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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 애굽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왕에게 범죄한지라
-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지 수일이라
-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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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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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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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 제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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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 40:1 그 후에 - 문자적으로 '이 말씀들 후에'란 뜻으로 39장에 기록된 요셉의 투옥 사건 이후를 말한다. 즉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무고(誣告)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 후를 가리키는데 이때는 요셉의 나이 약 27세 가량으로 애굽으로 팔려온 지 10년쯤 된 때이다(37:2;41:1,46). 술 맡은자( ,마쉬케) - '마시게 하다', '물을 대다'란 동사 '솨카'의 사역형 분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자'를 뜻한다. 이는 단순히 술을 따라 주며 시중 드는 일 이상으로 왕의 자문(諮問)과 국정(國政)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로서 오늘날의 비서실장직에 해당되는 자이다. 한때 느헤미야도 페르시아 왕실에서 이런 관직을 맡은 일이 있었다(느 1:11;2:1). 떡 굽는 자( , 오페) - '떡을 굽다'란 '아파'에서 유래한 말로 이 직책은 제례 의식을 중요시하며 고대 근동의 신정국가에서 제의(祭儀) 음식(14:18;레24:5)과 관련되어 신성시 여겨졌다. 특히 앗수르에는 떡 굽는 관원장의 이름을 딴 지명도 있었다고 한다. 창40:3 시위대장의 집안에 - 보디발의 집을 가리키며 요셉이 갇혀 있는 곳이다.(37:36;39:20). 따라서 보디발은 시위대장으로서 관저(官邸)에 살았던 것 같다. 옥( , 미쉬마르) - '지키다' 혹은 '보호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솨마르'에서 파생된 말로 '보호소'를 의미한다. 이처럼 전직 고위 관리들이 갇힌 옥을 '보호소'라 칭한 점으로 보아 그들은 일반 죄수들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은 것같다. 창40:4 시위대장이 -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던 시위대장이 등장한 것은 관원장들의 신분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즉 그 두 사람은 국가의 고위직에 있었던 관계로 저들이 복직 될 경우 시위대장에게 정치적 특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 문자적으로 '그들과 함께 있도록 (요셉을) 임명하였다'란뜻이다. 이것은 비록 보디발이 요셉을 옥에 보내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정리(情理)와 오히려 전보다 더 깊어진 신뢰를 갖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섬겼더라( , 솨라트) - 중요한 인물이나 하나님을 최대한의 봉사와 충성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가 충심(忠心)으로 모세를 섬기 듯(출24:13;33:11;수 1:1), 엘리사가 진심으로 엘리야를 수종들 듯(왕상 19:21), 천사들이 뜻을 받들어 여호와를 섬기듯(시 103:21) 요셉이 두 관원장을 섬기기를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섬겼음을 보여 준다. 창40:5 꿈을 꾸니 - 일반적인 꿈이 질병이나 일상사에 대한 심리적 혹은 정신적 반응 현상인 것에 반해 두 관원장은 자신들의 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두 관원장 모두 똑같이 같은 날, 같은 밤에 비슷하면서도 내용이 상이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향편 이 꿈의 사건은 요셉의 생애에 발생한 3대 사건 중 두번째에 해당된다.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 이쉬 케피트론 할로모) - '사람'을 뜻하나 '이쉬'와 '해석' 혹은 '해몽'의 뜻의 지닌 '피트론'에 ' ...을 따라서'라는 전치사 '케'가 붙고 '꿈'을 의미하는 '할롬'에 3인칭 접미어가 합쳐져 '각기 의미를 지닌 꿈'(RSV; each dream with its own meaning)을 꾸었다란 말이다. 이처럼 두 관원장이 같은 날 밤 똑같이 꿈을 꾸었지만 그 내용과 해석에 있어서는 전혀 달랐던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그들의 꿈이 우연적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한 섭리적 현상임을 보여 주기 위함과 (2) 하나님께서 그 꿈 해석의 열쇠를 요셉에게 주어 그의 예언자적 능력을 분명히 입증시킴으로써 그를 바로 앞으로 이끌어(41:9-13) 애굽의 총리로 등용시키기 위한 것이다. 창40:6 아침에...들어가 보니 - 같은 감옥 안에서도 두 관원장은 전직 고관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반 죄수와 달리 특별 처소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여느 날처럼 요셉은 수종들기 위해 저들의 감옥으로 찾아온 것이다. 근심 빛이 있는지라 - 옥에 갇힌 상태에서 꾼 범상치 않은 꿈으로 두 관원장은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이것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꿈은 특별한 뜻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고, 적절한 해석을 통해 미래의 사건을 예견 할 수 있다고 믿어졌으나 해석할 수 없는 데서 기인된 불안의 빛이었다. 창40:7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 문자적으로 '오늘 어찌하여 당신들의 얼굴들이 악합니까'란 뜻이다(Pulpit). 이처럼 자신이 섬기는 자의 얼굴 빛 까지도 살리는 요셉의 깊은 관심 표명은 그의 충실성을 나타낸다. 만일 그러한 질문이 없었더라면 그를 영광의 길로 인도한 일련의 사건들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무엇인가 돕고자하는 이 봉사 정신은 요셉의 성공의 비결이었다. 창40:8 해석할 자가 없도다 - 당시 애굽에는 신탁(神託)임무와 꿈 해석 등을 전문으로하는 박사와 술객 등이 있었다(41:8). 그러나 지금은 갇힌 몸이라 그들을 면회할 길이 없다는 두관원장의 하소연이다. 해석은 하나님께 - 일찍이 하나님이 주신 꿈(37:5-9)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요셉은 두 관원장의 꿈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한 초자연적 성격의 꿈이라는 것을 신앙의 내적 확신을 통해 분명히 믿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다신론자인 애굽인들에게도 꿈을 주관하는 어떤 신을 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 당시 애굽에서 꿈 해석은 고도의 학문적 기술을 요하는 난해한 분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일개 비천한 이방인 종의 입에서 이처럼 확신에 찬 질문이 나왔다는 사실은 화려한 경력과 학식을 가졌을 관원장들에게 분명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창40:9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7~8) 창40: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본문은 매우 빠른 속도로 어떠한 상태를 목표로 하여 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즉 포도나무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으로 싹이 트자마자 꽃이되고 바로 그 직후 포도송이가 익는다. 성경에서 포도나무 자체가 좋은 결실을 상징하듯(시 128:3'호 2:15) 이것은 어떤 커다란 성취를 향해 촉박하고 신비스러운 힘이 그 계획한 일을 바쁘게 전개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새겨 준다. 세 가지가 있고 - 사흘을 암시하는 상징이다(12절). 즉 삼일후는 바로의 생일인데 그 날에는 전례에 따라 죄수를 석방하기도 하고 처형하기도 하였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 세가지 (모세.엘리야.예수 그리스도) 창40:11 내가...따서...짜서...드렸노라 -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이 급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원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로의 복귀가 멀지 아니했다는 소망을 마치 화면을 비춰주듯 보여준다. 즙 - 히브리어로 '야인'( )이라 불리우는 포도주(Wine)을 뜻한다. 창40:12 그 해석이 이러하니 - 머뭇거림도 없이 곧 바로 해몽을 하였다는 사실은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의 영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창40:13 머리를 들고 - 수치스런 상태에서 영예로운 지위에로 올리움을 받는 것을 뜻한다. 즉 사면(赦免))과 복권(復權) 및 은택 받음을 뜻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왕하 25:27;렘 52:31). 창40:14 득의하거든 - 꿈 해석대로 '일이 잘되어 형통하게 되면'(RSV;when it well with you)이란 뜻이다. 창40:15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 히브리인의 문자적인 뜻은 '건너온 자'란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맨 처음 적용되었다(14:13). 히브리(Hebrew)란 명칭이 사용된 경우는 (1)이 스라엘 민족이 타(他)민족에게 자신들을 소개할 때(43:32;욘 1:9).(2) 타(他)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을 부를 때(출 2:6) 사용되었다.한편 여기서 요셉이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소개한 이유는 셈과 에벧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10:21;11:26)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약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렘 34:14). 창40:16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 미덥지 않게 생각하던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의 소망적인 해몽을 듣자, 자신의 꿈도 길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된 까닭은 두 관원장의 꿈 사이에 현저한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40:16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세 광주리도 역시 삼 일을 의미한다(18절). 당시 애굽의 남자들은 물건을 머리에 이어 나르고 여자들은 어깨에 메어 날랐다. 그런데 삼 일을 나타내기 위하여 각각 그 사람과 관련이 깊은 사물이 이용된 점이 매우 흥미롭다. 창40:17 각종 구운 식물 - 빵 굽는 자가 만든 여러 가지의 과자류와 빵 종류를 가리킨다. 새들이... 먹더라 - 그가 자신의 명석한 머리를 의지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결국 관원장은 바로의 생일날에 참수형을 당하여 새들에게 뜯겨 먹힘으로 이 꿈은 사실로 드러났다. *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6)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3~37)
*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3~6)
창40:18 그 해석은 이러하니 - 비록 부드러운 음성의 해석이나 그 이면(裏面)에는 하나님 뜻에 대한 한 치의 틀림도 없는 계시가 담겨 있었다(19절). 당신의머리를 끊고( ,이사 에트 로쉬카 메알레카) - '당신의 머리를 당신 위에로부터 들러 올릴 것이다'(RSV;[pharaoh] will lift up your head from you)란 말. 즉 '(바로가) 너를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요셉은 그 표현 양식에 있어서는 정중하였지만 그 전하는 메시지에 있어서는 가혹하리만큼 단호하였다(딤전 4:12;계 22:18,19). 나무에 달리니...먹으리이다 - 죽임당한 죄수의 시신(屍身) 땅에 묻지 않고 나무 기둥에 붙들어 매어 죽음에 수치를 더하는 극형 집행 방법이다(신 25:1-3;수10:26). 이러한 제도는 페르시아와 카르타고인(Carthaginians)들에게서도 전해진다. 창40:20 바로의 탄일 - 이날은 하나님께서 꿈해석의 성취를 위한 날로 이미 예비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이날에는 거대한 잔치와 함께 각종 죄수들이 왕의 특별사면을 받기도 하고 처형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창40:21 바로의 손에( , 알카프 파르오) - '...위에'(upon)를 뜻하는 전치사 '알'이 '손바닥'(출 9:29; 사 1:15)을 나타내는 '카프'에 붙고 '바로'인 '파르오'가 합쳐져 '바로의 손바닥 위에'란 뜻이다. 이것은 본래 애굽의 잔은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던 당시의 관습을 반영한다. 창40:22 매여 달리니( , 탈라) - '매달다', '걸다'란 뜻으로 '그가 말뚝에 찔려 꿰어졌다'(41:3;신 21:22;삼하 4:12)란 말이다. 이러한 처형법은 히브리 왕조시대의 앗수르 부조(浮彫)에 종종 나타난다. 이처럼 시신들을 나무에 매달거나 말뚝에 매다는 행위는 저들을 신에게 저주받은 자들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로 신의 축복이 깃든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의도에서였다(신 21,22장). 창40:23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 꿈이 길조(吉兆)로 풀이되었을 때(12,13절) 아마 술관원장은 기쁜 마음으로 요셉의 부탁(14,15절)을 반드시 들어주겠노라고 거듭 맹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형편이 바뀌자 까맣게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요셉은 인간의 기억 속에선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뚜렷이 남아 있었다(시 27:10;사 49:14-16). 이 사건 이후 요셉에게 닥쳐온 2년이란 세월은 사랑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연단 기간이었다(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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