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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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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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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기독자료
개설일 : 2005/02/26
 

[개역한글]
제1장
 
 
[인사]

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2.그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5.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통해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으니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해 모든 이방 사람들이 믿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6.여러분 역시 그들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7.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로마를 향한 바울의 마음 ]
8.먼저 내가 여러분 모두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됐기 때문입니다.
9.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내 증인이신데 나는 항상 여러분을 기억하며
10.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든지 내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1.내가 여러분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어 여러분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이는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격려를 받기 위함입니다.
13.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모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곧 나는 다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처럼 여러분 가운데서도 열매를 맺기 위해 여러분에게 몇 번이나 가려고 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습니다.
14.나는 그리스 사람이든 미개한 사람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그 모두에게 빚을 진 사람입니다.
15.그러므로 나는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6.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요,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입니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합 2:4
[하나님의 진노 ]
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서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것을 명백히 보여 주셨습니다.
20.세상창조된 이후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명백히 보여 알게 됐으므로 그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
21.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 허망해졌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졌습니다.
22.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지만 미련하게 돼
23.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이나 새나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정욕대로 살도록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니 그들은 서로의 몸을 욕되게 했습니다.
25.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 피조물경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26.하나님께서는 이 때문에 그들을 수치스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비정상적인 관계로 바꾸고
27.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자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정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은 같은 남자끼리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고 이런 타락한 행위로 인해 그들 자신이 마땅한 징벌을 받았습니다.
28.더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하찮게 여기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타락마음대로 내버려 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29.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질투살인과 다툼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기를 좋아하고
30.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악한 일을 궁리해 내고, 부모를 거역하고
31.어리석고, 신의가 없고, 인정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입니다.
32.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가 죽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법규를 알면서도 그런 짓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합니다.

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따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이 책의 첫 머리에 있어서 자기는 오직 예수님을 절대 복종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복종은 은혜로 되는 것이다. 곧,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무서운 죽음의 세력에서 그의 피로 바울을 구원하셔서 그의 것으로 삼으신 은혜로 되어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둘로스)은 정확하게 말하면 "노예"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바울 당시 "노예'는 주인의 소유였으며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주인이 시키는 일 뿐이었습니다. 주인은 노예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리 할 수 있었으며, 노예는 짐승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자기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사도로: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눅 6:12-13). 사도는 다음과 같은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1) 예수께서 친히 부르시고 복음을 위임한 사람. 2)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 3)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도록 위임한 사람. 사도는 자기를 보낸 주님을 대신하는 자격을 위임받고 파송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바울은 예수님의 12사도의 무리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직접 나타나서 그에게 이방인에게 전할 복음을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의 열 두 제자의 무리에 속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도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말의 헬라 원어 " 앙겔리온"은 "좋은 소식"을 의미 한다. 메시야를 보내셔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는 참으로 좋은 소식이다.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택정함을 입었다"(아포리스메노스)는 말은 "갈라 놓음이 되었다" ."특별하게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구별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이 구벌에서 "구별하였다"는 말은 바울이 로마서(1:1)에서 말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레미야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구별되었던 것처럼, 바울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별하게 구별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목적이 복음을 변호하고, 보존하고,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유대인을 위해 베드로를 구별하셨고, 이방인을 위해 바울을 특별하게 구별하여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바울은 자신이 전할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자기 사상이나 생각이 아닌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에는 신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도 자기 사상이나 생각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계시하고 맡긴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전하는 복음도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죄인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구원의 메시지였습니다. 
다른 편지와 달리 바울은 로마서의 서론을 매우 길고 자세하게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서론을 길게 쓴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1)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직 한 번도 로마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1:10-11,13, 15:22). 그러므로 바울의 편지를 받을 로마 교회 성도들은 아직 바울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론을 말하기 전에 자신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해야만 했습니다. 2) 로마 교회 성도들은 아직 바울이 사도의 자격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서론을 통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을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복음의 내용을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다른 사도들과 일치하는 것임을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바울은 다른 편지와 달리 로마서의 서론은 길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서론 부분(1:1-17)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바울 자신에 대한 소개(1:1), 2)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소개(1:2-6), 3) 로마 교회 성도들에 대한 언급과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1:7-13), 4)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하려는 주제(1:14-17). 우리는 오늘 첫 번째 주제로서 바울이 자신을 어떻게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롬1:2 그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에 대해서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성경에 약속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받은 복음은 갑자기 주어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하고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주님도 구약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요 5:39).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자기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전할 것은 하나님이 계시하고 약속하신 복음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사색이나 이론, 또는 인간이 만든 종교를 전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세상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듯이, 교회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롬1:3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하나님의 아들에: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은 "그(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것은 더 이상 복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3-4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3-4)." 바울은 주님이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성경에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다윗의 혈통:
사도는 여기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한 구약의 예언을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구약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곧 왕으로 나시리라고 한 예언이 많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들며 이렇다. 곧, 사 53:1-3에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고 하였다. 이 예언과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줄기(왕손)면서도 왕궁에서 나시지 않고 베들레헴의 외양간 한지(마른 땅과 같이 적막한 곳)에 나셧다. 그리고 사 11:1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서 열매를 맺으리라는 말씀이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 주: 바울은 주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 (Lord) 란 말은 당시에 로마 황제에게 붙여진 칭호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삶을 통치하고 주관하시는 주님(Lord)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예수께서 진정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임을 알 때에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구원)라는 이름은 주님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이름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주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또는 메시아)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인류의 구속 자로 기름(성령)을 부어 세우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인류 구속을 위해 기름(성령)을 부어 세우신 분이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Lord)이시며, 인류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입니다.
롬1: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으니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해 모든 이방 사람들이 믿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와 사도의 직분
: "은혜"란 말은 헬라 원어로 "카리스"인데 받을 만한 공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는데 쓰이는 말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내용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상)). 바울을 부르시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를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5(중)).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신의 이름을 전하게 하시려고 바울을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그 이름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 영광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고 그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이방인 중에서: 바울은 자신이 "모든 이방인을 위해"(5(하))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특정한 개인이나 민족을 위해서 사도로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특히 모든 이방인을 위해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방인을 위해서 바울을 사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고"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복음을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외식과 자기 행위를 자랑하게 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롬1:6 여러분 역시 그들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 속한 :"그리스도의 것"이란 말은, 택하심을 받은 성도를 가리킨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속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관계이다(고전 3:23).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자기의 보물, 곧 피 흘려 사신 보물로 사랑하신다.
롬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
이 있기를 빕니다.
사랑하심을 입고: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선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로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중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자기 백성으로 구별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은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또 자신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 즉 "거룩한 무리(백성)"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별하여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낼 제사장 나라로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은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도 거룩한 백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에 있는 기독교인들 역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할 때에 우리는 세상과 복음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  구약의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습니다(민 6:25-26).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의미하고, "평강"은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죄인인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축복과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들과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며 살아갈 때에 교회와 이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롬1:8
먼저 내가 여러분 모두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 "온 세상에," 곧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클로디우스의 칙령에 따라 사방에 흩어졌다가 이제 로마로 돌아온 그들이 온 로마 제국에 평판이 자자했다는 얘기다. 어디를 가든 좋은 얘깃거리를 뒤에 남겨두고 다니는 그들의 소문이 온 교회에 퍼졌던 것같다. 이것은 그들의 고통에 대한 좋은 결과로서 그들이 박해를 받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유명해질 리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일에 대한 아주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곳곳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의 신앙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지만, 로마에 하나님의 백성이 증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전파와 확장에 대한 소식은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주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하나님께서도 가장 듣기 원하시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통해서 더 많이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파될 수 있도록 복음의 확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롬1:9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내 증인이신데 나는 항상 여러분을 기억하며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복음을 전하는 그것이었다. 이르 보면, 그가 복음 전파를 자기의 출세나 생계나 취미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소명감(召命感)에 끌려 행하여지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전도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하는 의식이 그 지배 의식이었다. 여기 "심령"이란 말은 렐라 원어로 "프뉴마"이니, 곧 영을 의미한다. 그러면 내 영(靈)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함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인격의 중심으로 하나님께 봉사함을 말함이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위해 "항상",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하나님이 증거해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만나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 대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후에 로마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기도의 열매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속히 하나님께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자기를 인도해서 로마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매우 원했습니다.
롬1:11 내가 여러분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어 여러분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주어:
여기 "무슨"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티"니, 그것은 아직 받지 않은(그러나 장차 받을) 어떤 신령한 은혜를 염두에 둔 말이다. 바울은 로마에 가는 도상에 오를 때에 반드시 로마의 신자들에게 풍성한 영적 축복이 임할 것을 확신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그는 말하였다(15:29). 주의 종이 주님의 기키시는 일에 만 순종하며, 언제나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력(靈力)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눠 주어 : "너희에게 나눠 주어," 그가 받은 것은 남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젖먹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고 서두는 젖가슴인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파 하는, 곧 말씀을 전하고저하는 바울의 생각과 마음에 비길 수 있겠는가. 훌륭한 설교는 훌륭한 선물로서 그것이 영적일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너희를 견고케 함: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그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놓고도 그들이 견고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위로 가지가 무성할 뿐 아니라 아래로 뿌리가 깊이 박히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제아무리 독실한 성도라도 요새같이 뒤흔들리는 세상에서는 더욱더 견고하게 서 있을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견고케 서는 데는 영적 은혜가 큰 효험이 있다. 신앙을 장성케 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시니(고전 3:5-7), 여기서도 바울은 자기의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의 하실 일을 구분한다.

롬1:12
이는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격려를 받기 위함입니다.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 그들이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만 해도 기쁜데 직접 만나 본다는 건 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다른 사역자들의 수고의 열매를 두고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곧 우리 상호의 믿음과 진실에서 위로를 얻을 줄 아는 그였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진실한 목회자로 믿고 목회자는 교인들을 진실한 교인으로 믿는 가운데 서로 통하는 교회는 위로가 넘치기 마련이다. 또한 믿음의 상호 작용은 사랑으로 -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는 가운데서 곧 자신들의 믿음을 서로 교환하는 가운데서 위로를 얻었다. 우리들의 영적 상태의 이모저모를 서로 비교 검토해 보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주기 원했던 신령한 은사는 복음에 대한 가르침이나 권고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가르침과 권면의 말을 통해서 로마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해 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은사를 주기만 하지 않고, 자신도 그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자신도 위로를 받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롬1:13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모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곧 나는 다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처럼 여러분 가운데서도 열매를 맺기 위해 여러분에게 몇 번이나 가려고 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서 다른 곳과 같이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 원했습니다. 바울은 마치 부지런한 농사꾼과 같이 이곳 저 곳을 다니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도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까지는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을 보면서 그 곳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복음의 씨를 부리고 그 열매를 거두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러한 교회를 통해서 그 곳에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열매를 맺게 하려 함: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13절), 그들이 굳게 서는 것이 곧 자신의 유익이었으니 그게 곧 그에게는 풍성한 수확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바울의 사역에 임하는 자세는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그 대가는 그만큼 더 풍성하게 된다는 식이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세상에 두시는 목적은, 그들이 영적(靈的)으로 결실하게 되기 위함이다. 그들의 처음이 좋지 못했어도 나중에는 좋을 수도 있다. 신약의 사울은, 처음에 비록 실수했으나 한 번 회개한 후에는 주님을 충성되이 섬겼다. 마가도 처음에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가다가 낙심하고 돌아섰으므로 바울에게 불신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후에 회개하고 귀한 종이 되었으므로, 바울이 그를 자기에게 유익한 종으로 여겨 모든 교회에 추천하였다(골 4:10).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서 다른 곳과 같이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 원했습니다. 바울은 마치 부지런한 농사꾼과 같이 이곳 저 곳을 다니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도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 번 로마에 가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까지는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을 보면서 그 곳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복음의 씨를 부리고 그 열매를 거두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러한 교회를 통해서 그 곳에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롬1:14 나는 그리스 사람이든 미개한 사람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그 모두에게 빚을 진 사람
입니다.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 자신이 받아 누리는 그것으로 해서 이미 그는 빚진 자였다. 그에게 자질을 주신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게 하려는 뜻에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큰 것을 사모할 때 명심해야 하는 게 바로 우리가 받아 누리는 온갖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빚진 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주님의 상품을 맡아 지키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복음은 야만이에게도 가야 하며, 문명인에게도 전파되어야 한다. 문명(文明)이란 무엇인가? 지혜와 지식은 무엇인가? 혹은 과학이란 것이, 만물의 성질은 알 수 있으나 그것의 근원을 알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과학 연구로써 만물의 용법은 알 수 있으나, 그 만물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 바를 알 수는 없다(고전 1:20). 이 세상의 지식층은 무식(어리석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진리 앞에서는 소경이니, 진리 곧 복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빚을 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되었을까요? 빚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을 때에 갚아야 할 채무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세상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다는 말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왜 빚을 진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만일 A라는 사람이 B에게 전해달라고 우리에게 10만원을 맡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B에게 10만원을 줄 책임(빚)이 있습니다. 바울이 빚을 졌다고 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전하라고 복음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책임(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는 남에게 줄 것을 착복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는 일생 동안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빚진 자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로마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간절히 복음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역시 사도는 아니지만 세상에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의 종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통해서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또 다시 다른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십니다. 복음은 특별한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민족이 듣고 구원을 받도록 예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빚진 자의 심정으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듣고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남에게 줄 것을 착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도 바울처럼 세상에 복음의 빚을 진 채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롬1: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요,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당시 로마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이 원한 것은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적과 표적을 원했고, 헬라인들은 지혜(철학)를 원했으며, 로마인들은 명예와 권력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적이 있는 곳으로, 헬라인들은 지혜가 있는 곳으로(철학), 그리고 로마인들은 권력과 명예가 있는 곳으로 몰려다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지혜나 권력이 아닌 복음을 전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명예와 부와 지혜와 권력을 주지 않지만,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목적은 믿는 자의 구원. 그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믿는 자의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복음이야말로 "구원의 길"(행 16:17)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며 구원이 우리에게 양도되어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하는 위대한 승낙이다.
이것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믿음만이 우리를 복음의 구원과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요 그밖에 사람들에게는 감취어진 것이다. 아무리 잘 처방된 약이다로 환자가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맨 먼저 대접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나 사도들의 경우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너희에게 먼저"(행 3:26)였으나 그들의 거절로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고 만다(행 13:46).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은 동일한 입장에 서 있으니 곧 양자가 동일하게 구원자 없이 비참한 상태인가 하면, 양자 모두가 동일하게 구언자에게 언제고 환영받는 존재이다(골 3:11). 이러한 이론은 지금까지 선민으로 자처하면서 이방 세계를 멸시해 오던 유대인에게서는 뜻밖의 얘기였다. 그러나 대망의 메시야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일 뿐 아니라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구원의 방법으로 계시된 신자의 칭의(17절). "복음에는" 곧 바울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있다. 우리의 비참과 멸망은 우리 죄악의 소득이요 결과인 만큼 우리가 구원의 길을 모색하려면 칭의의 길을 먼저 알아야하는데 복음이 바로 이 일을 해 주고 있다. 복음이 의의 길을 터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요 우리는 죄많은 죄인인 만큼 그분 앞에 나서려면 우리가 걸치고 나타날 수 있는 의가 있어야 마땅한데 이 의가 왕되신 메시야게서 드러나고(단 9:24), "복음에 나타나"있다. 곧 이 "의"는 우리의 죄악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화해와 영접의 은혜로운 방편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은 이러한 진리를 지지하기 위해서 (합 2:4)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오래 전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 고 선언했습니다. 당시에 하박국은 유다에서 의인이 어려움을 당하고, 불의한 자들이 형통한 것을 보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공의를 시행하지 않느냐? 고 불평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장차 바벨론을 들어서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또 다시 어찌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징계할 수 있느냐? 고 불평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신 후에 바벨론도 역시 그 죄로 인해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어려움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셨지만, 끝까지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신뢰한 유다인들을 바벨론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서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시 7:11-12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라고 하였다.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말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보좌로부터 사람들의 불경함과 죄를 보시고 우뢰와 번개가 치듯 천사들과 그의 종들을 통해 나타내시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하늘보좌에서 진노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불 경건함과 불의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불 경건함"(아세베이산)은 하나님께 대한 죄를 의미하며, "불의"(아디키안)는 사람들에 대한 죄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불경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며,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막는다"(카테콘톤)는 말은 "굳게 서서 계속한다", "소유한다", "억제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문에서 "억누른다", "억제한다, "막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고의적인 범죄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고의로 비 진리로 진리를 억누르고 막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계시나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인지 계시해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계시나 뜻(진리)을 거부하고, 사람이 만든 사상이나 윤리, 또는 종교로 대치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불의를 보시고 하늘 보좌로부터 진노하시며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것을 명백히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란 말은 "알려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저희 속에 보인다함은, 곧 양심에 느껴져야 할 자연계의 놀라움을 가리킨다. 칼빈은 자연계가 하나님을 보게 하는 거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 죄가 많기 때문에 어두워져서 자연계를 앞에 놓고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그는, 특수 계시(特殊啓示) 곧, 성경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알 만한 것"이라는 말에는 알려질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존재가 부분적으로 이해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다. 우리가 찾아 나선다고 해서 그를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욥 11:7-9). 유한한 인간들이 무한한 존재를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더불어 사는 우리의 위대한 목적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롬1:20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명백히 보여 알게 됐으므로 그들은 변명
할 수 없습니다.
세상창조된 이후로:
"그 만드신 만물에," 곧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우연히 그렇게 질서정연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따라서 꼭 제일 원인이나 이성적 동인(動因)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만물을 통해서이다. 이때 제일 원인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능력의 하나님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시 19:1; 사 40:26; 행 17:24). 원래 명장(明匠)은 그 일 솜씨를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다. 만물의 다양성, 무수함, 질서, 아름다움, 조화, 특성, 기능, 그리고 합목적성, 이 모든 것은 창조주와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보이지 않는 속성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충돌 없이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별들을 봅니다. 그리고 한 개의 세포 속에 있는 정교한 유전자 구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하나님의 영광과 속성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섬기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창세로부터 드러나있는 그 하나 하나에 능력과 신성이 거기로부터 추출된다고 생각되어지는 주체로 볼 수 있다. 이 진리를 증명하는 데는 온 세상의 피조물(kti,sij kovjmou)을 다 들 수 있다.
"하나님이 언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셨단 말인가? 나는 하나님께 진리를 배운 적이 없는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못 섬기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안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과 능력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눈과 귀로 보거나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제 3의 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신과 영적인 통찰력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힘을 가지고 신을 찾고 섬기며,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세상에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그들은 신을 찾고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만이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살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그것은 세상의 창조와 그 연대를 같이 한다. 이런 의미로 성경에서는 창세기로부터(avpo. kti,sews ko,smou)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여러 개념은 최근에 와서야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어 온 오래된 진리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길이야말로 태초 이후로 있어 온 탄탄대로이다. 진리는 이미 오류의 기선을 지른지 오래다.
롬1:21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 허망해졌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졌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 허망해졌고
: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범하는 터무니 없는 우상 숭배((21-23, 25절). 성서의 빛을 가진 유대인들 마저도 얼마나 우상 숭배에 젖어 있었던가 하는 걸 생각한다면 이방인들의 경우에 있어서 자연적인 신인식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상한 노릇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육감의 구렁텅이에 빠져 든 타락한 인간상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롬1:23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이나 새나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썩어질 사람이나
:
피조물에게 신의 영광을 돌리고 있으니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조물주를 제쳐 놓고,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para, to.n ki,santa)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초월자 신(Numen)이 있었으나 피조물을 경배하므로 결국에 가서는 그를 욕되게 한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조물주 "이상으로" 별, 영웅, 귀신을 더 섬겼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다거나 감히 예배할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결국 피조물을 섬겼다는 데 죄가 있지만 그 죄가 더 중요한 것은 조물주 이상으로 피조물을 섬겼다는데 있다. 이것이 이방 세계 전반의 죄악상이요 이것이 그들의 법률과 국가체제에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따라서 그들 중에 신지식을 가지고 있던 지혜자들마저도 어리석게 다신론과 우상 숭배에 빠져 들고 말았으니 그들의 나머지 이웃 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사람들은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 대신 "짐승과 파충류 모양"의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짐승과 파충류에게 돌려버리는 미련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롭게 되려고 하다가 결국 이러한 무지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짐승이나 벌레에게 돌리고, 썩어질 인간에게 돌리는 것은 인간이 어리석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저희를 마음정욕대로 더러움에
: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그들의 마음의 정욕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의 정욕에 이끌려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피조물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은총을 거두셨습니다.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인도와 간섭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정욕을 따라 살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 강력한 자기의 정욕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악을 행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욕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고 본능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신의 몸을 수치스러운 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정욕을 좆아 자기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었으며, 이 일은 일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롬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은 불경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정욕에 넘겨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정욕을 가리켜 "부끄러운 정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정욕을 좆으면 수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정욕을 좆는 사람은 누구든지 수치스러운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버림받고 정욕을 좆아 사는 사람들은 이성간에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하나님이 세운 자연적인 원칙을 거스려 성적으로 부패한 행동을 했습니다. 바울이 특히 여자의 죄를 먼저 언급한 것은 바울 당시 여인들의 성적 문란이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성들의 성적 문란은 가정과 사회에 여러 가지 중대한 혼선을 가져왔습니다. 
롬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 성적인 범죄는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 때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정욕을 좆은 결과 이러한 질서를 뒤바꾸고 말았습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아니라 같은 남자를 보고 성욕이 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동성 연애는 바울 당시 로마에 만연되어 있었으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돌린 사람들은 그 형벌로 이성의 위치를 뒤섞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한 불경한 행동에 대해 내린 합당한 보응이었습니다.  
남자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하나님은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를 돌리는 사람은 진리로 인도해 주시지만, 하나님대신 피조물을 섬기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방치해 두십니다. 바울 당시 동성연애는 이성을 비정상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탈선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일을 하도록 방임하심으로 그들의 행한 불경함에 대해 합당한 보응을 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욕에 넘겨져서 가공할만한 방탕한 행동을 하며 살게되었습니다.
롬1:29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질투와 살인과 다툼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기를 좋아하고
시기, 살인, 분쟁, 사가, 악독이 가득한 자요
: "
시기"는 헬라 원어로 "프도노스"인데, 남의 잘 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통감(痛感)을 가지고 해할 수만 있으면 해하려는 악한 마음이다. 잠 14:30에 말하기를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하였고, 잠 27:4에는 "투기 앞에서 누가 서리요"라고 하였다.
롬1:30 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악한 일을 궁리해 내고, 부모를 거역하고
비방하는 자: 이것은 공적으로 남을 악평하는 자이다. 레 19:16에 말하기를,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으니, 남을 말로 매장함은 잔인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죄를 범하는 자는 벌을 받나니 그것은 그 자신이 역시 악평을 받음이다. 예수님은 말쓰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다(마 7:1).

교만한 자요:
"교만한 자." 이 말은 헬라 원어로 "훼페레파노스"인데 "높이 나타나는 자"란 뜻이다. 잠 16:18에 말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개인이나 단체나 교만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벌을 받는 법이다. 잠 19:29에 말하기를,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고 하였으니, 오만한 자(거만한 자)의 죄가 어떻게 큰 줄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악을 도모하는 자: 이것은, "악한 일을 지어내는 자"를 말함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한 사람만이 악을 행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악행의 길을 개척하여 주는 셈이다. 이 얼마나 악한가? 수리아의 안디오코 에피파네스는 유대인을 괴롭게 한 자니, 그는 "모든 악을 도모하는 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이 죄목들은 애정과 의리(義理)를 배반하는 종류에 속한다. 애정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을 배반하는 자야말로 극도로 악한 자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큰 죄인이다. 구약 시대?에는, 불효자는 재판을 받게 하고 돌로 쳐 죽이도록 한 것이다(신 21:18-21). 신약 시대에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불효가 여전히 큰 죄악인 것은 틀림 없다(딤전 5:8).
롬1:31
어리석고, 신의가 없고, 인정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입니다.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
: "우매한 자." 이것은 사람이 자기가 받은 사랑이나 긍휼에 대하여 지각(知覺)이 없고 그것을 감사하지도 않으며 기억지도 않음을 말함이다(사 1:2-3). 도탄 중에 빠진 자가 남의 동정을 구하다가 배척을 당할 때 그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남에게 은혜를 베푼 자가, 그 은혜를 입은 자의 배은 망덕의 태도를 볼 때에 느끼는 비통(悲痛)은 그 이상이다. "배약하는 자" 성경은,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해야 한다고 한다(시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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