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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
| 2. |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
| 3. |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
| 4. |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
| 5. |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
| 6. |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
| 7. |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 8. |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
| 9. |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
| 10. |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
| 11. |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
| 12. |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
| 13. |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
| 14. |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
| 15. |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
| 16. |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 가 아느냐 |
| 17. |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
| 18. |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
| 19. |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
| 20.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
| 21. |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
| 22. |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
| 23. |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
| 24. |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
1.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 '떨며'의 '에헤라드'(* )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기쁨이나 슬픔 혹은 두려움으로 인해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가령 '땅이 흔들린다'는 표현은 마음의 떨림에 대한 시적(時的)인 묘사인 것이다(사 10:29;41:5;겔 26:18). 천둥과 번개는 보통 함께 일어 나는데 하나는 귀에, 또 하나는 눈에 감각을 준다. 그것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 권능과 두려움에 대한 지각할 수 있는 현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신의 교훈은 귀를 통해 마음으로 전달되며, 눈을 통해서는 그의 작품인 자연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교훈이 전달된다.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 '떠나느니라'(* , 이타르)는 '뛰어오르다', '펄쩍 뛰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나타르'(* )의 파생형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36장 끝부분에서 천둥과 번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비록 자주 천둥소리를 듣고 번개를 흔히 보아왔을 망정 아직도 여전히 그것들은 내게 두려우며, 나의 온 마디가 떨도록 만들어서, 내 마음은 마치 자기 처소에서 도망치듯 놀라 고동을 칩니다"고 엘리후는 말한다. 천둥과 번개는 악인들에게 두려운 바가 되었다. 칼리굴라(Caligula) 황제는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하여 한 구석에 달려가 숨거나 침상 아래로 뛰어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아주 심하게 놀라는 자들을 "우레에 놀란 자"라고 말한다.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조차 뇌성벽력은 무섭다고 생각한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 - 그것은 세상을 처음으로 지으신 그 전능하신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까닭이다. 그 말씀은 벽력이라고 일컬어진다. "당신의 뇌우 소리에 그들은 빨리 갔도다." 곧 하수들이 하나님께서 "한 곳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시자 서둘러 갔다(시 104:7). 주로 창조주께서 잠자고 있는 인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각성시켜서 그들 인간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려는 창조주의 의도가 있는 것같이 보여진다.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 '듣다'라는 뜻을 가진 '솨마'(* )가 두 번 반복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항상 듣다'(시 6:9)라는 뜻과 '세심하게 듣다'(13:17)라는 뜻을 아울러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반부의 '하나님의 음성'은 3절의 '그 소리'와 함께 표면적으로는 천둥 소리를 가리킨다. 3.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 '천하'(* , 하솨마임)는 문자적으로는 '하늘들'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하늘 끝에서 하늘 끝으로, 즉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시사한다. 또한 이 단어는 하반절의 '땅끝'과 대구를 이루어 온 천지를 모두 포함하는 능력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퍼치시며'(* , 이쉬레후)는 천둥 소리를 나타내는 지시형 어미 '후'(* )와 '자유롭게 되다', '묶이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솨라'(* )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천둥 소리가 온 하늘을 뒤덮어 진동시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 뇌성이 울리면 "온 하늘 아래" 펼쳐져서 원근에서 들린다. 그와 같이 번개도 또한 "땅 끝까지" 발사되어 나간다. 그들은 하늘 아래 한편에서 나와 가지고 저쪽 다른 편까지 비췬다(눅 17:24). 동일한 번개와 천둥이 일순간에 아주 먼 곳까지 이르고, 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이들 경보가 울리는 날 울리고 펴저 찾아 가지 않을 장소는 없다.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 천둥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나면, 그 위엄찬 천둥소리가 울립니다.(표준새번역성경) 물기 있는 구름 속에서 만들어진 불빛과 음성은 실제로는 동시적이다. 그러나 빛의 운동은 소리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천둥소리를 듣기 전에 번개를 보게 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대포 소리를 듣기 전에 멀리서 쏘는 대포의 불빛을 보는 것과 같다. 천둥은 여기서 "하나님의 위엄의 소리"라고 칭하는데, 이것은 그가 뇌성 벽력에 의하여 자기의 초월적인 권능과 위대하심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 그들의 생성과 운동은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향에서 생기며, 우리에게는 우발적이고 제어하지 못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지시하고 지배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 '번개 빛'으로 번역된 말은 원어상 목적격 접미사인 '그들'을 문맥의 뜻에 맞게 '번개 빛'으로 이해한 것이다. 번개 빛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빛을 발한다. 그것들로 하여금 제 진로를 취해 가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즉 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가라" 하면 그들은 가고, "오라" 하면 그들은 온다. "이것을 하라"고 명하시면 그들은 그것을 행한다. "그는 보통 천둥 후에 따라 오는 비와 소나기를 멈추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이것에 대해서는 36:27, 29 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그의 음성이 들릴 때"에 땅 위에 소나기를 쏟으실 것이다. 뇌우는 쓸어 가는 비이며 그는 그들을 위해 "번개를 만드신다"(시 135:7). 5.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 기이하게(* , 니플라오트)는 '기적', '불가사의한 일', '경이로움'을 뜻하는 명사 '펠레'(* )에서 파생된 단어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사실이나 현상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 단어는 하반절의 '헤아릴 수 없는'과 유사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 하나님이 명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표준새번역성경) 그가 펴시는 섭리에는 우리의 반대나 대항이 도무지 문제가 안 될 만치 너무나 강성하시고 너무 크신 데가 있으며, 우리가 따지거나 언쟁하기에는 너무나 높고 깊은 데가 있다는 것이다.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 "명하여"(* , 이오마르) 문자적으로는 '그가 말하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그것처럼 단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실제적인 힘을 지닌 창조적인 능력의 표출임을 보여준다. 천둥과 번개는 보통 여름에 생기지만, 그는 여기서 겨울철 날씨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는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고 하신다." 그는 눈이 어디에 내릴 것이며, 거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쌓이고 내릴지 위임하고 명령하며 지정하신다. 비와 큰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 그가 말씀하신 즉 그것은 그대로 시행된다. "빛이 있으라"고 하신 세계의 창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일반 섭리가 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눈을 명하여 땅 위에 내리라"고 하신다. 말과 행동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비록 각기 다른 별개의 두 사항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명령과 시행이 다른 두 가지 일이 아니다. 그가 말씀을 하시면 그가 원하는 대로 "작은 비"는 내리고 "큰 비"는 쏟아진다. 7.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 "손을 봉하시나니"는 '사람들의 손을 묶어 놓으신다'라는 뜻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손을 놓아 멈추게 하신다는 의미이다(NIV, he stops every man from his labor). 이런 상태는 6절의 '눈', '비'와 관련되어 있는데, 기후의 변화로 인하여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주체적인 행위의 결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하반절에 나온다.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신다." 서리와 눈 속에서 날씨가 지독하면 농부나 상인이나 여행자도 그들의 생업과 사업에 종사할 수가 없다. 쟁기는 방치되고, 선적하는 일도 중단되며,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아무 것도 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들의 일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은 "그의 일을 알 수 있게 되며,"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쉬면서 그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상기하며 그 능력을 인정하도록 하시기 위해 눈과 비를 땅에 내려 일을 하지 못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일로 인하여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며, 그들의 손들을 봉하는 일기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참작함으로써, 그의 다른 놀라우시고 크신 일들을 칭송하게끔 인도된다. 8.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 자연 현상의 변화(계절의 변화)로 말미암은 결과들은 인간에게(7절)만 이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짐승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때문인 것이다. 즉, 모든 생물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능력에 좌우되어 생(生)을 영위해 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 굴에 머물며 - 이것은 야수를 의미하는데 들짐승들은 야생으로 지내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숨을 곳을 찾아야 하며, 그들은 본능으로 피난처를 찾아간다. 한편, 길든 짐승은 사람에게 유용하므로 우리도 지어 주고 사람의 보살핌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출 9:20). 나귀에게는 굴이 없으나 주인의 말구유가 있다. 나귀는 그리로 가면 안전하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배불리 먹을 수도 있다. 자연은 모든 피조물에게 폭풍우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9.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 '밀실'(* , 헤데르)은, 우가릿 신화에는 엘(신)의 비밀 스러운 거처로 표현되었다(Pope). 이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폭풍우를 저장해 두는 곳으로 여겨졌다(Rawlinson). 한편 원문상에는 '남쪽'이라는 표현이 없으나 개역 성경은 9:9의 표현과 같은 것으로 보고 '남쪽'의 의미로 이해한 듯하다(KJV, NASB도 이렇게 번역함). "은밀한 처소에서 회오리 바람이 나온다."(이렇게 해독할 수도 있다) 이 강풍은 빙빙 돌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그것이 불어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바람은 용어 그대로의 의미대로 "밀실" 즉 "은밀한 방"에서 나온다.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 "북방"은 히브리어 '메자림'(* )은 기상학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이것은 '흩어버리다', '쫓아버리다', '퍼지다'라는 뜻인 '자라'(* )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단어는 미친듯이 몰아치는 북풍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입김'으로서 바람에 대한 시적(時的) 표현이다. 서리의 원인을 살펴 보라. "그것은 하나님의 호흡에 의해 생긴다." 즉 그의 권능의 말씀과 그의 의지와 명령에 의해 생긴다. 혹은 다른 자들이 이해하듯 우레가 하나님의 목소리이듯 하나님의 호흡인 바람에 의해 생긴다. 그것은 북방에서 나오는 바람 곧 찬, 얼게 하는 바람으로 인하여 생겨난다.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 북쪽에서 부는 찬바람으로 인하여 기온이 떨어져 얼음이 얼게 됨을 표현한다. 그 결과를 보자. "물의 넓이가 좁아진다." 즉 퍼져서 자유로이 마음대로 흐르던 하수가 결정체의 착고에 묶여서 응결되고, 마비되고 구속되 버린다. 이것은 진귀하다면 진귀하고 기적과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본보기이다. 결국 여기서 엘리후는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까지도 자신의 수중에 두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11.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 여기서도 역시 고대의 문헌으로서는 매우 과학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짙은 먹구름 위에 습기를 더하신다'는 것으로 비가 오는 원인을 묘사하고 있다. 물을 머그믄 구름은 스스로 소모하며, 그들이 용해되고 분해되어 버리는 비로 인하여 소모되어 버린다. 다 쓰고 없어져서 더 이상 쏟을 것이 없을 때까지 물을 뿌린다.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 "번개 빛의 구름"이는 '번개를 간직하고 있는 구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과학에서 번개는 서로 다른 극성(極性)을 가진 구름끼리의 충돌로써 설명되는데, 여기서도 번개와 구름이 관련되어 있다는 분명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2.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 구름의 움직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운행하심에 따라 좌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곳에 비를 내리신다(Rawlinson). 빽빽한 구름은 바람의 날개에 실려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다니며 가는 곳마다 소나기를 내린다. 이런 수단으로 그는 "한 도시에 비를 내리게도 하고 다른 도시에는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하신다"(암 4:7, 8). 이와 같이 그의 뜻은 "지구 위의 세계상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 비는 하나님의 의향에 의해 인도되며 규제되고, 하나님의 뜻은 가장 우연한 일처럼 보이거나 가장 미세한 것 같은 사물에 이르기까지 확대 적용된다. "그들은 그가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한다." 폭풍이나 그 폭풍에서 밀려 다니는 구름도 그의 말씀을 성취시킨다. 13.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 비는 때때로 심판으로 변한다. 그것은 죄 많은 땅에 대한 채찍이다. 비가 한 때에는 전세계의 멸망을 위해 사용되었듯이, 이제는 일부 지역의 교정과 징벌을 위해 동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비를 구사하여 파종과 수확을 방해하며, 하수를 범람시키기도 하고 결실을 손상시키신다. 혹 토지를 위하며 - 다른 때에는 비가 축복이다. 이 비는 "그의 토지를 위한 것"이다. 곧 이 토지가 비옥하도록 해 준다. 더욱이 그는 그 토지를 기름지게 하고, 더욱 결실을 많이 내도록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을 "긍휼히" 제공해 주신다. 꼭 같은 사물이 주어지는 분량에 따라 큰 심판될 수 있고 큰 긍흉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필수적으로 의존하고 있는지 살펴 보라.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소나기도 밝은 빛도 가질 수 없다.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 레헤세드) 전치사 '레'(* )는 '...을 위하여'의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헤세드'(* )는 보통 '자비', '친절', '사랑' 등으로 번역된다. 예언서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포함하는 '경건'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헤세드'(* )는 비참하고 동정받을 만한 처지에 있는 대상에 대한 긍휼을 포함하는 사랑의 뜻으로, 특히 인생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애(仁愛)의 뜻으로 종종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불쌍한 인간들을 향해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구름을 사용하심을 가리킨다. 이처럼 폭풍과 구름 등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고 있다.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우리가 듣는 일도 만약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다면 우리에게 유익되지 아니하기가 쉬우며, 만일 우리가 가만히 서서 그 일을 침착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곰곰이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하나님의 일은 기묘하기에 우리의 고찰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궁리해 볼 가치가 있다. 그 일들에 대한 온당한 성찰은 우리를 그의 모든 오묘와 섭리를 이해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자세히 듣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오묘하신 통치의 지혜를 깨달으라고 요구한다. 이미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다했고 이제 남은 것은 욥이 그 속에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깨닫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궁구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보넨'(* )은 '이해하다', '숙고하다', '신중하다'의 뜻을 가진 '빈'(* )의 파생형이다. 이 단어는 사물이나 사건을 주의깊에 통찰하여 사리를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15.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 명령하셔서(* , 베숨)는 '놓다', '위치시키다', '지정하다'의 뜻을 가진 '숨'(* )에 전치사 '베'(* )가 결합된 단어이다. 영역본 NIV와 주석가 하틀리(Hartley)는 이 단어를, 자연을 직접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여 'controls'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이 단지 만물의 창조자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운용하시는 주관자이심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름으로 하여금 번개 빛을 발하게 하다'이다. 구름끼리의 충돌로 번개가 치는 것 또한 우연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종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16.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 가 아느냐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 "평평하게 뜬 것"(* , 알미플레시) - 의문 부사 '알'(* , how)과 '무게를 달다', '평형을 맞추다'라는 뜻을 가진 '팔라스'(* )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여기서 '팔라스'는 좌우가 균형을 이루며 정리된 상태를 의미하며, 개역 성경은 종종 '평탄케 하다'로 번역하였다(잠 4:26;사 26:7).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늘 위에 구름이 자유로이 펄쳐져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구름이 지주가 없이도 매달려 있는 신기한 모습의 평형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Pope). 그리고 이 구절은 하반절의 '기묘한 일'과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Gordis).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 이 표현은 엘리후가 하나님을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특히 여기서는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한다. 기묘한 일을 네 가 아느냐 - 무지개는 구름이 이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그들을 균형잡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암시이다. 그들은 평평하게 떠있어서 저희 비를 지면에 무사공평하게 분배하고, 따라서 이제나 저제나 모든 곳은 제 몫을 받는다. 17.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 여기서 '고요할 때'(* , 베하스키트)는 '조용하다', '평온한'의 뜻을 가진 '솨카트'(* )의 파생형이다. 이 동사의 기본 뜻은 전쟁이나 불화가 없는 상태 혹은 걱정이나 불안이 없는 '평온'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에서는 앞에서 언급된바, 살을 에이고 온 땅을 얼어붙게 하는 북풍(9,10절)과 대조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남풍'은 사막의 열풍으로 짐작된다.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 춥다가 어떻게 기후가 따뜻해지는가? 우리는 우리 의복이 어떻게 따뜻해지는지 알고 있다. 즉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가 따뜻해지는 이유와 같이 우리가 옷을 입으면 어떻게 따뜻해 지는지 알고 있다. 그가 살을 에이고 거세게 불어 제치는 북풍을 가지고 있듯이, 그것을 녹여 주고 평온하게 해 주는 남풍도 가지고 계신다. 성령은 이 양자에 다 비유가 되는데 이는 그가 확신시키기도 하시며, 위로해 주기도 하시는 까닭이다(아 4:16). 18.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부은 거울 같은 - '부은'(* , 무차크)은 '퍼붓다', '녹이다', '주조하다'의 뜻을 가진 '야차크'(* )가 변형된 단어 '추크'(* )의 파생형으로 '쏟다', '녹다'라는 뜻이다. 또한 '야차크'(* )는 솔로몬이 만든 금으로 된 성전 기물과 청동 주물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되었던 것으로(왕상 7:46) 보아 '주조한 기둥'을 뜻하는 '무차크'(* )가 이 '야차크'(*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 비록 궁창이 유동적이라고는 하나 그런데도 그것은 견고하다. 그것은 "강하며" 그 이름을 그것의 안정성에서부터 가져온다. 그것은 여전히 과거의 하늘 그대로이며, 조금도 쇠하지 않으며, 차용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소멸될 때까지 하늘의 법칙은 변경되지도 않을 것이다.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 엘리후는 여기서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시도를 가정하고 있다. 오히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태도, 즉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에 도전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하나의 아이러니인지를 깨닫도록 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할말'이 인간에게는 한마디도 없다. 따라서 욥은 그것에 관해 엘리후 혹은 엘리후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경건한 자들에게 가르칠 말이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 "우리는 암흑의 연고로 우리말을 진술할 수 없다." 가장 최선의 인간이라도 신적 본성의 영화로운 완전성이나 신적 통치의 경영에 대하여는 어두운 점이 많다.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들도 알려져야 하는 것과 알려질 것에 비교하면 아는 게 거의 없으며, 아니 전혀 없으며, 온전한 것이 와서 수건을 벗겨질 때에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 그는 자기가 말해 왔던 것들이 부끄럽기조차 하였다. 그가 부끄러이 여긴 것은 자기 진술의 근거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근거를 처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혹은 "내가 말로써 하나님에 대하여 다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머리를 동원해서 말로써 형용하여 말들을 다 한다 할지라도 온전하지 못하다. 그의 실제의 진상이 자기가 진술을 떠맡음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얼굴이 형편없는 화가로 인해 망쳐지듯 손상을 입지나 않았는지 전전긍긍해 한다. 또 그는 자기의 연출이 감사하다는 치사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누가되어 사죄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였을 때에도, 우리는 자신이 무익한 종이었음과 자랑할 것이 조금도 없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 '삼키우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예불라'(* )는 완전한 멸망을 나타낸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수나 땅으로 하여금 입을 벌려 사람들을 삼키게 한 경우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신 것이고(출 15:12), 또 한 번은 고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에 참가한 모든 무리들에게이다(민 16:30,32,34). 이처럼 이 단어는 주로 파괴, 파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엘리후는 자신의 어리석은 변론이 곧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욥처럼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 단어를 '삼키우다'는 뜻 대신에 '혼잡케 되다', '혼동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정신이 혼란케 되는 상태(사 3:12)를 뜻하는 단어로 보는 것이다(Gordis). 21.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 문자적으로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존재 혹은 하나님의 은혜과 자비 등을 상징한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감춰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당황하게 되고 이것은 그에게 흑암을 상기시켜 주었고 이 캄캄함은 그로 하여금 계속 말하는 게 두렵도록 만들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 여기서 우리는 태양을 가렸던 구름이 바람에 의해 날려가고 감취었던 태양이 다시 빛을 발하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엘리후는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들의 가변적인 태도를 이처럼 자연 현상을 이용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2.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 '금 빛'(* , 자하브)은 문자적으로는 '금(정금)'을 가리킨다. 로린슨(Rawlinson)은 이 구절이 실제로 금이 북쪽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태양의 광선을 상징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비록 고대 동양의 문헌에 태양 빛을 금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본절의 표현을 그와 관련한 겔 1:4와 유사한 내용으로 보기 보다는 실제적인 '금'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 "그는 권능이 지극히 빼어나신다." 하늘에서나 땅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 그가 행하실 수가 있다는 것은 그의 권능이 빼어남이다. 그의 능력의 우주적인 범위와 그것의 항거할 수 없는 힘은 그 권능이 지극히 크심이다. 어떤 피조물도 그와 같이 그토록 강한 팔을 가지지 못했다. 23.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 "측량할 수 없나니"(* , 로 메차누후)는 부정사 '로'(* )와 '발견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마차'(* )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마차'는 단순히 '발견하다'라는 의미 외에 다른 뉘앙스들을 갖고 있다. 수동태형은 '압도된', '파악된'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70인역(LXX)에서는 종종 '붙잡히다'로 번역된다. 또한 이 단어는 '도달하다', '획득하다'라는 뜻의 아람어와도 관련되며, '마주치다', '만나다' 등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앞 구절에 '찾다'라는 의미가 나오면 뒤에 있는 '마차'는 '만나다', '발견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신 4:29;아 5:6;렘 29:13). 본절에서는 '도달하다', '온전히 파악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1:7). 즉,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의 한계 너머에 계시므로(NIV) 우리는 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NIV, RSV, NASB).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 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는 왜곡될 수 없습니다.(우리말성경)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 하리라.(사53:11)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 무슨 일이든 다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그가 무슨 일이든 다 가장 선하게 행하시리라는 것은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그가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권하노라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전8:2)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사53:5)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하였다.(롬 11:33) 이 모든 사실로부터 하나님은 위대하시므로 그는 크게 경외해야 할 분이라는 것을 추론해 내기는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그를 경외함이 마땅하다." "사유하심이 주께 있으심은 주를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시 130:4).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 , 칼 하크메이 렙) 부사 '칼'은 '모든'(all of)을 뜻하며, 명사 '렙'(* )은 '마음', '심장', '이해'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크메이'(* )는 '지혜롭다', '지혜롭게 행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하캄'(* )의 파생형이다. 엘리후는 이 표현에서 '저 혼자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를 의미하면서 심중에 욥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Pope). 하나님은 자기를 그렇게 여기는 '모든'(개역 성경은 번역하지 않음) 자들을 무지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어리석고 무익한 일이다.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 '돌아보다'(* , 이레에)는 어떤 대상에 관심을 두고 특별히 바라보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 외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눈으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는' 인생은 그 누구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평온하고 안락한 평화를 누릴 수 없다. 한편 '라아'(* )가 상반절에서는 '경외하다'(* , 예레우후)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곧 스스로 마음에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이기'(28:28)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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