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나는 콰야킬이라는 에콰돌의 조그마한 항구도시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나의 역마살은 브라질을 거쳐 파라과이와 콜럼비아를 경유하여 에콰돌에 정착하게 되었다.
내 식당에는 루벤이라는 흑인 소년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에콰돌 동남쪽 에스메란다(에메랄드)항구에서 서너시간 배로가면, 콜럼비아 국경 근처에 또루투가라는 섬이있는데, 거기에는 수 많은 잉카의 유물들이 산재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루벤과 M씨와 보물을 찾아 떠났다. 배짱좋은 모험이었다.
태양이 무섭게 내려쬐이는 적도의 중심 에스메랄다에서 내가 도착하게될 또루투가로 가는 배를 타려고 했지만 그 배는 이미 떠났고, 일주일후에야 온다고 했다. 나의 일정과도 맞지 않고 무작정 기다릴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돌아 갈수도 없는 일이었다.
2.
그날로 대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원주민의 카노아 (통통배)를 빌려 타기로 했다. 그 카노아는 소형엔징을 단 코케인 밀수선이었는데, 콜럼비아로 가는 코케인 밀수업자 두 명과 나, 루벤, M氏 이렇게 다섯 명이 일행이었다.
보기에는 상당히 낭만적이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먼 무모한 여행이었다. 나는 수영도 못하는데, 구명대마저 없어 엔징이라도 고장 나면, 그대로 물귀신이 되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를 가니 적도 우림지역에서 나오는 황토 물과 푸른 바닷물이 혼합되어 소용돌이치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다. 눈의 착시현상으로 덜컹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넓은 논바닥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적도의 태양은 후라이 팬 위의 달걀이 저절로 익을 정도로 뜨겁게 내려 죄여서 내 몸의 온갗 살을 태우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가는 신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무슨 배짱으로 이런 무모한 여행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30대 시절이어서 그런 용기가 있었던 가보다.
3.
서너 시간 계속 가니까, 파란색종이로 커튼을 친 것처럼, 하늘과 바다가 전혀 분간되지 않는 망망대해였는데, 몸은 태양열 더위에 극도로 지쳤고, 視野는 가물가물했다. 다섯 시간쯤 지났을까, 멀리 저쪽에 구름같은 섬이 보였다. 육지가 보이니까, 왈칵 삶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또루투가섬의 자매섬인 이름모를 작은 섬으로 들어왔다. 雨期가 아닌 건조기여서 진흙이 말라서 거북이 등처럼 쭉쭉 갈라지고 풀 한포기 없는 갯벌이 무연히 펼쳐져있었다.
나는 소변을 보려고 일행과 떨어져 있는 동안, 주둥이가 일미터나 됨직한 큰 물새가 커다란 깃털을 푸드득거리며 나를 공격하려고, 내 머리 주위를 빙빙 돌더니, 갑자기 내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위로 솟구쳤던 물새가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우고 또다시 나에게 닥아 오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웃통을 벗어서 이리저리 휘저으며 새의 발톱에 걸려 공중으로 낚아채져 내동댕이 쳐지는 영화 같은 장면이 올까봐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사람이다. 사람 살려~.” 앞서가던 일행이 일제히 달려와서 물새를 쫓아버렸다.
우리일행은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일행 중 두 밀수업자는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4.
이곳 사람들의 발의 크기는 쟁반을 달고 다니는 것처럼 엄청 나게 컸다. 태어나서부터 신발을 신지 않은 것이 그들의 발을 크게 만든 것이다. 이곳 섬 사람들은 전부 흑인들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오던 노예선에서 탈출한 사람들인데, 원주민이던 인디안을 몰살하고, 흑인들 만의 섬을 만들었다. 흑인은 인디안 보다 우생학적으로 강해서 그들이 닿는 곳이면, 모두 몰살 당하고 만다. 그 좋은 예가 서인도 제도이다.
그들 중에는 바다를 향해 기다랗게 말뚝을 박고 그 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마치 50년대 제주도에 흑 돼지 사육장 위로 변소가 있었던 것처럼, 수상가옥에서 대변을 보면, 날치종류의 생선들이 솟구쳐 올라와 대변을 받아먹곤 했다. 어떤 날치는 항문에 달린 잔유 대변까지 뛰어 올라 떼어먹는다고 했다. 사람의 대변이 이렇게 물고기의 먹이가 될 줄이야! 인간과 물고기의 교묘한 공생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민박시설이 전혀 없고 雨期에 食水를 보관하기 때문에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드럼통을 열고 들여다보면, 하얀 구더기가 둥 둥 떠있고 그 옆으로는 우리가 젊은 시절에 점을 치던 물 방게가 대 여섯 마리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1800년대의 아프리카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나의 목적은 잉카제국의 유물을 수집하는 것이다. 나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선전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유물 한점에 1불이라고. 처음에는 이들은 온전한 물건을 가져왔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를 둘로 깨뜨려서 개수를 늘려 왔다.
나는 조각마다 1불씩을 쳐주니 참으로 많은 유물들을 모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토기류 악기, 추장의 인장,가용품 등이었고, 특이한 것은 해적선에서 빼 온 듯 한 금붙이, 목걸이 같은 장식품도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될 길을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다. 얼굴, 목 등 내 몸은 2도 정도의 화상을 입었고, 배는 언제 올지 모른다. 육지로 연락하여 경비행기를 전세 내어 갈까 생각하던 중 참으로 연때가 맞게 은인을 만났다. 우연히 이 섬에 들렸다가 에스메랄다로 가는 군요선의 함장이 나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햇볕에 그을려 벌겋게 익은 내 얼굴을 보고 흔쾌히 승선시켜 주었다.
콰야킬로 돌아온 후 나의 적도지역 잉카유물 여행은 한동안 교민들 사이에 흥미진진한 화제거리였다. 화상을 입은 얼굴과 목등의 살갗이 벗겨지면서 몹시 따갑고 쓰라렸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때가 되면 저절로 우리 식당으로 모여드는 교민들에게 내가 가져온 보물들을 보여 주고 숯불에 구운 꼬치구이에 시원한 맥주를 대접하면서 유물 자랑을 했다.
우선 " 젊음 " 이라는 재산을 등에 지고
용감하고 과감하게 선택하신 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이렇게 모험의 길을 서슴없이 택할수 있는 젊은이들이
지금은 몇이나 될까요?
직업의식이 앞장선다고 하여도 정말 그리쉽지 않은일이라 여겨집니다.
고생은 무척 많이 하셨지만
알찬 소득에 축하드립니다.
진솔한 향기넘쳐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하시고 행복하신 나날 되십시오...
젊멋슬때 사서 고생한다드니 이경우인가 봅니다. 그러나 고생끝에 낙이있드시
소중한 잉카유물을 어렵지않게 구한 친구분 멋지십니다. 그유물한점 2배인 2불
드릴테니 제게 하나ㅎㅎ. 좋은 정보 주셨으니 저도 한번 가볼까요. 나이많아 않되
겠지요~~~ 자미있게 읽고 즐거웠습니다.
우주님^*^ 좀 뜸 했지요?
늘 즐겁고 유쾌하게 보내시는
큰오라버니가 계심에 늘 든든하죠잉^*^
넘 멋진여행을 하셨네요
장영희교수님의 형부님께서 ~
젊은때라지만 호기심과 감출수 없는
끼가 느껴지면서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좋은 꺼리가 되지 싶어요
무모한(아무나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은
평생에 야깃거리로 ~
좋은 날씨와 풍년들어 누런 벌판이
아주 환상인 이곳이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로 행복
하세요 우주님 알 ^ 라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