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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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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날개 (jchlov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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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기독자료
개설일 : 2005/02/26
 

  1. 칠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4. 그가 그다랴를 죽인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5. 때에 사람 팔십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1.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2.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3.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4.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5.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2.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무렀으니
  3.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41:1 칠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이스마엘이...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암살하는 사건의 배경은 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중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다인의 관습에 따르면, 주인은 손님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 또 손님은 주인에게 신뢰를 가지고 그에 맞는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다랴는 이스마엘을 손님으로 정중히 대접했을 것이고, 이스마엘을 믿고 무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Bright). 이에 대해 클라크(Clarke)는 보다 더 강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즉 본절에서와 같이 함께 떡을 먹는 것이 단순한 식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지리였다는 것이다.
41: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식사를 하던 중에 이스마엘이 부하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다랴를 암살하고 말았다.
41: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 첫 번째 살인에 이어 또 다른 살인이 이어졌다.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몇몇 유다인들이 곧이어 살해 되었다. 이들은 미스바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의 대표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미스바에 주둔하고 있던 갈대아 군사들 중 몇몇도 살해되었다.
41:4 그가 그다랴를 죽인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본절은 그다랴 살해 사건이 사전의 각본에 따라 주도 면밀하게 진행되었음을 암시
한다.
41:5 때에 사람 팔십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깍고...몸을 상하고 - 북이스라엘의 옛 종교 중심지였던 세겜과 실로, 그리고 사마리아 등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미스바에 도착하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제사하기 위해서 가던 중이었다. 이 사실은 소제물이나 유향이란 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때가 칠월이었으니 이들은 가을의 큰절기인 초막절에 참석하고자 했을 것이다. 종교적 의미에서 7월은 신년도와 같은 것이었다. 한편 순례자들이 북쪽에서 왔다고 하는 사실은 북 이스라엘 지역에 살던 사람들 중에 적어도 얼마 정도는 B.C. 622년의 요시야의 개혁을 받아들이고 그때까지 계속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어쩌면 이들은 중앙성소에서 예배를 드릴 것을 명하고 있는 신명기의 규례들을 따르고자 했을 것이다(신12:5, 6). 또한 순례자들은 수염을 깍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는 등 슬픔과 회개의 표시를 하고 있었는데(16:6 ; 48:37 참조), 이는 틀림없이 성전이 파괴된 것에 대한 애곡의 표시였을 것이다. 전체 포로기에 걸쳐서 성전 파괴에 대한 애도는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시 74, 79편 ; 사 63:7-64:12, 애가서 등). 많은 주석가들은 성전 파괴 이후에도 성전의 존엄성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으며 성전 지대에서의 종교 행사도 계속
되었으리라 본다(Bright, Feinberg, Nicholson 등).
41: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 이스마엘은 극악 무도한 위선 행위로 위장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 역시 이들 순례자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눌 사람들에게로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Clarke).
그다랴에게로 가자 - 이를 '그다랴의 이름으로 환영한다'라고 의역해 볼 수도 있겠다(Bright). 이런 이스마엘의 말은 명령이 아니라 정중한 초대였다. 한편 이스마엘이 이들조차 살해한 원인이 본문상에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아마 이들이 유다 총독 그다랴를 방문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발각되지 않게 하려는 동기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던 것 같다. 그러나 8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쩌면 이들
에게서 양식을 얻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41: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이스마엘이...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 순례자들의 시체는 '구덩이'에 던져졌다. '구덩이'는 시체들을 감쪽같이 처분해 버리기에 적절한 장소였다(38:6). 한편 이 '구덩이'는 물이 귀한 팔레스틴의 곳곳에서 볼수 있었던 것인데, 여기다 시체를 던져 넣는 것은 매우 몰지각한 행위였다. 왜냐하면 시체에 오염된 물은 부정하여 마
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41: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 본절에는 이스마엘이 숨겨 놓은 양식을 얻기 위해 이들 순례자들에게 어떤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암시가 엿보이긴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어쩌면 이스마엘은 이들 순례자들을 볼모로 잡아서 그들 가족들에게서 양식을 갈취 하려고 했었을 수도 있겠다. 이스마엘이 이 열명의 순례자들의 목숨을 살려주고 양식을 얻고자 하였으나, 아마 이것도 원래 약속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인명이 살해된 이런 사건의 전말은 조만간에 퍼져나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이들 열 명의 순례자들도 나중에는 피살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이스마엘은 분명히 유다 땅에 남아 있을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절에는 그가 암몬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장면이 언급되는 바, 그는 이 여행을 위해서 식량을 준비하고자
했을 법하다.
41: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 약 300년 전에 유다 왕 '아사'가 미스바를 요새화하려는 일환으로 이 구덩이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왕상15:22에 따르면 아사는 북쪽 이스라엘 '바아사'왕의 영토에 있던 라마의 성벽을 허물고 거기서 얻은 재목을 가지고 미스바에 요새를 건축하였다. 오늘날의 텔 엔 나스베(Tell en-Nasbeh)를 발굴한 결과 이로 보이는 구덩이가 발견되었다(Thompson). 이 구덩이는 원래 그 지역의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저장소였으나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전쟁을
치르는 시기에 요새화의 일환으로 활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Clarke).
41: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왕의 딸들 -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되고 있다. 바벨론 군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이들을 붙잡아가지 않았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다윗 왕족이나 방백들의 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드기야의 딸들이 예루살
렘 함락 당시에 재빨리 도피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Calvin).
41: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41: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여기서는 요하난과 다른 군대 장관들이 이스마엘의 악행 소식을 듣고서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기브온 큰 물가에서 이스마엘 일당과 마주치게 되는데,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9.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또한 '큰 물가'라고 하는 곳은 깍아지른 듯한 바위 사이의 거대한 웅덩이 정도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이 기브온은 미스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4.8km떨어진 곳이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미스바로 추정되고 있는 텔 엔-나스베에서부터 기브온까지의 방향은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암몬 방향과는 각도가 약간 다르기 때문에, 틸 엔-나스베가 미스바의 위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잇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마엘
이 추적을 따돌리려는 이유에서 우회했을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Bright).
41: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이스마엘에 의해 강제로 끌려 가던 사람들은 이스마엘의 잔인성과 장차 암몬에서의 노예살이를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마엘을 징벌하러 온 가레아의 아들 요나단
과 그 군대 장관들을 대했을 때 매우 기뻐하였다(Clarke).
41: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41: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여덟 사람과 함께 - 이스마엘을 끝까지 따라갔던 자들은 아마도 그다랴 살해 사건에 처음부터 연루되었던 골수 분자들이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성공적으로 치르었기 때문에 그를 사주 하였던 암몬 왕 바알리스에게로 곧장
되돌아갔다.
41: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41:16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무렀으니-
게롯김함이란 말이 언급되고 있는데, 여기서 김함이란 사람 이름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김함은 바실래의 아들이었는데, 이 바실래란 사람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피하던 중 다윗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중에 다윗을 호위하여 요단 강을 건넜다. 다윗은 바실래를 귀족의 일원으로 초대했지만, 바실래는 연로한 이유를 내세워 그의 아들에게 그 영예를 허락하도록 요구하였다(삼하 19:31-40).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져 왕가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베들레헴 근처의 땅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로부터 이곳은 게롯김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게롯김함'이란 말의 뜻은 '김함의 소유'이다.
41:16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요하난은 그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려고 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바벨론 왕이 세운 총독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바벨론 왕의 보복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환으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약 6마일 가량 떨어진 베들레헴 근방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행로를 멈추고 예레미야에게 자문을 구하게 되었다(4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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