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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
| 3. |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 보내리라 |
| 4. |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
| 5. |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
| 6. |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
| 7. |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
| 8. | 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
| 9. |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
| 10. |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
| 11. |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
| 12. |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
| 13. |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
| 14. |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 |
| 15. |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
| 16. |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
| 17. |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
| 18. | 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지니라 |
| 19. | 너의 부르짖음이나 너의 세력이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너로 유익하게 하겠느냐 |
| 20. |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것이니라 |
| 21. |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
| 22. |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누가 그 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
| 23. |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
| 24. |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
| 25. |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데서도 보느니라 |
| 26. |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
| 27. |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
| 28. |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
| 29. | 구름의 폐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
| 30. |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
| 31. |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 |
| 32. | 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
| 33. | 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 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 |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엘리후가 말을 이어 - 엘리후의 네 번째 연설인 본장에서 그는 두 가지 중심 사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는 33장에서 언급한 내용과 유사한 것으로, 고난이 닥치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총돌되는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백성의 교만을 꺾기 위한 '정화의 수단'이라는 주장이다(1-25절). 이 고난관은 33장 보다 이곳에서 '더욱 강하고 분명히' 언급되고 있다(N.H.Ridderbos). 2. 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 "하나님을 위하여"(* , 레엘로아흐)는 '...을 위하여', '...의 편에서'를 의미하는 전치사 '레'(* )와 '하나님'(* , 엘)이 합쳐진 말이다(KJV, NIV, RSV, NASB;on (in) God's behalf). '하나님을 위해 나서겠다'고 하는 대신 '아직도 내(안에) 말이 남아 있다'로 옮겼다. 이는 자기가 해야 할 말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정리된 말들을 속에 오래 담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진지하게 나서서 하나님의 명예와 진리를 위하여 또 그의 길과 그의 백성을 위하여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그는 하나님을 위한 증인으로서 말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가 법정이 경청해 줄 것을 기대함은 정당하다. 엘리후는 자신의 마지막 연설을 시작하면서 '이제 내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의 명예를 위해 말하겠다'고 명백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 보내리라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취하고 - "먼 데서"(* , 레메라호크)는 전치사 '레'(* , to)와 '메'(* ) 혹은 '미'(* , from)가 이중으로 사용되었고, 여기에 '멀다', '멀리 있다'의 뜻을 가진 '라하크'(* )가 결합된 단어이다. 직역하면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이다. 이를 단순히 '역사와 자연의 넓은 영역 중에서'라는 뜻으로 보기도 하지만(Delitzsch), 엘리후 자신의 연설이 '땅의 끝에서부터'(Dhorme),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봄이 더 타당하다(Anderson, 시 138:6;139:2;렘 23:23). 이로써 엘리후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교훈이 될 만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이런 지식을 찾기 위해 멀리 가서 그 지식을 캐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여행에 나서는 일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해 줄 것이며, 아무리 멀리서 취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싼 대가를 치를 만한 일이며 의미있고 값진 일일 것이다.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 보내리라 - 그가 하고자 도모한 모든 것은 자기의 조물주께 의로움을 돌리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의 모든 행사에 있어서 의로우시다는 이 진리를 주장하고 분명히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 대하여 말하고 그를 대변하는 일에 있어서 그가 우리의 조물주이심을 기억하는 일은 좋은 것이며, 그를 그렇게 부르는 일은 유익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기꺼이 하나님라고 부르며, 그의 나라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4.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 "내 말이 거짓이 아닙니다. 내가 변호하는 것은 진리이며, 더욱이 나는 진리를 위하여 가능한 모든 성실함과 명료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얻은 우리 지식의 온전함이란 곧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나, 그 진리를 우리에게 적용함에 있어서나,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을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일에 성실하고 정직해야 할 것을 말한다.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 "지식이 구비한 자"는 히브리어 '테밈 데오트'(* )는 '완전한', '순전한'의 뜻인 '테밈'과 '알다', '경험하다'의 뜻인 '야다'(* )에서 파생된 '데아'(* , 지식, 견해)의 복수형 '데오트'(* )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지식'이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은 '충만한 지식'(full knowledge)을 뜻하며(Hartley), 여기에 '테밈'(* )이 추가되어 사리를 분별하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지고한 지식, 지혜를 의미한다. 5.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 그의 지혜와 힘이 버금할 것이 없도록 무한하시며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낮추사 가장 비천한 자의 일까지도 심리하시고, 그들에게 공평을 베푸시며 인자하심을 나타내 보이신다. 하나님은 그의 수하인들 중 가장 비천한 자에게 주목하는 일을 가치없다고 생각지도 않으시며, 곤궁한 자나 미미한 자들이라 하여 자기 은총에서 멀리 떼어놓지 않으신다. 6.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 "그는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신다." 악인들의 생명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특별히 베푼 보살핌 아래서 그런 것 아니라, 단지 섭리의 일반적 보호하에서 그런 것일 따름이다. 그는 그들의 생명을 그들이 기대한 만치는 오래도록 보존하지도 않으시며, 참으로 우리의 생명이라고 할 만한 그 위로와 만족으로써 저들을 살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7.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 '그 눈'에 해당하는 '에나이우'(* )는, 70인역(LXX)에 의하면 '그의 정의'(his right)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관용어구로 '하나님의 얼굴'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보호하심', '공의' 등을 뜻하므로 굳이 본문을 수정하지 않아도 그 뜻이 분명해진다. 즉,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의인들을 외면하시지 않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지키신다고 엘리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내려다 보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도 않으신다. "그는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신다."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 그들은 "왕과 함께 위에 앉히신다." 그래서 모든 단들이 의인의 단에게 절하게 된다(창 37:7). 의로운 사람이 존귀와 권세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그것은 그들 의인들에게 대한 자비에서 그렇게 된다. 왜냐하면 의로운 인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의인들로 하여금 고관으로 등용되는 데 뒤따르는 유혹에 이기게끔 무장을 시켜 주시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주어진 선행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때문이다. "의로운 자가 통치를 맡으면 온 성읍이 즐거워한다." 8. 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 "누설"(* , 지킴)은 '제크'(* )의 복수형으로서 '족쇄', '쇠고랑'을 의미한다. 이는 주로 포로나 죄인들을 속박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사 45:14), 본문에서 문자 그대로 이해해도 무방하겠으나 다음 구절의 '환난의 줄'과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 "환난의 줄"는 의인의 인생에 닥친 고난과 역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상반절의 '쇠사슬'과 함께 이 '줄'은 의인의 삶을 제한하고 어거(馭車)하는 시험을 가리킨다. 또한 이것들은 그들이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임을 보여준다. 즉, 엘리후는 세 친구들의 주장과는 달리 의인들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도)를 9,10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9.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 비록 의인이라 할지라도 부지중에 죄를 지을 수 있으며 또한 교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의인에게 닥친 고난은 단순한 징계의 차원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연단과 성숙을 위한 것임을 거듭 밝히는 구절이다. 이러한 엘리후의 사상은 '고난은 죄의 결과'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였던 세 친구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보이사(* , 야게드) - '말하다', '알리다', '선언하다'를 뜻하는 '나가드'(* )의 파생형이다. 이 어근은 원래 '어떤 것을 사람 앞에 높이두어 눈에 잘 띄게 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의인들의 잘못된 죄악들을 밝혀 보인다는 뜻이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보다 '위엄있고 강한 선고'의 뜻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RSV, declares).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 하나님은 자기가 단련시키는 자를 "교훈 하시며"(시 94:12), 고통은 사람들이 즐겨 배우게 만들며, 마치 밀랍을 녹이는 것같이 사람의 심령을 부드럽게 만든다. 귀를 열어 듣게 하며, 심장을 열게 하는 분은 그이시니, 그는 다윗에게 열쇠를 주신 분이시다.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 이에 해당하는 '슈브'(* )는 '돌이키다', '돌아오다'란 뜻이며, 본절에서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는'(NIV, repent;Hartley) 의미로 이해 할 수 있다. 이 회개는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중대한 결단이 된다(Habel). 그것은 "불의로부터 돌아 오라"는 선포이며, 죄악과는 더 이상 관계를 맺지 말라는 조언이고, 불법을 싫어하여 그것으로부터 돌이키라는 법령인 동시에 다시는 이 이상 더 죄악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라는 명령이다(호 14:8). 11.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들 특히 하나님의 예배와 경배에 관련된 명령들에 순종하여 살아가고, 모든 사례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양심껏 지킨다고 할 것 같으면 그들은 다시금 "형통히 날을 보내며," 그리고 "즐거이 해를 지내게 될 것이다." 경건은 번영과 열락에 이르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 "날을 보내며"는 직역하면 '자신들의 날을 끝내다(마치다)'이다. 즉,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고치면 남은 생애를 형통하게 지내고 마치게 되는 복을 누릴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 생애는 매우 즐겁고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될 것이다. 12.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 '칼에'(* , 베쉘라흐)의 '베'(* )는 어떤 일의 원인이나 이유(cause)를 뜻하는 전치사로 사용되었다(Hartley). 그리고 '쉘라흐'(* )는 '보내다', '던지다'는 뜻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무기'를 뜻한다. 따라서 굳이 칼뿐만 아니라 원래는 던지는 무기를 의미한 듯하다(느 4:17,23에서는 '병기', '기계'로 번역됨). 혹자는 '쉘라흐'를 '죽음의 강물, 협곡'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Hartley, Habel).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만약 그들이 그들의 환란에 의해서도 개선되지 않고 교정되지 않으며 개혁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칼에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채찍에 치료되지 않는 자는 그가 칼로 죽이실 것이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는 물이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면 태워 버리는 불이 뜻을 이루리라.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때에는 그가 압도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그는 멸망하도록 결정되었다"(대하 28:22; 렘 6:29, 30). 하나님이 환란을 통해 그들을 교훈하고자 하시건만 그들이 훈계를 받으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에게 내리시는 암시를 받아 들이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식없이 죽을 것이다." 그들이 알기 전에 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이전의 경고를 새삼스레 깨닫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13.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 분노를 쌓으며 - 본문을 '분노를 품는다'로 옮겨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Lange).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무난하겠다. 즉 불경건한 자들은 목전의 현실에서 징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계속 불의를 행하게 되지만, 이는 진노의 날에 필경 임하게 될 진노를 자기 머리에 쌓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Hartley, Rswlinson, 롬 2:5).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께 쌓이고 그 창고에 봉해져 있다"(신 32:34, 약 5:3). 수증기가 위로 증발하여 소나기가 되어 내리듯 죄악도 회개하지 않으면 올라가서 진노가 되어 내려 온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자기들이 재산을 쌓으며 부귀공명을 축적하는 것 같으나, 정작 창고를 열어 보는 날에는 그들이 진노하심을 쌓아 놓았다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징계를 당하여도 그들은 거짓을 좋아하고 위선은 마음 가운데에 놓여 있다. 이 마음은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과 종교를 위하는 것같이 보이더라도 세상과 육체를 향하는 마음이다. 겉치레나 말로서는 성자이면서 마음 속에는 외식이 가득한 자들이 많다. 그 원천이 잘려저 있는 이상 점점 부패하고 썩기 마련이다. 14.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 이것은 외식하는 자의 분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위선자들에 대해 많은 화가 있으리라고 선언하셨다. 이들은 힘이 더 할 수록 죄도 늘어나고 급작스런 죽음을 당하여 사라지게 된다. 사특한 자의 죽음(다시 말해서 그 결과)은 항상 그렇다. "사악한 자가 죽으면 그의 기대는 사라져 버린다." 허무한 것을 꿈꾸는 자들의 결과는 항상 비참하다. 그들은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끊임없이 탐하다 죽을 것이다.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 - "남창(男娼)과 함께"(* , 바케데쉼)의 '케데쉼'(* )은 '구별됨', '거룩함', '성스러움'을 뜻하는 명사 '코데쉬'(* )에서 유래한 단어로 '남자 창기'를 가리킨다. 개역 성경은 신 23:17;왕하 23:7에서 이를 '미동'(美童)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거룩한 자'를 뜻하는 '코데쉬'가 남창을 가리키게 된 것은 이교 사원의 종교적 풍습에서 기인했다. 저들의 제사 의식 가운데는 성적인 행위가 포함되어 있어서 사제들이 신전에서 사람들과 음행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특히 수리아인과 가나안인의 신전에서 흔히 행해졌는데, 여기서 그 수종을 드는 남녀 사제들은 창기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런 남창들과 함께 거하게 되면 저희의 기력이 쇠해질 수밖에 없었다(Lange). 한편 하틀리(Hartley)는 이 부분을 '남창'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의미를 좇아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 속에'라고 번역하여, 젊어서 죽게 되는 수치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 오히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고통을 하나의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하심을 뜻하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Hartley, Lange, Rawlinson). 이런 점에서 RSV는 이 부분을 '하나님은 고난받는 자를 그의 고난으로 구원하신다'(He delivers the afflicted by their affliction)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고난받는 자의 구원 여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학대 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 욥이 자기 환난 중에 아주 겸손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이 일에 앞서 그에게 어떻게 해 주셨으리라는 것을 엘리후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학대 받는 자를 그 고통 가운데서 즉시 구원하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분임을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그러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곧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대하시고, 그들이 곤고한 중에 있을 때에는 기꺼이 도우십니다.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 '곤고함'(* , 피 차르)은 직역하면 '고난의 턱(입)'을 뜻한다(NIV, NASB, jaws (mouth) of distress). 그리고 '이끌어 내다'의 '하시테크'(* )는 '꾀다', '부추기다', '선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수트'(* )에서 파생된 말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본절에서는 '인도하다', '이끌다', '적을 물리쳐 돌아서게 하다'(대하 18:31) 등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는 자를 사망의 자리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이 계획은 바로 욥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후의 다음 말은(17절)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욥이 거절하여 스스로 더 불행한 길을 자초했음을 보여준다. 좁지 않고 넓은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 그가 당신에게 구원을 베푸사 당신을 위로하셨을 것이고, 우리는 이런 불평을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였더라면 당신의 자유와 풍부가 당신에게 회복도어 유리하였을 것입니다." "당신은 더 크게 되었을 것이고, 당신의 질병과 치욕에 이처럼 갇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겼을 것이며, 당신을 벌써 이처럼 꼼짝 못하는 속박에서 벗어나 당신의 모든 풍성함과 은혜 가운데 거하고 있을 것이다."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 기름진 음식으로 잘 차려진 상은 인생의 가치와 승리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의미한다(시 23:5). 풍족한 식탁은 상반절의 '넓은 공간'과 병행구를 이룬다. 한편 텔리취(Delitzsch)는 이를 '재산이 풍성해지는 상태'로 이해한다(시 22:26;107:9;잠 9:2).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이제는 - 앞에서 말한 축복스러운 상황과 정반대의 현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고 심판과 공의는 중언적(重言的)인 표현으로 '정의로운 심판'을 뜻하는 말이다(Hartley). 따라서 본절은 '정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욥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Lange). 즉, 욥은 그의 완고한 고집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Rawlinson).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 엘리후는 욥이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렸다고 책망하며, 욥 자신의 고통의 화근이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다." 즉 "당신의 진면목은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이 일에 있어서 악인과 같이 행동하였으니 악인과 같이 말하며 행동하였고, 악인들이 했던 것 처럼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무죄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을 많이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어 훼방하는 말을 많이 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형벌을 부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 그는 그의 모든 처사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공정하시다. 누가 "당신께서는 불의를 행하셨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렇게 말할 자는 없다. 감히 그렇게 말하는 자가 누구이랴?(불의를 행하는 자가 많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 일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서 그렇게 고하는 법이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그런 말을 낼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 그 일을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증명할 자가 누구인가? 18. 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지니라 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 이 구절은 엘리후가 욥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 말이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공의와 의로움을 공박하고 의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분격함'의 '사페크'(* )는 '살짝 때리다', '손뼉을 치다'는 뜻을 지니는 '사파크'에서 유래했다.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지니라 - 돈으로 피해 나갈 수도 없으며, 은이나 금 따위의 그런 썩어질 것으로 사하심을 살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정죄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큰 대속물이라도 당신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공의는 뇌물을 주어 삶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어떤 사자들도 뇌물로 유혹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재산을 보고 중히 여기시며, 당신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형벌을 감해 주실 것입니까? 19. 너의 부르짖음이나 너의 세력이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너로 유익하게 하겠느냐 너의 부르짖음이나 너의 세력이 - "세력"은 직역하면 '너의 금(재산)이 너의 고통을 감소시켜 주겠느냐'이다. 욥이 당하는 환난 중에서는 그의 헛된 불평조의 부르짖음이나 부요함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엘리후는 인간적인 그 어떤 방편도 욥을 그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내거나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다.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 당신이 여태껏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신을 편안하게 해 주지도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로부터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도 못할 것이니, 그 진노의 날에는 재물도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잠 10:4; 49:7, 8 참조). 20.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것이니라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 밤을 그리어 해가 지기를 기다리지 마시오. 밤이란 사람들이 귀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때라오.(공동번역)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롬13:13)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것이니라 - "밤을 사모하지 마시라. 밤은 흔히 패배한 군대의 퇴각에는 유리하여 도주를 엄폐시켜 주지만, 당신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지 마시오. 왜냐하면 흑암도 그에게서 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시 139:11, 12; 욥 34:22 참조).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 불의한 추구에 의해서 재물을 늘이고 죄 많은 계획으로 그들의 고통을 채우며 죄 많은 쾌락으로 그들의 근심 걱정을 달래며, 그들의 양심을 거스려 가면서까지 죄스러운 영합으로써 의를 위한 수고로움을 회피하는 이들은 후회하고야 말 선택을 하는 셈이다.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 엘리후는 욥이 이런 훈계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가 "고난 보다 오히려 평안를 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서 생각해보면 평안보다 불의를 택하는 자들은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22.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누가 그 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 "큰 일을 행하시나니"의 히브리어 '야스깁'(* )은 '매우 높은'을 뜻하는 '사가브'(* )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매우 높은 곳에 앉으시다', '높이 들림을 받으시다'이다. 이는 하나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인해 가장 높이 송축 받으실 분임을 뜻한다. 누가 그 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나타내시는 교훈의 깊은 지혜는 인간이 감히 따를 수도,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 사상은 엘리후의 전체 연설의 중심이 된다(Rawlinson).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는가?" 그 스스로가 빛과 진리와 지식과 교훈의 근원이신 분을 우리가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 "사람에게 지식으로 교훈 하시는 자가," 그것도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알지 못하시겠는가?"(시 94:9, 10) 우리가 촛불을 가지고 태양을 밝힐 수 있는가?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 '정하다'의 '파카드'(* )는 '계산하다', '판단하다'의 뜻을 가진다. 하나님 처럼 우리의 행동을 지시해 주시기에 적격인 분은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만큼 그렇게 권위로써 훈육하며 확신에 넘치는 증거를 가지고서, 겸손과 긍휼로써 가르치시는 분은 아무도 없고, 그만큼 권세와 능력로써 훈계하시는 이도 없다. 그는 성서로써 가르침을 베푸시는데 성서는 최상의 책이다. 그는 또 자기 아들로써 훈계하시는데 그는 가장 선한 선생님이시다.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신다." 즉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를 세우실 수도 또 끌어내릴 수도 있으며, 또 그렇게 행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자이시다. "그는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신다." 다른 이에게서 연유된 힘으로 큰 일을 행하시지 않는다. "누가 그에게 그의 길을 정하여 주었단" 말인가? 누가 하나님의 길에서 그 위에 주재한다는 말인가? 그 자신은 지고의 존재로 독립하는 분이시다. 누가 그로 하여금 자기 길을 생각나도록 한다는 말인가?(어떤 이는 그렇게 해석한다) 영원무궁한 마음이 기억하게 해 주는 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인가? 아니다. 나의 길과 모두의 길도 항상 그의 앞에 있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들의 길을 정해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에게 그 길을 지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의 통치는 그분의 뜻을 살피고 그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24.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 "찬송하기를"(* , 타스기아)은 원래 '증가하다', '성장하다', '확대하다'의 뜻을 가진 '사가'(* )의 파생형이나 '사가'(* )가 상징적으로는 '찬양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임에 유의해야 하겠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드높여 찬양하고 광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 '노래'를 뜻하는 명사 '쉬르'(* )에서 유래된 파생형이다. 시편에서 주로 사용되는(시 13:6;101:1;106:12 등) 이 단어는 '찬송하다', '노래하다'로 번역되었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이 동사가 '보다', '깨닫다'는 뜻의 '슈르'(* )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Ezra, Larcher, Tur-Sinai). 이 경우에 본절은 '너는...찬송하기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가시적인 업적들 즉 자연계의 삼라만상과 대체로 세상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감탄하고 칭찬할 만하다. 그것들 가운데서 우리는 창조자의 지혜와 권능과 인자하심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관리와 우리의 일상사에 대한 신의의 계획을 비난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행사를 생각해 보도록" 요청 받고 있다(전 7:13). 25.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데서도 보느니라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의 역사를 경외와 찬탄으로 바라보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아도 압도당할 만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사역은 위대한 것임을 묘사하는 것으로도 이해 가능하다(Hartley). 그것은 우리의 눈 앞에 명백하며,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바"이며 외눈만을 가진 자라도 그 일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멀리서도 누구든지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어느 길이든 바라보라. 우리는 하나님이 지혜와 권세가 지어내신 산물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 일이 행해지고 또 행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멀리 떨어져서도 하늘과 그 모든 광채를 바라보고 전능자의 작품임을 알 수 있고 땅과 그 모든 소산물을 보아서 전능자의 솜씨임을 알 수 있다. 먼데서도 보느니라 - 우리가 바로 곁에서 가까이서 그들을 바라 볼 때에는 어떻겠는가? 자연의 가장 미세한 작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아라. 그것들이 진기하게 나타나지 않는가? 창조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의하여 "분명히 보여 이해가 된다"(롬 1:20). 어느 사람이든, 신적 계시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조차도 이 점은 알 수 있다. 26.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 "알 수 없고"는 서두에 감탄사 '보라'(* ,헨)가 있다(개역 성경은 번역을 생략함). '알다'의 '야다'(* )는 '동침하다'는 뜻도 가지는 단어로, 대상에 대한 체험적인 깊은 인식과 통찰에서 오는 지식을 뜻한다(호 6:3 강해, '야다의 개념' 참조). 물론 인간은 하나님을 이렇게 알 수는 없다. 그의 지혜와 행사는 인간의 이해력 너머에 있는 것이다. '크시니'로 압축된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설명은 바로 이런 '초월성'을 잘 나타낸다.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 기간을 알고 있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 기간은 영겁이기 때문이다. "그의 년 수"는 절대로 "계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무궁하신 까닭이다. 그의 년 수는 없다. 그는 시작도 없고 끝도, 기간도 없는 "존재"이시며, 그는 이전에도 존재하셨고 앞으로도 늘 존재하실 것이며, 항상 동일하게 계셔서 위대하신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분이시다. 27.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 직역하면 '그가 물방울들을 끌어 올리신다'이다. 이는 물이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물이 증발하여 비가 되어 내리는 과정이 고대 문서답지 않게 정확한 과학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증발, 응결, 강수 등의 물의 3단계 순환 과정은 A.D. 16,17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온전히 이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 "안개"는 히브리어 '에드'(* )는 구약 성경 중 본절과 창 2:6에만 나오며, 전통적으로 개역 성경에서처럼 '안개'(mist)로 번역된다(Hartley). 어떤 주석 가들은 이를 아카드어 '에두' 혹은 수메르어 '이드'와 관련시켜 '지하 세계의 물'을 지칭한다고 보기도 하지만(Albright, Pope), 확실한 단서가 없는 견해이다. 28.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 위에 있는 구름은 아래에 있는 땅 위에 물기를 떨어뜨려 내린다. 구름은 하계에 대한 샘이며, 습기의 근원과 보고로서, 습기가 순환하기 위해 드나드는 큰 방축이다. 이것은 모든 좋은 선물이 위로부터 즉 빛의 아버지이시며 비의 아버지이신 분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우리가 그 분께 기도 드리며 그를 쳐다보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 "사람 위에"(* , 알레 아담)는 원문상 '아담'(* )뒤에 오는 히브리어 '랍'(* )은 기본적으로 '풍성한'이란 뜻이며 이를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는가에 따라 여러 견해로 갈린다. (1)'아담'을 수식하여 '많은 사람들'이란 뜻을 구성한다고 보는 견해. (2)'아담'이 '땅'을 뜻하는 '아다마'(* )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보는 견해(Dahood). (3)'랍'이 '소나기'를 뜻하는 '레비빔'(* )의 변형이라고 보는 견해(G.H.B.Wright). (4)'랍'이 '풍부하게'라는 뜻의 부사로서 '이레야푸'(* , 개역 성경의 '쏟아지느니라'에 해당함)를 수식한다고 보는 견해. 그런데 '아담'은 그 단어 자체에 총칭적이고 집단적인 의미의 '인류'를 내포한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 견해들 중 (3)과 (4)의 것이 비교적 타당하다. 29. 구름의 폐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구름의 폐임과 - "구름의 폐임"은 직역하면 '구름이 넓게 펴져 있음'이다. 그리고 장막의 울리는 소리는 천둥 소리를 뜻한다. 여기서 '장막'(* , 수카토)은 컴컴한 구름을 뜻한다 (Pope). 즉, 이 구절에서는 신속한 구름의 발생과 집결 또는 천둥소리로 펼쳐짐 등 자연의 현상을 통해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 천둥 소리를 '장막의 소리'로 묘사한 것은 그 소리를 하나님의 장막 속에 거하시면서 발하시는 '호통 소리'로 대비시키기 위함인 듯하다(Delitzsch). 30.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 번개 빛이 보좌 주위 사방에 번쩍거리며 빛을 발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사면'은 온 천지 사방을 가리키는 것이며, 굳이 '하나님의 주위'로 번역할 필요는 없다. 이는 순식간에 번개 빛을 사용하셔서 온 하늘을 밝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Rawlinson).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 본문은 (1)하나님께서 파도로 바다의 심연까지도 가리우신다(시 18:15-50), (2)(하늘은 번쩍거림으로 밝아지는 반면) 바다의 심연은 더욱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리워진다, (3)바다의 뿌리, 바다의 심연까지도 그분은 빛으로 덮으신다 등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그중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 것 같다(Delitzsch, Stuhlmann). 양광은 위에서 발사 되어서 "바다의 맨 밑바닥까지도 덮을" 지경에 이르르고, 거기서 수증기의 새로운 공급을 토하여 내어, 구름에 대한 보충을 하게 해 준다.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잊지 않고 찬양해야 한다.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 '만민'(* , 야밈)은 '암'(* , 백성, 국가)의 복수형으로 백성들에 대한 총칭이거나, 국가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징벌'의 '야딘'(* )은 '다스리다', '심판하다', '호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딘'(* )의 파생형이다. 즉, 엘리후는 비와 구름으로 인해 작물이 유실되거나 홍수의 피해, 천둥 번개로 인한 재해 등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님의 징벌로 보는 것이다. 죄악은 구름에 비유되기도 하는데(사 44:22), 그것은 죄가 우리와 하나님의 은혜 사이에 끼어서 하나님 얼굴에서 비취는 빛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름이 태양을 일시적으로는 어둡게 하고 폭우를 쏟아 내리지만(Post nubila Phoebus-즉 비온 뒤에 태양이 빛난다), 그가 구름을 지치게 한 뒤에 "그는 그의 빛을 그 위에 펼치신다"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 - 위에서 언급한 내용의 반대 현상으로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 땅을 기름지게 하여 수확을 풍성케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자유 자재로 자연을 다스리시는 능력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그는 구름을 이용하여" 자기가 노여워하시는 "백성을 심판하신다." 땅 위의 소산물을 뿌리 채 뽑고 홍수를 야기시키는 폭풍우나, 호우와 과다한 강우도 구름에서 생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보통 그는 구름으로부터 양식을 풍부히 주신다. 구름은 "양떼로 입힌 초장과, 곡식으로 덮힌 골짜기"에 기름을 떨어뜨린다(시 65:11-13). 32. 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 '싸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사'(* )는 '덮다', '감추다', '숨기다'를 뜻한다. 이 말은 번개 빛으로 손 전체를 채우듯 손에 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혹자는 이를 '들어올리다', '휘두르다'라는 뜻을 가진 '니사'(* )의 오독(誤讀)이라고 보기도 하며(Dhorme, Fohrer), '구름과 구름이 마주침으로써 일어나는 번개의 번쩍거림-번개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날뛰는 것을 뜻하는-을 묘사하는' 말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Pope). 어쨌든 본절에서 하나님은 심판자와 통치자로서 폭풍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전사로 묘사되고 있다(Habel).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개역개정) 두 손에 빛을 움켜 잡으셨다가 과녁을 향하여 번쩍 내쏘실 때,(공동번역) 두 손으로 번개를 쥐시고서, 목표물을 치게 하십니다.(표준새번역) 33. 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 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 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 문자적으로는 '그의 경고하는 외침이 그 자신에 대한 선포가 되게 한다'이다(Lange). 즉, 그 천둥 소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증거가 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하나님의 영광를 표현하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법의 공의로우심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다(Habel).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 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 - 가축들도 그 폭풍우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내포되어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이는 물론 엘리후의 주장이다. 그러나 본절의 의도는 그만큼 하나님의 행사는 위대하며 모든 만물에 그 뜻이 분명히 나타나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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