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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유물 이야기 2편
김부남 동문
그 당시 과야킬의 거리 고물상에서 잉카유물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박물관에서 전시가 금지되었던 주먹만한 사람 해골이 있었는데, 어떤 약용 식물에 해골을 넣고 삶아서 말리면 그렇게 축소된다고도 했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그대로 달린것도 있었다.
이방인인 내가 원주민의 토속음식점을 차린것도 일종의 큰 모험이었다.
과야킬은 인구 백만의 항구였기 때문에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요리인 세비체(새우류)와 꼬르비나 후릿따는 나의 식당의 인기 메뉴였다.
식당의 비결이란 손님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가에 달려 있으며 그릇을 싹싹 비우면 맛있게 먹은 것이다. 손님이 항상 붐비었고 나의 식당은 명소가 되었다. * * *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 나와 친분이 있던 목민관 P씨 부부가 적도지역 잉카 유물을 구경하고 내 식당의 음식도 먹을 겸 과야킬로 내려왔다. 유물수집이 취미인 P 부인은 고고학에 관심과 소양이 많은 여자였다. 그들은 어떻게 원주민도 아닌 내가 원주민보다 훨씬 맛있게 음식을 만드냐고 하면서 그 비법을 물었고, 나는 내식당 메인 메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새우 세비체란 중간크기의 싱싱한 새우를 함지박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발그스름하게 익으면 대가리를 떼고 껍질을 벗겨 까만 줄의 내장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유리그릇에 담은 다음 토마토, 라임, 오렌지등 과일과 채소로 만든 칵텔 쥬스를 부은 후 보라색 양파와 씰란드로가 들어간 살사 [salsa de cebolla]를 얹어서 차갑게 먹는 음식으로 새콤 매콤 달콤하여 숙취도 되고 술과 먹을 때엔 안주도 되며 빵과 먹으면 식사도 된다.
조개 세비체란 이 곳에서만 나는 까만 조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입을 벌리면 거기서 흘러나온 까만 조개 국물과 까만 조갯살을 유리그릇에 담고 salsa de cebolla를 얹은 것이다 .
꼬르비나 후릿따는 민어과에 속하는 길이가 1미터 정도되는 갖 잡아 올린 싱싱한 꼬르비나를 물지게 지어 나르듯 지렛대 양쪽에 두어 마리씩 꿰차고 다니는 것을 사서 즉석에서 토막내어 통밀가루 발라서 튀겨 낸 것이다. 싱싱한 해물과 양파 와 토마토가 들어 간 살사가 환상의 맛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저런 대화 도중 P부인이 운을 띄었다. “김선생, 우리 한국 신세계에서 김선생이 적도 섬에서 가져 온 이 유물들과 내가 수집한 유물을 합쳐서 조촐하게 잉카 유물 전시회를 열어요. 제가 주선 할께요” 라고 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녀 의견에 동의하고 두 차례에 걸쳐 여러點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그들은 다른 임지로 급히 떠났고 소식이 없어서 유물전은 사실상 무산되어 버렸다. 물론 넘겨 주었던 유물은 반환되지 않았다. 나역시 긴박하게 요구하진 않았다.
* * * 그 이듬해 즈음에 과야킬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럭키산맥과 안데스산맥이 이어지는 태평양 지진대와 환태평양 지진대가 만나는 곳이 페루, 중미, 에콰돌이다. 이곳은 한달에 한번씩은 전등줄이 약간 흔들릴 정도로 미진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이 따발총 소리처럼 커지며 천지가 흔들흔들 거렸다.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 나오며 “뗌블러, 뗌블러” (떤다, 떤다) 소리쳤다. 나는 당시 우리 식당 야외용 식탁의자에 앉아 있었으므로 거리상황과 사람들의 모습등 모든 것을 목격했다.
달리던 오토바이에서 사람이 나둥그러지고 모든 차들은 흔들거리다 가까스로 섰으며 건물과 건물이 탁탁소리를 내면서 부딪치며 파편을 날리자 뽀안 먼지가 회오리 바람처럼 일어났다. 멀리 어디선가 꽝하고 폭발음이 나더니 하늘로 불기둥이 솟아 올랐다. . .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이었는데 일분여동안 지속되니 사람들은 어지럽고 팔과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일어나는 자연재해에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방에서 일하다가 그 와중에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뛰쳐나온 아내는 내 옆에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다가 내가 주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서둘러 학교로 달려갔다.
한 시간 만에 온 아내는 나에게 소식을 전했다. “여보, 아이들 학교에 갔 더니 무사하게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고 학교 풀장 물은 지진에 흔들려 엎질러 져서 반쯤만 차 있어요. 오다가 집에 들렀더니 잉카 유물들이 선반에서 떨어져 웬만한 것은 거의 다 깨어져 버렸어요." 이렇게 해서 내 무모했던 모험의 유물은 2~3년만에 반타작이 되었다. * * *
몇 년이 흘러 다시 나는 미국 LA로 이민을 왔다. 그나마 남아 있던 유물은 몇 안되는 교민들에게 정표로 한 개씩 나눠주고 열댓점 자그마한 것들만 가지고 왔다. 나는 나즈막한 자개 장식장 위에 적도 섬에서 가져온 잉카 유물들을 진열해 놓고 에과돌 과야킬에서 살던 추억을 그리고있다.
어느해인가, 그걸 무심히 들여다 보던 나는 흙피리와 추장인장등 몇점이 보이지 않기에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 하였다.
그런데 얼마전 아들네 집에 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손녀 딸이 그 흙피리를 불고 있었다. 잉카 영혼의 소리가 내 손녀가 부는 흙피리를 통해 들리고 있었다.
오래 전, 잉카의 도공이 태양이 내려 쪼이는 흙 구덩이에서 희희덕 거리며 만들었던 그 흙피리를!! " 삘리리 ~~~ 삘리리 ~~~~~ "


  
2009-10-23 김부남
미르이 끼뚜빠 이휴뚜 쁘리에, 우나 이 뚜~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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