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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 질 때 까지/ Wait Until Dark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2006.02.21 12:32 | 영화음악-1960년대下 | 제이

http://kr.blog.yahoo.com/jaygunkim/1459329 주소복사

어두워 질 때 까지/ Wait Until Dark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67년/ 감독: Terence Young/ 주연: Audrey Hepburn + Alan Arkin

음악: Henry Mancini / 107분



전쟁터에서 군인과 간호사 신분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된 두 사람이

20년이 지난 후에, 이번에는 지구의 반대편 대륙에서 감독과 여배우로 다시

만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고 하면 과연 믿을 수가 있는 사실일까?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란 종종 이렇게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네덜란드 전선에서 발레도

배우면서,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며 병원에서 일을 하던 16세의 소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 벨기에)

영국군 공수부대의 일원으로 참전을 하였다가 부상을 당해 입원을 한

티렌스 영(Terence Young. 1915-1994, 중국태생)

처음 만나 병상에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전부터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을 하던 영은 전쟁이 끝나자마자(1946년), 감독으로 데뷔를

하였고, 또 세월이 흘러 27번째가 되는 이 작품을 자신이 신세를 졌던 그 간호사,

헵번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들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24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출연을 한 할리우드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년)

일약, 요정과도 같이 급부상을 한 신데렐라, 오드리 헵번은 그동안 전 세계적인

남성 탑 스타들과 매번 파트너를 바꾸어가면서 15편의 영화를 만들어 왔었는데,

그중에서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1956)‘에서도 공연을 한바있는 개성 있는

미국배우, 멜 훼러(Mel Ferrer. 1917, 미국 뉴저지)와 1954년 9월에 결혼을 하여

슬하에 자녀를 한명 두고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었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라는 로맨틱 스릴러에서도 공포에 질린 그녀의

왕 눈을 이미 본적이 있긴 하지만, 1965년부터 제작자로도 활동을 하기 시작한 남편,

멜 훼러는 그동안 그녀가 주로 맡았던 젊고 순박한 어린 여성 역을 탈피하여

비록 공포에 휩싸여있긴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하는 강한 여성으로서의

헵번의 변신 이미지도 이제는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브로드웨이에서 이미 좋은

평판을 받았던 연극 작품(Frederick Knott 원작)을 아내를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영화화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미 007시리즈로 잘 알려진 중국 상하이 태생의 영국인 감독, 영을 영입

하면서 이런 오래전의 인연의 끈을 다시 잇기 시작하였는데, 역시 제작자의 의도대로

히치콕 의 작품들과 비교해도 될만한 또 하나의 명 스릴러를 탄생시킨 것이다.



일 년 전, 교통사고의 화재로 인하여 실명을 하고, 이제는 맹아학교에 다니면서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 어둠 속의 새 세상을 익혀나가는 주인공,

수지(Susy Hendrix, Audrey Hepburn)

얼마 전, 횡단보도에서 만나, 자기를 도와준바 있는 사진작가,

샘(Sam, Efrem Zimbalist Jr. 1918, 미국 뉴욕)
과 결혼을 하여

뉴욕 에서 단란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장이 잦은 샘이 캐나다 몬트리올을 다녀오면서 리자(Samanta Jones)라는

생면부지의 한 여인이 케네디 공항에서 맡긴 마약이 든 인형하나 때문에 갑자기

크나큰 공포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리자와 함께 사기범죄를 저지르던 두 남자,

마이크(Mike Talman/Richard Crenna, 1926-2003, 미국 LA)

칼리노(Carlino/Jack Western, 1924-1996, 미국 오하이오)

리자의 메모를 보고 수지가 외출한 그녀의 빈집에 들어왔다가, 리자의 시체를 발견

하고는 놀라 도망을 치려다 그녀를 죽인 잔인한 악당,

해리(Harry Roat/Alan Arkin, 192-34, 미국 뉴욕)
에게 오히려 붙잡혀

마지못해 시체를 옮기고 함께 인형을 찾는데 서로 협력하기로 한다(아래 사진).



다음날, 집 옆에서 시체가 발견되어 어수선한 가운데, 샘이 일하러 나간사이,

세 악당은 수지의 집 앞에다 큰 차를 주차해놓고 거기에 머물면서, 그녀를 번갈아

찾아가면서 사기극을 연출하는데, 우선, 마이크는 샘의 군대친구인양 거짓말을 하면서

수지에게 접근을 하고, 칼리노는 경찰인양 행세를 하며 인형에 대하여 추궁을

해보지만, 수지 역시 인형의 행방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다.

그러나 2층에 살면서, 수지의 잔심부름을 해주던 소녀, 글로리아(Julie Herrod)가

호기심에 몰래 갖고 갔었던 문제의 그 인형을 다시 갖고 오면서, 수지는 이제 생명을

위협받는 크나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바로 남편의 친구로 믿었던 마이크에게 인형을

찾았다고 전화를 한 것 인데,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를 해치려 하였던 칼리노와

이 마이크마저 죽인 해리가 나타나 휘발유를 온방에 뿌려대면서 마지막 협박을 한다.

사람 한두 명 정도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 사악한 사이코 악당 해리,

쉽게 인형을 내주면 곧 살해되리라는 것을 알고, 기지를 발휘하여 모든 방의 전구를

다 깨어버린 후, 암흑 속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연약한 맹인 수지,

과연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워너 브라더스(WB)는 1967년에 이 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극장에 공문을 보내

수지가 방의 모든 전구를 다 깨어버리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악당 해리와

맞대결을 하는 마지막 12분 동안은 극장안의 모든 비상구 전등조차도 다 끄고

완전한 암흑을 만들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고 한다.

바로 관객들로 하여금 맹인인 수지가 겪는 동일한 환경을 체험하면서 동화되도록

한 조치였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조건하에서 관객들이 느낀 공포감은

W B 의 사장, 잭 워너의 말대로 완벽하기 그지없었고, 특히 죽은 줄만 알았던 해리가

맨 마지막에 다시 한번 점프를 하면서 수지의 발목을 잡고 칼로 그녀를 죽이려하는

그 명장면에서는 긴장과 스릴의 압권을 이룬 것 이다.

한편, 행동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맹인으로서의 헵번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리자를 비롯하여 마이크와 칼리노까지 다 죽이고 마지막에 수지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괴물 같은 악당, 해리 역을 맡아 소름이 끼치는 연기를 펼친 앨런 알킨(1인 3역)은

해리 벨라폰티가 불러 히트시킨 ‘바나나 보트 송/The Banana Boat Song (Day-O)‘

이라는 명곡을 만든 싱어 송 라이터인데, 음악인 출신답지 않은 그의 생애의 최고의

악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하여 큰 칭찬을 받았고, 자신도 평생에 가장 잊혀 지지 않는

배역이 바로 이 해리였었다고 회고를 하였다(아래 사진).



베니 굿맨(Benny Goodman)오케스트라 와 글랜 밀러(Glenn Miller)오케스트라에서도

잠시 활동을 하다, 1952년부터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평생 300편이 넘는

작품에 관여를 하여, 무려 18번이나 미국 아카데미상의 후보가 되고, 또 4개의 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1924-1994, 미국 오하이오)

생전에 오드리 헵번을 그렇게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2)’에서는 일부러

그녀의 목소리(키)에 맞게끔 ‘문 리버(Moon River)’를 특별히 작곡하여 바치기도

했었지만, 이후에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샤레이드(Charade. 1963년)’,나 또

이 작품과 같은 해에 개봉이 되었던 ‘언제나 둘이서(Two For The Road. 1967)’

등의 음악 역시, 그녀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매우 달콤한 분위기로 음악연출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맨시니 스타일에서 180도 변신을 하여 마치 히치콕의 오랜

짝꿍, 버나드 허맨(Bernard Herrmann. 1915-1977, 미국 뉴욕)이 즐겨 구사해온

블라디 뮤직(Bloody Music)같이 공포와 긴박감을 유발하는 오리지널 스코어(OS)를

만들었는데,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공포의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10여분 간의

암흑 속에서의 장면들에서 들려준 음악은 나도 이런 영화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듯,

헨리 맨시니의 또 다른 진면목을 느끼게 하였다.



리자가 인형 속에다 헤로인을 집어넣은 후, 몬트리올 공항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는 첫 장면과 타이틀 신에서부터 들려오는 이 영화의 Main Theme(아래 음악)은



당시에 유행을 시작하던 신더사이저(Moog Synthesizer)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였지만, 아무래도 공포 영화의 특성상 이 Theme이

그리 자주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청각을 통하여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다양한 스타일의 스코어(OS)외에도

또 하나의 동명 타이틀의 주제곡을 맨시니는 별도로 작곡을 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모나리자(Mona Lisa) 케세라 세라(Que Sera Sera)같은 명곡들을 작곡한

레이 에반스(Ray Evans. 1915, 미국 뉴욕)와 또 그의 오랜 콤비 작사가인

제이 리빙스턴(Jay Livingstone. 1915-2001, 미국)이 공동으로 가사를 만들어

헨리 맨시니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죽음의 일보직전에서 간신히 살아난 수지가 남편, 샘과 포옹을 하는

해피 엔딩의 장면을 뒤로하고 들려오는 이곡은 관객들에게 안도감을 주는듯한

편한 분위기로서, 1960년대 말의 유행스타일이 잘 베어있는 노래이긴 하지만,

마지막 엔딩 크레디츠에서만, 그것도 일절만 들을 수가 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아기를 낳고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 보통 여자들은 살이 좀 찌게 마련이건만,

이 영화 속의 오드리 헵번은 오히려 전보다 더 깡마른 모습이었고,

또 거기다, 콘택트렌즈가 주는 고통이 싫다며 대부분의 장면에서 렌즈를 끼지 않고도,

눈동자를 한곳에 응시하는 진짜 맹인 같은 연기는 절박한 상황 속에 처한 연약한

그녀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수많은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는데,

헵번과 영 감독은 촬영기간 중에도 맹인학교에서 오랫동안 함께 필요한 지식들을

충분히 습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그녀의 연기경력에서 가장 성공한 스릴러 작품을 만들었고,

또 이듬해의 오스카상의 후보까지 다시 되었던 헵번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하여

할리우드를 떠나게 되고, 이듬해인, 1968년에는 남편, 멜 훼러와 이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의 성공이 오히려 부부사이를 더 나빠지게 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그녀는 1969년에 연하의 이태리 출신의 의사, 안드리아 도티(Dr. Andrea

Dotti)
와 재혼을 하여 자녀를 한명 더 낳게 되고, 7년 후, ‘Robin And Marian(1976)’

으로 컴백을 하기까지 가정에만 충실하였다(1982년에 다시 이혼).

그리고, 1988년에 유니세프의 특별대사로 임명이 되면서, 1993년에 스위스에서 타계

할 때까지 스크린이 아닌 아프리카와 남미의 가난과 기아의 현장에서 어려운 아동들을

상대로 수많은 봉사를 펼쳐, 전 세계인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었다.


* 예고 편 과 동영상모음:









Jay.198/revised. Mar.'09.paran



Sam 2006.03.05  15:56

오드리햇번의 청순미가 최고였던것 같고, 이영화땜에 스트레스 풀었던 사람이 많았았었을겁니다. 관객들이 워낙 소리를 많이 질러대던 영화였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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