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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 Vento Di Primavera 음악적인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2008.10.07 18:16 | 영화음악-1950년대 | 제이

http://kr.blog.yahoo.com/jaygunkim/1460822 주소복사

물망초 / Vento Di Primavera 음악적인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58년/ 감독: Giulio Del Torre + Arthur Maria Rabenalt / 주연:

Ferruccio Tagliavini + Sabine Bethmann / 음악: Willy Mattes /103분



1959년, 병마에 쓰러지기 전까지 모두 9편의 영화에 출연을 하면서

마리오 란자(란짜 / Mario Lanza. 1921-1959. 미국)

누려오던 그 대단한 인기의 영향도 컸었겠지만,

그러다보니 성악의 본고장, 이태리가 자랑하던 또 한명의 유명한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1913-1995.이태리)

1942년부터 가수로 잠깐 출연을 하는 단역을 포함 해 모두 7편의 영화에

등장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배역을 맡았던 이 작품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유독 큰 반응을 얻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에서 태어나, 팔마(Parma)에서 공부를 하며,

성가대에서 줄곧 활동을 하다, 25세 때인 1938년, 피렌체의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뒤, 같은 해, 플로렌스에서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eme)을 통해

데뷔를 한 탈리아비니는 1942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로, 1947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1950년에는 런던의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

진출을 하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1965년에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였지만, 이 후, 카네기홀에서 1970년대에

매년 리사이틀을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였는데, 그의 전성기는 역시 1940년대

후반서부터 1950년대 후반사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1941년에 소프라노, 피아 타시나리(Pia Tassinari)와 결혼을 하면서, 둘이 함께

수많은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1968년에 서울 시민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함)



할리우드 영화에 다시는 출연을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조상의 나라, 이태리로

이사(1957년5월)를 온 마리오 란자를 대신할 흥행카드를 찾던 각국의 영화계에서

특히, 독일(당시 서독)과 이태리가 탈리아비니를 염두에 두고, 합작 영화를 기획

하였는데, 독일 측이 먼저 제안을 해서 그런지 독일어로 제작을 하기로 하고,

감독도 양국에서 각각 한명씩 선임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독일 측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르투르 마리아 라베나르트(Arthur Maria

Rabenalt. 1905-1993. 오스트리아)
가 그리고 이태리에선 줄리오 델 토레(Giulio

Del Torre. 1894-1968. 이태리)
가 나서 공동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시나리오도 두 개가 만들어졌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1935년에 이태리

에서 만들어진 아우구스토 제니나(Augusto Genina. 1892-1957.이태리) 감독의

영화, ‘날 잊지 말아요‘(Non Ti Scordar Di Me)를 근간으로 하여 리메이크하는

방향으로 제작이 되었다.

따라서 주제곡 역시도 그 때의 동명 타이틀곡으로 자연스럽게 결정이 되었지만,

역시 페루치오 탈리아비니의 열창과 또 기대이상의 그의 연기가 호평의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혼자서 아들, 디노(Dino/Massimo Giuliani)를 키우던 이탤리언 성악가,

알도 모라니(Aldo Morani/Ferruccio Tagliavini)는 (디노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업가의 비서, 엘리자베스(Elizabeth/Sabine Bethmann. 1931. 독일)

에게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되고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다이애나(Diana/Lauretta Masiero)란 여자와의 삼각관계 때문에

연인, 엘리자베스를 떠나게 하였던 독일인 사업가, 루디(Rudy/Erich Winn)

다시 등장을 하면서 알도와 엘리자베스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데,

예전의 관계를 다시 복원하고자 하는 루디 와 친 아들 같은 디노가 있는

알도 사이에서 과연 엘리자베스는 어떤 결정을 할지....

독창회에서 괴로워하며 노래를 다 듣고 나서 극장을 빠져나가는 엘리자베스를

무대에서 바라보는 알도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아래 동영상)



에도알도 디 카퓨아(Edoardo Di Capua)가 작곡한 ‘오 마리‘(Oh Marie/Maria

Marie)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주옥과도 같은 8곡의 명곡들이

모두 다, 탈리아비니의 음성으로 등장을 하는 이 작품에서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를 하면서 또 이 영화를 대표하는 곡은 역시 아래의 두 곡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1935년의 동명 타이틀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유 때문인지,

역시 자연스럽게 같은 제목의 ‘날 잊지 말아요‘(Non Ti Scordar Di Me)

그래도 제1의 주제곡 역할을 하면서 이 영화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곡이 되었다.



Partir le rondini

dal mio paese freddo e senza sole,

cercando primavere di viole

nidi d'amore e di felicita

la mia piccola rondine parti,

Senza lasciarmi un bacio,

senza un addio parti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e legata a te

io t'amo sempre piu

nel sogno mio rimani tu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e legata a te

c'e sempre un nido nel mio cuor per te

Non ti scordar di me



탈리아비니는 무대에서 이 노래 직전에 그 유명한 ‘돌아오라 쏘렌토로(Toma A

Surriento / Come Back To Sorrento)‘도 부르지만(위의 동영상), 1902년에

이곡을 작곡하였던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Ernesto De Curtis. 1875-1937.

나폴리)
가 바로 이 ‘날 잊지 말아요‘(Non Ti Scordar Di Me)도 1935년에 작곡을

하여 발표를 하였었다. 이곡은 ‘두 번째 카루소’(Caruso Secondo)라는 호칭을

받았던 테너,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 이태리)가 즐겨

부르면서 2차 세계대전 전부터 유행을 하기 시작을 하였는데, 그 질리가 직접

출연을 하였던 동명 타이틀의 1935년도 영화(아래 동영상)뿐만 아니라, 이 후

'맘마‘(Mamma/1941) 에도 삽입이 되었었지만, 아무래도 리메이크 작품인 이

‘물망초‘를 통해 더욱 더 세계적인 명곡이 되었다.

미성의 소년 가수, 로베르티노(Robertino. 1947. 로마)의 버전도 우리나라에선

한 때 인기를 얻었었고, 박 인수님을 비롯한 국내의 성악가들의 단골 선곡 메뉴

이기도 하였는데, “키스도 남기지 않고, 안녕의 인사도 없이,

나의 작은 제비는 날아갔네.

나를 잊지 말아요......

당신과 이어진 나의 인생.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언제나 자라겠죠. 나를 잊지 말아요......
“ 라고

우리말 가사로 번안이 되어 불려 졌었다.


* 1935년도의 영화, ‘날 잊지 말아요‘(Non Ti Scordar Di Me)의 장면:


* 파바로티 와 도밍고 버전:





자니 도렐리(Johnny Dorelli)도 불러서 1958년도, 이태리의 산레모 가요제를

석권하였던 그랑프리 곡, ‘볼라레‘(Volare/ Nel blu di pinto di blu)

같은 해,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에서도 이태리의 대표곡으로 출전을 하여

3위로 입상을 하였었는데, 역시 이 영화 때문에 세계적으로 더욱 더 유명한 곡이

되었다.

[1961년의 유명한 깐쪼네, ‘알딜라’(Al Di La) 역시도 매우 비슷한 족보이다.]

당시의 인기 가수이면서 한편으론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하였던

도메니꼬 모두뇨(Domenico Modugno. 1928-1994. 이태리/아래 동영상)


직접 작곡을 한곡인데, 음악이 히트를 하면서 동명 타이틀의 영화, ‘Nel blu di

pinto di blu’ (영어로 ‘In The Blue Painted Blue')가 1959년도에 만들어졌고

모두뇨가 직접 출연도 하였다. 영어로 ‘To Fly' 라는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이 ‘볼라레‘라는 단어는 ‘볼라레 항공사’가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또 친숙해졌는데, 한편, 이곡은 미국의 빌보드차트에 처음으로 상위랭크가 되고,

또 ‘올해의 노래’로 그래미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최초의 깐쪼네(Canzone)라는

영광스런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 작곡자 자신인 Domenico Modugno 의 ‘Nel blu di pinto di blu’ (Volare)



Penso che un sogno cos non ritorni mai pi

Mi dipingevo le mani e la faccia di blu

Poi d'improvviso venivo dal vento rapito

E incominciavo a volare nel cielo infinito

Volare, oh, oh!

Cantare, oh, oh, oh, oh!

Nel blu, dipinto di blu

Felice di stare lass

E volavo, volavo felice pi in alto del sole ed ancora pi su

Mentre il mondo pian piano spariva lontano laggi

Una musica dolce suonava soltanto per me

Volare, oh, oh!

Cantare, oh, oh, oh, oh!

Nel blu, dipinto di blu

Felice di stare lass

Nel biu, dipinto di blu


* 이 곡이 나오는 영화 속의 장면:



*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집시 킹스(Gypsy Kings) 버전:





이 영화의 제목인 물망초의 꽃말은 이 꽃의 일반적인 영어 명칭 그대로인,

"날 잊지 마세요.(Forget Me Not)“ 이다.

사랑을 위해 꽃을 따서 바치려다 익사를 하게 된 연인이 남긴 마지막 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혀진 사람이 가장 슬프다는데.......

그러나 전설속의 이런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는 이미 구 시대의 골동품같이

느껴지는 시대가 된 듯하다. 특히 21세기가 되면서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사랑의 풍속도는 더욱 자유롭고 더욱 개방적이 되면서, 이젠 “쿨 하게 만나고,

쿠울하게 헤어지자”는 인스탄트 식의 사고방식 속에서 “제발 날 빨리 잊어 달라.“

만이 존재할 뿐인지......

그래서 내 곁을 떠나도 좋으니 "부디 날 잊지 만 마세요.“ 라는 이런 반 세기전의

주인공, 모라니 의 구시대적 사랑 고백은 이제 페루치오 탈리아비니의 LP 레코드

만큼이나 귀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젠 죽어다 깨어나도 특히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다시 만들어지지

안 을 테니까 말이다.




Jay.236.Oct.'08.

로마여 안녕 / Arrivederci Roma 음악적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2008.04.25 14:41 | 영화음악-1950년대 | 제이

http://kr.blog.yahoo.com/jaygunkim/1460786 주소복사

로마여 안녕 / Arrivederci Roma 음악적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58년/ 감독: Roy Rowland /주연: Mario Lanza + Marisa Allasio

음악: George E. Stoll 외 / 107분



인기 스타치고 카리스마가 없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뮤지컬 영화계의 독보적이었던 미국 메트로-골드윈-메이어(M G M) 영화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1949년부터 ‘That Midnight Kiss' 와 ’The Toast Of

New Orleans(1950)'를 비롯해, 위대한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의 일생을 다룬

‘위대한 카루소(The Great Caruso. 1951)'등, 여러 편에 성공적인 출연을 해오던

인기 절정의 테너, 마리오 란자(란짜 - Mario Lanza. 1921-1959. 미국)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 1954)'으로 인해 카리스마와 자존심이

여러모로 몹시 손상된 이후(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리뷰 참조), 조상의 나라인

이태리로 이사(1957년5월)를 와서, 처음 출연을 한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하지만, 미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이미 고혈압 등으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앓고 있던 마리오 란자에게 런던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의 데뷔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바쁜 스케줄들은 그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는데,

이 영화가 개봉이 된 1958년 후반에 촬영을 하였던 ‘첫 사랑(For The First

Time. 1959)‘이 결국은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1959년 4월의 심장마비를 잘 극복한 그는 한 여름인 8월에 폐렴으로 다시

입원을 하였고, 아쉽게도 같은 해 10월7일, 로마에서 40세도 안 된 황금 같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더욱 안타까운 건 그의 네 자녀와 함께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 간 미망인 베티(Betty Hicks) 역시도 5개월 후,

약물 과용으로 그만 사망을 하였다는 것이다.

(맨 아래 그의 장례식이 포함된 뉴스영상 참조)



같은 로마를 배경으로 하였던 청춘영화, ‘연애 센터(Rome Adventure. 1962)’

주제곡으로 알려졌던 ‘알 딜 라(Al Di La)’라는 깐쪼네도 영화 제작 일년 전서 부터

이미 이태리에서 유행이 되었던 곡이었듯이, 이 작품의 주제곡으로 알려진

동명 타이틀의 곡, ‘로마여 안녕(Arrivederci Roma)’ 역시도 영화가 제작 되기

3년 전인 1955년에 이미 만들어졌었는데,

페페 보넬리(Pepe Bonelli)역으로 이 영화에 직접 출연까지 하였던

레나또 라스첼(Renato Rascel. 1912-1991. 이태리)
이 작곡을 하였고,

산드로 지오반니니(Sandro Giovannini)삐에뜨로 가리네이(Pietro Garinei)

공동 작사를 하였다.

이곡은 이후 칼 시그맨(Carl Sigman)이 영어로 또 작사를 하여, 1955년 12월에

‘연인이여 안녕(Arrivederci Darling)’이란 제목으로 영국에서 리메이크 발표가 되어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었다.



한편, 1946년도, 제18회, 미국 아카데미 상의 뮤지컬 음악 상(‘Anchors Aweigh.

1945‘)을 수상한 바가 있는 작곡가, 조지 스톨(George E. Stoll. 1905-1985. 미국)

이 영화에서는 삽입곡들을 선곡하는 역할의 뮤직 수퍼바이저의 임무와

또 오리지널 스코어(OS)의 편곡과 녹음 지휘까지 도맡아 다 하였는데, 이 곡도 바로

그가 직접 발굴, 선곡을 하였던 것이었다.



Tinvidio turista che arrivi,

T'imbevi de Fori e de scavi

poi tutto d'un colpo te trovi Fontana de Trevi ch'e tutta per te!

Ce sta 'na leggenda romana, legata a'sta vecchia Fontana

per cui si(se) ce butti un soldino,

costringi er destino a fatte torna

E mentre er soldo bacia er Fontanone,

la tua canzone in Fondo e questa qua!

Arrivederci Roma!... Good bye ... au revoir!

Si ritrova a pranzo a Squarciarelli,

Fettuccine e vino dei Castelli

Squarciarelli, Fettuccine vino dei Castelli",

come ai tempi belli che Pinelli immortalo!

Arrivederci Roma!... Good bye ... au revoir!

Si rivede a spasso in carozzella,

e ripenza a quella "ciumachella"

ch'era tanto bellae che gli ha detto sempre no !

Arrivederci Roma!... Good bye ... au revoir!

Mentre l'inglesina s'allontana,

un ragazzinetto s'avvicina

va nella Fontana pesca il soldo e se ne va !


* 마리오 란자Arrivederci Roma :



“트레비 분수와 수많은 유적지를 보려고 로마에 도착을 한 여행객에게

난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네.

이 오래된 분수엔 전설 또한 있으니 동전을 던진 그대는 언젠가 로마로

다시 돌아오리라. 그리고 그대의 노래는 분수 속으로 울려 퍼지리.

잘 있거라. 로마여, 안녕...... “


정이 들었던 로마를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노래한 이 메인 타이틀곡은

영화에선 물론 테너, 마리오 란자의 훌륭한 목소리로 들을 수가 있었지만,

영화가 개봉이 된 이후에도 산레모 가요제가 배출한 이탤리언 대형 스타,

끌라우디오 빌라(Claudio Villa. 1926-1987. 로마)(아래 동영상)를 비롯하여,

미국의 제리 베일(Jerry Vale), 페리 코모(Perry Como), 카니 후랜시스

(Connie Francis)등등, 수많은 팝 가수들의 노래와 펄시 페이스(Percy Faith)

악단, 파우스토 빠뻬띠(Fausto Papetti)등의 연주로도 널리 유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곡보다는 덜 히트하였지만, 미국 영화음악의 대 작곡가, 빅터 영

(Victor Young. 1899-1956. 미국)
이 생전에 작곡을 해두었던 멜로디에다

해롤드 애덤슨(Harold Adamson. 1906-1980. 미국)이 특별 작사를 한

‘로마의 일곱 언덕(Seven Hills Of Rome)’(이 영화의 또 다른 영어제목)도

상당히 유명한 곡이 된다.


* 마리오 란자 ‘로마의 일곱 언덕(Seven Hills Of Rome)’:


* 끌라우디오 빌라(Claudio Villa) 의 Arrivederci Roma :


* 라파엘라 칼라(Raffaella Calla) 의 Arrivederci Roma :



강아지가 축음기 스피커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그림으로도 유명한 미국,

RCA Victor 레코드 레이블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하면서, 활짝 열렸던

LP 레코드 초창기 황금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이 마리오 란자이다.

그 유명한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 이태리 나폴리)의

인기도 9편의 영화에 까지 출연을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계속하던

이 마리오 란자의 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20세기 말에 인기가 대단하였던 테너, 삼인방(Tenors, Big Three),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 이태리 모데나),

프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 스페인 마드리드),

호세 카레라스(Jose Carelas. 1946,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두에게

그들이 자라날 때 우상이 되었었다던 마리오 란자.

주세페 디 스테파노(Guseppe Di Stepano. 1921, 이태리 시실리),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 1921-2003, 이태리 안코나)와 함께

카루소의 계보를 잘 이어 나왔으나, 란자도 파바로티도 세상을 다 떠나간 지금

이 21세기에는 그 누가 이들의 계보를 또 새롭게 이어나갈지 궁금해진다.



* 마리오 란자 관련 뉴스 필름(장례식 포함)(노래: Non Ti Scordar Di Me):



* 기타 관련 동영상 모음:









Jay. 229. Apr.'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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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에서 생긴 일/ A Summer Place 음악적 리뷰 + 동영상과 음악모음

2007.04.29 11:26 | 영화음악-1950년대 | 제이

http://kr.blog.yahoo.com/jaygunkim/1460535 주소복사

피서지에서 생긴 일/ A Summer Place 음악적 리뷰 +동영상과 음악모음

1959년/ 감독:Delmer Daves /주연:Sandra Dee + Troy Donahue

음악:Max Steiner /130분



지금은 물론, 자주 듣기가 쉽지 않은 음악이 되었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듬 해, 1960년(대)부터 약 20-3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여름만 오면 마치 무슨 ‘여름의 주제곡’이나 된 듯,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들을 수가 있었던 그 유명한 명 연주곡이 바로

펄시 훼이스(Percy Faith) 오케스트라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의 주제곡이었다.



그리고 이 연주곡은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곡을 만든 영화음악계의 전설적인 거장,

맥스 스타이너(Max Steiner, 1888-1971)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보다도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유명해졌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마치 파도가 힘차게 넘실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듯 한

생동감이 훨씬 더 넘쳐나는 멋진 편곡의 힘이 아닌가 싶다.

(위의 두곡을 비교해보시고 이 영화의 두 번째 테마(Theme)곡이 나오는 아래의

오프닝 크레디츠 장면도 감상하세요. )




지금은 물론 오스트리아(Austria)라고 하지만 그가 태어난 19세기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ia-Hungary)'라 불리던 나라의 도시, 비엔나(Vienna)에서

태어나, 꼬마 시절에는 브람스(Johannes Brahms)에게서 피아노 교육을 받고,

10대 시절에는 말러(Gustav Mahler)에게서 작곡 등을 배운 맥스 스타이너.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악단장과 작곡가로서

활동을 하다, 1932년에 할리우드로 진출을 하게 된다.

그리고 ‘킹콩(King Kong. 1933)'을 통하여 그의 놀라운 재능을 증명한 후,

당시에 '영화계의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of Film)' 이라 불리던 최고 인기의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 1908-1989)의 인기 영화들(‘Jezebel’ 포함)의

주제 음악들로 덩달아 주가를 높여나가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

1942년, ‘카사블랑카’로, 미국 영화음악의 최고 장인의 반열에 올라서며,

그의 평생에 무려 18번이나 미국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었고,

또 3번의 상을 받는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가 이미 미국 대중 음악계에 커다란

폭풍을 일으킨 1950년대에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거장으로서 예전의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존중하듯이 이런 젊고 대중적인 감각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맥스 스타이너의 크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는데,

마치 나이에 반비례 하는 듯한 그의 이런 감각적인 재능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 훌륭한 주제곡은 이후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를 비롯해 수많은

인기가수들이 다시 불러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한 팝송이 된다.

그럼 아래의 가사를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이 명곡을 음미해보기로 하자.



There's a summer place

Where it may rain or storm

Yet I'm safe and warm

For within that summer place

Your arms reach out to me

And my heart is free from all care

For it knows

There are no gloomy skies

When seen through the eyes

Of those who are blessed with love

And the sweet secret of

A summer place

Is that it's anywhere

When two people share

All their hopes

All their dreams

All their love

There's a summer place

Where it may rain or storm

Yet I'm safe and warm

In your arms, in your arms

In your arms, in your arms

In your arms, in your arms






고향을 떠나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켄(Ken Jorgenson-Richard Egan,1921-1987)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있는 메인 주의 파인 아일랜드(Pine Island)로

20년 만에 호화 요트를 타고서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온다.

그리고 중년이 된 후에 별로 낙이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옛 연인,

실비아(Sylvis Hunter-Dorothy Mcguire,1916-2001)

다시 만나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가면서 양쪽 모두

이혼도 불사하며 이제부터라도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자고 약속을 하게 된다.

한편, 켄 의 외동딸이자 이번 여름휴가를 함께 온

말리(Molly Jorgenson-Sandra Dee. 1944-2005)


보자마자, 이성으로서의 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실비아의 10대 아들,

자니(Johnny Hunter-Troy Donahue,1936-2001)

부모 세대의 이런 복잡한 로맨스 관계를 모른 채 무작정 그녀에게 빠져 들고 있다.


* 아래 동영상은 자니와 말리가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하는 장면입니다(필수감상).



‘피서지(A Summer Place)’라는 원래 제목이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럴듯한 제목으로 일본(‘避暑地の出来事‘)과 한국에서는

개봉이 되었지만, 실제로 ‘일‘은 피서지를 다녀온 후에 더 생기게 된다.

여름이 끝나고, 학교 기숙사로 돌아간 후, 어린 말리는 시어머니가 되어야만 할

실비아가 새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고, 멀리 떨어진 자니와 전화로만

울면서 사랑을 나누지만, 모든 이들의 강력한 교제 반대에 다시 좌절을 한다.

한편, 신문의 가십기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 살림을 차린 켄 과 실비아는

그 다음 해에 자니와 말리를 조심스럽게 새 집으로 초청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재회를 한 자니와 말리는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 실수를

우리는 되풀이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임신 사실에 놀란 말리는 황급히 자니를 부르게 되고,

아직은 어려서 불가능한 (둘만의) 결혼식을 위해 잠시 방황도 해보지만,

결국에는 반대하던 양측 부모들의 축복 속에 그들이 처음 만났던 써머 플레이스,

파인 아일랜드로 신혼여행을 오게 되면서,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길고 복잡한 줄거리덕분에 산뜻한 청춘영화라고 쉽게 말 할 수가 없는 이 작품은

리처드 이건, 도로시 맥과이어, 또 아서 케네디 같은 당시에 인기가 대단하던

배우들보다도 사실, 혜성과도 같이 등장을 한 두 청춘스타의 싱그러운 매력이

흥행에 크나 큰 성공요인으로 작용을 하였다.

샌드라 디(1944-2005)
트로이 도나휴(1936-2001).

이 두 젊은이는 이미 같은 해에 만들어 진 ‘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n Of Life,

1959)‘
에서도 공연을 한바 있지만, 이 작품에서의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커플’

주인공의 이미지로서 둘 다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물론 샌드라 디는 같은 해의 ‘지젯(Gidget.1959)’으로도 이미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그동안 TV시리즈, ‘로하이드(Rawhide)’등에서 조연으로 활동을

하던 (당시, 콜럼비아 대학의 학생) 트로이 도나휴 에게는 출세작으로서의 의미가 큰데,

일 년 전에 출연하였던 비슷한 제목의 청춘영화, ‘써머 러브(Summer Love.1958)’

이 영화 캐스팅에 큰 작용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큰 키의 미남형 배우의 아이콘이던 락 허드슨(Rock Hudson, 1925-1985)

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신체조건(블론드 헤어+푸른 눈)이었던 이 도나휴 에게는

이후 ‘패리쉬(Parrish.1961)’ 나 ‘연애 센터(Rome Adventure. 1962)’같은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청춘스타로서의 인기몰이를 계속해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락 허드슨과 트로이 도나휴 라는 예명은 공교롭게도 헨리 윌슨(Henry Wilson)

이라는 한 사람이 작명을 하였다고 한다.]



12살 때 아역 모델로, 14살 때 영화배우로 연예계 진출을 한 샌드라 디에게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17세)은 그녀가 출연을 한 세 편의 작품들이

모두 다 성공을 함으로서 일약 최고의 청춘스타로 발돋움을 하는 해가 되었고,

또 1961년에 개봉이 된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의 촬영을 계기로

당시 십대들의 우상이었던 바비 대런(Bobby Darin, 1936-1973)과 초고속 결혼

(1960년-1967년에 이혼)까지 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녔다.

매니저 역할을 하던 어머니가 연예계에 진출을 할 때부터, 샌드라의 나이를 속였다는

루머도 있지만, 어쨌든 10대의 어린 나이에 벼락출세를 한 것만은 틀림이 없는데,

남편이었던 바비 대런 보다도 환상의 커플로서는 오히려 트로이 도나휴가

더 어울렸던 이 작품 역시 오늘날까지 샌드라 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의 그 청순한 이미지는 평생의 그녀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 샌드라 디의 2005년도 사망 관련기사 참조)

* 아래 동영상의 제목은 ‘Sandra Dee in a Summer Place' :




스탠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1920년대부터 배우와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반세기나 되는 오랜 기간동안 할리우드에서 활동 한

델머 데이브스(Delmer Daves, 1904-1977, SF) 감독은

‘An Affair To Remember(1957)’의 각본도 직접 썼지만, 1950년대에 인기가

대단 하던 (눈물짜내기 용) 멜로 드라마를 잘 만들기로 평판이 났었는데,

(이 작품도 역시 같은 범주에 든다.)

해군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요트 타기를 즐겼다는 하버드 대학 출신의

슬론 윌슨(Sloan Wilson. 1920-2003)의 베스트셀러를

잘 각색하고 또 직접 감독, 제작까지 하면서 크나 큰 대박을 터트렸다.

[그는 트로이 도나휴 를 무척 좋아하여 이후 계속 그를 기용하여 ‘Parrish(1961)'

‘Rome Adventure(1962)'등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당시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던 10대들의 성관계

(그리고 원치 않은 임신문제)를 이 작품에서 (공식적으로) 이용하였다는 비난도

받은바 있는데, 어디 ‘바캉스 베이비‘라는 신조어가 이 데이브스 감독 때문에

생겨났겠는가?

매년 여름철만 지나면 더욱 바빠진다는 각국의 산부인과 병원들.

이것 역시 20세기가 남긴 선진(문화) 유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PS: 2007년 2월에 미국에서 마침내 이 영화가 DVD(RC-1)로 출시되었습니다.



* OST 앨범 수록곡 리스트:


1. Main Title (4:13)

2. Dignity (1:08)

3. Pine Island Off The Port Bow (1:37)

4. There’s A Boy Watching Me! (1:14)

5. Flotsam And Jetsam (1:38)

6. Romance Remembered (1:34)

7. Bright Dreams/The Garden (4:40)

8. A Filthy Word (5:21)

9. Alone In The Attic (4:09)

10. A Small Prayer (2:53)

11. The Boat House (3:13)

12. Shipwrecked (3:07)

13. Returning Home (:50)

14. The Examination (:33)

15. Hiding Among The Rocks (3:11)

16. Harlot Of A Mother (1:29)

17. A Common Slut/Molly Found (1:13)

18. Scandal! (:35)

19. A Letter To Johnny (:50)

20. Long Distance Call (2:26)

21. Liebestraum (:52)

22. Lohengrin (2:11)

23. Merry Christmas Mama! (:34)

24. Ken Visits Molly At Briarwood (2:56)

25. Ken And Sylvia’s House (3:23)

26. Reunion On The Beach (5:48)

27. Shacking Up (4:23)

28. Passion Discovered (:12)

29. Be Sensible (3:55)

30. Holding Hands At Briarwood (3:22)

31. Drunken Father (3:44)

32. Homecoming/End Title (2:27)



* 몇 장면 더......






Jay205. Apr.'07./ revised Sep.'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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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La Strada 음악적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2006.03.09 10:34 | 영화음악-1950년대 | 제이

http://kr.blog.yahoo.com/jaygunkim/1459393 주소복사

길 / La Strada 음악적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54년/ 각본+감독: Federico Fellini/주연:Anthony Quinn + Giulietta Masina

음악: Nino Rota/흑백/107분



우리나라의 인구가 근래에 너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이제 뒤늦게야

문제들이 제기가 되고 있지만, 자식들을 하나 둘만 낳아 기르는 요즈음의

이런 풍조의 가장 큰 이유는 키우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점 외에도

아마 의학 과 과학의 눈부신 발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어디 그랬었는가?

자식들을 많이 낳아도 그중에 몇 명은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또 전쟁터에서 죽는 등........

그래서 많이 낳지 않으면 대(代)를 이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네 다섯 명의 자식들은 예사였는데, 그러다보니 정말로 먹고 살기가 힘이 들었던

그 시절의 형편은 그때의 한국이나 이 작품이 탄생된 시절의 이태리나 별반 차이가

없는듯하다.



이 영화 속에 등장을 하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젤소미나 (Gelsomina-Giulietta Masina, 1920-1994, 이태리)
역시

많은 형제들 속에서 먹고 살기가 힘이 들어 어느 떠돌이 광대에게 (푼돈에)

그만 팔리게 되는데 그렇게 불쌍하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는 그 당시에

또 얼마나 많았었던가?

한국 전쟁을 직접 몸으로 치룬 세대들 중에서도 특히 피난을 간 많은 분들이

그들의 비슷한 운명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관람을 하였다는 이 영화는

그래서 오늘날 풍요 속에서 자라난 우리들의 자식 세대들에게 (한국 전쟁 전후

제 3 세대들) 꼭 한번 씩은 보라고 권장하고픈 작품의 하나이다.

6.25 한국 전쟁 때 먹을 게 없어서 고생하였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그럼, 라면을 먹으면 되지“ 라고 답하였다는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먼 남의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리겠지만 그러나 바로 이 영화야말로 우리들의 어르신 세대들께서

살아오신 인생 이야기와 매우 흡사 한 것이다.



쇠사슬을 가슴으로 끊는 특기의 떠돌이 광대, 차력사,

짬빠노 (Zampano-Anthony Quinn, 1915-2001, 멕시코)


삼륜 오토바이(트럭)를 타고 시골 구석구석을 전전하며 살아가는데, 그동안 쭉

같이 다니던 젤소미나의 언니인 로사(Rosa)가 죽자 대신 젤소미나(Gelsomina)

푼돈인 만 리라에 사고, 조금은 모자 란 듯 한 그녀를 회초리로 때리면서 조수로

교육시킨다. 그래도 마음씨 착한 젤소미나는 그런 현실에 잘 적응해 나가는데

어느 날, 장난감 미니어처 바이올린을 키는 젊은 나이의 곡예사,

마토 (Matto-Richard Basehart, 1914-1984, 미국)에게서

우연히 애수 어린 노래 한 곡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젤소미나 자신이 이곡을 직접 트럼펫으로 불게 되는데,

바로 이 곡이 그 유명한 이 영화, ‘길의 주제곡(Main Theme)’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이곡은 이렇게 단지 분위기를 띠우는

영화의 주제곡으로서만 아니라, 이 영화의 슬픈 이야기를 전개하는 줄거리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도 설정이 되어있는데, 영화 후반에는 짬빠노가 길에다 버리고 온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사실도 이 노래를 빨래하면서 부르는 어느 여인을 통해서

나중에 알게 된다는 것 이다.

(그리고 그녀가 없는 그때서야, 짬빠노는 그녀를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한국에서는 대부(The Godfather. 1972) 시리즈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태리 영화음악의 대부, 니노 로타 (Nino Rota. 1911-1979, 이태리)

이미 1930년대부터 활약을 한 밀라노 출신의 영화 음악의 대가인데, 한동안은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감독과 짝꿍(Collaborator)을 이뤄 수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고, 생전에 약 70편정도의 유명한 영화 음악들을 남겼다.

트럼펫 연주를 포함한 악단들의 연주음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주제곡, '길의 테마(Tema Del La Strada)‘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일명, ‘젤소미나(Gelsomina)’라고도 불리지만,

언제 들어도 순박한 젤소미나의 슬픈 눈빛을 떠올리게 하는 ‘올디스 벗 구디스

(Oldies But Goodies)’의 잊을 수 없는 명곡중 하나이다.




멕시코의 치후아후아(Chihuahua)에서 태어나고 미국 LA로 이민을 와, 나중에

1937년부터 장인이 되는 유명한 감독 세실 비 드밀(Cecil B. Demille. 1881-1959)

후원으로 1936년에 할리우드에서 데뷔를 하였지만,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던

조연급의 영역에서 앤소니 퀸(Anthony Quinn. 1915-2001)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이 할리우드가 아니라 바로 이 작은 나라, 이태리의 작품이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작품에서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대중들에게 기억이 되기 시작하던 그는 2년 후에 출연한 ‘노틀담의 꼽추(1956)’

에서 다시 한번 개성 있는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또다시 그의 행운의 대륙인

유럽의 작품, ‘희랍인 졸바(Zorba the Greek. 1965)’와 1967년의 ‘25시’ 등을

통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2001년에 타계하기 전 까지 무려 158편의 영화에 다작 출연을 한 그로서도

이 펠리니의 작품은 너무나도 인상적인 영화였었다고 회고 하였다.

(무식한 이 짬빠노의 역할을 그처럼 이 이상 더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서부터 서커스를 너무 좋아해 나중에는 아르바이트로 잠시 서커스

광대(Clown)일까지도 했었다는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1920-1993)

에게 그가 직접 쓴 이 영화의 줄거리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자전적인 영화인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1960)’이나 ‘8과 1/2(1963)’

그리고 ‘아마코드(Amarcord. 1973)'등에서도 수많이 등장을 하던 그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 젤소미나에게 노래를 배워준 청년, 마토가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다.[아래 사진-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이태리 영화계에 하나의 큰 풍조로서 현실을 도피하지 않는

사회상의 사실적인 묘사와 또 평범한 사람들의 (허구가 아닌)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그 특징인 ‘네오- 리얼리즘(Neo-Realism)‘ (이후 프랑스의 ‘누벨바그’에도 큰 영향을

끼침)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서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1902-1974,

이태리) 감독
의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 1948)‘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작으로도 손꼽히고 있지만 정작 펠리니 자신은 이 시절서부터는 오히려

그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고 회고 하였었다.



1942년부터 작가 생활을 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지만,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영화 감독생활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었다고 하는 펠리니는

1950년부터 감독을 해온 이래 이 영화로 1957년도 제 29회 미국 아카데미상의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Best Foreign Language Film)까지 수상을 하므로서

이태리 영화계에 너무나도 큰 경사를 안겨주면서 자신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이태리 최고의 작가 겸 감독으로 급부상을 하였었다.

1943년 10월부터 펠리니와 결혼 50주년을 함께 해 온 반려자, 줄리에타 마시나

(Giulietta Masina. 1921-1994)
도 결코 배우 같지 않은 그 외모로 젤소미나로서

의 명연기를 펼쳤는데, 1991년까지 출연하였던 그녀의 평생의 32편의 출연 영화

중에서도 그녀의 실명을 직접 사용한 ‘영혼의 줄리에타(Giulietta Degli Spiriti,

1965)’
못지않게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였다고 한다.

그녀는 ‘여자 채플린’이라는 영광스러운 별칭도 이 작품으로 인하여 얻게 되었지만,

부평초와 같은 짬빠노 와 젤소미나의 인생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펠리니 와 마시나 이들 부부에게는 그들의 인생길에서 크나 큰 이정표와도 같았던

작품이었기에 더 더욱 이 영화가 소중하지 않았겠는가?

부부금실이 너무나도 좋았었다는 이들 부부는 연예인 같지 않은 모범적인 결혼

생활을 1993년 10월, 펠리니가 죽을 때까지 무려 50년 동안 하였다고 하는데,

펠리니가 죽은 지 6개월 후인 1994년 4월에 그를 따라 마시나도 함께 떠나갔다.



* 예고 편 과 동영상 모음:








revised. Aug.'09.pa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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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 Roman Holiday 리뷰(Behind The Scenes) + 동영상과 음악모음

2006.02.16 11:32 | 영화음악-1950년대 |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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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 Roman Holiday 리뷰(Behind The Scenes) + 동영상과 음악모음

1953년/ 감독: William Wyler /주연: Audrey Hepburn + Gregory Peck

음악: Georges Auric /118분



언제부터인가 ‘공주병’이라는 희한한 신조어가 우리나라에서 유행을 하면서,

공주(Princess)의 이미지가 좀 퇴색하긴 하였지만,

그래도 공주라고 하면 여전히 예쁘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아직까지도 설레 이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빠리에 위치한 프랑스 미용가 협회라는 곳에서는

가꾸지 않아도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는 미인들의 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어,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 벨지움)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바 있지만, 이 헵번은 또한 공주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 순위의 1위에도 이미 오래전에 선정이 된바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그녀의 첫 번째 성공작인 이 작품에서의 이미지가

그녀의 평생토록 또 이렇게 사후에도 매우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렇듯이 개봉이 된지 반세기가 넘은 불후의 고전 영화, 이 ‘로마의 휴일’이

지니고 있는 영화사적인 공로의 제1순위는 아무래도 ‘핵폭탄 급의 요정’ 같은

신데렐라 스타, 오드리 헵번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부유한 영국인 은행가 아버지와 네덜란드 귀족출신의 어머니사이에서 벨기에의

브루셀에서 태어난 본명이 오드리 캐스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그녀는 10대의 소녀기를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에서 무척 고생을 하며 보내면서도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였다는데, 종전 후에는 런던의 발레학교의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면서 모델로도 활동을 하게 된다.

1948년, 단역으로 영화계에 모습을 들어 낸 이후, 1951년의 ‘Young Wives Tale’를

비롯하여 같은 해에만 다섯 편의 영화에 조역으로 출연을 하였으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녀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지지(Gigi)’에 출연을 하므로서, 미국에 상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로마의 휴일’의 스크린 테스트를 받게 되면서 거머쥔 뜻밖의 행운은 단숨에

미국 아카데미상의 여우 주연상을 이 작품으로 받으면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연이은

사브리나 (Sabrina. 1954)의 히트로 혜성과도 같은 만인의 연인이 된다.

1954년에 결혼을 하였던 배우, 멜 훼러(Mel Ferrer)와 1968년에 이혼을 한 후,

그 다음 해에 안드리아 도티(Andrea Dotti)와 재혼(1982년 이혼)을 하면서

할리우드를 떠난 그녀는 이후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1989)’를 포함한 세편의

영화에 다시 잠깐 씩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유엔 산하의 유니세프의 특별대사로

봉사를 하던 1993년에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슬하에 두 자녀).



스위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당시에 독일영토였던 알사스에서 태어난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1981, 독일)

192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자 마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서

영화를 배우다, 23세의 어린나이에 벌써 ‘Crook Buster(1925년)’라는 서부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 그의 생애 최고작인 된 ‘벤 허(Ben-Hur. 1959년)’를 포함해

70편에 가까운 명작들을 만들어 내었지만, 아무래도 코미디 스타일의 영화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이 작품이 와일러의 첫 코미디연출).

그러던 그가 후랭크 캐프라(Frank Capra)감독이 이미 사양한바 있는 이 작품을

선뜻 맡게 된 것은 이 영화 각본의 원작자인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 1905-

1976, 미국 콜로라도)
가 처한 곤경을 친구로서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할리우드에 매카시 선풍이 한참일 때, 좌익분자, 블랙리스트에 첫 번째로

올라, 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가명으로 집필한 이 작품의 고료 5만 달러가

당시에 트럼보의 가족들에게는 매우 절실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그가 차명으로 발표한 18개의 각본의 정확한 원작자 이름은

그의 사후 2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서야 제대로 정정이 되었다.)


어쨌든 이언 맥레런 헌터(Ian Mclellan Hunter)라는 이름을 차용한 탁월한 시나리오를

읽은 와일러 감독은 이 영화에는 남녀 주연배우가 특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당시의 여러 스타들과 접촉을 하였으나 이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우선 남자주인공으로 쉽게 응하였던 캐리 그랜트(Cary Grant)가 대본을 읽고 난 후,

출연을 포기하였으며, 진 시몬즈(Jean Simmons)와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와의 출연료 협상 역시 순조롭지 않자, 와일러 감독은 아예 신인 여배우를

물색하게 되었고, 그래서, 입소문을 타고 뉴욕에서 할리우드 영화계로 알려지기

시작한 오드리 헵번과 드디어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이었다.

1950년대의 전 세계 영화계는 마릴린 몬로(Marilyn Monroe)나 브리짓 바르도

(Brigitte Bardot)같은 글래머 스타일의 여배우들이 환영을 받던 시기였었는데,

170Cm의 껑충한 키에 가슴과 엉덩이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깡마른 반 글래머적

이고 반 할리우드적인 24세의 신인, 헵번을 주인공으로 기용한다는 것이 그때로서는

무지무지한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러기에 그레고리 펙도 인정을 한 와일러

감독의 선견지명은 오히려 더욱 더 높이 평가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아카데미상의 의상부문에 무려 24번이나 후보가 되었고,

또 평생에 7번이나 수상을 한 할리우드의 명 디자이너, 에딧 헤드(Edith Head. 1897

-1981, 미국 CA)
가 창조해낸 헵번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살린 의상이야말로

신데렐라 탄생의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는데, 이후에 이 헵번은

프랑스의 지방시(Hubert De Givenchy)와의 협력으로 ‘오드리 헵번 룩’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새로운 유행 패션까지도 창조하게 된다.



유럽 각국들을 순방하면서, 런던, 암스텔담, 빠리를 거쳐 로마에 도착을 한

앤 공주(Ann, Audrey Hepburn, 1929-1993, 벨지움)

잠시도 쉴 수가 없는 꽉 찬 스케줄에 진절머리를 내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당황한 시종들은 의사를 통해 진정제를 주사하고 푹 잘 것을 권유하였는데,

창밖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무작정 밤거리로 뛰쳐나간다.

한편, 어메리칸 뉴스 서비스에서 일을 하는 미국인 기자,

조 브래들리(Joe Bradley, Gregory Peck, 1916-2003 미국 LA)


동료들과 포커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술에 취한 듯한 한 여성이 길에

누워, 횡설수설을 하는 것을 보다 못해 결국 자기의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같은 시간, 공주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왕실에서는 대사관 대변인을 통해 공주의

갑작스런 발병 소식을 공식 발표하고 이는 모든 조간신문의 머리기사가 된다.

다음날, 늦게 출근을 한 조는 신문에 난 공주의 사진을 보고선 거금 5천 달러에

자기가 특종 인터뷰기사를 쓸 것을 상관에게 약속을 한 후, 동료인 사진기자,

어빙(Irving, Eddie Albert, 1906-2005, 미국)에게

만사를 제쳐놓고 지금 빨리 달려오라고 전화를 한다.



오후 1시 반에 잠에서 깬 앤 공주는 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약간의 돈을 빌린 후,

그토록 원하던 평민으로서의 자유로운 시간을 오후에 혼자 보내기로 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과 관광지를 돌아다니다가,

미용실에서는 머리도 아주 짧게 잘라 버린다(맨 아래 동영상).

(헵번의 이 숏커트 헤어스타일은 한동안 전 세계에 태풍과도 같은 큰 유행이 되었다.)

몰래 미행을 하던 조는 스페인광장의 층계에서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공주와

다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접근을 하여 그녀가 하고 싶다는 일을 함께 하자고 제의를

하면서, 어빙이 몰래 사진을 찍는 가운데, 스쿠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공주를 찾기 위해 본국에서 온 비밀요원들과 한바탕 치고받는 난리를 치루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둘은 급기야 사랑을 느끼게 되고 키스도 나누게 되지만, 뉴스를 듣고 난

공주는 밤에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차안에서 조에게 작별을 고한다.

다음날 오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열린 앤 공주의 기자회견장.

기자들 사이에 서있는 조를 발견한 공주는 각국가간의 친선문제를 묻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조를 바라보면서 ‘사람들 간의 믿음(Faith In Relations Between People)‘

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매우 중요하다는 동문서답을 하고, 로마야말로 평생 잊을 수가

없는 도시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어빙이 기념품이라고 전해준 사진을 잠시 훔쳐보고는

조에게 눈길로 다시 인사를 전한 후 우아하게 퇴장을 한다.


(아래의 동영상이 이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필수 감상)




영국 왕실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여전히 서구의 신문지상에서 환영을 받는 기사

이지만, 이 영화가 개봉이 될 때쯤, 이 영화의 줄거리와 매우 유사한 실재 사건이

우연히 영국에서 발생을 하면서 이 영화가 더욱 더 화제가 되기도 하였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인 마가렛(Margaret) 공주가 평민이자 또 이혼남인 피터

타운센드(Peter Townsend)와 사랑에 빠졌다는 기사들이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이 영화가 저절로 자동 홍보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실패로 돌아간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였다는 비난까지도

받았는데, 다행히 영화가 먼저 기획 제작이 되었기에 그 이상 불필요한 오해는 받지

않았지만, 다이애나 비를 죽음(1997년)에 이르게 한 파파라치들이 우글거리는 지금과

비교를 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동화 같이 순수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로 치자면, 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큰돈이 걸렸을 기사와 사진을 포기한 조와

어빙의 선행(?)은 아무리 영화라 해도 이제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나 바로 그런 점들이 반세기에 걸쳐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이 작품을 불후의 고전으로 만든 순수의 힘이 아니겠는가?



미국인들이 무척이나 선호하는 빠리를 배경도시로 한 수십 편의 할리우드 영화들과

같이, 로마에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게 만든 이 작품 역시,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콜로세움(Colloseo),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a),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천상의 성(Castel Sant' Angero), 소망의 벽, 바티칸
등의 관광명소들에서 촬영을

하므로서 관객들에게 대리관광의 즐거움도 선사하였지만, 당시 할리우드로서는 보기

드문 100% 현지촬영도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로케이션 외 세트 촬영은 로마의 치네치타(Cinecitta)스튜디오]

트레비 분수에서 조가 카메라를 빌리려고 하는 학생들로 어린 두 딸을 직접 출연시킨

완벽주의자, 와일러 감독은 어느 장면에서는 무려 46회나 재 촬영을 거듭하였다지만,

TV 쇼의 명 사회자이기도 했던 스캘튼(Red Skelton)의 옷 속에 손을 감추는 개그를

흉내 낸 ‘진실의 입 앞에서의 시퀀스’는 단 한번 만에 오케이사인을 주었다고 한다.



1954년 제26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무려 10개 부문에 후보가 되어, 의상 디자인상,

여우주연상, 스토리 저작 상, 3개를 수상한 이 작품에서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컬러로 제작을 할 수도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낸다고 일부러 흑백

필름으로 촬영을 한 점과 그리고 영화음악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부터 벌써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1945)‘, ’물랑 루즈(Moulin Rouge.1952)‘ 등으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던

조르주 오릭(Georges Auric. 1899-1983, 프랑스)이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OS)는 우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말괄량이 같던 앤 공주의 이미지와

또 그녀가 평생 처음으로 느끼게 된 조와의 반짝 사랑을 음악적으로 표현은 잘 하였지만,

아쉽게도 이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특별히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히트를 한 음악은 없다.



다만 앤 공주를 다시 숙소 앞으로 데려다주고, 차안에서 이별의 아쉬움을 포옹과

키스로 달래던 영화 후반부에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사랑의 테마(Love Theme)’만이

그나마 좀 알려져 있을 뿐인데(위의 음악), 현악기들이 표현을 하는 그 잔잔한

애절함이 고전영화로서의 당시 1940-50년대의 영화음악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전체의 '메인 테마(Main Theme-아래 음악)‘는 로마의 유명 관광지를

배경화면으로 한 오프닝 타이틀 때 흐르던 곡으로서, 마치 여행 출발 전의 설레임 같은

느낌을 주는 훌륭한 곡이지만, 이 역시도 대중적으로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프렌치 키스(French Kiss.1995)’와도 같이 만일에 이 영화도 오늘날에 제작이

되었다면 OS와 함께 적어도 10곡이상의 삽입곡들을 인용하면서, 영화 음악적으로도

큰 성공을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은 그래서 더욱 더 진하게 남는다.



* 예고 편 과 동영상모음:











Jay.197-revised. Sep.'09.pa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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