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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추억 - 1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후반, 부산이었습니다.
전쟁 통에 몰려든 수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부모가 없는 고아들도 상당히
많았었는데, 다 고아들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거리거리마다 구걸을 하는
어린애들이 무척이나 많았든 시절이었죠.
당시, 부산 제일의 번화가, 광복동과 남포동 거리의 어느 극장 앞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구걸을 하던 애들과는 달리 꽤 말끔한 차림새의 어느 소년 한 명이
매표소 앞에서 표를 사는 누군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고, 잠시 후,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극장 안으로 사라집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요?

엄마의 손을 잡고 난생 처음 극장이란 곳을 다녀왔었던 그 소년.
아직 학교도 다니기 전인데, 그 큰 스크린속의 세상은 너무나도 황홀하였답니다.
어느 날 오후, 어른들의 손을 잡고 들어가면 언제나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걸
눈치 챈 그 소년은 엄마 몰래 극장 앞으로 다시 가, 데이트를 하던 처녀총각
커플에게 말을 걸어 함께 들어가는 데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는 틈이 날 때마다 반복이 되던 극장 행과 입장 구걸.
그러나 겁 없는 소년의 그런 행각은 결국 오래가진 못합니다.
우선 극장입구의 기도들이 소년의 얼굴을 알기 시작하였고, 또 어느 날 저녁에는
극장 안에서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애가 없어졌다고 집안이 온통 벌컥 뒤집히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날 밤, 무척이나 많은 매를 맞게 되었다는군요.

요즈음 같으면 어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유괴범이나 또는 애들을 노리는 성도착자 같은 범죄자들을 극장 앞에서 만나지
않을 걸 큰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수가 없겠죠.
당시, 도시 전체가 어두웠던 그 부산 시내에서 광복동 거리와 남포동 거리는
밤만 되면 얼마나 휘황찬란했었던지....
거기다 그 밝았던 거리의 극장 앞은 언제나 인산인해였었습니다.
당시에 그곳에서 보던 영화들을 이젠 어른이 된 그 소년이 오늘 날 기억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만, 그런데 간혹, ‘셰인’(Shane. 1953)이나
‘오케이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1957)같은 서부영화들을
그 때 본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찌 된 일일까요?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그 소년의 어머니는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을 어찌나
좋아하셨는지, 그녀가 나오던 '해녀‘(Boy On A Dolphin. 1957)를 소년과 같이
보고 나온 후, 길에서 그녀를 무척이나 칭찬하기도 했었고,
또 스펜서 트레이시의 ‘산’(The Mountain. 1956)을 보고서는 형제는 항상 서로
잘 보살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복동 거리의 그 극장들의 위치는 어른이 된 그 소년이 아직도 정확히
기억을 한다고 하는데, 허지만 극장들의 이름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하네요. 설마 ‘광복 극장’은 아니었겠지요?

1960년대 초에 소년은 서울로 이사를 갑니다. 하지만 1960년대 중 후반,
그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방학 때 간혹 간혹 다시 들렀던 부산의
그 광복동과 남포동 거리는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다만, 어릴 때 어른들에게 입장 구걸을 하던 그 극장들보다 용두산 공원 쪽
(동쪽)으로 가까운 곳에 새 극장이 하나 더 생겼었는데, 이 역시도 이름이 기억
나진 않지만(현대 극장?), 사춘기 시절에 그곳에서 본 ‘대 모험’(Les Aventuriers.
1967)이나 ‘맥켄나의 황금’(Mackenna's Gold. 1969)등은 아직까지도 그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 올려져 있다 하네요.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던 1970년대서부터 부산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고 하니, 결국 부산 시절의 “영화관의 추억“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일부에
국한이 된 셈인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돌아가고픈 때가 어찌 보면 (생각이 별로
없던) 바로 이 시절이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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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g4337 2009.03.0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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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던 '양지극장'으로 할머니 손을 이끌면서 영화가 바뀔 때마다 극장에서 살았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보았던 많은 영화들이 생각나는 것은 별로 없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 금발의 나타샤나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생전에 꼭 다시 보고싶다고 하셨던 셰넌도어,. 님의 블로그에서 좋은 영화 많이 구경하고 그 때 생각도 할 수 있어서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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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2009.03.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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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극장이라면 연신내의 극장을 말씀하시나요?
여하튼 반갑구요, 또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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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추억 - 2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중구)로 이사를 온 후, 중학교를 다닐 때까진 영화를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도시를 옮겨온 이사와 전학이 준 스트레스에다, 또 그나마 조금은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집안의 형편도 어느 정도 이해를 했었던 모양이다.
남산입구의 퇴계로 와 을지로가 연결이 되는 지금의 삼일로가 개통이 되기 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언덕골목에서 주로 놀았던 초딩 때엔 근처에 있던 명동 입구의
‘중앙 극장’ 앞도 자주 배회 했었는데, 물론 입장료가 없어 들어가진 못했었다.
부산에서와 같이 표를 사는 커플들에게 입장 구걸을 하기에는 너무 커버렸고.....
을지로에서 아현동으로 전차를 타고 통학을 하던 중학교 시절엔 간혹 걸어서
귀가를 하면서 서대문 쪽에 있던 ‘서대문 극장‘이나 ’화양 극장‘등도 가보긴
했었는데, 그리 자주 있던 일은 아니어서 그런지, 오히려 부산 시절보다도
더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리고 그 시절엔 동네에서 좀 잘산다는 집에 저녁마다 들려서 보던 흑백 TV의
추억이 오히려 영화관보다도 더 강한데, ‘보난자’(Bonanza. 1959-1973) 나
‘전투’(Combat. 1962-1967)시리즈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지금의 롯데 백화점 본점이 있는 소공동 방향에서 명동으로 진입을 하면
유네스코 회관을 좀 못가서 왼쪽에 ‘명동 극장’이 있었는데, 학생들의 극장출입을
단속하던 선생님을 피해 맨 꼭대기의 좌석에 앉아서 몰래 보던 ‘멋대로 놀아라’
(Viva Las Vegas. 1964)의 앤 매그릿(Ann Magret)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그리고 ‘고백‘(The Sandpiper. 1965)에서의 리즈 테일러(Elizabeth
Taylor)같은 탑 스타들은 정말로 그 시절의 환상적인 우상들이었다.
당시 70mm 영화를 유일하게 상영을 하며 ‘벤 허’(Ben Hur.1959)등의
단체관람으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척이나 많이 찾았던 ‘대한 극장‘ 건너편
골목에서 동시상영을 하던 어느 작은 극장 이름도 이젠 기억이 나지 않지만(아테네?),
그곳에서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보았을 ‘바바렐라’(Babarella. 1968)에서의
제인 폰다(Jane Fonda)의 섹시한 나신은 두고두고 내 십대 청춘의 성 호기심을
오랫동안 자극했었다.

잠시 용산 우체국 뒤에서 살 때는 근처의 이 삼류극장이었던 ‘성남 극장‘과
‘용산 극장‘ 그리고 ’남영 극장’에도 자주 갔었고, 멀리는 남대문 시장 입구의
‘남문 극장’과 광화문 도심의 ‘아카데미 극장’까지도 원정을 갔었지만,
그래도 ‘남영 극장’에서 보던 ‘팡토마’(Fantomas. 1964)나 ‘파리 대탈출’
(La Grand Vadrouille. 1966)에서의 루이 드 휘네(Louis De Funes)가
던지던 웃음폭탄이 당시의 가장 잊지 못할 유쾌한 추억의 하나이다.
지금은 단관극장들이 없어지면서 영화관의 환경자체가 아예 달라져 그럴 수
없겠지만, 당시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영화 단체 관람은 1960년대 그 시절에
무척이나 많았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광화문에 갓 오픈을 하였던 세종 문화회관에서도 영화를 볼 수가 있었는데,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
1967)의 단체 관람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가 같은 해에 주연을 하였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을 그곳에서
다시 단체 관람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하튼, 학생들의 단체 관람의 장소도 참으로 다양하였는데,
‘단성사’에서 보았던 ‘나바론 요새’(The Guns Of Navarone. 1961).
‘웨스트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61).
‘중앙 극장’의 ‘왕 중 왕’(King Of Kings. 1961), '로마제국의 멸망‘(The Fall Of
The Roman Empire. 1964), '스팔타커스‘(Spartacus. 1960).
‘국제 극장‘의 ‘북경의 55일’(55Days Of Peking. 1963),'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s Of River Kwai. 1957), ‘클레오파트라‘(Cleopatra. 1963).
‘스카라 극장’에서의 ‘몬도가네’(Mondo Cane. 1962), ‘엘 시드‘(El Cid. 1961)등등.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제일 자주 갔었던 곳은 역시 ‘대한 극장’이 아니었나 싶다.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 '대 탈주‘(The Great Escape. 1963), '닥터 지바고'(Dr. Zhivago.
1965) ‘지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 1962), ‘7인의 신부‘(Seven Brides
For Seven Brothers. 1954)등등,
아마 ‘벤 허’(Ben - Hur. 1959)는 두 번 이상 보러 갔을 걸?
한데 흰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에게 극장 앞에서 말을 걸던 용기 있던 소년들의
모습이 더 눈에 선한 건 왼 일일까?

영화관 출입이 자유로워진 대학생이 되어서는 이 삼류극장 못지않게 일류극장인
개봉관도 자주 찾았는데, 그건 아마도 만만치 않게 돈이 들던 데이트의 영향이
가장 컸었던 것 같고, 그래서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 극장’(아래 사진)에서 보았던
‘러브 스토리’(Love Story. 1970)나 ‘대부‘(The Godfather. 1972),
그리고 '단성사'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 Sundance Kid. 1969),
또 '중앙극장'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 1968)과 ‘이지 라이더‘(The
Easyrider. 1969), ’엘비라 마디건‘(Elvira Madigan. 1967),
아울러 종로 2-3가 사이의 ‘허리우드 극장’에서본 ‘섬머타임 킬러’(The Summmer
time Killer. 1972)등은 누구하고 보았는지 기억이 날 듯도 하다.
서울에 처음 와서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삼일고가 도로 아래 ‘중앙 극장‘에도
자주 가면서 알랑 드롱이 나오던 수많은 프랑스 영화들을 보기도 하였는데,
하지만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역시 담배냄새나 (쥐)오줌냄새 등에 찌 들은
이 삼류 극장을 갈 수밖에 없었고, 을지로 6가에 있던 ‘계림 극장’도 그중의
하나였었다. 그런데 당시에 간혹 가던 모 극장은 동성애자들의 작업장이라는
소문을 듣고 나서부터는 아무리 좋은 영화를 해도 다신 들어가질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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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추억 - 3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취직이 되면서 약 3년 동안 출근을 하던 중구 인현동
사무실 근처에는 충무로도 물론 가까웠었지만, ‘스카라 극장‘ 과 ’명보 극장‘
그리고 ‘국도 극장‘ 도 가까이 있었는데, 퇴근 후 술 먹느라고 바빠서 그랬는지
당시에 그 동네에서 영화를 본 기억은 별로 없지만, 대신 1974년, 한국 영화계에
흥행 신기록을 수립하던 화제작, ‘별들의 고향’을 보기 위해서 극장 옆 골목으로
이어진 몇 백미터의 줄 끝에 섰던 기억은 나는군요.
그리고 정작 이직을 하고나서 한참 후에 ‘명보 극장’에서 본 ‘캣 피플’(Cat People.
1982)의 나스타샤 킨스키(Nastassja Kinski)의 청순미는 아직도 또렷하답니다.
‘스타 워스‘(Star Wars)를 개봉하던 ’피카디리 극장‘에는 결혼 후, 봉사를 한답시고
큰 애를 안고 가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The Empire Strikes Back. 1980)등을
보기도 했었는데, 큰 애는 오히려 ‘대한극장’에서 본 ‘백야’(White Nights. 1985)를
더 잘 기억하고 있더군요.

한 때, 미 8군의 주요 PX 에 AV제품을 납품하면서 최신 영화들을 보러 기지안의
극장을 갔었는데, 그 당시의 영어실력이면 80%이상은 이해를 하리라는 나의 기대
와는 달리, 정작 50-60% 밖에 알아듣지 못하던 영화대사에 무척이나 실망을 하고,
이후, 영화 비디오테잎을 계속 리와인드(RW)해가면서 더욱 더 영어 공부에 분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이전서부터 열을 올리고 공부하던 이 영어가 나의 인생 진로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한데, 중 고등학생 시절에 즐겨듣던 동아 방송
(DBS)의 ‘스크린 영어’ 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그랬지만, 영화 대사들을 통해서 배운
‘살아있는 영어‘야 말로 아직도 많은 장면들과 함께 생생합니다.
저는 지금도 영화나 미드를 통해 영어공부를 하라고 추천을 하는 편이죠.
시대가 변해가면서 이제 영화관의 모습들도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대한 극장‘같이 스크린의 좌우 폭이 50미터는 넘는 듯하여 70mm 대작들을 보기에
너무나 좋았던 대형 스크린들은 다 사라지고, 이제 올망졸망한 작은 스크린들이
한 빌딩에 여러 개가 있는 복합 상영관(Multiplex)만이 존재하는 듯한데,
강남 역 근처에 있는 그런 극장들에서 본 ‘반지의 제왕‘시리즈나 ‘우주 전쟁‘등이
가장 최근의 ‘영화관의 추억‘이 되는군요.

세상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우린 지금 우리가 어린 시절에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잘 살고 있죠.
HD급 화질의 프로젝터와 120인치 스크린을 천장에다 매달고, 8개의 스피커를 놓아
아파트 거실에다 홈 시에터를 꾸민 후 DVD로 다시 본 ‘셰인‘은 그러나 부산의 그
시절이 주었던 설레임과 감흥을 다시 가져다주진 않았습니다.
‘오케이목장의 결투’도, ‘대 모험’도, 그리고 ‘맥켄나의 황금’까지도 다 마찬가지였죠.
왜 그럴까요?
케이블 방송의 유료 영화채널을 통하여 일 년에 평균 약 300편 정도의 영화를
보기 시작한지도 어느새 10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근래에는 5.1채널은 기본이고 HD 방송도 시작을 하여 홈 시에터와 연결을 하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제법 그럴듯합니다.
이러다 보니 바람직한 현상은 물론 아니지만 영화관과는 자연히 거리가 더
멀어지는 듯한데, 그런데 이렇게 TV로 본 영화들의 제목은 너무 빨리 잊어 먹어서
몇 달만 지나면 본 영환지, 안 본 영환지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더군요.
이 역시도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들중의 하나가 될까요?

내가 아끼고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인 ‘마이 디브디 리스트’(My DVD List)
http://mydvdlist.co.kr/)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소장하고 있는 DVD뿐만 아니라
자기가 본 영화들도 정리를 하게끔 ‘마이무비’라는 기능이 있어, 시간이 날 때
마다 조금씩 평생에 본 영화들의 평점도 매겨 가면서 리스트 업을 하고 있는데,
아직 3,000개 정도도 다 채우질 못하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평생에 본 영화들은 전부 몇 개나 될까요?
최소한 오륙천 편은 넘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정리를 하려니 제목들이 생각나지
않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네요.
그러나 조만간 이‘마이무비’에 5,000개 이상의 영화는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예전에 본 영화 제목들은 잘 생각이 나질 않더라도,
앞으로 볼 영화들이 또 상당히 많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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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Usual Suspect 가 된 사연.
DVD 2.0 잡지에서 2005년7월호의 특집기사로
“10대에서 60대까지의 DVD 매니아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어쩌다 50대의 대표로 추천이 된 모양이다.
(별로 유쾌하지도 않게, 이제, 나이까지도 들통이 났다)
어쨌든 “매니아”라고까지 부를 정도는 아니라서
취재를 일단 사양했더니만 마땅한 사람이 없다나?
2005년 6월9일,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 날,
영화, 'The Usual Suspects'의 DVD 표지(아래 사진)를 갖고 와서는

가운데 서있는 배우,Gabriel Byrne (1950, 더블린)과
똑 같은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너무 유명한 DVD 표지 라) 별로 마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 달, 특집기사 의 Concept 이 그렇다는데 어찌하랴.........
반듯하게 매고나간 넥타이까지 일부러 헝클어지게 하고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그래서 그 영화 속의 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이 깨끗한 사나이가 바로 졸지에 The Suspect 가 되고 말았다.
(아래가 바로 문제의 그 기사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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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마뇨 2005.12.2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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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리십니다^^
가끔 이곳을 찾아 몰랐던걸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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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Y 2005.12.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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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진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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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2005.12.2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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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또 자주오시고 더욱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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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2006.01.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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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카..추카...ㅎㅎㅎ
넘 멋지시네요...좋은그림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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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6.06.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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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좋은 음악...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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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ong7@Y 2008.11.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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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회생시키는 옛 유녀시절을 김재건씨와 같은 영화에 빠져서 남포동및 서면을 열심히헤매고다닌 시절을 .....아무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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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건의 블로그 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Welcome to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

영화는 흔히들 '종합 예술' 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참으로 많은 친구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음악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음악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친한 친구중의 친구입니다.
무성영화 (엄밀히 말해 대사가 안 들리는 영화) 시절에도
피아노 한 대 이건 , 또는 오케스트라가 영화관에서 직접 연주를 하건
영화 음악은 분명히 존재 하였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없는 영화는 오래전서부터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것은 감독의 몫이지만, 결국에 관객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오직 영화음악뿐이라고 어느 유명한 감독도 말했었지만,
영화가 진행 중인 상태를 무언으로 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음악뿐입니다.
또 대사 없는 장면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음악 밖에 없죠.
신경을 자극하는 그 현악기의 무섭고 강한 선율이 없는 알프레드 힛치콕 감독의
명화, '싸이코'(1960)를 상상해본다면, 과연 음악이야말로 영화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것이 금방 이해되실 것 입니다.
영화음악은 이제 영화음악 그 자체의 한 장르에만 머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젠 어떤 형태의 소리와 음악도 마음만 먹으면 어떤 장면이건 다 삽입을 할 수 도
있고, 또 영화에 나왔던 주제곡이나 삽입 음악들도 대중음악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되었으니, 굳이 영화음악이라고 따로 구분할 필요조차 없어진
그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 입니다.
영화음악도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많은 변천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한 대나 기타하나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100명이상의 풀 오케스트레이션 연주로 웅장함을 더하게 하는 대작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의 발달로 신서사이저 같은 전자악기가 여러 악기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1960년대 중반서부터는 이런 복잡한 과정의 오리지널 스코어(OS)는
아예 만들지도 않고, 기존에 발표된 팝송들을 몇 십 곡씩 삽입하면서 전체 영화음악을
대신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다보면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곡인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사회는 바로 이런 궁금증들도 쉽게 풀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이 해설을 너무 엉터리로 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꽤 안타깝기도 하였구요.......)
어쨌든 제가 쓰는 영화 음악 이야기들 가운데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노래 제목이나
또는 숨은 뒷 이야기들이 많을 것 이라는 걸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영화나 음악의 전문 용어 등은 가급적 삼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가급적 아주 쉽게 쓰도록 할 작정입니다.
지루하지 않도록 글과 관계된 영화장면 사진 등도 많이 올리겠습니다.
모두 200여 편이 넘는 제 이야기들을 시간 나실 때마다 다 찬찬히 읽어보시고
의문 나는 점 등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011-411-5662)
자기가 뭔데? 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제가 과거에 썼던 컬럼 이나 신문 기사 등을
별도로 또 올리도록 하겠으니 자격을 심사해주세요.
FM 방송국에서 거의 7-8년가량 한 방송은 이제 그 흔적도 별로 없네요..
대신, 이 곳의 글들을 모아서 (멋진 부록과 함께)출판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오류 없이 정확히 쓰기위한 노력과 검증을 배가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영화와 또 그 영화음악들로 부디 좀 더 풍성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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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Y 2005.04.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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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안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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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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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간절히 원했던 올드팝.. 여기 다 있었네요...
너무 반갑고 좋아서 마구마구 퍼날랐어요.. 괜찮겠죠..?
아참,,
고마움표시 별 꽉꽉 찍어줬답니다..
좋은 자료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늘 행복한 사람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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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2007.02.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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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블로그 입니다. 재건씨의 해박한 영화 지식,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영화정보.. 정말 잘보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로도 퍼날르고 있는건 다 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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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2007.02.2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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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이 블로그의 글들은 언젠가 출판이 될 예정이니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도록 퍼가시는 글에는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주시길 모든 분들에게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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