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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 3. |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
| 4. |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
| 5. |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
| 6. |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
| 7. | 나의 대적은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
| 8. |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
| 9. |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
| 10. |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 |
| 11. |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
| 12. |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
| 13. |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
| 14. | 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에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
| 15. |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
| 16. | 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지라도 |
| 17. |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
| 18. | 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 같을 것이며 |
| 19. |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 |
| 20. | 두려움이 물 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
| 21. |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 내리라 |
| 22. |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
| 23. |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
1. 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 욥이 또 비사를 들어 - 직역하면 '욥이 비사를 다시 들어올려 계속하여 말했다'이다. 여기서 '비사'로 번역된 '마솰'(* )은 본래 격언이나 직유를 의미한다. 혹 지혜의 간결한 단편을 가리키는 '잠언'으로(잠 26:7) 이해하기도 하며, 또는 '속담', '비유'등으로 일컫기도 한다(사 14:4). 또한 발람의 신탁(민 23:7, 18)이나 시인의 읊조림(민 21:17) 등에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마솰'은 문학적인 쟝르에서 매우 다양하게 언급되었는데, 여기서는 격언적인 대화나 시적인 잠언이라고 할 수 있다. 2.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 욥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피하시고(즉, 욥에게 이 논쟁을 판단해 주어 그를 옹호하는 일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책망하게 되는 원인인 그의 환란을 계속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그 자신의 결백함을 밝히기도 전에 그가 기대한 기회를 없애 버렸다고 말하여, 하나님에 대해 가혹하고도 온당치 못하게 말하고 있다.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 욥은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당하게 다루 신다는 것을 항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변호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판단의 최고 가치로 부여하고 있다. 욥의 맹세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의 마지막 호소 수단으로 이해된다. 앞에서 욥은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의 법정에서 판단받기 원했으며(13:22) 하나님의 계속되는 징벌을 탄식하며(16:9-17) 하나님 뵙기를 갈망하는 심경을 피력한 바도 있다(23:3). 즉, 욥의 주목표는 공평한 판결이 시행되는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욥의 생각에 하나님은 그러한 소송의 기회를 주지 않으셨고, 따라서 욥은 마지막 단계로서 맹세하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절의 맹세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재촉하려는 욥의 마지막 안간힘이라 할 수 있다 (Habel). 3.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 원문은 오히려 '나의 호흡(* ,네솨마), 즉 생명이 아직도 내 속에 있는 한'이란 의미이다. 맹세자의 서언적 상투어구(2절)와 맹세 내용(4절 이하) 사이에 위치한 본 삽입구는 (1) 맹세 내용을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엄수하겠다는 결의이자, (2) 자신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한, 자기의 맹세 내용 역시 진리임을 강조하기 위한 구절이다.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 법정에서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Habel). 욥은 자신의 결백함을 이어지는 구절에서(5, 6절) 선언하고 또한 29-31장에서 더욱 소상히 언급하고 있거니와, 이러한 자기 주장이 결코 거짓에 의한 것이 아님을 힘주어 강변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도 욥은 자기 입술에 궤사가 없고 또한 자신은 선악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6:29, 10).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 욥은 결코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려 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거짓된 방법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논쟁에서도 그가 생각한 그대로를 줄곧 말할 정도로 그는 거짓말하거나 그의 양심을 그르치는 일은 결코 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이론을 주장하거나 어떤 사실을 단언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실이라고 믿는대로 말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것이 그에게 불리하다 하더라도 그는 그 진리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들이 그를 사곡한 자라고 책망했을 때에도 그는 그 모든 심문자들이 요청한다면 맹세 위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5.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 그는 자신의 결백함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고, 또 그 자신이 그의 친구들이 표현한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결백함을 저버리려 하지 않았고, 또한 그 자신이 무죄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하려 하지도 않았다.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 욥은 언제나 정직한 자가 되려 했고, 그의 결백함을 굳게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사탄처럼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권했을 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2:9). 욥은 여기에서 그가 죽어가고 있으며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비록 이 세상에서 가졌던 것을 모두 읽었을지라도, 결코 그의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6.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차다크'(* )는 법정적 혹은 도덕적 의미에서 '의롭다', '정결하다'는 뜻이다. 결국 여기서 욥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하등의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 앞에서도 결백을 판결받을 자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23:11).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 '일평생'(* , 미야마이)이란 '나의 날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이다(Delitzsch,Lange). 그리고 '마음'(* , 레바브)은 인격체의 중심으로, 여기서는 '양심'이라는 뜻이다(수 14:7 ; 삼하 24:10). 그리고 '책망하다'(* ,하라프)는 '모독하다', '끌어내리다', '매도하다'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나의 양심이 내가 사는 날들 가운데 하루라도 나를 비난하거나 모독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즉, 여기서 욥은 그의 친구들이 비난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은 양심의 가책이나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7. 나의 대적은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나의 대적은 악인같이 되고 - 자신의 순전성을 단언한 욥은 이제 자기 대적에게 저주를 선포한다. 여기서 '대적'(* , 오예브)은 사단이 아니라 욥을 무조건 비난 했던 그의 친구들을 가리킨다. 욥은 자기를 악한 자로 비난한 친구들을 도리어 '사악한 자'(* , 라솨)라고 부르며 그들의 결말이 사악자의 그것처럼 되기를 원한다.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 어떤 사람이 악인이 되거나, 악인이 아닌 자가 악인처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합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합법적이지 못한 일들에 대하여 욥은 그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사곡한 자와 악인의 형편은 그 누구보다 가장 비참할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7절). "나의 대적은 악인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노라"(단 4:19) 하는 것과 같이 잘 알려진 표현이다. 욥은 어떤 악한 길에 빠지거나 그 속에서 즐거워하는 것과는 매우 멀었기 때문에, 만일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나쁜 적에게 가장 큰 재난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간구할 수 있도록 그에게 허용되어졌다면 그는 악인의 상황이 그 대적에게 내려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8.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 7절에 피력된 저주 섞인 소원은 본절로부터 - 10절에까지 묘사되는 악인의 처지에 관한 설명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사곡한 자'(* , 하네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경건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차'(* )는 특히 약탈이나 폭력에 의하여 얻어진 이익을 뜻한다. 그러나 '바차'가 피엘형으로 '끊어지다', '잘라 버리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혹 '불경건한 자가 끊어질 때'라고 번역하기도 한다(NIV, RSV).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 사곡한 자는 착각을 한다. 그는 "이익을 얻었으며," 소망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의 밝은 면이다. 그는 자신의 사곡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찬사와 박수 갈채를, 그리고 이 세상의 재물을 얻을 수 있었다. 예후는 그의 사곡함으로 해서 나라를 얻었고, 바리새인들은 많은 과부의 집을 얻었다. 이러한 이익 위에 그는 그러한 소망을 세워 놓았다. 그는 저 세상에서도 훌륭한 상태에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에서 그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제 나름대로 스스로를 축복한다. 하나님은 심판관으로서 심문하시고는 그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하시기 위해 영혼을 취하신다. 그러면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져 즉시 처리될 것이다. 무슨 소망이 있으랴 - 악한 사람들 특히 사곡한 자들의 비참한 상태를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올바른 자가 되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올바름에 대한 위로를 주는 증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이 되는 일이 모호한 가운데 있다면 우리가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득시키려 했다(4:6). "그렇지 않다." 욥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코 그런 썩은 터전 위에 집을 지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9.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 환난이 분명히 그에게 임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환난은 흔히 계속 번영하는 가운데 매우 안심하고 있는 자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가 세상과 그 속에 있는 모든 즐거움을 떠나야만 할 때 죽음은 올 것이며, 그것과 더불어 환난도 올 것이다. 그 큰 날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그리하여 두려움이 사곡한 자를 놀라게 할 것이다(사 33:14). 그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기도할 것이고,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할 것이다. 번영할 때 하나님을 무시하여 전혀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에 냉담하고 부주의했던 자들은 환난이 올 때 그에게 호소하는 진지한 태도로서 울부짖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겠는가? 이 생의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은 마음에 죄악을 품고(시 66:18), 우상을 섬기는 자들(겔 14:4), 그리고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는(잠 28:9) 자의 기도도 듣지 아니하시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 환난이 사악한 자에게 임하는 때에 그가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여도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며 그의 기도는 거절된다. 왜냐하면 사악한 자의 삶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교제와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하며, 오히려 절망적인 상태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오직 상한 심령을 가진 자, 경건한 자만이 하나님께 구원의 소망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시 86:1-4). 욥은 여기서 비록 자신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사악자의 종말처럼 파멸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서 결국에는 구원받으리라는 희망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13:16 ; 23:7). 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 이것은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발언을 상기시킨다(22:26). 엘리바스는 욥에게 전능자를 기뻐하라고 충고하였지만 욥은 자신이 전능자를 기뻐하지 않는 사악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욥은 전능자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치도 않는 교만한 자와는 달리 자신은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확신으로 굳게 서 있음을 말함으로써 자기의 고통이 악한 자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 - "그가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 그렇지 않다. 형통함 가운데에서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 불러 아룀이 없을 것이고, 그를 무시할 것이다. 사곡한 자들이 믿음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언제나 그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기쁨을 발견할수록 우리는 더욱 굳게 그것을 지지할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얻지 못한 자들은 쉽게 관능적인 즐거움에 유혹되어 그들의 믿음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생애의 시련에 의해 쉽게 파멸당하며 그들의 믿음을 저버릴 것이며, 항상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재앙을 비웃으리라." 그들의 성가신 간청은 모두 내쫓길 것이며, 그들의 탄원은 거절당할 것이다. 공명정대한 심판은 치우침이 있을 수가 없으며, 또한 그 판결은 결코 취소될 수 없다. 11.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 - 원문에는 '하나님의 손에 대하여'(* ,베야드엘)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손은 욥의 생애에 하나님의 고난으로써 개입하신 사실을 암시한다(10:7 ; 12:9 ; 13:21 ; 19:21).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 욥은 그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려 했는가를 알아 보자. "하나님의 하시는 일로써" 즉 그의 힘과 도움으로 가르치려 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의무를 지닌 자들은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귀를 여시며(사 50:4), 그들의 입을 열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가르치시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능력을 갖춘 자들이다(사 8:11).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 욥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는가. "전능자의 뜻" 즉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그와 함께 감추어진 것이며, 너희가 성급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너희에게 가르치겠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그의 섭리의 통상적인 방법도 가르치겠다." 욥은 이러한 것들을 "숨기지 아니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숨기시지 않은 것을 우리는 우리가 가르쳐야 할 자들에게 감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한 일들이 계시되었다." 12.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 욥은 친구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과 행사를 매우 박식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단편적이기 때문에 욥의 가르침으로 더욱 온전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 직역하면 '왜 너희가 헛된 것으로 헛되게 만들었느냐?'이다. 즉, 욥은 친구들의 지식을 인정하지만 그 지식의 적용이 자기에게 있어서 잘못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욥 자신의 불의나 사악함에 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어떠한 근거도 없이 단지 인과 응보식의 지식만을 가지고 헛되이 생각하고 헛되게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 이 세상에서 그들이 얻을 분깃은 재물과 출세가 될 수도 있으나, 하나님에게서 얻을 분깃은 멸망과 비참함이다. 그들은 어떤 세상적인 능력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자들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능자는 그들을 다루실 수 있다.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 '악인'(* , 라솨)은 불경건한 자(7절)를 뜻하고, '강포자'(* ,아리츠)는 난폭한 압제자를 가리킨다. 또한 '분깃'(* . 헬레크)은 단순히 나누어 갖는 몫을 뜻하며, '산업'(* , 나할라)은 상속되는 유산이나 소유물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은 소발이 제기한 것을(20:29) 그대로 인용하면서 사악한 자의 운명에 대한 일반적 진리를 욥이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 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에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 자손의 번성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져 왔으며(시 127:3-5), 욥 또한 악인의 번영함을 그 후손들의 번성으로써 언급한 바 있다(21:8, 11). 그리고 욥의 자녀 역시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그 가정의 기쁨이요 교제의 즐거움이었다(1:2, 4). 그런데 이제 욥은 악인의 후손이 아무리 많이 번성할지라도 그것은 한낱 재앙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칼'(* , 헤레브)은 '파멸하다', '몰락하다'의 '하라브'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전쟁이나 복수 등으로 인한 살상을 의미한다(19:29).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칼에 의해 죽을 것이다. 그것은 싸움터의 칼일지도 모르며(그들은 창 27:40 에서와도 같이 칼을 믿고 생활하며, 그러한 자들은 언젠가는 칼에 의해 보통 죽임을 당한다), 그들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칼이거나, 그들의 재산을 노리는 살인자의 칼일지도 모른다. 그 후에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 그들은 자손대에서도 번영할 수 있으나 멸망이 그들을 따른다. 아마도 "그 자손이 번성하거나"(14절), "존귀케" 될는지도(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모른다. 즉 그들은 매우 수가 증가되고 그들의 영예와 재산도 불어날는지 모른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자녀로 만족하며"(시 17:14), 거기 난외에 있는대로 "그들의 자녀는 풍족하다."고 일컬어진다. 그들 가운데에서 그 부모들은 살기 원하며, 그들의 출세 가운데에서 존경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고, 더 많은 번영을 그들에게 물려줄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곧 그의 세 가지 쓰라린 심판인 "칼, 기근, 온역"의 화살이 더욱 잘 겨누어 질 수 있는 과녁을 남겨놓는 것이 된다(삼하 24:13). 어떤 자들은 기근에 의해 죽을 것이다(14절). 그는 그들을 위해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다고 생각할 것이나, 그들은 일상 생활의 필요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결코 편히 살아 갈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해질 것이다. 그들은 너무 궁핍하여 필요한 식량을 지니고 있지 못할 것이며, 너무 탐욕스럽고 또는 너무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얻든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15.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라." 즉 "사망"이라 일컬어지는(계 6:8) 염병에 걸릴 것이며, 그들이 죽자마자 정식절차를 밟지 않고 몰래 그리고 급히 서둘러 "나귀의 장례식으로써 묻을 것이다." '칼과 기근으로 죽지 않고 살아 남은(* , 사라드) 자들까지도 악한 질병(* , 마웨트)으로 죽어서 묻히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마웨트'는 '페스트'(RSV)나 '역병'(NIV, plague)아 아니라 말 그대로 비극적인 '죽음'(KJV, death)이라고 볼 수 있다(Expositor's Bible Commentary). 이것은 사악한 자의 후손이 결코 살아남지 못하고 반드시 '사망'(렘 15:2 ; 18:21)으로 심판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심판의 도구로 언급된 칼, 기근, 염병은 렘 14:12에도 나란히 타나난다.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다." 즉 그들은 그 죽은 자를 위해 애도 할 기회도 얻지 못할 것이다. 또는 이 악한 자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도 별 호감을 못 얻었으므로 죽었을 때도 애도함을 얻지 못하며 그 과부들끼리도 그들이 사라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사실도 볼 수도 있다.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지라도 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 이 두 절에서는 '은'과 '의복'이라는 모티브에 의한 명백한 대구가 타나난다. 이러한 대구에 의해 악인의 허무하고 비참한 결말과 의인의 궁극적 회복을 강조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티끌'과 '진흙'은 덧없고 연약한 모습을 타나내는 전형적인 표현이다(4:19 ; 10:9 ; 30:19). 우리는 그들이 많은 돈과 식기, 옷 그리고 가구를 지니고 있으리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가 은을 티끌같이 많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한다." 즉 그들은 흙더미처럼 풍족하게 의복을 쌓아둔다. 또는 그들이 짐스러울 정도로 많은 의복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들은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들이다(합 2:6). 세상적인 사람들의 관심과 일이 무엇인가 보라. 그것은 세상적인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다. 많이 지닌 자들은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며, 마침내 은은 녹 쓸고 옷은 좀 먹게 된다(약 5:2, 3). 그러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그것으로도 더 나아짐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가 곧 빼앗기거나 약탈당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죽음이 그를 약탈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고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누어" 가지도록 명하신다.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지라도 - 물건이 너무 많아 귀중한 것조차도 가볍게 여기는 악한 자들의 굉장한 소유를 의미한다(슥 9:3). 여기서, '예비하다'의 '쿤'(* )은 '높이 쌓아 올리다'란 뜻으로 창고에 저장함을 의미한다. 한편 이것을 '공급하다', '제공하다'란 뜻으로 취하기도 하며(잠 6:8), 개역 성경은 '준비하다'(잠 30:25)라는 번역을 따른다(KJV). 여하튼 본절은 사악한 자들이 탐욕과 약탈로 부당하게 부(富)를 축적하여 두었음을 암시한다. 17.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 의인들은 그것을 얻은 후 그들끼리 그것을 나눌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섭리가 그렇게 되도록 명하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한 재물을 선한 자들이 정직하게 얻게 될 것이다.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잠 13:12).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대로 사람들의 재물을 분배하시며, 흔히 그들의 의지를 거스려 행하신다. 악인이 미워하고 박해한 의인이 그의 모든 수고를 다스리게 될 것이며, 그로부터 강제로 빼앗긴 것들을 합당한 때에 되찾게 될 것이다. 애굽 사람들의 보물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노고하도록 하시는 것을 관찰하였다(전 2:26). 즉 "하나님이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 그들은 그것으로 좋은 일을 행할 것이다. 무죄자는 악인이 은을 모은 것처럼 그것을 쌓아두지 않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기 위해 그것을 "일곱 또는 여덟 분깃으로 나눌" 것인데 이것이 가장 안전하게 쌓아두는 것이다. 돈은 마치 비료와도 같아서 분산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하나님께서 선한 자들을 풍족하게 하실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이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것의 전말을 상세히 밝혀야 한다. 악한 자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취하여 그들 가족에게 저주를 임하게 한 그 재물을, 선한 자들이 선하게 이용함으로써 그들 가족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한다.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잠 28:8). 18. 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 같을 것이며 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 우리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위해 튼튼하고 당당한 집을 지었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은 마치 좀벌레가 파먹어 들어가는 낡은 기둥과 같아서 곧 흔들리게 될 것이다(18절). 그는 좀벌레처럼 그 속에서 매우 안심하고 있으며 어떤 위험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빨리 무너져 없어지는 "상직군의 초막"처럼 잠시밖에 지탱하지 못할 것이며, 그의 처소는 더 이상 그를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좀'에 해당하는 '아쉬'(* )는 맛소라 사본에서는 '좀'으로, 고대 역본들에게는 '거미줄'(RSV, a spider's web)로 되어 있고, 현대의 몇몇 주석가들은 '새의 둥지'로 번역하기도 한다. 여하튼 본절의 의미는 사악한 자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궁궐 같은 집을 세우지만 그 집은 기초가 튼튼하지 않고 멸망당하기 쉬우며 썩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상직군의 초막같을 것이며 - 사악한 자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아무리 견고성을 쌓는다고 해도, 마치 파수꾼(* , 나차르)이 세워 만든 가벼운 오두막처럼(사 1:8) 아주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악인의 파멸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갑작스럽고 예측 불가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Hartley). 19.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 오히려 '부자로 누우나 그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다'(Delitzsch, Lange, 70인역, 수리아역, NIV, RSV)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한편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에 해당하는 '야사프'(* )가 '모으다', '데려가다', '옮기다' 등의 뜻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다. 예를 들면 '모으지 못했다'(MT), '옮길 수가 없었다', '그가 묻히지 못했다'(또는 '그가 조상에게로 가지 못했다') 등의 해석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반절과 관련하여 '그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라는 의미가 가장 타당하다. 즉 사악한 자는 밤 사이 죽음으로 인하여 그전에 누렸던 온갖 부귀와 명성, 그리고 호화 찬란한 삶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부자로 누워" 잠을 자고 그의 풍족한 재물 가운데있어도 휴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부자는 그의 견고한 성에 누워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행복하고 편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즉, 그는 그의 재물을 즐길 만한 마음의 평정을 얻지 못할 것이며, 안정과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편안한 잠자리를 이루지 못한다.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 -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편안한 잠자리를 이루지 못한다. 그는 누우나 "그의 배부름으로 자지 못할 것이며," "노동자의 잠처럼 결코 달지도 못할 것이다"(전 5:12). 그는 누우나 새벽까지 이리저리 뒤척인다. 그리고 나서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 즉, 그는 그 자신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없어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근심은 두려움을 더욱 자극하여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침상에 누운 그를 살펴 볼 때, 우리는 그곳에서 그가 행복한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임종 때의 그의 모습을 우리가 지켜본다면, 우리는 그가 죽음 속에서 그리고 죽음 후에 얼마나 비참한 가를 보게 될 것이다. 20. 두려움이 물 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두려움이 물 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 "두려움"이 단어의 히브리어 '발라하'(* )는 '파괴', '공포'를 뜻한다. 그것은 공포의 왕(18:14)에 비유되며 갑작스러운 죽음의 공포를 가리킨다. 그는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왕이다(20, 21절). 어떤 불치의 병이 그를 잡을 때 그는 얼마나 놀라겠는가! "두려움이 물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며," 그는 마치 밀물에 포위된 자같이 될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에 몸을 떨고, 저 세상으로 옮겨간다는 생각에 더욱 두려워한다. 이것은 솔로몬의 관찰과도 같이 그에게 "번뇌와 병과 분노"를 가져다 준다(전 5:17).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 전반절과 표현상의 대구를 살리려면 '밤이 폭풍처럼 그를 채간다'(21:18)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Dahood). '빼앗다'의 '가나브'(* )는 이미 예견되어 있는 암담한 밤이 찾아온다 서서히 일어난 바람이 폭풍이 되어 이제까지 쌓아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릴것이며 남는 것은 밤과 공포 뿐일 것이다. 21.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 내리라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 '동풍'(* , 카딤)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으로서 식물을 태우고 사람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황폐케 만들어 파멸시키는 바람으로 알려져 있다(1:9 ; 15:2 ; 사 27:8). '날려 보내며'는 '들어올리다', '던지다'의 '나사'(* )와, '사라지게 하다'의 '옐라크'(* ), 두 단어로 이루어졌다. 즉, 회오리 바람이 모든 물건을 삼켜 올려 사라지게 만들듯이 그의 존재 자체를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다는 의미이다(14:20 ; 19:10). 이것은 죽음의 파멸적인 성격을 표현한다.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 곧 사악한 자가 거주한 공간으로부터 그를 급히 추적하여 쫓아낸다(* , 사아르)는 뜻이다. 여기서 사악한 자의 처소는 그의 부(富)와 안전과 지배의 중심지로서(J. E. Hartley) 그가 관련되어 있는 모든 공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사악한 자들이 발붙일 곳이나 숨쉴 틈을 주지 않고 죽음으로 그의 생(生)을 마감케 한다는 의미이다. 22.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아끼지 아니히시고 쏘시나니 - '아끼지'(* , 하말)는 '불쌍히 여기다 '또는 '긍휼히 여기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표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쏘다'의 '솰라크'(* )는 '세게 내던지다'란 뜻으로 악한 자가 권세와 평안을 누렸던 위치에서 끌어내려져 어디론가 멀리 내팽개쳐져 버린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악한자로 하여금 더 이상 하나님의 은총의 영역에 머물지 못하도록 소멸시킨다는 의미와 같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 아래 놓이게 되며, 그것은 그에게 죽음이 다가오게 하여 그를 이러한 경악 속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진노의 두려움이다(22절).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리라." 그가 살았을 동안 그는 자비를 베푸는데 인색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참으시는 날이 끝났을 때, 하나님은 아끼시지 않고 그에게 복수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쏘실 때,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해 달아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막아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내리시어"(수 10:11), 그들에게 무서운 벌을 가하셨다는 것을 읽는다.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 "납조각"처럼(슥 5:7, 8) 죄인의 양심 위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그의 진노는 어떠한 것인가? 그 저주받은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하려는 것을 보고서, 그의 손에서 열심히 벗어나려 하나, 그는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지옥의 문은 굳게 잠겨 있고 깊은 심연도 막혀 있다. 그리고 바위와 산으로 된 은신처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헛된 일이 될 것이다.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팔을 펼치고 있는 거룩한 은총의 팔로 돌아오라는 설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들은 거룩한 진노의 팔로부터 결코 달아나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 팔은 곧 그를 잡아 멸망시킬 것이다. 23.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본문의 주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차이가 있어 왔다. 원문에서는 3인칭 단수이기 때문에 '하나님'(RSV 난외주 비교)일 수도 있으나, 혹자는 21절의 '동풍'으로 보기도 한다(Pope, RSV). 그리고 '사람들'은 문법에서는 어긋난 점이 있으나 문맥상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KJV, LB). 한편 '박장'의 '사파크'(* )는 분노(민 24:10)나 조소를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으로서 손뼉을 치는 것을 뜻하며 (애 2:15 ; 나 3:19), '비소'의 '솨라크'(* )는 '쉿 하는 소리를 내다', '휘파람 소리를 내다'라는 뜻으로 매우 놀랐을 때나 (렘 49:17) 경멸과 조롱을 나타낼 때(습 2:15) 사용되었다.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 사악한 자가 조롱과 경멸 가운데서 그가 거주했던 곳으로부터 쫓겨남을 뜻한다(21절). 한편 '처소'에 해당하는 '마콤'(* )은 하나님께서 거주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으나(왕상 8:30 ; 사 26:21 ; 호 5:15 ; 미 1:3). 여기서는 악한 자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과 거주 장소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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