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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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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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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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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22장<생명수의 강>

2007.03.05 18:53 | * 요한계시록강해 | 사랑과평화

http://kr.blog.yahoo.com/jchlove40/16811 주소복사

[개역한글]
제22장
 
 
1.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6.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17.성령과 신부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22: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 '생명수의 강'은 창 2장과 겔 47장을 반영한다. 에스겔서에 따르면 물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와 바다 곧 사해에 도달하여 사해의 죽은 물에 생명을 부여하여 생물이 살 수 있도록한다(겔 47:1-12). 이러한 배경을 가진 '생명수의 강'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죽음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풍성한 삶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3) 혹자는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4) 혹자는 영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네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에스겔서 에서의 물은 성전문지방에서 비롯되나 본절의 생명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임과 동시에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시사한다(21:22).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생명수가 흐르는 강 좌우에는 '생명 나무'가 있다. 이 생명 나무는 두 가지 배경을 갖고 있다. (1)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따 먹을 수 없게 된 생명 나무를 가리킨다(창 3:22). 이 경우 에덴 동산에서는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그것이 회복되어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 에스겔의 환상에 보인 성전에서 나와 흐르는 강가에 있는 각종 실과 나무를 가리킨다(겔 47:12). 이러한 두 가지 배경을 가진 생명 나무는 앞절의 생명수와 같이 영생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 본문은 겔 47;12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는 생명 나무의 생명력이 왕성하여 영생을 의미하는 실과가 풍성함을 시사한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다'는 겔 47:12을 반영한다. 그러나 에스겔서에서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강조하는 반면 본문에서는 잎사귀 자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에서 치유할 수 있는 잎사귀가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새 예루살렘에 질병과 고통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나무에 참여하면 전혀 고통이나 부족함이나 질병이 없는 완전함을 누리는 것을 시사한다. 즉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여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났음을 암시한다(마11:29;롬8:12, 19-23;갈 2:19).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여기서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시사한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좌(일곱번째 천사) 우(예수그리스도)
좌 여섯나무(계시록의 여섯나팔수) 우 여섯나무(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다니엘.모세.엘리야)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열 두 실과(주님의 열두제자) 
나무 잎사귀들은- 구약 열두 소선지자(호세아...말라기)
 
*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가 있고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앉는 자리 양편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또 열 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좌우편에 섰으니 아무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왕상10:18~20)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 '저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데마'는 저주를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에서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창 3:14-20의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었음을 나타내며 동시에 슥 14:11의 성취이다.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함께 임재해 주심으로 그 관계가 회복되고 더이상 저주를 받지 않게 된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이며 둘째는 어린양이고, 셋째는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이다. 세 가지 해석 중 첫번째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그'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토'는 단수로서 하나님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수신'은 예배 행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모든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예배하며 경배함을 시사한다.
22: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을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심지어 모세에게도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출 33:20, 23).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대면한 것이 곧 하나님을 대면한 것이었다(요 14:7, 9;17:3).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된다. 한편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짐승의 표를 이마에 받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13:16). 여기서 이마에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 예루살렘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소유가 되며 그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3:12).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본문은 21:23, 25의 반복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이상 밤이 존재하지 않는 낮이 계속된다(슥 14:7). 왜냐하면 그곳을 등불이나 햇빛에 의해서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하나님 자신이 그곳의 빛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원한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영원한 영광의 빛이 비취심을 시사한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궁극적인 축복이다. 이것은 3:21에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자유와 권위를 갖게 될 것을 시사한다(마 20:25-27).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 본문은 19:9을 반영한다. '이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는 1-5절까지의 내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본서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서 내용에 대한 확증을 시사한다.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은 본서에 나타난 계시의 주체이다. 여기서 '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톤'은 복수로서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영들, 즉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본서의 내용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모든 시대, 즉 신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영감을 허락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기토록 하셨다.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속히 될 일'은 계시의 내용을 가리킨다. 이것은 1:1의 반복으로 시간상으로 곧 이루어질 내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렀을 때 지체없이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언의 내용은 1:1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천사를 통해서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졌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내가 속히 오리니'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반복이다(2;16;3:11). 본절의 '속히'는 앞절의 '속히'와 동일한 의미로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오실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후반절에서 언급할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최대의 응답이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은 본서에 언급된 일곱 가지 복 중 여섯째 복이다. 이것은 첫째 복을 언급하고 있는 1:3의 반복으로 예언의 말씀을 곧게 붙잡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고난 가운데 인내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 '보고 들은 나 요한'은 요한 자신이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예언의 내용들이 황홀경이나 어떤 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시사한다.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옆드렸더라- 요한은 천사를 통해 전해받은 하나님의 계시 내용이 너무나 엄청나고 놀라운 것이었으므로 천사에게 엎드려 절하게 된다.
22: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 본문은 19:10의 반복이다. 천사는 요한의 경배 행위를 제지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강조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라고 권면한다. 19:10에서는 천사가 자신을 '요한과 예수의 증거를 받은 형제들'과 동일시하나 본절에서는 '요한과 선지자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천사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과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 즉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천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여 주고 능력으로 역사하지만 우리의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 이시므로 하나님께 경배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 '인봉하지 말라'는 10:4에서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사 8:16;단 8:26;12:4, 9).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해서 혹자는 죄인들이 더이상 구원을 얻을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Swete) 재림의 때가 가까워 더 많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함임을 나타낸다. 그 명령은 이 예언의 말씀을 더이상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는 의미로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교회가 알 필요가 있으며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때가 가까우니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본서의 예언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무리, 즉 적그리스도와의 전투를 시사함은 물론 역사의 매순간에 하나님과 사단의 영적 전투로 드러난다. 그러기에 '때가 가까우니라'는 재림의 임박성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대성을 암시한다.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 혹자는 본절이 더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7절에서 회개의 초청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본절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 본절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과 행위대로 열매를 거두게 됨을 시사한다. 습관적으로 짖는 죄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죄된 습관으로부터 멀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때가 회개해야 할 때이고 구원날이다.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우리 모든 성도들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할 것이다.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는 7절의 반복이다(3;11). 이와 같이 악한 자와 의로운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시는 것과 연결된 재림은 사 40:10의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는 권능의 손을 휘둘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됨을 시사한다.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을 가리킨다. 이처럼 행위에 근거한 판단이나 심판은 성경 전체에서 자주 나타난다(2:23;잠 22:12;렘 17:10;롬 2:6;벧전 1:17). 이것은 마지막 백보좌 심판을 묘사할 때에도 (20:13)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본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상'(미스도스)은 많은 핍박과 고통 가운데서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믿음을 인내로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13:10;14:12, Ladd). 의로운 자에 대한 보상은 상대적으로 악한 자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를 추종하고 따른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나 짐승과 사단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만을 가져다 준다.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이 칭호는 하나님의 칭호이나(1:8;21:6) 본절에서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칭호로 나타난다(1:17;2:8). 이 칭호는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는 심판을 하시는 심판자로서의 권위와 능력의 근거를 시사한다. 본절에 나타난 세 가지 표현, 즉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그리고 '시작과 끝'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말로서 이 표현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이며 역사의 주관자로서 완전한 심판자가 되심을 시사한다(1:8, 17;2:8;21:6 주석 참조).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 본문은 본서에 나타난 일곱 가지 복 중 마지막 복에 대한 묘사이다(7절;1;3;14:13;16:15;19:9;20:6). 두루마기를 빠는 상징은 이미 7:14에서 언급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옷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나낸다. 두루마기를 씻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생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영광을 공유하는 것이다. 특별히 7:14에서 부정 과거 시제가 사용되어 역사적인 십자가 상의 구속 사역에 참여함을 시사한 반면 본문의 '빠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뤼논테스'는 현재 시제로 지속저인 행위를 나타낸다. 즉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요 13:10) 핍박과 환난 가운데 서도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며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함을 시사한다(요일 1:7).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본문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복에 대한 묘사이다. 여기서 '생명 나무'는 영생에의 참여를 나타내며 '성에 들어갈 권세'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들어갈 수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의 참여를 가리킨다.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에게만 충성하여 그의 고난과 죽음에 기꺼이 동참하는 자들, 즉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속하여 영생을 누리게 된다.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개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부류의 사람들, 즉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이미 21:8에서 언급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자들의 명단에 있는 자들과 동일하며 더욱이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낸다'는 것은 그들이 미혹하여 속이는 자인 사단과 근본이 동일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임을 시사한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자들의 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개들'은 성경에서 더럽고 악한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 표현이다. 신 23:18에서는 남창을, 마15:26에서는 이방인을, 빌 3:2, 3에서는 유대인의 율법을 강요한는 자들을 가리킬때 사용되어 이 '개들'이 하나님의 뜻과 통치하심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킴을 시사한다. '개들'과 불못에 들어갈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두루마기를 빨아 구속에 참여한 자들과는 달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이다(20:13-15).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한편 혹자는 본절에서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이미 현재에 결정된 사실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을 현재 사실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14절에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미래에 그 복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아 본절도 미래에 성취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 본문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그 신빙성이 분명함을 강조한다. 예언의 말씀은 그리스도에게서 사자 곧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그리고 요한이 교회들에게 증거한 것이다(1:1).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여기서 '너희에게'로 번역된 헬라어 '휘민'은 복수로 1:1에서와 같이 요한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요한을 비롯한 모든 구속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향한 예언이다. 이 사실은 본서 내용이 심판을 강조하기 위하여 전하여진 예언이 아니라 교회로 환나과 핍박 가운데 온전히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할 수 있도록 위로와 권면의 내용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는 5:5의 반복이다. 이것은 사11:1, 10에 진술된 약속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집안에서 태어나 구약을 성취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이심을 시사한다 (마 1:1;9:27;15:22;21:9;롬 1:3;딤후2:8 주석 참조). 그리고 다윗이 영감을 받아서 기록한 내용 시편과 그밖의 욥기.잠언과 전도서등 모든 내용을 전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광명한 새벽별'은 민 24:17을 반영한다. 민수기에 언급된 '야곱에서 나온 한 별'은 사실상 다윗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상반절의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와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유일한 주이시며 그의 메시야적 통치를 통해 죄로 어두운 세상을 물리치고 오직 의와 평강만으로 다스리는 종말론적인 새 시대의 여명이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원하시고 재림하셔서 심판하심으로 사단과 짐승의 핍박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던 어둠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시대의 빛을 가져다 주신다.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성령과 신부'는 한 목소리로 초청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성령'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며(19:10),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가리킨다(19:7). 성령은 교회에게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도록 영감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나 전도의 과정 속에서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사람들의 양심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며 증언하신다(요 16:8-11). 그러기에 성령과 교회의 증거는 한 가지이며, 둘이 연합하여 오직 예수에 대해 세상에 선포하며 증거하게 된다. 성령과 교회가 연합하여 행하는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본문에서는 네번의 초청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앞의 두 가지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뒤의 두 가지 초청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에의 초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본문의 초청 전체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맥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본문에 나타난 네 번의 초청 중에서 뒤에 나타난 두 가지 초청에 비추어 전반부의 두 가지 초청을 해석하여 네 가지 초청 전체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에로의 초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여기서 본문에 나타난 세 번의 '오라'는 현재 시제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더이상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초청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지속적인 초청의 말씀을 듣고 갈급하여 생명수를 마시기를 원하는 자들은 무료로 생명수를 공급받아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1절;21:6;사55:1;요 4;14;7:37, 38).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16:13~15)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요한은 본서를 마무리하면서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요한은 이 경고를 통해서 본서의 내용이 자신의 상상이나 꿈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임을 밝힐 뿐만 아니라 예언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신 4:2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 자신에게 전하여 준 계시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확증을 강조하는 진술 방법이다.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 '듣는 각인에게'는 1:3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본서가 수신자들 공동체 내에서 크게 읽혀져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질 것을 시사한다. 한편 요한은 본문에서 예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본서 이외에 어떠한 것이라도 더할 경우에 대해 진술한다.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기록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그람메나스'는 완료 시제로 이미 완전히 기록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더이상 가감할 것이 없는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요한은 말씀에 '더한 자들'에게 모든 재앙이 '더하여질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통해 완전한 본서의 예언을 변절시키기 위해 더하는 자들에게 내릴 심판의 엄중함을 경고한다.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 본문은 앞절과는 대조적으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는 경우에 대한 묘사이다.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본문 역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에게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하는 축복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사용하고 있다.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은 구속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서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에서 제하여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유황 불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 본문은 본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번째 확증이며(7, 12절) 동시에 그 재림의 확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나타낸다. 본서의 마지막에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준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한다. 이것은 고전 16:22에 나타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마라나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마라나 다'는 아람어 '마라나타'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낸다.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본서 전체를 매듭짓는 본절의 축복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흔한 결론이 아니라 할지라도, 본서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회중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서신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1:4). '모든 자들에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판톤'에 대해서 혹자는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나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 요한계시록21장<새 하늘과 새 땅><수정>

2007.02.28 19:00 | * 요한계시록강해 | 사랑과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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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한글]
제21장
 
 
[새 하늘과 새 땅]
1.또 내가 새 하늘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새 예루살렘]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어린 양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두째는 자정이라
21.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 '새 하늘과 새 땅'은 사65:17과 66:22을 반영한다. '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논'은 '시간적으로 최근이나 새로운'을 의미하는 헬라어 '네오스'와는 달리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가리킨다. 그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갱신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질서의 창조를 의미한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임재하사 그분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며, 도덕적이며 영적인 것이다(3절;벧후 3:13).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앞서 언급된 '새 하늘과 새 땅'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본절의 강조점이 '새 하늘과 새 땅에의 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음을 나타낸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범죄로 인하여 죄와 사망이 들어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으로 변하였다. 이 하늘과 땅은 죄와 사망이 온전히 사라지는 종말론적 구속의 날을 고대한다(롬 8:31). 한편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연관된 것으로 '바다' 역시 지리적인 것이나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것이다(Johnson). 구악성경에서 '바다'는 악과 연관되어 비유되고 있으며(사 57:20), 본서에서는 사단이 나오고(13:1)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20:13) 이해된다. 이러한 사실은 '바다'가 악을 가리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의 '바다도 있지 않더라'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옛 질서, 즉 타락과 죄와 사망으로 가득찬 질서와는 엄격하게 분리된 새 질서임을 시사한다(Ladd).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새 하늘(하나님) 새땅(예수 그리스도) 
*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23:9~10)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같더라- 본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이다. 여기서 사용된 '새' 역시 앞절에서 사용된 '카이넨'으로 지상의 옛 예루살렘과는 달리 질적으로 변화된 하늘의 예루살렘을 암시한다. 본절에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두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새 예루살렘은 인간의 능력과 수단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곳은 죄와 사망과 모든 고통에서 완전히 분리된 곳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물이요 하나님의 거처이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형들을 보여 주셨다 이제 그러한 모형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제시되어 모든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지자들과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이제 제시해 주시는 예루살렘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의 모든 거민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남편과 신부' 의 비유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으로(19:7 사 61:10) 신부인 새 예루살렘은 구속받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의미하며 하나님과 백성간의 교제를 암시한다,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장막'의 헬라어 '헤 스케네'는 히브리어 '미쉬칸'을 번역한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겔 37:27).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스케노센)에 사용되어(요 1:14)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임하셔서 함께 거하심을 시사한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거하심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요 1:18;14:8, 9) 이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가시적으로 백성 가운데 임하셨음을 나타낸다(22:4). 이러한 임하심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본문은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관용구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신 목적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간의 밀접한 교제를 시사한다. '하나님의 백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오이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그의 백성들'이란 의미로 복수이다. 이는 새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민족을 초월하여 새롭게 변화된 백성임을 시사한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우리 나그네 인생들의 처음부터 함께 하셨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위로하여 주신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눈물, 사망, 애통, 아픔'은 '처음 것'과 같은 의미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기 이전에 죄와 사망으로 인해 부패되고 변질되었던 옛 질서의 산물이다. 이 산물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소원(疏遠)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영원히 임재하셔서 처음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하나님과 백성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을 것이다(7:16, 17;사 35;10;고전 15:54).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본문은 본서에서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나타낸다(1:8). 이것은 만물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확증을 나타낸는 선언이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본문은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될 것을 확증하는 선언이다. 여기서 '하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오'는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루실 새로운 창조 행위에 대해 예언적으로 선언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포이오'는 현재 시상으로 미래에 이루실 새로운 창조 행위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구속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에 생명을 부여하는 복음에의 초대를 통해서 성취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본문은 앞서 선언된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의 확증이다. 즉 앞의 선언은 모든 주권을 소유하시고 보좌에 않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진실되심에 의해 보증된다.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루었도다- '이루었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고난'은 복수 동사로서 문자적으로 '이런 것들이 다 이루었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이제까지 요한에게 말씀하신 것들이 이미 시작되기도 전에 미래에 대하여 이루어 질것이며 이루어 졌다고 선포하신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이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던 하나님의 칭호이다(1:8;22:13;사 44:6;48:12). 이 칭호 중에서 '알파와 처음'은 하나님께서 창조자로서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심을 나타내며 '오메가와 나중'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셔서 온전히 새롭게 하실 분이심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기 칭호를 밝히심으로 '이루었도다'라는 선언을 보증하고 계신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목마름'의 비유는 성경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시 42:1;63:1;사 55:1). 하나님은 구속하여 영생을 누리도록 하시는 샘물이시다(요 4;10, 14). 그는 자기 백성의 필요와 갈급함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분으로서 '생명수' 즉 구원 혹은 영생을 수여하시는 분이다(7:17;22:1, 17;요7:37-39;롬3:24). 한편 '값없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와 은사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며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거나 값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로 베풀어지는 것임을 시사한다.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이기는 자'는 2, 3장에 언급된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를 상기시킨다. 일곱 교회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며 믿음을 지킨 자들 곧 이긴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유업으로 상속되고 있다(2:7, 11, 17, 26;3:5, 12, 21). 한편 '이것들'은 앞에서 언급된 것으로 만물이 새롭게 변하는 것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생명수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기는 자들은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시 36:8;슥 14:8;요 4:10).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본문은 메시야에 관한 암시인 삼하 7:14에서는 '아비'라고 되어 있으나 요한은 본문에서 '하나님'으로 바꾸고 있다. 요한 이러한 변경을 통해서 오직 유일신 오직 하나이신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며 그분께서 친히 아버지로써 아들이라는 칭호을 사용하실 것을 강조하고 있다.
*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전12:1~2)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본절은 앞서 언급된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참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하여 영생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누리는 것과는 반대로 영벌에 처할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둘째 사망과 동일한 것으로(20:14, 15)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 당할 심판을 나타낸다. 요한은 둘째 사망에 참여할 자들을 여덟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두려워하는 자들 - 온전한 사랑에 머물지 못하고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며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깨끗해 질때 가능해 진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 -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한다.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까워 질수가 없다. 자신의 어떠한 공로나 힘을 의지하는 위험하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 일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필요하다. 
흉악한 자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브델뤼그메노이스'는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브델륏소마이'('몹시 싫어 하다')의 분사형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더럽게 된 자나 혹은 황제 숭배와 같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여 부정하게 된 자들을 가리킨다(롬 2;22).
살인자들 - 이는 적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로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자라고 요한사도가 강조했듯이 죄의 지배아래 있는 자들이다. 또한 옛적에 이들은 짐승의 조종하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살인한 자들을 가리킨다(13:15;행 7:54-59).
행음자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노이스'는 문자적으로 '간음한 남자들'을 의미하나 일반적으로 성적인 범죄를 행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술객들 - 마술이나 점 등에 빠진 자들이나 우상을 만드는 자들을 가리킨다(13:15;행 19:19).
우상 숭배자들 - 앞에서 언급된 '행음자들이나 술객들'이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음에고 불구하고 특히 본문에서 우상 숭배자들을 다시 언급한 것은 이 죄가 불신자들의 죄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거짓된 신들이나 사물을 놓고 숭배하거나(롬 1:23)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 - 이들은 진리를 떠나 진리을 오용하고 왜곡하고 악과 불의에 동참하여 거짓을 조장하는 자들이다.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여(요일 2:21-23;3;19;4:6) 진리를 떠나는 거짓이 반드시 정죄를 받아야만 하는 행위임을 명시한다(27절;2:2;3:9;22:15).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본문에 나타난 천사는 17:1에서 나타난 천사와 동일한 듯하다. 이 천사는 17:1에서 심판을 받을 큰 음녀를 소개한 것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를 소개하여 큰 음녀와 대조시키고 있다. 큰 음녀는 땅에 속하여 심판을 받을 대상인 반면에 어린양의 아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과 함께 거할 귀하고 정결한 존재이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하여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하나님의 백성을가리킨다(19:6-8).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신부로서 표현하는 이러한 비유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며(사 54:6;호 1, 2절) 신약성경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나타낸다(마 25:1-12;막 2:19, 20;요 3:29;고후 11:2;엡 5:25-27).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에스겔서에서 보였던 성전이 이곳에 등장하고 있다 크고 높은 산으로 비유된 예수 그리스도의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영원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본절 역시 17:1-5과 병행된다. 요한은 17장에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서 심판받을 큰 바벧론 성을 보나, 본절에서는 높은 산으로 이끌려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게 된다. 이러한 병행은 의도적인 것으로 멸망당한 큰 바벧론 성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요한이 '높은 산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은 에스겔이 높은 산에서 본 성전 환상을 반영한다(겔 40-48장). 한편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은 2절과 병행을 이루는 표현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준비된 것임을 시사한다.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이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소유한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영광'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겔 43:5).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되었다가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위에 있었던 것을 반영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원한 빛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를 시사한다(사 60:1, 2, 19).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에서 '벽옥'은 푸른 보석인 반면에 '수정같이 맑더라'는 투명한 것을 나타내 해석상의 어려움을 갖는다. 그래서 혹자는 벽옥이 다이아몬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본문의 촛점은 그 성이 보석과 같이 빛난다는 점에 있다. 한편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대로 깃들어 있고 흠과 티가 섞이지 않았음을 묘사하는 말이다.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 이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성 전체의 범위를 한정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위엄이 있는 곳임을 시사한다. 이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심은 물론 성 밖에 있는 자들과 구분하고 계심을 시사한다(22:15;사 26:1;슥 2:5).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열 두 문'에 있는 열 두 천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문을 통제하여 출입을 관장하는 것을 나타낸다(사 62:6)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 문들 위에 있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은 겔 48장에 나타난 종말론적 예루살렘 성의 환상과 연결된다(겔 48:30-34). 에스겔서에 따르면 새 성전 문에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를 지닌 '여호와 삼마'가 그 성읍의 호칭으로 부여된다. 이는 본서에 나타난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관련된 것으로(3절;22:3, 4)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을 시사한다. 한편 '열 두 지파'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구약의 열두 소선지자을 의미한다.
21: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동편에 세 문, 불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사방에 각각 세 개의 문이 있다. 이것은 이 세상에 각 나라별로 동서남북에 지파가 구분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1: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 앞절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 문에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진술과 병행하여 본절에서는 성의 기초석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을 언급한다.
그 위에 어린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어린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은 문 위에 새겨진 열 두 지파의 이름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세워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의미한다(눅 9:12;요 20:24;엡 2;20). 열 두 지파와 열 두 사도의 이름이 병행되어 나열된 것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과 신약시대의 교회의 통일성을 암시하며 동시에 거룩한성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를 총괄하는 보편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본절에서 17절까지에 나타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척량은 겔 40:3 이후에 나타나는 새 성전 척량을 배경으로 한다.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 11장에 나타난 성전 척량은 요한이 하는 반면에 본절에 나타난 성전 척량은 천사가 직접한다. 본절의 성전 척량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보존됨을 나타낸다. 또한 에스겔서의 성전 척량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겔 43:12)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거하는 성의 거룩함과 어린양의 신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한 성취를 시사한다.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척량은 하나미의 비밀이 열리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일만 이천 스다디온'은 창50+마28+계22+출20=120의 백배로서 역대하3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낭실의 고의 치수이다. 요한은 아마도 에스겔의 묘사를 상기했을 것이나 그것에서 더 나아가 '높이'도 '장과 광'과 같이 길이가 동일함을 기술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정입방체로 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그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는 곳임을 시사한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일만(창50+마28+계22=100의 백배) 이천(출20의 백배) 
21: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일백 사십 사 규빗'이 성곽의 높이를 가리키는지 혹은 두께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높이이든 두께이든 간에 그 숫자는 상징적인다. 144는 일백(창50+마28+계22) 사십 사(사44장)으로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관되어 완전함과 안전함을 시사한다. 한편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는 말은 이측량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변하여 천사가 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 능히 이루어 내시는 능력의 말씀인 것이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일백(창50+마28+계22=100) 사십 사(사44장)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성곽의 재질은 벽옥이다. 이 벽옥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과(4:3)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11절). 따라서 벽옥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시사한다. 한편 성의 재질은 맑은 유리와같은 정금이다. 이것은 지성소와 성소의 나머지 전체가 금으로 되어 있던 솔로몬 성전을 상기시킨다(왕상 6:20-22). '맑은 유리와 같은 정금'은 아무런 흠과 티도 없는 신부의 순결과 아름다움을 의미한다(엡 5:27).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 '성곽의 기초석'은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열 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열 두 개의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14절). 이것은 출28:17-20에 나타난 대제사장이 흉배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성취되며(요 4:21)구약 시대에 오직 대제사장에게만 주어졌던 권한들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21: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 열 두 개의 진주로 이루어진 열 두 문은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12, 13절) 사 54:12을 반영한다. 랍비의 글에 따르면 가로와 세로가 30 규빗이 되는 진주와 보석들로 예루살렘의 문을 만들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진주는 당시에 부요와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장관을 묘사한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이루어진 길은 18절에서 언급된 성의 재질과 동일한 것으로 어떠한 흠도 찾을 수 없는 신부의 순결성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구약 시대에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를 나누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 계신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요한은 본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성소와 지성소는 거룩함을 나타내는 장소로 성소는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이라면 지성소는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시어 만인의 제사장으로서 섬기는 영역이다.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 본절은 사 60:19, 20을 반영한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성전이 따로 없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신 곳이다(22절).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광채로서 비취시기 때문에 해와 달과 같은 처음 하늘에 있는 자연적인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슥 14:7).
어린양이 그등이 되심이라-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 말씀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신 존재임을 시사한다

*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스가랴4:2)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이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본절은 사 60:1-11을 반영한다. '만국과 땅의 왕들'은 세상에서 구원받은 모든 나라와 각족속들 중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21: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는 사 60:11을 반영한것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생활이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완전하게 안전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밤이 없음이라'는 상반절에서 '낮'만 언급된 이유이다. 본절의 '밤이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첫 창조의 때와 같이 자연의 빛에 의존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의 광채가 비취는 세계임을 의미한다(23절). (2)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밤이나 어두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분리된것을 나타내므로 '밤이 없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임재해 계심을 의미한다.
*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사60:11~1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본절은 24절의 반복이다.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무엇이든지...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23절과 26절에서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만국과 땅의 왕들에 대해서 언급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들어오지 못하는 자에 대해 세 부류로 기술하고 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배척당하는 것은 그들이 적그리스도의 품성과 생활 방식을 좇아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8절;17:4).
속된 것-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논'은 '모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상 숭배자들을 가리킨다(8절;22:15).
가증한 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델뤼그마'는 우상 숭배자나 배교자들을 가리킨다(17:4;단 9:27;12:11;마 24:15).
거짓말하는 자 - 이는 본서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나타내며 거짓 선지자를 암시하기도 한다(2:2;3:9;14:5).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 본문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를 가리킨다. '어린양의 생명책'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근거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공로임을 암시한다(3:5).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하여 믿음을 소유하고 영생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성품과 뜻에 일치하는 자들이다

○ 요한계시록20장<천 년 왕국과 백 보좌 심판>

2007.02.23 22:20 | * 요한계시록강해 | 사랑과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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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한글]
제20장
 
 
[천년 왕국]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 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사단의 패망]
7.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9.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10.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을 내리시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 '무저갱'의 헬라어 '아뷔스수'는 70인역에서 심연의 물이나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마귀를 가두는 곳이나(눅 8:31;벧후 2:4;유 1:6) 음부의 지하세계를 가리킨다(롬 10:7). 이곳은 사단과 짐승을 비롯한 마귀의 세력이 거하는 처소이며(9:1;11:7) 천년 동안 사단이 갇히는 감옥이다(20:3).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쇠사슬'에 해당하는 헬라어 '할뤼신'은 베드로가 감옥에서 주의 사자에 의해서 풀려날 때 손에서 벗겨진 '쇠사슬'(할뤼세이스)과 같은 단어이다(행 12:7). 천사가 가지고 있는 무저갱의 열쇠와 큰 사슬은 사단을 결박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아픔과 고통과 저주로 결박시킨다.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 '용'은 구약성경에서 리워야단, 라합, 악어, 뱀 등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욥 40:15;시 74:14;89:10;사 27:1;51:9;암 9:3)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머리에는 일곱 면류관이 있다(12:3). 이는 하늘의 대적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옛뱀- 이것은 창3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이던 뱀을 상징하는 호칭으로 속이는 자를 의미한다.

마귀요 사탄이라- '마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는 문자적으로 '비방하는 자'를 의미한다. 또한 '사단'(사타나스)은 '대적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래 고유명사가 아니었으나 후에 고유명사로 바뀌었다. '마귀와 사단'은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에게 고소하는 고소자나 비방하는 자이다.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 '잡아'의 헤라어 '에크라티센'은 '힘'을 의미하는 '크라토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능력을 행하여 구속하는 것을 의미한다(마 26:50). 이것은 '결박 하여'와 '던져'(30절)라는 표현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늘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사단의 영향력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하고 속이는 자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제한하고 구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일천 년 동안'은 일천년(창50+마28+계22=100의 열배)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문자적인 의미 보다는 일천년이라는 일정한 기간을 나타낸다.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무저갱"은 히브리어의 '테홈'을 음역한 '아뷔쏘스'는 본래 '바닥없는'.'깊이를 알 수 없는'이라는 듯의 형용사로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깊은 곳'을 의미하는 명사로 사용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모든 것이 끓어진 죽음의 세계이며  기쁨이 사라진 고통의 세계이다.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본절은 천사가 천년 동안 사단을 무저갱에 가두는 이유를 밝힌다. 여기서 '만국'은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앞장에서 메시야와 적그리스도의 전쟁에 인류가 참가하였으며 적그리스도를 따르던 왕들과 군대는 메시야에 의해 패배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19:18-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다시 '만국'이 언급된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서슴없이 유혹하고 핍박하였으므로 이제 그 활동 범위를 제한 시키고 악한 자들이 머물게 되어있는 곳으로 가두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이는 최후로 불못에 던저 지기전 모든 악한 자들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잠시 해방을 받게 된다. 사단이 무저갱에서 잠깐 동안 풀려나는 것은 사단이 불못에 던져지기전 악한 자들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질 것을 의미하고 있다.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않은 자들이 있어- 여기서 보좌들은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 대선지자 소선지자 사도들 그리고 일곱 나팔의 천사들이 보좌을 차지하여 모세시대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을 세웠던 것처럼 이들이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된다.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인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빛의 자녀된 자들로서 한알의 밀알이 되어 사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사단의 보좌와 짐승의 보좌를 우상으로 섬기지 아니하며 사술과 복술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경배하지도 않은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 짐승과 우상의 사상과 행위를 본받지 아니할 뿐아니라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 그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 본문은 5:9, 10의 반복으로 단 7장을 반영한다. 다니엘서에서는 옛적부터 계신 자가 성도들을 위하여 신원할 뿐만 아니라 때가 되어 나라를 성도들에게 주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단 7:18, 22, 27).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한 자들이 죽임을 당하였든 당하지 않았든 간에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권을 가지고 천년 동안 통치할 것을 시사한다. 한편 '살아서'의 헬라어 '에제산'은 육체적인 부활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로(1:18;2:8;13:14;마9:18;요 11:25;행1:3;9:41;롬14:9)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들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통치할 것을 시사한다.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지않는 불신자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된다(6절).
이는 첫째 부활이라- '첫째 부활'이라는 어구는 비록 본장에서 '둘째 부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할지라도 '둘째 부활'이 있음을 전재하는 것으로 4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들과 순교자들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미한다.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복이 있으며 거룩한 자들이다. 본절은 그들이 복이 있는 근거에 대한 진술이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 '둘째 사망'은 사단의 이름이자 사단의 하는 일을 의미하고 있다 사단은 마태복음에서 언급햇듯이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사단이 다스리는 암흑의 세계는 끝없는 고통 가운데 타오르는 불길만이 존재하며 물이 없어 목이 마르고 갈증에 시달리는 곳이다.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복이 있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며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성전에서 봉사하면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하는 자들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권리를 소유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교제를 나누는 자들이다.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왕권을 소유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통치하게 된다(4절).
20:7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본절은 3절의 반복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다스리는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그 기간이 지난 후 잠깐 풀려나게 된다. '차매'로 번역된 헬라어 '텔레스데'는 어떤 목표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정기간에 도달하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옥'은 무저갱을 의미한다.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나와 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본절에서 땅의 사방 백성과 동일시 되고 있는 '곡과 마곡'은 겔 38, 39장에 나타난다. 에스겔서에 따르면 곡은 회복한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하여 북쪽 지방인 마곡에서 오는 메섹과 두발의 왕을 의미한다(겔 38:2, 6). 그러나 이것은 시편에서 하나님과 메시야를 대적하는 열방들로 나타난다(시 2편). 시편과 마찬가지로 본절의 '곡과 마곡'은 에스겔과 같이 어떤 특정한 왕이나 지역을 의미하기 보다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기 위하여 일어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본절에서 곡과 마곡을 말할 때 특정 지역과 특정 사람을 가리키는 '땅의 사방 백성'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니라- '미혹하고'는 사단이 무저갱에서 천년만에 풀려나와 행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사단이 '속이는 자'임을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표현이다(3절;12:9;13:14;19:20). 사단은 무저갱에서 천년동안 갇혀있으면서도 속이고 이간질하는 자로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고 무저갱에서 풀려나자 마자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여 세상의 종말을 초래하게 한다.
20: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사단과 대적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에워싼 곳에 대해서 요한은 두 가지로 진술하고 있다.
(1) 성도들의 진. - '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렘볼렌'은 군사 용어로 군대의 영문 안이나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진영을 의미한다(출14:19;민2:2;신23:14;행 21:34, 37;22:24;히11:34;13:11, 13). 이것은 사단의 활동이 계속되는 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순례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 사랑하시는 성. - 이것은 어떤 장소적인 의미를 지녀서 유대교 종말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팔레스틴의 예루살렘성이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회복되는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장에서 언급될 거룩한성 예루살렘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21:10).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을 받고 사랑함을 받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한편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는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하는 것으로(겔 38:22;39:6)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신속한 심판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심판자는 쿰란 문서나 유대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쿰란 종파에 속한 사람이나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사단과 대적자들은 성도들을 향하여 전쟁을 일의키고 전쟁이 시작되자 하나님의 진노가 폭발하여 저희를 소멸해 버린다.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마침내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가 확정되는 마귀의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악의 세력의 우두머리인 마귀. 곧 사단은 이제 다시는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할 불과 유황 못이라 일컫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다.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마귀의 졸개들로서 19:20에서 유황 불못에 던져지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세세토록"이란 영원한 시간을 의미한다(1:6.18). 그리고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는 것은 죄의 형벌에 의한 고통이 잠시의 휴식도 없이 계속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사단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원히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곳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음을 암시한다. 즉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재생의 기회가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생의 기회가 허락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반드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야 한다.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이 "보좌"는 천지의 대주재이시요 최후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앉으시는 심판의 보좌이다. 이 보좌가 크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자 이시며 심판이 당신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칠 것을 의미하며 희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위에 않으신 자를 보니
- '크고 흰'은 보좌에 않으신 이의 권능과 영광, 거룩, 그리고 위엄을 나타낸다. '보좌에 앉으신이'는 하나님이셨으며(4:2, 9;5:1,7, 13;6:16;7:10, 15;19:4;21:5) 존절에 반영되고 있는 단 7:9, 10에서도 역시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 본문은 '여섯째 인'을 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해가 검어지고 별이 떨어지며 하늘이 종이 축이 말리는 것처럼 말리는 것'을 상기시킨다(6:12-14). 이것은 타락하고 썩어진 피조물의 종말에 당할 강력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모두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을 암시한다.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죽은 자'에 대한 견해는 첫째 부활을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다한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본절에 나타난 죽은 자는 오직 하나님을 믿지않고 불순종한 불신자들을 의미한다. 한편 심판을 받기 위해 보좌앞에 선 자들에게는 두 종류의 책이 펼쳐져 있다.
(1)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첫번째 책은 단 7:10을 반영한 것으로 인간의 행위가 기록된 책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인간의 행위에 따라 심판이 이루어진다.
(2)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의 책이라- '생명책'은 인간의 행위가 기록된 책과는 달리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출32:32,33; 단12:1; 눅10:20; 빌4:3).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에게 충성한 자들 만이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두 책, 즉 인간의 행위가 기록된 책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함으로 구속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 사이에는 인간의 행위와 믿음이라는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발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 '바다'는 짐승의 영역으로 유다서에서는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사람을 삼키는 바다에 매장되지 않은 시체가 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당시에 시신이 매장되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왕상 13:21, 22;14:11;렘 8:1, 2). 반대로 버려져 있는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가장 친절한 행위이며 신앙의 행위로 인정되었다.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사망'은 사단의 이름이자 사단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사망과 음부"는 죽음의 영역을 묘사하는 것으로 율법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영역을 의미하고 있다. '사망'은 전쟁, 기근, 역병 그리고 야생 짐승에 의해서 당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악을 상징한다. 또한 '음부'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하데스'는 중간 상태에 있는 영혼들이 거하는 장소로 나타내기도 하며(행 2:27, 31) 의롭지 못한 자들이 죽은 후에 가는 곳으로 나타내기도 하고(눅 16:23) 무덤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6:8). 본문에서 '바다와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는 것은 흰 보좌에 앉으신 이가 심판하실때에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이 육체로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을 시사한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 본문은 앞절의 반복이다. 흰 보좌 앞에 펼쳐진 책, 즉 모든 사람들이 행한 행위에 대해 기록한 책대로 보좌에 않으신 이는 그들의 행위를 심판하신다.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 본절의 '사망'은 사단을 의인화한 표현이다(6:8). 이 '사망과 음부'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유황 불못에 전지워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같이 동일하게 유황 불못에 던지워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승리하신 후에는 더이상 사망이 필요없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21:4. Johnson). 즉 이것은 사망이나 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암시한다(21:4;고전 15:16). 한편 '둘째 사망'은 하나님의 백성이나 불신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첫째 사망과는 달리 오직 불신자들만이 겪는 죽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둘째 사망이 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6절). 본절에서 이러한 둘째 사망은 불못과 동일시되고 있다. '불못'은 일반적으로 지옥을 의미하는 '게헨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게헨나'는 '흰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 흰놈'은 예루살렘 성 밖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 성의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늘 불이 붙고 있었다. 또한 몰렉 우상을 숭배하면서 인간을 희생 재물로 드릴 때 불로 태운 곳이기도 하다(왕하 16;3;21:6).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 골짜기를 살육의 골짜기로 부르고 있다(렘 7:31-32). 왜냐하면 사단이 흘린 피와 저지른 죄악의 장소이므로 그가 행위들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주의 장소가 장차 불과 하나님의 심판이 연결되어서 '게 힌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불의 심판으로 인식되었다(사 66:24). '게 흰놈'과 같은 의미를 지닌 불못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그들의 최후의 심판을 시사한다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 - 본절은 앞절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첫째 부활에 참여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둘째 사망인 불못이 전혀 주관할 수 없다. 단지 둘째 사망이 주관하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 보다는 짐승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불신자들 뿐이다. 그러한 불신자들은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겪는 영원한 멸망의 길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요한계시록19장<어린 양의 혼인 잔치>

2007.02.16 19:19 | * 요한계시록강해 | 사랑과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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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한글]
제19장
 
 
[어린 양의 혼인 잔치]
1.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백마를 탄 자]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허다한 무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본장에 나타난 찬양은 18:20의 응담이며 18:20에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라고 부르고 있고 본서에서 순교자를 비롯한 하나님의 성도들과 천사들이 함께 찬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7:9). 이러한 허다한 무리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서 성취된 구속 사역과 그 사역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주권을 찬양한다(7:10;12:10).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 '할렐루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할렐루이아'는 히브리어 '할렐루야'를 음역한 것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히브리어 어구로 초대 교회의 예배가 유대교의 회당과 성전 예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구원과 영과의 능력'은 허다한 무리들이 찬양하는 주재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단을 비롯한 악의 무리를 공의로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그 세력에서 온전히 구원하여 주신 것과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거룩하심과 영광을 찬양한다.

처음 할렐루야 - 가브리엘천사

[공동번역]
제149장
 
 
1.할렐루야, 야훼께 새 노래를 불러라.
2.신도들아, 모여서 그를 찬양하여라. 이스라엘아, 너를 내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여라.
3.시온 시민들아, 너희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춤을 추며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4.북치고 수금 타며 노래하여라. 야훼께서 당신 백성 반기시고
5.짓눌린 자들에게 승리의 영광 주셨다. 신도들아, 승리 잔치 벌여라. 밤에도 손뼉치며 노래하여라.
6.목청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손에는 쌍날 칼을 드시고
7.민족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뭇 나라에게 벌을 주시고
8.왕들에게 고랑 채우시며 권세있는 자들을 사슬로 묶고
9.이미 내린 선고대로 그들을 처형하시니, 하나님을 믿는 온 신도들의 영광이로다.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갚으셨도다 - 본절은 앞절에서 행한 찬양의 근거를 제시한다. '참되고 의로운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 본서의 앞부분에 언급된 찬양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참되고 의로우심'은 계속적으로 나타난다(15:3;16:7).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모든 행위와 마음까지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가 행하신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것이다(겔 11:5;요 2:25;요일 3:20). 본절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음녀의 죄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음녀의 행위'는 온 세상을 미혹하여 부정한 죄를 짓게 한 바벧론의 행위를 가리킨다(14:8;17:2;18:3).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변질 시키고 창조주께서 행하신 사역을 파괴하려는 행위이다.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본문은 다섯째 인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순교자 들이 하나님께 신원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 지다리라고 말씀하였으나(6:9-11) 이제는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종들의 원수를 갚으시는 분이다(신 32:43).

19: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본절의 '할렐루야'는 1절과 같은 의미로 하늘에서 행해진 찬양의 재연(heavenly encore)이다.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는 사 34:10을 반영한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해 바벧론이 온전히 멸망당할 것을 상징한다. 한편 '하더니'속에 내포되어 있는 '카이''그리고')가 혹자의 주장대로 히브리 어법상 상황을 이끄는 절이라면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는 상반절에 나타난 '할렐루야'라고 찬양하는 이유가 된다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 두번째 할렐루야(미가엘천사)
19: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은 5:9, 10에서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의 구속하심에 대해 찬양하였으며 '이십 사 장로'는 11:17, 18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심판하심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반면에 이들은 14:3의 구속받은 자들의 찬양에는 침묵을 지키다가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찬양에 화답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심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아멘 할렐루야'는 시편 4권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시 106:48y).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좌 에서 난 음성'은 '보좌'는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는 좌정하고  계신곳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을 받들고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보좌 주위에는 일곱 색깔 무지게가 펼쳐저 있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 본문은 시 113편과 115편을 반영한다. 즉 '하나님의 종들...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시 113:1을 인용한 것이며,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는 시 115:13을 인용한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은 순교자와 같은 특별한 그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문구인 '경외하는'과 '무론 대소하고'가 믿는 자들의 상황이나 지위 고하, 신앙의 성숙도와 관계없이 보편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 요한은 자신이 들은 음성에 대해서 헬라어 '호스'('같고')를 세 번 사용하여 어느한 가지로 비유할 수 없을 만큼 그 소리가 장대하며 웅장함을 표현하고 있다.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 찬양이 울러 퍼질때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것처럼 우렁차고 힘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찬양하는 자들에 대해 혹자는 천사의 무리라고 주장하고 혹자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본절의 찬양자들은 1절과 연관된 것으로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 '전능하신 이'는 신약성경에서 본서 외에서는 단 한번 밖에 나타나지 않으나(고후 6:18) 본서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하나님의 칭호이다(1:8;4:8;11:17;15:3;16:7;21:22). 이 칭호는 요한 당시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을 '우리 주 하나님'(out Lord and God)이라고 부른 것과 상관성을 갖고 있다. 요한은 '전능하신 이'라는 칭호를 신약성경의 다른 성경보다 현저하게 많이 사용하여 오직 여호와 만이 유일하고 모든 능력을 소유하신 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통치하시도다 - '통치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실류센'은 행위의 시작을 강조하는 부정 과거 시상으로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렇듯 요한은 부정 과거 시상을 사용하여 앞으로 있을 종말론적 사건이 완전하고도 분명하게 성취될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Ladd).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한 모든 적들을 정복하실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강조한다.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의 헬라어 '카이로멘 카이 아갈리오멘'은 본절 외에 신약성경에서 단 한번 나온다(마 5:12). 마태복음에서 이 표현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핍박을 당하고 욕을 당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큰 상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들에게 주어질 큰 상은 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의 참여이다.
어린양의 혼의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혼인'에 대한 비유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시온이 하나님의 아내로서 나타난다(호2:14-22). 그러나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내로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는 대부분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신실하지 못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신 바 있으며(마 22:2-14;25:1-13;눅 14:15-24) 바울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즉 혼인 관계로 비유하였다(고후 11:2;엡 5:25-27). 한편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는 '헤 귀네'이다. 혼인 잔치가 배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뉨페'('신부')를 사용하지 않고 '귀네'를 사용한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결혼법상 약혼한 사이 곧 신부도 아내로 불리고 있다(마1:20). 또한 본서에서도 '귀네'와 '뉨페'는 서로 혼용되어 동일한 것으로 묘사된다(21:2, 9, 10). 본절에서 요한은 이제 약혼의 기간이 지나 완전하며 종말론적인 어린양과의 혼인이 성취될 때임을 선언하고 있다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음녀의 복장 즉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한 자주 빛과 붉은 빛 옷'과 대조를 이룬다(17:4;18:16). 여기서 '빛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람프론'은 영광과 광채를 묘사하며(마 13:43) '깨끗한'의 헬라어 '카다론'은 정결과 충성 그리고 신실함을 나타낸다(21:18, 21, Johnson). 어린양의 아내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는 이 세마포는 오직 남편되신 어린양의 피로 정결케 되었다(7:14).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 '옳은 행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마타'는 문자적으로 '법령' 혹은 '옳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복수이다. 본절의 '디카이오마타'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의 반응으로서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해 인내로써 충성과 신실함을 지켜온 것을 시사한다. 즉 이것은 남편되신 어린양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유지한 사실을 가리킨다(14:12).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청함을 입은 자들'의 헬라어 '케클레레노니'는 '칼레오'('부르다')의 완료 수동태로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을 때만 가능함을 시사한다(17:14;마 22:3;눅 14:17). 혹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을 앞절의 아내와 구분하여 앞절의 '아내'는 교회 혹은 순교자를 가리키며 본절의 '청함을 입은 자'는 구약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의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아내'와 '청함을 입은 자들'은 동일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타당하다. 한편 본문의 '복'은 본서에 나타난 일곱 개의 복 중에서 네번째에 해당된(1:3;14:13;16:15;20:6;22:7, 14). 이 복은 인내로써 어린양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은 자들의 멸망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로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영광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이것은'은 17:1-19:8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큰 음녀의 종말과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참여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예언을 의미한다 한편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는 천사가 전하여준 17:1-19:8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22:6에서도 나타나 본서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며 확실한 사실일을 강조한다.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본문은 요한이 천사를 경배하려는 모습이다. 요한은 천사을 통하여 여러가지 놀라운 광경을 보았고 이십사 장로의 경배와 많은 물소리 같은 찬양을 듣게 되었고 더이상 서있을 수 없어서 엎드려서 천사에게 경배하게 된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예수의 증거'로 번역된 헬라어 '텐 마르튀리안 예수'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주격적 소유격으로 보아 예수께서 전하여 주신 증거로 해석한다. (2)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보아 예수에 관한 증거로 해석한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한 듯하다. 즉 예수께서 자신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로 증거하신 것을 가리킨다. 천사는 자신이 요한을 비롯한 많은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증거하신 것을 받은 존재임을 드러냄으로 요한이 경배할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1) 천사 자신이 경배를 받을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2) 예수의 증거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2)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요한과 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받은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하나님에게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암시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본문에 혹자는 '예수의 증거'를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대언의 영은 하나님 만을 증거하는 예수님의 사역을 의미하며  혹자는 '예수의 증거'를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께서 대언하는 영으로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이며 핵심이라는 것일 강조하고 있다.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하늘이 열린 것'은 본서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모든 것을 요한에게 계시하시는 장면을 나타낸다(11:19). 본절에서는 영광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승리를 계시하고 있다. 본문에서 '백마와 탄 자'는 첫째 인을 뗄때 나타난 말과 기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6:1,2)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어서 언급되는 그의 이름들과 모습은 본서 내에서 계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타신 말의 색깔인 흰색은 승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승리하실 것을 암시한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본문은 백마를 탄 자 즉 그리스도의 칭호이다. 이것은 3:14에서 언급된 '아멘이시요'의 해석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 적용된 칭호 즉 '이름이 아멘이신 하나님'(사 65:16)이 3:14과 본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모든 것을 신실하고 진실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하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 께서는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이다.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 '공의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대적한자들에 대한 심판의 기준을 의미한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 11:3-5에 나타난 메시야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고 진실됨을 시사한다(2절;15:3;16:5, ). 한편 '심판하며 싸우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네이 카이 폴레메이'는 모두 현재 시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의 사역이 영원한 것이며 대적자 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전투와 심판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 백마(이사야서) 
* 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 가 거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 내시고 환금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 그리고 그들에게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고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 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그 때 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름발이들이 앞으로 나오자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21:13)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유관이 있고- '그 눈이 불꽃 같고'는 1:14;2:18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내면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의 심판의 공정함을 암시한다. 사람의 경우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판단이 잘못될 수 있으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그의 판단과 그에 따른 심판은 공의로울 수 밖에 없다. 한편 '면류관'의 헬라어 '디아데마타'는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의미하는 '스테파노스'('면류관')와는 달리(2:10;3:11;4:4, 10;6:2;9:7;12:1) 왕관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왕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용의 머리에 일곱개의 면류관이 있고(12:3) 짐승의 머리에 열개의 면류관이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것으로(13:1)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신 왕으로서 온전한 주권과 왕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고대 신화에서 이름을 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나 신의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도는 본서에 계시된 여러 가지 이름 외에도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름을 갖고 계신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를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본서에서 그리스도와 관련되 피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대속의 피를 가리키고 있으며(1:5;5:9;7:14;12:11)'입었는데'(페리베블레메노스)가 완료 시상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온전히 이루신 승리를 암시하기 때문이다(19, 20절). 그리고 네번째 견해의 경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15절)가 나타내듯이 그리스도께서 대적자들을 마치 포도주틀에 넣어 짜듯이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서 또다시 그리스도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라는 칭호는 요한복음과 연결된 것으로 중재자 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세상에 거하신 중재자이시며(요 1:1, 14;요일 1:1) 본절에 진술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종말론적 과정인 재림을 통해 대적자들을 멸망시키시고 그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는 우주적인 중재자이시다.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그리스도께서 피 묻은 옷을 입고 계신(13절) 것과 동일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듯이 이들도 승리하여 짐승을 비롯한 대적자들과의 싸움에 참가하며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권능을 목격하며 전진하며 승리에 참여하게 될것 임을 암시한다.
세마포를 입고 - 세마포(요한복음)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본문은 사 11:3-5 을 반영하는 것으로 1:16과 병행된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인 말씀은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도구이다. 더욱이 말씀을 통한 심판은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니골라당이 회개치 않을 경우 반드시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신 바 있다(2:12, 16).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본문은 시 2:9의 반영으로 본서 2:27;12:5에서 병행되고 있다. '철장으로 다스리심'은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과 확고한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은 물론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절대적 권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본문은 사 63:1-6을 반영한다. 본문에 나타난 포도 수확의 모습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짐승을 비롯한 모든 대적자를 완전히 파멸시키심을 시사한다.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은 주님이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며 모진 핍박과 고난속에서 골고다 언덕을 걸어가셨으며 친히 모든 원수들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음을 상징한다. 이제 주석같이 단련된 다리로 모든 악인과 원수들를 밟으시고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로써 통치하실 것이다.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하나님의 큰 잔치'는 7-9절에 언급된 믿는 자들이 참여할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를 이룬다. 본절의 '하나님의 큰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같이 하나님께서 배설하는 잔치이나 자신을 대적한 모든 자들을 멸망시키는 잔치이며 의로운 믿는 자들에게는 즐거운 축제이나 대적자들에게는 공포의 잔치이다.
19: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왕들의 고기와...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여기서 '모든자'는 짐승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대적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그들의 시체가 새들의 먹이로 되는 것이다. 당시 시체가 매장되지 않은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면에서 대적자들의 시체가 새의 먹이로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함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죽음이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것이며 완전한 멸망에 르는 것임을 시사한다.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본절은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모는 모습을 진술한 것으로 16장에 예시된 아마겟돈 전쟁을 가리킨다(16:13, 14, 16;17:2, 18;18:3). '땅의 임금들'은 시 2:2을 반영한 것으로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짐승과 악의 무리에 동조하여 연합세력을 형성한다. 한편 짐승과 연합한 모든 대적자들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이 전쟁은 영적 전쟁으로서 하늘의 천사와  땅의 성도 연합진영과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의 악한 영들과 땅에 그 추종자들 연합 진영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본절과 다음절은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이다. 짐승과 그 무리들은 패배하여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것과 같은 이적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던 자들이다(13:13, 14;16:13).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미혹하던 자라- 그들은 그렇게 미혹된 자들에게 짐승의 표를 찍어서 자신들에게 속한 자임을 확인하며(13:16, 17) 그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하늘의 군대에게 대적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이 둘이 산 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옛 뱀이요 사단인 용은 천년 왕국이 지난 후에야 유황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으나(20:2, 10)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아마겟돈 전쟁의 패배 후에 바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지게 된다. 여기서 유황은 당시 사해와 같은 곳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황 불붙는 못은 신약성경에서 종종 나타나는 게헨나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에서 비롯된 것으로 물록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인간을 불에 태우는 의식을 지낸 곳이었다(왕하 16;3;23:10;렘 7:31). 이러한 게헨나는 악한 자들이 죽어서 가는 것을 가리킴과(마5:22) 동시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받는 장소로 이해되었다 (에녹서 27:1;56:3;90:26). 이렇게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졌다는 사실은 그들이 완전하게 멸망당하였음을 시사한다.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 본절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 당해 그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한 무리들의 멸망에 대한 묘사이다.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은 15절의 반복으로 그리스도의 선포의 말씀에 의해 심판을 시사한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말씀에 의해 심판을 받은 짐승의 추종자들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멸망당하고 그들의 시체는 새의 먹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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