이지만, 여기서는 하늘과 대조되는 땅, 곧 '지구의 땅'을 가리킨다. 악어는 다른 어떤 짐승보다도 더 담대하고 용감하다. 그는 "두려움이 없게 지음을 받았다." 피조물들은 그들이 지음을 받은 그대로이다. 악어는 그 천부의 체질 속에 용기가 들어 있어서 아무 짐승이라도 그것을 놀라게 하지 못한다.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 '땅 위에 그와 같은 자가 없다'. 즉 악어와 동등하게, 똑같이 창조된 피조물이 없다는 해석이다(70인역, 벌게이트역, Delitzsch). 이 경우엔 '모든 지구상의 창조물들이 인간 앞에서 두려워 하도록 만들어 졌다'는데 악어는 두려움이 하나도 없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주관할 자가 땅위에는 없으며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담대하고 두려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34.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 구비치는 파도와 머리 위에 걸려 있는 바위, 배회하는 구름 또 돛을 전부 편 채 항해하는 어부의 배들, 이 모든 것을 이 강한 짐승은 경멸하면서 바라보고 있다. 이는 그것들이 자기를 약하게 하거나 자기를 위협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스스로 뛰어난 자들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모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경멸적으로 되기 쉬운 법이다.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 - '교만한 것'을 직역하면 '교만의 아들들'(sons of pride)이다. 여기서 '교만'의 '솨하트'(* )는 의기 양양하여 거만하게 뽐내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교만의 아들들'이란 다른 짐승들보다 몸집이 더 크거나 힘이 더 센 강한 짐승들을 일컫는다(28:8). 악어는 그와 같이 힘세다고 뽐내며 다니는 맹수들의 왕이다. 이것은 악어가 가진 신체적인 힘과 훌륭한 구조, 그리고 그에게 있는 두려움 없는 용기가 다른 거만한 짐승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악어는 모든 거만한 짐승들보다 더 거만하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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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
| 4. |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
| 5. |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
| 7. |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 8. |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 하다 하느냐 |
| 9. |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
| 10. |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
| 11. |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
| 12. |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
| 13. |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
| 14. |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
| 15. |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
| 16. |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
| 18. |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
| 19. |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
| 20. | 모든 들 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 |
| 21. |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 밭 가운데나 못속에 엎드리니 |
| 23. | 하수가 창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입에 미칠지라도 자약하니 |
| 24. | 그것이 정신 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
1.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본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능력과 섭리로 만물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욥에게 확증시켜 보여준 첫 번째 말씀(38,39장)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2.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 '변박하는 자'에 해당하는 '이소르'(* )는 '훈계하다', '책망하다'란 뜻을 지닌 '야사르'(* )의 파생형이다. "전능자"는 히브리어 샤이다(* )이는 "힘있는 자를 의미한며 또한 '다투다'로 번역된 원어 '리이브'(* )는 '항변하다', '싸우다', '논쟁하다', '경쟁하다'란 뜻으로 욥의 지혜와 순전함으로 결코 하나님과 항변하여 싸울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변론하겠다던 태도(23:7)를 바꾸어 조용히 침묵하게 된 것이다. 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4.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 '미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랄'(* )은 '가볍다', '작다', '경멸하다', '쉽다' 등의 뜻으로 '무거운', '영광스러운'을 의미하는 '카보드'(* )와는 정반대의 어의(語意)를 지닌다. 그런데 이말이 여기서는 오히려 '경솔하다',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존재이다'란 의미로 사용되어 욥이 전에는 자기의 개인적인 영광과 명성을 언급한 적이 있으나(19:9;29:20), 이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본절의 표현은 친구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자기 무죄성을 주장한 욥의 태도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은 상대방의 영광과 권세 앞에서 자신이 감히 말할 수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21:5;29:9).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자기의 무지를 깨달은 욥은 과거에 저질렀던 경솔함과 자기 합리화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시로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욥이 그 동안 잘못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을 각오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 도무지 설수도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5.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 이전에 욥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당당하게 대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13:22;14:15).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잠잠히 침묵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담대함을 얻겠다는 진술을 한 바 있으나(23:3;31:37), 그러한 청원 역시 철회하고 말씀 앞에 겸손해 지며 변론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과 논쟁하는 자들도 최후에는 잠잠하게 될 것이다. 욥은 하나님과의 회담을 요구하는 일에 아주 대담하고도 적극적이었으며 그가 자기의 사건을 얼마나 명확하게 진술하리라는 것과 그가 자기의 의로움이 인정되리라는 것을 얼마나 단단히 믿고 있는지를 과감하게 말하였었다.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 욥은 자기 친구들과 담화하는 동안에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는데, 이는 자기가 그들보다 못지 아니하게 선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말씀하시자 그는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비교하면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이 무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허영과 무지 그 자체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6. 여호와께서 푹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푹풍 가운데서 - 여기서 하나님은 좀더 직설적으로 욥의 자긍하는 태도를 꾸짖으시며 아무리 애를 써도 그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첫번째 말씀에서 보여 주셨던 자연계의 놀라운 사실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신다. 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 우리는 하나님과 공의를 다투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여호와는 우리를 다루시는 일에 있어서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행사에 있어서 불의하며 거룩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아울러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여기서 진정한 참회자들은 우리가 우리의 행함 중에서 계속하였던 잘못과 그릇된 원칙을 교정하는 해야한다. 우리가 오래도록 지녔던 생각이나, 자주 지녔던 생각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즉시 우리는 그것을 취소해야 하며, 더 이상 그것을 고수하지 아니하고, 그런 생각을 그토록 오래 품은 우리 자신을 부끄러이 여겨야 한다. 8.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 하다 하느냐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 '폐하다'의 히브리어 '파라르'(* )는 '깨뜨리다', '취소하다', '폐기하다'란 뜻이다. 즉, 욥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판결 행위를 결코 취소하거나 폐지시킬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록 욥의 주장처럼 자신에게 불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형벌이라 할지라도(6:24-30;27:4-6)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 하다 하느냐 - 이는 욥이 자기의 무죄성과 의로움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비난하거나 의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욥이 땅 위에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무흠하다 할지라도 그의 순전성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계획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욥은 자기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자기의 관념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듣는 것이다. 9.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 여기서 '팔'(* ,제로아)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한다(신 4:34;5:15;시 89:13;사 40:10). 즉,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처럼 이 세상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있느냐고 물어보신 것이다. 이는 이 세상을 좀더 올바르고 공의롭게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사고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음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결코 하나님 같은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질문을 제기할 권리가 없음을 강하게 나타낸다(36:22,23).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 - 이에 해당하는 '라암'(* )은 '뇌성', '요란한 소리'를 가리키는 말로 천둥 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적인 어떤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한다(37:2-5;시 29:4;77:18). 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 '위엄'(* , 가온)과 '존귀'(* , 가바)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속성이다(시 21:5;93:1). 그리고 '스스로 꾸미다'의 '아다'(* )는 '장식하여 돋보이게 하다'라는 뜻이다. 즉, 본절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있는 위엄과 존귀의 절대적 속성을 욥으로 하여금 치장하도록 요구하시는 모습이 강한 역설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이것은 욥에게 있어 지극히 미미하고 누구에게도 능력이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화미(華美)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위엄을 나타내며, '화미'는 하나님께만 있는 명예와 존귀를 가리킨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만유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절대적 주권을 상징하는데(시 45:3;96:6;104:1), 이러한 속성을 인간이 전혀 취할 수도 없고 흉내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욥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Rawlinson). 11.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 '넘치는'에 해당하는 '에브라'(* )는 '지나쳐 가다', '넘어가다', '건너가다'란 용어 '에베르'(* )에서 온 말로 '화', '격노'등의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맹렬한'(KJV, rage), '격렬한'(NIV, fury), 또는 '넘쳐흐르는'(RSV, overflowings)이란 의미로 번역했다. 그리고 '쏟아서'에 해당하는 '푸츠'(* )는 '흩뜨리다', '쏟아져 나오게 하다', '넘치게 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즉, 본절은 악인들을 향한 신적(神的)인 진노를 욥으로 하여금 나타내 보이라는 말씀이다.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 욥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만큼 자랑하는 독재자들과 압제자들을 쉽사리, 또 효과적으로 낮추며 천하게 만들 수가 있다면, 공의를 행하도록 요구하시는데,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할 수 있고 그것을 스스로 행하시리라는 것이 본문에 암시되고 있다. 12.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 교만한 자들은 틀림없이 비천하게 되며 낮추임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만은 멸망에 선행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만약 굽어지지 않는다면 꺾어지고 말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한 회개에 의하여 스스로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사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쩔쩔매게 하실 것이다.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 '밟아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크'(* )는 '내어 던지다'(throw down), '짓밟다'(KJV, RSV, tread down), 또는 '눌러 부수다'(NIV, crush)란 뜻으로 악인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묘사한다(사 63:3). 그런데 이것은 사단을 발 아래 밟고 승리하시는 그리스도의 권세에 비교할 수도 있는 심판적 의미를 담은 용어이다(롬 16:20). 한편 '처소에서'를 뜻하는 '타하트'(* )는 '바닥', '아래에 (안에) 있는 (것)'등을 뜻한다. 즉, 악인은 멸망하여 밟혀질 것이며. 악인이 멸망되어 거하는 곳, 곧 아래의 장소(下界)를 나타낸다. 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 '진토'(* , 아파르)는 '회색으로 되다', '빻다'란 어근에서 온 말로 '티끌'(dust)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덤'이나 '음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였다(10:9;34:15). 즉, 하나님은 욥에게 교만한 자들에 대하여 티끌 처럼 낮아 지게 만들고 죽음의 심판을 행해 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얼굴을 싸서 - 얼굴은 사람의 전인격을 대표하는 신체의 일부분이다(시 42:5,11;잠 7:15). 그리고 '싸서'에 해당하는 '하바쉬'(* )는 '속박하다', '묶다', '감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교만한 자들의 전인격을 부끄럽게 하고 꼼짝못하게 묶는다는 의미이다.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 '어둑한 곳'의 '타만'(* )은 직역하면 '감추어진 곳', '숨긴 곳'이란 뜻으로 죽은 자들이 거하는 어두운 세계, 곧 스올 또는 지옥의 깊고 후미진 곳을 묘사한다(Lange, Rowley).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하고 악한 압제자들을 음부의 깊숙한 곳에 빠뜨림으로써 스스로 절대자이심을 증명하신다.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 " 인간이 자기 자신의 구원자가 되리라는 것은(그 자신의 손이 자기에게 충분하게 또 독립되게 되리라는 것은) 인간 고유의 자만이며 기만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주장하는 일은 주제넘은 짓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세로써 원수들을 낮출 수 없다면,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 스스로를 구한다고 자처할 수는 도저히 없다. 만약 우리가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실 터이다. 내가 인정하리라 - 하나님께서 방금 욥에게 하신 말씀대로 욥이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의 능력을 그대로 인정하신다는 의미이다. 15.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 그처럼 큰 덩치를 가지고 들의 풀에 만족하도록 정해 놓으셨다. 아주 많은 식물을 필요로 하는 그 동물이 고기를 생식하지 않도록 만드신 때문이다 '하마'에 해당하는 '베헤모트'(* )는 '베헤마'(* )의 복수 형태이지만 그 뜻이 복수의 의미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즉, '베헤 모트'는 '짐승들'(70인역, 탈굼역)로 번역되기 보다는 한마리의 거대한 짐승을 언급하는 고유 명사로 보아야 한다(수리아역, 벌게이트역). 고대 신화와 관련된 신화적인 동물로 보는 견해. 포우프(Pope)는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하늘의 수소, 또는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소같이 생긴 괴물과도 관련성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본다. 여기서 복수형은 단어 자체의 뜻을 강하게 해주거나, 장엄함을 표현한다. 본절에 '베헤모트'를 등장시키는 것은 욥으로 하여금 자신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하게 생긴 피조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고 약한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16.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힘은 허리에 있고 - 일반적으로 허리는 모든 힘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시 69:23;잠 31:17;나 2:1). 따라서 허리를 상하게 하가 것은 곧 힘을 약하게 한다는 뜻이 된다(신 33:11). 따라서 본절에 언급된 하마의 출중한 허리는 위대한 힘을 상징한다. 한편, 허리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생식력과 성적인 능력에도 연관되어 있어(Pope) 종자의 번식력에 직결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 '세력'의 히브리어 '온'(* )은 '힘', '활력', '정력', '원기' 등의 뜻이다. 그리고 '힘줄'은 근육을 가리키는 것으로, '견고한', '확고한' 이란 뜻의 '솨라르'(* )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솨라르'의 원래적 의미를 '감다', '구부리다', '누르다'등의 '솨르'(* )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해, 이를 '배꼽'으로 생각하기도 한다(Gesenius, Lange). 그러나 후자의 견해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의문의 대상이 되어 왔다(Delitzsch, Rawlinson, Hartley, Pope). 아무튼 하마의 배 근육은 그 허리처럼 단단하고 힘이 넘치는 것으로 표현됨으로써 (Delitzsch) 사람이 따라 갈 수 없는 그의 강인함을 나타내고 있다. 17.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같고 - 그의 등뼈는 너무나 강하고 그는 꼬리를 칠 때에 굉장한 힘으로 하여 마치 백향목이 움직이는 것 같다. 보통 똑바로 선 꼬리는 힘과 흥분의 상태를 표현하는데, 여기서 하마의 꼬리가 백향목에 비유된 것은 백향목이 위엄있는 힘의 상징이기 때문인 듯하다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 '넓적다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하드'(* )는 '두꺼운 다리'를 의미하는데(Lange, Delitzsch, Driver & Gray), 탈굼역(Targum)과 일부 학자(Pope)는 종종 이 단어를 '고환'으로 번역하기도 한다(레 21:20). 그리고 '연락되다'의 '사라그'(* )는 '섞어 짜다', '얽히다', '칭칭 감다'란 뜻으로 포도나무의 가지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힘줄이 서로 밀착되어 감겨있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18.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그 뼈는 놋관 같고 - '관'에 해당하는 '아피크'(* )는 '모으다', '가져오다', '소집하다'란 뜻의 '아사프'(* )에서 유래한 말로 '파이프', '관'(tubes)이란 뜻이다. 즉, 본절은 하마의 넓적다리의 뼈가 청동 파이프처럼 단단하고 강력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부러뜨릴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 '가릿대'의 '게렘'(* )은 보통 '뼈'(KJV, bones), '사지'(NIV, RSV, limbs)를 뜻하나. '뼈대', '골격'(framework)으로 해석하기도 한다(Lee). 아마 이것은 늑골 혹은 다리 밑의 단단한 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그리고 '철장'(bars of iron)은 쇠 막대기를 말하는데, 막대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틸'(* )은 '망치로 두들겨 늘이다'란 뜻으로 아직 제련 작업이 끝나지 않은쇠 막대기를 가리킨다. 이것 역시 하마의 뼈대가 굵고 단단하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표현해 준다. 19.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 '창조물'에 해당하는 '다라크'(* )는 문자적으로 '걷다', '밟다'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행사', '행동'이란 의미로 쓰였다. 즉, 하나님의 솜씨있는 행사인 창조 사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는 창조의 시간적인 우선 순위를 말하지 않고(민 24:20;잠 8:22) 그 질의 높음을 의미함으로써, 하마는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섯째 날에 창조된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창조된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솜씨의 걸작품으로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 하마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그에게 칼을 주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하마의 어금니를 칼과 같이 날카롭게 지으셨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Delitzsch, Lange). 즉, 하마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주셔서 풀과 같은 곡식과 식물들을 베어먹게 하셨다는 것이다. 20. 모든 들 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 모든 들 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 '산'(* , 하르)은 일반적으로 고원 지대나 줄지어 있는 산을 언급하나, 여기서는 나일 강 언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모든 들짐승이 즐겁게 뛰노는 푸른 산에서 자라는 푸른 풀은 그것의 먹이다.(표준새번역) 모든 들짐승들이 노는 그 산들이 그것을 위해서 먹을 것을 내느니라.(우리말성경) 21.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 밭 가운데나 못속에 엎드리니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 '연 줄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엘'(* )은 '가냘프다'란 뜻의 사용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로 수련(睡蓮, water lily)이라 불리는 'Nymphae Lotus' 가 아니라, 갈릴리의 바다 근처와 팔레스틴의 습하고 더운 지역에서 자라나는 'Zizyphus Lotus', 곧 '가지가 있는 관목'을 가리킨다(Hartley, Pope). 이연 관목은 그늘을 많이 제공하기 때문에 초원 지대의 들짐승들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한다(Schultens). 갈밭 가운데나 못 속에 엎드리니 - '엎드리다'의 '세테르'(* )는 '숨기다', '감추다', '덮다'란 뜻으로 하마가 은신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즉, 본절은 하마가 식물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 강 언덕의 빽빽한 갈대밭이나 늪수렁 같은 곳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묘사한다(시 68:30). 22. 연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연 그늘이 덮으며 - 연 관목의 그늘이 하마를 덮어서 햇볕을 피하게 하고 몸을 숨겨준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마를 보호하시며 세밀하게 관찰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고 있다.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 '시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나할'(* )은 계속해서 흐르는 개울이나 세찬 물줄기의 강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현장이 이집트라기 보다는 팔레스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Driver & Gray, Pope).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희박하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버드나무는 팔레스틴의 요르단 언덕과 다른 여러 강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프라테스 포플라'(Poplus Euphratica)로 여겨진다(시 137:2;사 15:7;44:4). 23. 하수가 창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입에 미칠지라도 자약하니 하수가 창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 '창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솨크'(* )는 원래 '압제하다', '강탈하다'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세차게 흘러내리다', '분출하다', '물결치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어 강물이 둑 위로 넘쳐 하천이 범람하고 있음을 가리킨다(Schultens). 그리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다', '당황하다', '두려워하다'란 뜻의 '하파즈'(* )가 부정형에 수식되게 서술되어 있어 하마는 아무리 거센 물결이 몰아닥쳐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하천이 순식간에 뒤집혀 엎어져도 태연하게 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요단강이 불어 그입에 미칠지라도 자약하니 - '불다'에 해당하는 '기아흐'(* )는 '흘러들다', '돌입하다'란 뜻으로 물이 갑자기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한다(38:8). 또한 '자약하다'의 '바타흐'(* )는 '믿다', '안전하다', '확신을 갖다'란 뜻으로 자기 자신의 안전에 대하여 확신하는 하마의 모습과 태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전체적으로 하마는 갑작스러운 하천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결코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마의 담대함과 자기 확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이 동물 또한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본문에서 계속되는 요지이다(렘 12:5). 24. 그것이 정신 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그것이 정신차리고 있을 때에 - 원문은 '그의 눈 앞에서', 또는 '그의 눈에다'란 뜻이다. 양자(兩者)모두 해석이 가능한데, 전자일 경우에는 '감히 하마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동안에 어느 누가 그것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란 의미이고(Rawlinson), 후자 일 경우에는 사냥꾼이 하마의 눈을 노려보거나 아니면 그 눈을 상하게 함으로써 포획 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하튼 본절이 의도하는 바는 사람이 어떠한 힘이나 올가미를 사용하여도 잡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하마라는 사실이다.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 '갈고리'를 가리키는 '모케쉬'(* )는 '덫을 놓다'의 '야카쉬'(* )에서 파생한 명사형으로, '덫', '올가미', '함정'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꿰다'라는 동사가 덫이나 올가미에 부적절하기 때문에 이 '모케쉬'라는 단어를 '갈고리'외에 '작살'이나 '가시', '창'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본절 역시 하마의 포획 장면을 연상시키는 데, 그 의미는 분명하다. 즉, 하마를 사로잡기 위한 어떠한 도구나 방법도 헛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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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
| 2. |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
| 3. |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
| 4. |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길리우다가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
| 5. |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
| 6. |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
| 7. |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을 업신여기니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
| 8. | 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
| 10. |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
| 11. |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
| 12. |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
| 13. |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
| 14. |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
| 15. |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
| 16. |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괘념치 아니 하나니 |
| 17. |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
| 18. |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 |
| 19. |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
| 20. |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
| 21. |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
| 22. |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을 당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
| 23. | 그 위에서는 전동과 빛난 작은 창과 큰 창이 쟁쟁하며 |
| 24. | 땅을 삼킬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
| 25. | 나팔 소리 나는대로 소소히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
| 26. |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
| 27. |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 |
| 28. |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데 거하며 |
| 29. |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
| 30. |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있느니라 |
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산 염소가 새끼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 '산 염소'는 구체적으로 '암벽에 사는 야생 염소'를 가리킨다. 이 짐승은 '카프라 왈루'(Capra walu) 또는 '카프라 누비아나'(Capra nubiana)같은 종(種)에 속한 것으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이나 돌이 많은 황무지에서 살고 있다.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 '암사슴'(* , 아야라)은 높고 위험한 지역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발을 가진 짐승으로(시 18:33) 고대 팔레스틴에 많이 서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창 49:21;신 12:15;왕상 4:23;잠 5:19). 그런데 여기에서 '알다'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솨마르'(* )는 '지키다', '보호하다', '관찰하다'란 뜻이 있는 용어이다. 그래서 본절은 하나님이 욥에게 암사슴의 잉태 기간 동안에 그것을 위험에서 돌보고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새끼들을 낳게 할 수 있는가를 묻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된다. 2.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 원어를 직역하면 '그것들이 만삭되는 달을 셈할 수 있느냐?'이다. 이는 곧 산염소와 암사슴의 잉태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다(Lange). 그런데 여기서 '만삭되다'의 기본형 '마레'(* )는 '채우다', '가득하다', '풍만하다', '완성하다'란 뜻으로 새끼를 낳기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들짐승들의 잉태 기간에 그것들을 관찰하고 보호하여 새끼를 낳도록 인간이 섭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역설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질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낳을 때를 아느냐 - "때"는 '계속되는'.'지속'.'영속'의 뜻에서 유래.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으로 반복되는 사건의 시점을 의미한다. 3.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아 - '구푸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라'(* )는 '엎드리다', '구부리다', '웅크리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해산을 위해 몸이나 허리를 굽히는 것을 가리킨다.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 '괴로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헤벧'(* )이란 단어가 주로 해산의 고통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유대 주석가들은 '구부리다'의 '카라'를 해산의 진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 한다(삼상 4:19). 4.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길리우다가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길리우다가 - '강하여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람'(* )은 문자적으로 '살찌다', '튼튼하다', '뚱뚱하게 되다'란 뜻으로 새끼들의 건강이 매우 좋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길리우다'의 '라브'(* )는 '크게 또는 많게 되다', '가득 채워지다'란 뜻으로 새끼들이 강한 몸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하람'과 함께 본 용어는 '동물이 성장하고 숙성해감'을 나타낸다. 한편, '빈 들'(* , 바르)은 광야나 경작지를 가리키는데, 어떤 번역본은 '바르'의 일차적 의미인 '곡초'(corn)나 '밀'로 이해해서 본절을 새끼들이 성장한다는 것으로 그 뜻을 부여했다(KJV).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 '다시'로 번역된 '라모'(* )는 '그들 에게로'란 뜻을 지닌다. 그래서 본절은 밖으로 나간 새끼들이 자기들의 어미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야생 동물의 특성을 잘 반영한 표현이다.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 그는 들나귀에게 자유로운 기질을 주셨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하사품도 주셨다. 길든 나귀는 섬기며 살아 가지만 들나귀는 자유롭게 활동하며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쾌락에 매여서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누가 자유를 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자손 중 누구라도 그와 같은 자유를 탐내며, 그런 자유를 귀하게 여기고 뽐낸다면 그것은 가련한 일이다.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 '빠른 나귀'에 해당하는 '아로드'(* )는 보통 '야생 당나귀'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겁이 많아 아주 빨리 도망치는 특성이 있는데, '들나귀'와는 다른 종류의 나귀이지만 인간으로부터 길들여지지 않고 속박당하지 않는 다는 점은 서로 같다. 한편, '풀다'의 '하파쉬'(* )는 얽매인 것에서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로서 야생 당나귀의 기질을 잘 묘사하고 있다(신 15:12;사 58:6;렘 34:14). 6.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내가 들로 그 집을 - 들 나귀는 광야에서 푸른 것을 찾아 방황하며 떠돌아 다니다가 닥치는 데로 이것 저것 먹고 살며 자기 마음껏 바람을 들여 마실 수가 있었다. 들나귀는 마치 바람을 먹고 살기라도 하는 양 코를 벌렁이며 바람을 마신다고 하는데(렘 2:24), 주인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먹여 주는 이도 없으며, 그에게 주는 양식도 없고, 그는 자기 스스로 이럭저럭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산은 그의 초장이며 들판은 그는 안식처이다. 그는 "여기저기에 푸른 것을 찾아 다니다가" 발견되는 대로 뜯어 먹는다.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 "짠 땅"(* , 메레하) 원어의 의미는 '소금의 땅'(NIV, RSV)이다. 들나귀는 염분이 있는 습지와 풀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별히 소금기의 섭취를 위해 염분이 많은 땅을 핥는다고 한다(시 107:34). 7.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을 업신여기니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을 업신여기니 - 인가에서 이는 소란쯤은 콧방귀로 날리는 들나귀들을 야단치며 몰아 갈 사람이 어디 있느냐? (공동번역) 들나귀는 마을의 북적댐을 보고 비웃고 나귀 모는 사람의 소리도 무시한다.(우리말성경) 본절은 들나귀가 성읍에서 모여 살아가는 많은 군중들과 그들의 소란함을 싫어하는 습성을 묘사한다. 이것은 들나귀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예속당하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들나귀에게 부여된 자유로운 습성과 야성적 특성 때문이다.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 '어거하는 자'(* , 누가스)는 '가까이 끌다', '접근하다', '끌어내다'의 '나가쉬'(* )에서 파생한 용어로, '(짐승을) 모는 사람', '간역자'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단순히 '마부'나 '가축상인' 등을 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길들여진 나귀와는 달리 들나귀는 자신을 가축으로 삼으려는 인간들의 외침을 아예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의 접근을 무시함을 나타낸다. 8. 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 여기서 '산'(* , 하르)은 사람이 근접하기 어려운 비탈진 언덕이나 바위 등성, 또는 언덕들이 연이어서 줄지어 있음으로 해서 형성된 매우 험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들나귀는 흔한 일반적인 산에는 살지 않기 때문이다(Rawlinson). 한편, 본절에 언급된 '두루다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투르'(* )는 '찾다', '탐색하다'의 '투르'(* )에서 파생된 말로 먹이를 찾아 열심히 배회하는 들나귀의 모습을 잘 표현한 용어이다.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 즉, 들나귀의 거주지에는 광활하고 풍부한 초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작은 목초지라도 얻기 위해 열심히 광야의 산들을 탐색하고 다닌다. 9.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 "들소"(* , 레엠) 이 동물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 짐승으로 자주 나타나고 있다. 즉, (1)강한 힘을 가졌고(민 23:22;24:8), (2)위험하고(시 22:21), 고상하고(시 92:10), 위엄있는(신 33:17) 뿔을 가졌으며, (3)힘차고 정열적인 (시 29:6) 모습을 가진 동물로 언급되고 있다. 70인역(LXX)은 이를 '외뿔 들소'(KJV, unicorn)라고 부르며, 벌게이트역(Vulgate)은 '무소'(rhinoceros)라고 한다. 혹자는 이를 소과에 속하는 거칠고 힘이 센 영양 종류라고 하나(Lange), 현대의 학자들은 대부분 'Bos primigenius'(원시 소)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한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 '외양간'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에부스'(* )는 '먹이를 주다', '살찌게 하다'의 '아바스'(* )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곳간', '저 장소' 또는 '오두막'을 가리킨다. 그리고 '머물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룬'(* )은 직역하면 '밤을 지새우다'란 뜻이다. 즉, 본절은 들판에서만 잠을 자던 들소를 욥의 오두막에서 묵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욥에게는 거친 들소를 온순히 길들 일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10.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 여기에서 '이랑'(* , 텔렘)은 밭고랑을 뜻하며(31:38), '줄'(* , 아보트)은 일반적으로 꼰 끈을 말하나 본절에서는 '고삐 매는 줄'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는 들소를 가축과 같이 마음대로 결박할 수 있느냐고 욥에게 묻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 이에 해당하가 히브리어 '사다드'(* )는 흙덩이를 깨뜨리는 것으로 써레질을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써레질은 쟁기와는 달리 동물이 사람을 뒤 따르기 때문에, 이는 들소를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힐문한 것이다. 욥은 과거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들소로 하여금 써레질을 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11.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 욥이 자기의 나귀나 황소를 가사나 농사일을 위해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들소에게 써레질을 시키지는 못한다. 또한 밭일을 시켜서 소출을 얻도록 만들 수도 없다. 그것은 들소가 자기를 위해 기꺼이 일해 줄 것이라고 신뢰하지 못할 대상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들소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계획과 일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성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설득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짐승들은 이 일을 행할 수가 없다. 그러나 금수와 마찬가지로 사람 또한 그러하다. 수고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선을 행할 마음이 없는 자들은 야생 동물로 간주되어 마땅하며, 황야에 버려짐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오며 - 이 말은 만약 '추수한 곡식을 실어 오도록 들소를 모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Driver & Gray). 여기서 '곡식'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제로아'(* )는 원래 씨를 뜻하지만(KJV), 여기서는 수확된 곡물, 즉 성숙한 종자를 가리킨다(사 23:3;학 2:19).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 '타작 마당'(* , 고렌)은 밭 어귀의 평평한 약간 높은 곳이나 곡식이 쌓여 있는 바람이 잘 부는 곳으로 곡식을 탈곡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고렌'을 환유적 의미로 파악하여 곡물 자체로 생각하기도 한다(B.Davidson). 여하튼 들소의 힘은 농사에 관한 모든 일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만, 그것의 야수적인 본성 때문에 욥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13.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 "타조"(* , 레나님) '외치다'의 '라난'(* )에서 파생한 복수 명사형으로 날카로운 소리로 우는 새, 또는 슬퍼서 째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새를 가리키는 데, 일반적으로 암타조를 말한다. '즐거이 치다'의 '알라스'(* )는 원래 '크게 기뻐하다'란 뜻으로(20:18), 타조의 날개가 뽐내며 움직이는 것을 나타낸다(RSV).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 본절은 해석하기가 매우 난해한 구절이다. 직역하면 '그것이 인자한 깃과 털이냐?'(RSV), 즉 '타조는 부드러운 날개와 사랑스런 깃털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시다'(* )를 '황해'(stork)로 보는 경향이 학계에는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새끼를 다루는데 매우 세심하고 애정이 깊은 황새를 타조와 비교하는 것으로 본절을 해석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때는 본절이 '그것이 황새의 깃과 털에 비교될 수는 없다'(NIV)란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타조의 무정함과 지혜 없음을 예증하는 구절이다. 즉, 본절의 의미는 타조의 날개가 비록 뽐내며 푸드덕거리지만, 그 깃과 털은 황새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본절은 타조에게는 황새와 같이-알을 품고 새끼를 까는 과정에 있어서-애정어린 관심과 세심하게 돌보는 마음이 없음을 나타낸다.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 두어 - 여기에서 '버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자브'(* )는 '놓다', '두다', '떠나다'란 뜻으로 은밀한 장소에 알을 숨기지 않고 함부로 방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타조에게 본능적으로 자기 알을 땅 위 아무 곳에서 나 까버리는 속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 그것은 땅 위 아무 데나 알을 낳아 놓고 그 알을 부화시키는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모래와 햇볕이 그들을 부화시켜 준다면 그로 족한 것이다. 모래와 태양이 타조를 대신해 준다. 그러나 해가 진 밤중에는 알을 타조가 직접 품는다는 기록도 있다(Rawlinson). 어쨌든 본절의 강조점은 모래에서 그 알이 부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알을 부화시키는 과정에서 타조의 역할이 매우 미미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 타조의 많은 알들 가운데 일부는 모래로 덮혀 있지만, 상당수가 모래 위에 그냥 방치되어 있다. 그러기에 자기의 발에 밟힐 수도 있고, 다른 들짐승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타조는 그러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 이와 같은 알의 부화에 대한 타조의 무관심이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매우 잔인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즉, 자기의 보금자리가 다른 동물에 의해 발견되어진 것들을 타조가 알면 자신의 알을 짓밟아 깨뜨리고 다른 곳에 보금자리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다(Delitzsch). 16.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괘념치 아니 하나니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 '무정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솨흐'(* )는 '강퍅하게하다', '무지하게 대하다'란 뜻으로, 새끼들을 거칠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NIV, RSV). 사실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잔혹하게 다루는 타조의 습성은 애가서에도 언급되어 있어 타조의 무정은 일반적이기까지 하다(애 4:3). 그러나 타조에게도 새끼들을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음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어(Rawlinson)어느 정도는 보호 본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조가 새끼들에게 무정한 동물 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괘념치 아니 하나니 - 제 알을 놓을 때의 수고는 아무 소용없이 되어 버렸고, 기쁨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 수고를 잃어 버릴까봐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는 자는 자기 수고를 상실하기가 쉽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 대하여 그토록 무성의하다. 일부 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신체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그들의 집을 준비해 두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의 애정을 공급하지 아니하여 불신앙인보다 더 악하고 타조처럼 착하지 못하다. 17.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 - 타조가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문의 '품부하다'에 해당하는 '나솨'(* )는 '빌려주다'란 뜻으로 어떤 것을 증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 '주다'의 '할라크'(* )도 어떤 것을 분배하여 소유하게 한다는 뜻으로, 지혜가 분깃으로 나뉘어 지는 것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타조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지혜를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리석은 동물이 된 것이다. 18.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 '떨쳐 뛰어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마롬 타므리'(* )는 '높이 일어나다'의 '룸'(* )과 '날개치다'의 '마라'(* )를 연결한 것이다. 이것은 암타조가 달릴 때 꼬리를 깃털을 돛처럼 높이 펼쳐 세우는 모습을 시사하는 것 같다. 즉 이것은 암타조가 사냥꾼이나 다른 추적자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매우 빨리 도망치는 모습인데, 이때에 암타조는 먼저 다리를 쭉 뻗어 몸을 세운 다음, 꼬리 깃털을 펼치고 신속하게 달린다(NIV, RSV).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 - 그런데 그것이 한 번 날개치며 내달으면 말과 기마병을 한꺼번에 놀려 주지 않느냐? (공동번역) 그러나 타조가 한 번 날개를 치면서 달리기만 하면, 말이나 말 탄 사람쯤은 우습게 여긴다. (표준새번역)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 "말"(* , 수스) 여기서는 특별히 전쟁용 군마를 언급한다. '힘'에 해당하는 '게부라'(* )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무사 또는 전사가 지니고 있는 용기와 그 기량의 탁월성과 군마의 열정과 흥분, 그리고 겁없는 용맹성과 담대성을 시사한다.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 '흩날리는 갈기'로 번역된 '라아마'(* )는 '천둥치다'의 '라암'(* )에서 파생되었지만, '천둥'(KJV, thunder)이란 뜻보다는 '떨다', '진동하다'란 의미가 더 적합한 듯하다. 그의 목은 "뇌성으로 옷 입혀져 있다." 즉 숱이 많이 흘러내리는 갈기털로 덮어져 있다. 그것은 그를 강맹하게 하며 그에게 장신구가 된다. 그가 코를 볼 때에 그의 머리를 쳐들게 하며, 주위에 거품을 뿌리게 하는 "그 콧구멍의 장관은 두려웁다"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 '뛰게 하다'의 '라아쉬'(* )는 원래 '흔들다', '떨게 하다'란 뜻으로 어떤 물체를 진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말이 놀라서 앞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상기시키는데, 혹자는 이를 말이 좌우로 반회전하며 회선형으로 뛰는 동작과 관련시켜 이해한다(Delitzsch). 그러나 어떤 학자는 땅이 흔들릴 때 농작물 위에서 메뚜기 떼가 하강하는 것처럼 말이 뽐내며 달려가는 것을 묘사한다고 한다(Gordis). 여하튼 본절은 군마를 메뚜기같이 뛰게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엄이 욥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 여기서 '위엄'(* , 호드)은 콧소리의 우렁찬 울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사실 말의 콧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공포를 느낄 정도이다. 21.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 - '허위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파르'(* )는 '파다'(dig), '탐색하다', '정탐하다', '앞발로 긁다'란 뜻이다. 이것은 주로 말이 앞발로 땅을 세게 차거나 긁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원문을 보면 '허위고'의 주어가 단수가 아닌 복수이기 때문에 본문을 '말탄 자(군사)들이 골짜기에서 정찰(탐색)하다'란 뜻으로 생각하여 본절을 싸움의 시작을 가리키는 부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Lange). 한편, '골짜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크'(* )를 우가릿어와 아카디아어에 연관시켜서 볼 때는 '맹렬하게'(fiercely)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NIV, Pope). 이 경우엔 땅을 맹렬하게 긁어대는 말의 힘센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힘 있음을 기뻐하며 - 이는 전투를 앞에 두고 기뻐하는 전마(戰馬)의 열광적인 위용을 표현한다(Rawlinson). 이처럼 말의 힘은 말 스스로의 자신감에 의해 입증된다.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 원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말이 무기를 맞으러 앞으러 나아갔다'(RSV)란 뜻이다. 여기에서 '무기'의 '네쉐크'(* )는 '군사' 또는 '싸움'(NIV, fray)을 의미하는데, 이는 군마의 위풍당당함과 공격적으로 돌격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22.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을 당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 "그가 두려움을 비웃고" 그것을 조롱거리로 삼는다. 그를 칼로 후려치며 전동을 덜그렁 거리고 창을 휘둘러 그를 물리고자 하더라도, 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돌진하여 자기 등 위에 탄 기수에게 용기를 북돋우기까지 한다. 23. 그 위에서는 전동과 빛난 작은 창과 큰 창이 쟁쟁하며 그 위에서는 전동과 - "전동"(* , 아슈파) 화살을 넣는 전통을 가리킨다. 이는 말 탄 자가 메거나 말에다 메어 놓았다. 빛난 작은 창과 큰 창이 - '작은 창'(* , 하니트)은 던질 수 있는 짧은 창으로 치명적인 무기를 말한다(삼상 18:11;20:33). 그리고 '큰 창'(* , 키돈)은 주로 투창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41:29). 혹은 이를 창이 아닌 칼의 일종으로 간주해 '낫 모양의 칼', 또는 '초생달처럼 굽어진 곡선형 칼'(scimitar)로 이해하기도 하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한편, '빛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하브'(* )는 원래 '불꽃'을 뜻하나, 여기서는 창끝이나 칼날처럼 예리한 부분을 묘사하고 있다. 쟁쟁하며 - 이에 해당하는 동사 '라나'(* )는 '덜거덕거리다' 또는 '쟁쟁 거리는 소리를 내다'란 뜻으로, 화살통이 말의 목에 부딪히거나 창과 칼이 서로 부딪혀 나는 소리를 표현한 것 같다. 24. 땅을 삼킬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땅을 삼킬듯이 맹렬히 성내며 - '맹렬히'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쉬'(* )는 원래 덜커덩거리는 것을 나타내나, 여기서는 군마의 말발굽 소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내며'에 해당하는 '로게즈'(* )는 말의 격노와 흥분을 묘사한다. 즉, 이것은 전쟁터를 매우 빨리 질주하는 말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땅을 삼키는 것에 비유되고 있다.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 '머물러 서다'에 해당하는 '아만'(* )은 원래 '믿다', '신뢰하다', '양육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본절을 '말이 나팔 소리를 믿지 않는다'(KJV)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는 말이 너무 기쁘고 흥분한 나머지, 전투의 신호 소리를 전혀 믿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본절의 '아만'을 '제자리에 서 있다'란 뜻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말은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NIV, RSV)란 의미로 본절을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본문은 전투의 시종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릴 때의 군마의 당당함과 위용스러운 기백, 즉 사기 추천한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5. 나팔 소리 나는대로 소소히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나팔 소리 나는 대로 - '나는 대로'에 해당하는 '베데'(* )는 전치사 '베'(* )와 '충분한'을 뜻하는 '다이'(* )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래서 본절은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란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나팔 소리는 주로 진격 명령을 알리는 전투 신호로 싸움의 진퇴(進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렘 4:19;암 3:6). 소소히 울며 - 원문을 직역하면 "'아하'(* , 헤아흐)라고 말하다"란 뜻이다. 그런데 '아하'는 주로 기쁨을 나타내는 감탄사로 사용되기 때문에(시 35:21;사 44:16; 겔 25:3), 본절은 말이 전투를 기뻐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 "나팔 소리와 대장의 우뢰" 같은 호령과 병사들의 "아우성" 소리로 말미암아 나아간다. 이런 소리들은 그의 타고난 용기의 도화선에 불 붙이는 포효소리로서 그로 하여금 "하아! 하아!" 부르짖는 듯이 아주 열성적으로 도약하여 나아가게 한다.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 달리거나 끌거나 운반하는 일에 있어서 보통 사람을 섬기는 동물 중 말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없으며, 그것은 메뚜기처럼 겁이 많지도 아니하고, 대담하여 위험에 직면하여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26.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 "매"(* , 네츠) - 레 11:16과 신 14:15에 나오는 '새매'(falcon)로서 매우 높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날개의 펼침과 그 힘은 새 가운데서 아주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 "남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만'(* )은 주로 남풍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지만(시 78:26;아 4:16) 여기서는 계절에 따른 새의 이동을 나타내는 것같다(렘 8:7). 매는 겨울에 북쪽에 있는 추운 지방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태양을 따라 가는데, 묵은 깃을 벗고 새 털을 입는 털갈이시에는 특히 그러하다. 이것은 매의 슬기이며, 매에게 이 지혜를 주신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 독수리가 - 아마 금 독수리 또는 황실 독수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수리를 가리키는 것 같다(9:26;렘 49:16). 이들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언제나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짓는 것이 특징이다.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 본절은 두 가지를 묻고 있다. 즉, '욥 너의 명령으로 독수리가 높이 치솟느냐?' 그리고 '독수리가 너의 명령으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느냐?' 이다. 이것은 독수리의 힘과 탁월한 능력을 묘사하기 위해 질문되었다. 한편, 성경에서 독수리의 날개침과 높이 솟아오름은 피곤치 않는 새 힘에 비유된다(시 103:5; 사 40:31). 그리고 높은 바위 위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돌보는 습성은 종종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상징하기도 한다(신 32:10,11). 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데 거하며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 히브리어 문장을 직역하면 '그가 낭떠러지에 거주한다'(NIV)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낭떠러지'의 '세라'(* )는 '울퉁불퉁한 돌', '바위', '강하고 높은 성'들의 뜻으로, 본절에서는 매우 가파른 절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렘 49:16). 뾰족한 바위 끝 - 원문에는 '바위의 이빨'(* , 쉔)로 되어 있다. 이는 험하고 울퉁불퉁할 뿐만 아니라 끝이 뾰족한 바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삼상 24:2). 험준한 데 거하며 - '험준한 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추다'(* )는 '감시하다', '조사하다'란 의미의 용어에서 유래한 말로, 강한 산성이나 견고한 요새(stronghold)를 가리킨다. 독수리는 인간과 다른 동물이 근접할 수 없는 요새에서 밤을 묵으며 살아간다. 29.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거기서 움킬 만한 것을 살피나니 - 먹이를 찾는 독수리의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이같은 독수리의 탐색은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이방 민족들의 포악한 모습에 비유되고 있다(신 28:49;합 1:8).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것은 이방 민족을 심판하는 도구로 상징되기도 한다(렘 48:40;49:22). 그 눈이 멀리 봄이며 - '보다'의 '나바트'(* )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감찰하시 듯이(28:24;시 33:13) 예의 주시하여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사실 이와같이 독수리의 눈이 아주 멀리까지 모든 사물을 간파한다는 사실은 학자들에 의해 이미 입증되었다.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있느니라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 '새끼들'에 해당하는 '에프로아흐'(* )는 '싹트다', '움트다', '발하다'란 뜻의 '파라흐'(* )에서 파생된 것으로 새의 새끼를 의미한다(신 22:6). 그리고 '빨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알라'(* )는 그 어근이 불확실하여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혹자는 아랍어와 관련시켜서 '핥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나(Dhorme), 새의 부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그래서 다른 학자는 이를 독수리가 피를 섭취하기 위한 방법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뽑아내다'(extract)란 의미를 제안한다(Pope). 어쨌든 본절은 독수리의 새끼들이 동물의 몸에 있는 피를 먹는 습성이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러한 동물의 잔인한 습성을 말씀하신 이유는 욥이 하나님 당신을 자신있게 판단하고 비난하고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를 집요하게 묻기 위해서인 듯하다. 살륙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있느니라 - '살륙 당한 자'(* , 할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은 자들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아마 전쟁이나 재앙으로 인해 몰살된 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주검들 위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에 의해 언급되기도 하였다(마 24:28;눅 17:37).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본절에 언급된 이유는 아마도 독수리의 본능적 습성이 매우 잔인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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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
| 3. |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 4.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
| 5. |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
| 6. |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
| 7.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
| 8. |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
| 9. |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
| 11. |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
| 12. |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
| 13. |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
| 14. |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
| 15. |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
| 16. |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
| 17. |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
| 18. |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
| 19. |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
| 20. |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
| 21. |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
| 22. |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
| 23. |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
| 24. |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
| 25. |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
| 27. |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
| 28. |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
| 29. |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
| 31. |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
| 32. |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
| 33. |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
| 34. |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
| 35. |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 이다 하게 하겠느냐 |
| 36. |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
| 37. |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
| 38. |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
| 39. |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
| 40. |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
| 41. |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
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 "여호와"(* , 야웨, 아도나이) 하나님에 대한 이 칭호는 본서에서 오직 산문체로 쓰여진 서론(1,2장)과 말미 부분(42장), 그리고 40:1,3,6에서만 사용되었다. '스스로 자존하시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 그리고 그의 거룩하심과 영원 불변하심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폭풍 가운데로서"(* , 민 하세아라)는 '...으로부터'(from)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 )과 (비를 수반하지 않는) '폭풍'을 가리키는 '세아라'(* )가 연결된 구절이다. 팔레스틴에서 보기 드문 이 폭풍, 곧 '회오리 바람'(whirlwind or tempest)은 이미 엘리후가 하나님의 위엄과 관련하여 언급했듯이(37:9) 하나님께서 당신의 등장에 있어서 빈번히 동반 하시는 기상 현상이다(출 19:9-20;삿 5:4,5;시 18:8-16).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하나님의 말씀은 욥이 그렇게 소원했던 바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31:35).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된 뜻이 성취되고 있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논쟁을 종결시키고 욥의 무지에 대해 질책함을 가리킨다.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무지한 말로 - 이것은 지식이 없는, 즉 우둔하고 아둔한 말을 가리킨다. 여기서 지식이라 함은 다양한 경험에 의해 획득되어지는 성찰된 인식이나 분별력, 또는 일반적인 지식을 뜻하는 데 특별히 본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언급이다(호 4:1,6;6:6). 즉, 욥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계획의 다양한 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 "이치"(* , 에차) 지혜.계획을 뜻하며 특별히 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구속의 섭리 또는 계획을 말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욥은 이에 대해서 편파적으로, 그것도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자신의 고난이 들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난색을 표명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공의를 의심하기까지 했다(21, 31장). 따라서 본절은 비록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과 주권적인 섭리를 인간의 짧은 경험과 지식에 맞추려는 욥의 잘못된 태도를 견책하기 위한 질문으로 이해된다.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 이러한 행위는 어떤 어려운 일이나 사건을 대하기 전에 준비하는 노력을 나타낸다(출 12:11;왕상 18:46;렘 1:17). 특별히 본절에서는 전쟁터에 나가기 위하여 용사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항변대로 욥과 논쟁하실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10:2;13:22;23:4-7;31:35).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욥과 논쟁하시려는 의도는 욥의 교만을 꺾으시고, 우주 만물에 대한 당신의 통치와 섭리가 얼마나 기묘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우리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이치를 어둡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크나큰 외곡인 동시에 큰 모욕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주 작은 지식밖에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 하나님의 처음 질문은 당신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기초를 놓다'에 해당하는 '야사드'(* )는 '세우다', '설립하다'란 뜻으로 본질적 기원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최초로 땅을 세울 때'(시 24:2;102:25;잠 3:19)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편, 지구의 형성을 건축물의 기초에 비유한 표현은 본절 외에도 사 24:18;48:13;렘 31:37;히 1:10등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비유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근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 - 욥이 하나님의 창조 작업에 동참하기는 커녕, 그때에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욥은 창조에 대해서 말로만 들었을 뿐, 창조의 계획이나 땅을 세우는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 여기서 '깨닫다'란 말의 히브리어 '비나'(* )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리킨다(대하 2:12,13;잠 4:1). 그리고 '알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야다'(* )는 선험적이라기 보다는 '경험에 의해 습득하게 되는 지식'을 말한다(사 48:8). 그러기에 본절에서 '깨달아 알다'라는 표현은 신(神)과 함께한 경험으로 인식된 지혜나 지식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욥은 창조에 관한 이 같은 지식을 소유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욥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으며, 엘리바스의 말처럼 창조 전에 출생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15:7).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 '도량'의 '밋다'(* )는 '측량하다'란 말의 '메마드'(* )에서 파생한 명사로 '치수', '측량', '척도'란 뜻이다. 그리고 본절의 '정하다'에 해당하는 '숨'(* )은 원래 '놓다', '두다', '지정하다'란 뜻으로 '표시하다', '한정하다', '그리다'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이땅의 둘레와 넓이와 길이 등의 치수를 누가 처음부터 표시하여 그토록 정확하게 그려 놓았는가?'란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두말 할 나위없이 '하나님밖에 없다'이다. 세계 만물의 창조는 하나님의 신적(神的) 작정과 의지에 따라서 매우 질서 정연하게 확정된 것이다(Rawlinson).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 '준승'을 나타내는 '카우'(* )는 '척량 줄'(measuring line)을 말하며, '띄우다'에 해당하는 '나타'(* )는 '늘이다', '내뻗다', '펴다'란 뜻으로 척량 줄을 지구 위에 가로질러 놓는 것을 가리킨다. 즉, 본절의 표현은 건축 공사에 들어 가기에 앞서 평면을 헤아려 보기 위해 먹줄을 치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은 지구의 창조가 하나님 당신의 정확한 의도와 작정에 따라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 같다.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 '주초'에 해당하는 '에덴'(* )은 '받침'을 가리키는 것으로(출 26:19;아 5:15) '건물의 기초' 또는 '주춧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와 같이 땅에 주초가 있다는 사상은 이미 욥의 변론에서 발견된 바 있다(9:6). 그러나 욥에게는 이와 동시에 땅이 공간에 자유롭게 달려 있다는 사상도 있었다(26:7).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 창조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의 섭리가 하시는 일인 종말까지 맞아들이도록 계속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치수도 결코 깨뜨려지지 아니할 것이다. 구속의 사업도 땅의 견고함보다 못지 아니하게 튼튼하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기초와 주춧돌이 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땅과 같이 굳게 서 있다.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 고대의 공동체에서는 신전(神殿)과 같은 건물의 주초를 놓거나(스 3:10,11) 머릿돌이 놓여질 때(슥 4:7),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축제적인 의식을 가지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Hartley, Pope). 이와같이 지구의 모통잇돌이 놓여졌을 때엔 하늘의 새벽 별들이 하나님의 창조 솜씨와 그 능력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다(시 19:1;사 12:6;24:14). 여기에 언급된 '새벽 별들'은 금성이나(사 14:12) 오리온 성좌 같이(사 13:10) 밝고 빛나는 별들을 의미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천상의 군대, 곧 천사들을 비유하기도 한다(사 40:26). 8.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 본절에 언급된 '태'(* , 라함)는 태아를 품고 있는 여자의 자궁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지구의 내부를 비유하는 것 같다(Lange). 그리고 '넘쳐 흐르다'의 '기아흐'(* )는 '터지다', '벗어 나오다', '내 뿜다'란 뜻으로 바닷물이 용솟음쳐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바닷물이 땅 속에서 솟아올라 땅 위로 넘쳐 흐르는 것을 말한다(창 7:11;8:2). 따라서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마치 땅과 물이 혼돈 가운데서 뒤섞여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는 듯하다.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 '문'(* , 데레트)은 일반적으로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두 짝의 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막다'의 '사카크'(* )는 '울타리를 두르다', '뚜껑을 덮다', '방어하다'란 뜻으로 바닷물의 경계를 한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다와 땅을 구분하기 위한 창조 작업을 나타내는 듯하다(창 1:9). 즉, 물의 경계를 정하여 그 정해진 처소에서 넘치지 못하도록 한정하신 것을 말하는 것 같다(시 104:6-9). 한편, 본절의 표현과 유사하게 예레미야는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았다고 기록한다(렘 5:22). 때문에 파도가 흉용하고 바닷물이 뛰놀더라도 그 정해 놓은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의 기자들은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그분의 권능과 능력을 나타낸다.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 비유된 바다가 구름으로 옷을 입히운다는 말이다. 이것은 욥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관심을 묘사한 것으로, 창 1:6이하의 사건을 시적(詩的) 어법(語法)으로 묘사한 것이다(Lange, Rawlinson).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 여기에서 '강보를 만들다'에 해당하는 '하탈'(* )은 '강보로 싸다'란 의미로 하나님께서 바다를 매우 세심하게 다루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표현한다(겔 16:4). 이는 곧 모든 바다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예속되어 지배받고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Rawlinson). 10.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계한을 정하여 - '계한'에 해당되는 '헤크'(* )는 어떤 특정한 '경계' 또는 '한계'를 말한다. 그리고 '정하다'의 '솨바르'(* )는 원래 '깨뜨리다'(KJV), '산산히 부숴지다'란 뜻이나, 여기서는 '선을 긋다'(F.Perles), '한계를 지정하다', '규정하다'(KJV, RSV)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바다의 한계를 설정하여 놓으신 하나님의 정확한 의도를 암시하는 듯하다. 문과 빗장을 베풀고 - '문과 빗장'은 큰 성문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대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도구로 언급된다(Lee). 그리고 '베풀다'의 '심'(* )은 '놓다', '두다', '위치시키다'란 뜻으로 바다를 막는 도구를 설치하여 두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바닷 물이 땅 위에 넘치지 않도록 그 한계를 지정하셨을 뿐만아니라, 구체적으로 바다의 넘침을 막기 위해 도구를 설치해 놓으셨음을 말하고 있다(잠 8:29;렘 5:22).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 그 몸은 굉장히 크고 그 움직임은 때때로 지극히 사나울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장악하여 견제하신다. 그 파도가 높이 올라가고 그 조수가 뒤집혀 구르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이상은 경거망동하지 못한다.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 '그칠지니라'에 해당하는 '쉬트'(* )는 원래 '두다', '놓다', '배열하다'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기에 있게 하라', 또는 '멈춰 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절은 바닷물이 폭풍으로 인하여 아무리 거세고 흉용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해안선을 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즉, 이것은 바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바다가 그의 명령에 굴복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시 89:9). 12.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 본절은 '네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너의 명령에 따라 아침이 매일 어김없이 찾아 오게 명령하였느냐?'란 질문이다. 그러나 아침은 욥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 왔고 그가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은 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더욱이 욥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 '새벽'은 동트기 직전을 가리키는데, 혹자는 이것을 루가릿 신화에 나오는 새벽별 신과 연관시키기도 한다(Pope).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히 '여명을 가져오는 새벽'에 대한 표현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콤'(* )은 어떤 사물이 있어야만 하는 장소, 곧 본절에 의하면 새벽의 위치를 가리킨다. 그래서 본문은 새벽이 자기의 정해진 위치를 알고 그곳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으면서 아침의 빛을 비취게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비록 동트는 시각과 장소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새벽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어김없이 아침이 오게 하는 것이다. 13.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 '땅끝'에 해당하는 '카네포트 하에레츠'(* )는 원래 '땅의 옷깃'(RSV, skirts of the earth)이란 뜻이다. 이것은 땅이 옷을 입는 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아마 새벽이라는 옷이 땅을 덮어서 가리우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비취게 하다'에 해당하는 '아하즈'(* )는 '붙잡다', '꽉 잡다'(KJV, RSV, take hold), '소유하다'란 뜻으로 땅의 가장자리를 붙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본절은 어떤 것을 떨어 내기 위한 준비 작업을 암시하는 데, 이는 새벽이 오므로 날이 밝아와 온 땅까지 순식간에 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 '구축하다'의 '나아르'(* )는 '흔들다', '떨치다'란 듯이다. 이것은 새벽의 여명이 온 땅에 비치게 되면 그들의 정체가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놀라서 요동하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새벽은 어두운 밤의 옷을 빛으로 벗겨냄으로써, 마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처럼 악인을 흔들어 겸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14.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 밤에는 일정한 형태가 없고 명료하게 보이지 않았던 지구가 새벽의 여명이 비췸으로써 붉은 빛으로 인친 것 같이 그 모양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진흙'(* , 호메르)에 도장을 새긴 것처럼 확연하게 드러난다. 만물이 옷같이 나타나되 - '나타나다'에 해당하는 '야차브'(* )는 원래 '서다', '자신을 보이다'란 뜻으로 사용되었다(KJV, stand). 새벽빛으로 아침이 오면 지구의 만물은 자신을 내보이는데, 찬란한 옷과 같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며 나타난다는 것이다(Lange). 이처럼 새벽은 만물의 모양과 색깔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빛나게 한다.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 바 되고 - '금한 바 되고'에 해당하는 '마나'(* )는 '부정하다', '허락하지 않다', '삼가다'란 뜻으로 어두움을 사랑하는 악인들에게는 빛이 금지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광명의 아침을 깨닫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빛의 두려움 때문에 어두움 속으로 도망쳐서 숨는다(24:16).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 하나님이 그의 복음 안에서 "자기의 팔로 힘을 보이시고 교만한자들을 흩으셨으며 권세 있는 자들을 끌어 내리셨음"이 이 빛에 의해 말미암았음을 나타내 준다. 이 빛에 의해 그는 악인들을 떨어뜨리려고 의도하시며, 악 그 자체를 지상에서 떨어내사 그 악의 높은 팔을 꺾어 버리시려고 계획하고 계신다. 16.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 '근원'에 해당하는 '네베크'(* )는 보통 '샘물'이나 '샘'을 뜻하나(28:11), 여기서는 바다와 연결된 감추인 수로(channel), 또는 원천이나 심연을 가리킨다(창 7:11;49:25). 이것은 욥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하 세계의 신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 "깊은 물밑"은 여기에서 '깊다'란 말은 주로 바닷속의 깊은 수원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겔 26:19;욘 2:5). 그리고 '물밑'으로 번역된 '헤케르'(* )는 원래 '찾다', '탐구하다'란 뜻의 '하카르'에서 파생된 단어로(8:8;11:7) 탐색되어야 할 어떤 영역을 가리키는 데 종종 사용되었다(시 95:4).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바다 밑의 우묵한 곳(NIV, RSV, recesses)이나 사람을 삼키는 심연을 묘사하는 듯하다.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 "사망의 문"은 '깊은 물밑'을 언급한 뒤에 바로 '사망의 문'으로 이어지는 것은 26:5,6의 경우와 같다. 여기서 '사망의 문'은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음부 앞에 있는 문, 즉 '음부의 문'이다(시 9:13;107:18;사 38:10). 이것은 엄청난 물이 모여 있는 가장 깊은 '깊은 물밑' 저편에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 '그늘진'의 '찰마웨트'(* )는 '죽음의 그림자'(KJV, NIV, the shadow of death) 또는 '짙은 어두움'(RSV, deep darkness)으로 해석된다(3:5;시 88:12). 이것은 사망의 문으로 가는 길이 죽음의 그늘로 덮여서 흑암과 같이 캄캄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시사한다(10:22). 또한 사망의 문을 보기 위해서는 그 길을 지키는 죽음의 그림자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도 더불어 암시한다. 그러나 욥은 사망의 문을 보기는 커녕 그 문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인식 할 수 없었다. 18.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 본절에 언급된 '측량하다'에 해당하는 동사 '빈'(* )은 무엇을 심사 숙고하여 엄밀하게 관찰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완전한 이해나 지각을 말한다. 따라서 본절은 '지구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여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 또는 '땅의 영역에 대하여 세밀히 관찰하고 그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느냐?'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 우리는 지구 위에 우리의 거주지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지구를 인간의 자손에게 주셨다. 그러나 여태껏 누가 그것을 측량해 본 적이 있으며, 몇 에이커가 되는지 설명할 자가 있었느냐? 그것은 우주에 비하면 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작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 치수를 밝히는 데에 정확할 수가 없다. 19.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 아침에는 빛이 흡사 동풍의 날개를 타고 나르듯 지평선 너머 공중의 산지 사방으로 순식간에 자신을 쏘아 대며, 너무나 신속하게, 너무도 강렬히 움직이면서 밤의 어두움을 흩어지게 하는데, 이것은 마치 동풍이 구름을 몰아내는 것과 같다. 새벽 빛이 나오며 동시에 밤의 어두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지 우리의 명령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다. 흑암의 처소 - '흑암'의 '호쉐크'(* )는 태초의 어두움(창 1:2), 또는 창조 첫 날에도 존재했던 빛과 서로 분리되었던 어두움을 가리킨다(창 1:4,5). 그런데 이 흑암 역시 빛처럼 자기의 정해진 처소(* , 마콤)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20.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 본절에 언급된 '지경'(* , 가발)은 특별히 한정된 어떤 경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인도하다'의 '라카흐'(* )는 '가져오다', '데려오다'란 뜻이다(창 27:13;42:16). 그러기에 본절은 '네가 빛과 어두움을 그것들의 한계로 데려올 수 있느냐?'란 의미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빛과 어두움이 각자의 처소에서 나와 낮과 밤의 일을 마치고 다시 그들의 처소로 돌아가는 것을 인도 할 수 있느냐란 말이다. 그러나 욥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그것들을 데려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21.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 본절은 매우 역설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욥이 창조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질문한 비밀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엘리바스의 발언 처럼(15:7) 욥을 조롱하는 말투로 보인다(Lange).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 '너는 빛과 어두움의 한계를 정할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는 과정과 너 자신의 기원까지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은 욥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대화시켜 주는 반어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이 창조 전에 태어나지 않았고, 또 그때의 일들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 '곳간'의 '오체로트'(* )는 '창고'를 뜻하나, 종종 하늘의 보물 창고로도 언급된다(신 28:12). 그러나 여기서 눈 곳간은 어떤 특별한 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많이 적재되어 있는 구름에 대한 시적(詩的)인 표현으로 쓰인 것이다(시 135:7;렘 10:13).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 구름 속에서 눈과 우박이 생산되고 있으며, 거기서 그들이 너무나 엄청나게 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이나 우박이 창고에 저축되어 있다고 표현하셨다. 눈이나 우박이 하나님께서 자기 대적이 자기 백성의 원수들인 자들과 대항하며,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실 때에 자기 섭리의 목적에 소용이 되도록 안성맞춤으로 적시에 오는 때가 종종 있다. 23.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 역사적으로 우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출 9:22-26;학 2:17). 또한 악인을 징벌하는 수단으로도 언급되었다(시 18:12,13;78:47;105:32;사 28:17;30:30;겔 13:13). 그리고 눈 역시 인명과 곡식과 초목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눈과 우박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필요할 때에 사용된다.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 그것들이 "전쟁의 격투의 날" 곧 환난 때를 대비하여 화약이나 무기와 탄약과 양식처럼 창고에 저장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기만 한다면 뇌성 벽력이나 천사의 검으로 하는 것보다 못지 아니하게, 눈과 우박으로 효과적인 싸움을 하실 수 있다. 24.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 '광명'의 '오르'(* )는 하반절의 '동풍'과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이유로 인해서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즉 (1)바람(Tur-Sinai, Driver&Gray), (2)안개 또는 우주의 광대한 수원지(Dhorme, Pope, Rowley), (3)번개빛(Scholttmann), (4)뜨거운 열기(NEB) 등 여러가지로 번역이 시도되었으나, 여기서는 원문대로 (5)일반적인 빛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Delitzsch, Henry, Rawlinson). 왜냐하면 본절에 언급된 '뻗치다'의 원어 '할라크'(* )가 '갈라지다'(KJV), '흩뜨리다'(NIV), '분배하다'(RSV)란 뜻으로 빛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과 사람들 위에 빛을 나누어 분배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Stanley). 그런데, 욥은 빛이 분배되는 길을 알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본문의 역설적인 의미이다.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 '동풍'(* , 카딤)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Sirocco) 끔찍한 파멸을 초래하는 황폐한 바람이다(27:21;시 48:7). 그런데 이 동풍이 땅에 흩어져 부는데 그것도 제각기 퍼지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절의 표현은 자연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제와 지배력을 암시하는 것이다. 25.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 '폭우'(* , 쉐테프)는 '넘쳐흐르는 물'을, 그리고 '길'은 도랑이나 수로(水路)를 가리킨다(NIV, RSV, channel). 따라서 본절은 홍수가 땅에 쏟아져 범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혹자는 '홍수가 재빨리 흘러가도록 개천을 팠느냐?'라는 질문으로 보고, '길'을 팔레스틴이나 아라비아의 '와디'(Wadi)로 이해한다(Rawlinson). 그러나 이는 하늘의 물줄기가 수도관의 물처럼 땅으로 쏟아지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Delitzsch). 그렇다면 이 길은 물줄기가 내려오는 공중의 수로를 시적(詩的)인 의미로 표현한 것이 된다.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 그는 번개와 천둥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들은 제멋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길로 간다. 번개와 천둥이 여기에 언급된 것은 그가 "비를 위해 번개를 예비하시기" 때문이다(시 135:7). 26.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사람 없는 땅에 -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우주에 충만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즉 비는 의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내려질 뿐만 아니라(마 5:45),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도 은혜롭게 내린다.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 조류와 파충류 등 인간 이하의 생물들까지 그 비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이러한 본절의 표현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관심을 나타내는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가 전 우주적임을 증명된다. 27.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 그곳 광야에는 생산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산업보다 더 먼 곳까지 미친다. 만약 인간이 열등동물이나 식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친절심보다 하나님이 하등 동물에게 베푸시는 자비심이 더 크지 못하다면, 인간보다 하등의 피조물은 죄다 결단이 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술이나 수고 없이도 땅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으시다(창 2:5, 6).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 '연한 풀'(* , 데쉐)은 '움트다', '싹이 트다'를 가리키는 '라솨'(* )에서 유래한 말로 싱싱하고 새로운 잔디, 또는 푸른 초목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게 하다'의 히브리어 '차마흐'(* )는 어린 싹이 나오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안 된 원문의 '모차'(* )가 원래 '원천이나 광산 같은 곳'을 가리키지만(28:1), 여기서는 싹이 나오도록 하는 행위(KJV, spring forth;RSV, put forth)와 관계된다. 그러나 혹자들은 이 히브리어 '모차'가 본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차메'(* ), 곧' 메마른 (땅)'으로 해석한다(Driver & Gray, Pope). 28.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비가 아비가 있느냐 - 비에게는 아비가 없다. 하나님은 자기의 권능으로 비를 생산하신다. 그는 그것을 다스리시고 그것에게 명령하시며, 그가 기뻐하시는대로 그것을 사용하신다.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 그는 자연의 하나님으로서 작은 이슬 방울까지도 땅 위에 내리시며,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그는 우리 위에 의로움의 비를 내리신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친히 이슬처럼 되어 주신다(호 14:5, 6; 미 5:7 참조) 29.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 영하의 기온에서 물이 얼음으로 변하지만 이는 단지 과학적이고 현상적인 지식이다. 얼음은 피조물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다.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 공중에서 땅으로 내리는 서리 역시 날씨 탓이 아니다. 그것도 엄연히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30. 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 '굳어지다'에 해당하는 '하바'(* )는 문자적으로 '숨다', '감추다'란 뜻이다. 즉 물이 얼음으로 변할 때 물 자체는 사라지는데, 그것은 물이 얼음 속으로 숨는 것과 같다(KJV). 그런데 이와 같이 동결 상태를 표현해 주는 '하바'를 '하마'(* )와 관련시켜서 '딱딱해지다'(RSV, hard), '얼음이 얼다'라는 의미로 그 어느 때부터인가 확대 해석하였다. 31.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 '묘성'(* , 키마)은 황소 자리에 있는 일곱 개의 별무리를 말한다(9:9). 본절에 언급된 '묘성'의 '묶는것'은 묘성을 하나의 별자리로 묶는, 보이지 않는 띠를 가리킨다(Lange, Rawlinson). 결국 본절은 여러 별들을 모아 한 성좌(星座)로 연결시킬 수 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 '삼성'(* , 케실)은 오리온 성좌의 별들을 가리킨다. 70인역(LXX)은 이를 '오리온의 울타리를 열겠느냐'로 번역하지만 그 의미는 똑같다. 32.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 일반적으로 별들은 시간이나 계절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만물의 통치에도 언급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별들의 움직임이 지상의 사건에 영향을 주고, 일기를 예측하게 해준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그 별들은 신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Hartley).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하늘의 천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완전히 순복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즉, 하나님은 별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것을 통치하시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시 147:4;사 40:26). 이처럼 때를 따라 별들을 불러 나오게 하여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운행시키는 일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 하나님은 "별들을 그들의 이름대로 부르시는 분"이시다(시 147:4). 하나님은 별들을 전투에 데리고 나오실 수 있으며(별들이 시세라에게 대항하여 싸웠을 때 하나님이 행하셨듯이), 그들이 자기의 명령을 내린 공격에 참가하도록 인도해 내실 수가 있다. 33.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 "하늘의 법도"(* , 훅코트 솨마임) '법도'의 '훅카'(* )는 '새기다', '기록하다'의 '하카크'(* )에서 파생된 명사로 영원한 구속력이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구례'를 가리킨다(시 148:6). 여기서는 성좌(星座)들의 출현이나 사라짐 등의 노정과 관련된 '낮과 밤의 교체'(렘 31:35;33:25), 또는 '일년 사계(四季)를 계속되게 하는 법칙'(창 1:14)을 의미한다(Driver & Gray, Lange).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 '권능'에 해당하는 '미쉬타르'(* )는 여기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는데, 대개 '하나님의 통치'(NIV, God's dominion)로 이해한다. 그러나 몇몇 주석가들은 '미쉬타르'의 어원을 아카드어 '마쉬타루'(mastaru, 문서)에서 찾는다(Dhorme, Delitzsch, Pope). 즉, '마쉬타르'를 '하늘의 문서'(the writing of the sky)로 이해하고 그것을 별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34.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 너는 네 목소리를 구름에, 즉 하늘의 물병인 구름에게 올려 풍부한 물이 네게 덮이게 하며, 네 밭이 건조하고 가물어 탈 때에 그 밭에 물을 줄 수 있겠느냐?" 만약 우리가 비를 바라서 기도하려고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올리면 우리는 비를 얻을 수 있다(슥 10:1).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 만약 우리가 강우를 요구하기 위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구름에 올린다면, 구름은 자기들이 우리의 지시대로 순순히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고 즉각 대답할 것이며, 우리는 비를 얻지 못한 채 지날 것이다(렘 14:22). 하늘은 만약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려 하신다면 땅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호 2:21). 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 이다 하게 하겠느냐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 "너는 번개를 보내어 그들이 네 심부름을 하러 가게 할 수 있으며, 네가 원하는 일을 실행하게 할 수가 있느냐? 욥은 그가 자기의 대적들을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데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번갯불을 단 한 번이라도 동원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 이다 - 욥은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를 자신이 원하는 때에 보내기 위해 명령할 수 없다. 더욱이 번개가 욥의 명령과 부름에 순종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욥이 갖고 있는 인간의 제한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 영혼을 만드신 그 분만이 영혼을 아시며 그들을 어떻게 다루실지 그 방법을 알고 계신다. 그는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선하고 온전하신 은사의 아버지로서, 참 지혜를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모든 지혜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보다 지혜롭다고 자부할 것인가? 아니, 우리는 우리에게 총명을 주신 분이 정한 한계 이상으로, 우리 영역을 초월하여, 지혜롭다고 주장할 것인가?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의 능력과 기능은 인간의 놀라운 사고 행위와 함께 자신을 복된 천사들과 어떤 연합을 이루게 한다. 그런데 이 빛은 빛의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오겠는가? 37.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 누구라도 자기의 모든 지혜로써 "구름의 수효를 세어" 보겠다고 기도할 자가 있느냐? 혹은(이렇게 해독할 수도 있다) 어느 누가 "구름의 본성을 밝히 말하며 묘사할 수 있는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솨카브'(* )는 원래 '내려놓다', '눕히다'란 뜻으로 하늘의 병을 기울여 비를 쏟게 하는 것을 묘사한다. 38.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 누가 지혜로워서, 티끌을 진흙덩이로 만들고, 그 진흙덩이들을 서로 달라붙게 할 수 있느냐? (표준새번역)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 '붙게 하다'의 '다바크'(* )는 물체가 서로 견고하게 달라붙어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흙덩이'(* , 레게브)가 서로 달라붙는 것은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림으로써만 가능하다. 욥은 단단하게 굳은 땅 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하나님은 욥의 제한성을 재강조한 것이다. 39.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 너는 지상에서 네가 가장 최고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줄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져 보자. 너는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너는 네가 한 때 소유하였던 가축을 가지고 스스로 자랑하느냐? 즉 너는 네 구유에서 먹이던 소와 나귀와 약대의 소유주로서 그 가축의 소유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네가 사자와 젊은 사자들이 먹이를 기다리며 그 굴에 웅크리고 있을 때에 그 사자들의 부양을 맡겠다고 나서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 본절에 나타난 '식량'의 '하이야'(* )는 생명, 곧 살아있는 것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식욕' 또는 '배고픔'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 네게는 없기 때문이다. 또 너는 그 일을 감히 하지도 못한다. 네가 그들에게 먹이를 주러 다가가면 그것들은 네게 갑자기 달려들어 움켜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생물의 식욕을 충족시켜 줄 수단을 가지고 계신다. 가장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동물의 욕구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계신다. 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 네가 사자와 젊은 사자들이 먹이를 기다리며 그 굴에 웅크리고 있을 때에 그 사자들의 부양을 맡겠다고 나서겠느냐? 너는 그 일을 해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 네게는 없기 때문이다. 또 너는 그 일을 감히 하지도 못한다. 네가 그들에게 먹이를 주러 다가가면 그것들은 네게 갑자기 달려들어 움켜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 하나님의 섭리가 베푸시는 무한한 은혜를 보라. 생명을 주신 이상 그곳이 어디에서든지 생명을 유지하도록 생계도 주신다. 인간에게 사역할 수 없는 짐승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위험한 동물에게까지 그렇게 해 주신다. 또 하나님의 섭리가 행사하시는 절대 주권을 살펴 보라! 섭리는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의 부양을 위해 피살되는 것까지도 허용하신다. 해를 끼치지 않는 양들이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워 주기 위해 갈기갈기 찢김을 당한다. 그래서 사자들의 잔인함을 벌하기 위하여 사자는 때때로 먹이가 없이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 흔히 어린 까마귀가 고통스러워하게 하는 것들을 살펴 보라. "그들은 고기가 없어 방황한다." 어미 까마귀들은 새끼 까마귀들을 소홀히 하며, 다른 새들이 제 새끼에게 하듯 제 새끼들을 먹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딴 동물을 약탈하여 육식하는 동물은 보통 제 새끼에게는 잔인하며 자연 법칙에 어긋나게 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까마귀'(* , 오레브)는 강한 짐승인 사자와 대조되어 미개하고 볼품없는 것을 묘사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이나 강한 짐승뿐만 아니라 매우 하찮고 쓸모없게 보이는 동물에게까지 임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시 147:9).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사하시는 일들을 보라. 이런 저런 모양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은 성장하게 되고 성숙하게 된다. 까마귀 새끼조차 이렇게 돌보시는 분이라면 자기 백성이나 그들의 것들을 결단코 궁핍하게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많은 동정 중 단 한가지 예에 불과하며, 우리의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밖에도,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하시는지 능히 짐작하게 해 준다.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 '예비하다'란 말은 까마귀들의 먹이를 미리 예비하여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배려와 관심을 나타낸다. 까마귀를 포함한 모든 동물을 때에 따라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욥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일들을 행하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눅 12:24에서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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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
| 2. |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
| 3. |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
| 4. |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
| 5. |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
| 6. |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
| 7. |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 8. |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
| 9. |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
| 10. |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
| 11. |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
| 12. |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
| 13. |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
| 14. |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
| 15. |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
| 16. |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 가 아느냐 |
| 17. |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
| 18. |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
| 19. |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
| 20.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
| 21. |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
| 22. |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
| 23. |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
| 24. |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
1.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 '떨며'의 '에헤라드'(* )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기쁨이나 슬픔 혹은 두려움으로 인해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가령 '땅이 흔들린다'는 표현은 마음의 떨림에 대한 시적(時的)인 묘사인 것이다(사 10:29;41:5;겔 26:18). 천둥과 번개는 보통 함께 일어 나는데 하나는 귀에, 또 하나는 눈에 감각을 준다. 그것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 권능과 두려움에 대한 지각할 수 있는 현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신의 교훈은 귀를 통해 마음으로 전달되며, 눈을 통해서는 그의 작품인 자연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교훈이 전달된다.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 '떠나느니라'(* , 이타르)는 '뛰어오르다', '펄쩍 뛰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나타르'(* )의 파생형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36장 끝부분에서 천둥과 번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비록 자주 천둥소리를 듣고 번개를 흔히 보아왔을 망정 아직도 여전히 그것들은 내게 두려우며, 나의 온 마디가 떨도록 만들어서, 내 마음은 마치 자기 처소에서 도망치듯 놀라 고동을 칩니다"고 엘리후는 말한다. 천둥과 번개는 악인들에게 두려운 바가 되었다. 칼리굴라(Caligula) 황제는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하여 한 구석에 달려가 숨거나 침상 아래로 뛰어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아주 심하게 놀라는 자들을 "우레에 놀란 자"라고 말한다.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조차 뇌성벽력은 무섭다고 생각한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 - 그것은 세상을 처음으로 지으신 그 전능하신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까닭이다. 그 말씀은 벽력이라고 일컬어진다. "당신의 뇌우 소리에 그들은 빨리 갔도다." 곧 하수들이 하나님께서 "한 곳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시자 서둘러 갔다(시 104:7). 주로 창조주께서 잠자고 있는 인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각성시켜서 그들 인간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려는 창조주의 의도가 있는 것같이 보여진다.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 '듣다'라는 뜻을 가진 '솨마'(* )가 두 번 반복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항상 듣다'(시 6:9)라는 뜻과 '세심하게 듣다'(13:17)라는 뜻을 아울러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반부의 '하나님의 음성'은 3절의 '그 소리'와 함께 표면적으로는 천둥 소리를 가리킨다. 3.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 '천하'(* , 하솨마임)는 문자적으로는 '하늘들'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하늘 끝에서 하늘 끝으로, 즉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시사한다. 또한 이 단어는 하반절의 '땅끝'과 대구를 이루어 온 천지를 모두 포함하는 능력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퍼치시며'(* , 이쉬레후)는 천둥 소리를 나타내는 지시형 어미 '후'(* )와 '자유롭게 되다', '묶이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솨라'(* )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천둥 소리가 온 하늘을 뒤덮어 진동시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 뇌성이 울리면 "온 하늘 아래" 펼쳐져서 원근에서 들린다. 그와 같이 번개도 또한 "땅 끝까지" 발사되어 나간다. 그들은 하늘 아래 한편에서 나와 가지고 저쪽 다른 편까지 비췬다(눅 17:24). 동일한 번개와 천둥이 일순간에 아주 먼 곳까지 이르고, 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이들 경보가 울리는 날 울리고 펴저 찾아 가지 않을 장소는 없다.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 천둥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나면, 그 위엄찬 천둥소리가 울립니다.(표준새번역성경) 물기 있는 구름 속에서 만들어진 불빛과 음성은 실제로는 동시적이다. 그러나 빛의 운동은 소리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천둥소리를 듣기 전에 번개를 보게 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대포 소리를 듣기 전에 멀리서 쏘는 대포의 불빛을 보는 것과 같다. 천둥은 여기서 "하나님의 위엄의 소리"라고 칭하는데, 이것은 그가 뇌성 벽력에 의하여 자기의 초월적인 권능과 위대하심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 그들의 생성과 운동은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향에서 생기며, 우리에게는 우발적이고 제어하지 못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지시하고 지배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 '번개 빛'으로 번역된 말은 원어상 목적격 접미사인 '그들'을 문맥의 뜻에 맞게 '번개 빛'으로 이해한 것이다. 번개 빛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빛을 발한다. 그것들로 하여금 제 진로를 취해 가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즉 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가라" 하면 그들은 가고, "오라" 하면 그들은 온다. "이것을 하라"고 명하시면 그들은 그것을 행한다. "그는 보통 천둥 후에 따라 오는 비와 소나기를 멈추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이것에 대해서는 36:27, 29 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그의 음성이 들릴 때"에 땅 위에 소나기를 쏟으실 것이다. 뇌우는 쓸어 가는 비이며 그는 그들을 위해 "번개를 만드신다"(시 135:7). 5.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 기이하게(* , 니플라오트)는 '기적', '불가사의한 일', '경이로움'을 뜻하는 명사 '펠레'(* )에서 파생된 단어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사실이나 현상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 단어는 하반절의 '헤아릴 수 없는'과 유사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 하나님이 명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표준새번역성경) 그가 펴시는 섭리에는 우리의 반대나 대항이 도무지 문제가 안 될 만치 너무나 강성하시고 너무 크신 데가 있으며, 우리가 따지거나 언쟁하기에는 너무나 높고 깊은 데가 있다는 것이다.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 "명하여"(* , 이오마르) 문자적으로는 '그가 말하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그것처럼 단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실제적인 힘을 지닌 창조적인 능력의 표출임을 보여준다. 천둥과 번개는 보통 여름에 생기지만, 그는 여기서 겨울철 날씨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는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고 하신다." 그는 눈이 어디에 내릴 것이며, 거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쌓이고 내릴지 위임하고 명령하며 지정하신다. 비와 큰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 그가 말씀하신 즉 그것은 그대로 시행된다. "빛이 있으라"고 하신 세계의 창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일반 섭리가 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눈을 명하여 땅 위에 내리라"고 하신다. 말과 행동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비록 각기 다른 별개의 두 사항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명령과 시행이 다른 두 가지 일이 아니다. 그가 말씀을 하시면 그가 원하는 대로 "작은 비"는 내리고 "큰 비"는 쏟아진다. 7.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 "손을 봉하시나니"는 '사람들의 손을 묶어 놓으신다'라는 뜻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손을 놓아 멈추게 하신다는 의미이다(NIV, he stops every man from his labor). 이런 상태는 6절의 '눈', '비'와 관련되어 있는데, 기후의 변화로 인하여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주체적인 행위의 결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하반절에 나온다.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신다." 서리와 눈 속에서 날씨가 지독하면 농부나 상인이나 여행자도 그들의 생업과 사업에 종사할 수가 없다. 쟁기는 방치되고, 선적하는 일도 중단되며,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아무 것도 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들의 일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은 "그의 일을 알 수 있게 되며,"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쉬면서 그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상기하며 그 능력을 인정하도록 하시기 위해 눈과 비를 땅에 내려 일을 하지 못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일로 인하여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며, 그들의 손들을 봉하는 일기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참작함으로써, 그의 다른 놀라우시고 크신 일들을 칭송하게끔 인도된다. 8.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 자연 현상의 변화(계절의 변화)로 말미암은 결과들은 인간에게(7절)만 이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짐승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때문인 것이다. 즉, 모든 생물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능력에 좌우되어 생(生)을 영위해 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 굴에 머물며 - 이것은 야수를 의미하는데 들짐승들은 야생으로 지내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숨을 곳을 찾아야 하며, 그들은 본능으로 피난처를 찾아간다. 한편, 길든 짐승은 사람에게 유용하므로 우리도 지어 주고 사람의 보살핌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출 9:20). 나귀에게는 굴이 없으나 주인의 말구유가 있다. 나귀는 그리로 가면 안전하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배불리 먹을 수도 있다. 자연은 모든 피조물에게 폭풍우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9.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 '밀실'(* , 헤데르)은, 우가릿 신화에는 엘(신)의 비밀 스러운 거처로 표현되었다(Pope). 이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폭풍우를 저장해 두는 곳으로 여겨졌다(Rawlinson). 한편 원문상에는 '남쪽'이라는 표현이 없으나 개역 성경은 9:9의 표현과 같은 것으로 보고 '남쪽'의 의미로 이해한 듯하다(KJV, NASB도 이렇게 번역함). "은밀한 처소에서 회오리 바람이 나온다."(이렇게 해독할 수도 있다) 이 강풍은 빙빙 돌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그것이 불어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바람은 용어 그대로의 의미대로 "밀실" 즉 "은밀한 방"에서 나온다.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 "북방"은 히브리어 '메자림'(* )은 기상학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이것은 '흩어버리다', '쫓아버리다', '퍼지다'라는 뜻인 '자라'(* )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단어는 미친듯이 몰아치는 북풍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입김'으로서 바람에 대한 시적(時的) 표현이다. 서리의 원인을 살펴 보라. "그것은 하나님의 호흡에 의해 생긴다." 즉 그의 권능의 말씀과 그의 의지와 명령에 의해 생긴다. 혹은 다른 자들이 이해하듯 우레가 하나님의 목소리이듯 하나님의 호흡인 바람에 의해 생긴다. 그것은 북방에서 나오는 바람 곧 찬, 얼게 하는 바람으로 인하여 생겨난다.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 북쪽에서 부는 찬바람으로 인하여 기온이 떨어져 얼음이 얼게 됨을 표현한다. 그 결과를 보자. "물의 넓이가 좁아진다." 즉 퍼져서 자유로이 마음대로 흐르던 하수가 결정체의 착고에 묶여서 응결되고, 마비되고 구속되 버린다. 이것은 진귀하다면 진귀하고 기적과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본보기이다. 결국 여기서 엘리후는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까지도 자신의 수중에 두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11.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 여기서도 역시 고대의 문헌으로서는 매우 과학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짙은 먹구름 위에 습기를 더하신다'는 것으로 비가 오는 원인을 묘사하고 있다. 물을 머그믄 구름은 스스로 소모하며, 그들이 용해되고 분해되어 버리는 비로 인하여 소모되어 버린다. 다 쓰고 없어져서 더 이상 쏟을 것이 없을 때까지 물을 뿌린다.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 "번개 빛의 구름"이는 '번개를 간직하고 있는 구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과학에서 번개는 서로 다른 극성(極性)을 가진 구름끼리의 충돌로써 설명되는데, 여기서도 번개와 구름이 관련되어 있다는 분명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2.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 구름의 움직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운행하심에 따라 좌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곳에 비를 내리신다(Rawlinson). 빽빽한 구름은 바람의 날개에 실려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다니며 가는 곳마다 소나기를 내린다. 이런 수단으로 그는 "한 도시에 비를 내리게도 하고 다른 도시에는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하신다"(암 4:7, 8). 이와 같이 그의 뜻은 "지구 위의 세계상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 비는 하나님의 의향에 의해 인도되며 규제되고, 하나님의 뜻은 가장 우연한 일처럼 보이거나 가장 미세한 것 같은 사물에 이르기까지 확대 적용된다. "그들은 그가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한다." 폭풍이나 그 폭풍에서 밀려 다니는 구름도 그의 말씀을 성취시킨다. 13.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 비는 때때로 심판으로 변한다. 그것은 죄 많은 땅에 대한 채찍이다. 비가 한 때에는 전세계의 멸망을 위해 사용되었듯이, 이제는 일부 지역의 교정과 징벌을 위해 동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비를 구사하여 파종과 수확을 방해하며, 하수를 범람시키기도 하고 결실을 손상시키신다. 혹 토지를 위하며 - 다른 때에는 비가 축복이다. 이 비는 "그의 토지를 위한 것"이다. 곧 이 토지가 비옥하도록 해 준다. 더욱이 그는 그 토지를 기름지게 하고, 더욱 결실을 많이 내도록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을 "긍휼히" 제공해 주신다. 꼭 같은 사물이 주어지는 분량에 따라 큰 심판될 수 있고 큰 긍흉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필수적으로 의존하고 있는지 살펴 보라.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소나기도 밝은 빛도 가질 수 없다.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 레헤세드) 전치사 '레'(* )는 '...을 위하여'의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헤세드'(* )는 보통 '자비', '친절', '사랑' 등으로 번역된다. 예언서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포함하는 '경건'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헤세드'(* )는 비참하고 동정받을 만한 처지에 있는 대상에 대한 긍휼을 포함하는 사랑의 뜻으로, 특히 인생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애(仁愛)의 뜻으로 종종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불쌍한 인간들을 향해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구름을 사용하심을 가리킨다. 이처럼 폭풍과 구름 등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고 있다.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우리가 듣는 일도 만약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다면 우리에게 유익되지 아니하기가 쉬우며, 만일 우리가 가만히 서서 그 일을 침착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곰곰이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하나님의 일은 기묘하기에 우리의 고찰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궁리해 볼 가치가 있다. 그 일들에 대한 온당한 성찰은 우리를 그의 모든 오묘와 섭리를 이해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자세히 듣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오묘하신 통치의 지혜를 깨달으라고 요구한다. 이미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다했고 이제 남은 것은 욥이 그 속에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깨닫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궁구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보넨'(* )은 '이해하다', '숙고하다', '신중하다'의 뜻을 가진 '빈'(* )의 파생형이다. 이 단어는 사물이나 사건을 주의깊에 통찰하여 사리를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15.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 명령하셔서(* , 베숨)는 '놓다', '위치시키다', '지정하다'의 뜻을 가진 '숨'(* )에 전치사 '베'(* )가 결합된 단어이다. 영역본 NIV와 주석가 하틀리(Hartley)는 이 단어를, 자연을 직접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여 'controls'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이 단지 만물의 창조자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운용하시는 주관자이심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름으로 하여금 번개 빛을 발하게 하다'이다. 구름끼리의 충돌로 번개가 치는 것 또한 우연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종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16.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 가 아느냐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 "평평하게 뜬 것"(* , 알미플레시) - 의문 부사 '알'(* , how)과 '무게를 달다', '평형을 맞추다'라는 뜻을 가진 '팔라스'(* )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여기서 '팔라스'는 좌우가 균형을 이루며 정리된 상태를 의미하며, 개역 성경은 종종 '평탄케 하다'로 번역하였다(잠 4:26;사 26:7).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늘 위에 구름이 자유로이 펄쳐져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구름이 지주가 없이도 매달려 있는 신기한 모습의 평형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Pope). 그리고 이 구절은 하반절의 '기묘한 일'과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Gordis).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 이 표현은 엘리후가 하나님을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특히 여기서는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한다. 기묘한 일을 네 가 아느냐 - 무지개는 구름이 이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그들을 균형잡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암시이다. 그들은 평평하게 떠있어서 저희 비를 지면에 무사공평하게 분배하고, 따라서 이제나 저제나 모든 곳은 제 몫을 받는다. 17.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 여기서 '고요할 때'(* , 베하스키트)는 '조용하다', '평온한'의 뜻을 가진 '솨카트'(* )의 파생형이다. 이 동사의 기본 뜻은 전쟁이나 불화가 없는 상태 혹은 걱정이나 불안이 없는 '평온'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에서는 앞에서 언급된바, 살을 에이고 온 땅을 얼어붙게 하는 북풍(9,10절)과 대조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남풍'은 사막의 열풍으로 짐작된다.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 춥다가 어떻게 기후가 따뜻해지는가? 우리는 우리 의복이 어떻게 따뜻해지는지 알고 있다. 즉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가 따뜻해지는 이유와 같이 우리가 옷을 입으면 어떻게 따뜻해 지는지 알고 있다. 그가 살을 에이고 거세게 불어 제치는 북풍을 가지고 있듯이, 그것을 녹여 주고 평온하게 해 주는 남풍도 가지고 계신다. 성령은 이 양자에 다 비유가 되는데 이는 그가 확신시키기도 하시며, 위로해 주기도 하시는 까닭이다(아 4:16). 18.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부은 거울 같은 - '부은'(* , 무차크)은 '퍼붓다', '녹이다', '주조하다'의 뜻을 가진 '야차크'(* )가 변형된 단어 '추크'(* )의 파생형으로 '쏟다', '녹다'라는 뜻이다. 또한 '야차크'(* )는 솔로몬이 만든 금으로 된 성전 기물과 청동 주물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되었던 것으로(왕상 7:46) 보아 '주조한 기둥'을 뜻하는 '무차크'(* )가 이 '야차크'(*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 비록 궁창이 유동적이라고는 하나 그런데도 그것은 견고하다. 그것은 "강하며" 그 이름을 그것의 안정성에서부터 가져온다. 그것은 여전히 과거의 하늘 그대로이며, 조금도 쇠하지 않으며, 차용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소멸될 때까지 하늘의 법칙은 변경되지도 않을 것이다.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 엘리후는 여기서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시도를 가정하고 있다. 오히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태도, 즉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에 도전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하나의 아이러니인지를 깨닫도록 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할말'이 인간에게는 한마디도 없다. 따라서 욥은 그것에 관해 엘리후 혹은 엘리후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경건한 자들에게 가르칠 말이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 "우리는 암흑의 연고로 우리말을 진술할 수 없다." 가장 최선의 인간이라도 신적 본성의 영화로운 완전성이나 신적 통치의 경영에 대하여는 어두운 점이 많다.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들도 알려져야 하는 것과 알려질 것에 비교하면 아는 게 거의 없으며, 아니 전혀 없으며, 온전한 것이 와서 수건을 벗겨질 때에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 그는 자기가 말해 왔던 것들이 부끄럽기조차 하였다. 그가 부끄러이 여긴 것은 자기 진술의 근거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근거를 처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혹은 "내가 말로써 하나님에 대하여 다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머리를 동원해서 말로써 형용하여 말들을 다 한다 할지라도 온전하지 못하다. 그의 실제의 진상이 자기가 진술을 떠맡음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얼굴이 형편없는 화가로 인해 망쳐지듯 손상을 입지나 않았는지 전전긍긍해 한다. 또 그는 자기의 연출이 감사하다는 치사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누가되어 사죄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였을 때에도, 우리는 자신이 무익한 종이었음과 자랑할 것이 조금도 없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 '삼키우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예불라'(* )는 완전한 멸망을 나타낸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수나 땅으로 하여금 입을 벌려 사람들을 삼키게 한 경우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신 것이고(출 15:12), 또 한 번은 고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에 참가한 모든 무리들에게이다(민 16:30,32,34). 이처럼 이 단어는 주로 파괴, 파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엘리후는 자신의 어리석은 변론이 곧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욥처럼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 단어를 '삼키우다'는 뜻 대신에 '혼잡케 되다', '혼동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정신이 혼란케 되는 상태(사 3:12)를 뜻하는 단어로 보는 것이다(Gordis). 21.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 문자적으로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존재 혹은 하나님의 은혜과 자비 등을 상징한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감춰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당황하게 되고 이것은 그에게 흑암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 캄캄함은 그로 하여금 계속 말하는 게 두렵도록 만들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 여기서 우리는 태양을 가렸던 구름이 바람에 의해 날려가고 감취었던 태양이 다시 빛을 발하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엘리후는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들의 가변적인 태도를 이처럼 자연 현상을 이용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2.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 '금 빛'(* , 자하브)은 문자적으로는 '금(정금)'을 가리킨다. 로린슨(Rawlinson)은 이 구절이 실제로 금이 북쪽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태양의 광선을 상징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비록 고대 동양의 문헌에 태양 빛을 금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본절의 표현을 그와 관련한 겔 1:4와 유사한 내용으로 보기 보다는 실제적인 '금'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 "그는 권능이 지극히 빼어나신다." 하늘에서나 땅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 그가 행하실 수가 있다는 것은 그의 권능이 빼어남이다. 그의 능력의 우주적인 범위와 그것의 항거할 수 없는 힘은 그 권능이 지극히 크심이다. 어떤 피조물도 그와 같이 그토록 강한 팔을 가지지 못했다. 23.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 "측량할 수 없나니"(* , 로 메차누후)는 부정사 '로'(* )와 '발견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마차'(* )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마차'는 단순히 '발견하다'라는 의미 외에 다른 뉘앙스들을 갖고 있다. 수동태형은 '압도된', '파악된'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70인역(LXX)에서는 종종 '붙잡히다'로 번역된다. 또한 이 단어는 '도달하다', '획득하다'라는 뜻의 아람어와도 관련되며, '마주치다', '만나다' 등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앞 구절에 '찾다'라는 의미가 나오면 뒤에 있는 '마차'는 '만나다', '발견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신 4:29;아 5:6;렘 29:13). 본절에서는 '도달하다', '온전히 파악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1:7). 즉,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의 한계 너머에 계시므로(NIV) 우리는 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NIV, RSV, NASB).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 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는 왜곡될 수 없습니다.(우리말성경)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 하리라.(사53:11)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 무슨 일이든 다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그가 무슨 일이든 다 가장 선하게 행하시리라는 것은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그가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전8:2)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사53:5)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하였다.(롬 11:33) 이 모든 사실로부터 하나님은 위대하시므로 그는 크게 경외해야 할 분이라는 것을 추론해 내기는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그를 경외함이 마땅하다." "사유하심이 주께 있으심은 주를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시 130:4).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 , 칼 하크메이 렙) 부사 '칼'은 '모든'(all of)을 뜻하며, 명사 '렙'(* )은 '마음', '심장', '이해'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크메이'(* )는 '지혜롭다', '지혜롭게 행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하캄'(* )의 파생형이다. 엘리후는 이 표현에서 '저 혼자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를 의미하면서 심중에 욥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Pope). 하나님은 자기를 그렇게 여기는 '모든'(개역 성경은 번역하지 않음) 자들을 무지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어리석고 무익한 일이다.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 '돌아보다'(* , 이레에)는 어떤 대상에 관심을 두고 특별히 바라보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 외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눈으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는' 인생은 그 누구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평온하고 안락한 평화를 누릴 수 없다. 한편 '라아'(* )가 상반절에서는 '경외하다'(* , 예레우후)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곧 스스로 마음에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이기'(28:28)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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