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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霧에 싸인 가을 설악산) -< 미국이야기 5>- 글쓴이 : 우재호
분노의 계절
저도 미국오기 전에 직장 구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한 열군데 쯤에 구직원서를 넣었는데, 번번이 낙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 안 되니까, 회사놈들이 괘씸했고, 나중에는 돈좀 가진 者들에 대해 무조건 분노하는 습관이 생겼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사회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거부감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가령 열명 뽑는 공채 회사라면 그중 5명은 권력이나 연줄로 이미 뽑아 놓고 나머지 5명 만 형식적으로 뽑는데, 그 뽑는 과정이 차라리 인격유린이라는 표현이 맞았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물 좋고, 체격 좋고, 말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은, 면접관들의 눈에 들어서 뽑힐 확률이 있지만, 저는 그런 행운조차도 타고 나지 못했습니다. 발표가 있을 때마다 실망과 분노만 느끼고 돌아서기 일수였지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미국留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낙오자의 도피성 유학이지요. [時事영어] 신문을 사다가 영어+시사+국사 공부를 함께 시작했는데, 그해 12월에 생각 보다 쉽게 합격했습니다. 저는 카투사 출신이고 [유학시험]에는 면접이 없으니까요.
유학수속次 이리저리 뛰던 어느 날 대사관 근처에서 T화장품회사 理事인 6촌형을 만났는데, 그 형의 연줄로 T화장품에 쉽게 취직이 됐습니다. 그래서 國內外 택일 의 갈등 속에 한 동안 일하다가 69년 비자가 나온 김에 때늦은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 * * *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모르지만, 제 작은 놈이 저의 행적을 똑 같이 복사하고 있습니다. UCLA 영상영화과를 나오고도 2년동안 직장을 잡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음악에 Gene(因子)이 있는지, 보통 사람보다 한 20 데시벌 더 가청 능력이 있고, 音구별이 예리해서 사람의 숨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의 영감을 뚫는 청각신경이 흑인들처럼 발달되어 있습니다. 히데코라는 일본인 2세 아주머니는 그애가 제작한 씨나리오 작품을 보고 여러날 밤을 울었다고 했습니다.
UCLA 영상영화과는 3-4학년 Undergrate 학과이지만, 사실은 대학원에 버금갑니다. 헐리웃 감독들을 배출하는 학과가 아니라, 감독들이 그 학과를 선호해서 수강신청을 하는 학과로 발전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작은 놈이 헐리웃에 발을 못 붙이는 이유는 헐리웃이 유태인의 아성으로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나 연기자를 제외 하고는 편집자도 제작자도 심부름꾼도 유태인이어야만 합니다. 심지어는 청소부도 유태인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작은 놈은 그후 컴퓨터 MSCS 분야를 6개월간 더 공부해서 라이센스를 취득한 후, 의료기회사에서 3년째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기 전공에 대한 꿈과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40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인종과 인맥의 고리가 이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의 집단 이기주의 병폐는 오늘날 한국에는 좌익정부의 후유증을 남겼고, 미국에는 알라의 테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이태백들의 운명이 왠지 내 작은 놈과 같아 측은하기만 합니다.
* * * * * *
(미국이야기 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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