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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기롱하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나의 보기에 나의 양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니라 |
| 2. | 그들은 장년의 기력이 쇠한 자니 그 손의 힘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랴 |
| 3. |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
| 4. |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 |
| 5. | 무리는 도적을 외침 같이 그들에게 소리지름으로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쫓겨나서 |
| 6. | 침침한 골짜기와 구덩이와 바위 구멍에서 살며 |
| 7. |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귀처럼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 모여 있느니라 |
| 8. |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비천한 자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니라 |
| 9. | 이제는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며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
| 10. | 그들은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고 내 얼굴에 침 뱉기를 주저하지 아니하나니 |
| 11. | 이는 하나님이 내 줄을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케 하시매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
| 12. | 그 낮은 무리가 내 우편에서 일어나 내 발을 밀뜨리고 나를 대적하여 멸망시킬 길을 쌓으며 |
| 13. | 도울 자 없는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구나 |
| 14. | 성을 크게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 오는것 같이 그들이 내게로 달려드니 |
| 15. | 놀람이 내게 임하는구나 그들이 내 영광을 바람 같이 모니 내 복록이 구름 같이 지나갔구나 |
| 16. | 이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날이 나를 잡음이라 |
| 17. |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몸에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
| 18. |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하여 옷이 추하여져서 옷깃처럼 내몸에 붙었구나 |
| 19. |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
| 20. |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
| 21. |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완력으로 나를 핍박하시오며 |
| 22. | 나를 바람 위에 들어 얹어 불려가게 하시며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 |
| 23. |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 가시리이다 |
| 24. |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 |
| 25. | 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
| 26. |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
| 27. |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
| 28. |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
| 30. |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 |
| 31. | 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었구나 |
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기롱하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나의 보기에 나의 양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니라 그러나 이제는(* ,웨아타) - 본절에 이어 9절과 16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이 서두는 욥의 이전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아주 적절하게 대조시키는 말이다. 독자는 이 짧은 한마디가 주는 반전(反轉)으로 인해 본장에서 전개될 욥의 진술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즉, 전장(前章)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속에서 최고의 형통함을 누렸던 날들을 회상하며 공의를 베풀었던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했던 욥은, 이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과거와 비교함으로써 '극적인 대조'를 연출시키고 있는 것이다(Anderson).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기롱하는구나 - '기롱하다'의 '사하크'(* )는 '차하크'(* )와 함께 사용되는 단어로 '비웃다' '조롱하다'는 뜻이다. '젊은 자'는 문자적으로는 '나이 어린 자들'(KJV, NIV, RSV, younger than I)이나, 29:8에서 욥을 경외하여 '숨기도 했던'사실과 더욱이 욥이 그들의 아버지들을 마치 양을 지키는 개들 만큼도 취급받지 못할, 천박하고 무용(無用)한 자들로 평가함을 볼 때 그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비열한 태도가 그를 모욕했다. 그가 형통하던 날에 방백들과 귀족들은 그에게 존경을 표했고 복종했던 것이 그의 영예를 더하게 해 주었는데, 그가 이제 역경에 처하자 모든 면에서 그보다 못할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 가운데 가장 천하고 경멸스런 자들이 그를 짓밟고, 하인들이 발길질하는 일은 그의 수치를 더해 주었다. 그들의 아비들은 나의 보기에 - 그들은 너무 비루해서 그의 종들 속에 끼기에도 적합하지 않았고, 너무 불성실해서 고용되기에 합당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거짓되었으므로 가장 천한 직책을 맡기기에도 합당치 않았다. 나의 양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니라 - 그들은 천한 가문의 태생이었다. 그들의 부친들은 매우 비루한 자들이었으므로, 욥은 그들에게 양떼를 지키고, 양떼를 지키는 개와 함께 양치기의 시중을 드는 일과 같은 그의 집의 가장 천한 일을 맡기기도 꺼려할 정도였다. 2. 그들은 장년의 기력이 쇠한 자니 그 손의 힘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랴 그들은 장년의 기력이 쇠한 자니 - 그들과 그 가족들은 이 땅의 무익한 짐이었고, 아무 소용이 없는 자들이었다. 욥은 아무리 신중하고 끈기 있게 노력해도 그들을 유익한 자들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일하기에 합당치 않았고, 매우 게을렀으며, 그들의 일을 매우 귀찮게 여겼다. 그 손의 힘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랴 - "그 손의 힘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랴?" 그들은 세월을 통해서 얻어진 지혜와 연륜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질을 연마하는 데 게을리 함으로써 노년이 되어서도 전혀 다른 사람을 교훈할 만한 학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노년이 되어서도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못하고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가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갖가지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도 충고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는 정말 오랜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3.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 '파리하매'의 '갈무드'(* )는 '굳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의 뜻을 가진 단어로(15:34), 굶주림으로 인하여 안색이 굳어지고 생기가 없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NIV, Haggard;RSV, hunger). 그들은 곧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하려 하지 않았고, 또 구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궁핍하게 되었다면, 그들의 이웃들은 그들에게 알맞는 자선품들을 구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나태함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므로, 그 누구도 그들을 구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 '마른 흙'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치야'(* )는 '메마름' , '가뭄'을 뜻하는 말로(시 105:41)먹을 만한 채소를 찾을 수 없는 황폐한 상태를 의미한다. '씹으며'의 '아라크'(* )는 '갉아먹다'가 원 의미이다. 따라서 이구절은 극도의 기아 상태에서 흙덩이를 입에 집어 넣고 씹는 비참한 모습과 함께 2절에서처럼 '기력이 쇠하게 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4.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도 꺾으며 - 그들은 은신처와 생계를 위해 거친 들로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실상 비참하게 추방당해야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나물도 꺾어" 기쁘게 먹었다. 식량이 부족한 것을 그들은 오히려 마땅히 여겼던 것이다. "짠나물"(* ,말루아흐)은 '소금'의 뜻을 가진 '멜라흐'(* )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식물은 염분이 섞인 늪지에서 자라난 당아욱(mallow)의 일종이다. 그 어린 잎은 부드럽고 약간의 영양가도 있어먹을수는 있다고한다 (Lange). 대싸리 부리로 식물을 삼느니라 - '대싸리 부리'는 빗자루로 사용되는 초목의 뿌리로, 이 또한 보통 식용(蘿噴)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식물을 삼다`의 '라합'(* )은 '음식으로 사용되다', '먹다'의 뜻으로 여기에서 '떡', '음식'(레헴, 8:3)이 파생되었다. 먹을 수는 있으나 일반적인 식량을 사용하지 않는 식물들로서(Driver, Gray)끼니를 삼았다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 어떠하였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5. 무리는 도적을 외침 같이 그들에게 소리지름으로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쫓겨나서 무리는 도적을 외침 같이 그들에게 소리지름으로 - '외침'은 히브리어 '루아'(* ,소리치다, 고함지르다)의 번역인데, 보통 적군의 침략을 급히 알리는 경보(수 6:5;렘 4:19) 또는 백성들의 환호등의 뜻에는 명사형이 사용된다. 본절에서는 마치 도둑을 몰아내거나 잡기 위해 지르는 것과 같은 급박하고 강한 소리로 위협을 주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은 매우 악평 높은 사악한 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근심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성가신 존재로서 그 지방의 유명한 건달, 찌꺼기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이처럼 속이고 도적질하며, 숨어다니고 재앙을 끼치는 자들이었으므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그들을 그 지방에서 제거하는 것이었고, 무리는 도적을 외침같이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러한 자들은 이 땅에서 제하여 버리라. 이 땅은 그들이 살기에 합당치 않다." 그들은 게으르고 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적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쫓겨나서 - '사람 가운데서'(* , 게우)는 여자적(如子的)으로 '...한가운데'를 뜻하며 이 단어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고이'(* )라는 말은 '백성', '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생활 공동체, 즉 인간 사회'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Lange). 결국 그들은 도둑이 받는 수모와 함께 마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될 정도로 비참한 무리들이었다. 그들 자신이 식량을 벌어들이지 않는 자들은 사실상 다른 사람이 입에서 그 식량을 훔치는 것이기 때이다. 게으른 동료는 사회에 폐를 끼치는 자이다. 그러므로 거친들과 광야가 그들에게 적합한 곳이었다. 6. 침침한 골짜기와 구덩이와 바위 구멍에서 살며 침침한 골짜기 - '침침한'의 '아르츠'(* )는 '두렵다', '압박하다', '공포에 사로잡히다'의 뜻을 가진 '아라츠'(*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그들이 살았던 곳의 분위기를 전달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 쫓겨나 공포와 소외감을 느끼며 험난한 골짜기에 거주하였다. 구덩이와 바위 구멍에서 살며 - 그곳에서 그들은 흙을 파낸 구덩이나 바위 틈 사이의 암혈 속에서 마치 들짐승과 같이 살았었다. 구덩이와 바위 구멍은 그들의 은신 처였으며 거주지였다. 그들은 전혀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억지로 쫓겨 살았던 것이다(Driver, Gray, Hartley). 7.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귀처럼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 모여 있느니라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귀처럼 부르짖으며 - '부르짖다'의 '나하크'(* )는 '울부짖다'의 뜻을 갖고 있다. 특히 여기서 그들의 울부짖음은 굶주림에 의한 심한 위기를 표현하는 것이다(Dhorme, Pope). 그들을 대적하여 백성들이 외치고 그들 자신의 양심이 부르짖는 자들의 운명이 어떠한가 보라. 그들은 계속 두려움과 당황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다. 가시나무 아래 모여 있느니라 - "그들은"(브루톤, Broughton의 견해대로) "나무 가운데서 신음하며, 가시나무 사이에서 고통을 당한다." 즉 그들의 은신처가 되어 주고 보호해 줄 것을 기대했던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찌르고 자신도 찔리우고 긁힘을 당한다. 악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이르는가를 보라. 8.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비천한 자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니라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 '미련한 자'는 '몰지각하다', '어리석다'의 뜻을 가진 '나발'(* )의 파생 명사로서 지혜 문학에서 이 단어는 비천하고 버릇없는 태도와 함께 도덕적으로 무감각하며 심지어 하나님께 대해 무관심할 정도로 판단력이 마비된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신 32:6, 21;시 74:18). 비천한 자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니라 - '비천한 자'는 '이름'(* , 쉠)과 '없다'(* , 벧리)가 합성된 단어로서 직역하면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름'은 곧 가문의 명예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사 1:1;렘 1:1;호 1:1). 또한 이름은 소유권, 보호권을 나타내기도 하며(삼하 12:28;사 4:1),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름이 없다는 것은 곧 지극히 천한 부류의 사람임을 뜻했다(Hartley). 한편 "고토"(* , 하아레츠) - 는 문자적으로 '그 땅'을 뜻하나, 여기서는 '사람들의 거주지', 즉 '고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9. 이제는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며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이제는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며 - 욥은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가를 적나라하게 설명했으나, 이제부터는 자신이 이들에게 당하는 멸시와 수모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노래'의 히브리어 '네기나'(* )본래 '(기)악'을 뜻하며 함축적으로는 '(현)악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파생적 의미로서 '시', '풍자 시' 혹은 '노래'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조롱하는 노래'를 가리킨다(애 3:14). 그렇게 고귀햇던 욥이 하루 아침에 사람들의 입에 조롱거리로 올려지게 됨으로써 물리적 고통위에 극한 정신적 쓰라림이 더해지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잿더미 위에 앉게 된 사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조롱하는 노래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 는 '말하다', '발언하다'의 '말랄'(* )의 명사형이다. 여기서 우리는 욥의 재난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는 사실과 그것이 결코 욥을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비방하고 비웃는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존경받던 욥은 이제 '사회적으로 공공연한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Habel). 10. 그들은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고 내 얼굴에 침 뱉기를 주저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고 - '미워하여'의 히브리어 '타아브'(* )는 '증오하다', '가증스럽게 행하다'의 뜻으로서 감정적인 면보다는 제의적이고 윤리적인 이유로 '혐오하다', '배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신 7:26;23:7). 즉, 욥에 대한 사람들의 미움은 욥이 받은 재난을 불경건과 불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으며, 이 때문에 욥을 본 사람들은 가증스럽고 부정한 물건을 피하듯 욥을 멀리했다. 뿐만 아니라 전에는 '그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하지 않았던 자들'(29:24)이 이제는 바로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저주했으니(사 50:6), 욥으로서는 가능한 최악의 사회적 냉대와 멸시를 받았던 셈이다(Hartley). 내 얼굴에 침 뱉기를 주저하지 아니하나니 - 그들은 마치 흉칙한 광경이라도 보는 듯이 그를 피했으며, 그가 마치 못난 괴물이거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인 것처럼 그를 증오하며 달아났다. 11. 이는 하나님이 내 줄을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케 하시매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이는 하나님이 내 줄을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케 하시매 - 욥은 사람들의 이런 멸시와 핍박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전에 자신과 함께하셔서 축복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자신을 멸시자들의 손에 넘겨주었기 때문이다(Lange). 즉, 하나님의 적대 행위 때문이다(Driver, Gray). 한편 '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테르'(* )는 보통 '활시위', '칡끈'등을 가리킨다. '활'이 생명력 혹은 생식력을 상징하는 것(29:20)과 관련시켜 볼 때, '줄이 늘어진다'는 표현은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이 임박했다'는 뜻과 함께(4:21), 자신의 핍박자들에 대해 '무력하게 되었다'는 뜻도 갖고 있다(Hartley).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 '벗었다'는 '솰라흐'(* )는 '보내다', '보내 버리다'의 뜻으로, 본절에서는 '해방시키다', '자유케 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의무나 억압에서 벗어나는 행동으로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욥의 박해자들로 하여금 존귀한 자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악한 용기를 갖게 하셨다는 뜻이다(Rawlinson). 12. 그 낮은 무리가 내 우편에서 일어나 내 발을 밀뜨리고 나를 대적하여 멸망시킬 길을 쌓으며 그 낮은 무리가 내 우편에서 일어나 내 발을 밀뜨리고 - 그의 대적들이 오른편에서 일어나는 것은 마치 재판정에서의 원고(原告)들을 연상케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욥을 대항하는 자들이며 법정에서 원고는 보통 피고의 오른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Lange). '발을 밀어 뜨리는' 행위는 문자적으로 '발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게 하다'로서 설 자리가 없도록 몰아넣는 악행을 뜻한다. 그들은 욥을 사냥하려고 이리저리로 추적하는 자들처럼 행동했던 것이다(Driver, Gray). 나를 대적하여 멸망시킬 길을 쌓으며 - 이 표현은 마치 성을 공격하는 대규모 군대의 모습과도 같다. 즉, 그들은 거대한 토성을 쌓는 것처럼 욥을 멸망시킬 길을 만들고 잇는 것이다(Habel). 그들의 태도는 소극적으로 욥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에서(9, 10절) 이제는 욥을 파멸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그에 대해 매우 악의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조롱할 뿐 아니라, 그를 희생시키려고 했다. 즉 그를 모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심각한 재앙을 그에게 끼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이 화를 당한 원인을 내게 뒤집어 씌우는구나." 즉 "그들은 그들이 쫓겨난 일에 대해 나를 비난하고 있다." 범죄자들이 그들에게 벌을 내린 재판관이나 법을 미워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13. 도울 자 없는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구나 도울 자 없는 그들이 내 길을 헐고 - '도울 자'의 '아자르'(* )는 '돕다', '지원하다'는 뜻으로서 보통 '군사적인 지원'을 가리킨다(겔 308;32:21).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명칭이 결합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뜻하는 단어를 만들기도 하는데('아세렐'-하나님이 도와주셨다. '아사랴'-여호와께서 도와주셨다). 이 또한 하나님의 도움이 종종 군사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내 재앙을 재촉하는구나 - 그들은 그의 재앙을 보고 개가를 올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재앙을 더욱 재촉했다. 그리하여 그의 비참함을 더하게 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함으로써, 그를 더욱 번민케 만들었다. 이 일에 있어서 그들을 "돕는 자가 없었다." 아무도 그들로 그것을 시작하게 하거나 그것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후원해 주거나 옹호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끼리 합하여 그 일을 행하였다. 그들은 다른 일에 있어서는 어리석었으나, 재앙을 행하는 데는 매우 현명하여, 그것을 궁리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았다. 14. 성을 크게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 오는것 같이 그들이 내게로 달려드니 성을 크게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 오는것 같이 - 욥은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의 행동을 '성을 공략하기 위한 적군의 공격'으로 묘사하고 있다(Lange). 적들의 집요하고 엄청난 공격에 (12, 13절) 마침내 성문이 파괴되었으며, 그 무너진 틈 사이로 적군이 물밀듯이 성내로 몰려들어와 노략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가 그들의 사악함을 규제하던 그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즉 "그들은 나의 권위를 거들떠 보지도 않을뿐더러,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처럼 계속해서 모욕과 능욕을 당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라도 그 양심을 잡고 계시며, 그들을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고 이처럼 그릇된 대우를 만난다면 시므이의 저주를 받았을 때의 다윗처럼 그 속에서 속박의 줄을 끊으신 하나님의 손을 인정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내게로 달려드니 - '달려드니'는 '갈랄'(* )의 변화형으로 '옮긴다', '뛰어 내려가다', '구르다'는 뜻을 가진다. 어떤힘을 가진 물체가 강하게 들이 닥치는 모습을 표현하는데, 특히 본절에서는 거친 파도가 밀물처럼 덮쳐오듯이 그 젊은 무리들이 욥에게 행악하기 위해 몰려 들어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Rawlinson, M. Henry). 이제 이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세상적인 명예, 특히 대중의 칭송이 불확실한 것이라는 사실과, 높은 권세를 지닌 자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치욕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처럼 쉽게 잃어 버리는 것에 대해 야망을 품거나,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얼마나 덧없는 일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것에 대해 자만할 수 없는가! 오늘 "호산나" 하고 외치는 자들이 내일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예가 있는데, 무리가 그것에 대해 안심할지라도 그것은 이처럼 변하기 쉽고, 잃기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15. 놀람이 내게 임하는구나 그들이 내 영광을 바람 같이 모니 내 복록이 구름 같이 지나갔구나 놀람이 내게 임하는구나 그들이 내 영광을 바람 같이 모니 - 그들의 공격으로 인해 욥 자신이 받은 심리적 충격과 자신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말하고 있다. 놀람(* , 발라하)은 '파멸', '파괴', '공포'를 뜻하는 단어로 18:14에서는 음부의 지배자를 '공포의 왕'(개역성경, '무서움의 왕')으로 표현할 정도로 강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욥은 그 공격자들의 배후에 영원한 사망의 세력이 있음을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Hartley). 그가 앞을 내다 보았을 때 그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에게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다. 만일 그가 그 공포를 떨쳐버리려고 애쓰면 그것은 더욱 맹렬하게 그에게 덤벼들었다. 만일 그가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려하면 그것은 바람처럼 재빠르고 맹렬하게 그의 영혼을 추격해 왔다.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여 치는" 것을 원망했었다(6:4). 그리고 지금도 그가 어디를 돌아보든지 그것은 그를 엄습했다. 그가 어느 길로 도망하든 그것은 그를 추격했다. 내 복록이 구름 같이 지나갔구나 - 그가 옛날을 뒤돌아 볼 때, 그가 이전에 즐기던 모든 선한 것들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그것에 대한 씁쓸한 추억뿐임을 발견하였다. "내 복록이" 그리고 행복이 "구름같이" 갑작스럽고 재빨리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나갔구나." 16. 이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날이 나를 잡음이라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으니 - 문자적으로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니'라는 말이다(KJV, RSV). 이것은 너무 큰 괴로움과 원망으로 인해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해 하는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곧 그의 영혼이 이제 그에게서 아주 떠나가 버린 느낌을 말한다(Rswlinson). 환난날이 나를 잡음이라 - 그가 내면을 살펴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이 상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녹아 완전히 침체되어 그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그는 물처럼 연약했을 뿐만 아니라, 바닥에 엎질러진 물처럼 자신의 무능력과 말할 수 없는 연약함을 고백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시편 20편 14절과 비교해 보라. "내 마음은 초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다." 17.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몸에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 직역하면 '밤에 내 뼈를 찌르니'(NIV, RSV)이다. 3:2에서처럼 여기서도 밤이 의인화되었다(Lange). 상처는 밤이 되면 그 통증이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욥에게 있어서도 밤은 더욱 큰 고통이었다. 그 아픔은 마치 '밤'자체가 살아서 자신의 뼈를 찔러 고통을 주는 것과도 같았다. 그가 잠을 자 원기를 회복해야 할 때, 곧 밤이 되었을 때 "그의 뼈를 쑤시는" 것은 그 "뼈 속에 있는 칼"이었다. 그의 근육은 심한 경련을 일으켜, 그의 "몸에 아픔이 쉬지 아니하였다." 그 고통 때문에 그는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 구나 - 밤이면 더욱 심해지는 상처의 쓰라림으로 인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음을 가리킨다. 졸음에 겨워 잠깐 잠이 들어도 격통과 경련으로 인해 다시 깨어버리는 상황은 상상만해도 고통스럽다. 더욱이 육체적 고통뿐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일어나는 갈등과 격정의 고통 또한 너무 커 욥은 잠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18.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하여 옷이 추하여져서 옷깃처럼 내몸에 붙었구나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하여 옷이 추하여져서 - 직역하면 '그의 큰 능력으로 하나님이 내게 옷입히시는 것처럼 되었다'(NIV),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움켜잡았다'(70인역, KJV, RSV)이다. '추하여져서'의 '하파스'(* )는 '찾다', '탐색하다', '변장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의역하면, 욥을 향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벌'(RSV, violence)로 인해 온몸에 악창이 나서 그 고름이 옷에 말라붙어 그 자체가 옷처럼 되었다는 뜻이다(M. Henry). 온몸의 피부가 죄어드는 듯한 느낌은 마치 하나님께서 욥을 움켜잡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옷깃처럼 내몸에 붙었구나 - 그의 의복 빛깔마저도 계속 흐르는 종기로 해서 퇴색했고, 그가 입고 다니던 부드러운 옷은 이제 매우 뻣뻣하게 되어서, 그의 모든 옷들이 "옷깃처럼" 되었다. 깨끗한 옷감과 정성스런 시중이 없었기 때문에 욥이 얼마나 초라한 상태에 있었고, 또 그의 옷은 얼마나 더러운 누더기로 되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 '진흙'(* , 호메르)은 '발효하다', '끓다'의 '하마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본절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유한한 인간의 본질을(4:19;10:9;33:6)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는 노략자들에게 짓밟히는 '거리의 진흙'(사 10:6)을 뜻하는 것으로, 욥은 현재의 고난 속에서 자신이 쓸모없는 질그릇으로 파괴당하는(사 45:9; 렘 18:4)듯한 느낌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 그의 몸은 차라리 한 무더기의 티끌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그들의 옷을 자랑하지도 말고, 그 "정결함을 자랑하지 않도록 하자." 그들은 단지 어떤 병으로 인해 "그들의 옷이 추하여지고," 심지어는 그들이 "진흙 가운데 던져져," 그들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쾌한 존재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할 것이다."(사 3:24). 우리는 기껏해야 티끌과 재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몸은 비천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잊기 쉬우나 하나님께서 마침내 어떤 심한 병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느끼고 인정하게 만든다.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 "부르짓으오나"(* , 솨와)이는 '(도와달라고) 외치다'의 뜻으로, 주로 하나님을 향해 공의의 판결을 청 사는 의미로 사용되며 그에 대한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욥의 이 부르짖음도 '도움'이나 '구원'을 청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정의'와 '법'에 대한 공식적인 청원을 의미한다(Habel;19:7). 그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이 되시어 그와 싸우시는 것처럼 보인 사실이었다. "그를 진흙 가운데로 던지신 것은 하나님"이었다(10절). 그리고 그가 그를 던지셨을 때는 그를 짓밟으시는 것같이 보였다.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더욱 그의 마음을 상심케 했다.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 이 모습 또한 상반절과 같은 내용을 단지 다른 표현으로 묘사한 것이다. '섰사오나'의 '아마드'(* )는 '인내를 가지고 서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침묵과 무관심에 대한 본절의 이 탄식은 욥이 법적인 탄원을 했음에도 그것을 기각하심으로 욥에 대한 공의를 거절하신 하나님을 향한 욥의 거듭되는 향변들(9:16-19;13:19-24;19:6-9;23:3-9)을 요약하고 있는 표현이다. 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완력으로 나를 핍박하시오며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 '돌이켜'의 '하파크'(* )는 구약 성경에서는 첫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된 '대파국'을 가리키거나(사 13:19; 렘 20:16; 암 4:11) 둘째, 출애굽과 관련된 기적들에서 사용되었다(출 7:17; 시 66:6). 셋째, 레위기 13장(3, 4, 10절)에서의 문둥병 증세에 관한 묘사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이 단어는 예상할 수 없었던 뒤바뀜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당황과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표현한다. 본절에서 욥은 자신의 공의를 인정해주시던 하나님(29장)께서 이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게 가혹히 대하시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완력으로 나를 핍박하시오며 -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변화된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잔혹히'의 '아자카르(* )는 '잔인한', '흉포한'의 뜻으로, 보통 전쟁의 횡포(사 13:9)를 표현하는 '무자비'나 '사랑과 동정심이 전혀 없는 폭행'(잠 11:17; 렘 6:23)을 가리킨다. 여기서 욥은 자신에 대한 핍박이 사단의 역사를 방관하고 계심을 탄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핍박'의 '사탐'(* , 악행하다)과 '사탄'(* , 1:6;16:9)은 일종의 말의 유희(wordplay)이기 때문이다(Hartley). 22. 나를 바람 위에 들어 얹어 불려가게 하시며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 나를 바람 위에 들어 얹어 불려가게 - 욥은 계속해서 시적(緊芮)언어를 사용하면서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바람'은 하나님계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실 때에 타고 오시는 '바람날개'(시 18:10)를 연상케한다. 그런데 욥에게 그 바람은 구원이 아니라자신을 '불려가게하는 '('잡아채가는', '강탈하는', '죽이는':NIV, snatch;또는 '높이 달아 올려져 그 곳에서 떨어지게하는':KJV, RSV-liftest...up)부정적인 바람이다.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 - "소멸케"(* , 무그)는 '녹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강력(强力)으로 말미 암아 존재의 본질이 파괴되는 완전한 쇠망(衰亡)을 표현 한다(쮜 9:5; 좝 1:4). 욥은 그 자신을 전능자와는 상대가 되지 않으며, 승리 속에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바람의 날개 위에 얹혀저 자신의 교만의 높이 만큼 높이 솟아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추락을 두려워하며 안절부절하며 떨고 있었다.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 가시리이다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 19:25의 '내가 알기에는'이라는 표현과 대조된다. '앎'은 체험에서 비롯된 분명한 인식이다. 그런데 19:25에서는 신앙적 확신과 관련된 앎이지만, 본절에서는 절망과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환난을 곧 끝내 주시는 것 이외에는 지금 그 어느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바람 위에 들어 얹혀진다면 나는 내 목이 곧 부러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마치 하나님이 그를 다루시는 모든 일 속에서만 어떤 계획을 지니고 계신 듯이 말하고 있다.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 - '정한'의 '야아드'(* )는 '임명하다', '약혼하다', '모이다', '만나다'의 뜻으로 긍정적 의미(출 25:22; 민 10:3)이든 부정적 의미-하나님을 대항한 회집(민 14:35), 또는 소환(9:19; 렘 50:44)-이든 간에 '모여 만나도록 지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모든 생물에게 필연적으로 닥치는 '죽음'을 뜻한다. 신자들에게 죽음은 새롭고 완전한 생(生)의 시작이지만 여기서 욥은 자신의 죽음을 다분히 냉소적인 의미로써 완곡히 표현한 것이다(Havel). 한편 끌어 가시리이다(* , 슈브)는 - '되돌아오다'의 뜻으로 어떤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다른 장소로의 이동을 의미하며 그 '귀환'은 인간의 근원인 먼지(10:9)에로의 귀환(죽음)이기에 매우 비꼬는 어조를 띠고 있다. 24.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이 다른 이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마치 하나의 본성처럼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욥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 - 욥은 여기서 자기의 죽을 수밖에 없는 사실을 내다 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영히 버리실까 영영히 있으실까 전전긍긍하며 부르짖으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또 다른 환난으로 나타난 사실로 인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욥의 확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Hartley). 25. 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 '고생'은 '엄격하다', '모질다'의 뜻을 가진 '카솨'(* )에서 파생한 말로서, 어원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멍에로 인해받는 황소의 고통'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런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은 분명 다른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것이며, 욥은 그 간절한 기대에 응답했었다.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 여기에서 욥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 그 자신이 긍휼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고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오히려 그 자신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즉 그가 언제나 불우한 자들을 동정했고,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껏 도왔다는 것을 그의 양심이 증거했으므로, 그는 결국 하나님과 그의 친구들이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는 것을 기대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강한 회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즉, 욥은 자신의 공의와 성실에 대한 대가 또는 보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했으나(29:18-20). 도리어 환난이 임했다. 한편, 복(福)과 화(禍)는 일차적으로 생(生)의 의로움의 여부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복 주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과 화(禍)의 대표격인 죽음을 각각 은유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Michel).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 전반부와 대구를 이루는 표현으로 '광명'은 생명이나 신적(神的)호혜를 뜻하며(29:3), '흑암'(* , 오펠)은 음부(underworld)의 음침한 어두움(10:22)을 의미한다. 이는 욥이 현재 '죽음과 같은 절망의 어두움'으로 표현할 만큼 충격적인 상황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사 59:9; 렘 14:19). 한편 본문은 불평과 아울러 자조(自嘲)를 내포하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탄식이라 하겠다. 27.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 문자적으로는 '내 내장이 끓어'(KJV, My bowels boiled)라 는 표현이다. '내장'은 '사람이 깊은 속 마음으로 겪는 번민을 느끼는 감정이 위치하는 자리'를 나타내며(Habel), 여기서 욥은 렘 4:19과 같은 비통함을 토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욥의 내면 세계가 혼란과 고통에 빠져 영혼의 안식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G. Rawlinson). 28.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 - '검어진 살'의 '코데르'(* )는 '어둡다', '슬퍼하다'의 '카타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슬픔과 고난에 의해 얼굴이 검게 변한다는 동방의 관념(시 119:83; 애 4:8)도 이 어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이에 대해 티끌과 재로 온통 뒤덮인 채 슬퍼하는 더러운 상태를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Lange). 어쨌든 양(兩) 주장은 '슬픔'과 관련된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한편 '검어진 것'이 욥의 피부를 언급하는지 아니면 욥이 입은 의복의 색깔을 뜻하는지에 대해, 후자의 주장은 '햇볕에 쬐지 않고'가 '위로가 없이'로 수정되어야 가능하며, 28, 29절과 30, 31절 간의 병행구적 의미를 살펴볼 때 '코데르'는 욥의 피부 색깔을 지적한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Hartley).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 욥은 자신의 입장을 성문의 회중들 앞에서 설명하며(29:7). 도움을 구하고 있다. 욥의 '부르짖음'은 법에 대한 호소이며, 그가 일어선 것은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으나 오히려 철저히 외면당했다(Anderson). 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나는 이리의 형제요 - 다른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고 냉혹했던 자들은 그들을 도와 준 사람에 대하여 기본 적으로 갖추어야 할 감사와 보답을 잊고 살아가며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들은 철저히 보복한다. 욥은 환난 가운데 주위의 사람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하지만 자비를 베푸는 일에는 타조가 자신의 알을 낳고 매정하게 모른체 하는 것 처럼 무관심하고 냉혹함을 발견하게 된다. 타조의 벗이로구나 - 그의 탄식은 아무런 주의도 끌지 못한 일종의 짐승 소리였다(미 1:8). 또한 이는 욥의 일상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이리의 울음 소리는 마치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서글프게 들리며, 타조 울음 역시 마치 목이 쉰듯 애절한 느낌을 자아낸다(Hartley). 30.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 피는 굳었고 종기는 곪아 점차 딱지가 생겼으므로 그의 가죽은 검게 보였다. 그의 의복 빛깔마저도 계속 흐르는 종기로 해서 퇴색했고, 그가 입고 다니던 부드러운 옷은 이제 매우 뻣뻣하게 되어서, 그의 모든 옷들이 "옷깃처럼" 되었다. 내 뼈는 열기로하여 탔구나 - 마치 뼈가 타는 듯한 아픔은 상피병이 악화되면서 나타나는 증상과 관계가 있다. 보통 상피병은 허리 부분과 엉덩이 부분에 심한 통증이 온다고 한다(Rawlinson). '뼈'의 '아츠미'(* )는 '강하다', '능력이 있다', '위대하다'의 뜻을 가진 '아촘'(* )에서 파생된 단어로 KJV, RSV, NASB는 '뼈'(bones)라고 번역했으며, NIV는 '몸'(body)으로 번역했다. 이 번역을 취할 경우에는 '열기'를 갈증이나 고통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Anderson). 한편 돔(Dhorme)은 '아츠미'가 단수형일 때는 사람의 뼈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시 102:5). 31. 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었구나 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 '애곡성'의 '에벧'(* )은 '슬퍼하다', '애통해 하다'의 뜻을 가진 '아발'의 파생어이다. 본절에서는 지난날 기쁨과 흥을 돋구었던 수금이 이제는 제소리를 내지 못하고 도리어 슬름의 소리로 들리는 형편으로 바뀌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혹자는 이 표현을, 욥이 대적들의 고소와 비난에 맞서 공회에서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는 주역에서 밀려나 이제는 그 성읍의 곡하는 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게 된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Habel).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었구나 - '애통성'의 '보킴'(* )은 '눈물흘리다', '울다', '통곡하다'의 뜻을 가진 '바카'(* )의 파생어이다. 의미는 상반절의 '에벧'과 유사하다. 이렇듯 같은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여 반복하는 것은 히브리시의 특징이며 주로 대구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 뜻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본절에서 욥은 이러한 악기들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비탄에 슬픔을 더욱 가중시켜 강조하고 있으며, 애통함이 고조된 이 애가(哀歌)는 역설적으로 그로 하여금 31장의 결백에 대한 선서를 맹세하도록 충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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