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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의 한글사랑
장익근 목사 (LA거주)

563돌 한글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들어설 세종대왕 동상 왼손에 들게될 책은 국보 70호 解例本(훈민정음원본)이다. 1504년 7월 연산군의 손에 들려진 종이 한장은 왕의 폭정을 폭로한 언문으로 쓰여진 글이었다. 그의 광기가 또다시 치솟아 언문 금지령을 내리고, 한글로된 문서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무엇인지 몰라 버려지고 처 박혀 있던 안동의 한 민가의 고 문헌 속에서 1940년 8월 해례본이 발견 되기까지 500년이 걸렸다. 한글은 수많은 의혹과 오해속에서 언문(상스런말), 암클(여자의글), 아햇글 (아이들의 글)등 천한 글자 취급을 받아오다, 한글 사랑에 평생을 바쳐온 주시경이 어느집 안방 벽에 도배로 붙여진 몇장의 해례본 내용을 찾아내어 한글의 문법을 최초로 정리하고, 1894년 갑오개혁때 언문을 국문이라 개칭한것을, 1913년 국문을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1928년 주시경이 세운 조선 어학회에서 “가갸날”을 “한글날”로 바꾸었다. 지구상 수천개의 언어중에 백여개의 말만이 글자를 가지고 있으며, 만든 목적과 만든 사람 만든때를 알고있는 문자로 한글이 유일하다. 근대화를 통하여 상당한 정도의 물질적 성취를 이루고, 한글이 디지털시대를 맞아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 문자로 인증을 받는 시점이지만, 이제 내가 누구인지? 한글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때이다. 언어와 민족혼 까지도 말살 시키려던 한국 근대의 뿌리를 뒤 흔든 치욕적인 일제시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과 비전을 갖도록 인도한 유영모(1890-1981)의 한글사랑에 대한 열정을 살펴 본다. 3.1운동 직후 조만식의 뒤를 이어 1921년 오산 3대의 교장을 지낸 동양 철학자이며, 그 당시의 학생으로 주기철 한경직 함석헌등이 있다. 그의 한글에 대한 해석에는 주관성도 많이 포함되었겠지만, 우리 언어를 통해서 그의 참된 생각의 불꽃을 피워 나간 흔적이 흥미롭다. “ㅅ”(사랑 씨앗 생명;생존본능)위에 획을 하나씩 하늘제단에 얹어 놓으면 “ㅈ”(잘한다 존재 진실)-a”ㅊ”(참으로 잘한다,선악을 넘어선 참인간) 그것이 바로 자연-a인간-a참인간이라는 성숙의 단계로 올라감을 나타낸다.
“사람,삶,사랑”이 하나로 돌아가고, 기가 뿜어나오는 기쁨이 삶을 만들어 내고 “말”이 “숨”쉬는 말씀을 만나 결국 참 제소리를 만들어 낸다. 유영모에게는 내일 어제는 없다. 그는 하루를 오늘이라 하였고, “오”는 감탄사요, “늘”은 영원이란 뜻을 갖는 의미로 보아서 하루 하루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감격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 분이다. 참 생명인 얼(靈)이 빠져 얼빠진이가 되고, 얼이 가버려 얼간이가 되고, 얼이 썩어 얼썩은 어리석은이가 된다. 한자를 우리 말로 다시 쓰려고 한것 몇가지 살펴보면 마침보람(卒業) 살알(細胞) 숨줄(生命) 얼(精神) 씨알(民)등을 들수있다. 우리 말의 어원을 밝혀 뜻을 알게한 예는 사나이-a산아이, 아침-a 아! 처음, 여덟-a열에서 둘 없는,얼굴-a얼이 든 골짜구니(우리 얼골의 파인곳(골)에 얼이 스며 가라 앉아 인품을 나타낸다)
고맙다-a고만하다(길손님이 물을 얻어 마실때, 주인이 넘쳐나게 부으면 고만 고만하다가 생긴 말), 기혼여성-a아기주머니?아주머니?아줌마, 아버지-a어머니의 배우자 “벗”-모든희생을 퍼 붓다-바치다-이바지하다-아바지, 또는 아는 감탄사 바는 밝은 빛이라는 빛의 실천이다. 어제-a어! 언제 지나갔지?, 여보-a여기 좀 봐요(옛날 신부들은 결혼 하고도 몇년동안 신랑 얼굴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다), 글-a 그를 그리워하는것이 글이요 문화다. 무엇을 타는 사람은 걷는 사람 보다 빨리 가서 교만해지기 쉬우며, 땅에 발 붙이고 차분히 걸으면 겸손해 진다고, 인천 개성 평양을 걸어다닌 분이다. 이유없이 오래사는 평범한 우리들을 언어를 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되살릴 수 있도록 민족 혼을 깨어나게 하는 열정을 바쳤던 분이다. 나를 가리고 그늘 지우는것이 우상이다. 그 우상을 깨트리고 나를 만나야한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로 자신을 세상속에 던져서, 우리 삶에 새롭게 도전하는 역동성을 유영모는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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