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
| 4. |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
| 5. |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
| 7. |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 8. |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 하다 하느냐 |
| 9. |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
| 10. |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
| 11. |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
| 12. |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
| 13. |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
| 14. |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
| 15. |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
| 16. |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
| 18. |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
| 19. |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
| 20. | 모든 들 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 |
| 21. |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 밭 가운데나 못속에 엎드리니 |
| 23. | 하수가 창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입에 미칠지라도 자약하니 |
| 24. | 그것이 정신 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
1.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본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능력과 섭리로 만물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욥에게 확증시켜 보여준 첫 번째 말씀(38,39장)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2.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 '변박하는 자'에 해당하는 '이소르'(* )는 '훈계하다', '책망하다'란 뜻을 지닌 '야사르'(* )의 파생형이다. "전능자"는 히브리어 샤이다(* )이는 "힘있는 자를 의미한며 또한 '다투다'로 번역된 원어 '리이브'(* )는 '항변하다', '싸우다', '논쟁하다', '경쟁하다'란 뜻으로 욥의 지혜와 순전함으로 결코 하나님과 항변하여 싸울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변론하겠다던 태도(23:7)를 바꾸어 조용히 침묵하게 된 것이다. 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4.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 '미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랄'(* )은 '가볍다', '작다', '경멸하다', '쉽다' 등의 뜻으로 '무거운', '영광스러운'을 의미하는 '카보드'(* )와는 정반대의 어의(語意)를 지닌다. 그런데 이말이 여기서는 오히려 '경솔하다',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존재이다'란 의미로 사용되어 욥이 전에는 자기의 개인적인 영광과 명성을 언급한 적이 있으나(19:9;29:20), 이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본절의 표현은 친구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자기 무죄성을 주장한 욥의 태도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은 상대방의 영광과 권세 앞에서 자신이 감히 말할 수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21:5;29:9).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자기의 무지를 깨달은 욥은 과거에 저질렀던 경솔함과 자기 합리화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시로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욥이 그 동안 잘못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을 각오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 도무지 설수도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5.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한두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 이전에 욥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당당하게 대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13:22;14:15).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잠잠히 침묵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담대함을 얻겠다는 진술을 한 바 있으나(23:3;31:37), 그러한 청원 역시 철회하고 말씀 앞에 겸손해 지며 변론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과 논쟁하는 자들도 최후에는 잠잠하게 될 것이다. 욥은 하나님과의 회담을 요구하는 일에 아주 대담하고도 적극적이었으며 그가 자기의 사건을 얼마나 명확하게 진술하리라는 것과 그가 자기의 의로움이 인정되리라는 것을 얼마나 단단히 믿고 있는지를 과감하게 말하였었다.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 욥은 자기 친구들과 담화하는 동안에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는데, 이는 자기가 그들보다 못지 아니하게 선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말씀하시자 그는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비교하면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이 무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허영과 무지 그 자체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6. 여호와께서 푹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푹풍 가운데서 - 여기서 하나님은 좀더 직설적으로 욥의 자긍하는 태도를 꾸짖으시며 아무리 애를 써도 그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첫번째 말씀에서 보여 주셨던 자연계의 놀라운 사실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신다. 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 우리는 하나님과 공의를 다투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여호와는 우리를 다루시는 일에 있어서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행사에 있어서 불의하며 거룩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아울러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여기서 진정한 참회자들은 우리가 우리의 행함 중에서 계속하였던 잘못과 그릇된 원칙을 교정하는 해야한다. 우리가 오래도록 지녔던 생각이나, 자주 지녔던 생각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즉시 우리는 그것을 취소해야 하며, 더 이상 그것을 고수하지 아니하고, 그런 생각을 그토록 오래 품은 우리 자신을 부끄러이 여겨야 한다. 8.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 하다 하느냐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 '폐하다'의 히브리어 '파라르'(* )는 '깨뜨리다', '취소하다', '폐기하다'란 뜻이다. 즉, 욥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판결 행위를 결코 취소하거나 폐지시킬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록 욥의 주장처럼 자신에게 불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형벌이라 할지라도(6:24-30;27:4-6)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 하다 하느냐 - 이는 욥이 자기의 무죄성과 의로움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비난하거나 의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욥이 땅 위에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무흠하다 할지라도 그의 순전성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계획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욥은 자기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자기의 관념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듣는 것이다. 9.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 여기서 '팔'(* ,제로아)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한다(신 4:34;5:15;시 89:13;사 40:10). 즉,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처럼 이 세상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있느냐고 물어보신 것이다. 이는 이 세상을 좀더 올바르고 공의롭게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사고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음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결코 하나님 같은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질문을 제기할 권리가 없음을 강하게 나타낸다(36:22,23).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 - 이에 해당하는 '라암'(* )은 '뇌성', '요란한 소리'를 가리키는 말로 천둥 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적인 어떤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한다(37:2-5;시 29:4;77:18). 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 '위엄'(* , 가온)과 '존귀'(* , 가바)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속성이다(시 21:5;93:1). 그리고 '스스로 꾸미다'의 '아다'(* )는 '장식하여 돋보이게 하다'라는 뜻이다. 즉, 본절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있는 위엄과 존귀의 절대적 속성을 욥으로 하여금 치장하도록 요구하시는 모습이 강한 역설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이것은 욥에게 있어 지극히 미미하고 누구에게도 능력이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화미(華美)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위엄을 나타내며, '화미'는 하나님께만 있는 명예와 존귀를 가리킨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만유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절대적 주권을 상징하는데(시 45:3;96:6;104:1), 이러한 속성을 인간이 전혀 취할 수도 없고 흉내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욥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Rawlinson). 11.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 '넘치는'에 해당하는 '에브라'(* )는 '지나쳐 가다', '넘어가다', '건너가다'란 용어 '에베르'(* )에서 온 말로 '화', '격노'등의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맹렬한'(KJV, rage), '격렬한'(NIV, fury), 또는 '넘쳐흐르는'(RSV, overflowings)이란 의미로 번역했다. 그리고 '쏟아서'에 해당하는 '푸츠'(* )는 '흩뜨리다', '쏟아져 나오게 하다', '넘치게 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즉, 본절은 악인들을 향한 신적(神的)인 진노를 욥으로 하여금 나타내 보이라는 말씀이다.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 욥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만큼 자랑하는 독재자들과 압제자들을 쉽사리, 또 효과적으로 낮추며 천하게 만들 수가 있다면, 공의를 행하도록 요구하시는데,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할 수 있고 그것을 스스로 행하시리라는 것이 본문에 암시되고 있다. 12.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 교만한 자들은 틀림없이 비천하게 되며 낮추임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만은 멸망에 선행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만약 굽어지지 않는다면 꺾어지고 말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한 회개에 의하여 스스로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사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쩔쩔매게 하실 것이다.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 '밟아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크'(* )는 '내어 던지다'(throw down), '짓밟다'(KJV, RSV, tread down), 또는 '눌러 부수다'(NIV, crush)란 뜻으로 악인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묘사한다(사 63:3). 그런데 이것은 사단을 발 아래 밟고 승리하시는 그리스도의 권세에 비교할 수도 있는 심판적 의미를 담은 용어이다(롬 16:20). 한편 '처소에서'를 뜻하는 '타하트'(* )는 '바닥', '아래에 (안에) 있는 (것)'등을 뜻한다. 즉, 악인은 멸망하여 밟혀질 것이며. 악인이 멸망되어 거하는 곳, 곧 아래의 장소(下界)를 나타낸다. 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 '진토'(* , 아파르)는 '회색으로 되다', '빻다'란 어근에서 온 말로 '티끌'(dust)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덤'이나 '음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였다(10:9;34:15). 즉, 하나님은 욥에게 교만한 자들에 대하여 티끌 처럼 낮아 지게 만들고 죽음의 심판을 행해 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얼굴을 싸서 - 얼굴은 사람의 전인격을 대표하는 신체의 일부분이다(시 42:5,11;잠 7:15). 그리고 '싸서'에 해당하는 '하바쉬'(* )는 '속박하다', '묶다', '감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교만한 자들의 전인격을 부끄럽게 하고 꼼짝못하게 묶는다는 의미이다.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 '어둑한 곳'의 '타만'(* )은 직역하면 '감추어진 곳', '숨긴 곳'이란 뜻으로 죽은 자들이 거하는 어두운 세계, 곧 스올 또는 지옥의 깊고 후미진 곳을 묘사한다(Lange, Rowley).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하고 악한 압제자들을 음부의 깊숙한 곳에 빠뜨림으로써 스스로 절대자이심을 증명하신다.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 " 인간이 자기 자신의 구원자가 되리라는 것은(그 자신의 손이 자기에게 충분하게 또 독립되게 되리라는 것은) 인간 고유의 자만이며 기만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주장하는 일은 주제넘은 짓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세로써 원수들을 낮출 수 없다면,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 스스로를 구한다고 자처할 수는 도저히 없다. 만약 우리가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실 터이다. 내가 인정하리라 - 하나님께서 방금 욥에게 하신 말씀대로 욥이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의 능력을 그대로 인정하신다는 의미이다. 15.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지어다 - 그처럼 큰 덩치를 가지고 들의 풀에 만족하도록 정해 놓으셨다. 아주 많은 식물을 필요로 하는 그 동물이 고기를 생식하지 않도록 만드신 때문이다 '하마'에 해당하는 '베헤모트'(* )는 '베헤마'(* )의 복수 형태이지만 그 뜻이 복수의 의미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즉, '베헤 모트'는 '짐승들'(70인역, 탈굼역)로 번역되기 보다는 한마리의 거대한 짐승을 언급하는 고유 명사로 보아야 한다(수리아역, 벌게이트역). 고대 신화와 관련된 신화적인 동물로 보는 견해. 포우프(Pope)는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하늘의 수소, 또는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소같이 생긴 괴물과도 관련성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본다. 여기서 복수형은 단어 자체의 뜻을 강하게 해주거나, 장엄함을 표현한다. 본절에 '베헤모트'를 등장시키는 것은 욥으로 하여금 자신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하게 생긴 피조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고 약한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16.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힘은 허리에 있고 - 일반적으로 허리는 모든 힘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시 69:23;잠 31:17;나 2:1). 따라서 허리를 상하게 하가 것은 곧 힘을 약하게 한다는 뜻이 된다(신 33:11). 따라서 본절에 언급된 하마의 출중한 허리는 위대한 힘을 상징한다. 한편, 허리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생식력과 성적인 능력에도 연관되어 있어(Pope) 종자의 번식력에 직결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 '세력'의 히브리어 '온'(* )은 '힘', '활력', '정력', '원기' 등의 뜻이다. 그리고 '힘줄'은 근육을 가리키는 것으로, '견고한', '확고한' 이란 뜻의 '솨라르'(* )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솨라르'의 원래적 의미를 '감다', '구부리다', '누르다'등의 '솨르'(* )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해, 이를 '배꼽'으로 생각하기도 한다(Gesenius, Lange). 그러나 후자의 견해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의문의 대상이 되어 왔다(Delitzsch, Rawlinson, Hartley, Pope). 아무튼 하마의 배 근육은 그 허리처럼 단단하고 힘이 넘치는 것으로 표현됨으로써 (Delitzsch) 사람이 따라 갈 수 없는 그의 강인함을 나타내고 있다. 17.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같고 - 그의 등뼈는 너무나 강하고 그는 꼬리를 칠 때에 굉장한 힘으로 하여 마치 백향목이 움직이는 것 같다. 보통 똑바로 선 꼬리는 힘과 흥분의 상태를 표현하는데, 여기서 하마의 꼬리가 백향목에 비유된 것은 백향목이 위엄있는 힘의 상징이기 때문인 듯하다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 '넓적다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하드'(* )는 '두꺼운 다리'를 의미하는데(Lange, Delitzsch, Driver & Gray), 탈굼역(Targum)과 일부 학자(Pope)는 종종 이 단어를 '고환'으로 번역하기도 한다(레 21:20). 그리고 '연락되다'의 '사라그'(* )는 '섞어 짜다', '얽히다', '칭칭 감다'란 뜻으로 포도나무의 가지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힘줄이 서로 밀착되어 감겨있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18.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그 뼈는 놋관 같고 - '관'에 해당하는 '아피크'(* )는 '모으다', '가져오다', '소집하다'란 뜻의 '아사프'(* )에서 유래한 말로 '파이프', '관'(tubes)이란 뜻이다. 즉, 본절은 하마의 넓적다리의 뼈가 청동 파이프처럼 단단하고 강력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부러뜨릴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 '가릿대'의 '게렘'(* )은 보통 '뼈'(KJV, bones), '사지'(NIV, RSV, limbs)를 뜻하나. '뼈대', '골격'(framework)으로 해석하기도 한다(Lee). 아마 이것은 늑골 혹은 다리 밑의 단단한 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그리고 '철장'(bars of iron)은 쇠 막대기를 말하는데, 막대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틸'(* )은 '망치로 두들겨 늘이다'란 뜻으로 아직 제련 작업이 끝나지 않은쇠 막대기를 가리킨다. 이것 역시 하마의 뼈대가 굵고 단단하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표현해 준다. 19.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 '창조물'에 해당하는 '다라크'(* )는 문자적으로 '걷다', '밟다'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행사', '행동'이란 의미로 쓰였다. 즉, 하나님의 솜씨있는 행사인 창조 사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는 창조의 시간적인 우선 순위를 말하지 않고(민 24:20;잠 8:22) 그 질의 높음을 의미함으로써, 하마는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섯째 날에 창조된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창조된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솜씨의 걸작품으로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 하마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그에게 칼을 주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하마의 어금니를 칼과 같이 날카롭게 지으셨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Delitzsch, Lange). 즉, 하마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주셔서 풀과 같은 곡식과 식물들을 베어먹게 하셨다는 것이다. 20. 모든 들 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 모든 들 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 '산'(* , 하르)은 일반적으로 고원 지대나 줄지어 있는 산을 언급하나, 여기서는 나일 강 언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모든 들짐승이 즐겁게 뛰노는 푸른 산에서 자라는 푸른 풀은 그것의 먹이다.(표준새번역) 모든 들짐승들이 노는 그 산들이 그것을 위해서 먹을 것을 내느니라.(우리말성경) 21.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 밭 가운데나 못속에 엎드리니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 '연 줄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엘'(* )은 '가냘프다'란 뜻의 사용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로 수련(睡蓮, water lily)이라 불리는 'Nymphae Lotus' 가 아니라, 갈릴리의 바다 근처와 팔레스틴의 습하고 더운 지역에서 자라나는 'Zizyphus Lotus', 곧 '가지가 있는 관목'을 가리킨다(Hartley, Pope). 이연 관목은 그늘을 많이 제공하기 때문에 초원 지대의 들짐승들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한다(Schultens). 갈밭 가운데나 못 속에 엎드리니 - '엎드리다'의 '세테르'(* )는 '숨기다', '감추다', '덮다'란 뜻으로 하마가 은신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즉, 본절은 하마가 식물을 충분히 섭취한 다음 강 언덕의 빽빽한 갈대밭이나 늪수렁 같은 곳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묘사한다(시 68:30). 22. 연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연 그늘이 덮으며 - 연 관목의 그늘이 하마를 덮어서 햇볕을 피하게 하고 몸을 숨겨준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마를 보호하시며 세밀하게 관찰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고 있다.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 '시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나할'(* )은 계속해서 흐르는 개울이나 세찬 물줄기의 강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현장이 이집트라기 보다는 팔레스틴일 것이라고 추측한다(Driver & Gray, Pope).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희박하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버드나무는 팔레스틴의 요르단 언덕과 다른 여러 강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프라테스 포플라'(Poplus Euphratica)로 여겨진다(시 137:2;사 15:7;44:4). 23. 하수가 창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입에 미칠지라도 자약하니 하수가 창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 '창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솨크'(* )는 원래 '압제하다', '강탈하다'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세차게 흘러내리다', '분출하다', '물결치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어 강물이 둑 위로 넘쳐 하천이 범람하고 있음을 가리킨다(Schultens). 그리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다', '당황하다', '두려워하다'란 뜻의 '하파즈'(* )가 부정형에 수식되게 서술되어 있어 하마는 아무리 거센 물결이 몰아닥쳐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하천이 순식간에 뒤집혀 엎어져도 태연하게 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요단강이 불어 그입에 미칠지라도 자약하니 - '불다'에 해당하는 '기아흐'(* )는 '흘러들다', '돌입하다'란 뜻으로 물이 갑자기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한다(38:8). 또한 '자약하다'의 '바타흐'(* )는 '믿다', '안전하다', '확신을 갖다'란 뜻으로 자기 자신의 안전에 대하여 확신하는 하마의 모습과 태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전체적으로 하마는 갑작스러운 하천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결코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마의 담대함과 자기 확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이 동물 또한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본문에서 계속되는 요지이다(렘 12:5). 24. 그것이 정신 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그것이 정신차리고 있을 때에 - 원문은 '그의 눈 앞에서', 또는 '그의 눈에다'란 뜻이다. 양자(兩者)모두 해석이 가능한데, 전자일 경우에는 '감히 하마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동안에 어느 누가 그것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란 의미이고(Rawlinson), 후자 일 경우에는 사냥꾼이 하마의 눈을 노려보거나 아니면 그 눈을 상하게 함으로써 포획 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하튼 본절이 의도하는 바는 사람이 어떠한 힘이나 올가미를 사용하여도 잡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하마라는 사실이다.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 '갈고리'를 가리키는 '모케쉬'(* )는 '덫을 놓다'의 '야카쉬'(* )에서 파생한 명사형으로, '덫', '올가미', '함정'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꿰다'라는 동사가 덫이나 올가미에 부적절하기 때문에 이 '모케쉬'라는 단어를 '갈고리'외에 '작살'이나 '가시', '창'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본절 역시 하마의 포획 장면을 연상시키는 데, 그 의미는 분명하다. 즉, 하마를 사로잡기 위한 어떠한 도구나 방법도 헛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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