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70의 나이를 거부하는 일복회(경복오빠) 등산팀입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미 은퇴해 있거나, 기업의 후진에 물러나 있지만, 과거 학생시절엔 [4.19 혁명]의 주역들이었으며, 절대 빈곤에서 허덕이던 조국의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산업사회부흥과 국가재건의 주역을 맡았던 장본인들입니다.
이들 과거의 직책은 사장,회장,행장,의사,교수 등 [사]字들이지만, 여기서는 직책이나 존칭을 생략하고 젊은오빠로 통일하겠습니다.
우주Feel 님...
누가 나의 허락도 없이 북한산 족두리봉을 함부로 올라요 ㅎㅎㅎㅎㅎ
일열힁대로 서계시는 면면들을 보니 어디서 본듯한 당당한 모습들이 보기가 좋습니다.
지하철 6호선을 타고 독바위역에서 내리면 바로 독바위로 오르죠 ?
향노봉을 돌아서 성가사로 내려오면 우리들 노인들에게 족히 한코스가 됩니다. 다들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ㅎ~~~!!!
형님께서 서울에 오신줄 알았슴니다~~~!!!
예~~~!!!
형님세대가 없었으면 우리 세대도 없을거라 생각 함니다~~~!!!
어제 뉴스에서 우리 세대를
"베이비 붐"세대라 하더군요~~~!!!
실질적인 경제성장의 주역들이
이제는 갈곳없는 신세로 전락해가고 있슴니다~~~!!!
형님~~~!!!
늘 건강 하시길 바람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잊지 못할 감사 카드가 하나 있다. 내가 채용하려 했던 어느 구직자가 보낸 것이었다.
3년 전 실험실 테크니션을 물색할 때였다. 인사과에서 한 응모자의 이력서를 보내왔다. 이름은 마틴. 나이는 30. 남가주 출생의 남미계 미국인으로 고교 졸업 후 조경회사와 시 공원 관리직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고, 결혼해서 두 살된 아들이 있으며 스페인어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면접을 위해 마틴과 마주 않았다. 외모가 준수한 그는 왠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그가 나이에 비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경험은 없어도 되지만 배우려는 의지와 일에 대한 흥미는 있어야 합니다. 잠깐 일하다 그만 두면 서로 손해겠지요"
나는 그가 맡을 일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공장을 견학시켰다.
마틴과 다시 마주 앉았다. 여전히 그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나의 시선을 피한다는 생각이 들며 내가 그의 시선을 피해주었다. 이미 훑어본 그의 이력서를 만지작거리다 무심코 나의 눈길은 그의 경력 란에 가서 멈췄다. 내가 뭘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틀림없이 ‘1996’이었다.
"마틴, 연도가 잘못 표시됐어요. 2006년이 맞지요?"
그의 마지막 경력이 1996년이었던 것이다. 그는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맞은 듯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천장을 잠시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난 처음부터 미스터 황이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1996년이 맞아요."
“아니, 지난 10년 동안 도대체 뭘 했다는 거요? 설마 놀고먹지는 않았겠지요. 가족이 있는데…"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가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옥에… 사회에 나온 지 이제 두 달 쨉니다"
그의 대답에 이번엔 내가 놀랐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 연유를 물었다.
“살인이요. 직장 동료가 주범이었어요. 현장에 함께 있다 공범으로 체포됐지요"
그가 체념한 듯 털어놓았다. 모범수에게 주어지는 혜택으로 수형기간 중 옛 애인과 결혼도 했고 아이도 하나 얻었노라고 덧붙였다.
“이 인터뷰가 아홉 번째예요. 채용이 안 돼도 그만입니다. 열 번째가 예약돼 있거든요"
그가 냉소적으로 말을 뱉으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도 적당히 둘러대서 나를 퇴짜 놓겠지" 하는 태도였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전과 사실을 인사과에 보고해야 하나, 그가 실험실 동료들과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마틴을 채용할 것인가?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결단을 통보했다.
“마틴, 같이 일합시다.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틴에게 악수를 청했다. 마틴이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그의 눈에 반짝 어렸다.
홀로 어려운 결단을 해놓고 나는 며칠간 남모르는 고민에 빠졌다. 전과를 은폐한 사실을 사장이 알게 되면 문제를 삼지 않을까, 마틴이 살인 전과자라는 사실이 사내에 알려지면 어쩌나, 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마틴의 첫 출근 날이 되었다. 그러나 입사 신체검사까지 마친 그는 나의 고민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부끄럽게도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어쩌면 나는 그가 나타나지 않기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네 열심히 살겠어요. 감사합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손을 잡아준 당신은 내게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
제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것인지 깨닫게 해주신 분이시기에.....
우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컴을 만지작 거리다가 그나마 모아둔 자료를 몽땅 날리고
망연자실....새로 시작하라는 말씀인가보다 하고 맘을 가라앉히고
맡겼더니 옛 파트너에게 부탁했더니 12월에나 봐준다 하네요.
우선 아이들의 컴을 잠시 잠시 켜봅니다.
시험은 넘 싫고 스트레스는 왕창...완전 망가져가고 있읍니다. 엉엉...
21세의 젊은 나이에 夭折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짚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인형과 마주앉아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는 젊은 나이의 자식도 없는 소녀과부 맏며느리를 수절시키는 것은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라고 여겨 개가시킨 퇴계선생 [退溪先生]을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라고 비판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퇴계선생이야말로 윤리를 깨뜨리면서 까지 윤리를 지키신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라고 판단해야 할까?
유행하는 엽기 속담 <효도는 셀프>
김기수와 니노 벤베누티의 시합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의 잊혀져가는 추억이다. PSU는 이벤트 성 Student Mixer가 매달 둘째 수요일에 열린다. 각국 유학생들이 삼삼오오로 몰려오는데 대부분 호주머니 사정이 어렵고 짝도 없고 블라인드 데이트도 별 볼일 없는 학생들 이다. 매회 돌아가며 자기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중간에 끼어 있다.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차례가 와서 매부의 소개로 한국대사관에서 홍보영화 한편을 받았다.
몇 년 후 귀국해서 실제 시합장면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김기수가 맞는 장면도 많았다.
유행하는 엽기 속담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는다.>
$100짜리 케디락의 숨은 이야기
PSU시절 이야기이다. 가리방으로 긁어 낸 한국학생신문이 있었다. 광고란에
"캐디락을 $100에 팝니다."라고 조그맣게 실렸다. 그 당시 중고차 시장에 가보면 -$49.99-가 허다했다. 소위 Lemon[똥차]다. '캐디락'하면 가난한 사람은 죽어야 한번 타 볼 지경인데 '썩어도 준치라고...'생각하는 학생이 없었다. 더구나 계약을 하기 위해 워싱턴까지 오라는 조건이다. 유행하는 엽기 속담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처럼 $100짜리 캐디락을 얕보지 말라는 듯했다. 우여곡절(迂[紆]餘曲折) 끝에 워싱턴 근교에 사시는 친척도 뵐 겸해서 찾아갔다.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계약을 끝내고 차고로 가보니 Lemon은 아닌 듯 했다.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폭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무슨 우여곡절이 틀림없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다시 변호사를 만나 이것저것 캐물으니, 어디 어디 도서관에 계신 한국계 할머니를 찾아뵙고 직접 물어보던지 하라는 퉁명스런 답변만 듣고 나왔다.
어렵사리 할머니를 뵙게 돼서 들은 이야기는 지극히 간단하다.
"남편이 보험회사 회장인데 외판원들이 개고생해서 벌어다 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비서와 바람이 나서 결국 이혼을 했는데, 몇 년 있다 이 양반이 몹쓸 병에 걸려 눕자 비서는 도망가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인생이 불쌍해서 살려놓고 보자는 생각으로 직장도 접고 보살폈는데 일 년 만에 변호사에게 유언장 하나 달랑 남겨 놓고 갔다"는 얘기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그 썩어질 인간이 자기 전 재산을 나에게 주고 자기가 타던 캐디락은 팔아서 돈으로 그 비서 년을 주라니, $100도 아깝지“ 였다.
그림 속 늪 뒤로 멀리 산이 보인다. 저 넘어 마을에는 門前沃畓이 있고 그 앞에는 맑은 시냇물이 황금빛 모래며 조약돌들을 훤히 비치고 망나니 아이들은 맨손 천렵이 훨씬 더 능숙해져 수확도 괜찮아 물고기 다발을 갈대에 꿰메들고 난데없이 웃음소리가 들린다.
김 화백의 화폭에서 많은 추억을 흘려 보낸 노스탈직한 풍경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던 어린 시절로 끌려 가면서 그 시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은행 잎처럼 쌓인다.
한적한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 잠시 머물던 손님처럼 어느 순간 가을이 떠나버리고 느닷없는 초겨울의 새벽 서리가 때아닌 10월 말에 늪을 찾아왔다는 착각 때문인지 화폭에서 눈을 뗄 수 가 없다. .
이 한 폭의 그림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하다. 이런 형태의 자연 늪은 보통 나이가 1억년을 넘는 게 허다하다. 커다란 생명의 역사가 이 안에 있다. 호수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본다면 호수 다음이 늪이고 초원 이전이 늪이다 그래서 늪의 물은 항상 깨끗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古生代부터 지구 안 또 하나의 작은 생태계라 할 수 있는 늪은 먹이사슬이 잘 유지되어 다양한 생물종이 모여 사는 지구의 허파이자 자연의 콩팥이 되었을 것이다.
생명의 寶庫이며 새들의 낙원인 늪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그 자연의 생태학적인 중요성이 간과된 채 파괴되기도 하고,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시켜가는 과정에 인간의 실수로 더 파괴되기도 한다. 동식물과 인류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상생과 공멸을 거듭하는 연기법(緣起法)의 실상을 드러낸 셈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경남 창원과 창녕의 우포늪에서는 사람 발길에 신음하는 생명의 공간인 늪을 保全[Site CelebrATION] 하기 위한 국제적인 환경행사인 ?uc0제10차 람사르 총회?uc0가 열렸는데, 창원은 내 딸이 있는 곳이라 유난히 친근감이 가는 곳이다.
이기환작 [천렵]
봄부터 가을까지 피서 겸 놀이로 냇물이나 강가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으며 헤엄도 치고, 또 잡은 고기는 솥을 걸어 놓고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데 배가 불러지면 아이들은 묘한 모습으로 짝 짖기 하는 잠자리를 잡아 떼어 놓고 좋아하기도 했다. 천렵이란 말만 들어도 특이한 정감에 젖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아마도 도회지에서 태여 난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川獵이 무슨 중국 고사에 나오는 단어 정도로 알지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누나 친구의 시골집에 갔던 추억이 살아난다. 냇물뿐만 아니라 둑 너머 논과 둑의 사이를 흐르는 수로와 절반 정도 자란 아직 마르지 않은 벼 포기 사이의 손바닥 만하게 패인 웅덩이마다 붕어나 미꾸라지가 득시글했던 기억이 난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특히 보리이삭이 여물어갈 때쯤 동내사람들이 하루 날 잡아서 도랑을 막고 또 개울을 막고 가재, 미꾸라지, 피라미 미라 모래무지, 뚜구리, 꺽지, 메기 등을 잡아 영양보충이라 이름 붙이며 많이들 즐겼던 기억이 난다. 물 빠진 개천 바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물고기 움켜잡던 일이 어제같이 아련하다.
그런데 지금은 논도랑에 고기가 없다. 냇물에서 논으로 물이 들어가는 봇도랑도 예전 같지가 않다. 냇물의 고기도 농약 쓰기 전과 후가 10분의 1 정도 될 만큼 차이가 난다. 미꾸라지는 생명력이 강해서 어느 정도 견디는데, 용곡지는 예전에 비하면 개체수가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저녁이면 마당에 멍석을 펴고 그 옆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시절이다. 늦은 저녁밥을 먹는 동안 하늘엔 별이 돋고, 공중엔 모기들만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반딧불이 불빛을 이을락 끊을락 날아다녔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uc0착각의 늪?uc0 하나씩 가지고 산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착각은 젊은 날, 나도 항상 건강하고 늙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의 늪 속에서 살았다. 심지어 공간건축에서 은퇴하기 전 해에 '氣運動'하는 내 모습이 동아 일보에 사진까지 실려서 과분한 칭찬들을 당연한 듯,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던 꼴사나운 착각을 지금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특유의 매운 맛이 타인종에게도 인기다. 떡볶이를 인기 메뉴로 만든 ‘이소퓨전카페’의 유석희(경복 47회) 사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치가 유명해지면서 김치볶음밥도 덩달아 관심이 높아졌다. ‘꾸시데리야키볼’의 박로사 주방장이 김치볶음밥 들어 보이고 있다.
"웨스트우드에서도 떡볶이와 김치볶음밥을 즐길 수 있어요."
UCLA 인근 웨스트우드 빌리지에서 '한국의 맛'이 인기다.
떡볶이 김치볶음밥 육계장 등 매운맛 외에 잡채 불고기 덥밥 등도 인기 메뉴.
처음엔 한인 친구들을 따라와 맛을 보지만 나중엔 따로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 업주들의 전언이다.
이소 퓨전카페의 유석희 사장은 "매운 맛을 좋아하는 타인종 고객들이 늘면서 떡볶이가 인기 메뉴로 자리잡고 있다"며 "치즈를 첨가해 고소한 맛을 더한 것도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치볶음밥을 판매하는 꾸시데리야끼앤볼의 톰 신 사장은 "김치가 유명해지면서 김치볶음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며 "김치볶음밥을 주문하는 고객은 한인과 타인종 고객이 반반"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불고기덮밥과 잡채는 타인종 고객이 더 많을 정도.
현재 웨스트우드 빌리지에 입점한 한인업소 수는 20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중 식당 숫자가 가장 많아 캘리포니아 롤앤 스시 떡볶이를 판매하는 이소 퓨전카페 아미스시 도모다찌 스시 재패니스 그릴 포 튜나와 잇 주시 김치볶음밥과 불고기 덮밥을 판매하는 꾸시데리야끼앤볼 등 8개가 성업중이다.
이어 핑크베리 레드망고를 비롯해 스노우베리 폴라몽키 피코몰로 젤라또와 팔라조델프레도 등 프로즌 요거트와 아이스크림 샵이 6개 정도다.
이외에 선물가게인 굿초이스기프트 사탕가게인 캔디캐슬 의류판매점인 크리살리드와 아이위시와 채식주의자를 위한 패스트 푸드점인 내이쳐스웨이 카페 등이 영업중이다.
이 지역 업주들은 안전함과 많은 유동인구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다. 내이쳐스웨이 카페의 마이클 김 사장은 "UCLA 학생들 뿐아니라 인근의 사무실빌딩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특히 대부분이 금융 보험 변호사 의사와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매력이 큰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조건이 좋다보니 높은 임대료와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한 업주는 "웨스트우드 빌리지 내에만 100여개의 식당이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며 "거기에다 렌트비가 비싸고 주차장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라고 토로했다.
웨스트우드 빌리지는 LA타임즈가 작은 맨해튼이라 지칭할 만큼 유동인구가 많기로 유명하다. 인근에 UCLA와 UCLA메디컬 센터를 비롯해 한국계 이동통신사인 힐리오와 크고 작은 오피스빌딩들이 밀집해 있다.
성업중이라니 반갑고
또 교민들의 정겨움도 돈독해 질것 같군요.
돈도 많이 버시고 타국에서 열심히 노력하시고 계시는 모습
너무 흐뭇합니다.
떡복이, 김치볶음밥 이곳에서도 인기가 좋답니다.
젊은오빠님도 옛날을 생각하시어
사모님 손잡고 맛있게 즐겨보십시오..ㅎㅎㅎ
편안하신 날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