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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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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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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성부 하나님은 종 이사야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종에게 임하셨다. 성부께서 이사야에게 성령을 부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며,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에게 석방될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신 순간에도 그 사역의 공적 인정을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바 있다(마 3:16;요 1:32). 기름을 부으사( , 마솨흐) -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된다. 이스라엘의 왕(삼상 16:13),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 등은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 16:1-5 주제 강해, '기름 부음의 영적 의미' 참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 45:7;히 1:9 등에도 나온다. 가난한 자( , 아나윔) -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정확하겠다(마5:3).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해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시 9:12,18).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마음이 교만한 자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고 풍자하셨고 반대로 그를 알아본 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이자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눅 10:2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레 25:10;렘 34:8,9). 갇힌 자에게 놓임 -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롬 6:18;7:24,25;히 2:5) 혹은 영적으로 장님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킨다(Ewald). 눅 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 , 쉐나트 라초 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이다.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레 25:9,10).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한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한다('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하나님의 신원의 날 -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벧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바로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요 12:47;고전 15:52;고후 4:17;계 21,22장).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재 대신 화관을 씌워 주시고,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또한 괴로운 마음 대신 찬송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그때에 의로우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의로운 나무"라고 불리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신 튼튼한 나무처럼 굳게 뿌리를 박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 직역은 '아름다움을 주어 그재를 대신하며'이다.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페에르'( )는 본래 여자들이 머리에 쓰던 아름답고 화려한 관을 말하며, '희락의 옷', '찬송의 옷'과 함께 즐거운 축제 때를 연상시킨다(G.W. Grogan).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재를(에 4:1,3;렘 6:26)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희락의 기름 -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내나는 값 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다(시 23:5;45:7;암 6:6). 그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57:9). 공적인 재난 혹은 슬픔의 때에는 결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삼하 14:2). 찬송의 옷 - 절망에 빠진 자를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다. 의의 나무( , 엘레 하체데크) - '나무'에 해당하는 '엘레'( )는 팔레스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다(이런 맥락에서 탈굼역, 제롬역, 시리아역 등은 이을 '강한 것' 혹은 '힘센 것'으로 번역했음). 61: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래 전에 폐허가 된 곳과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곳, 황폐한 성읍들과 무너진 채로 버려졌던 곳을 다시 세우게 될 것이다. 대대로 무녀져 있던 것들 - 유다가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유다 본국 팔레스틴 땅과 성읍이 황폐해졌던 사실을 가리키며(렘 20:6;28:6), 나아가서는 본장 전체의 문맥상 메시야의 도래가 있기 전 혹은 메시야를 영접하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낸다. 61:5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그때에 이방 사람들이 그들의 양 떼를 먹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다. 이는 새로이 회복될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제사장 나라로서(추 19:6) 우뚝서게 되며 이방인들로부터 물적 조력을 받을 것을(60:10)가리킨다고 해석되기도 하나,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더 나을 것 같다. 즉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편 입된 이방인들 가운데서, 마치 아론의 후손이 이스라엘 중에서 감당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Delitzsch). 61: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 그때에는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서 "주님의 제사장", 또는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때에 열방의 재물과 이방인의 부귀영화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61:7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 그들은 전에 받았던 수치를 갑절로 보상을 받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한 대가로 큰 기업을 받고 영원히 기뻐하게 될 것이다. 바벧론에서 당한 고통에 비교해볼 때 메시야 왕국의 도래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은 더욱더 엄청나게 크고 값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과 메시야 사역으로 인한 축복을 단순히 비교한다는 의미보다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 그 무엇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1차적으로는 포로지의 이스라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 여기 '능욕'에 해당하는 '켈리마'( )의 문자적인 뜻은 '혼돈', '혼란'이지만 바로 앞 구절과 동의적 평행을 이룸을 고려할 때 '수치', '슬픔' 등으로 번역함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분깃'도 메시야의 구속 사역으로 얻게 될 구원의 축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61: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하나님은 공평을 사랑하시며 불의와 약탈을 미워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를 위해 수고한 성도들에게 신실하게 보상해 주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 '대저'는 '키'( )로서 앞절에 진술된 바벧론 포로 생활로고통받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이 배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이다. 하나님이 그같이 하실 이유는 그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의 손을 빌어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도 공의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바벧론의 교만과 불의의 강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다.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며( , 세네 가젤 베올라) - 바벧론이 유다 백성을 압제하고 강탈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월권 행사를 도모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그 영적 우매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이방이라는 수단을 통해 받았다. 그러나 수단으로사용된 이방 세력은 본연의 임무인 징벌의 집행 외에 과도한 불의를 저질렀다. 바로 이 사실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의해 체크되었던 것이다. 61: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그때에 그들의 자손이 열방에 알려져 유명하게 되고, 만민 중에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을 보는 사람들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손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알리리니 - '구별되게 하리니' 혹은 '명예롭게 하리니'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시67:2;76:1;79:10등의 용례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은 신랑에게 관을 씌우시고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는 것처럼, 성도들에게 구원의 관과 의의 옷을 입혀 주실 것이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의의 겉옷 - '겉옷'은 입은 옷 위에 걸쳐 몸 전체를 가리다시피하는 느순한 망토 따위를 가리킨다(시 132:9;계19:8). 이 땅토는 추위 또는 외부로부터의 침해 따위로부터 몸을 보하하는 구실을 한다. 여기서 이 망토가 의미하는 바는 '의'이다. 이 '의'는 이스라엘의 자격,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덧입히신 그 무엇으로 메시야의 구원 사역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은 스스로 영적 파멸로부터 구원하거나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로 구속 사역을 이루게 하시어서 그 사역을 근거로 그들을 보호하는 영적인 옷을 입히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다. 따라서 영적 이스라엘, 교회는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1: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 그때에 하나님께서 땅과 동산에 싻을 내듯이, 그들에게 모든 나라 앞에서 공의와 찬송의 샘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땅이 싹을 내며 - 본서 저자가 여러 차례 사용한 이미지(45:8;55:10,11)로, 의미하는 바는 적시에 내린 단비로 촉촉해진 땅에서 새싹이 움트듯이, 메시야가 오시면 진리와 의가 돋아 자라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의 택한 백성을 그곳으로 모으시는 목적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찬양을 받기 위함이다. 본절에서의 찬양은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구별적, 거룩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칭송을 듣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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