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 2.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 3.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 4. |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 5. |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
| 6. |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
=====1: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 - 시편은 이처럼 서두를 '복'이라는 말로써 시작한다. 히브리어 '아쉬레이 하이쉬'는 직역하면 '그 사람의 복이여'이다. 즉, '아쉬레이'는 '올바르다', '번영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솨르'에서 유래된 복수 명사의 연개형인데, 여기에서는 감탄사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에서는 어떤 명사가 뒤따르는 단어와 의미상 소유격 관계에 놓일 때 앞의 명사를 연계형으로 만들어 '...의'로 해석한다. 한편 구약 성경에서 '복'이란 뜻을 가진 단어로는 '바라크'와 '아솨르'가 있다. 먼저 '바라크'는 파생어까지 포함하여 415회 정도 나오는데 주로 하나님이 누군가를 축복할 때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거나, 신적 권위를 가진 대리인에 의한 축복선포 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또한 복을 간구하거나 축원할 때에도 사용되었다(3:8;왕상 1:47;잠 3:33).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며 - '악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사'는 '유죄한자', 곧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입증된 자를 말한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 대신에 자신의 삶의 원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차'이다. 이 말은 의도, 도모 등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 '죄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임'은 표적을 빗나가거나 또는 길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의 '하타'에서 파생된 말로서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길(율법)을 가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간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만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침'은 '조롱하다', '비웃다'는 뜻의 동사 '루츠'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조롱하는자'를 의미한다. 이들이 조롱하는 말들은 73:8-11;사 28:15;말 3:14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세 동사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즉, '좇다'(할라크), '서다'(아마드), '앉다'(야솨브)는 말들은 죄의 점진적인 과정을 시사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죄의 성질이 점점 더 악화됨을 이 용어들의 배열을 통해 알 수 있다.
=====1:2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 - 율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흔히 모세 오경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의 계시라는 점에서 이 용어는 하나님의 교훈 또는 훈계라는 의미를 가지며 아울러 하나님의 교훈은 기록된 말씀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성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적어도 본시가 전체 시편의 서문의 성격을 가지므로 이 용어는 모세 오경뿐만 아니라 시편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교훈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이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본 의인의 특성이다. 그 특성은 (1)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기쁨으로 반응하는 것이며 (2) 계속적으로 그 율법과 관계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다(수 1:8). 여기서 '즐거위하여'라는 말은 의인이 토라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뻐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안에서 즐거음을 취하는 것은 바로 의인만이 누릴수 있는 행복한 싫의 핵심을 구성하는 요소이다(112:1). 한편, '묵상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는 '묵상하다'는 뜻 이외에 본래 '말하다', '속삭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로 볼 때, 의인은 묵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하게 암송한 듯하다. =====1:3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이는 의인의 복된 상태에 대한 비유이다. 즉, 의인이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항상 기쁨을 공급받는 상태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다 비유한 것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언제든지 생수를 공급받는다. 여기서 '시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팔라그'는 팔레스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간헐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로(水路)를 말한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 '시절을 좇아'란 문자적으로 '그의 때에'이며 이는 곧 인생의 추수기를 의미한다. 나무가 추수기에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악을 멀리하고(1절)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누리는 의인은 인생의 추수기에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열매는 추수기에 맺히는 열매이므로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는 악인들의 열매와는 달리 완전히 익은 열매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의인의 행복은 인간의 잔재주로 인해 얻는 그런 종류의 행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건의 노력을 통해 얻는 완전 무결한 행복인 것이다.
=====1:4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곡식을 까 부를 때 낱알은 지면에 떨어지나, 겨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여기서 '겨'란 악인의 사라져 버리고 말 허무성을 비유한 말이다. 이러한 개념은 3절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의 견고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 겨는 성경에서 무가치한 것을 상징하는 말로서 많이 언급되어 있다
=====1:5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 여기서 '심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공의' 또는 '심판'으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이다. 또한 '견디다'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쿰'은 '서다', '일어서다'라는 뜻이다. 그들의 유죄함이 발견될 것이며 수치와 당황스러움 속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의 성품과 일이 아무리 교묘하게 감추어지고 위장되었을 지라도 그 때에는 그것이 사실 그대로 모두 발견될 것이며 그들의 거짓이 드러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심판은 매우 공정하며 치우침이 없을 것이다.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도다 - 여기서 '의인의 회중'이란 하나님의 심판 또는 판단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들의 총회를 말한다. 악인은 영원히 복 있는 자의 모임에서 제외될 것이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할 것이다 그 법정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입회자가 된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시어 "뭇 사람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유14; 고전 6:2). 또는 그들은 "하늘 나라"에 들지 못할 것이다. 강력히 말해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의 총회," "의인의 회중," 모든 성도들의 모임이 있을 것이나 성도들 이외는 그 누구도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부정하거나 성별되지 아니한 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의인이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볼 것이나, 그들 자신은 쫓김을 당하여 영원히 괴로워 할 것이다(눅 13:27). 그가 "양과 염소," "가라지와 곡식"을 분리하실 날이 오고 있다(마 13:41, 49 참조). 그 "위대한 날"(갈데아 사람은 그것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은 발견하는 날이 될 것이며, 구별하는 날, 그리고 마지막 구분하는 날이 될 것이다.
=====1:6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의 길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복과 악인의 멸망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의인의 복과 악인의 멸망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의인을 인정하시므로 그가 복을 받는 것이며 반대로 악인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멸망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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