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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 2.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
| 3.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
| 4. |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
| 5. |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
| 6.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 7. |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
| 8. |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
| 10. |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
| 11. |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를 찢으셨으나 - '찢다'의 히브리어 '타라프'(* )는 사자가 먹이를 찢는 것처럼 심판이 가혹함을 암시한다(5:14;시 50:22). 낫게 하실 것이요 - 5:14에서 예언된 멸망과 형벌은 이미 성취된 것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있을 경우 심판의 자리에서 고침을 받게 될 것임이 선언된다. 이는 백성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여호와의 사랑과 주권적인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신 32:39). 한편 이것은 여호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된 회개를 전제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틀 후에...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 유대인 학자들은 이를 연대기적으로 해석하여 '이틀'을 애굽과 바벧론 포로기로 '삼일'을 로마의 속박과 관련시키거나(Kimchi), 또는 솔로몬 성전, 스룹바벧 성전, 메시야에 의해 세워질 성전의 '세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Rashi). 이와는 달리 많은 교부들과 주석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적용시킨다. 즉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은 3일만에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한다(Theodoret, Given, Calvin, Butler).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 직역하면 '그의 얼굴 앞에서'이다. 이는 여호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이다(창 17:18;렘 30:20).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힘써 여호와를 알자 - '힘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다프'(* )는 '추적하다', '뒤따르다'란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의미한다(신 30:2,3).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 '나오심'의 히브리어 '야차'(* )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나타낸다(창 19:23;시 19:5). 본 구절은 여호와의 임재가 새벽처럼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사 58:8;60:2). 비와 같이 - 여기서 '비'(* , 게쉠)는 퍼붓거나 흡족하게 내리는 비로서(스 10:9,13) 10월 초부터 2월 말 사이에 오는 겨울비를 가리킨다.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 '늦은 비'(* , 말코쉬)는 추수하기 전 3-4 월 중에 내리는 봄비로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이다. 한편, '땅을 적시는'에 해당하는 '요레'(* )는 원래 '이른 비'(former rain, KJV)를 뜻하나, 여기서는 하필 미완료형(또는 칼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마른 땅을 적시는'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와같이 만물을 소성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내리신다(레 26:4;신 11:14).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너희의 인애가...이슬 같도다 - '인애'(* , 헤세드)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데서 오는 충성이며, 이웃을 온유하게 대하는 자비이다(2:19;4:1). 이스라엘의 인애는 '아침 구름'(* , 아난 보케르)과 '이슬'(* , 탈) 같아서 쉽게 사라지고 만다(13:3). 이는 그들의 신앙이 매우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6: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내 심판은 발하는 빛 - 원문에는 '네 심판', 곧 에브라임과 유다에게 내려지는 심판임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 심판은 마치 빛처럼 나간다(goes forth as the light,RSV). 즉 백성들 위에 내려지는 여호와의 심판은 햇빛과 같이 분명하게 임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또한 그 심판은 명백하게 옳으며 의롭고 완전하다.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나는 인애를...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까지도 포함한다. 만약 사랑과 진실없이 위선적이고 공허한 제사와 번제를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 스러운 일일 뿐이다. 하나님은 거짓된 의식과 허울좋은 희생을 역거울 정도로 미워하신다(사 1:11-17;암 5:21-24;미 6:6-8). 6:8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 학자들은 '길르앗'을 '라못 길르앗'(수 21:38)으로 보거나(Henderson), 또는 길르앗의 중요 성읍인 '미스바'(삿 10:17,18)로 생각한다(Ewald, Simson).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길르앗 전체 지역이 행악자들로 가득 찬 범죄 집단 임을 묘사하기 위하여 하나의 성읍으로 표현했다고 한다(Keil, Lange, Pusey). 즉 길르앗 지역 전체가 행악자의 성읍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후자의 견해가 더 적합하게 보인다. 어쨌든 길르앗 지역의 사람들은 매우 흉폭하고 살인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 기록된다. 그 증거로 길르앗 사람 오십 명이 베가의 반역에 동참하여 브가히야를 살해한 사건을 들 수 있다(왕하 15:25). 핏발자취가 편만하도다 - 원문은 '피흘림의 발자취가 뒤따른다'라는 뜻으로서 보다 생생하게 피의 현장을 묘사해 준다. 이는 유혈과 살인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살인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혹자들은 이를 예후의 살인 행위(왕하 9,10장), 또는 스가랴의 살인(왕하 15:10)과 연관시키지만(Jerome, Hitzig) 추측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단지 살인자로 가득 찬 길르앗의 패역한 모습을 상기시킬 뿐이다. 6: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강도 떼(* , 게두딤) -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적의 무리를 가리킨다 (7:1). 제사장의 무리 - '무리'의 히브리어 '헤베르'(* )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서로 연합하는 동료나 단체를 뜻한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기 위하여 서로 협력해서 모였음을 암시한다.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 '세겜'(* )은 길르앗과는 달리 요단 서편에 위치한 레위 지파의 성읍이자 도피성으로서(수 20:7;21:21) 사마리아로부터 벧엘에 이르는 길못에 있었다. 여기서 세겜은 제사장들의 살인 장소로 언급되었다. 즉 제사장들의 무리는 이스라엘의 북쪽으로부터 예배 장소인 벧엘로 가는 순례자들을 세겜 길에서 살인하였다. 살인의 목적은 아마 약탈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탐욕과 잔인성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 살인을 제사장들의 거짓 가르침과 사회적 착취에 대한 과장법으로 생각한(Chrisholm). 그러나 본 구절은 세겜 길을 점거하고 순례자들을 살인한 강도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다.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 원문에 있는 '키'(* )는 원인을 나타내지 않고, '확실히'(NASB)란 뜻으로 제사장들이 진정 사악을 행했음을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사악'의 히브리어 '짐마'(* )는 주로 성적인 범죄에 사용되었으나(레 18:17;19:29;삿 20:5,6) 여기서는 계획적인 책략에서 비롯되는 사악함을 의미한다(Harper). 즉 제사장들의 온갖 가증스러운 행위가 의도적인 범죄였음을 시사한다(잠 10:23;21:27). 6: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이스라엘 집에서 - 이는 여로보암 성소가 있는 벧엘을 가리킨다(왕상 12:25-30). 그런데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에서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북왕국 전체의 타락을 증거한다. 가증한 일(* , 솨아루리야) -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을 가리킨다(렘 5:30;18:13). 이는 이스라엘의 범죄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증오스럽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에브라임은...더렵혔느니라 - '행음'(* , 제누트)의 결과는 더럽혀지는 '부정'(* , 타메)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적인 음행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의 깊이 빠진 죄악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에브라임'은 한 지파가 아닌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다(4:17;5:3). 6:11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유다여 - 원문에는 이 말 앞에 '감'(* )이란 단어가 있다. 여기서 '감'은 '또한', '똑같이', '마찬가지로'등의 뜻이다. 유다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형벌의 운명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는 유다의 죄악이 진정 이스라엘보다 크거나 같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 '사로잡힘'의 히브리어 '쉐부트'(* )는 자유가 상실되고 고통으로 억압받는 포로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로잡힘이 앗수르나 바벧론에 의한 포로됨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비참하게 된 이스라엘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돌이킴'(* , 슈브)은 포로에서의 정치적 귀환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진노를 돌이켜 은총과 축복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Keil, Lange, Har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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