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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 Bird 음악적 리뷰 + (찰리 파커의) 음악과 동영상 모음
1988년/ 감독: Clint Eastwood / 주연: Forest Whitaker + Diane Venora
음악: Lennie Niehaus / 161분

우리나라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요절을 한 음악인들이 남긴 작품들은
아무리 들어도 왠지 보석과도 같은 느낌을 더욱 더 준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이 없을 것이라는 그 희귀성이 주는 프리미엄도
그래서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
사후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름 앞에 붙기 마련인 “참으로 아까운 천재“라는
수식어도 더욱 더 그런 느낌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죽고 나서 훨씬 더 각광을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
1970년대 초,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요절을 하여 화제가 되었던 ‘쓰리 제이스
(Three J‘s -제이로 이름이 시작되는 세 명)’, 즉,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43-
1970),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cks. 1942-1970), 그리고 짐 모리슨(Jim Morrison
.1943-1971)도 다 여기에 해당이 된다고 말 할 수가 있겠다.

TV를 비롯한 종합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1970년대의 이들과는 달리
매스 미디어가 아직도 덜 발달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1950년대 중반에 있었던
찰리 버드 파커(Charlie Bird Parker. 1920-1955, 캔사스)의
요절(소식)은 사후 반세기가 지난 최근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정도로
매우 쓸쓸하고 조용한 대접을 매스컴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다만 자기나이보다 적어도 30살은 더 늙게 보이는 60대 중반의 나이로 그의
사체를 처음 보고 짐작을 한 의사의 착각을 다룬 토픽성의 기사만이 신문에는 크게
실렸었다고 하니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그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였는지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일생을 다룬 올리버 스톤감독의 1991년도 작품,
도어즈 (The Doors)를 볼 때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되지만, 왜 그렇게 쉽게
술과 마약에 자기 자신을 포기하였는지 한편으로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줄거리 자체가 그의 성공담보다는 인간적으로 점점 망가져가는 과정을 더욱 더
조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 실제 그의 사진)

'버드(Bird)‘ 나 또는 ’야드버드(Yardbird)‘ 라는 닉네임이 더욱 더 친숙한
찰리 크리스토퍼 파커 주니어(Charles Christopher Parker Jr.)
1920년 8월29일, 캔사스 시에서 18살의 어린엄마에게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이후부터 쭉 편모 슬하에서 자라났다는데, 11세의 생일에 엄마에게서
받은 색소폰 선물이 그의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15살 때, 이미 캔사스의 재즈뮤지션들과 어울리면서 음악을 하기 시작하였고,
또 일평생 그에게 떨칠 수 없었던 큰 유혹이 되었던 술과 마약 등(여자 포함)도
이미 이 때부터 벌써 시작을 했다고 한다.
1938년부터 피아니스트인 제이 맥셴(Jay Mcshann)의 밴드에서 이미 활동하던 그는
뉴욕으로 진출한 이후(1940년),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Dizzie Gillespie),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그리고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버드 파웰(Bud Powell)등과 함께 비밥(Be-bob)이라 불리던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개발하고 실험하면서(그동안 사용하던 코드와 음계를 확장시키고 넓힘=그의 최대
공로), 1945년에는 자신의 작은 밴드를 조직도 하고 또 재혼(1936년, 초혼)도
하게 된다(이 시절에 ‘Billie's Bounce’, ‘Koko’ 등 출반).
그의 황금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1940년대 후반부터는 유럽과 쿠바등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애프로-큐반(Afro-Cuban)리듬과의 혼합 연주, 또 현악기 악단과의 협연
등을 통해 재즈음악의 대중화를 비롯한 다양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그러나 1950년대에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이미 중독 상태가 된 마약과 술로서
1955년에 죽을 때 까지도 바로 이 악마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한 것이었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마초(Macho)아이콘으로 시작이 된 할리우드의 또 하나의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1930, 미국 SF) 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재즈음악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재즈)피아노도 어릴 때 배우면서 재즈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하기 원하였지만,
LA 대학에서 중도 탈락한 이후, 세상 현실은 그에게 1955년부터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만들었고, 1959년도의 유명한 TV 시리즈 ‘로하이드(Rawhide)’를 발판으로
1964년의 ‘황야의 무법자’에 출연을 하면서 전문 배우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1971년에 자신이 설립한 맬파소(Malpaso)프로덕션을 통해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재즈 음악을 반드시 모든 작품에
(상습적으로) 반영시키기 시작하였는데,
이 영화야 말로 그의 개인적인 취향이 100% 반영이 된 그의 최초의 음악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7번째 제작 작품이고 15번째 감독 작품이다.)
1984년부터는 재즈 음악에 그 바탕을 둔 영화 음악(OS)을 직접 작곡까지도 하면서,
(2004년 까지 9편) 또 다른 재능도 과시를 하고 있지만, 1997년에 발표가 된
‘Eastwood After Hours(Live At Carnegie Hall)’를 보면 그동안 그 역시 얼마나
미국의 재즈 음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영화는 1954년 9월1일 새벽 5시에 있었던 찰리 파커의 자살 미수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그의 말년 인생을 중심으로 조명하면서 회상을 통해 음악계에 데뷔하던 젊은
시절부터 함께 소개를 하고 있다.
야간 업소에서 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한 버드. 1950년부터 결혼생활을 같이 해온
백인 부인, 챈(Chan-Diane Venora, 1952, 미국)과의 대화도 순조롭지 않고,
위궤양의 통증에 시달리며 모든 일에 지친 듯 한 표정의 버드는 화장실로 가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막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는 버드.
신문에는 죽은 딸로 인해 신경쇄약 증세를 보인다는 기사가 나가고,
주치의는 음악을 포기하더라도 주립병원으로 옮겨서 충격요법을 받아보자고
권하지만 챈은 남편의 뛰어난 재능을 그렇게 죽일 수는 없다고 말하며
그냥 퇴원을 한다.
그리고는 배우 발렌티노를 흉내 내어 백마를 타고 나타나, 챈에게 구혼을 하던
시절과 10대 때의 과거로 회상이 시작되는데.......
(챈은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부인이었다).

영화 후반부에도 등장을 하지만 뉴욕의 52번가와 53번가 사이의 브로드웨이에 위치
하였던 클럽, 버드 랜드(Bird Land-1949년 오픈)에서 만나게 된 남작부인(Baroness),
니카(Nica-Diane Salinger, 1951) 역시 버드의 말년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
이었다.
버드의 팬으로서 챈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부유한 그녀는 재정적으로도
많은 지원을 하였다지만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잠시 머물러있던 챈을 대신하여
자신의 저택에서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치던 날 밤인 1955년 3월12일,
TV에서 방영이 되던 코미디 쇼를 보다가 갑자기 만 34세의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게 된 찰리 파커를 임종하게 된다.
1946년도 겨울의 LA (정신)병원에서의 그의 기록에는 낯선 곳에서의 상실감,
새로운 음악(비밥)에 대한 LA 관객들의 무관심, 그리고 마약확보의 실패 등이 입원
원인으로 적혀져있었다고 하지만, 1954년의 LA와 뉴욕 병원기록에는 그해 세상을 뜬
2살 된 딸, 프리(Pree)에 대한 그리움이 주는 상실감과 절망이 추가 되어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심장을 포함한 간이나 위가 한계상황에 도달이 된 지경이었다고 하니,
글쎄 아무리 음악이 그의 인생에서 최우선이었다지만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시간의 새는 날수밖에 없으니 새는 날아가야만 한다네...”
("The Bird Of Time Has But A Little Way To Flutter, And Bird Is On The Wing")
거울 앞에서 울먹이며 자신에게 독백을 하던 버드의 그 유명한 말이다.

요절한 음악인의 일생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은 첫 장면에서부터
끝 장면까지 쉬지를 않고 계속 등장을 한다.
1984년부터 이스트우드와 짝꿍(Collaborator)을 이루워, 항상 함께 작업을 해온,
레니 니하우스(Lennie Niehaus. 1929, 미국 세인트루이스)가
오리지널 스코어(OS)도 만들고 또 음질이 나쁜 찰리 파커의 오리지널 뮤직의
보강 작업도 직접 진두지휘를 하였다는데, 찰스 맥퍼슨(Charles Mcpherson)도
참여하면서, 버드가 녹음을 하였던 (오리지널)색소폰 소리에 돌비 서라운드(Dolby
Surround) 로 (추가)반주를 덧입히는 일이 아주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LA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자택을 방문할 때
배경 음악으로 나오던 ‘The Firebird’에서의 발레곡과 세 아이들과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이곡도 한번 ‘비밥’으로 연주해보아야겠다고 말하던 마리오 란자
(Mario Lanza)의 ‘Be My Love’를 제외하고는 찰리 파커의 재즈 음악만
약 20여곡이 잠깐씩 이나마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그의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말할 수 있는 챈과 아이들과의
행복하였던 시절에서의 장면(1950년대 초)에서 들리던
‘로라 (Laura)’라는 아름다운 음악만은 전곡을 다 들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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