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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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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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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2/26
 

시편13편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2008.06.25 14:35 | * 시편강해 * | 찬양의날개

http://kr.blog.yahoo.com/jchlove40/25923 주소복사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1.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13:1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다윗은 처음부터 탄식하고 있다. '어느 때까지'라는 말은 본절과 2절에 모두 네 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의 실상을 능히 짐작케 해준다(6:3;35:17;74:10;79:5;80:4;94:3).
나를 영영히 잊으시니이까 - 다윗은 그의 대적들이 득세하고 자신은 극심한 질병에 걸린 고통스런 현실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잊으심이 영원히 지속될 것에 대해 크게 염려하며 부르짖은 것이다(Craigie, Rawlinson).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다윗이 탄식했던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윗으로서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그것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던 것이다(22:1)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 이는 바로 앞구절과 병행구이다. '주의 얼굴'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의 방편으로 의인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Kraus). 그러므로 본절에서 주의 얼굴이 숨겨졌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얼굴 빛은 의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을 상징한다(4:6;67:1;80:3, 7). 이렇게 보면 본 구절은 저주만이 임한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을 탄식하는 내용의 구절이다.

=====13:2

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 이를 직역하면, '내가 나의 영혼 속에 생각을 두었고'이다. 이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깊은 생각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각'(에초트)은 물론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 또는 회의(懷疑)를 의미한다. 다윗은 이처럼 자신의 고통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 보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노력이었고 그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종일토록 - 이 말에서 그는 끊임없이 근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딱한 형편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 다윗의 비참한 형편을 보고 다윗의 원수는 크게 기뻐한 것이 분명하다. 그 원수는 고통당하는 다윗을 향해 온갖 독설로 비난했을 것이다. 혹자는 이 원수를 사울 왕으로 보았다(Rawlinson).

=====13:3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낀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동정과 주목을 끌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여기서 '응답하시고'란 '어느때까지니이까'(1, 2절)라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란 질병과 슬픔으로 흐려진 눈을 밝게 해 달라는 간구로서 건강의 회복과 탄식으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하는 말이다. 눈의 밝음은 구약에서 건강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신 34:7, Craigie). 그러나 이 눈의 밝음, 곧 건강의 회복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면에서 볼 때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는 말은 '나의 눈으로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보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주께서 얼굴을 숨기셨을 때 그의 건강이 쇠하여졌던 것처럼(1절) 주께서 얼굴을 보여주실 때 그의 건강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민 6:25). 그러므로 이를 알기 쉽게 번역하면, '나의 눈으로 당신의 생명의(얼굴의) 빛을 보게 하소서'가 된다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하오며 - 다윗의 극도로 악화된 건강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즉, 다윗은 죽음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구약에서는 죽음이 종종 '잠'에 비유되었다(욥 3:13;14:12;렘 51:39, 57;단 12:2). 우리는 '잠'이라는 비유에서 죽음이란 멸절의 상태가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깨어나는 상태임을 엿볼 수 있다(요 11: 1-13;고전 11:30;15:51;살전 4:14). 그러나 다윗이 이러한 의미로 죽음을 잠에 비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13:4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나의 원수가...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 여기서 '나의 원수'는 단수형이며, '나의 대적들'은 복수이다. 혹자는 전자와 후자 모두 다윗의 정적들을 가리킨다고 보나(Rawlinson), 여기에서 단수와 복수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 있다. 즉, 단수로 언급된 '나의 원수'는 인생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복수로 언급된 '나의 대적들'은 다윗의 일반적인 정적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Craigie). 한편, '요동될 때에'란 말은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본절은 분명히 죽음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혹자는 이를 환난 때에 다윗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으로 간주하였으나(Barnes) 과연 다윗의 대적들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태만을 보고 기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13:5

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 여기서 '인자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 )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5장 주제 강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참조하라.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 큰 고통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이는 다윗의 확고한 소망을 나타낸다. 주의 구원이 아직 임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너무나도 확고한 소망 가운데 이 구원을 기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롬 4:18)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가졌기에 다윗은 극한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13:6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 이 말은 1절 상반절의 '어느 때까지니이까'와 완전히 대조적이다.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고 탄식에서 찬송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 여기서 '후대하심이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가말' (* )은 '보상하다', '갚다'라는 뜻으로 선과 악 모두에 적용되는 말이다. 즉, 선이든 악이든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갚아주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으로 보상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인간의 어떠한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는 식의 사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다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나타낼 뿐이다(Calvin).

시편12편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2008.06.20 17:10 | * 시편강해 * | 찬양의날개

http://kr.blog.yahoo.com/jchlove40/25839 주소복사

[다윗의 시, 영장으로 스미닛에 맞춘 노래]
1.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2.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여호와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여호와말씀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7.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8.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12:1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말이다(3:7;6:4;7:1, Kraus).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 혹자는 이 구절을 경건한 자가 악인들에게 멸절당하는 상황으로 해석한다 마치 사울왕이 놉의 제사장들을 도륙한 것과 같이(삼상22:18,19) 악인들이 경건한 자들을 살해한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혹자는 이 세상에서 경건한 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당시 사회가 극도로 부패해 있었다고 해석한다. 아마도 후자의 해석이 옳을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시를 기록한 당시의 사회상은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사회와 유사했을 것이다(왕상 19:10).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다윗 통치시기 중 어떤 때를 지칭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 다윗은 충실한 자를 찾으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당시의 사회는 극도로 부패하여 있었다. 여기서 '충실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모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자를 가리킨다.

=====12:1-8

본시는 애가 형식으로 쓰여진 다윗의 시이다. 이 시도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반면에 속이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시에서는 '우리가 애통 하나이다'(We-lament)라는 직접적인 애가 형식은 발견되지 않지만 아마도 다윗은 괴로워하는 당시의 경건한 자들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께 호소하였을 것이다. 한편, '스미닛'에 대해서는 6편의 표제어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12:2

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 '거짓'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웨' 는 '공허'(emptiness), '허무'(vanity)를 의미하기도 하나, 회칠한 무덤처럼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허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아첨하는 입술 - '아첨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코트')는 '미끄럽다', '부드럽다'는 뜻의 동사 '할라크'에서 파생된 형용사형으로 이는 남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달콤한 말로 판단을 흐리게 함을 의미한다.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 심리학적으로 볼 때 악인들의 거짓과 음험(陰險)한 말은 분열된 정신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Kraus). '두 마음'이란 저들의 정신이 심히 혼란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마음'은 통일된 온전한 정신을 의미한다(렘 32:39;겔 11:19;행 4:32, Delitzsch). 이에 반해 혹자는 '두 마음'을 '두 가지의 기준'으로 본다(Craigie). 즉, 악인은 속과 겉이 다른 두 기준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곧 거짓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두 해석을 모두 취할 수 있겠으나 전자의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다.

=====12:3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자랑하는 혀
- 이는 문자적으로 '큰 말' 을 의미하며 의역하면 '위협하는 말'을가리킨다(Rawlinson). 악인들은 아첨하는 말과 함께 위협하는 말을 한다.
끊으시리니 - 이 동사는 다윗의 소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저짓을 말하는 자들을 그 사회에서 완전히 몰아내 달라는 요구이다(창 17:14;출 12:15, 19;레 7:20, 27;17:10).

=====12:4

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 악인들은 그들의 거짓된 말이나 협박의 말을 통하여 자기들의 목적을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악인이 온 몸을 더럽히고 생(生)의 바퀴를 불사르는 혀에 (약 3:6) 전혀 재갈을 먹이지 않은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 이 표현은 악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 말을 함으로써 저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한 것이다

=====12:5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밀씀에
- 이는 다윗의 간구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혹자의 견해처럼 다윗이 선지자를 통하여 직접적인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받았을 것이다(Kraus). 그런데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에 대해서 다윗은 60편 외에 이곳에서만 언급하고 있다.
내가 이제 일어나 -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는 표현은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 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7:6 주석을 참조하라. '이제'라는 표현은 이전의 상황이 역전됨을 암시하는 말로서 더 이상 악인에 대한 심판을 지체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즉,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형벌하시고 가련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체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겠다는 표현이다(Calvin, Buber).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 가련하고 궁핍한 자를 악인의 횡포로부터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12:6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그 응답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순결함이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호로트'는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호와의 말씀은 악인들의 말(2-4절)과는 정반대로 신뢰할 만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순금 또는 깨끗한 향품(출 30:35) 등에 사용되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 여기서 '일곱 번'이란 거룩함과 완전성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며 완전한 말씀인 것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는 '단련한'이란 표현과 함께 사용되어 찌꺼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은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찌꺼기가 섞여 있지 않다. 여기서 찌꺼기라 함은 악인들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짓으로 아첨, 헛된 것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것들이 전혀 섞여 있지 않으므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완전한 말씀인 것이다.

=====12:7

7.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여호와여...지키사 이 세대로부터...보존하시리이다
-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응답)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신뢰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앞으로 곧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 중에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서 '이 세대'란 1절 이하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당시의 악한 전 세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 말은 앞으로도 계속 출현될 모든 악한 세대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마 11: 16, 17;12:41, 42;23:36;눅 11:29 등, Kraus).

=====12:8

8.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비루(鄙陋)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 '비루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줄루트'는 '무가치함' 또는 경우에 따라 '탐욕스러움'을 가리킨다. 이는 한마디로 악인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악을 자행함을 나타낸다. 당시의 사회는 이러한 자가 인생들 가운데 높임을 받는 불의한 사회였다. 곧 악한 자가 곳곳에서 득세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악한 사회였던 것이다.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 악인들이 당시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말이다(Calvin). 한편, 본절은 독립절이 아니라 7절에 귀속되는 종속절이다. 따라서 본절은 '비루함...횡행할지라도'라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7절과 본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악인이 처처에 횡행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영토록 보존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시편11편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2008.06.17 18:50 | * 시편강해 * | 찬양의날개

http://kr.blog.yahoo.com/jchlove40/25770 주소복사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1.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11:1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내가 여호와께 피해왔거늘
-'피하였거늘' 의 시제는 완료형으로 다윗이 이미 여호와 안에 피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써 다윗은 산으로 도망가라는 그의 친구들의 권면을 한 마디로 거절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산으로 피하는 것보다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은 다윗의 위대한 신앙을 엿볼수 있다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 이러한 유흑은 다윗의 친구들이 매우 인간적인 자들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팔레스틴의 산에는 적들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굴들이 많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친구들은 다윗더러 산으로 도망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친구들의 말을 불신앙적인 권고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저들은 정말로 안전한 피난처가 산에 있는 굴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새같이'라는 말은 다윗의 위기 상황을 적절히 비유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냥꾼에게 쫓기는 가련한 새와같이 다윗이 적들에게 쫓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망하라'(누디우)는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은 '너는 도망하라'는 말이 아니고 '너희는 도망하라'는 말이다. 이는 곧 다윗이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도망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1:2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시위에 먹임이여
- 본절은 다윗이 자신의 위험스런 상황을 설명하는 구절이라기 보다는 그의 친구들이 다윗더러 산으로 도망하라고 한 권면의 근거로서 제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에서 다윗의 대적들은 사냥꾼 또는 무장한 군인에 비유되었다. 그래서 다윗의 친구들은 이 사나운 대적들을 주의하라고 다윗에게 권고해 주고 있다. 본래 원문에는 '보라'(히네)라는 감탄사가 맨 앞에 삽입되어 있다(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아니했음). 여기서 '활'이나 '살'은 의인(다윗)을 파멸에 빠뜨리려는 대적들의 음모를 비유하는 말이다.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 여기서 '어두운 데서'라 함은 '은밀한 중에'라는 뜻으로 대적들이 아무도 모르게 다윗을 해치려 한 사실을 묘사해 주고 있다(Rawlinson).

=====11:3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알꼬
- 이 역시 다윗의 친구들이 그에게 권고하는 말이다. 여기서 '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트'는 국가의 기강, 곧 법률과 질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국가의 법률과 질서가 지금 현재로서는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황하에서 다윗의 친구들은 다윗이 그곳에 남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지적한다.

=====11:4

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다윗의 말이다. 그의 눈은 공격해 오는 적들에게서부터 이 세상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성전'(헤칼)에 계시는 동시에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 표현을 통해 볼 때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운 백성 중에 임재하여 계심을 나타낸 것이요 또한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구절로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보다 위대하시고 초월하여 계신 분임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하에서 다윗은 위기 중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피하기로 결심하였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중에 내재하여 계시는 동시에 모든 인간들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으로서 그 어떠한 피난처보다도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심을 깨달았던 것이다(Craigie). 특히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다윗의 인식은 위기 중에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왜냐하면 각 보좌는 모든 인간을 심판하실 심판의 보좌가 되기 때문이었다(미 1:2;합 2:20, Lange).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 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여기서 '감찰하시도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한'은 '시금(試金)하다', '분석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인생의 그 인간됨을 알아본다는 의미를 가진다. 즉,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행위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눈으로 살펴보시고 알아보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해치려고 하는 악인들의 행위(2절)를 모르실 리가 없다.

=====11:5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 '감찰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4절에서와 같이 '바한'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용어는 의인에게만 적용되었으니 마땅히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이 용어가 악인에게 적용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행위를 살펴보시고 그 행위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의미이지만(10:13), 의인에게 적용되었을 때에는 의인을 단련하시고 그들을 세심하게 돌보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 - 포괄적 의미에서는 율법과 질서를 파괴한 자들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다윗을 은밀히 죽이려 한 자들이다.

=====11:6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 이 구절은 '악인에게 비를 내리시리니'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여기에 사용된 동사 '마타르'는 '비가 오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비는 하나님의 진노나 은혜의 표현이었다(사30: 23;암4:7;슥10:1). 그런데 본절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비의 종류는 내용상 진노의 비를 가리킨다.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당시의 현장과 유사하다(창 19:24).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하나님의 형벌의 대표적인 모형이므로 그때의 상황을 묘사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이 불과 유황을 피하지 못하였듯 이 악인들도 하나님의 형벌의 비를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불과 유황은 하나님의 강림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18:12ff.). 그러나 하나님의 강림을 상징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악인들을 불로써 형벌하기 위한 강림인 것이다. 그리고 '태우는 바람'은 팔레스틴 남동편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가리킨다). 이는 악인에게는 이와같이 하늘로부터 임한 불에다 자연적인 재앙까지 겹치는 무서운 형벌이 임하게 된다는 뜻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형벌의 참상을 묘사한 것이다.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 이 '잔'은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다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지는 것은 각기 다르다. 즉, 악인의 잔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담겨져 악인은 그것을 마실 것이나 의인의 잔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담겨져 의인은 그것을 마실 것이다(116:13). 그리고 이 잔은 자유롭게 마시는 연회석의 잔이 아니라 반드시 모두 다 마셔야하는 운명의 잔이다.

=====11:7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 이는 5절 하반절과 대조적인 내용이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의로운 일 행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문맥상 후자의 해석이 더욱 자연스럽게 보인다.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 이는 '정직한 자'(의인)가 생활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거나 아니면 죽음 이후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거나 아니면 죽음 이후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특별히 위기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안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위기 중에 있는 다윗은 바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여호와께 피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10장 하나님이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2008.05.29 08:55 | * 시편강해 * | 찬양의날개

http://kr.blog.yahoo.com/jchlove40/25547 주소복사

1.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6.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포학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9.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11.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13.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15.악인의 팔을 꺽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16.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10:1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어찌하여 - 이 첫마디는 본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곧 애가적 성격을 결정하는 표현이다. 다윗이 '어찌하여'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원수들의 박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역사)하시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외침이라기 보다는 하루 속히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신앙적인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Delitzsch).
멀리 서시며 - 즉, 거리를 두고 계신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지금 방관자가 되어 계신다는 말이다.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 이는 하나님께서 비겁하게 몸을 숨기셨다는말이 아니라 침묵을 지키시며 자기 백성의 위급한 사정을 돌보고 있지 않고 계시다는 말이다(애 3: 56, Delitzsch).

=====10:2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窘迫)하오니
- 악한 자의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함에 있다. 저들은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기에 가련한 자를 심히 괴롭하는 악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즉,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Craigie). 여기서 '군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라크'는 '급히 쫓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용어의 명사형 '달레케트'는 '화병', '열병'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문자 그대로 원수들이 추격해 오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원수들의 박해로 말미암아 열병과도 갈은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하소연하는 말이다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 하나님의 보응 원리에 입각한 간구의 내용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는 것일 따름이다(욥 34:11;잠 24:12;롬 2:6).

=====10:3

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 의인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과 정반대로 악인은 그 자신의 욕심을 자랑한다(Rawlinson). 여기서 '소욕'이란 악인이 바라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교만을 가리킨다(Alexander). 이는 하나님을 무시한 악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 여기서 '탐리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체아'는 본래 '자르다', '떼어내다'라는 뜻으로 '부당 이득을 취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용어이다(Delitzsch). 때로 이 용어는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적인 이익만을 얻으려는 지도자들의 욕망에 적용되어 쓰이기도 하였다(삼상 8:3;사 56:11;렘 22:17, TWOT). 따라서 이는 단순히 치부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권력 등의 수단으로 불의하게 재물을 착취하는 자를 의미한다. 한편, '배반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레크'는 본래 '축복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혹자는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라는 구절을 '축복받을 때마다 멸시한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축복하다'는 의미 이외에 보다 발전된 의미로서 '축복하고 떠나다', 즉 '작별하다', '멀리하다'는 뜻을 가진다(욥 1:5, Delitzsch). 이렇게 볼 때 이 구절은 불의로 재물을 착취하는 자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점점 싫어하고 떠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4

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하며
- 혹자는 '감찰한다'는 말을 '보응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13절;9:12). 물론 '감찰한다'는 말이 악인에게 적용될 때 '보응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전혀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악인들의 불신앙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감찰하다'를 '보응하다'란 의미로 제한시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뿐 아니라 그분의 간섭과 심판까지도 부인한다. 이는 악인들이 인간 중심적 사고로 꽉 차 있음을 가리킨다.

=====10:5

5.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 이는 악인들이 악을 행함에 있어서 전혀 흔들리지 아니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이나 인간을 두려워함이 없이, 또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담하게 악을 행했다는 표현이다(Rawlinson, Calvin, Craigie).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쳐지 못하오며 - 악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와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로써 악인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 악인은 이 땅 위에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간들의 위협을 무시해 버린다. 여기서 '멸시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푸아흐'는 본래 '숨쉬다', '불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코방귀를 뀌다', '픽 웃어버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0:6

6.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 즉, 많은 사라들이 파멸할지라도 자기는 언제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악인이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자기 스스로 어떠한 재앙도 물리칠 수 있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다(49:11;사 56: 12, Calvin).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 악인은 고통없는 행복만을 꿈꾸고 있다. 심지어 그는 죽음조차도 잊어버린 듯하다(Rawlinson). 이처럼 마땅히 고통을 받아 죽어야 할 자가 고통이나 죽음을 당하지 않고 있음에 대해 시인은 못마땅히 여기며 하나님의 간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10:7

7.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 이는 악인이 그 입술로 의인을 시험에 들게 한 사실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 '혀 밑'은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이 표현은 악인이 단순히 악한 말을 할 뿐만 아니라 고러한 말 자체를 즐긴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Craigie).

=====10:8

8.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 여기서 악인은 산적으로 비유되었다. 산적이 산기슭 으슥한 곳에 숨어 기다리다가 무죄한 자를 죽이고 강탈하듯이 악인은 의인을 해(害)하기 위해 은밀하 음모를 꾸민다. 이 비유에서 강조되고 있는 악인의 성격은 교활함이다.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 여기서 '외로운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헬카'는 '권세있는 자' 와 반대되는개념으로 '연약한자', '무력한자', '불행한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와같이 악인은 연약한 자들에게 자기의 권세를 남용한다는 것이다.

=====10:9

9.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 사자는 난폭한 성질 때문에 종종 행악자에 비유된다. 한편, 난폭한 사자와 같은 악인에 의해 고통받는 '가련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니'는 '괴롭히다', '압제하다'는 뜻의 동사 '아나'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압제당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를 의미한다(TWOT). 악인은 이같이 압제당하는 자를 또다시 압제하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 악인은 사자에게 비유되었다가 또다시 사냥꾼에 비유되고 있다. 여기서 '자기 그물을 끌어'란 '자기 그물 안으로 유인하여'라는 뜻이다. 다윗은 앞 구절에서 악인의 광포한 성격을 나타냈으나 본 구절에서는 악인의 교활한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10:10

10.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 이 구절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혹자는 이 구절의 주어를 악인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 말은 악인이 의인을 잡기 위해 바싹 엎드린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 구절의 주어는 하반절에 나오는 '외로운 자'인 듯하다. 그렇게 볼 때 이 구절은 '외로은 자', 곧 무력한 자가 악인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장면을 묘사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었다. 즉, 악인은 무력한 자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이로 인해 무력한 자는 악인의 먹이가 되어 엎드려져 있는 것이다.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 이는 앞 구절과 병행 구절로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강포'란 유형적인 폭력뿐 아니라 무형적인 폭력도 가리킨다. 이러한 폭력에 의해 연약한 자는 무력하게 당하고 있다.

=====10:11

11.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 4절에 이어 또다시 악인의 사상을 소개한 부분이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사(人間事)에 도무지 관여하지 않는다는 악한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연약한 자들을 괴롭힐 수 있었던 것이다.

=====10:12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 이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간섭을 요청하는 말이다. 시인은 의로운 자를 억압하는 저 악인들의 횡포에 대하여 울분을 품고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즉각적으로 개입해 주시기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의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3:7;7:6 주석을 참조하라.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 하나님께서 손을 드신다는 것은 (1) 하나님께서 능력을 발휘하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2) 대적들에게 보복을 선언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Craigie).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 여기서 '가난한 자'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9절의 '가련한 자'와 같이 '아니'로서 '억압당하는 자'를 가리킨다. 한편,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억압당하는 가련한 자를 잊고 계신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10:13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하나님을 멸시하여
- 하나님께서 이 세상사에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악인의 사상은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멸시하여'란 표현은 신성 모독 행위와 같이 하나님을 능욕(凌辱)함을 의미한다.

=====10:14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진 모습이다. 특히 1절의 내용과 비교하여 볼 때 시인이 기도 중에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에 대한 믿음을 크게 회복한 사실이 역력하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 이는 악인의 사악한 사상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악인을 감찰하셨음을 확신하는 말이다. 이로써 시인은 악인의 사상이 실로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잔해'와 '원한'은 연약한 자가 악인으로부터 받는 온갖 해(害)와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 이 구절(레테트 베야데카)을 직역하면, '당신의 손안에 놓여져 있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 문제가 주의 손안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결정권, 또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할 뿐이다.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 외로운 자는 인생 중에 아무도 의지할 자를 찾지 못한 자이므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 여기서 '주'는 문자적으로 '당신' (아타)이다. 히브리 문법에서 2인칭 대명사가 사용되는 경우는 강조형이다. 따라서 시인은 오직 '당신'(주)만이 돕는 자임을 강조한 것이다(Rawlinson). 한편, 여기서 '외로운 자'는 그 형편이 비슷한 고아에 비유되었다. 하나님은 '고아'를 지금까지 돌보아오셨으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외로운 자'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본절에서 시인은 고통 중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연약한 자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임을 확신한 것이다(Craigie).

=====10:15

15. 악인의 팔을 꺽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 이 표현은 저주시의 일반적인 내용 중 하나이다. 곧 악인의 기세 등등한 힘(권세)을 꺾어달라는 요청이다.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 악인의 사상(4,13절)과는 달리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모든 죄악을 찾으실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없기까지'라는 말은 원문을 정확히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용어는 본 구절에서 분리시켜 하나의 독립구로 해석해야 한다. 즉, 본 구절은 '악한 자의 악이 발견되지 않게 하소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악의 세력의 완전한 파멸을 요청하는 말로서 그 세력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해 달라는 간구이다

=====10:16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는 영원 무궁토록 왕이시니 - 이는 악한 자의 허무성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악한자의 권세가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그것은 얼마가지 못하여 파멸하고 만다. 반면, 하나님의 통치는 일시적으로 행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영원히 섭리 가운데 반드시 적기(適期)에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 '열방'(고임)은 하나님을 대적한 이방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들을 멸망시키심으로 당신의 거룩한 땅(혹은 교회)을 정화(淨化)시키신다.

=====10:17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 시인은 본 시를 확신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한다. 여기서 '겸손한 자'는 9절의 '가련한 자'와 원문상으로 같은 단어 '아니'이다. 이 표현과 함께 본 시에 언급되는 '가련한 자'(2, 9절), '외로운 자'(10, 14절), '가난한 자'(12절), '압박당하는 자'(18절) 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의인에 대한 동의어이다.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 '예비하시며'(쿤)는 본 문맥에서 '확고하게 하다', '견고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셨다는 말로서 악한 자가 사라졌으므로 겸손한 자는 아무런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는 뜻을 암시해 준다

=====10:18

18.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 여기서 '세상에 속한 자'란 히브리어로 '에노쉬 민 하아레츠' 로 직역하면 '땅으로부터 온 인생'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생'(에노쉬)이란 단어는 인간의 연약성을 나타내는 말이다(9:19 주석 참조). 의인을 핍박하는 그 인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정반대로 땅에 속한 인생이기에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한편, 본절의 전체적인 내용은 선지서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묘사와 흡사하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종말론적 시각으로 본다(Kraus).

시편9편 여호와께서 영영히 보좌에 앉으시도다

2008.05.29 08:50 | * 시편강해 * | 찬양의날개

http://kr.blog.yahoo.com/jchlove40/25546 주소복사

[다윗의 시, 영장으로 뭇랍벤에 맞춘 노래]
1.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2.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6.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셨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8.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9.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10.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14.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셀라)
17.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18.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 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19.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인줄 알게 하소서(셀라)

=====9:1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주의 모든 기사
- 이 말은 다윗이 이방의 군대와 싸워 크게 승리한 것을 가리킨다(5, 15절). 혹자는 이 승리가 암몬과 아람 연합군을 물리쳤던 승리(삼하 10:6-10)였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Rawlinson). 한편, '기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플레오트' 는 '경이로운 일'을 의미하는 용어로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한다.

=====9:1-11

'뭇랍벤에 맞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무트 랍벤'은 지금까지도 난해한 용어이지만 아마도 노래의 곡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추된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알무트'튤 분리된 두 용어로 보지 않고 한 단어로 본다면 이 용어는 '여성의 목소리로'라는 뜻이 된다(Craigie).

=====9:2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 '지극히 높으신 주'란 히브리어로 '엘리욘'인데 이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사 14:!4), 다른 신들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97:9), 그리고 천지의 창조자(창 14:19)를 나타내며, 더 나아가 만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의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47:2;신 32:8). 이방의 거대한 군대를 물리치게 하신 하나님을 '엘리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다윗은 주의 이름을 찬송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구속과 창조의 놀라운 일 가운데 당신의 이름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영광을 나타내셨기 때문이었다(8:1).

=====9:3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 이 구절은 주의 놀라운 일을 증거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물러가다'(슈브 아호르)는 말은 문자적으로 '뒤로 돌아서다', 곧 '후퇴하다'라는 뜻으로 다윗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계획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대적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 '넘어져 망하였다'는 표현은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9:4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 이는 다윗의 승리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결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곧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하기 위해 강림하시거나 효과적으로 개입하시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Kraus). 본절에 사용된 전치사는 위치를 나타내는데 흔히 사용되는 '알'('위에'라는 뜻)이 아니고 방향을 의미하는 '레'이다. 이 전치사는 주로 '...을 향하여'(for, toward) 또는 '...을 반대하여'(against)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향하여 앉으셨다(또는 강림하셨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징계를 나타낸다.

=====9:5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열방(列邦)을 책하시고 - 여기서 '열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임'은 주변에 위치했던 이방 족속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열방을 책하신 하나님의 행위는 저들이 멸망당한 유일한 원인이 되었다.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 이는 (1) 저들의 후손이 하나도 없도록 근절하였다는 의미이거나, 적어도 (2) 저들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는 의미이 다. 이렇게 볼 때 이 구절은 6절의 '...기억할 수 없나이다'와 내용상 관계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Craigie).

=====9:6

6.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셨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 이 표현은 5절 하반절과 같은 의미로 다윗의 대적이 완전히 패망하여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엄하게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9:7

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 다윗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다. 여기서 '앉으셨다'는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했던 말이다.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쿠넨'은 '예비하셨도다'라는 의미보다 '세우셨도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며 이 문맥에서도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Rawlinson, Kraus). 따라서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9:8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 여기서'세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 (2)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세계, (3) 전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TWOT). 본 문맥에서는 이중 특별히 (3)의 의미가 적절한 듯하다. 왜냐하면 병행 구절인 하반절에 '만민'이라는 동의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9:9

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산상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스가브'는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를 의미한다. 이곳은 적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시편 전체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한다. 다윗은 본 구절의 내용을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의 양면성을 표현해 주었다. 즉, 악인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동시에 당신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에 대하여는 인자하신 보호자가 되신다는 양면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10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
- 이는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자, 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와 동행하는 자를 의미한다(Kraus). 왜냐하면 '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인간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진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 '의지하다', '찾는다'는 말은 특별히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믿음의 행위를 의미한다.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하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았으며, 그러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안전하신 보호를 체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에 근거하여 그는 본 구절의 말을 담대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37:28). 그리고 특히 본 구절에 사용된 두 동사(의지하다, 찾다)는 앞에서 사용된 '알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9:11

11.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백성 중에 -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 중에'라는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 내에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까지도 알려져야 한다고 믿은 것이 분명하다(18:49;66:4;72:11, 19).
선포할지어다 - 다윗은 3-10절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밝힌 후 자기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함께 찬송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9:12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피흘림을 심문하시는 이
- 피흘림 당한 자들을 위해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생명의 근원인 피를 취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것은 당연하다(창 4:10;9:5). 여기서 '심문하시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는 보통 '찾다'라는 뜻이지만, 생명을 취한 자들에게 사용되었을 경우, '보복하다' 또는 '생명을 취한 대가로 생명을 요구하다'라는 뜻을 가진다(TWOT).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 여기서 '저희'는 환난 때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찾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는 보수(報讐)하시나 겸손히 그를 의지하고 찾는 자들은 환난 중에 기억하셔서 구원하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양면성이 암시되어 있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 '가난한 자'란 문자 그대로 '가난한자'를 의미할 뿐만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는 원수들에게 압제당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Rawlinson, Kay).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9:13

13.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찬송의 분위기에서 기도의 분위기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다윗은 3-6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 곧 원수들을 물리치게 하신 과거의 경험을 노래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윗은 이 당시 당연히 원수들의 압제에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다윗이 과거의 경험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심정으로 이와같이(13-20절)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기도의 간절성으로 볼 때 본 기도는 현재의 고통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인 것으로 보인다.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 다윗은 과거의 놀라온 체험으로 어느 정도 원수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껏 그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그 주변에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위기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망의 문 - 14절의 '시온의 문'과 대조되는 어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는 죽음(음부)의 세계를 의미한다(107:18;욥 38:17). 음부에 대해서는 6:5 주석을 참조하라.

=====9:14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딸 같은 시온'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시온의 딸'로 번역되어야 자연스럽다. 일반적으로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을 의미한다(Craigie, Rawlinson). 이렇게 볼 때 본절은 예루살렘에서 집회를 열고 주를 찬송하며 경배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9:15

15.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 이는 기도 응답의 결과에 대한 노래이다. 여호와의 응답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악인들에 대한 재앙으로 실현되었다. 이와같이 열방의 멸망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또한 자기들이 악을 행한 보응으로써 받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Craigie). 본 구절을 통해 볼 때 다윗을 괴롭힌 대적들은 주위의 이방 나라들이며 이들은 다윗을 대적하여 전쟁을 시도했으나 결국 그 전쟁에 의해 파멸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숨긴 그물 - '웅덩이'와 마찬가지로 '그물'은 고대인들의 사냥에 쓰인 도구로, 본 구절은 의인을 파탄의 지경에 몰아놓기 위해 꾸민 악인들의 계략을 비유한다.

=====9:16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셀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자신을 대적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셨음을 의미하는 말이다(Rawlinson).
힉가욘, 셀라 - 내용상 하나의 주제가 끝났음을 알리는 표시로 이해된다(Kraus). '힉가욘'은 '연주 방법'을 지시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가 '묵상하다', '슬퍼하다', '탄식하다'는 뜻의 동사 '하가'에서 파생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숙하게', '조용하게', '부드럽게'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 '하가'라는 단어는 현악기로 반주한 92:3에 사용되었다(Craigie).

=====9:17

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 음부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곳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6:5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 구절에 사용된 '돌아간다'(슈브)는 표현은 인간이 다시금 죽음, 곧 본래의 존재인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파생되었지만(Kidner), 여기에서는 악인들이 본래 계획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비유적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Calvin). 이는 15절과 부합된 해석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 - 이는 악인과 동의어이며 악인의 성격을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한 말이다.

=====9:18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 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 본절은 17절과 대조되는 구절이다. 여기서 '궁핍한 자'는 17절의 '악인', 곧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부요치 못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악인들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나 하나님께 소망을 둔 의로운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들은 '가난한 자'로도 표현되며 하나님의 기억의 대상이 되어 악인들로부터 구원받는다.

=====9:19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일어나사
-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간섭)을 요청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보다 자세한 내용은 7:6 주석을 참조하라.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 여기서 '인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노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 용어는 아마도 '약하다', '병들다'는 뜻의 동사 '아나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TWOT). 다윗이 일반적으로 '사람' 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히브리어 '아담'이란 말 대신에 이 용어를 본 문맥에서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인간의 연약함을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함이다(Craigie, Kraus). 이와같이 인생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때 여지없이 멸망당할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생이 하나님을 이기려하는 행위는 실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9:20

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인줄 알게 하소서(셀라)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 본 구절을 직역하면, '여호와여 저들에게 두려움을 두시고'이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출애굽과 같은 놀랄 만한 일(신 4:34, '두려운 일')을 의미한다. 대적들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두려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성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자기는 인생뿐인줄 알게 하소서 - 여기서 인생은 19절의 인생과 같이 '아노쉬'이다. 다윗이 이 단어를 거듭 사용한 것은 그만큼 인간이 연약하며 제한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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