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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남자/Un Homme Qui Me Plait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69년/ 감독: Claude Lelouch /주연: Jean-Paul Belmondo + Annie Giraldot
음악; Francis Lai / 115분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일생에 세 번 정도는 찾아 온다고 하지만,
어쩌면 (영화계의) 마지막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1966년의 모험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끌로드 를루슈(를루쉬/Claude Lelouch. 1937. 빠리)와
또 니스에서 빠리로 상경을 한 후, 오랜 고생을 한 끝에, 를루슈의 도움으로
같은 해에 프랑스 영화 음악계에 데뷔를 하게 된 후랑시스 레이(Francis Lai.
1932. 니스)에게 1960년대 후반기는 정말로 운이 탁 트인 아주 좋은 세월이
되었다.

싱어 송 라이터로서, 레코드 회사의 사장으로서, 그리고 여배우, 아눅 에메
(Anouk Aimee. 1932. 빠리)의 3년간(1966-1969)의 남편으로서, 또 배우로서도
활동을 하였던 삐에르 바루(Pierre Elie Barouh. 1934. 빠리)의 소개와
또 그의 영향도 매우 컸었다고 하는데, 마치 비슷한 시기의 이태리의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만남과도 종종
비교가 되긴 하지만, 어쩌면 마치 운명적으로 만나 게 되어 있었던 것 같은
이 두 사람, 끌로드 를루슈 와 후랑시스 레이는 1966년의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이 후, 계속해서 콤비(Collaborator) 사이를 이루면서,
다음해의 ‘파리의 정사(Vivre pour Vivre.1967)’, ‘하얀 연인들(13 Jours En
France.1968)‘, ‘인생과 사랑과 죽음(La Vie, L'amour, La Mort. 1969)’등으로
1960년대의 후반에 연속적인 대박을 터트리는데, 1960년대를 마감하는 또 다른 작품,
이 ‘내가 좋아하는 남자’도 두 사람 모두에게 다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되었다.

없는 돈에 빚을 얻어 차렸던 프로덕션, ‘Les Films 13' 도 이젠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대표하는 회사로 성장을 하였고,
“돈 만 여유가 좀 있다면 흥행에는 실패를 하더라도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고 말했었던 끌로드 를루슈에게 대부분의 촬영을 미국에서 하였던
이 작품의 로케이션 제작 경험은 그에게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이 되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의 최대의 영화시장인 미국 시장을 겨냥하여, 당시 알랑 드롱
(Alain Delon. 1935. 프랑스)과 함께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던 남자 배우,
장 폴 벨몽도(Jean-Paul Belmondo. 1933. 프랑스)를 비싼 출연료를 지불
하면서 캐스팅하였건만 프랑스를 제외한 국제 시장에서의 흥행은 별 재미를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주부이면서도 오랫동안 인기 여자 배우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후랑소와(Francoise/Annie Giraldot. 1931. 빠리)(위의 사진)는
미국에서의 현지 촬영스케줄 때문에 만사를 제쳐두고 LA로 날아간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세트장과 숙소 호텔만을 왕래 하던 그녀는 어느 날,
어쩌다 같은 호텔에 있는 남자 배우, 폴(Paul/ Kaz Garas. 1940. 소련)과
눈이 맞아서 서로의 방을 오고 가며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데, 그러나
정신적인 교감이 없는 육체적인 관계에 금방 싫증을 내게 된 후랑소와는
촬영 막바지에 영화 음악 작곡가인 이태리 출신의 앙리(Henry/Jean-Paul
Belmondo. 1933. 프랑스)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둘은 렌터카를 빌려 라스베가스와 모뉴멘트 밸리(Monumant Valley)
등지를 함께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정이 있는 이들은
점차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결국 이들은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후랑소와가 먼저 뉴욕을 경유하여 귀국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앙리도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로 돌아간다.

한 동안의 시간이 경과한 프랑스, 니스(Nice)의 국제 공항 라운지.
활주로가 내다보이는 식당에서 차를 마시며 초조하게 앉아 있는 후랑소와.
드디어 이태리에서 출발을 한 팬 암(Pan Am)의 비행기 한 대가 도착을 하고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지막 승객과 승무원들이 다 내리도록 약속한 그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착잡하면서 한 없이 복잡한 표정으로 점점 일그러지는 후랑소와의 얼굴.
아! 결국 이렇게 사랑이 끝나는 것인가?(아래 동영상 / 필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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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수영장”(‘Swimming Pool’ +‘La Piscine’)의 비교 + 음악과 동영상모음
태양은 알고 있다 / La Piscine(The Swimming Pool)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69년/각본+감독: Jacques Deray / 주연: Alain Delon + Romy Schneider
음악: Michell Legrand /120분

스위밍 풀 / Swimming Pool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2003년/ 각본+감독: Francois Ozon/주연:Charlotte Rampling +Ludivine
Sagnier 외 / 음악: Philippe Rombi / 103분

누구나 그렇듯이 어릴 적에 본 인상 깊었던 영화(장면)들은 평생 동안
기억에 남게 마련인데, 프랑스 영화계의 희망으로 각광을 받았던 팔방미인,
후랑소와 오종(Francois Ozon, 1967. 빠리)(아래 사진)이
십대 시절에 뒤늦게 본 ‘태양은 알고 있다’(La Piscine. 1969)는 그로
하여금 커서 반드시 자기 스타일로 리메이크(또는 리워크)를 해보고 싶었던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고, 또 그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던 여배우
역시도 바로 이 작품에 나왔었던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였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1988년에 감독으로 데뷔를 한 후, 정작 이 작품의 리메이크 작업에
착수를 해보니 영화라는 게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가 발생을 하는데, 결국, 리메이크가 아니라 휴가를 가서 지내는
고급 빌라에 딸린 수영장이라는 같은 장소와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완전범죄
스타일의 살인을 같은 주제로 하는 ‘오마주’(하메지/Homage)로 제작 방향을
선회하고, 그래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작가, 엠마뉴엘 베른하임(Emmanuele
Bernheim)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까지 하게 된다.

프랑스 남서부의 인기 있는 휴양지, 생 뜨로페(Saint - Tropez) 인근의
한 고급 빌라의 수영장(La Piscine)에서 눈부신 태양 아래 아침부터 수영을
즐기며 휴가를 보내는 장 뽈(Jean-Paul/Alain Delon, 1935. 프랑스)과
그의 연인, 마리안느(Marianne/Romy Schneider.1938-1982. 오스트리아).
그러나 한가하고 오붓하던 이곳에 마리안느의 옛 애인이었던
해리(Harry/Maurice Ronet.1927-1983.프랑스)가 그의 10대 외동딸,
페네로프(Penelope/Jane Birkin. 1946. 영국)를 대동하고 나타나면서
네 사람 사이에는 이상한 감정의 새로운 기류 (어린 페네로프를 탐하는
장 뽈 과 마리안느를 다시 좋아하는 해리)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해리가 혼자서 시내에서 술을 먹고 돌아온 어느 날 밤에 장 뽈의
손에 의해 수영장내 익사사고를 가장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
1969년의 ‘태양은 알고 있다’의 기본 줄거리이다.
(아래 동영상 하이라이트 참조)

오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2003년도 ‘스위밍 풀’도 역시 생 뜨로페 인근에
있는 한 고급 빌라의 수영장이 무대가 되지만, 이번에 여기서 휴가를 보내는
주인공은 ‘태양은 알고 있다’에서와 같은 커플이 아니라, 추리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여류작가, 새라(Sarah Morton/Charlotte Rampling.1946.영국)혼잔데,
내연관계에 있는 출판사 사장, 존(John)이 조용한 곳에서 새 작품을 구상해
보라고, 자신의 프랑스 별장을 빌려준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나기 전 까진 아무 일도 없었다.” 라는 이 영화의
선전 문구(Tagline)처럼, 고요와 평화를 즐기던 새라에게 어느 날 갑자기,
존의 현지 딸인 줄리(Julie/ Ludivine Sagnier. 1979. 프랑스)가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면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매일 밤 다른 남자들을 한 명 씩 데려와 듣기 민망한 소음을 만들어 내면서
새라의 신경을 자극하더니만, 어느 날 밤에는 그만 그중의 한명인 프랭크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다음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새라는 줄리와 함께 수영장
옆에다 시체를 암매장하고 옷가지 등을 태우며 그녀 편을 들어주는데..........
(아래 동영상 하이라이트 참조)

우선 음악적으로 두 작품을 비교해 보자면 34년이라는 시차속의 엄청난
(AV 관련) 기술 발전을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그러나 내용면에서의
큰 발전은 찾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여성의 허밍 코러스를 주 악기같이
사용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시나리오만 보고 사전에 작곡을
완료하였다는 연주자 출신의 작곡가, 필립 롬비(Philippe Rombi)가
직접 피아노까지 치면서 완성을 한 ‘스위밍 풀‘의 메인 Theme은
아가사 크리스티같은 추리작가, 새라가 프랑스 별장에서 써나가는 새 작품의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거기에 비해 196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음악의 거장이 되어
있던 미셸 르그랑(Michell Legrand, 1932. 빠리)이 만든 ‘태양은 알고 있다’의
메인 Theme은 당시에 인기였던 가수, 다니엘 리까리(Danielle Licari)의 영향
때문인지 남녀의 이중창 스캣창법으로 만들면서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아래 동영상에서 감상), 오프닝 타이틀 장면은 물론이고, 영화중간 중간에 재즈로
편곡이 된 실로폰 이나 기타 연주로도 자주 반복이 되면서 사랑의 Theme 역할도
겸한 복합적인 느낌을 전해주었다.
* 주제곡이 나오는 ‘태양은 알고 있다’의 오프닝 타이틀 장면:

물론, 오종의 의도적인 연출이겠지만, 두 작품, 모두 별장의 거실에 오디오
시스템이 있어서 그 기기에서 들리는 음악으로 설정이 된 몇몇 삽입곡들
역시 꽤 인상적인데, ‘스위밍 풀‘에서 어린 바람둥이 줄리가 밤마다 사내들을
데려와 거실에서 선정적인 춤을 출 때 들려오던 ‘Oh My Baby Blue’ 라는 곡과
또 테크노 풍의 클럽뮤직, ‘Mirrorball'(부제: Let's Do It / Steve Everett)의
선곡은 그 부제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잘된 선곡이다. 그러나 이곡들과
차이코프스키의 ‘Nocturne In C Sharp Minor - Op.19, No.4’(1873)외에는
이렇다 할 삽입곡이 별로 없는 ‘스위밍 풀‘의 전체적인 음악 분위기는
필립 롬비의 OS를 제외하곤 무척이나 단출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래식 레코드 턴테이블이 눈에 띠는 ‘태양은 알고 있다’의 1960년대 별장
거실에선 장뽈과 마리안느가 심심할 때마다 LP로 재즈를 자주 듣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곡으로는 'The Way We Were'나
‘The Windmill Of Your Mind' 같은 명곡의 가사를 쓴바가 있는 뉴욕출신의
부부 작곡 작사가, 앨런과 매릴린 버그맨 (Alan & Marilyn Bergman)이 직접
부른 ‘왜 그런지 자신에게 물어봐’(Ask Yourself Why)라는 팝송이다.
이곡은 영화의 줄거리 전개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해리가 친구들을 갑자기
데려와 여는) 번개 파티 때, 주인공들이 (구식)춤을 추는 댄스 음악으로 등장을
하게 된다. (아래 동영상)
* 'Ask Yourself Why' Sung By Alan & Marilyn Bergman :

캐스팅 면에서는, 무려 40년 넘게 연기를 해온 노련한 영국의 샬롯 램플링과
전작인 ‘8명의 여인’(2002) 에서의 아역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이 ‘스위밍 풀’에서
과감한 노출까지 감수한 뤼디빈 사니에르의 열연을 감안하더라도 ‘태양은 알고
있다’의 그 압도적으로 우세한 캐스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 알랑 드롱의 중량감이야 말로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에게 푹 빠져(1958년) 그를 따라 빠리로 이사를 와, 1964년까지
동거를 하다 헤어졌었던 드롱의 옛 애인, 로미 슈나이더를 드롱의 연인 역으로
출연시켰다는 자체가 당시엔 큰 화제 거리 였었고(아래 동영상 참조),
거기다 나중에 섹스 심벌스타로 성장하는 제인 버킨의 출연 역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었다.
다만 당시 20대의 나이로 맡았던 틴에이저 역할이 약간의 어색함을 준 것은
사실이었고, 또 9년 전,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에서 드롱에게
죽은바가 있는 모리스 로네가 이번에도 또 다시 같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었다.
하지만 그 로네가 나왔었기에 당시에 외화 제목 잘 만들기로 유명하였던 일본의
모 영화사에서는 이 작품을 마치 ‘태양은 가득히’의 속편 같은 느낌을 주려고
같은 ‘태양’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태양은 알고 있다’라는 이 기막힌 제목을
붙이기도 하였다.(물론 우리나라는 당시의 관행과도 같이 그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무임승차했었고...)
* 알랑 드롱 과 로미 슈나이더 커플의 한 때 다정했던 모습:
* ‘태양은 알고 있다’의 제작 현장의 모습:
영어로는 이 ‘스위밍 풀’로서 첫 작품을 만들게 된 오종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어떻게 하면 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에로티시즘을
표현할까? “이었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관능의
표현 면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스크린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기껏 나뭇가지나 꺽어 연인, 마리안느의 등을 자극하며 애무하던 ‘태양은 알고
있다’에서의 성애 장면(아래 동영상)은 그 당시로서는 꽤 야하다는 평도 받았지만,
그러나, 21세기, ‘스위밍 풀’에서 보여지는 줄리의 자유분방함과 또 의도적으로
노출을 시킨 두 여성 주인공들의 (전면)나체 장면 등등과 비교를 하면 그 수준이
가히 유치원생 정도로 순수하다고나 할까?
거기다 욕구불만의 나이든 새라가 문란한 줄리에게 느끼는 질투가 섞인 관음증
같은 심리까지 동원을 해가며 줄거리 전체에 에로티시즘을 기본으로 깔은 오종의
연출은 중반부부터는 완전범죄가 들통 날까 조마조마한 분위기로 연출이 된
‘태양은 알고 있다’와는 완전히 그 맥을 달리하면서 (30년의)세대 차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야동‘이 담긴 CD 나 DVD는 고사하고, 포르노산업 발전의 수훈 갑인
비디오(테잎)조차 없었던 ‘태양은 알고 있다’의 그 시절이야말로 ‘야동‘으로서는
정말 원시시대가 아닐 수 없다.
* 당시로서는 꽤 야하다는 평을 받았던 ‘태양은 알고 있다’의 장면들:
* ‘태양은 알고 있다’ 하이라이트(6분20초)
* ‘스위밍 풀‘ 하이라이트(7분)
* 깐느 영화제에서의 모습(오종+램플링+사니에르):


Jay.224.Feb.'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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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방문객 / Le Passager De La Pluie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69년/감독: Rene Clement /주연: Charles Bronson + Marlene Jobert
음악: Francis Lai / 120분.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전성기와
비교하기는 무리겠지만, 할리우드에 버금갈 정도로 영화를 잘 만들던
프랑스 영화계의 전성기를 말하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 작품이 태어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굳이 뤼미에르(Lumiere) 형제의 (영화의 초기)시대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유명한 시인, 장 콕도(Jean Cocteau, 1889-1963)까지 감독을 직접 하면서,
1930년대부터 그들의 영화계가 발전(아방가르드 운동 등)을 거듭한 이래,
장 르누아르(Jean Renoir, 1894-1979),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1901-1999), 장 비고(Jean Vigo, 1905-1934), 앙리 조르주 끌루조(Henri
Georges Clouzot, 1907-1977), 르네 끌레망(Rene Clement, 1913-1996),
장 삐에르 멜빌(Jean Pierre Melville, 1917-1973), 앙리 베르뉴(Henri
Verneuil, 1920-2002), 끌로드 소떼(Claude Sautet, 1924-2000),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1930-), 후랑수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1932-1984), 자크 드미(Jacques Demy, 1931-1990), 끌로드 를르슈(Claude
Lelouch, 1937-) 등등이 쌓아올렸던 당시의 금자탑은 참으로 눈이 부셨다.

거기다 그 시절의 프랑스 배우들은 또 어떠하였나?
모리스 슈발리에(Marice Cheval ier, 1888-1972), 샤를 보와이에(Charles
Boyer, 1897-1978), 장 가방(Jean Gabin, 1904-1976), 장 마레(Jean Marais,
1913-1998), 루이 드 퓌네(Louis De Funes, 1914-1983), 앙드레 부르빌
(Andre Bourvil, 1917-1970), 리노 벤튜라(Lino Ventura, 1919-1987, 이태리),
이브 몽땅(Yves Montand, 1921-1991),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 1921-
1985 독일), 잔느 모로(Jeanne Moreau, 1928-),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 1924-), 모리스 로네(Maurice Ronet, 1927-1983), 아니 지랄도
(Annie Girardot, 1931), 아눅 에메(Anouk Aimee, 1932),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 1934-), 알랑 드롱(Alain Delon, 1935-), 장 뽈 벨몽도(Jean-Paul
Belmondo, 1933-), 안나 카리나(Anna Karina, 1940- , 덴마크), 까뜨린느 드뇌브
(Catherine Deneve, 1943), 제라르 드빠르듀(Gerald Depardiue, 1948) 등등
모두가 다 1960-70년대의 월드 스타가 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다.

그리고, 오슨 웰스(Orson Welles, 1915-1985), 잉그리드 버그만(Inglid Bergman,
1915-1982),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 1916), 글렌 포드(Glenn Ford, 1916-
2006), 윌리엄 홀든(William Holden, 1918-1981), 앤소니 퍼킨스(Anthony
Perkins, 1932-1992) 등과 같은 할리우드의 인기 탑 스타들은 물론이고,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 1946)같은 (당시)신인들도 이미 프랑스 영화에
출연을 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마초 맨(Macho Man),
찰스 브론슨(Charles Bronson, 1921-2003)이 당시의 신혼 상태였던 부인
(두 번 째/1968-1990), 질 아일랜드(Jill Ireland, 1936-1990)와 함께 출연을
하면서 프랑스 영화치곤 우선 캐스팅 면에서부터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브론슨은 일년 전에 프랑스 최고의 탑 스타, 알랑 드롱(Alain Delon, 1935-)과
함께 ‘아듀 라미(Adieu L' Ami, 1968)’에서 한판의 연기 대결을 이미 펼친 적도
있었지만, 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남성 제 1주인공으로서 그의 새로운 멋과
개성이 철철 넘쳐나고 있다.

종일 비가 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어느 조용한 바닷가 마을.
낡은 버스에서 레인코트의 깃을 세우고 붉은색 손가방을 든 한 사내가
내리고, (맨 위의 타이틀 사진과 아래 동영상)
친정어머니가 운영하는 볼링장의 창을 통해 이를 물끄러미 내다보던
멜리(Melancolie ‘Mellie’ Mau / Marlene Jobert, 1940, 프랑스)는
그날 오후 스타킹을 얼굴에 뒤집어 쓴 채 집안으로 침입한 그 사내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정신을 차린 잠시 후 어쩌다 사냥총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바닷가 절벽에서 홀로 시체를 밀어 유기한 후,
떨리는 가슴으로 출장에서 돌아온 항법사인 남편을 대하는데, 사소한 일에
짜증만 내는 보수적인 남편, 토니(Tony Mau/Gabriele Tinti, 1932, 이태리)는
멜리에게 약간의 현금을 집어준 후 또 다시 해외출장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 해리(Harry Dobbs / Charles Bronson, 1921-2003)라는
정체불명의 또 다른 방문객이 나타나면서 혼자 있는 멜리의 공포는 더욱 더
커져만 간다. 마치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죽은 그 사내의 행방과
또 그가 들고 있던 (TWA 항공사 로고가 새겨진)붉은 색 손가방을 물어보면서
멜리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남편이 없는 집에 들어와 독한 술까지 강제로 먹이면서 다그치기도 하고,
때론 구슬리기도하면서 여러 형태로 멜리를 압박하며 심리전을 펼치는 노련한
해리 앞에, 그러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딱 잡아떼며 부인하는 멜리는 마치
늑대 앞에 서있는 새끼 양처럼 연약하게만 보인다.
그리고 빠리 로 까지 이어지는 이 두 사람의 심리전은 결국 해리의 신분이
미군 대령 수사관으로 밝혀진 후, 해리가 빠리의 갱들의 소굴로부터 멜리를
구출해내면서 점차 반전되기 시작한다.
* 오프닝 타이틀 장면 입니다. 우중 산책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결코 미인 형의 여배우라고는 할 수가 없겠고, 오히려 미소년의 얼굴에 더 가까운
트위기(Twiggy)나 미아 휄로우(Mia Fallow), 또는 골디 혼(Goldie Hawn)과
비슷한 이미지의 여주인공, 말렌느 조베르(Marlene Jobert, 1940, 프랑스)는
이 작품에서 눈 밑의 주근깨까지도 다 예뻐 보일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니꼴 부띠끄를 운영하는 바비 인형같은 금발의 섹시한 자태의 질 아일랜드(Jill
Ireland, 1936-1990)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지만, ‘샤레이드’(Charade,
1963)나 ‘어두워 질 때까지’(Wait Until The Dark, 1967)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 벨지움)을 연상시키는 (공포속의) 그 가련한 이미지는
뭇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에서는 찰스 브론슨의 그 능글능글한 완숙미의
원 맨 쇼 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그의 새로운 매력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아듀 라미’ 때부터 새로이 선을 보인 콧수염에다, 할리우드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았던 흰 드레스셔츠의 말끔한 정장 차림은 마치 새 배우를 보는 듯 하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은 브론슨에게 ‘아파치’(Apache, 1954), 나 ‘베라 크루즈‘
(Vera Cruz, 1954)같은 오래전의 시절서부터 또 일 년 전에 출연하였던 ‘판초 빌라’
(Villa Rides, 1968) 와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같은 할리우드
서부영화에서의 조연이나 또는 제 2-3의 주인공을 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위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아듀 라미’ 나 이 작품 같은 프랑스 영화의 출연이 계기가
되면서, 이후 그는 대기만성(당시 48세) 형의 탑 스타로서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1952년에 발표한 ‘금지된 장난’ (Jeux Interdits) 으로
프랑스를 넘어 이미 세계적인 스타급 감독이 되어 있던,
르네 끌레망(Rene Clement /1913-1996, 프랑스) 은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를 통해 이미 ‘낭만이 가득한’ 스릴러를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 이 작품 역시도 도처 도처에 교묘하게 낭만을 감춰놓았다.
눈을 감거나 뒤로 던져도 항상 정확한 목표를 맞출 수 있는 호두까기의 대가,
해리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창틀이 아닌 유리를 깨는 장면도 그래서 재미난 해석을
낳았지만, 특히 (줄거리 전개에 매우 중요한) 여러 소품들을 이용한 끌레망 다운
치밀한 연출이 일품이다.
이렇게 해리가 즐겨먹던 호두에서부터 요일을 알려주며 시종일관 긴박감을 표현하던
고풍스런 벽시계의 추, 또 문제의 붉은 색 손가방과 사체의 손에서 나온 멜리 옷의
작은 단추 등등, 또한, 멜리에게는 시종일관 속옷에서부터 레인코트와 모자까지도
전부 흰색으로만 입히면서, 무언의 상징도 보여주었지만, 특히 터프 가이, 브론슨의
이미지를 또 다르게 창조해낸 점은 높이 살만 하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71년, 골든 글로브 상의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도 수상하였는데,
이번에 할리우드 배우로 재미를 보아서 그런지, 차기작인 ‘빠리는 안개에 젖어(1971)’
에도 훼이 더나웨이(Faye Dunaway, 1941)를 기용하여 당시 프랑스의 최고 감독
으로서의 명성을 계속 이어간다.

20대에 빠리로 홀로 상경하여 (은인) 끌로드 를루슈(1937, 프랑스 파리)를
만난 이후, 그와 함께 ‘남과여‘(Un Homme Et Une Femme. 1966)를 통하여
놀라운 감성적 재능을 선보이며 프랑스 문화계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후랑시스 레이(Francis Lai, 1932, 프랑스 니스)는
이 작품에서도 무척이나 신선하고 인상적인 오리지널 스코어(OS)를 선보였다.
그는 이 영화의 OS에 두개의 Theme을 큰 축으로 하면서 끌레망이 추구하는
낭만적인 서스펜스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는데, 메인 Theme이자 제1의 Theme은
비가 나리는 첫 장면에서부터 기타의 선율로 잔잔히 슬프게 들려오다 서서히
전자 올갠과 선율이 합쳐지는 곡으로, 원래 이름이 멜랑꼴리(Melancolie)이기도 한
여주인공, 멜리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우수를 멜랑꼴리의 분위기로 잘 전달하며
전편을 통해 여러 번 반복이 된다(위의 동영상).
이곡은 세브린느(Severine)의 노래로 엔딩 크레디츠를 장식하기도 한다.

제2의 Theme 은 멜리가 참석을 한 한 결혼식의 피로연에서 들려오는 월츠 곡
으로서, 바로 해리가 멜리에게 처음 접근을 하는 장면(아래 동영상)에서 등장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광고음악으로 사용이 되면서 메인 Theme보다도
오히려 대중적으로 더욱 잘 알려지기도 하였다.
특히 이 제2의 Theme의 마지막 일부분은 편곡을 통하여 때론 긴장된 분위기를
잘 묘사하기도 하였는데, 멜리가 어린 시절의 불행하였던 일을 회상하는 장면마다
이곡이 배경음악으로 들려온다. 이 분위기는 이태리의 니노 로타(Nino Rota)에게도
영향을 준 듯, 그 유명한 ‘대부‘(The Godfather, 1972)에서의 결혼식 장면 월츠에
까지 이어지는 듯하였다. 후랑시스 레이는 이 영화의 음악을 만들자마자, 곧이어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겨, 작업에 착수한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로
대망의 아카데미상을 처음 수상하게 되었다.
* 제 2의 Theme이 나오는 장면 입니다.

현대의 대중 경제에 결코 좋을 리가 없는 ‘양극화(Polarization)’ 현상이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 오늘날 전 세계 영화계에서도
크나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모두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세계화 현상의 대표적인 단점인 셈인데,
막강한 자본력의 할리우드 영화들에 치인 제 3국들의 작품들은
이제,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그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1,000만 관객이 드는 한편의 작품보다도 100만 관객이 드는 10편의 작품들이
나오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우리나라의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큰 고민이지만, 한 시절, 이렇게 세계를 풍미하였던 프랑스 영화계도 같은 고민에
휩싸여 있는 것이 오늘 날의 현실이다 보니, 자연히 이렇게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제 발로 찾아와 출연을 하였던 1960-70년대가 그리워 질 수밖에 없겠다.
우리나라 영화계에 바라는 바도 마찬가지이겠고, 또 비록 큰 별과 영웅이 없다는
21세기의 오늘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부디, 할리우드에 기죽지 않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랄뿐인데, '왕의 남자(2005)‘나 또는 '라 비 앙 로즈
(La Mome, 2007)‘ 같은 작품들이 훌륭한 이정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 영화 장면 모음:

Jay.218.Nov.'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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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jaygunkim/trackback/2206859/14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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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성 2009.03.01 19:38 [218.144.17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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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유투브에서 이자료를 보았습니다.
혹시 비디오테잎이나 DVD를 보유하고 있으신지요.
꼭 좀 부탁드리고싶어서...^^
yesyae@empal.com
으로 메일 부탁드려도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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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2009.04.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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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전하는건 절대 아니지만 이 영화의 귀한 DVD가 지난 3월에 국내에서
출시가 되었습니다.가격은 자장면 한그릇 값 정도. 유재성님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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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정사 / Vivre Pour Vivre 음악적인 리뷰 +동영상과 음악모음
1967년/감독: Claude Lelouch /주연:Candice Bergen + Yves Montand
음악: Francis Lai / 130분


왜 사느냐고 묻는 질문처럼, 묻기에는 쉽고
대답하기에는 어려운 질문도 그리 흔치 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질문의 답을 철학이나 종교 등을 동원하여 찾으려 한다면,
이마도 그 답은 이미 간단치 않아지는데,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나 ‘인생‘ 이란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Vivre Pour Vivre’ 라는 원제목과 영어로 ‘Live For Life’ 라는
제목을 붙인 이 프랑스 영화는 그저 단순히 ‘삶을 위해 산다.’ 고 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무척이나 간단한 답을 주고 있다.

그럼 무슨 연유에서 이렇게 ‘살기위해서 산다.’ 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삶의 목적과 이유가 특이하게 제목으로 등장을 한 것일까?
프랑스의 한 방송국의 뉴스 캐스터로 일을 하고 있는 중년의
로버트(Robert Colomb/Yves Montand,1921-1991).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까뜨린(Catherine/Annie Girardot, 1931, 빠리)과의 결혼생활에
슬슬 싫증이 나서 그런지, 출장이랍시고 허구 헌 날, 밀레유(Mireill)다, 재클린
(Jacqueline)이다 해가며 젊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느라 무척이나 바쁘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뉴욕에서 온 어린 모델,
캔디스(Candice/Candice Bergen,1946, LA)에게 또 다시 마음이 끌리고,
얼마 후, 콩고 내전 취재를 핑계로 그녀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날아간다.

그런데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떠났던 이 아프리카 여행에서 철없는
캔디스는 로버트가 유부남인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푹 빠지게 되고,
얼마 후, 일주일간 예정으로 까뜨린 과 로버트 부부 단 둘이서만 여행을 떠난
암스텔담 에도 (몰래) 처 들어가 로버트를 난처하게 만든다.
또 다시 (빠리의) 바쁜 업무핑계를 대면서 이국에 홀로 까뜨린만 남겨둔 채,
시내의 다른 호텔에서 캔디스의 품에 안기는 로버트.(아래 동영상 참조)
그러다 결국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행실을 의심해 온 까뜨린 에게
빠리로 돌아가는 야간열차 침대칸에서 모든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이에 너무나 충격을 받은 까뜨린은 한밤중에 기차에서 중도하차를 하면서,
이들의 결혼생활은 금이 가 버린다.
한창 전쟁 중이던 베트남으로 자원을 하여 현실도피를 하게 되는 착잡한 로버트.
그런데 얼마 후 TV 뉴스는 로버트가 미군의 군사 작전을 현장취재 하던 중에
그만 실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크게 보도한다.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에 크게 낙담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신문 기사를 보는 캔디스.
그리고 빠리 시내에 가게를 새로 오픈하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한 까뜨린
역시 TV 뉴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후, 수많은 취재진들의 후레쉬의 세례를 받으며 빠리 공항에 무사히
귀국을 한 로버트.
텅 빈 집에서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수소문 끝에 스키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까뜨린을 찾아가는데, 왠지 일행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고
있는 까뜨린의 모습이 마치 타인같이 멀게 만 느껴진다.
그리고 둘이서 함께 춤을 추자고 청해도 냉정히 거절을 하는 까뜨린.
이렇게 이 둘의 결혼생활은 이제 완전히 끝이 나는 걸까?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빠리로 돌아가려는 로버트는 차 창문에
쌓인 눈을 치우다 차 속에 앉아있는 까뜨린을 발견하게 된다.(아래사진)

우리말 제목인 ‘파리의 정사‘가 뉴욕으로 돌아간 어린 캔디스의 입장이었다면,
원 제목인 ‘삶을 위해 산다.‘ 는 어쩌면 바람둥이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주는
조강지처, 까뜨린의 입장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서부터 영화의 중간 중간에 느닷없이 등장을 하는
전쟁 기록 필름(이차 대전과 베트남 전 등의)등을 통해, 전쟁의 참혹성과
잔혹성도 이 삼각 관계의 러브 스토리와 함께 의도적으로 대비하여 부각 시킨
끌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 1937, 프랑스 파리)가
던지는 (삶의 철학에 관한) 메시지는 또 과연 무엇이었을까?
난폭한 폭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랑이 존재하는 이런 삶’이야말로
살 가치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 적이 있었으니
이제 이 특이한 원제목의 궁금증은 해소 되는 듯하다.
1966년에 돈을 빌려가며 어렵게 완성한 ‘남과여’(Un Homme Et Une Femme)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 영화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그가 일 년이
지난 후, 전편과 똑 같은 스탭을 동원하여 할리우드를 겨냥하면서 만든 이 작품은
아무래도 목표가 뚜렷한 만큼 캐스팅에 최대의 심혈을 기우렸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인기 엔터테이너(배우 + 가수)였던
이브 몽땅(Yves Montand, 1921-1991) 과
일 년 전에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1930-1980)과 함께 ‘산 파블로
(The Sand Pebbles, 1966)‘ 에서 공연을 하며 급속히 주가를 올리고 있던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 1946, LA)의 캐스팅은
기대 이상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얼굴은 예쁘지만 그동안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아온 캔디스 버겐은 이 작품을 통해 끌로드 를루슈의 꼼꼼하고 프랑스적인
감성 연기지도로 해서 이후 실력도 갖춘 할리우드 배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브 몽땅의 본부인으로 출연을 한 베테랑 여배우,
아니 지라르도(Annie Girardot, 1931, 빠리)의 중후한 연기 역시
본부인이 중심이 된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의 무게를 더 하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남자주인공이 유명 인기가수라면 그에게 한 두곡의 주제곡을 부르게 하면서 쉽게
그 유명세에 편승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새로운 음악 분위기 창조라는 이유로
OST 제작 작업에서 이브 몽땅을 완전히 배제시킨 것을 보면, 끌로드 를루슈도
참으로 보통사람은 아니다.(하지만 2002년의 ‘And Now Ladies And Gentlemen'
에서는 이 방식을 뒤늦게 사용하였다.)

OS 음악 역시 ‘남과여(1966)’ 와 마찬가지로 끌로드 를루슈의 (당시) 제일 친한
짝꿍이던 후랑시스 레이(Francis Lai, 1932, 프랑스 니스)가
또 담당을 하였는데, ‘남과여’ 보다도 더욱 더 프랑스의 냄새가 짙게 밴 낭만적이고,
더욱 더 고풍스러운 이 주제곡들로 그는 미국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게 되었고, 또 이 작품을 계기로 그에게 3년 후,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러브스토리(1970)’의 주제곡과도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낮 설지 않은 영화 음악 연출 스타일이지만, 출연을 하는 몇 몇 주인공
별로 각각 Theme을 다르게 만들어서 그들이 나올 때마다 그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을 후랑시스 레이가 이 영화에서 처음 시도를 하게 되는데,
남자 주인공, ‘로버트의 테마(Theme De Robert)’, 그리고 부인, ‘까뜨린의 테마
(Theme De Catherine)‘, 또 마지막으로 ’캔디스의 테마(Theme De Candice)‘가
더욱 더 다양한 음악분위기를 연출하였다(음악은 아래 OST 수록곡 리스트 참조).
[이런 스타일은 이후 엔니오 모리꼬네도 일 년 후인 1968년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에서 시도하게 된다.]
또한 메인 Theme을 비롯한 이런 주인공별 Theme 에도 전작인 ‘남과 여‘에서
삐에르 바루(Pierre Barouh)와 함께 듀엣으로 여러 곡의 주제곡들을 불러 찬사를
받았던 여가수, 니콜 끄로와질 (Nicolle Croiselle)의 허밍(스켓) 코러스가
이번에도 역시 더욱 빛을 발한다.
* The Mystic Moods Orchestra 와 Paul Mauriat Orchestra 의 연주 버전:

‘남과 여‘와 비교해 볼 때, 지난번 같이 제작비가 부족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프리카, 암스텔담, 빠리, 뉴욕 등지의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한 독창적이고도
다양한 영상미는 더욱 출중해졌다고 많은 칭찬들을 받았으나,
음악적으로 비교를 하면, Main Theme 만 더욱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을 뿐,
주제곡(노래)이나 삽입곡 측면에서의 그 다양성은 아무래도 좀 떨어지는 듯하다.
1956년에 데뷔를 한 이래 프랑스 최고의 여자 배우중의 한명 이었지만, 그동안
노래와는 별 인연이 없던 여주인공, 아니 지라르도를 니콜 끄로와질과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게 하여 완성한 ‘Des Ronds Dans L'eau’ (Now You Want
To Be Loved)만이 제법 특이한 곡(OST 앨범의 5번째 곡/ 삐에르 바루 공동 작곡)
으로 지목을 받았고, 이곡은 베트남에서 현지 방송을 하고 있는 TV속의 로버트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는 까뜨린의 얼굴과 함께 흘러나온다.
최근에 어느 평론가는 끌로드 를루슈 와 후랑시스 레이는 1960년대 중후반에
그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모두 다 소진하였다고 냉혹하게 말한 적이 있었지만,
이 말은 역설적으로는 이 작품이 그들의 최 전성기의 수작임을 입증하는듯하다.
‘졸업(1967)’ 과 ‘밤의 열기 속으로(1967)’가 상들을 휩쓴 1968년도 제25회,
골든 글로브 상에서 주제가 상과 음악 상의 후보로도 올랐었고,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제40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도 후보작이었음).

21세기에 들어와서도 ‘And Now, Ladies And Gentlemen (2002)‘을 비롯하여
‘11’09"01-September 11(2002)‘등, 칠순이 지난 나이에도 2-3년에 한 편 꼴로
제작활동을 계속 중인 끌로드 를루슈가 1960년대 중반에 ‘남과여(1966)’와
이 작품 등을 통하여 프랑스 영화계에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과 ‘제3의 물결
(혁명)‘을 일으키고, 한편으론 전 세계의 영화(TV 와 CF 포함)들의 시네마토그래피
(Cinematography)를 포함하여 영상과 음악 등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주목할 만한 공로도 이젠 세월이 흘러가면서 하나의 전설로만 남게 된 듯하다.
물론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신세대들 앞에서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겠지만,
이 영화의 OST CD도 후랑시스 레이의 팬들이 유독히 많은 음반 왕국, 일본에서나
1997년이 되어서야 출반(아래 OST 참고/ 오리지널 LP는 1967년 발매)이 되었고,
또 다른 것은 다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이, 캔디스 버겐 한 명만을 봐서라도 진작에
미국 시장에서 출시되었어야 할 이 영화의 DVD 역시 아직까지도 무소식인걸 보면서
지금 끌로드 를루슈의 현주소가 어딘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가 그지 없다.
(프랑스에서만 를루슈 감독의 특별 박스세트의 하나로 DVD가 출시되었었음)
* 아래의 동영상은 암스텔담에서의 세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금으로선)
아주 귀한 영상입니다. 영화도 보여주시고 또 이런 클립도 직접 만들어주신
이정원님께 다시 한번 특별감사를 전합니다.

* 일본 판 OST CD 수록곡 리스트:

1. Vivre Pour Vivre
2. Theme De Catherine
3. Theme De Candice
4. Vivre Pour Vivre
5. Des Ronds Dans L'eau (Now You Want To Be Loved)
6. Theme De Catherine
7. Theme De Robert
8. Vivre Pour Vivre
9. A Wourd 'Hui C' Est Toi (All At Onc e It's Love)
10. Zoom
11. Vivre Pour Vivre
* 영화 속의 장면들 외:

Jay. 206. May'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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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jaygunkim/trackback/2206859/146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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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009.10.3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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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보다는 주제음악(비브르 뿌 비브르)이 간지럽지요
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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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 질 때 까지/ Wait Until Dark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67년/ 감독: Terence Young/ 주연: Audrey Hepburn + Alan Arkin
음악: Henry Mancini / 107분

전쟁터에서 군인과 간호사 신분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된 두 사람이
20년이 지난 후에, 이번에는 지구의 반대편 대륙에서 감독과 여배우로 다시
만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고 하면 과연 믿을 수가 있는 사실일까?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란 종종 이렇게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네덜란드 전선에서 발레도
배우면서,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며 병원에서 일을 하던 16세의 소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 벨기에)은
영국군 공수부대의 일원으로 참전을 하였다가 부상을 당해 입원을 한
티렌스 영(Terence Young. 1915-1994, 중국태생)을
처음 만나 병상에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전부터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을 하던 영은 전쟁이 끝나자마자(1946년), 감독으로 데뷔를
하였고, 또 세월이 흘러 27번째가 되는 이 작품을 자신이 신세를 졌던 그 간호사,
헵번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들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24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출연을 한 할리우드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년)로
일약, 요정과도 같이 급부상을 한 신데렐라, 오드리 헵번은 그동안 전 세계적인
남성 탑 스타들과 매번 파트너를 바꾸어가면서 15편의 영화를 만들어 왔었는데,
그중에서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1956)‘에서도 공연을 한바있는 개성 있는
미국배우, 멜 훼러(Mel Ferrer. 1917, 미국 뉴저지)와 1954년 9월에 결혼을 하여
슬하에 자녀를 한명 두고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었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라는 로맨틱 스릴러에서도 공포에 질린 그녀의
왕 눈을 이미 본적이 있긴 하지만, 1965년부터 제작자로도 활동을 하기 시작한 남편,
멜 훼러는 그동안 그녀가 주로 맡았던 젊고 순박한 어린 여성 역을 탈피하여
비록 공포에 휩싸여있긴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하는 강한 여성으로서의
헵번의 변신 이미지도 이제는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브로드웨이에서 이미 좋은
평판을 받았던 연극 작품(Frederick Knott 원작)을 아내를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영화화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미 007시리즈로 잘 알려진 중국 상하이 태생의 영국인 감독, 영을 영입
하면서 이런 오래전의 인연의 끈을 다시 잇기 시작하였는데, 역시 제작자의 의도대로
히치콕 의 작품들과 비교해도 될만한 또 하나의 명 스릴러를 탄생시킨 것이다.

일 년 전, 교통사고의 화재로 인하여 실명을 하고, 이제는 맹아학교에 다니면서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 어둠 속의 새 세상을 익혀나가는 주인공,
수지(Susy Hendrix, Audrey Hepburn)는
얼마 전, 횡단보도에서 만나, 자기를 도와준바 있는 사진작가,
샘(Sam, Efrem Zimbalist Jr. 1918, 미국 뉴욕)과 결혼을 하여
뉴욕 에서 단란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장이 잦은 샘이 캐나다 몬트리올을 다녀오면서 리자(Samanta Jones)라는
생면부지의 한 여인이 케네디 공항에서 맡긴 마약이 든 인형하나 때문에 갑자기
크나큰 공포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리자와 함께 사기범죄를 저지르던 두 남자,
마이크(Mike Talman/Richard Crenna, 1926-2003, 미국 LA)와
칼리노(Carlino/Jack Western, 1924-1996, 미국 오하이오)는
리자의 메모를 보고 수지가 외출한 그녀의 빈집에 들어왔다가, 리자의 시체를 발견
하고는 놀라 도망을 치려다 그녀를 죽인 잔인한 악당,
해리(Harry Roat/Alan Arkin, 192-34, 미국 뉴욕)에게 오히려 붙잡혀
마지못해 시체를 옮기고 함께 인형을 찾는데 서로 협력하기로 한다(아래 사진).

다음날, 집 옆에서 시체가 발견되어 어수선한 가운데, 샘이 일하러 나간사이,
세 악당은 수지의 집 앞에다 큰 차를 주차해놓고 거기에 머물면서, 그녀를 번갈아
찾아가면서 사기극을 연출하는데, 우선, 마이크는 샘의 군대친구인양 거짓말을 하면서
수지에게 접근을 하고, 칼리노는 경찰인양 행세를 하며 인형에 대하여 추궁을
해보지만, 수지 역시 인형의 행방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다.
그러나 2층에 살면서, 수지의 잔심부름을 해주던 소녀, 글로리아(Julie Herrod)가
호기심에 몰래 갖고 갔었던 문제의 그 인형을 다시 갖고 오면서, 수지는 이제 생명을
위협받는 크나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바로 남편의 친구로 믿었던 마이크에게 인형을
찾았다고 전화를 한 것 인데,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를 해치려 하였던 칼리노와
이 마이크마저 죽인 해리가 나타나 휘발유를 온방에 뿌려대면서 마지막 협박을 한다.
사람 한두 명 정도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 사악한 사이코 악당 해리,
쉽게 인형을 내주면 곧 살해되리라는 것을 알고, 기지를 발휘하여 모든 방의 전구를
다 깨어버린 후, 암흑 속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연약한 맹인 수지,
과연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워너 브라더스(WB)는 1967년에 이 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극장에 공문을 보내
수지가 방의 모든 전구를 다 깨어버리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악당 해리와
맞대결을 하는 마지막 12분 동안은 극장안의 모든 비상구 전등조차도 다 끄고
완전한 암흑을 만들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고 한다.
바로 관객들로 하여금 맹인인 수지가 겪는 동일한 환경을 체험하면서 동화되도록
한 조치였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조건하에서 관객들이 느낀 공포감은
W B 의 사장, 잭 워너의 말대로 완벽하기 그지없었고, 특히 죽은 줄만 알았던 해리가
맨 마지막에 다시 한번 점프를 하면서 수지의 발목을 잡고 칼로 그녀를 죽이려하는
그 명장면에서는 긴장과 스릴의 압권을 이룬 것 이다.
한편, 행동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맹인으로서의 헵번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리자를 비롯하여 마이크와 칼리노까지 다 죽이고 마지막에 수지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괴물 같은 악당, 해리 역을 맡아 소름이 끼치는 연기를 펼친 앨런 알킨(1인 3역)은
해리 벨라폰티가 불러 히트시킨 ‘바나나 보트 송/The Banana Boat Song (Day-O)‘
이라는 명곡을 만든 싱어 송 라이터인데, 음악인 출신답지 않은 그의 생애의 최고의
악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하여 큰 칭찬을 받았고, 자신도 평생에 가장 잊혀 지지 않는
배역이 바로 이 해리였었다고 회고를 하였다(아래 사진).

베니 굿맨(Benny Goodman)오케스트라 와 글랜 밀러(Glenn Miller)오케스트라에서도
잠시 활동을 하다, 1952년부터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평생 300편이 넘는
작품에 관여를 하여, 무려 18번이나 미국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고, 또 4개의 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1924-1994, 미국 오하이오)는
생전에 오드리 헵번을 그렇게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2)’에서는 일부러
그녀의 목소리(키)에 맞게끔 ‘문 리버(Moon River)’를 특별히 작곡하여 바치기도
했었지만, 이후에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샤레이드(Charade. 1963년)’,나 또
이 작품과 같은 해에 개봉이 되었던 ‘언제나 둘이서(Two For The Road. 1967)’
등의 음악 역시, 그녀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매우 달콤한 분위기로 음악연출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맨시니 스타일에서 180도 변신을 하여 마치 히치콕의 오랜
짝꿍, 버나드 허맨(Bernard Herrmann. 1915-1977, 미국 뉴욕)이 즐겨 구사해온
블라디 뮤직(Bloody Music)같이 공포와 긴박감을 유발하는 오리지널 스코어(OS)를
만들었는데,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공포의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10여분 간의
암흑 속에서의 장면들에서 들려준 음악은 나도 이런 영화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듯,
헨리 맨시니의 또 다른 진면목을 느끼게 하였다.

리자가 인형 속에다 헤로인을 집어넣은 후, 몬트리올 공항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는 첫 장면과 타이틀 신에서부터 들려오는 이 영화의 Main Theme(아래 음악)은
당시에 유행을 시작하던 신더사이저(Moog Synthesizer)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였지만, 아무래도 공포 영화의 특성상 이 Theme이
그리 자주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청각을 통하여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다양한 스타일의 스코어(OS)외에도
또 하나의 동명 타이틀의 주제곡을 맨시니는 별도로 작곡을 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모나리자(Mona Lisa) 나 케세라 세라(Que Sera Sera)같은 명곡들을 작곡한
레이 에반스(Ray Evans. 1915, 미국 뉴욕)와 또 그의 오랜 콤비 작사가인
제이 리빙스턴(Jay Livingstone. 1915-2001, 미국)이 공동으로 가사를 만들어
헨리 맨시니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죽음의 일보직전에서 간신히 살아난 수지가 남편, 샘과 포옹을 하는
해피 엔딩의 장면을 뒤로하고 들려오는 이곡은 관객들에게 안도감을 주는듯한
편한 분위기로서, 1960년대 말의 유행스타일이 잘 베어있는 노래이긴 하지만,
마지막 엔딩 크레디츠에서만, 그것도 일절만 들을 수가 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아기를 낳고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 보통 여자들은 살이 좀 찌게 마련이건만,
이 영화 속의 오드리 헵번은 오히려 전보다 더 깡마른 모습이었고,
또 거기다, 콘택트렌즈가 주는 고통이 싫다며 대부분의 장면에서 렌즈를 끼지 않고도,
눈동자를 한곳에 응시하는 진짜 맹인 같은 연기는 절박한 상황 속에 처한 연약한
그녀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수많은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는데,
헵번과 영 감독은 촬영기간 중에도 맹인학교에서 오랫동안 함께 필요한 지식들을
충분히 습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그녀의 연기경력에서 가장 성공한 스릴러 작품을 만들었고,
또 이듬해의 오스카상의 후보까지 다시 되었던 헵번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하여
할리우드를 떠나게 되고, 이듬해인, 1968년에는 남편, 멜 훼러와 이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의 성공이 오히려 부부사이를 더 나빠지게 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그녀는 1969년에 연하의 이태리 출신의 의사, 안드리아 도티(Dr. Andrea
Dotti)와 재혼을 하여 자녀를 한명 더 낳게 되고, 7년 후, ‘Robin And Marian(1976)’
으로 컴백을 하기까지 가정에만 충실하였다(1982년에 다시 이혼).
그리고, 1988년에 유니세프의 특별대사로 임명이 되면서, 1993년에 스위스에서 타계
할 때까지 스크린이 아닌 아프리카와 남미의 가난과 기아의 현장에서 어려운 아동들을
상대로 수많은 봉사를 펼쳐, 전 세계인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었다.
* 예고 편 과 동영상모음:

Jay.198/revised. Mar.'09.pa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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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jaygunkim/trackback/2206859/145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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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2006.03.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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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햇번의 청순미가 최고였던것 같고, 이영화땜에 스트레스 풀었던 사람이 많았았었을겁니다. 관객들이 워낙 소리를 많이 질러대던 영화였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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