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 느린 걸음, 그 여섯번째 이야기
신용자 칼럼 <06> 중남미를 가다

가장 긴 나라 칠레
칠레의 제2 항구 도시인 발파라이소로 가는 길은 바위절벽으로 이어진 해안길이 절경이다. 이곳의 빈야 해변은 매년 2월 세계적 해변가요제로 유명한 곳이며, 이곳의 테라스식 아파트 또한 명물이다.

* 아름다운 해안 도로

* 파블로 네루다 즐겨 찾았던 바닷가
가는 길에는 칠레의 대표적 시인 파불로 네루다(1904~1973)가 즐겨 찾았다는 아름다운 해변전망대가 길손을 반긴다.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는 사랑과 시와 혁명의 3중주로 감동을 주는 인물이다. 발파라이소를 사랑했던 네루다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 살았으며 그곳에 묻혔다(거주했던 3곳 중 하나). 그의 이탈리아 유배시절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는 우편배달부와 시인의 만남을 다뤘다. 가난한 노동자의 천국을 꿈꾸던 시인, 노벨상을 받은 시인이 있어 칠레 사람들은 오랜 세월 희망을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현재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다.
아름다운 산동네 발파라이소 그리고…
발파라이소는 1960년 쓰나미로 1만2천여 명이 사망하는 격랑을 겪은 후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옮겨가 산 전체가 색색의 집으로 뒤덮였다. 가난이 닥지닥지 붙은 거리를 보며 네루다는 그의 시에서 「언덕마다 가난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라고 읊었다. 이 마을을 격려하기 위해 1962년 월드컵이 열리기도 했었다.

* 발파라이소의 산동네(엽서)

* 해변의 테라스형 주택(가운데 연결 후니쿨라가 보인다)

* 산동네를 이어주던 후니쿨라(도로가 연결되어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음)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후니쿨라(야외 철길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 일명 아센소 승강기로 백여 년 전부터 설치)를 이용한다. 테라스식 아파트는 물론 산티아고 시내의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을 찾아가는 길도 급경사의 산길을 왕복하는 후니쿨라가 있어 가능하다.

* 발파라이소 항구 컨테이너(엽서)
발파라이소의 항구에는 색색의 컨테이너가 항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항구는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곳은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남태평양 최대 항구였던 곳이다.

* 돌아 선 장군상
언덕에서 항구로 내려가면 1878년 건립된 프로파트 장군의 동상이 있는데 바다를 등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볼리비아, 페루와의 전쟁에서 암초를 이용하여 대승을 거둔 명장으로 국민적 영웅이다. 그러나 미국 유학시절 단짝 친구였던 페루의 아르트라 장군을 죽게 한 것으로 인해 전쟁 후 큰 후유증을 겪었으며, 바다를 보면 친구 생각이 난다고 바다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죽어서도 그의 동상은 사관학교 쪽으로 돌아앉았다. 칠레의 이순신이라 불린다.
해양대국 칠레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로 사계절이 공존하는 곳이다. 섬나라가 아니지만 섬나라 보다 더 많은 바다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안테스 산맥과 이스터섬, 아타카마 사막과 남극이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이 나라는 외부로부터 보호되는 천연의 요새다. 하여 해산물과 농산물의 천국이란다. 길이 4,300㎞, 폭 170㎞에 1천 6백만 명이 살고 있다.
수도인 산티아고는 정 가운데를 뜻하는데, 세계에 10여 곳 이상 같은 이름의 지역이 있어 반드시 칠레의 산티아고라고 해야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다. 칠레란 이름은 페루어로 ‘추운나라’라는 의미이며 600여 년 전 칠레까지 지배했던 잉카인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세계의 끝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원주민인 마푸체 족은 용감하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하는데, 끝내 정복되지 않은 인디언으로 불리고 있다. 소수만이 남쪽에 거주하고 있다.
해양영토가 광대해 수산업수출이 전 세계 20%를 차지한다. 남쪽 남극까지 6,300㎞. 서쪽 이스터 섬까지 3,700㎞로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리고 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포도농사가 성공한 곳. 500여 년 전 스페인이 침공하여 남미에 포도를 심었으나 칠레에서만 성공하여 와인이 유명하다. 지리적 여건 상 병충해나 전염병에서 안전한 이곳은 수산물, 농산물 등 1차 산업이 강세. 이곳 공항의 검역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본 산티아고 전경

* 산크리스토발 언덕을 오르는 후니쿨라
칠레의 박정희, ‘피노체트’
국기는 빨강, 파랑, 흰색인데 붉은색은 피를 상징(전쟁이 많았음)하고 흰색은 안데스 산의 만년설을, 파란색은 하늘을 상장하며 용맹을 뜻한다. 한때 공산진영이었고 사회주의였던 이곳에서도 미국을 싫어하며 무비자국이지만 미국인에게만 1인에 130달러를 받는단다.
1973년 군사 쿠데타(최초의 대통령 아옌데<1971~73>는 네루다의 친구였다. 그는 위험을 알면서도 모네다 궁에서 국민에게 연설 후 궁 폭격으로 사망)로 20년간 통치한 피노체트는 박정희를 숭배했던 인물. 박정희가 사망했을 때 대통령궁은 물론 칠레 12개 주에 한국기를 달고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 청소원들의 휴식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칠레의 ‘경제를 살렸다’와 ‘인권탄압’이라는 원성이 뒤섞여 있다. 6,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 피노체트는 84세로 병사했는데(2006년) 공과가 많았음에도 영웅대접은 못 받고 있다.
북한과 수교를 하였던 이곳은 북한군의 영향(군대 훈련 등)을 받았다고 하는데, 군복 경찰 제복 등이 비슷하다.
현재는 망명자의 딸이었던 미첼 바첼레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아무튼 남미의 유럽이라고 불리며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룬 칠레는 국민들이 주택은 물론 별장까지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흑인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노예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정 공무원’ 깔끔한 관리
1967년부터 한국인 이민이 시작되어 3,500명 정도 거주하며 영주권이 쉽게 나오고 신용제도 등이 잘 돼 있어 이동률이 없다고 한다. 칠레교과서에도 한국역사를 소개할 정도로 친한적인 이곳은 2002년 월드컵을 소개할 때도 한일 공동을 빼고 코리아 월드컵으로 소개. 자동차 시장의 30%, 전자제품의 40%를 한국산이 차지한다.
또한 수출의 선두를 지키던 구리광산 외에 석유 매장량도 많으나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개발을 안 하고 있단다.
그리고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로 꼽히는 이곳(남미에서 우루과이와 공동 1위)은 깔끔한 공무원관리가 돋보인다. 공무원이 퇴직 할 때는 집 한 채를 선물하며, 20년 이상 근무하면 마지막 달 월급을 기준으로 연금을 준다. 군인 경찰 공무원에겐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만약 공직자가 부정에 연루되면 은행구좌가 폐쇄되고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어 스스로 칠레에서 살 수 없게 한단다. 법적 처벌 없이 경제적 제재만으로 깔끔하게 관리하는 게 돋보인다.

* 해넘이 무렵의 산티아고 광장 건물
천혜의 관광자원과 싱싱한 해산물 요리들
칠레는 중심부인 산티아고 보다는 동서남북 사방이 천혜의 관광지다. 못보고 가는 아쉬움을 가이드가 부채질한다. 북쪽의 아타카마 오렌지 사막은 별의 계곡으로 유명. 나사의 항공우주실험 장소라고 하는데 3만년 동안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은 사막이라고 한다. 오렌지색의 돌산이 펼쳐진 사막은 달과 별이 가장 크게 보이는 곳이라고. 그리고 소금사막과 간헐천의 온천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란다.
신의 천국으로 불린다는 파타고니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연중 꽃과 호수와 바위가 어우러지는 곳. 남극의 빙하는 푸른얼음의 진수를 보여 준단다.
서쪽 끝인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불가사의로 꼽히기도 한다. 바다를 향한 거대 석상들이(6~7m로 200여 기) 도열해 있다. 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데(이 섬에는 거인이 살고 있다는 뜻) 한 때 3만 명이 거주한 섬이기도 하다. 칠레 일주를 위해선 20여 일간의 관광이 기본이라고 한다.

* 비행기에서 본 동틀무렵 안데스 산맥
칠레의 지붕이 되는 안데스 설산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 올 때 그 위용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칠레 여행에서 가장 기분 좋은 것은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싫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남미 다른 지역은 육류가 주식). 거기에 신선한 과일과 와인까지 곁들일 수 있어 여독이 사라진 상쾌한 이별이었다.
Sarah Brightman & Jose Cura - Just Show Me How to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