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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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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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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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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2/26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하시다]
1.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7.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8.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9.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11.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12.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13.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14.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15.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17.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18.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처소는 어디냐
20.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21.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22.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24.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25.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번개 길을 내었으며
26.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27.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28.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31.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32.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33.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4.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 이다 하게 하겠느냐
36.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37.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38.티끌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39.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40.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41.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 "여호와"(* , 야웨, 아도나이) 하나님에 대한 이 칭호는 본서에서 오직 산
문체로 쓰여진 서론(1,2장)과 말미 부분(42장), 그리고 40:1,3,6에서만 사용되었다. '스스로 자존하시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 그리고 그의 거룩하심과 영원 불변하심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폭풍 가운데로서"(* , 민 하세아라)는 '...으로부터'(from)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 )과 (비를 수반하지 않는) '폭풍'을 가리키는 '세아라'(*  )가 연결된 구절이다. 팔레스틴에서 보기 드문 이 폭풍, 곧 '회오리 바람'(whirlwind or tempest)은 이미 엘리후가 하나님의 위엄과 관련하여 언급했듯이(37:9) 하나님께서 당신의 등장에 있어서 빈번히 동반 하시는 기상 현상이다(출 19:9-20;삿 5:4,5;시 18:8-16).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하나님의 말씀은 욥이 그렇게 소원했던 바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31:35).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된 뜻이 성취되고 있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논쟁을 종결시키고 욥의 무지에 대해 질책함을 가리킨다.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무지한 말로 - 이것은 지식이 없는, 즉 우둔하고 아둔한 말을 가리킨다. 여기서 지식이라 함은 다양한 경험에 의해 획득되어지는 성찰된 인식이나 분별력, 또는 일반적인 지식을 뜻하는 데 특별히 본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언급이다(호 4:1,6;6:6). 즉, 욥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계획의 다양한 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 "이치"(* , 에차) 지혜.계획을 뜻하며 특별히 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구속의 섭리 또는 계획을 말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욥은 이에 대해서 편파적으로, 그것도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자신의 고난이 들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난색을 표명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공의를 의심하기까지 했다(21, 31장). 따라서 본절은 비록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과 주권적인 섭리를 인간의 짧은 경험과 지식에 맞추려는 욥의 잘못된 태도를 견책하기 위한 질문으로 이해된다.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 이러한 행위는 어떤 어려운 일이나 사건을 대하기 전에 준비하는 노력을 나타낸다(출 12:11;왕상 18:46;렘 1:17). 특별히 본절에서는 전쟁터에 나가기 위하여 용사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항변대로 욥과 논쟁하실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10:2;13:22;23:4-7;31:35).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욥과 논쟁하시려는 의도는 욥의 교만을 꺾으시고, 우주 만물에 대한 당신의 통치와 섭리가 얼마나 기묘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우리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이치를 어둡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크나큰 외곡인 동시에 큰 모욕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주 작은 지식밖에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 하나님의 처음 질문은 당신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기초를 놓다'에 해당하는 '야사드'(* )는 '세우다', '설립하다'란 뜻으로 본질적 기원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최초로 땅을 세울 때'(시 24:2;102:25;잠 3:19)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편, 지구의 형성을 건축물의 기초에 비유한 표현은 본절 외에도 사 24:18;48:13;렘 31:37;히 1:10등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비유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근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 - 욥이 하나님의 창조 작업에 동참하기는 커녕, 그때에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욥은 창조에 대해서 말로만 들었을 뿐, 창조의 계획이나 땅을 세우는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 여기서 '깨닫다'란 말의 히브리어 '비나'(*   )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리킨다(대하 2:12,13;잠 4:1). 그리고 '알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야다'(* )는 선험적이라기 보다는 '경험에 의해 습득하게 되는 지식'을 말한다(사 48:8). 그러기에 본절에서 '깨달아 알다'라는 표현은 신(神)과 함께한 경험으로 인식된 지혜나 지식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욥은 창조에 관한 이 같은 지식을 소유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욥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으며, 엘리바스의 말처럼 창조 전에 출생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15:7).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 '도량'의 '밋다'(* )는 '측량하다'란 말의 '메마드'(* )에서 파생한 명사로 '치수', '측량', '척도'란 뜻이다. 그리고 본절의 '정하다'에 해당하는 '숨'(* )은 원래 '놓다', '두다', '지정하다'란 뜻으로 '표시하다', '한정하다', '그리다'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이땅의 둘레와 넓이와 길이 등의 치수를 누가 처음부터 표시하여 그토록 정확하게 그려 놓았는가?'란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두말 할 나위없이 '하나님밖에 없다'이다. 세계 만물의 창조는 하나님의 신적(神的) 작정과 의지에 따라서 매우 질서 정연하게 확정된 것이다(Rawlinson).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 '준승'을 나타내는 '카우'(* )는 '척량 줄'(measuring line)을 말하며, '띄우다'에 해당하는 '나타'(* )는 '늘이다', '내뻗다', '펴다'란 뜻으로 척량 줄을 지구 위에 가로질러 놓는 것을 가리킨다. 즉, 본절의 표현은 건축 공사에 들어 가기에 앞서 평면을 헤아려 보기 위해 먹줄을 치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은 지구의 창조가 하나님 당신의 정확한 의도와 작정에 따라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 같다.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 '주초'에 해당하는 '에덴'(* )은 '받침'을 가리키는 것으로(출 26:19;아 5:15) '건물의 기초' 또는 '주춧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와 같이 땅에 주초가 있다는 사상은 이미 욥의 변론에서 발견된 바 있다(9:6). 그러나 욥에게는 이와 동시에 땅이 공간에 자유롭게 달려 있다는 사상도 있었다(26:7).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 창조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의 섭리가 하시는 일인 종말까지 맞아들이도록 계속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치수도 결코 깨뜨려지지 아니할 것이다. 구속의 사업도 땅의 견고함보다 못지 아니하게 튼튼하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기초와 주춧돌이 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땅과 같이 굳게 서 있다.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 고대의 공동체에서는 신전(神殿)과 같은 건물의 주초를 놓거나(스 3:10,11) 머릿돌이 놓여질 때(슥 4:7),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축제적인 의식을 가지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Hartley, Pope). 이와같이 지구의 모통잇돌이 놓여졌을 때엔 하늘의 새벽 별들이 하나님의 창조 솜씨와 그 능력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다(시 19:1;사 12:6;24:14). 여기에 언급된 '새벽 별들'은 금성이나(사 14:12) 오리온 성좌 같이(사 13:10) 밝고 빛나는 별들을 의미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천상의 군대, 곧 천사들을 비유하기도 한다(사 40:26).
8.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 본절에 언급된 '태'(* , 라함)는 태아를 품고 있는 여자의 자궁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지구의 내부를 비유하는 것 같다(Lange). 그리고 '넘쳐 흐르다'의 '기아흐'(* )는 '터지다', '벗어 나오다', '내 뿜다'란 뜻으로 바닷물이 용솟음쳐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바닷물이 땅 속에서 솟아올라 땅 위로 넘쳐 흐르는 것을 말한다(창 7:11;8:2). 따라서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마치 땅과 물이 혼돈 가운데서 뒤섞여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는 듯하다.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 '문'(* , 데레트)은 일반적으로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두 짝의 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막다'의 '사카크'(* )는 '울타리를 두르다', '뚜껑을 덮다', '방어하다'란 뜻으로 바닷물의 경계를 한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다와 땅을 구분하기 위한 창조 작업을 나타내는 듯하다(창 1:9). 즉, 물의 경계를 정하여 그 정해진 처소에서 넘치지 못하도록 한정하신 것을 말하는 것 같다(시 104:6-9). 한편, 본절의 표현과 유사하게 예레미야는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았다고 기록한다(렘 5:22). 때문에 파도가 흉용하고 바닷물이 뛰놀더라도 그 정해 놓은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의 기자들은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그분의 권능과 능력을 나타낸다.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 비유된 바다가 구름으로 옷을 입히운다는 말이다. 이것은 욥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관심을 묘사한 것으로, 창 1:6이하의 사건을 시적(詩的) 어법(語法)으로 묘사한 것이다(Lange, Rawlinson).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 여기에서 '강보를 만들다'에 해당하는 '하탈'(*  )은 '강보로 싸다'란 의미로 하나님께서 바다를 매우 세심하게 다루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표현한다(겔 16:4). 이는 곧 모든 바다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예속되어 지배받고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Rawlinson).
10.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계한을 정하여 - '계한'에 해당되는 '헤크'(* )는 어떤 특정한 '경계' 또는 '한계'를 말한다. 그리고 '정하다'의 '솨바르'(* )는 원래 '깨뜨리다'(KJV), '산산히 부숴지다'란 뜻이나, 여기서는 '선을 긋다'(F.Perles), '한계를 지정하다', '규정하다'(KJV, RSV)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바다의 한계를 설정하여 놓으신 하나님의 정확한 의도를 암시하는 듯하다.
문과 빗장을 베풀고 - '문과 빗장'은 큰 성문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대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도구로 언급된다(Lee). 그리고 '베풀다'의 '심'(* )은 '놓다', '두다', '위치시키다'란 뜻으로 바다를 막는 도구를 설치하여 두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바닷 물이 땅 위에 넘치지 않도록 그 한계를 지정하셨을 뿐만아니라, 구체적으로 바다의 넘침을 막기 위해 도구를 설치해 놓으셨음을 말하고 있다(잠 8:29;렘 5:22).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 그 몸은 굉장히 크고 그 움직임은 때때로 지극히 사나울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장악하여 견제하신다. 그 파도가 높이 올라가고 그 조수가 뒤집혀 구르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이상은 경거망동하지 못한다.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 '그칠지니라'에 해당하는 '쉬트'(* )는 원래 '두다', '놓다', '배열하다'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기에 있게 하라', 또는 '멈춰 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절은 바닷물이 폭풍으로 인하여 아무리 거세고 흉용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해안선을 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즉, 이것은 바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바다가 그의 명령에 굴복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시 89:9).
12.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 본절은 '네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너의 명령에 따라 아침이 매일 어김없이 찾아 오게 명령하였느냐?'란 질문이다. 그러나 아침은 욥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 왔고 그가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은 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더욱이 욥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 '새벽'은 동트기 직전을 가리키는데, 혹자는 이것을 루가릿 신화에 나오는 새벽별 신과 연관시키기도 한다(Pope).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히 '여명을 가져오는 새벽'에 대한 표현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콤'(* )은 어떤 사물이 있어야만 하는 장소, 곧 본절에 의하면 새벽의 위치를 가리킨다. 그래서 본문은 새벽이 자기의 정해진 위치를 알고 그곳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으면서 아침의 빛을 비취게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비록 동트는 시각과 장소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새벽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어김없이 아침이 오게 하는 것이다.
13.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 '땅끝'에 해당하는 '카네포트 하에레츠'(*  )는 원래 '땅의 옷깃'(RSV, skirts of the earth)이란 뜻이다. 이것은 땅이 옷을 입는 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아마 새벽이라는 옷이 땅을 덮어서 가리우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비취게 하다'에 해당하는 '아하즈'(* )는 '붙잡다', '꽉 잡다'(KJV, RSV, take hold), '소유하다'란 뜻으로 땅의 가장자리를 붙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본절은 어떤 것을 떨어 내기 위한 준비 작업을 암시하는 데, 이는 새벽이 오므로 날이 밝아와 온 땅까지 순식간에 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 '구축하다'의 '나아르'(* )는 '흔들다', '떨치다'란 듯이다. 이것은 새벽의 여명이 온 땅에 비치게 되면 그들의 정체가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놀라서 요동하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새벽은 어두운 밤의 옷을 빛으로 벗겨냄으로써, 마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처럼 악인을 흔들어 겸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14.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 밤에는 일정한 형태가 없고 명료하게 보이지 않았던 지구가 새벽의 여명이 비췸으로써 붉은 빛으로 인친 것 같이 그 모양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진흙'(* , 호메르)에 도장을 새긴 것처럼 확연하게 드러난다.
만물이 옷같이 나타나되 - '나타나다'에 해당하는 '야차브'(* )는 원래 '서다', '자신을 보이다'란 뜻으로 사용되었다(KJV, stand). 새벽빛으로 아침이 오면 지구의 만물은 자신을 내보이는데, 찬란한 옷과 같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며 나타난다는 것이다(Lange). 이처럼 새벽은 만물의 모양과 색깔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빛나게 한다.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 바 되고 - '금한 바 되고'에 해당하는 '마나'(* )는 '부정하다', '허락하지 않다', '삼가다'란 뜻으로 어두움을 사랑하는 악인들에게는 빛이 금지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광명의 아침을 깨닫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빛의 두려움 때문에 어두움 속으로 도망쳐서 숨는다(24:16).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 하나님이 그의 복음 안에서 "자기의 팔로 힘을 보이시고 교만한자들을 흩으셨으며 권세 있는 자들을 끌어 내리셨음"이 이 빛에 의해 말미암았음을 나타내 준다. 이 빛에 의해 그는 악인들을 떨어뜨리려고 의도하시며, 악 그 자체를 지상에서 떨어내사 그 악의 높은 팔을 꺾어 버리시려고 계획하고 계신다.
16.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 '근원'에 해당하는 '네베크'(* )는 보통 '샘물'이나 '샘'을 뜻하나(28:11), 여기서는 바다와 연결된 감추인 수로(channel), 또는 원천이나 심연을 가리킨다(창 7:11;49:25). 이것은 욥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하 세계의 신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 "깊은 물밑"은 여기에서 '깊다'란 말은 주로 바닷속의 깊은 수원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겔 26:19;욘 2:5). 그리고 '물밑'으로 번역된 '헤케르'(* )는 원래 '찾다', '탐구하다'란 뜻의 '하카르'에서 파생된 단어로(8:8;11:7) 탐색되어야 할 어떤 영역을 가리키는 데 종종 사용되었다(시 95:4).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바다 밑의 우묵한 곳(NIV, RSV, recesses)이나 사람을 삼키는 심연을 묘사하는 듯하다.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 "사망의 문"은 '깊은 물밑'을 언급한 뒤에 바로 '사망의 문'으로 이어지는 것은 26:5,6의 경우와 같다. 여기서 '사망의 문'은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음부 앞에 있는 문, 즉 '음부의 문'이다(시 9:13;107:18;사 38:10). 이것은 엄청난 물이 모여 있는 가장 깊은 '깊은 물밑' 저편에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 '그늘진'의 '찰마웨트'(* )는 '죽음의 그림자'(KJV, NIV, the shadow of death) 또는 '짙은 어두움'(RSV, deep darkness)으로 해석된다(3:5;시 88:12). 이것은 사망의 문으로 가는 길이 죽음의 그늘로 덮여서 흑암과 같이 캄캄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시사한다(10:22). 또한 사망의 문을 보기 위해서는 그 길을 지키는 죽음의 그림자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도 더불어 암시한다. 그러나 욥은 사망의 문을 보기는 커녕 그 문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인식 할 수 없었다.
18.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 본절에 언급된 '측량하다'에 해당하는 동사 '빈'(* )은 무엇을 심사 숙고하여 엄밀하게 관찰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완전한 이해나 지각을 말한다. 따라서 본절은 '지구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여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 또는 '땅의 영역에 대하여 세밀히 관찰하고 그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느냐?'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 우리는 지구 위에 우리의 거주지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지구를 인간의 자손에게 주셨다. 그러나 여태껏 누가 그것을 측량해 본 적이 있으며, 몇 에이커가 되는지 설명할 자가 있었느냐? 그것은 우주에 비하면 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작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 치수를 밝히는 데에 정확할 수가 없다.
19.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 아침에는 빛이 흡사 동풍의 날개를 타고 나르듯 지평선 너머 공중의 산지 사방으로 순식간에 자신을 쏘아 대며, 너무나 신속하게, 너무도 강렬히 움직이면서 밤의 어두움을 흩어지게 하는데, 이것은 마치 동풍이 구름을 몰아내는 것과 같다. 새벽 빛이 나오며 동시에 밤의 어두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지 우리의 명령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다.
흑암의 처소 - '흑암'의 '호쉐크'(* )는 태초의 어두움(창 1:2), 또는 창조 첫 날에도 존재했던 빛과 서로 분리되었던 어두움을 가리킨다(창 1:4,5). 그런데 이 흑암 역시 빛처럼 자기의 정해진 처소(* , 마콤)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20.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 본절에 언급된 '지경'(* , 가발)은 특별히 한정된 어떤 경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인도하다'의 '라카흐'(* )는 '가져오다', '데려오다'란 뜻이다(창 27:13;42:16). 그러기에 본절은 '네가 빛과 어두움을 그것들의 한계로 데려올 수 있느냐?'란 의미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빛과 어두움이 각자의 처소에서 나와 낮과 밤의 일을 마치고 다시 그들의 처소로 돌아가는 것을 인도 할 수 있느냐란 말이다. 그러나 욥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그것들을 데려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21.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 본절은 매우 역설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욥이 창조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질문한 비밀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엘리바스의 발언 처럼(15:7) 욥을 조롱하는 말투로 보인다(Lange).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 '너는 빛과 어두움의 한계를 정할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는 과정과 너 자신의 기원까지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은 욥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대화시켜 주는 반어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이 창조 전에 태어나지 않았고, 또 그때의 일들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 '곳간'의 '오체로트'(* )는 '창고'를 뜻하나, 종종 하늘의 보물 창고로도 언급된다(신 28:12). 그러나 여기서 눈 곳간은 어떤 특별한 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많이 적재되어 있는 구름에 대한 시적(詩的)인 표현으로 쓰인 것이다(시 135:7;렘 10:13).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 구름 속에서 눈과 우박이 생산되고 있으며, 거기서 그들이 너무나 엄청나게 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이나 우박이 창고에 저축되어 있다고 표현하셨다.  눈이나 우박이 하나님께서 자기 대적이 자기 백성의 원수들인 자들과 대항하며,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실 때에 자기 섭리의 목적에 소용이 되도록 안성맞춤으로 적시에 오는 때가 종종 있다.
23.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 역사적으로 우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출 9:22-26;학 2:17). 또한 악인을 징벌하는 수단으로도 언급되었다(시 18:12,13;78:47;105:32;사 28:17;30:30;겔 13:13). 그리고 눈 역시 인명과 곡식과 초목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눈과 우박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필요할 때에 사용된다.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 그것들이 "전쟁의 격투의 날" 곧 환난 때를 대비하여 화약이나 무기와 탄약과 양식처럼 창고에 저장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기만 한다면 뇌성 벽력이나 천사의 검으로 하는 것보다 못지 아니하게, 눈과 우박으로 효과적인 싸움을 하실 수 있다.
24.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 '광명'의 '오르'(* )는 하반절의 '동풍'과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이유로 인해서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즉 (1)바람(Tur-Sinai, Driver&Gray), (2)안개 또는 우주의 광대한 수원지(Dhorme, Pope, Rowley), (3)번개빛(Scholttmann), (4)뜨거운 열기(NEB) 등 여러가지로 번역이 시도되었으나, 여기서는 원문대로 (5)일반적인 빛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Delitzsch, Henry, Rawlinson). 왜냐하면 본절에 언급된 '뻗치다'의 원어 '할라크'(* )가 '갈라지다'(KJV), '흩뜨리다'(NIV), '분배하다'(RSV)란 뜻으로 빛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과 사람들 위에 빛을 나누어 분배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Stanley). 그런데, 욥은 빛이 분배되는 길을 알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본문의 역설적인 의미이다.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 '동풍'(* , 카딤)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Sirocco) 끔찍한 파멸을 초래하는 황폐한 바람이다(27:21;시 48:7). 그런데 이 동풍이 땅에 흩어져 부는데 그것도 제각기 퍼지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절의 표현은 자연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제와 지배력을 암시하는 것이다.
25.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 '폭우'(* , 쉐테프)는 '넘쳐흐르는 물'을, 그리고 '길'은 도랑이나 수로(水路)를 가리킨다(NIV, RSV, channel). 따라서 본절은 홍수가 땅에 쏟아져 범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혹자는 '홍수가 재빨리 흘러가도록 개천을 팠느냐?'라는 질문으로 보고, '길'을 팔레스틴이나 아라비아의 '와디'(Wadi)로 이해한다(Rawlinson). 그러나 이는 하늘의 물줄기가 수도관의 물처럼 땅으로 쏟아지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Delitzsch). 그렇다면 이 길은 물줄기가 내려오는 공중의 수로를 시적(詩的)인 의미로 표현한 것이 된다.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 그는 번개와 천둥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들은 제멋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길로 간다. 번개와 천둥이 여기에 언급된 것은 그가 "비를 위해 번개를 예비하시기" 때문이다(시 135:7).
26.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사람 없는 땅에 -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우주에 충만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즉 비는 의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내려질 뿐만 아니라(마 5:45),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도 은혜롭게 내린다.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
과 식물, 조류와 파충류 등 인간 이하의 생물들까지 그 비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이러한 본절의 표현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관심을 나타내는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가 전 우주적임을 증명된다.
27.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 그곳 광야에는 생산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산업보다 더 먼 곳까지 미친다. 만약 인간이 열등동물이나 식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친절심보다 하나님이 하등 동물에게 베푸시는 자비심이 더 크지 못하다면, 인간보다 하등의 피조물은 죄다 결단이 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술이나 수고 없이도 땅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으시다(창 2:5, 6).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 '연한 풀'(* , 데쉐)은 '움트다', '싹이 트다'를 가리키는 '라솨'(* )에서 유래한 말로 싱싱하고 새로운 잔디, 또는 푸른 초목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게 하다'의 히브리어 '차마흐'(* )는 어린 싹이 나오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안 된 원문의 '모차'(* )가 원래 '원천이나 광산 같은 곳'을 가리키지만(28:1), 여기서는 싹이 나오도록 하는 행위(KJV, spring forth;RSV, put forth)와 관계된다. 그러나 혹자들은 이 히브리어 '모차'가 본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차메'(* ), 곧' 메마른 (땅)'으로 해석한다(Driver & Gray, Pope).
28.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비가 아비가 있느냐 - 비에게는 아비가 없다. 하나님은 자기의 권능으로 비를 생산하신다. 그는 그것을 다스리시고 그것에게 명령하시며, 그가 기뻐하시는대로 그것을 사용하신다.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 그는 자연의 하나님으로서 작은 이슬 방울까지도 땅 위에 내리시며,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그는 우리 위에 의로움의 비를 내리신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친히 이슬처럼 되어 주신다(호 14:5, 6; 미 5:7  참조)
29.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 영하의 기온에서 물이 얼음으로 변하지만 이는 단지 과학적이고 현상적인 지식이다. 얼음은 피조물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다.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 공중에서 땅으로 내리는 서리 역시 날씨 탓이 아니다. 그것도 엄연히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30. 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 '굳어지다'에 해당하는 '하바'(* )는 문자적으로 '숨다', '감추다'란 뜻이다. 즉 물이 얼음으로 변할 때 물 자체는 사라지는데, 그것은 물이 얼음 속으로 숨는 것과 같다(KJV). 그런데 이와 같이 동결 상태를 표현해 주는 '하바'를 '하마'(* )와 관련시켜서 '딱딱해지다'(RSV, hard), '얼음이 얼다'라는 의미로 그 어느 때부터인가 확대 해석하였다.
31.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 '묘성'(* , 키마)은 황소 자리에 있는 일곱 개의 별무리를 말한다(9:9). 본절에 언급된 '묘성'의 '묶는것'은 묘성을 하나의 별자리로 묶는, 보이지 않는 띠를 가리킨다(Lange, Rawlinson). 결국 본절은 여러 별들을 모아 한 성좌(星座)로 연결시킬 수 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 '삼성'(* , 케실)은 오리온 성좌의 별들을 가리킨다. 70인역(LXX)은 이를 '오리온의 울타리를 열겠느냐'로 번역하지만 그 의미는 똑같다.
32.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 일반적으로 별들은 시간이나 계절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만물의 통치에도 언급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별들의 움직임이 지상의 사건에 영향을 주고, 일기를 예측하게 해준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그 별들은 신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Hartley).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하늘의 천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완전히 순복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즉, 하나님은 별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것을 통치하시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시 147:4;사 40:26). 이처럼 때를 따라 별들을 불러 나오게 하여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운행시키는 일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 하나님은 "별들을 그들의 이름대로 부르시는 분"이시다(시 147:4). 하나님은 별들을 전투에 데리고 나오실 수 있으며(별들이 시세라에게 대항하여 싸웠을 때 하나님이 행하셨듯이), 그들이 자기의 명령을 내린 공격에 참가하도록 인도해 내실 수가 있다.
33.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 "하늘의 법도"(* , 훅코트 솨마임) '법도'의 '훅카'(* )는 '새기다', '기록하다'의 '하카크'(* )에서 파생된 명사로 영원한 구속력이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구례'를 가리킨다(시 148:6). 여기서는 성좌(星座)들의 출현이나 사라짐 등의 노정과 관련된 '낮과 밤의 교체'(렘 31:35;33:25), 또는 '일년 사계(四季)를 계속되게 하는 법칙'(창 1:14)을 의미한다(Driver & Gray, Lange).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 '권능'에 해당하는 '미쉬타르'(* )는 여기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는데, 대개 '하나님의 통치'(NIV, God's dominion)로 이해한다. 그러나 몇몇 주석가들은 '미쉬타르'의 어원을 아카드어 '마쉬타루'(mastaru, 문서)에서 찾는다(Dhorme, Delitzsch, Pope). 즉, '마쉬타르'를 '하늘의 문서'(the writing of the sky)로 이해하고 그것을 별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34.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 너는 네 목소리를 구름에, 즉 하늘의 물병인 구름에게 올려 풍부한 물이 네게 덮이게 하며, 네 밭이 건조하고 가물어 탈 때에 그 밭에 물을 줄 수 있겠느냐?" 만약 우리가 비를 바라서 기도하려고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올리면 우리는 비를 얻을 수 있다(슥 10:1).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 만약 우리가 강우를 요구하기 위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구름에 올린다면, 구름은 자기들이 우리의 지시대로 순순히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고 즉각 대답할 것이며, 우리는 비를 얻지 못한 채 지날 것이다(렘 14:22). 하늘은 만약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려 하신다면 땅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호 2:21).
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 이다 하게 하겠느냐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  "너는 번개를 보내어 그들이 네 심부름을 하러 가게 할 수 있으며, 네가 원하는 일을 실행하게 할 수가 있느냐? 욥은 그가 자기의 대적들을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데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번갯불을 단 한 번이라도 동원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 이다 - 욥은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를 자신이 원하는 때에 보내기 위해 명령할 수 없다. 더욱이 번개가 욥의 명령과 부름에 순종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욥이 갖고 있는 인간의 제한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 영혼을 만드신 그 분만이 영혼을 아시며 그들을 어떻게 다루실지 그 방법을 알고 계신다. 그는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선하고 온전하신 은사의 아버지로서, 참 지혜를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모든 지혜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보다 지혜롭다고 자부할 것인가? 아니, 우리는 우리에게 총명을 주신 분이 정한 한계 이상으로, 우리 영역을 초월하여, 지혜롭다고 주장할 것인가?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의 능력과 기능은 인간의 놀라운 사고 행위와 함께 자신을 복된 천사들과 어떤 연합을 이루게 한다. 그런데 이 빛은 빛의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오겠는가?
37.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 누구라도 자기의 모든 지혜로써 "구름의 수효를 세어" 보겠다고 기도할 자가 있느냐? 혹은(이렇게 해독할 수도 있다) 어느 누가 "구름의 본성을 밝히 말하며 묘사할 수 있는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솨카브'(* )는 원래 '내려놓다', '눕히다'란 뜻으로 하늘의 병을 기울여 비를 쏟게 하는 것을 묘사한다.
38.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 누가 지혜로워서, 티끌을 진흙덩이로 만들고, 그 진흙덩이들을 서로 달라붙게 할 수 있느냐? (표준새번역)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 '붙게 하다'의 '다바크'(* )는 물체가 서로 견고하게 달라붙어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흙덩이'(* , 레게브)가 서로 달라붙는 것은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림으로써만 가능하다. 욥은 단단하게 굳은 땅 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하나님은 욥의 제한성을 재강조한 것이다.
39.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 너는 지상에서 네가 가장 최고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줄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져 보자. 너는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너는 네가 한 때 소유하였던 가축을 가지고 스스로 자랑하느냐? 즉 너는 네 구유에서 먹이던 소와 나귀와 약대의 소유주로서 그 가축의 소유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네가 사자와 젊은 사자들이 먹이를 기다리며 그 굴에 웅크리고 있을 때에 그 사자들의 부양을 맡겠다고 나서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 본절에 나타난 '식량'의 '하이야'(* )는 생명, 곧 살아있는 것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식욕' 또는 '배고픔'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 네게는 없기 때문이다. 또 너는 그 일을 감히 하지도 못한다. 네가 그들에게 먹이를 주러 다가가면 그것들은 네게 갑자기 달려들어 움켜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생물의 식욕을 충족시켜 줄 수단을 가지고 계신다. 가장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동물의 욕구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계신다.
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 네가 사자와 젊은 사자들이 먹이를 기다리며 그 굴에 웅크리고 있을 때에 그 사자들의 부양을 맡겠다고 나서겠느냐?  너는 그 일을 해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충족시켜 줄 것이 네게는 없기 때문이다. 또 너는 그 일을 감히 하지도 못한다. 네가 그들에게 먹이를 주러 다가가면 그것들은 네게 갑자기 달려들어 움켜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 하나님의 섭리가 베푸시는 무한한 은혜를 보라. 생명을 주신 이상 그곳이 어디에서든지 생명을 유지하도록 생계도 주신다. 인간에게 사역할 수 없는 짐승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위험한 동물에게까지 그렇게 해 주신다. 또 하나님의 섭리가 행사하시는 절대 주권을 살펴 보라! 섭리는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의 부양을 위해 피살되는 것까지도 허용하신다. 해를 끼치지 않는 양들이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워 주기 위해 갈기갈기 찢김을 당한다. 그래서 사자들의 잔인함을 벌하기 위하여 사자는 때때로 먹이가 없이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 흔히 어린 까마귀가 고통스러워하게 하는 것들을 살펴 보라. "그들은 고기가 없어 방황한다." 어미 까마귀들은 새끼 까마귀들을 소홀히 하며, 다른 새들이 제 새끼에게 하듯 제 새끼들을 먹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딴 동물을 약탈하여 육식하는 동물은 보통 제 새끼에게는 잔인하며 자연 법칙에 어긋나게 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까마귀'(* , 오레브)는 강한 짐승인 사자와 대조되어 미개하고 볼품없는 것을 묘사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이나 강한 짐승뿐만 아니라 매우 하찮고 쓸모없게 보이는 동물에게까지 임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시 147:9).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사하시는 일들을 보라. 이런 저런 모양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이를 공급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은 성장하게 되고 성숙하게 된다. 까마귀 새끼조차 이렇게 돌보시는 분이라면 자기 백성이나 그들의 것들을 결단코 궁핍하게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많은 동정 중 단 한가지 예에 불과하며, 우리의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밖에도,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하시는지 능히 짐작하게 해 준다.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 '예비하다'란 말은 까마귀들의 먹이를 미리 예비하여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배려와 관심을 나타낸다. 까마귀를 포함한 모든 동물을 때에 따라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욥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일들을 행하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눅 12:24에서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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