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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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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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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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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2/26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말]
1.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3.내 말이 내 마음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4.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나는 네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9.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10.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11.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14.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15.사람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16.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17.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19.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21.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라
23.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
24.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그런즉 그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26.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28.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31.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
33.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 엘리후가 자신의 연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욥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또한 잠시 욥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던 방식(32장)
을 버리고 욥을 향해 직접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엘리후가 욥(고난받는 자)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서두를 시작한 것은 친밀감을 나타내는 태도로 이해된다.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 직역하면 '나의 혀가 입 속에서 말하는구나'이다. 이 표현은 '혀'가 주체가 되어 마치 입 밖으로 말을 쏟아내듯 하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즉, 엘리후가 욥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정리한 후 반론을 펼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를 강조하는 말인 것이다.
3.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 직역하면 '(내 말은) 마음의 정직함에서 나오고'이다. 이는 욥이 세 친구들의 말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 사실(6:25 등)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Delitzsch).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 그는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대로 말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으며 달리 말하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하나님에 관한 일을 강론하는 자들은 그 개념이나 표현에 있어서는 모든 모호한 점이나 혼란을 조심스레 피해야 하며, 가능한 한 분명하고 간결하게 말해야만 한다.
4.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 본절에서부터 7절까지를 통해 엘리후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욥을 비교하고 있다. 즉, 여기서 그는 자신 역시 욥과 조금도 다름없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인간적인 권위로는 욥에게 어떤 권고나 교훈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곧 반어적으로 자신의 입에서 나올 말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에 감동된 것이기에 능히 욥을 가르칠 수 있다는 뜻으로서 자신의 변론에 신적(神的)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전능자의 기운(* , 니쉬마트 솨다이) - 직역하면 '전능하신 자(하나님의 또다른 이름)의 숨결, 호흡'으로서 앞 구절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반복한 평행 구절이다. 인간의 생명이란 다름아닌 인간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의 숨결이 주어져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함으로써 한편으로 욥과 동일한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 '전능자의 기운'으로 영감된 자신의 말을 꼭 주의해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5. 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 앞에 '할 수 있거든'이 조건으로 달린 것은 적어도 엘리후는 욥이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본절의 표현 '일어서서',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등은 모두 법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즉, 자신의 말에 이의가 있거든(나의 말에 대항해서) 반론을 펼쳐보라는 당당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혹자는 이러한 태도를 엘리후의 교만으로 보기도 한다(Schlottmann).
6.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 원문상에는 '나'가 강조된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헨아니'(* - )는 직역하면 '보라, 나도'이고, 이 말로 시작한 구절이 끝에서도 '감 아니'(* - , 나 또한)로 종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반이니'의 히브리어 '케피크'(* )에 대해서는 '용기', '병'을 뜻하는 '파크'(* )와 연결시켜 '작은 단지와 같이'로 번역하는 학자들도 있다(Blommerde). 그러나 이와는 달리 '입'을 의미하는 단어 '페'(* )로 부터 어근을 삼아 '조화' 내지는 '방법'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무난하다(Gordis). 개역 성경도 이러한 번역을 따르고 있다.
7. 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 우리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 왕 바로와 그 전국에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애굽 군대와 말과 병거을 홍해 물로 덮어 멸하신 것 같은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방을 복종하게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선포하는 일들을 통하여 그분 앞에 복종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게 되는가을 교훈하여 교만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들을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 '권세'의 '아케피'(* )는 '누르다', '촉구하다'를 뜻하는 '아카프'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잠 16:26에서는 '박해하다', '내몰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개역 성경엔 '독촉하다'로 번역됨). 한편, '누르다'(* , 이크바드)는 원래 '무겁다', '슬픈', '모진', '명예로운'의 뜻을 가진 '카베드'(* )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내가 눌러도 너는 무겁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로 인간으로서 자신의 말은 아무런 힘도, 권위도 가지지 못하 것이라는 뜻이다.
8. 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나는 네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 내 귀가 당신의 말을 어찌 한 마디인들 놓쳤겠소. 당신이 하는 말을 나는 다 들었소 (공동번역)."뭇사람이 보는 앞에 죄짓는 자들은 뭇사람들의 면전에서 견책을 당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하는 말을 어떤 말이든지 듣게 되면 의당 그 말을 공개적으로 반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듣는 가운데에서 그릇 발언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를 책망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고발하는 자와 대결할 내 증인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까닭이다.
9.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 욥이 온전하며 의로운 자였고 그 친구들이 주장한 것 같은 그런 자가 아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욥은 자신이 그런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괴롭히시고 확대하시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여서는 안 된다. 과격하고도 경솔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해받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보다 더 조심해야 마땅하였던 것이다.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 "허물이 없으며"(* , 하프 아니) 개역 성경은 '나는'(* , 아니)을 생략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앞의 '깨끗하며'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병행구이다. 한편 '하프'(* )는 전체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이는 욥이 결코 이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비난받을 것이 없는 도덕적 순결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도덕적 완전을 주장하였던 것을 이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욥은 비록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신실하게 견지해 왔노라고 자부하고는 있었지만(23:11,12;27:4,5) 죄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의 입장은 그토록 큰 징벌을 당할 정도로 심각한 죄를 결코 범하지 않았다는 것일 따름이었다.
10.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 욥은 흡사 하나님께서 시비를 걸 기회를 노리는 사람 모양으로 그의 잘못을 찾는데 혈안이 되있는 혹독한 분이라고 표현하였다. '칠 틈'의 '테누오트'(* )는 '거절하다', '낙담시키다'는 뜻의 '누'(*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이간', '적의', '기회'등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이 단어는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엿보는(삿 14:4) '기회'를 의미한다(Duhm, Driver & Gray). 따라서 이 구절은 욥이 한 말을 간접 인용한 것으로(16:12,13 등), 하나님이 자신의 허물을 노리고 그것으로 인해 공격할 기회를 엿보시는 것으로 이해한 표현이다. 이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 바로 후반부에 나타나는 '대적으로 여기사'(NIV, he considers me his enemy)이다. 즉, 욥은 자신의 환난이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나 된 것처럼 닥쳐왔다고 불평했던 것이다.
11.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 "착고"(* , 사드)는 죄인들의 발을 묶어 놓기 위한 족쇄를 말한다. 나무로 된 것도 있으나 보통은 발목 주위를 묶는 쇠고랑을 뜻한다.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느니라." 이는 그런 때를 일부러 찾아내시는 것을 말한다. 욥은 이런 뜻으로 말한 바가 있다(14:16, 17). "주께서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다"라고 분명히 말했다(13:24; 19:11). "그는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나이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듯이 나는 또한 그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다"라고도 말했다(13:27). 또 그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길을 살피신다"고 말했다(13:27).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눈여겨보시고 계산하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감시를 표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실제적인 개입 때문이라고 욥이 느끼고 말한 것을, 엘리후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의와 위엄에 겸손하지 못한 행동으로 권세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12. 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 "네가 의롭지 못하니"는 지금까지 욥의 말을 인용한 엘리후가 이제 그러한 욥의 주장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판별이 아니라, 검사의 논고처럼 무게 있고 공식적인 하나님의 선고를 연상시킨다. 우리들 약하고 우매하며 죄 많은 피조물들이 무한하신 지혜와 권능과 자비를 가지신 하나님과 쟁변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짓이다. 토기장이와 다투려는 진흙에게 화있을 진저!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 이는 인간과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비교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성격을 분명한 명제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70인역(LXX)은 이 부분을 '영원하신 분은 유한한 인간을 초월하신다'로 번역했다(Pope). 이 위대하심에 비추어 볼 때 욥의 말은 그릇되었고 불의하다는 것이다. 13절부터는 이명제에 근거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엘리후의 변론이 이어진다.
13.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 '행하시는 것'으로 번역된 이 말은 직역하면 '(누구의) 말들'이다. 다후드(Dahood) 같은 학자는 맛소라 사본으로부터 모음을 변화시켜 '그(사람)에게 말하는 자의 말'로 읽는다. 그런가 하면 포르(Fohrer)는 맛소라 독본을 수정하여 '나의 말들'로 읽는다. 결국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논쟁에 경박스럽게 끼여들어 대답을 주고 받을 분이 아니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이 욥과 논쟁하려고 끼여들어 일일이질타하려고 시도하시지도 않고 욥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시시 콜콜 직접 답변하지 않으시고 작은 일들은 사람을 통해서 교훈하심을 인식시키고 있다.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 하나님은 우리보다 무한히 높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 쟁변한다고 하는 건 무례한 일 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그의 크신 권세를 가지고 우리에게 반박하신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설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보다도 더 지혜로우시며 강하시다. 그러기에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하나님과 우리가 쟁변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뿐 아니라 그는 또 우리보다 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가지고 계시는 초월적인 영광이요, 뛰어나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은 인간보다 위대하시며 그러므로 그를 흠잡는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며, 이치에 벗어난 짓이다.
14.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 직역하면 '사람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이다. 이말은 원문상 앞 부분에 있는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되'를 받는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계속되는 계시를 듣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한편 어떤 주석가는 부정어 '로'(* )대신 '만약'을 뜻하는 '루'(* )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면서, 이를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가정법 문장으로 읽고 있다(Gordis).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 한번... 다시 말씀하시되 - 문자적으로는 '한 번 두 번(계속) 말씀하신다'이다. 이는 다음 15절의 내용과 연결되어 방황하는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막는 모든 방해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셔서라도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Hartley).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거리나 반목에도 불구하시고 그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즐겨하시는데, 그것이 곧 그의 은총의 표시이다. 그가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꺼워 하신다는 것은 그의 은혜로운 의도에 대한 증거이다. 또 무엇이 우리의 의무이며 어떤 것이 우리에게 이해득실이 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시고, 그가 우리에게서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우리는 그에게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기를 달갑게 여기시고,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위험을 경고해 주시기를 좋아하시고 우리에게 길을 나타내 보이시고자, 우리를 그 길 안에서 인도하시기를 바라심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그는 한 번뿐 아니라 두 번까지도 그리고 계속해서 행하신다. 한 번 경고를 발해도 무시되면, 또 다른 경고를 내리신다. 이는 어느 누구라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교훈에 교훈을 더 해야 하고 말씀을 더 해야 한다." 이것은 죄인들이 용서받지 않은 채 남겨 두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 엘리후는 14절에서 암시한 하나님의 의사 전달 방식 중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 그 것은 곧 꿈이나 꿈 같은 이상을 통한 계시이다. 고대에는 종종 꿈이 신(神)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특히 왕이나 고위 관료들이나 제사장 등의 꿈은 더욱 그러했다.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 인접한 이방 나라들에 비해 이스라엘에서는 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
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방편으로서 꿈을 사용하신 적이 있음은 분명하다(창 20:3-7;31:11,24;41:1-7;왕상 3:5;단 2:9,28;4:5-18). 하나님은 환상과 꿈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을 선지자들에게 알리셨고(민 12:6), 그와 같이 아비멜렉과(창 20:3), 라반과(창 31:24), 요셉(마 1:20)에게 예고하였으며, 역시 바로왕과 느브가네살 임금에게 나중 일어날 일을 알게 하신 것도 이런 방법이시었다.
16.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사람의 귀를 여시고 -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복리에 교훈에 대하여 매우 못된 원수가 된다.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즉 인간은 그것을 주의하지 않거나 상관하지 않고, 분간해 내거나 이해하지 않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지 못하고 계시된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그에게 어리석은 짓 같이 여겨지기 때문에, 자기 귀를 막고, 자기 자신의 빛을 가로막아 스스로에게 그림자가 지게 하며, 자기에게 거슬리는 하나님의 권고는 거부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결코 그러지 않으며, 지혜 그 자체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다.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 '인치듯'의 '야흐톰'(* )은 '봉인을 찍다', '봉하다'등을 뜻하는 '하탐'(* )의 파생형이다. 이 단어는 중요한 서류나 문건의 신빙성을 확증하는 의미로 사용된다(왕상 21:8;단 6:17,18).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이 틀림없도록 하셨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교훈하시나니'는 '징계하다', '징책하다'의 '야사르'(* )의 파생형으로 보는 견해와 '넘겨주다', '제공하다' 혹은 '묶다'의 뜻을 가진 '마사르'(* )의 파생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후자를 취하면 '족쇄'로 봉인한다는 뜻이 되고(MT), 전자를 취하면 '경고하다', '두렵게 하다'가 되어 '하나님께서 두려운 경고로 봉인하셨다'는 뜻이 된다. 결국 양자는 모두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를 담은 교훈이나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17.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  사람을 죄악으로부터 특히 자만의 죄에서 멀리하시기 위하여 훈계하신다. 사람이 자기의 사악한 목적으로부터 물러나도록 하며, 자기 마음의 성질이나 자기 인생의 진로와 그 취향이나 기질을 변하게 하든지, 아니면 그가 빠질 위험이 다분한 죄를 예방하게 하고자 하심이다. 또 그는 인간이 자기의 일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인간의 일 즉 세상과 육신을 위해 하는 일을 중단하게 하는 동시에 그가 하나님의 일에 착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 고난에 대한 세 친구들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다른 엘리후의 새롭고 독특한 고난의 이해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고난에 교훈과 훈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다분히 죄에 대한 형벌로만 고난을 이해했던 세 친구들과는 달리 엘리후는 때로 고난이 사람의 교만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18.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 죄인들이 악한 꾀를 좇고 자기들의 자만에 탐익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영혼은 함정과 칼을 향해 달려가며, 이 세상에서의 멸망과 앞으로 닥쳐올 세상에서의 멸망을 향해 걸음을 빨리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양심의 훈계를 통하여 그들이 범죄하지 않도록 막으실 때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들이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그들의 영혼이 무저갱으로 "떨어지지 않게 제지하시며," 하나님의 복수의 "칼날"에 멸망할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건지신다. 그리하여 불의가 그들의 파멸이 되지 않는다. 죄에서 사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그들을 지옥으로부터 건지는 것이며, "한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다"(약 5:20).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 본절 전반절의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과 병행을 이루는, 보다 강력한 의미를 가지는 표현이다. 이것이 사람의 교만을 막고, 자기 꾀에 빠지지 않게 하시는(17절) 이유인 것이다. '칼'(* , 솰라흐)은 '무기', '병기'를 의미한다. 이 무기가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투르 시나이(Tur-Sinai)에 의하면 그 무기는 죽음의 신에 의해 사용되는 '죽음의 칼'을 뜻한다.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무덤에서부터 나와 스올에로 이끌어가는 긴 지하 터널이나 협곡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Dhorme, Gordis). 그 외에 많은 근동의 자료들을 참고해서 종합해 볼 때, 이 단어는 분명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이러한 패망 곧 죽음은 잠 16:18의 교훈과도 상통한다.
19.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  병자는 전신에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19절). "그는 병상의 고통으로 징계를 받는다." 그것은 그를 병상에 유폐시켜 버릴 만큼 고통을 주는 것이며, 또 그 고통은 너무나 심해서 그는 편안함을 얻을 수 없고, 평안히 자신을 쉬게 해 주던 침대 위에서조차 안락을 얻을 수 없다. 솜털로 된 부드러운 침대가 고통과 병으로 인하여 가시로 된 침대로 변하게 될 것이며, 그 침상 위에서 편안히 잠들던 그가 이제는 날이 샐 때까지 그 침상 위에서 이리저리 딩굴게 되었다.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 직역하면 '뼈들이 서로 다투는 것에 의한 징계'이다. '쑤심'의 '리브'(* )는 '논쟁하다', '다투다'는 뜻을 가진다. 우리는 여기서 히브리어의 표현이 얼마나 섬세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뼈의 다툼'을 델리취(Delitzsch)는 '그의 뼈가 늘 산란한 상태'로 이해한다. 이 표현은 전반부의 '병상의 고통'을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신음하는 것은 살이 아리는 고통이 아니라 뼈를 깎는 듯한 아픔 때문이다. 그 고통은 내부에 뿌리박은 고통이다. 사지 중 한 팔, 한 다리의 뼈만 아픈 게 아니라 사지 백체의 "무수한 뼈들이" 마디마디 그렇게 시달림을 당한다. 비록 외부의 상처는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육체 안의 원인 때문에 이와 같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가진 육체가 얼마나 연약한 것이며, 얼마나 애민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20. 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사람의 모든 즐거움을 앗아가 버린다. 심지어 생명의 유지를 위한 음식과 식욕을 돋구기 위한 특별한 음식조차도 먹을 의욕을 잃게 만든다. 유복할 때 호화롭게 사는 자들도 병으로 인하여 고량진미를 냄새조차 맡기 싫어하게 되는 날에는, 그 징벌 가운데서 자기 죄를 비탄과 치욕으로 깨닫게 된다.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 '싫어하며'(* , 지하마투)는 '사악하다', '가
증스럽다'를 뜻하는 '자함'(* )의 피엘형 파생어이다. 아랍어에서 이 단어는 '고약한 냄새가 나다'를 의미하며, 아람어로는 '되찌르다', '억누르다'는 뜻이 된다(Delitzsch). 여기에 착안하여 이 구절을 '그의 영혼이 양식과 삶의 모든 방도들을 되찌르고 있다'로 번역하기도 한다(Pinsker). 즉, 건강한 몸은 식욕을 일으키지만 육체의 질병은 식물에 대해 오히려 메스꺼움을 야기시켜 병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 육체의 질병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겉에 있는 살이 바짝 말라붙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로 인해 뼈들이 앙상하게 드러나 보인다. 결국 이 표현은 병자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할 정도로 중한 병의 증상을 나타내는 것이다(Anderson). 이러한 마지막 결과가 22절에서 이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 병으로, 아마도 며칠간의 병고난으로, 통통하고 의젓하던 "그의 육체가" 감히 볼 수 없을 정도로 "파리해졌다." 그의 살이 놀랍게도 야위고 빠졌다. 그리고 그의 살 속에 깊숙이 묻혀 있던 "뼈들이 이제는 드러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갈비뼈를 셀 수 있게 되었으며, 그의 모든 뼈들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22.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라 
그의 혼이 구덩이에 - 이는 후반부의 '죽음'(개역 성경은 '멸하는 자'로 번역)과 함께 죽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음부의 권세를 표현하는 말이다(Habel, 30:23;33:18). 멸하는 자(* , 메미팀)는 MT에 의존한 독본으로 '죽음을 전하는 사신'(천사)을 듯한다(Gordis, Smick). 이에 대해서는 삼하 24:16;왕하 19:35;대상 21:15;시 78:49 등을 참조하라. 한편 포우프(Pope)는 18절과의 병행구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리고 '메미팀'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전접어 '멤'의 용법을 가정하여 모음 변화를 시킴으로써 이를 '죽음의 물결'로 번역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이 분법적으로 명료할 경우에는 구태여 모음 변화를 시키거나 기타 본문 수정을 가하는 일을 삼가야 마땅하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끝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라 - 임종의 모든 징후가 그 위에 나타나며, 그의 주변에 있는 것과 그 자신의 것을 살펴 보건대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죽음의 괴로움이, 여기서는 멸하는 자라고 일컫는데, 이제 막 그를 엄습하려 하고 있다. 아마 이런 말들은 모두가 죽음이 멀리 있을 때는 자기에게 절실하지 못한 일로 경시하던 자들이 그것들을 눈 앞에서 응시하게 되자 파멸시키는 자로서의 죽음을 느끼게 되는, 바로 그런 두려운 불안을 암시할 것이다.
23.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 그를 교훈시키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 묘사되고 있다. 즉 그가 당한 고난을 성스러이 사용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준비물을 마련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런 방법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이 듣고 이해하며, 그의 말씀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병 중에 그를 시중하며 깨닫게 하고 충고하며 위로해 줄 "사자가 있다면" 또 하나님이 뜻을 풀이하고 그 의미를 해설해 줄 "해석자"가 있다면, 또 그 채찍의 소리와 그 해석을 알아 듣고 해석해 줄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된 자이다.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 병 중에 있는 자에게는 명의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지도자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하고, 환자는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그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데에 뛰어난 기술을 소유한 분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래야만 된다. 그가 만약 그럴 경우에는 "일 천인 중 한 사람"에 해당하며, 그에 따라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할 것이다.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 진정한 회개와 정직은 복음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의무인 동시에 자기 유익도 된다는 깨달음을 병자가 정말로 얻었다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게 되면, 은혜를 주시려고 대기하시다가 참다운 회개가 보이기 시작하는 즉시 자비를 보이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사," 그를 자기 은총과 생각 속으로 영원히 끌어들이신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만나시는 대로 자기도 그에게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서 만나 주신다.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 영혼의 값은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뿌리는 보혈 이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구속할 수가 없으며, 죄로 말미암아 받은 상처는 너무나 심한 것이어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로밖에는 대속할 것이 없다. "그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시는 근거가 언급된다. 영원한 사망의 '구덩이'(22절)에서 구원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사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대속물을 보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속물'(* , 코페르)에 대해서는 '덮다', '화해하다', '대속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파르'(* )에서 파생되었으며, '구속하다'를 뜻하는 '파다'(* , 개역성경은 '건져서'로 번역함. 시 49:7 참조)와 연관된 속량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대속의 개념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 의식과 관련이 깊다(레 1:4;4:4;16:21).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범죄에 의한 처형이 있기 전에 그 몸값을 지불하여 자유의 몸이 되게 하는 수단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그를 놓아주라'(개역 성경은 '건지라'로 번역함)는 하나님의 명령이 '대속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의미를 이해하는 빛이 된다.
25. 그런즉 그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그 살이 어린아이보다 연하여져서 - '연한 살'에 대한 언급은 21절의 '파리해진 살'과의 비교속에서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연하여져서'의 '루타파쉬'(* )는 '도로 찾다', '신선해지다', '생기 발랄해 지다'의 뜻을 내포한다.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 본문에서도 그를 대속물이라고 한 점은 관심을 끈다. 그리고 나면 "그의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져서," 그가 앓았던 병이 흔적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는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다." 그는 소년 시절에 가졌던 아름다움과 강건하던 힘을 회복할 것이다. 질병이 물러갈 때는 너무나도 신기하게 자연 그 자체가 저절로 낫게 한다. 그런 현상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자하심은 감사하여 마땅하다. 병고가 일으키는 이와 같은 자비로운 섭리로써 하나님은 한 번 아니 두 번씩이나 인간의 아들 딸에게 말씀하시사(저희가 깨닫기만 한다면), 저들로 하여금 저희가 하나님께 의존해야 할 것과, 그가 저희를 인자하심으로 측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 병자는 참회하는 자가 됨으로써, 탄원하는 사람이 되고 기도하기를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총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자가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것이며," 용서를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것이다. "고통을 당하는 자나, 아픈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를 드릴지니라."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정을 얻기 위한 제의적 행위이다(시 24:6;27:7-9).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의 얼굴은 완악한 범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나타내기도 하지만(렘 44:11), 대개의 경우 경배자들에게 빛과 생명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민 6:24-26).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의 존전에 나아가 그의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창 33:10;시 17:15).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 그는 마음의 복된 평정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줄 깨닫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그의 의로움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는 속죄, 곧 그 위로를 얻을 것이다(롬 5:11). 그 위에다 평강과 희락과 기쁨을 말씀하실 것이다.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 그가 누구이든 이와 같이 스스로 겸비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으로 복받을 것이다. "그의 생명은 빛을 볼 것이다." 즉 온갖 선을 보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유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 우리가 죄의 본성과 그 폐해를 알고 있는가? 그것은 올바른 것의 반대이다. 그것은 아주 부당하고도 비이성적인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께 대한 피조물의 반역이며, 영에 대한 육의 찬탈과 지배이고 선악간에 대한 영원한 법칙과 영원한 이성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것이다"(행 13:10). 그러므로 죄의 길은 "굽은 길"이라 일컬어지고 있다(시 125:5).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 우리는 자신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임을 시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우리 죄를 고백해야만 한다(요일 1:9). 우리는 범죄 사실을 "내가 범죄하였나이다"하고 고백해야 하며, 혐의 사실을 부인하거나, 우리 자신의 의로움을 옹호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죄의 잘못을 고백해야 하며, 불의와 죄의 부정직도("나는 옳은 것을 굽게 하였나이다")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죄악의 어리석음을 고백해야 한다.-"내가 너무나 어리석었고 무지하였음은 죄가 내게 무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이상 더 죄악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우리가 이와 같은 참회의 고백을 왜 해야 마땅한지 그 충분한 이유가 없겠는가?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인간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다음에 행할 일이 무엇인지, 즉 그들이 계속하여 죄를 저지를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반성하여 돌이킬 것인지를 살피기 위해서 "인간들을 바라보신다." 그는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하고 말하는 자가 있을까 하여 귀를 기울여 듣고 계신다(렘 8:6). 그는 동정의 눈길로 죄인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서 이 말을 듣고 싶어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저들의 파멸을 기꺼워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내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 본절 역시 고대 문학에서 보통 사용되는 병행구이다. 전반부의 '영혼이 구덩이(18,22,24절)에 내려가지 않게'를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노래한 구절이다. '빛'(* , 오르)은 하나님의 얼굴로부터 발산되는 생명의 빛이다(30절). 또한 이 노래의 의미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부르는 찬송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고난 당한 자가 이 노래를 부른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짐을 뜻하는 것이다(Hartley). 이것으로써 그의 모든 법적, 제의적 신분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된 것이다.
29.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 '이 모든 일'은 위에서 제시된 '꿈과 이상을 통한 교훈'과 '육체의 질병을 통한 징계', 그리고 그것으로써 인생들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모든 적극적 사역을 말한다. 여기서는 특히 '고난의 이유'에 초점이 맞춰진 언급이다. '재삼 행하심'을 직역하면 '두번 세 번 계속 반복하심'이다. 이렇게 끈질기에 되풀이하시는 이유가 30절에서 나타나고 있다.
30.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 여기서 엘리후는 욥에게 다시 한번 고난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상기시키며,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와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겸허히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관심하는 것보다 더 우리에게 대하여 신경을 써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비참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멸시키고자 하건만, 그는 우리로 하여금 구출되게 하시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멸망시킬 방법에서 우리를 구하여 방법을 은혜 중에 고안해 내신다.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 질병과 은혜로운 말씀에 의한 이 방법은 죄에 빠진 자들을 회복시키며, 그 혼을 끌어 돌이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저들로 그 속에 누워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참회로 말미암아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진 모든 자에 대해서는 "생명의 빛으로 비취시도록 하신다." 다시 말해서 저들이 현재의 위로와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
31. 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 혹자는 본절에서부터 33절까지를 '욥의 대답을 요구하는 말'로 분류했으나(Hartley), 엘리후가 사실 욥의 반론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한 이해인 듯하다. 오히려 이는 자신의 변론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형식적인 답변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엘리후가 욥에게 '조용히 침묵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에 순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Lange). 한편 욥으로서도 이미 자신의 최후의 진술을 끝내고 사람의 대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기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 - 이 말은 내가 너의 유익을 위하여 말하겠다 그러니 나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기 바란다로 생각된다. NIV는 이 구절을 '(내가) 너에게 깨닫게 해주겠다'(I want you to be cleared)로 번역하였다. 즉, 만약 욥이 엘리후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어떠한 반박을 해도 기꺼이 대답을 해줌으로써 욥으로 하여금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 지혜를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자들과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자들은 양쪽이 다 귀를 기울이고 침묵을 지켜야 하며, 듣는 데에는 민첩하고 말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욥은 지혜롭고 선하였다. 지혜롭고 선한 자들이라도 더 지혜롭고 더 선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늘 배우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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