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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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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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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기독자료
개설일 : 2005/02/26
 

  1.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매
  4.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사면으로 흉벽을 쌓으매
  5. 성이 시드기야왕 십 일년까지 에워싸였더니
  1. 그 사월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2. 갈대아인이 그 성읍을 에워쌌더니 성벽을 깨뜨리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3. 갈대아인의 군대가 시드기야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미치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4. 그들이 왕을 잡아가지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를 신문하니라
  5.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또 립나에서 유다의 모든 방백을 죽이며
  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 구년 오월 십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4.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5.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빈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옮겨가고
  1. 빈천한 국민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2. 갈대아인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3.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4. 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5. 솔로몬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 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
  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 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놓이며
  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고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으며
  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일백이었더라
  4. 시위대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5.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바 왕의 시종 칠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명이라
  1.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3. 느부갓네살의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 칠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4. 느부갓네살의 십 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 삼십 이인이요
  5. 느부갓네살의 이십 삼년에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인이니 그 총수가 사천 육백인이었더라
  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 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3.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4.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52:1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시드키야는 이십일 세 때 왕위에 올라 십일 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로서 이름은 하무달이라고 했다.
시드기야가...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여호와의 정의) 하므달(의붓 아버지는 이슬) 립나(흰) 예레미야(여호와께서 던지시다) 시드기야란 이름은 그의 왕명이었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의 원래 이름은 맛다니야였다(왕하 24:17 참조). 그는 조카인 여호야긴이 폐위되고 난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 되었다(B.C. 597년).
52:2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이것은 시드기야 통치의 결산에 해당되는 말이다. 아울러 이는 유다의 패망에 대한 주요 원인을 암시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52: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매-
예루살렘과 유다는 야훼의 진노를 사서 마침내 그 앞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시드키야가 바빌론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호와께서...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 유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결국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이 유다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진노가 성취되었던 것이다(왕하 24:20 참조). 한편, 본절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며, '실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쫓아낼 때까지 그것이(죄악이) 여호와의 진노에 대해 유다와 예루살렘 안에 있었도다'이다.
52:4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사면으로 흉벽을 쌓으매- 그래서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은 시드키야 왕 구년 시월 십일,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을 포위하고 사면에 토성을 쌓았다.
52:5 성이 시드기야왕 십 일년까지 에워싸였더니-
십 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앗수르 고분 부조를 연구해 보면,예루살렘 성의 포위 공격의 형태가 어떠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투 양상은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성을 포위하여 진을치고, 그리고 성벽 파괴용 무기들을 가동했으며, 또한 임시 망루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불화살이나 돌 따위를 성안으로 던지는 그런 전략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포위 공격은 시드기야 제 11년 넷째 달(6절) 즉, 현대력으로 B.C. 586년 6-7월경까지 계속되었다. 넷째 달이라고하는 언급은 70인역(LXX)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포위 공격은 약 18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셈이다. 52:6 그 사월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 성중의 기근에 대해서 39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여기서와 애 4:1-10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Nicholson). '심하여'의 히브리어 '하자크'(* )는 '달라붙다', '지속되다'는 뜻으로, 오랜 기간 동안 포위당함으로 인해 기근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낸다.
52:7 갈대아인이 그 성읍을 에워쌌더니 성벽을 깨뜨리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왕은 모든 군인들을 이끌고 왕실 정원으로 나가는 두 성벽 사이 짬에 있는 문으로 성을 빠져 나가 밤을 도와 아라바 쪽으로 도망하였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52:8 갈대아인의 군대가 시드기야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미치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왕의 호위대가 왕을 혼자 내버려두고 흩어지게 된 상황이 언급되는데, 어쩌면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일사 불란하게 왕을 호위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갈대아인들이 왕을 목표로 해서 추적해 왔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52:9 그들이 왕을 잡아가지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를 신문하니라- 바빌론 군대가 왕을 사로잡아 하맛 지방 리블라에 주둔하고 있는 바빌론 왕에게로 끌고 가자 바빌론 왕이 그를 심문하였다.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 '하맛 땅 립나'는 오론테스 강가에 있는 가데스 남쪽 고대 수리아의 한 도시였는데,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원정군의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립나는 또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군사 도로가 마주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도 하였으며, 느부갓네살의 임시 본부가 위치해 있던 곳이었다(Thompson).
52: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또 립나에서 유다의 모든 방백을 죽이며- 그는 시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데서 살해하고 유다의 대신들도 모두 리블라에서 죽였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예레미야의 권면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그 목전에서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처절한 아픔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곳의 모든 방백이란 립나에 죄수로 수용되어 있던 유다 방백들을 말한다. 왕하 25장에는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송되었던 것이 분명하며, 이들에 대한 처형은 예루살렘 함락 후 몇 주가 지나서 행하여졌을 것이다.
52: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바빌론 왕은 시드키야의 눈을 뽑은 다음 쇠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어다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두었다.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겔 12:13의 성취이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옮겨져 거기서 죽을 때까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상세한 설명은 39:7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 성의 함락 전후에 겪었던 그 쓰라린 육체적, 정신적 고초를 감내하면서 그 이후 그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짐작컨대, 아마 그는 그 이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52: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 구년 오월 십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제십구년 오월 십일에 바빌론 왕의 측근인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52: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야훼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 성 안 건물을 모두 불태웠다. 큰 집은 모두 불탔다.
52:14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친위대장을 따르는 바빌론 군인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모조리 허물었다.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 중에 기드론 계곡이 탐사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황폐가 극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헐다'(* , 나타츠)라고 하는 말은 본서에서 빈번하게 쓰였다.
52:15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빈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옮겨가고-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도성에 남아 있던 민간인과 바빌론 왕에게 투항하였던 사람들과 살아 남은 기술자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52:16 빈천한 국민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그리고 백성들 중 가장 비천한 층의 사람들만 남겨두어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52:17 갈대아인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바빌론 군대는 야훼의 성전에서 놋기둥들, 놋받침대, 놋바다 등을 해체하여 모두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놋바다 -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성전 기구들은 왕상7:15-39에 나온다. 이 '두 놋기둥'에는 기둥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이었고 좌편에 세워진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그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다. 상세한 설명은 왕상 7:15-22을 참조하라. '놋바다'는 왕상 7:23-26에, 그리고 '받침'에 대해서는 왕상 7:27-39에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기둥들은 수리아 신전 벽화를 보건대 B.C. 10세기경에 대단히 유행했던 것 같다.
52:18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예식에 쓰이는 재받이와 부삽과 가위와 물뿌리개와 작은 향합과 그 밖의 모든 놋기구들은 그대로 가져갔다.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 - '가마'는 조그마한 물건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
52:19 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친위대장은 또 잔들과 화로, 피 담는 그릇, 재받이, 등잔대, 대접, 접시 등 금은 그릇을 가져갔다.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 갔는데 - 이를 직역하면, '금이었던 것 - 금, 은이었던 것 - 은'이다. 아마도 이 말은 본절의 잔들, 화로들, 주발들, 솥들 등이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금으로 만들어진 제기들이 출25:29 이하에 언급되고 있고, 왕상 7:49 이하에는 이들 항목 중 대부분이 언급되고 있다.
52:20 솔로몬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 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 놋기둥 두 개와 놋받침대, 놋바다 한 개, 큰 물항아리를 받치려고 놋쇠로 만든 소 열두 개 등, 솔로몬 왕이 야훼의 성전에 만들어 놓았던 이 놋기구들은 그 무게를 이루 측량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 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놓이며기둥만 해도 높이가 열여덟 자에 둘레는 열두 자였다. 기둥 속은 비었지만 놋쇠 두께는 네 손가락 나비나 되었다. 
52: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고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으며- 기둥 위에는 놋쇠로 만든 대접받침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다섯 자였다. 그 대접받침 둘레에는 놋쇠로 만든 망이 쳐져 있고, 그 망에는 석류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었다. 둘째 기둥도 마찬가지였다.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 기둥의 장식이나 조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왕상7:16-20에 언급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장식은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출 28:33). 한편 라스 삼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용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이런 장식은 이스라엘 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나라로 전파되었다.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일백이었더라- 철망에 달려 있는 석류는 모두 백 개였는데 밖에 드러난 것은 아흔여섯 개였다.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 몇몇 세부적인 사항들은 왕상 7장의 내용과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 아마 여기서는 예루살렘 함락 당시 유다왕 들에 의해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52:24 시위대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친위대장은 대사제 스라야, 부사제 스바니야, 그리고 정문 수위 세 명을 체포하였다. 
여기서 다시 느부사라단이 등장한다. '스라야'는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손자였다(대상 6:13-15).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으로서,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을 주도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부친이었다(스 5:2; 학 1:1 등 참조). 그리고 '부제사장 스바냐'는 29:24-32과 37:3에 언급되었던 스바냐와 동일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 명의 문지기는 성전을 관리했던 것으로 보이는 높은 직책의 제사장들이었다.
52:25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바 왕의 시종 칠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명이라- 성 안에서는 군사령관이던 내시 한 사람과 도성에 남아 있던 어전 시종 일곱 사람과 징병 업무를 보던 부사령관과 그 밖에 도성에 들어와 있던 지방민 가운데서 육십 명을 붙잡았다.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왕의 시종 - '장관'으로 번역된 '사리스'(* )는 '거세하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환관을 의미한다. 본서 중반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환관이란 직책은 처음에는 왕의 내실을 관리했던 직책이나, 그 이후 보직(補職)의 범위가 확장되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브라이트(Bright)는 이 사람이 군대 장관이 아니라 대민 관계를 맡았떤 공직자였던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어쩌면 군대와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야전에서 전투를 하던 사람이 아니라 국방 장관 정도 되는 직책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왕의 시종'(* , 로에 페네 하멜레크)에 대한 문자적 번역은 '왕의 얼굴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들은 왕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어 빈번하게 왕과 접촉했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52:26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이들을 모두 리블라에 머무르고 있던 바빌론 왕에게 넘겼다.
52:27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그 곳 하맛 땅 리블라에서 바빌론 왕은 그들을 처형하였다. 이렇게 유다 백성들은 사로잡혀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이들 포로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바 있으며(50:17-20;51:45-49 등) 이런 내용은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도 나타난다(사 52:1-12; 겔 37장등). 반면에 바벨론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52:28 느부갓네살의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 칠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로잡혀 간 유다인들의 수효가 제칠년에는 삼천 명하고도 스물세 사람이었다.
52:29 느부갓네살의 십 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 삼십 이인이요- 느부갓네살 제십팔년에도 예루살렘의 유다인 팔백삼십이 명이 사로잡혀 갔다. 
느부갓네살의 십 팔 년에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B.C. 586년에 해당되며, 열왕기에 따르면 그의 즉위 19년에 해당된다.
52:30 느부갓네살의 이십 삼년에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인이니 그 총수가 사천 육백인이었더라- 느부갓네살 제이십삼년에는 유다인 칠백사십오 명이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사로잡혀 갔다. 그래서 통틀어 사천육백 명이 사로잡혀 갔다.
52: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 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이 되던 해 십이월 이십오일, 에윌므로닥이 바빌론 왕으로 등극하면서 유다 왕이었던 여호야긴에게 특사를 베풀어 출감시키고,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 이 월 이 십 오일 - 에윌므로닥은 느부갓네살의 아들로서 B.C. 561-560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의 원 이름은 '아멜-마르둑'으로서 '마르둑의 사람'이란 뜻이다. 반면에 에윌므로닥은 '어리석은 므로닥'이란 뜻이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변경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본절에서는 시드기야 이전에 잠시 왕위에 있었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당시 유다에서는 시드기야보다 여호야긴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오게 될것으로도 믿고 있었다(28:1-4). 바벨론의 고고학 발굴에 나타난 그 당시의 기름 영수증에는 그가 '유다의 왕'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머리를 들게 하고)는 창 40:13, 20에 처음 나타나는 표현인데, 여기서처럼 '석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나사'는 '높이다', '명예롭게 하다'의 뜻을 내포하므로, 여호야긴이 석방된 뒤에 후한 대접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52:32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바빌론에 사로잡혀 있던 다른 왕들보다 윗자리에 앉혀 우대하였다.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 '바벨론에 있는 왕들'이란 말은 여호야긴처럼 볼모로 잡혀온 피정복국의 왕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를 단순히 포로로서 잘 대우해 주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벨론 왕실에서 특권을 지니고 생활하도록 배려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좋을 것 같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에윌므로닥은 어떤 연유로 인해 선왕(先王)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이때 여호야긴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52:33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여호야긴은 죄수복을 벗고 일생 동안 어전에서 음식을 들었다.
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특히 왕의 면전에서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은 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이다.
52:34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그는 죽는 날까지 계속하여 바빌론 왕에게서 녹을 받아 날마다 아쉬운 것 없이 지냈다.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31-34절)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오랫동안 살았으며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하는 사실은 회복의 때를 예언한 예레미야의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의 징후였었다. 또한이스라엘의 미래가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는 예언의 성취에 관한 전조(前兆)이기도 하였던것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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