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福33LA타임즈]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우주Feel (jaehwoo)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7882)
[0]:속보/운동/이슈 새 글이 있습니다. 새 댓글이 있습니다.
[1]:메인폴더↓[여기]
[2]:좋은글/감동글 새 글이 있습니다.
[3]:音樂/가요모음2
[4]:유머/웃음/해학 새 댓글이 있습니다.
[5]:世界/歷史/감동 새 댓글이 있습니다.
[6]:韓國/문화/유산 새 글이 있습니다. 새 댓글이 있습니다.
[7]:中國/日本/東南亞
[8]:美國/유럽/남미
[9]:미술/名畵/건축
[10]:女性/사진/예술
[11]:동영상/U-Tube
[12]:과거/625/북한 새 글이 있습니다. 새 댓글이 있습니다.
[13]:건강/생활/자료 새 글이 있습니다. 새 댓글이 있습니다.
[14]:컴/껨/자료모음
[▣]:손님방/좋은글
[15]:윈엠FM방송
[16]:新聞/논설/日語
[17]:雲江臺/동문글
[18]:福33/LA동문모임
[19]:宇宙筆/글/가족
설문
백만가지 주제
개설일 : 2005/04/02
 

NAVER 메일

 


 
음악 수동으로 켜고~.

 


가을 雪嶽山에서
欲勞於形:
사람이 형체에 공을 드리고자 하면
病不能成:
백병이 능히 이루지 못한다.
酒勿大醉: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지 말라.
疾自不生:
모든 질병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食了行百步:
식사를 하고 나서 백보를 걸어라.
以手摩胃:
손으로 밥통을 자주 문지르고
丑日剪甲:
(寅日)이나 (丑日)에 손발톱을 깍고
髮梳百度:
머리에 빗질을 백번씩하고
卽立小便:
배부르면 서서 소변을 보고
卽坐旋尿;
배고프면 앉아서 소변을 보라.
處勿當風: 가고 머무는 것에 바람을 쐬지 말고,
止無小隙:
머므는 곳에 한치의 틈도 없이하라
夜濯足臥:
밤에는 항상 발을 씻고 자리에 누워라.
食終無益:
배부르게 먹는 것은 결국 이익 될게없다.
慮最傷神:
많은생각은 정신을 가장 상하게 하고
怒最傷氣:
넘치는 기쁨과 성냄은 氣를 상하게한다
去鼻中毛:
코 속에 털이 자라면 매일 잘라 내고
習不唾地:
항상 침을 땅에 뱉지 않은 습관을 기른다.
明欲起時:
보통 날이 밝아 일어나고자 할 때에는
床先左脚:
침상에서 왼발을 먼저 내려놓아라.
;日無災殃:
나날이 재앙이 없으면
邪兼壁惡:
사(邪)가 가고 아울러 악(惡)도 물러난다.
能七星步:
능히 칠성보(七星步) 할 것 같으면
人長壽樂: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 사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味傷於筋:
신맛을 너무 많이 먹으면 근육을 상하고,
味傷於骨:
쓴맛을 너무 많이 먹으면 뼈를 상한다.
卽不益肉:
단맛은 속살에 이로울 게 없고
多敗精氣:
신맛이 지나치면 정기(精氣)를 패하며
多促人壽:
짠맛이 지나치면 수명을 재촉한다.
得便耽嗜:
한쪽으로 탐익하여 치우치게 즐기지 말라.
夏少施泄:
봄과 여름에 방사(房射)를 절제하면
 冬固陽事:
가을과 겨울에 부부생활이 굳건해진다.
臥是守眞:
홀로 자며 진정(眞情)을 잘 지키고
靜最爲貴:
진실로 고요한 것이 진정 귀한 것이다
財生有分:
돈과 재산은 분수에 맞게 있으면 되는 것으로,
足將爲利: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장래를 이롭게 한다.
知是大患:
억지로 행하는 것이 큰 우환임을 알라.
慾終無累:
적은 욕심은 마침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淨自常安:
고요한 정신은 항상 편안한 것이니라
之屋壁中:
이 글을 집 속에 벽 가운데 숨겨 두고,
以傳君子:
장차 군자가 오거든 전해 주어라.





 

* [경주]: 불국사(佛國寺) 에서 ***

2009.12.04 15:59 | [6]:韓國/문화/유산 | 우주Feel

http://kr.blog.yahoo.com/jaehwoo/15815 주소복사

경주 불국사(佛國寺) 에서









경주 불국사(佛國寺) 에서

(2009/11/19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경주 불국사 전경 입니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염원한 이상의 불국토(佛國土)를 3갈래로 구현한 것으로 〈법화경 法華經〉에
근거한 석가의 사바세계는 대웅전으로,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극락전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는 비로전으로 대표됩니다. 



















































































































   ■ 불국사 [佛國寺]  -네이버 백과
 
-지정번호  명승 및 사적 제1호 
-지정연도  1963년 3월 28일 
-소재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敎區本寺)의 하나로 그 경내(境內)는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 경내면적은 11만 7541평이다.

불국사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그 중 하나는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로, 여기에 보면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조하게 하여 봉안하였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고,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한편, 《불국사 사적(事蹟)》에서는 이보다 연대가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刱)되었다고 하였다. 이상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이 확실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에 있는 이 기록을 보면, 글씨도 일정하지 않고 크기도 달라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추측되므로 여기에 나열된 건물들이 당시 한꺼번에 창건되었다고는 보기 힘들며 오히려 임진왜란 때까지 조금씩 건립된 것으로 추정함이 옳을 것 같다. 1593년 5월 임진왜란의 병화로 2,000여 칸의 대가람이 불에 타버리자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국가적으로 또는 승려들에 의하여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그 이상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유지(遣址)만 남아 있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經樓)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泛影樓)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 불국사[ 佛國寺 ] -네이트 백과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에 있는 절.

 

〔창 건〕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의 발원으로 창건하였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 佛國寺古今創記〉에 의하면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한 이듬해인 528년(법흥왕 15)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과 기윤부인(己尹夫人)이 이 절을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574년(진흥왕 35)에는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이 절을 중창하고 승려들을 득도하게 하였으며, 왕의 부인은 비구니가 된 뒤 이 절에다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불상을 봉안하였다. 또한, 670년(문무왕 10)에는 이 절의 강당인 무설전(無說殿)을 짓고 신림(神琳)·표훈(表訓) 등 의상(義湘)의 제자들을 머물게 하였다고 전한다.

이들 기록에는 신라 불교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다소의 모순이 있지만, 현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의 복장기에서 이 불상들이 681년(신문왕 1) 4월 8일에 낙성되었다고 하였으므로 당시의 불국사가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대웅전과 무설전을 갖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성의 중창〕

 

불국사가 대찰이 된 것은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절은 75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774년(혜공왕 10) 12월에 그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완공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뒤 국가에서 완성시켰다. 따라서, 이 절은 김대성 개인의 원찰(願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원찰로 건립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준공 당시 이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일곽 등 5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는 〔표〕와 같다.

이 밖에도 그 위치를 알 수 없는 건물의 이름이 45종이나 나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큰 건물로는 오백성중전(五百聖衆殿, 32칸)·천불전(千佛殿, 25칸) 등이 있고, 이 두 개의 건물만큼 크지는 않아도 중요한 건물로는 시왕전(十王殿, 5칸)·십륙응진전(十六應眞殿, 5칸)·문수전(文殊殿, 5칸) 등이 있다. 또한 승방이라고 생각되는 동당(4칸)·서당(4칸)·동별실(5칸)·서별실(5칸)·청풍료(淸風寮)·명월료(明月寮)·객실·영빈료 등이 있었으며, 그 밖에 누·각·문·고·욕실 등이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중 수〕

 

김대성이 중창한 뒤 임진왜란 전까지 이 절은 9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다. 887년(진성여왕 1)과 1024년(현종 15)에는 규모 미상의 중수를 하였고, 1172년(명종 2)에는 비로전과 극락전의 기와를 갈았으며, 1312년(충선왕 4)에도 규모 미상의 중수를 하였다. 1436년(세종 18)에는 대웅전과 관음전(觀音殿)과 자하문(紫霞門)을 중수하였고, 1470년(성종 1)에는 관음전을, 1490년에는 대웅전과 각 절을 중수하였다.

1514년(중종 9)에는 극락전의 벽화를, 1564년(명종 19)에는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1593년(선조 26) 5월 왜구가 침입하여 백성들과 물건을 노략질할 때 좌병사(左兵使)는 활과 칼 등을 이 절의 지장전 벽 사이에 옮겨다 감추었고, 왜병 수십 명이 이 절에 와서 불상과 건물과 석조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감탄하다가 무기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여덟 사람을 밟아죽이고 절을 불태워버렸다.

그때, 난을 피하여 장수사(長壽寺)에 와 있었던 담화(曇華)가 문도를 이끌고 불국사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대웅전·극락전·자하문 기타 2,000여 칸이 모두 불타버린 뒤였고, 금동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과 석교(石橋)와 탑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때 타버린 목조건물들은 20년이 지난 뒤부터 점차 복구되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일곽의 경우, 해안(海眼)이 1612년(광해군 4) 경루와 범종각과 남행랑 등을 복구하였고 1630년(인조 8)에는 태호(泰湖)가 자하문을 중수하였으며, 1648년에는 해정(海淨)이 무설전을 복구하였다. 대웅전은 1659년(효종 10) 천심(天心)이 경주부윤의 시주를 얻어 중건하였다. 이 밖에 안양문(安養門)·극락전·비로전·관음전·나한전·시왕전·조사전만이 이때 중건되었을 뿐 나머지는 복원되지 못하였다.

그 뒤 또다시 퇴락되어 가던 이 절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발원으로 중창되었다. 이때의 대복원공사를 위하여 1969년에는 문화재위원들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1970년 2월에 공사를 착공하여 준공하였다. 당시까지 유지로만 남아 있던 무설전·관음전·비로전(毘盧殿)·경루·회랑 등은 이때 복원되었고 대웅전·극락전·범영루(泛影樓)·자하문 등을 새롭게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람배치 및 당우〕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불국(佛國),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이다. 불국을 향한 신라인의 염원은 세 가지 양상으로 이곳에 나타나 있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다.

이 셋은 각각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일곽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일곽과 비로전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놓았다.

 

(1) 석단(石壇)과 석교(石橋)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다. 이 석단은 그 아래와 위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이고, 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나타낸다. 석단의 멋은 소박하게 쌓아올린 거대한 돌의 자연미에 있고, 대척적(對蹠的)으로 병렬된 2단의 석주(石柱)에 있다.

크고 작은 돌을 함께 섞어 개체의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고, 굵고 굳센 돌기둥과 돌띠로 둘러 견고한 통일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석단은 불국세계의 높이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 세계의 반석 같은 굳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두 모퉁이 위에는 경루(經樓)와 종루(鐘樓)를 만들어서 한없이 높은 하늘을 향하여 번져가는 묘음(妙音)의 위력을 나타내었다.

이 석단에는 대웅전을 향하는 국보 제23호인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와 극락전을 향하는 국보 제22호인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寶橋)의 두 쌍의 다리가 놓여 있다. 청운교·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고, 칠보·연화교는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안양문에 연결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청운교·백운교는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계단은 33천(天)을 상징하는 것으로 욕심의 정화에 뜻을 두고 노력하는 자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1686년(숙종 12)과 1715년(숙종 41)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고,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없어졌던 돌난간도 복원하였다.

 

(2) 자하문과 회랑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이 있다. 자하문이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이 자하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紫金光身)이라고도 하므로 불신에서 발하는 자주빛을 띤 금색 광명이 다리 위를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에서 자하문이라 한 것이다.

세간의 번뇌를 자금색 광명으로 씻고 난 뒤, 들어서게 되는 관문이다. 자하문의 좌우에는 임진왜란 후의 중건 때에 만든 동서회랑이 있었지만 1904년경에 무너졌다. 회랑의 양 끝에 역시 경루와 종루가 있었지만 동쪽 경루는 일찍이 없어지고 서쪽의 종루만 남아 있다가 1973년 복원 때에 좌경루(左經樓)와 더불어 옛 모습을 찾았다.

이 회랑은 대웅전의 옆문과 통하게 되어 있는데, 회랑의 구조는 궁중의 것과 비슷하다. 국왕은 세간의 왕이요, 불(佛)은 출세간의 대법왕이라는 뜻에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회랑을 건립하는 수법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참배객은 최초의 존경을 표하는 뜻에서 정면문으로 출입하지 않고 이 회랑을 통하여 대웅전으로 나가게 된다.

 

(3) 범영루와 경루 범영루는 처음에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불렀다. 수미산모양의 팔각정상에 누를 짓고 그 위에 108명이 앉을 수 있게끔 하였으며, 아래에는 오장간(五丈竿)을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108이라는 숫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번뇌를 안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10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범영루는 751년(경덕왕 10)에 건립하였고, 1593년(선조 26)에 불탄 뒤 1612년(광해군 4)과 1688년(숙종 14)에 중건하였으며, 1708년(숙종 34)에 단청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중건된 것으로 옛 모습대로 정면 1칸, 측면 2칸이며 3층으로 된 아담한 누각이다. 범영루의 동편에는 좌경루가 있었으나 조선 말에 완전히 없어졌던 것을 1973년의 복원공사 때 재건하였다. 경루는 경전을 보존한 곳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원래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4) 석가탑과 다보탑 삼층석탑인 석가탑은 국보 제21호로,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두 탑은 불국사의 사상 및 예술의 정수이다.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 탑은 영원한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보신불인 석가모니불이 이곳에 상주한다는 깊은 상징성을 가진 탑으로서, 불교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시키고자 노력한 신라 민족혼의 결정이기도 하다. 석가탑 내에서 발견된 유물인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6) 무설전 대웅전 바로 뒤에 있는 무설전은 불국사의 여러 건물 가운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670년(문무왕 10)에 이 건물을 짓고 문무왕은 의상과 그의 제자 오진(悟眞)·표훈 등 몇 명의 대덕(大德)에게 ≪화엄경≫의 강론을 맡게 하였다. 이 건물도 1593년 임진왜란 때에 불탄 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여 1910년 이전까지 보존되었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하였다.

경론을 강술하는 장소이므로 아무런 불상도 봉안하지 않고 설법을 위한 강당으로서만 사용하였으며, 무설전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진리의 본질, 불교의 오의가 말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7) 극락전과 안양문 입구에서 연화교·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이 일곽도 751년에 지어졌고, 그 당시에는 회랑을 비롯하여 석등 및 많은 건물과 석조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건물 및 석조물들은 극락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신라 중기의 전형적인 정토계 사찰의 구조로서 매우 정돈된 것이었다.

 

안양문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26년(인조 4)과 1737년(영조 13)에 중창하였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며, 안양문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안양문을 넘어서면 극락전에 이른다. 견고한 석단 위에 목조로 세워진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750년에 오환(悟還)·무숙(武淑) 등이 중창하였고 1925년 3월에 다시 중수하였는데 목조의 수미단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까지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의 두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비로자나불은 원래 대웅전에 있던 것을 일제의 중수 때 이곳으로 옮겼던 것으로, 지금은 비로전으로 옮겼다. 극락전 안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통하여 올라가는 길에는 3열로 지어 쌓은 계단이 있다.

 

그 각각은 16계단이어서 모두 합하면 48계단이 된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한 것으로, 48원을 성취하여 극락세계를 건립한 법장비구(法藏比丘)의 뜻을 기린 것이다.

속전에 의하면 중생사(衆生寺)의 관음상과 함께 영험력이 크다 하여 매우 존숭받았다고 한다. 이 관음상은 1674년(숙종 즉위년)과 1701년·1769년의 세 차례에 걸쳐 개금(改金)되었다. 마지막 개금기록으로 보아 18세기 중엽까지는 이 관음상이 있었음이 틀림없는데, 언제 관음상이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는 1973년의 복원 때 새로 조성한 관음입상을 봉안하고 있다.

 

(9) 비로전 관음전 아래 서편에 있으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따로 건립한 것은 ≪화엄경≫에 의한 신앙의 흐름이 불국사의 성역 안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로전은 751년 김대성이 18칸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수하였으나, 조선 말에 무너져서 터만 남아 있었다. 1973년의 복원공사 때에 현재의 건물을 지어서 극락전에 임시로 안치하였던 국보 제26호인 비로자나불을 옮겨 봉안하였다.

 

(10) 부속 암자 및 기타 유물 불국사를 처음 지을 때 토함산 일대에는 일곱 개의 암자가 있었다. 토함산에 칠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칠보동산이라고 하였으며, 따라서 일곱 군데에 암자를 짓고 금·은·진주 등 칠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유지를 찾을 수 없다.

이 밖에도 칠보교 앞에는 두 쌍의 간주(竿柱)가 서 있고 거대한 석조(石槽)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불국사 경내에는 보물 제61호인 사리석탑(舍利石塔) 외에도 5기의 부도가 있다. 또한, 경내가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참고문헌≫ 佛國寺古今創記
≪참고문헌≫ 韓國의 寺刹 1-佛國寺-(한국불교연구원, 一志社, 1974)
≪참고문헌≫ 韓國寺刹全書(權相老,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손 상 태(son sang tae) 011-267-5648

* [탐방]: 양산재(楊山齋) & 나정(蘿井) 탐방 **

2009.12.04 15:47 | [6]:韓國/문화/유산 | 우주Feel

http://kr.blog.yahoo.com/jaehwoo/15814 주소복사








양산재(楊山齋) & 나정(蘿井) 탐방

(2009/11/19 현재)


신라시대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양산재(楊山齋) 와 신라(新羅)의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담쟁이 우물인 나정(蘿井) 탐방 전경 입니다
 




































































신라(新羅)의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담쟁이 우물인 나정(蘿井) 입니다 


















 


  ■  경주 양산재 [慶州楊山齋]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塔洞)에 있는 사당. 1970년 건립한 전형적인 재실(齋室) 건축물로서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BC 57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의 6부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신라의 첫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3대 유리왕이 이들의 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양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진지촌은 정씨, 대수촌은 손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로 각각의 성을 내려 이들이 각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당은 외삼문인 대덕문(大德文)을 지나면 동편에 윤적당(允迪堂), 서편에 익익재(翼翼齋)가 배치되어 있고 내삼문인 홍익문(弘益門)이 있다. 홍익문 안에는 주건물인 입덕묘(立德廟)가 세워져 있으며 옆에는 전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입덕묘는 이익공(二翼工)에 일고주(一高柱) 5량(樑)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이씨, 최씨, 손씨, 정씨, 배씨, 설씨 시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

 

신라 초기 경주에 있던 6촌의 하나.남천(南川)의 남쪽 담엄사(曇嚴寺) 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알평(謁平)이 표암봉(瓢岩峰)에 내려와 촌장이 되었다.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양부(梁部, 또는 及梁部)가 되었으며, 양부에 이씨의 성이 하사되자 알평은 양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940년 이 지역은 중흥부(中興部)가 되었다.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신라 초기 경주지역에 있었던 사로육촌의 하나. 남천(南川)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며,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南山)의 서편인 내남면(內南面) 일대를 의미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의하면, 소벌도리(蘇伐都利)가 형산(兄山)에 내려와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 32년(유리왕 9) 육촌을 육부로 개편할 때 사량부(沙梁部)가 되었으며, 사량부에 최(崔)씨 성이 하사되자 소벌도리는 사량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다. 고려 태조 때인 940년 무렵에 남산부(南山部)로 개칭되어 경주부(慶州府)의 육부가 되었다.1970년부터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서는 사당인 양산재(楊山齋)를 건립하여 소벌도리 등 육부 촌장들의 위패(位牌)를 모셔놓고 제례를 지내고 있다.

 

 ▶취산진지촌 [?山珍支村]

 

신라 초기 경주지역에 있었던 사로육촌의 하나.빈지촌(賓之村)·빈자촌(賓子村)·빙지촌(氷之村)이라고도 한다. 월성(月城) 및 그 동쪽에 있었다고 하며, 지백호(智伯虎)가 화산(花山)에 내려와 촌장이 되었다.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본피부(本彼部)가 되었고, 본피부에 정씨 성이 하사되자 지백호는 본피부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이 지역은 고려 태조 때인 940년 무렵 통선부(通仙部)로 개칭되어 경주부(慶州府)의 육부가 되었다.1970년부터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서는 사당인 양산재(楊山齋)를 건립하여 지백호 등 육부 촌장들의 위패(位牌)를 모셔놓고 제례를 지내고 있다.


 ▶무산대수촌 [茂山大樹村]

 

신라 초기 경주지역에 있었던 6촌의 하나.서천(西川)의 지류인 모량천(牟梁川) 유역에 있었다고 하며, 구례마(俱禮馬, 또는 仇禮馬)가 이산(伊山)에 내려와 촌장이 되었다.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점량부(漸梁部, 또는 牟梁部)가 되었으며, 점량부에 손(孫)씨의 성이 하사되자 구례마는 점량부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 고려 태조 때 이 지역은 장복부(長福部)가 되었다.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신라 초기 경주 지역에 있던 6촌 중 한 고을. 북천(北川) 북쪽 금강산의 백률사(栢栗寺) 부근에 있었다고 전하며, 지타(祗?:또는 只他)가 명활산(明活山)에 내려와 촌장이 되었다.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한지부(漢祗部)가 되었으며, 한지부에 배(裵)씨의 성씨가 하사되자 지타는 한지부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

그뒤 고려시대(940년)에 이 지역은 가덕부(加德部)가 되었다.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

 

신라 초기 경주지역에 있었던 6촌의 하나. 명활산 남서쪽 보문리(普門里) 일대에 해당되며 호진(虎珍)이 금강산에 내려와 촌장이 되었다. 32년(유리왕 9)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습비부(習比部)가 되었으며, 습비부에 설(薛)씨 성이 하사되자, 호진은 습비부 설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 지역은 고려 태조 때 임천부(臨川部)가 되었다.

 

 ▶유리왕 [儒理王, ?~57]

 

신라 제3대 왕(재위 24~57). 《도솔가》를 지었으며 6부(部)의 이름을 고치고 관계를 17등으로 제정하는 등 국가체제를 확립하였다.

성 박(朴). 노례이사금(弩禮尼師今)이라고도 한다.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운제부인(雲帝夫人)의 태자(太子). 남해차차웅이 죽자 덕망이 높은 매제 탈해(脫解)에게 왕위를 양보하다가, 군신(群臣)들의 추대로 즉위하였다. 28년 《도솔가(兜率歌)》를 지었으며, 32년 6부(部)의 이름을 고치고 이(李)·최(崔)·손(孫)·정(鄭)·배(裵)·설(薛)의 성(姓)을 내렸다.

또한 관계(官階)를 17등으로 제정하는 등 국가체제를 확립하였다. 낙랑(樂浪)이 고구려에 망하여 유민(流民)들이 넘어오자, 이를 받아들여 6부에 배치하여 살게 하였다. 6부의 여자들에게 가배놀이를 시켰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회소곡(會蘇曲)》이다. 유언으로 탈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사릉(蛇陵)에 묻혔다.

 


 ■ 경주 나정 [慶州蘿井]

 

-지정번호  사적 제245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탑동(塔洞) 700-1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깃든 우물.오릉(五陵) 남동쪽 소나무숲 속 시조유허비(始祖遺墟碑) 옆에 있다. 보호면적은 7,328㎡이다. 이곳에는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하여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잘 남아 있다. 특히 팔각건물지는 한 변의 길이가 8m나 되고 네모난 담장을 두른 것으로 보아 신라의 신궁터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곳 나정에 박혁거세를 제사지내는 신전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전한 지절원년 임자(前漢地節元年壬子:BC 69) 3월 1일,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村)의 촌장들이 모여, 군주를 선출하고 도읍을 정하자고 결정한 뒤 일행이 높은 곳에 올랐다. 그런데 양산(陽山) 아래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돌며 백마 1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어, 가보니 백마는 하늘로 올라갔고 붉은색의 커다란 알만 남았는데, 이 알을 쪼개자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상히 여겨 동천(東川)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고 새 ·짐승들이 춤추듯 노니니, 천지가 진동하며 해 ·달이 청명해졌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세상을 밝게 한다 하여 혁거세라 이름하고, 알이 박같이 생겼다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1975년 11월 20일 사적 제245호로 지정되었다.


 




*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三聖宮) 풍경 **

2009.12.04 07:37 | [6]:韓國/문화/유산 | 우주Feel

http://kr.blog.yahoo.com/jaehwoo/15809 주소복사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三聖宮) 풍경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대전 태평산악회 정기산행에 동참해서
지리산 청학동에서 배달성전 삼성궁(三聖宮)으로 오르면서
촬영한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멋지고 알찬 12월 되세요~~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001]



[002]



[003]



[004]



[005]



[006]



[007]



[008]



[009]



[010]



[011]



[012]



[013]



[014]



[015]



[016]



[017]



[018]



[019]



[020]



[021]






 




기본 우주Feel 2009.12.04  07:40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三聖宮) 풍경 **

답글쓰기
기본 벌침이야기2 2009.12.04  14:33

사진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몰라도 선국(신선나라)답습니다.고맙습니다.

답글쓰기
기본 우주Feel 2009.12.04  14:39

감사합니다. 벌침님.

답글쓰기
기본 해오라비 2009.12.04  23:45

저도 11월 3일 청학동 삼성궁에 다녀왔습니다.
욕심을 내어 ( 너무 크게확대 ) 카메라에 담았더니 인터넷에서 업로드가 안되네요.
편집에서 줄여도 잘 안되네요 ( 혹시 아시면 알려주시겠어요 ? ㅎㅎㅎ)
제가 담아온 사진을 못 올려서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아주 멋있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청명하고 좋았거든요.
오빠님 방에서 보니 더욱 반갑습니다.
편안하신 나날 되십시오.... ^(^

답글쓰기
기본 우주Feel 2009.12.05  02:08

아, 해오라비님이 벌써 다녀 오셨군요. 역시 마당발은 다르시네요~.
사진이 너무 크면 안 올라가지요.ㅡ 줄일때 그 이름과 용량표시도 바꿔야해요~. MBp를 jpg로.
그거 제게 e메일로 보내 주실수 있습니까? 연구 좀 해 보게~~요.

답글쓰기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 하늘에서 본 한국의 발전상 ★

2009.12.03 18:05 | [6]:韓國/문화/유산 | 우주Feel

http://kr.blog.yahoo.com/jaehwoo/15804 주소복사

★ 하늘에서 본 한국의 발전상 ★
 

(애국가 들으시려면 아래 클릭하세요)

http://kr.blog.yahoo.com/jaehwoo/11407


 

 


▲ 위 사진은 도깨비 뉴스가 10일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같은 방식으로 촬영된 사진들로 모형헬기를 이용

"낮게는 30~40미터 높게는 400~500미터 상공에서 찍는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모형헬기에서 찍은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모습

 

 

▼ 큰 바다를 항해하는 유조선을 찍기 위해서는 헬기를 조종하는 사람 한명,

모니터를 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 한명 이렇게 두명이 있어야

작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 일산 호수공원


▲ 일산 종합운동장


▲ 남산과 서울타워



▲ 남산 서울타워



▲ 서쪽에서 바라본 여의도 전경



▲ 남동쪽에서 바라본 여의도 전경



▲ 여의도 공원



▲ 서강대교 와 밤섬



▲ 선유도 주변 한강다리들


▲ 서울 상도동 지역



▲ 서울 상도동 탑 뷰



▲ 서울 신림동 지역


▲ 보라매공원



▲ 서울 목동의 스카이라인


▲ 수원시청 근처 사거리 탑 뷰



▲ 서울 강남 테헤란로



▲ 반포 아파트 단지



▲ 서울 천호동 지역



▲ 성남 IC 지역 뷰



▲ 용인 수지 아파트



▲ 진주 촉석루



▲ 동두천에 있는 전자저울 만드는 공장


▲ 제주 성산 일출봉 가는 길



▲ 성산 일출봉



▲ 제주 중문 관광단지

  

 

▲ 충남 연기군 동면



▲ 설악산 콘도


▲ 서울 월드컵 경기장   



▲ 울산 월드컵 경기장



▲ 대형선박 [ 유조선 ]

 

▲ 대형선박 [ 유조선 ]



 

▲ 세계 조선 강국의 위용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페이지 다음 10번째 페이지
 
2009 1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오늘 전체
방문자 5898 2495107
구독자 0 345
댓글 17 25715
참조글 69 4204
최근 글
* [치매]: 예방하는..
* [문화유산]: 고구..
* [腦검사]: 한번 ..
* [전설]: 세헤라자..
* 김연아의 굴욕? ..
최근 댓글 전체보기
요기서라도 열불좀 식히..
김연아ㅠㅠㅠ
치매를 예방하는 확실한..
또또또~, 백짝님은 ..
체비님, 감사합니다요...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안면도국제꽃박람회**
50년대 국민핵교
추억의 옛장터**
닥터최의 행복론 **
쪽두리봉등반기**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조민아
- 이창선
- 제임스경
- 야자나무
- sonogong
지난 글
2009년 1월
2009년 2월
2009년 3월
2009년 4월
2009년 5월
2009년 6월
2009년 7월
2009년 8월
2009년 9월
2009년 10월
2009년 11월
2009년 12월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