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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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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찌라
-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혹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 내가 야곱 중에서 씨를 내며 유다 중에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 거할 것이라
- 사론은 양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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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 또 너희의 끼친 이름은 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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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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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나에게 빌지도 않던 자의 청까지도 나는 들어주었고, 나를 찾지도 않던 자 또한 만나주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민족에게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해 주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 바로 앞장 마지막 부분에서 토로된 이스라엘의 탄원에 대한 대답의 첫 성(聲)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본 구절이다.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란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음을 받았다'는 '니드라 쉬티'(* )인데 이것은 수동태로서 '찾음을 당하였다'가 문자적인 뜻이다.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신학적으로 다소 어폐(語弊)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시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이방인도 부르신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 바울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롬 10:20).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날마다 나는 배신하는 백성을 두 팔 벌려 기다렸다. 좋지 않은 길을 제멋대로 걷는 그들, 내가...불선한 길을 행하는 - 이것은 다음절에서부터 자세하게 열거하게 될 이스라엘의 패역한 행동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배척하셨던 그리고 이방에게 그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신 전체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종일 손을 펴서 - '손을 펼친다'는 것은 초청을 뜻한다(잠 1:24).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은총 속에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다. 65: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언제나 맞대놓고 나의 화를 돋우는 백성들, 동산에서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벽돌 제단 위에 분향하는 것들,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 이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와 연관성이 있는 표현이다. 이방인들은 주로 수풀 속에서 제사 의식을 가졌다. 또한 그들은 벽돌 위에 미신적인 상징을 새기기도 하였는데 돌 대신 벽돌을 재료로 취한 까닭은 벽돌이 돌 보다 그 위에 새기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출 20:25에 보면 제단을 세울 때 다듬은 돌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벽돌 위에 미신적 주문이나 형상 새기는 것을 금하고자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제사는 그 외형적인 모양도 취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 여기 '항상'의 원문 직역은 '계속적으로'이다. 이것은 2절의 '종일' 곧 '계속적으로'와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지만 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다(신 32:21). 65: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굴무덤 속에 들어가 살며 으슥한 곳에서 밤을 지내는 것들, 돼지고기를 먹고 부정한 음식을 그릇에 담는 것들, 무덤 사이에 앉으며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1) 영매(靈媒)가 되기 위해 묘지에 왕래했던 사실(8:19)을 가리킨다(Whybray).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생을 떠난 사람의 경우 이생에 관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죽은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영매술이 유행했다. (2) 죽은 자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러 무덤으로 간 것을 가리킨다(Vitringa).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단정적으로 취하기는 어렵다.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 '은밀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추림'(* )의 원형은 '지키다', '숨기다', '숨다' 등을 뜻하는 '나차르'(* )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방의 신상을 안치해 둔 신전(Jerome)이나 지하 토굴(Delitzsch)을 가리킬것이다. 그리고 '지내며'(* , 얄리누)는 '하룻밤을 머물다'는 뜻이다. 돼지 고기를 먹으며 - 이방인들은 돼지를 대체로 식용이나 제물로도 사용하였던 반면,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용을 일절 금하였다. 이것을 알았던 신 구약 중간 시대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riochus Epiphanes)는 여호와 신앙의 포기 및 배교의 증표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한편, 돼지가 이방의 희생 제사에 사용되기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단순한 식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즉, 제물로 바쳐진 것을 먹는 것은 그 제물이 바쳐진 대상에 대한 경의를 뜻하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본문에서는 바로 이 사실도 넌지시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 여기 '국'(* , 파라크)의 문자적인 뜻은 '조각'이다. 이방 종교 의식에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 동물의 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드리는 의식이 있었는데, 본 구절은 바로 그 같은 의식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앞구절의 '돼지'를 조각내어 드리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 '가증한 물건'이란 돼지고기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65:5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물러서 있어라, 부정탈라, 가까이 오지 마라.' 하며 거만하게 떠드는 것들, 이런 것들은 날마다 나의 콧구멍에서 솟는 연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다.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말라 - 그 당시 혐오스러운 이방 예식에 종사하던 자들이 영적 오만으로 자신을 구별하였던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주님 시대 당시 위선적인 자기 의로 가득 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부류를 연상시킨다(마 9:11;눅 5:30;18:11;유 1:19). 내 코의 연기요...불이로다 - 여기 '코'(* , 아프)는 문자 그대로의 '코'를 의미하지만(민 11:20;욥 40:24) 때때로 '분노'를 뜻하기도 하는데 분노는 강한 호흡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본 구절은 이방 제사자들의 역겨운 행동이 연기가 코를 찌르고 불쾌하게 하듯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거나, 그들의 행동이 분노의 상징인 하나님의 코에 불을 붙였다는 것, 곧 하나님의 진노케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65: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찌라 - 모든 행실이 저렇게 기록되어 나의 눈앞에 있는데 나 어찌 벌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랴?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 이 표현은 왕의 포고령을 그 백성이 잊지 않도록하기 위하여 서책(書冊)에 혹은 테이블 따위에 기록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두거나 비치하던 당시의 관습을 연상케 한다. 이방 신 제사 금지와 그 금지를 어길 때에 따를 처벌에 관한 사실은 이미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 여기 '품'(* , 헤크)이란 '가슴'이라는 뜻 외에 물건 따위를 넉넉히 받기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옷의 앞자락 부분을 가리킨다(출 4:6, 7;잠 6:27). 여기서는 범죄한 이방 제사자들에게 임할 징벌이 크고 심할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65:7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산들 위에서 분향하고 언덕들 위에서 나를 모욕하는 그들의 죄를 조상들의 죄와 겸하여 벌하지 않을 수 없다. 야훼의 말이다. 내가 그들의 소행대로 톡톡히 벌하리라."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 임하기까지 세대에서 세대를 지나면서 축적되어 왔던 것을 암시한다. 65:8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혹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즙이 배어 나올 듯 싱싱한 포도송이를 보면 '복이 담뿍 들었다. 터뜨리지 마라.' 하지 않느냐? 나도 나의 종들을 그렇게 아껴 망그러뜨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위하리라.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 이 구절은 여러 원인 때문에 대부분이 상해버린 포도송이들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송이를 가려내는 작업을 연상케 한다. 나도...그같이 행하여 -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이 상해버린 포도 송이들 중에서 좋은 포도즙을 낼 수 있는 포도 송이를 가려 뽑듯이 하나님이 불경건한 이스라엘 민족 대부분을 명망시키는 중에 경건한 '남은 자'를 아껴 두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본서에는 이 사상이 반복되고 있다(1:9;6:13;10:21;11:11-16). 65:9 내가 야곱 중에서 씨를 내며 유다 중에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 거할 것이라 - 내가 야곱에게서 후손을 일으키고 유다에게서 자손을 일으켜 나의 산들을 차지하게 하리라. 그리하여 내가 뽑은 자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나의 종들이 거기에서 살게 하리라. 씨 - '거룩한 씨'란 뜻으로,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던 거룩한 땅을 다시 소유키로 되어 있는 야곱의 후손들을 가리킨다(6:13). 나의 산들 -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이 지형학적으로 높은 곳이므로 산이라 불리웠다. 65:10 사론은 양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사론 평야는 양들이 풀을 뜯는 목장이 되고 아골 골짜기는 소들의 휴식처가 되리라. 나를 찾는 나의 백성에게 이렇게 해주리라. 사론 - 지중해 연안 갈멜 산 남부 지방인데 빼어난 경관과 비옥한 땅으로 유명한 곳이다(35:2). 아골(* , 아코르) - 문자적인 뜻은 '고통'인데 여리고 가까이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고통'이란 의미가 붙여진 이유는 과거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수 7:24). '아골 골짜기'란 호칭은 성경에서 재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처소로도 사용된다(호 2:15). 65:11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그러나 너희는 야훼를 저버렸고 나의 거룩한 산은 알은체도 않으면서 행운의 신에게는 제사 상을 차려 올렸고 운명의 여신에게는 제주를 부어 바쳤다.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 '갓'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졌던 시리아 신(神)으로 이해되며 포에니시아(Phoenicia), 팔미르(Palmyra)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 숭배되었다(수 11:17;12:7;15:37 참조, J. Watts, Whybray). 이 신을 섬기기 위해 마련된 상 위에는 온갖 음식, 특히 포도주와 꿀을 섞은 술잔 등이 진설되었다고 한다(Jerome). 므니(* , 메니) - '할당하다', '세다' 등을 뜻하는 '마나'(* )의 변형이 분명한데, 많은 견해가 있지만 운명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것 같다(J. Watts, Whybray). 65:12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내가 너희를 꿇어 엎드리게 하고 모두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 내가 불렀으나 너희는 대답을 아니하였고 내가 말하였으나 너희는 듣지 아니하였다. 너희는 내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오히려 골라 하였다!" 칼에 붙일 것인즉 - 고도의 언어적 유희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여기 '붙일'에 해당하는 '마니티'(* )는 11절의 '메니'(* )와 그 원형(* , 마나)이 동일하다. 패역한 백성이 그들의 운명을 세듯 좌지 우지할 것으로 믿었던 바로 그 신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좌지 우지하신다는 것이 본 언어 유희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헛된 우상 '메니'(* )를 의지한 이스라엘의 불경건한 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65: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그런즉, 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종들은 먹겠으나 너희는 굶주리리라. 나의 종들은 마시겠으나 너희는 목이 타리라. 나의 종들은 기뻐하겠으나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자와 배척하는 자가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본절이 이스라엘 역사 속의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암시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주릴 것'이란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의 예루살렘 포위로 백십여 만 명이 기근으로 몰살한 역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불명확하다(Houbigant). 뒷문맥에 근거하여(17-25절) 본절을 다분히 종말론적 상황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좋겠다. 65:14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나의 종들은 가슴이 벅차 환성을 올리겠으나 너희는 가슴이 쓰려 아우성치고 마음이 찢겨 울부짖으리라. 심령이 상하므로 - '상하므로'의 히브리어 '솨바르'(* )는 '산산이 부숴지다', '찢어지다'는 뜻으로서 극심한 재앙으로 인해 그 마음이 크게 눌릴 때 사용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제외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마 8:12에 유사한 뜻의 표현이 사용되었다:"나라의 본(本)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65:15 또 너희의 끼친 이름은 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너희가 남긴 이름은 내가 뽑은 자들이 '주 야훼께 천벌을 받아 죽어라.' 하고 저주하면서 부를 그 이름이다. 그러나 나의 종들은 새 이름을 받으리라. 너희의...될 것이니라 - 어떤 이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 대한 저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끔찍한 저주의 사례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실례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저주하기 위해 시드기야와 아합의 이름을 사용한 렘 29:22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Whybray). 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 그리하여 지난날 암담하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내 눈앞에서 스러지리니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겠고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맹세하리라.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 환난이 잊어졌다는 것은 환난이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상에게 맹세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사라지고 참신이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복을 구하게 될 텐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본절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 이후 새로이 회복될 공동체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메시야의 통치시대의, 더 이상 고통과 슬픔 따위가 없는 완전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고 있다. 갈렙이 그 발로 밟았던 바로 그 땅을 물려받았듯이(신 1:36), 메시야와 그의 백성들은 전혀 새롭게 변화된 새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34:4;66:22;히 12:26-28;벧후 3:13;계 21:1) 65:18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나는 '나의 즐거움' 예루살렘을 새로 세우고 '나의 기쁨' 예루살렘 시민을 새로 나게 하리라.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 새로이 재건될 예루살렘 혹은 새 창조로 말미암은 천성(天城) 예루살렘에 즐거움이 넘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I will create Jerusalem to be a delight, NIV). 65: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요 그 시민은 나의 즐거움이라, 예루살렘 안에서 다시는 울음 소리가 나지 않겠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리라. 우는 소리와...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그리고 2차 적으로는 모든 구원받을 자에 대한 예언이다(25:7, 8;35:10;계 7:17;21:4).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가 없을 것이며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세에 죽으면 한창 나이에 죽었다 하고, 백 세를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벌을 받은 자라 할 것이다. 본절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최소한 100세일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 종말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 세계는 수명이란 것이 아예 없이 영원히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은 본절의 평균 수명 100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영원히'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때 해소될 수 있다. 이 해석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도 너무 일찍 죽는 현세대의 상황과 대비시키기 위해 평균 수명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 같다. 65: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사람들이 제 손으로 지은 집에 들어가 살겠고 제 손으로 가꾼 포도를 따 먹으리라. 본절 역시 포로 귀환 후의 상황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가옥 건축과 과실 재배에 관한 본절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는 새 세계에 가옥이 있고 노동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세계를 좀더 실감나게 상상케 하기 위하여 익히 알고 있는 현세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65:22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제가 지은 집에 남이 들어와 사는 것을 보지 않겠고 제가 가꾼 과일을 남이 따 먹는 것도 보지 아니하리라.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내가 뽑은 자들은 제 손으로 만든 것을 닳도록 쓰리라. 본절 상반절은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졌던 저주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신 28:30). 나무 - 자연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것 중의 하나로, 이 역시 영원한 삶을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61:3;시 92:12). 65: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아무도 헛수고하지 아니하겠고 자식을 낳아 참혹한 일을 당하지도 아니하리라. 그들은 야훼께 복받은 종족, 후손을 거느리고 살리라.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 원문 직역은 '고통을 위하여 낳지 않을 것이며'이다. 이것은 후손의 운명을 암시한다. 당시 산모가 아기를 낳을 경우, 아이는 출산 과정에서 죽기도 하고 분만이 되어도 짧은 생(生)을 살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하고 말을 마치기 전에 들어주리라. 64:7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와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친밀한 영적 교제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고 살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나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으리라." 야훼의 말씀이시다. 인간의 범죄 이후 여러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자연의 조화가 깨어지고 서로 죽이고 죽는 저주가 임했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롬 8:22).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와 같은 부조화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육식 동물의 식성이 바뀔 것이며 심지어 저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오는 창 3장을 연상케 하는 뱀까지도 더 이상 파괴자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곧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조성된 적대감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로 청산될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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